정회빈 한국기초과학지원硏 선임연구원
생명과 물질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를 위해 새로운 관찰 도구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그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다. 관찰하려는 대상은 점점 작아졌지만, 그것을 살펴보기 위한 연구장비는 오히려 점점 더 커져왔다는 것이다.
17세기 광학현미경은 인간이 볼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크게 넓혔다. 1665년 로버트 훅은 현미경으로 코르크를 관찰하고 작은 방처럼 나뉜 구조를 '세포(cell)'라고 불렀다. 이후 광학현미경은 세포와 미생물처럼 맨눈으로 볼 수 없던 대상을 직접 관찰하는 기본 도구가 됐다. 당시의 현미경을 재현한 실물 크기 복제품은 높이가 약 54cm로, 책상 위에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가시광선을 이용하는 이상 한계도 있었다. 빛은 파동의 성질을 가지므로 렌즈를 통과하면서 퍼지는 회절 현상이 나타는데, 이 때문에 서로 너무 가까운 구조들은 하나처럼 겹쳐 보일 수 있다. 일반적인 광학현미경의 해상도가 약 200nm(나노미터) 부근에서 한계에 이르는 이유다.
이러한 해상도의 한계를 크게 넘어선 것이 전자현미경이다.빠르게 가속된 전자는 가시광선보다 훨씬 짧은 파장을 갖기 때문에 광학현미경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수 나노미터 수준의 구조까지 더욱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대신 장비는 훨씬 크고 복잡해졌다. 전자빔이 공기 분자와 충돌하지 않도록 진공을 유지해야 하고, 전자렌즈와 각종 제어장치도 필요했다. 높은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진동이나 온도 변화까지 관리해야 해 별도의 전용 공간을 갖춰야 한다. 책상 위에서 사용하던 현미경이 어느새 별도의 공간과 환경을 필요로 하는 대형 연구장비가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작은 물체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물질의 구조와 상태를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가 활용되고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는 전자에서 발생한 방사광을 이용해 물질을 분석하는 거대한 연구시설이다. 충북 오창에 들어설 한국새빛가속기도 이러한 연구시설이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구축을 주관하며, 둘레 약 800m의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로 만들어진다. 포항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보다 약 100배 밝은 방사광을 목표로 하며, 향후 반도체와 이차전지, 신소재,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과학의 발전을 돌아보면 새로운 연구장비는 단순히 이전보다 작은 것을 더 잘 보여주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를 하다 보면 좋은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질문 대상을 실제로 측정하고 확인하는 분석 장비가 중요함을 알게 된다.
반대로 새로운 장비가 등장하면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질문도 연구의 대상이 된다. 앞으로 한국새빛가속기를 통해 지금까지 확인하기 어려웠던 현상을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새로운 질문이 생겨날지 궁금해진다. 더 작은 세계를 보기 위해 더 큰 장비를 만들어 온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회빈 한국기초과학지원硏 선임연구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