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기술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패권 경쟁시대다. 선진국들이 막대한 자본으로 기술 블록화를 가속하는 가운데, 우리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 등 파괴적 혁신기술의 급부상에 직면해 있다. 선도국의 궤도를 쫓아온 기존 추격형 모델의 한계를 넘어, 이제 우리가 직접 규칙을 만들고 시장을 선도하는 '질적 성장'이자 '진짜 성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해법으로 최근 '제2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26~'30)'을 수립했다. 단순한 선언적 방향 제시를 넘어 4대 전략, 10개 핵심기술, 8개 정책 분야로 촘촘히 설계하며 데이터 기반의 분야별 투자 현황을 진단했고, 연차별 성과, 목표, 투자 방향과 우선순위를 제시해 정책 실행력을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국가 R&D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 투자 밑그림을 완성했고, 특히 5년간 200조원의 투자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피지컬AI 역량 확보 등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동력으로 파괴적 혁신 선도 모델인 '3대 메가프로젝트'와 '7대 SEED 역량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편, 핵심기술 투자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정책 혁신을 병행하여 연구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했다.
중장기 투자전략에 기반한 예측가능하고 강력한 이행 체계도 가동된다. 매년 3월 '국가연구개발 투자방향 및 기준' 수립 시 중장기 투자전략을 반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6월 '차년도 예산 배분·조정안'을 마련하여 5개년 전략과 연도별 예산 간의 정합성도 확보할 예정이다. 부처별 추진 실적과 기술혁신 환경 변화도 점검해, 포트폴리오나 중점 분야를 조정하는 등 매년 시행계획에 '롤링플랜(Rolling plan)' 방식을 적용해 전략을 끊임없이 진화해 계획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도 뒷받침할 행정의 틀이 제자리에 머문다면 온전히 실현되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는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성과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 이번 개선의 의의는 단순한 예산 확대를 넘어, 국가가 당면한 임무 해결을 위해 전략적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는 점에 있다. 부처별 유사 사업들을 국가적 목표 아래 결집하고, 기초연구부터 실증, 공공 조달, 스케일업에 이르는 전 주기를 촘촘히 연계해 연구 성과가 온전히 산업적·경제적 가치로 창출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곧 국가 R&D 투자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중장기 투자전략이 우리가 나아갈 뚜렷한 목적지라면, 이러한 국가 R&D 시스템의 체질 개선은 그곳을 향해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튼튼한 궤도다. 새롭게 도입된 R&D 투자 시스템이 연구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우리 과학기술이 진정한 선도자로 도약하는 든든한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위기를 기회로 돌파해 온 과학기술계의 노력이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는 결실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황지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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