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서울벤처대학원 초빙교수
"놀기엔 너무 늙었고, 욕망을 버리기엔 너무 젊다." 이 말은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 제1부 중 '서재(Studierzimmer)' 장면에서 메피스토펠레스 앞에서 내뱉는 절묘한 한탄이다. 요즘 나이 든 사람들의 심정을 이보다 기막히게 대변하는 표현은 다시없을 것이다.
올 초에 일론 머스크는 한 나라가 위험해지고 있다는 시그널은 "성인용 기저귀가 유아용 기저귀보다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했다. 작년에 이미 우리나라는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Super-aged) 사회로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낼모레 환갑인 사람을 '핏덩이'라고 하는 모임도 있다. '독산사(독서·산책·사색) 주지'라는 말도 유행이다. 더불어 YOLD, OPAL 세대 등 신노인계층에 대한 새로운 조명도 쏟아지고 있다. 그 결과 주위엔 온통 전직(前職) 타이틀이 넘쳐난다. 전직과 현직을 칼같이 구별해내는 우리 사회의 영악한 분별력은 당해 본 사람만 안다.
한편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요?"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 시절, 누구나 맞닥뜨리는 질문이다. 사람에 따라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경제적 삶에 치인 채 죽어간 사람도 부지기수다. 주위를 둘러보면 남보다 못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Do what you love)"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는 무조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야구 천재, 오타니는 "본인의 재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능력'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아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40%가 넘게 희망직업이 없다고 답한 현재 중학생들의 사정이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직업 선택이 대부분 예상치 못한 사건과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직업상담학의 대가, 존 크롬볼츠의 계획된 우연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에 따르면 청년기 때 계획했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성인은 2%에 불과하다. 실제로 초기 미국 이민자의 직업은 대부분 처음 공항에 마중 나온 지인의 직업에 따라 결정됐다고 한다. 알고 보면 세계적인 셀럽들도 예외가 아니다. 세잔은 화가가 되기 전 은행원으로 일했으며, 고갱도 주식중개인이었다.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는 법대를 나와 변호사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젤렌스키는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뽑혔다.
인생은 길고 현직은 짧다. 결국 전직보다 현직이고, 현직보다 천직(天職)이다. 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라 했던가. 자신이 이 별에 온 이유(業)를 증명해내는 직(職)을 갖는 것은 큰 행운이다. 무엇보다 천직에는 출퇴근도 없고, 정년도 없다.
얼마 전 91세로 타계한 이순재 선생은 배우를 숙명으로 여겼다. 그에게 배우란 늘 현직이 아니라 천직이었던 게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러면 평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했던 천재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이동규 서울벤처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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