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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해서 더 찬란했던 '청춘 찬가'… 시린 가을밤 적시다

fn·서울시오페라단 공동주최 오페라 '라보엠' 개막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과 상실
푸치니 선율 더한 큰 책장 무대에
황수미·김건우가 깊은 여운 더해
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순수해서 더 찬란했던 '청춘 찬가'… 시린 가을밤 적시다
파이낸셜뉴스와 서울시오페라단이 공동 주최하는 오페라 '라보엠'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했다. 미미 역의 황수미(앞줄 왼쪽 세번째)와 로돌포 역의 김건우(앞줄 왼쪽 두번째) 등 출연진이 지난 3일 열린 리허설에서 파리 모무스 카페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이 차가운 작은 손을 따뜻하게 녹여줄게요." 가난한 시인의 다락방에 사랑이 찾아드는 순간, 냉기로 싸늘했던 공간이 따뜻한 빛으로 물들었다. 마음만은 누구보다 풍요로운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상실을 그린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황수미의 섬세한 서정성과 김건우의 뜨거운 에너지가 만나 미미와 로돌포의 짧고도 찬란한 사랑을 완성한다.

프랑스 작가 앙리 뮈르제의 '보헤미안 삶의 정경'을 바탕으로 한 '라보엠'은 1896년 초연 이후 세계적인 오페라로 자리 잡았다. 파이낸셜뉴스와 서울시오페라단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공연은 그 시간을 오래된 책 속 기억처럼 펼쳐 보인다. 지난 2024년 공연 당시 호평받은 '거대한 책장' 무대를 주축으로 엄숙정 연출과 김광현 지휘 아래 인물들의 감정선과 음악적 디테일을 한층 촘촘히 다듬었다. 주역 성악가와 앙상블, 무용수, 군악대, 어린이합창단 등 110여명이 참여해 늦가을의 정취를 서정적인 감성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물들였다.

막이 오르면 오래된 서가에서 책 한 권이 빠져나오고 촛불이 켜진다. 불에 탄 종이가 눈송이로 바뀌면서, 통창 너머로 눈 내리는 파리가 보이는 낡은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로돌포와 친구들은 추위를 견디려고 원고를 태우지만, 우정과 농담이 오가는 공간에는 가난보다 낭만이 먼저 감돈다.

촛불을 빌리러 온 미미에게 로돌포는 "시인께서 시를 찾았네"라고 노래하고, 미미는 "내 이름은 미미"라며 자신의 소박한 삶과 꿈을 들려준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사랑의 이중창으로 포개지고 아파트 4층 높이의 서가 앞에 선 이들은 거대한 책 속 작은 요정처럼 보인다.

2막에서 책장이 다시 열리면 무대는 크리스마스이브의 파리 거리로 변한다. 붉은 드레스 차림의 무제타가 옛 연인 마르첼로를 유혹하며 부르는 '무제타의 왈츠'와 유쾌한 소동, 군악대의 행진이 겨울 축제의 흥을 돋운다. 그러나 3막의 쓸쓸한 이별을 지나 4막의 다락방으로 돌아오면 병든 미미를 살릴 돈도, 힘도 없는 친구들의 무력감과 간절함이 그 자리를 채운다.

황수미는 이날 여러 무대에서 깊이를 더해온 미미를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려냈다. 스웨덴 말뫼 오페라에서도 로돌포를 맡아 "둥글고 유연한 테너 음성이 공연을 이끌어간다"는 호평을 받은 김건우는 힘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매끄러운 고음을 뻗어냈다. 두 사람은 아리아와 이중창을 유려하게 주고받았고, 김건우는 마지막 순간 로돌포의 절망을 폭발적인 절규로 터뜨리며 객석에 깊은 슬픔과 여운을 남겼다.

미미의 죽음은 한 가난한 여성의 비극을 넘어 가진 것 없던 청춘 시절 각자가 놓쳐버린 사랑과 순수, 열정의 상실로 확장된다. 푸치니의 서정적인 선율은 그 상실을 오래 간직할 아름다운 기억으로 바꿔놓는다.

엄숙정 연출에 따르면 출연진은 연습실 밖에서도 자주 만나 일상을 나누며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았다. 이는 무대 위 진정성 있는 연기와 자연스러운 음악적 호흡으로 이어졌다.


미미 역은 첫 도전에 나선 박혜상이, 로돌포 역은 이원종이 나눠 맡는다. 무제타 역에는 김효영·한예원, 마르첼로 역에는 유영광·김한결이 출연한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 늘해랑리틀싱어즈합창단이 함께한다. 공연은 8일까지.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