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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美·中, AI 패권경쟁 속 韓 생존전략

우리 없인 AI생태계 완성 못하게
전략적 불가결성 확보 최우선 과제
첨단 반도체와 전력·제조데이터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묶어 투자
한국어와 산업데이터에 기반한
소버린 AI 역량을 함께 키워야

[fn광장] 美·中, AI 패권경쟁 속 韓 생존전략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지금 인류는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을 거쳐 또 한번의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시작으로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넘어 제조, 로봇, 자동차, 의료, 금융 등 현실 세계의 산업까지 바꾸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AI 패권을 두고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두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패권은 하나의 기술이나 기업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 모델과 플랫폼, 반도체와 메모리, 데이터센터와 전력,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이를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제조 생태계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미국 AI 산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개별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거대한 생태계다. 이용자가 늘어나면 더 많은 데이터와 서비스가 축적되고, 이는 다시 AI의 성능과 활용도를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반도체다. AI 모델에는 막대한 연산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가속기가 이를 담당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데이터를 빠르게 공급한다. 엔비디아의 GPU와 CUDA 생태계, 그리고 HBM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목받는 이유다. 미국의 AI 설계와 플랫폼, 대만의 첨단 파운드리, 한국의 메모리 경쟁력이 하나의 공급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AI 경쟁력은 이러한 동맹과 공급망의 결합에서도 나온다.

또한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AI 경쟁에서 중요한 질문은 "누가 더 좋은 GPU를 확보했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수 있고, 누가 그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가가 새로운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전력망 투자가 AI 산업정책과 연결되는 이유다.

미국의 강점은 AI의 거의 모든 핵심 영역에 걸쳐 있다.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기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 막대한 벤처자본, 글로벌 빅테크, 첨단 반도체 설계능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경제안보 전략과 결합하고 있다. 수출통제와 투자규제,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의 첨단 AI 발전에 필요한 핵심 기술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통제는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을 자극하는 역설을 낳기도 한다.

중국은 대규모 제조능력과 거대한 내수시장, 빠른 상용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AI 경쟁력은 세계 최고의 AI 모델만이 아니다. 충분히 강력하고 저렴한 AI를 산업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확산시키느냐도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딥시크와 큐웬 같은 중국의 저비용 오픈 웨이트 모델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경쟁은 이제 디지털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AI가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노동을 보조하고 대체하는 피지컬 AI가 대표적이다.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스마트팩토리, 물류 로봇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센서와 모터, 제조설비와 산업 데이터가 모두 필요하다. 중국이 구축한 제조 생태계에 AI를 결합한다면 미국과는 다른 방식의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 모델의 성능은 알고리즘과 컴퓨팅 능력뿐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은 글로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를 축적해 왔고, 중국 역시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산업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하고 있다. 데이터 주권도 중요해지고 있다. 자국의 언어와 문화, 산업 데이터를 외국 플랫폼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기술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버린 AI는 데이터와 컴퓨팅, 모델, 인프라를 자국의 통제 아래 확보하고 핵심 분야에서 기술적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AI의 안전성과 책임, 데이터 활용 등을 둘러싼 규범과 표준 역시 앞으로 새로운 경쟁영역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전략은 미국이나 중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진영도 한국 없이는 AI 생태계를 완성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HBM과 첨단 반도체, 원전과 전력 인프라, 자동차와 로봇, 배터리와 제조 AI를 연결해 세계 공급망에서 대체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할 때 한국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반도체와 전력, 제조 데이터를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 투자하고, 한국어와 산업 데이터에 기반한 소버린 AI 역량을 함께 키워야 한다.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