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고, 의심하고, 판단 과정까지
AI에 맡겨 '인간의 판단 주권' 상실
대학 공동책무 인식 동시대응 해야
대학은 지적 자존감의 힘 일깨우고
AI에 과도한 의존 자제하게 교육
인류의 공동선 위해 사용하게 해야
장제국 동서대 총장
네팔에서 온 한 유학생은 최근 자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에 세계가 경악하면서도 정작 그 원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네팔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지만, 히말라야 지역은 다른 나라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심화되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자신들이 거의 초래하지 않은 문제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그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기후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위험을 알면서도 대응을 미루면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와 맞닥뜨릴 수 있으며, 어느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는 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아무리 탄소배출을 줄여도 다른 나라들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구 전체의 온도 상승을 막기 어렵다. 국제사회의 공동인식과 동시적인 행동이 필요한 이유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고등교육을 생각하면 이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물론 AI와 기후변화는 서로 다른 문제다. AI는 인류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놀라운 기술이며, 교육과 연구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핵심은 그 혜택을 누리면서도 인간이 판단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 있다.
학생들은 이미 AI를 이용해 정보를 찾고 글을 쓰며 문제의 답을 얻고 있다. AI의 능력이 강력해질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고, 판단하는 과정까지 기계에 맡길 가능성도 커진다. 이러한 습관이 굳어지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간의 '판단 주권'을 잃어갈 수 있다. 여기서 판단 주권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뿐 아니라 그 결정이 타인과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헤아리고 책임지는 자세까지 포함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마찬가지로 판단 주권을 지키는 교육도 일부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곳에서 AI를 악용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그 피해는 인류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I를 은행 전산망 침입이나 생물무기 개발에 악용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대학마다 AI 정책과 교육의 우선순위가 달라 공동의 대응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판단 주권 교육은 개별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전과 연결되는 과제인 만큼, 세계 대학이 이를 공동의 책무로 인식하고 동시에 실천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방점은 '동시성'에 있다. AI의 확산 속도를 고려하면, 일부 대학만 앞서가고 나머지는 대응을 미루는 사이 책임 있는 활용을 위한 교육의 공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CNN의 국제문제 전문기자 파리드 자카리아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AI 기업의 자율규제만으로는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며, 구속력 있는 안전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고등교육에서도 개별 기관의 노력에만 맡겨 두기보다 공동의 원칙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 대학이 판단 주권 교육의 원칙을 함께 세우고, 각 대학의 교육과정과 평가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세 가지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첫째, 지적 자존감의 힘이다. AI가 더 빠르고 정교한 답을 내놓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는 과정의 가치를 믿는 태도가 필요하다. 둘째, AI에 대한 의존을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통제의 힘이다. AI는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판단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과도한 의존은 경계해야 한다. 그래야 편리함에 기대어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셋째, AI의 능력을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사용하는 바른 인성의 힘이다. 기술의 악용이 타인과 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인성교육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물론 공동선언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이 보여주듯, 약속을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국제적 합의가 공동의 목표와 책임을 환기했듯, 대학의 공동선언 역시 교육 방식의 차이를 넘어 인간이 판단과 책임의 주체로 남아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하고 실천의 방향을 제시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지키고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네팔 사람들이 겪은 것처럼, 위험을 초래하는 데 관여하지 않은 이들이 그 피해를 떠안는 일이 AI 시대에도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위험을 미리 헤아리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지금 대학이 함께 힘써야 할 급선무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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