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통영에서 올라온 강제윤의 새 시집 '바다도 숲의 안부를 궁금해하는데'(남해의 봄날)를 읽었다. '월도 어머니 말씀'은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욕심이 생기고/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져유./죽으란 법은 없어유."가 전문이다. 섬 활동가이기도 한 그가 지난 30년간 많은 섬을 다니면서 만난 그곳 사람들의 서걱서걱한 슬픔을 무심히 담아냈다.
읽다가 "섬은 봄날 서남풍이 불면 비가 왔다. 먼 산이 가깝게 보이면 비가 왔다. 석양녘 서쪽 바다 붉게 물들면 비가 왔다.(중략) 섬은 머리가 가려우면 비가 왔다. 쌍무지개 뜨면 비가 왔다. 능구렁이 울면 비가 왔다."('섬은 능구렁이 울면 비가 왔다' 중)에서 다시 손이 멈췄다. 머리를 긁다 말고 "오늘 비가 올라나" 하는 사람들 얘기다. 이 시를 읽는데 내 마음이 붕 뜨더니 연암 박지원의 짧은 편지 한 통 속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대는 짐을 풀고 안장을 내리시구려. 내일은 비가 오겠소. 샘이 울고 물에선 비린내가 납니다. 섬돌엔 개미 떼가 몰려오고, 황새가 울며 북쪽으로 갑디다. 안개가 서려 땅 위로 달리고, 꼬리별이 서쪽으로 흐르며, 바람을 살피니 동쪽에서 오더군요."('답창애(答蒼厓)'7 전문) 둘러봐도 온통 비 올 조짐뿐이니 공연히 이런 날 길에 나섰다가 낭패 보지 말고 하루 더 묵고 가라는 얘기다. 떠날 차비를 하는 벗을 하루 더 붙잡아 두자고 쓴 글이다.
능구렁이는 도대체 어떻게 울까? 서남풍은 왜 비를 끌고 올까? 황새는 왜 북쪽으로 날아가며, 안개는 어째서 비가 오기 전에는 땅바닥에 쫙 깔리는가? 섬사람들의 기상예보와 조선시대 박지원의 강우 예측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렇게 불쑥 만난다.
강제윤의 시 '콩 심는 날'은 또 이렇다. "봄날 대모도/노인은 밭에 나와 팥을 심는다.//메주콩은 안 심으시는가./콩은 언제 심으세요?//노인은 돌담에 기대선 감나무를 올려다본다./아직 멀었어요.//콩은/감나무 이파리 세 잎 날 때 심어요." 감나무 이파리 세 개가 주는 상징을 그들은 잘 받아 적는다. 자연의 몸짓과 교감하며 삶의 문법을 몸으로 알아들을 줄 안다. 우리가 오래전에 상실한 원초적 감각들이 그가 만난 섬사람들의 육성 속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다 나는 다시 연암이 박제가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을 뒤적여본다. "우리야 냄새나는 가죽 부대 속에 글자 몇 개를 싸둔 것이 남보다 조금 많은 것에 지나지 않다네. 저 매미가 나무에서 울고 지렁이가 구멍 속에서 우는 것 또한 시를 읊고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닐 줄 어찌 알겠소?"('여초책(與楚 )') 매미는 석양 볕이 좋아 울고, 지렁이는 비가 반가워 땅속 구멍에서 쩡쩡 소리를 낸다.
그게 다 우리로 치면 시 읊고 책 읽는 소리나 진배없다. 미물도 대지를 적셔주는 비가 고마워 저리 화답하는데, 자연의 소리에 귀먹은 우리가 남보다 글자 몇 개 더 안다고 잰 체하고 으스대어서야 무엇에다 쓰겠는가.
강제윤의 시를 읽다가 연암의 편지를 뒤적이다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나저나 까맣게 지워진 이 감각들은 언제나 한번이라도 생생하게 내게 새로 돋아날 수 있을까. 자꾸 자잘한 것들에 신경이 간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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