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석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얼마 전 여러 행정기관에 수만건의 민원을 제기했던 80대 민원인 ㄱ씨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ㄱ씨의 반복민원에 참다못한 직원들이 ㄱ씨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으나 경찰이 그의 사망으로 사건을 종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더 일찍 ㄱ씨가 반복민원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는 없었을까. 민원인도, 담당 공무원도 오랜 시간 지쳐갔을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민원을 처리하는 공무원은 본연의 업무가 있어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원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보통은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해서 제출되는 민원은 종결 처리한다. 그런데 민원인 관점에서 궁금증과 불만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민원이 종결되면 다시 민원 제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난해 가장 많은 민원을 제기한 ㄴ씨의 경우도 악순환이 10년간 계속되고 있다. ㄴ씨는 지난해 총 4만6000여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일평균 130건이다. 이쯤 되면 국민의 바람을 뜻하는 '민원(民願)'이 아니라 행정에 대한 원망을 담은 '민원(民怨)'이라 할 수 있다.
반복민원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종결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민원인 스스로 민원을 중단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2월부터 특이민원 전담부서를 신설해 민원인 의견을 경청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으로 반복민원에 대응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민원인 ㄷ씨는 2024년 2만7096건, 지난해 2만3543건 등 10년 이상 여러 기관에 반복민원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의 노력으로 올해 9월에는 10건 이하로 민원 신청 건수가 대폭 줄었다. 담당 조사관이 6차례의 면담과 하루 두 시간이 넘는 통화를 통해 신뢰를 쌓고 민원 자제를 설득한 결과다.
수년간 청와대와 대통령실 앞에서 노숙 시위하던 ㄹ씨는 국민권익위 조사관과 면담 후 일상복귀 권유를 받아들여 지난 1월 시위를 중단했다. ㄹ씨는 오랜 기간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복지서비스를 거부하면서 노후주택에서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왔으나 국민권익위의 설득과 지원으로 이제는 복지서비스를 받는 등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국민권익위는 이러한 경청과 소통 중심의 국민주권정부 민원 정책이 행정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지난 7월 '집단갈등민원·특이민원 해결 로드맵'을 수립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반복민원에 대해 1차는 소관 기관이, 2차는 국민권익위가 경청과 소통 및 설득을 진정성 있게 추진함으로써 지난해 약 140만건이었던 반복민원을 2030년에는 절반인 70만건 수준으로 낮추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경험 많은 전문가나 퇴직공무원 등을 전문대응관으로 채용해 민원인과 소통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듣고 설명하는 노력으로 민원인과 행정 사이의 불신은 해소될 수 있다. 민원(民願)이 민원(民怨)이 되지 않게, 반복민원으로 국민과 공무원이 지치지 않게, 국민권익위가 경청과 소통을 통한 민원 해소에 앞장서겠다.
한삼석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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