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유방암으로 양쪽 유방을 절제하고도 당당하게 상체를 노출한 영국 여성의 사연이 화제다. 최근 영국 매체 더미러, 더선 등은 영국 브리스톨에 사는 여성 다니엘 무어(34)의 사연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20년 11월 아들에게 모유 수유를 하던 중 가슴에 혹이 만져지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무어는 암이 이미 림프절까지 퍼진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2022년 유방암 치료를 위해 선택적 양측 유방절제술을 받고 양쪽 가슴을 모두 잘라냈다. 그는 '가슴 전투(the boob battle)'라는 제목을 단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방암 치료 여정을 공유했다. 현재 팔로워 수는 2만3000명이다. 그는 용기를 내서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이 유방암에 대한 인식과 자기 신체 긍정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그는 영국 타블로이드지 페이지 3(Page 3)에 상의를 탈의한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페이지 3은 영국의 오래된 신문 관습으로, '페이지 3걸'로 불리는 상의를 탈의한 여성 글래머 모델의 대형 이미지를 타블로이드지 세 번째 페이지에 게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후 성차별 논란과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이 이어지면서 토플리스 대신 옷을 입은 모델이 등장하는 것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니엘은 남들과 다소 다른 반라의 모습으로 페이지 3 모델이 된 것에 대해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신체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캠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신문에서, 다양한 브랜드 광고 캠페인에서 내 얼굴과 거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은 항상 이상한 느낌"이라면서도 "내 상처를 보여주고 암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완벽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 긍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르게' 보이는 신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상으로 여겨지길 바란다"라고도 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11-10 20:35:42지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은 백령도 남서쪽 약 1㎞ 지점을 항해 중이었다. 함미와 함수를 점검하고 함장실로 돌아온 최원일 함장은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함장실로 바닷물이 들어와 목 밑까지 차올랐다. 대원들이 문의 잠금쇠를 소화기로 부순 덕에 최 소장은 함장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최 함장이 점검했던 함미는 함정이 두 동강 나 보이지 않았다. 적의 추가 공격이 우려됐다. 최 소장은 부상장병에 대한 응급처지와 함내 구조활동을 지휘했다. 즉시 인원점검을 했지만 이미 문제가 커졌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점호하면 당연히 승조원 총원인 '104'라는 구호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58'에서 계속 멈췄다"고 말했다. ■"이제는 심리적 어뢰에 당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3일 최원일 326호국보훈연구소장(전 천안함 함장·사진)을 서면 인터뷰했다. 최 소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군복무를 계속 하다 2021년 2월 28일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그는 매일 아침 천안함 승조원 104명의 이름을 가슴에 꾹꾹 눌러 새긴다고 했다. 최 소장은 지난 2일에도 서울 영등포 아트홀에서 구민들에게 천안함 폭침사건을 생생히 전달했다. 그의 연구소 앞에 붙는 '326'은 천안함 폭침사건이 벌어진 3월 26일을 의미하는 숫자다. 그는 이제 군복을 벗었지만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여전히 북한이 주적이지만 천안함 음모론자들과도 고통스러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현충일을 앞두고 '천안함 자폭설' 주장이 나온 데다 한 당의 수석대변인으로부터 "부하를 다 죽였다"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최 소장은 음모론자의 공격을 '심리적 어뢰'라고 표현했다. 그는 "천안함이 북한 소행이면 북한이 불편해하고 한반도 평화가 깨진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언제까지 전사자는 자폭과 경계실패, 생존자는 패잔병이 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최 소장은 폭침 이후 3~4년간을 술과 담배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전장에서 전우들을 두고 살아남았다는 아픔 때문이다. 살아남은 그의 승조원들도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사지에서 돌아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음모론, 경계실패 같은 말이 나오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진다"면서 "하지만 술과 담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2010년 3월 26일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는 결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권토중래'와 '와신상담' 글귀를 책상 위에 붙여 놓고 적을 향한 복수의 칼을 갈았다. 폭침 사실이 세상에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자료들을 정리하며 절치부심해왔다고 한다. ■"나라 지킨 사람들 합당한 예우, 보상받아야" 최 소장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섰다. 천안함 생존장병 58명과 함께 지난해 3월 사단법인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세웠다. 그는 "천안함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장병 58명은 동료를 두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피격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며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58명의 전우를 지키기 위해 연구소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6월 기준으로 전역한 천안함 생존장병은 35명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일부 인원은 당시의 트라우마와 진료기록 등 절차적 서류를 갖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최 소장은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절차가 나라마다 다른데 미국의 경우 국가유공의 증거를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입증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면서 "군인이 스스로 진료기록 등 모든 기록을 준비해 신청해야 하지만 현역 군인의 진료여건도 녹록지 않고 제반 기록을 유지하고 제출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꼭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신 생존장병 중 일부는 그 뒤에 배를 탈 기회가 줄기 때문에 진급점수가 없어 진급이 쉽게 되지 않았다"면서 "이 때문에 전역하면 유공자가 되기 어렵고, 유공자가 돼도 정신과 이력으로 취업이 힘든 점도 나라에서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는 "'호국보훈'이란 말 그대로 나라를 지켰던 분들이 합당한 예우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며 "우리는 '과연 이분들에 대해 적절한 보훈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천안함 사건이 정치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데 대해서도 개탄했다. 그는 "천안함과 천안함 장병들은 어느 특정 지역과 정당을 지키던 배와 군인들이 아니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던 배였고, 군인들이었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2023-06-25 18:40:35[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공개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과 관련해 "자주국방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30분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생산공장에서 열린 KF-21 '보라매' 시제 1호기 출고식에 참석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의 시제기가 드디어 늠름한 위용을 드러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우리의 기술로 만든 우리의 첨단전투기다. 이제 지상시험과 비행시험을 마치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다"며 "2028년까지 40대, 2032년까지 모두 120대를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우리 손으로 만든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갖게 되었다"며 "세계 여덟 번째 쾌거다. 항공산업 발전의 역사적인 이정표를 세웠다"고 강조했다. KF-21은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우리 기술진이 주도했다. 타국의 4.5세대 전투기 탑재장비 성능에 필적하는 능동전자주사 레이더(AESA), 탐색추적장치(IRST), 표적추적장비(EO TGP), 전자전 장비(EW Suite) 등 4대 항공전자장비와 기타 핵심장비들을 국산화했다. 문 대통령은 "'KF-21, 보라매'는 우리 공군의 중추가 될 것"이라며 "음속의 1.8배에 달하는 비행속도, 7.7톤의 무장탑재력으로 전천후 기동성과 전투능력을 갖췄다. 공중 교전은 물론 육로나 해로를 통한 침투세력의 무력화, 원거리 방공망 타격까지 다양한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특히, 국산전투기를 통한 자주국방력과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제작해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 언제든지 부품을 교체할 수 있고 수리할 수 있다"며 "개발 과정에서 획득한 에이사 레이더를 비롯한 최첨단 항전 기술을 'KF-16', 'F-15K'와 같은 기존의 전투기에 적용해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인 항공 전력의 고도화와 우주기술을 활용한 국방력 강화도 기대된다. 경제적 효과에 대해선 "'KF-21'에는 3만 개가 넘는 세부 부품이 들어가고, 국산화율 65% 이상으로 대기업부터 중견기업, 중소기업까지 700개 이상의 국내 업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개발 과정에서만 1만2천 개의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졌다"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면 10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생기고, 5조9천억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다. 수출까지 활발히 이뤄진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문 대통령은 이런 성과를 위해 14년간 7번의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치는 힘든 과정 속에서도 묵묵히 애써온 개발진 및 근로자들의 노고에 대해 직접 감사 인사도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100여 년 전,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에 공군을 창설하는 꿈을 꾸었다"며 "‘우리 손으로 우리 하늘을 지키자’는 선조들의 꿈을 오늘 우리가 이뤄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감격했다. 이어 "우리 개발진은 의심과 불안을 확신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냈다. 저는 오늘, 우리의 자부심이 되어준 'KF-21' 개발에 특별한 공로를 세운 스무 명의 공로자를 국민들께 소개하고자 한다"며 주요 개발·생산인력 중 20명을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직접 소개한 뒤 박수를 보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21-04-09 18:34:01[파이낸셜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인 7일 "승리와 희망의 역사를 만든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을 가슴에 새긴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메시지를 통해 "100년 전 오늘, 홍범도 장군과 최진동 장군이 이끈 우리 독립군이 중국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을 벌여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바로 '봉오동 전투'"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에 대해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일궈낸,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봉오동 전투'의 승리로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고통받던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희망'을 갖게 되었다"며 "무엇보다 구한말 의병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 등 평범한 백성들로 구성된 독립군의 승리였기에 겨레의 사기는 더 높이 고양되었다"고 강조했다. 또 "너도나도 가난한 살림에 의연금을 보태 독립군의 무기구입을 도왔고, 식량과 의복을 비롯한 보급품을 마련하는 데 나섰다"고 덧붙였다. 홍범도 장군 유해의 국내 봉환도 거듭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군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임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미래를 열어갈 힘을 주는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다.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00년이 지난 오늘, 코로나 국난극복의 원동력도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라며 "국민들은 '나'의 안전을 위해 '이웃'의 안전을 지켰고, 연대와 협력으로 코로나 극복의 모범을 만들어냈다.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아, 승리와 희망의 역사를 만든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을 가슴에 새긴다"면서 글을 맺었다.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20-06-07 09:14:36<39> 이집트 '아스완' ①펠레·아부심벨 신전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는 250km. 차로 3시간 거리이다. 사막에 난 고속도로를 달려 한낮에 아스완에 닿았다. 아스완에서 우리는 나일강이 내려다보이는 강가의 호텔을 잡았다. 이집트에서 하루이틀 정도는 나일강이 잘 보이는 호텔에서 묵어보는 것이 나의 로망 중 하나였다. 뭐 5성급 고급호텔은 아니었지만 평소 우리로서는 아주 큰맘먹고 1박에 12만원이 넘는 돈을 썼는데 저녁때 창가에서 펼쳐진 나일강의 일몰과 야경을 보니 돈이 하나도 안 아까웠다. 다음날 아침 필레신전에 갔다. 역시 오픈시간에 맞춰 갔는데 오전 7시도 안된 아침에 벌써부터 상점들도 거의 문을 열었고 사람들이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필레신전은 배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어서 입장료 200파운드(약 8600원)외에도 뱃삯을 내야한다. 요일과 시간별로 음악과 빛으로 쇼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 모양이다. 선착장 양옆에 기념품 좌판이 주르륵 벌어져있다. 구경하고 싶지만 사더라도 나올때 사야지 괜히 짐만 되어 들고 다녀야한다. 뱃값을 인당 200파운드로 부르는데 입장료와 맞먹는 값이라니 뭔가 속는 기분이어서 두세군데 물어보고 흥정을 해서 둘이 300파운드로 타기로 했다. 같이 탈 사람이 없어 손님은 우리 둘밖에 없었고 일찍 출근하시는 이집트분들이 같이 타서 좀 깎아준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며 배에 올랐다. 이집트 사람들은 어딜 가나 웃으며 환대해준다. 흥정이 끝났으니 우리도 마음 편히 웃으며 인사한다. 배를 타고 펠레신전으로 이동한다... 이른시간이라 출근하는 분들과 동승 나일강은 매우 잔잔하다. 탄이가 배에서 나일강에 손을 담그니 탄의 손이 나일 강물을 가른다. "나일강에 손을 담갔으니 다시 나일에 돌아오게 될거야." 내말에 탄이 웃는다. 잔잔하고 고요한 나일의 새벽 배타기도 참 좋았다. 15분 정도 가자 필레신전이 있는 섬이 가까이 보인다. 배에서 바라보는 필레신전의 풍경은 나일강에 떠있는 듯한 신전과 야자수 등이 어우러져 매우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선착장에 내리자 한쪽에 토기 항아리 두개가 놓여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었어서 궁금했었는데 이참에 궁금증을 풀어야겠다 싶어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맑은 물이 가득 담겨있다. 우리가 기웃대며 토기를 들여다보자 함께 배를 타고온 분이 컵을 가져와 마시라고 권해주신다. "오호, 마시는 물이었구나." 나일강물일까? 탄이도 나도 한컵 시원하게 들이켰다. "나일강물을 마셨으니 진짜로 나일로 다시 돌아오게 될거야.ㅎㅎ" 안으로 들어가보니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벌써 신전을 구경하고 있었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필레신전은 원래 필레섬에 지은 신전이라서 그렇게 불려왔다. 하지만 아스완댐이 건설되면서 신전의 3분의 1이 물에 잠겨 벽화와 채색들이 씻겨내려가는 등 훼손이 심해져서 1977년에 4년에 걸쳐 유네스코 주도하에 신전을 4만 조각으로 분해해서 이곳 아길키아섬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필레신전이라고 불려진다. 카르나크에 비하면 자그마한 열주들의 상단 디자인이 다 다른 것이 특이하다. 이집트 양식과 그리스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집트 신전들 중 꽤 최근에 지어진 편이라 그런지 벽에 알파벳 문자도 자주 눈에 띄어 매우 생소했다. 클레오파트라와 시이저가 신혼여행을 왔던 곳이라니 신전 중 가장 낭만적인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한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크기의 섬이었다. 다 둘러보고 배를 타러 가는데 선착장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아휴 늦었으면 매우 붐빌뻔 했겠다. 우리가 이 남쪽 끝 아스완까지 내려온 가장 큰 이유! 아부심벨을 봐야겠다는 일념 하나였다. 아부심벨은 나도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이다. 30년전에는 단체여행이었어서 룩소르까지만 왔다가 여행을 마쳐야했기 때문이다. 바위절벽을 깎아 만든 대신전에 거대한 4개의 석상이 있는데 어릴적 이 신전이 아스완댐으로 인해 수몰위기에 몰리자 전세계에서 기부를 해서 돌 하나하나를 잘라 높은 지대로 옮기는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감탄과 경이에 빠져들었었는데 그 결과물을 언젠가 내 눈으로 직접 꼭 보고싶었다. 하지만 300km 떨어진 아부심벨까지 다녀오면 렌트카의 마일리지를 크게 오버하게 되어 비용부담에 고민하다가 호텔 프론트에 단체관광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다행히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투어가 왕복에 35달러라고 해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운전하는 수고를 덜고 렌터카 추가금 생각하면 이편이 훨씬 이익이다. 깜깜한 새벽 호텔앞에서 차를 탔는데 우리를 태운 후에 시내의 숙소 서너군데를 돌아 손님을 열명가량 더 태웠다. 한참을 가다보니 해가 뜨는데 우리 말고는 다른 사람들은 다 관광에 포함된 듯한 도시락을 가져와서 먹기 시작한다. 왜 우리호텔만 돈받고 도시락도 준비를 안해줬을까 원망하다 뭐 한끼쯤.. 하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아부심벨 주차장에 내려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오른편으로 원래 신전이 있던 곳이 거대한 강에 잠긴 곳이 보인다. 차비에 입장료 275파운드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관광객인 줄 알았던 밀짚모자에 빨간티를 입은 아저씨가 앞에 나서서 설명을 시작한다. 버스투어에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나보다. 이집트 영어발음은 알아듣기가 매우 힘들어 절반이나 이해 할까말까 어렵다. 아부심벨까지 꽤나 걸어가야 하는데 언덕에다 좁은 길이라 카트가 안다녀서 아쉽고 힘들다. 아부심벨을 원래 위치에서 옮긴 이야기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 알고있는 내용이라 흐뭇하다. 탄이에게 신나게 아는 척을 했다. 커다란 바위산을 파서 만든 아부심벨의 위용은 멀리서도 가슴을 뛰게했다. 아부심벨 앞에서 빨간티 가이드의 설명은 꺼내든 여러 사진자료와 함께 계속되었다. 하도 어릴때 봤어서 기억이 나지 않던 부분을 들으니 놀랍고 신기했다. 아부심벨은 원래 바위절벽에 지어진 것이어서 옮기기 전 바위산과 비슷한 콘크리트 돔을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위대한 파라오로 일컬어지는 람세스 2세가 카데시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며 지은 신전이라서 신전 내부의 벽화에서 살아있는 군사는 이집트 군, 죽거나 쓰러져있는 것은 히타이트 군사라고 한다. 긴 설명이 끝나고 드디어 개별적으로 자유롭게 아부심벨을 둘러볼 수 있었다. 앉은 모습을 표현한 좌상들인데 고개를 한참 쳐들고 봐야할 만큼 어마어마한 크기이다. 22미터의 석상 4개 모두 다 람세스 2세라고 한다. 대단한 자기애이다. 신전 내부에는 전투에서 적을 무찌르는 벽화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파피루스에 많이 그려지는 유명한 전차를 탄 람세스2세 벽화를 실제로 보게되다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입구로 들어가면 이번에는 람세스2세의 서있는 석상들이 열주 앞에 줄지어 있는 높은 공간을 지나게 된다. 복식이 조금씩 다른 것이 상, 하 이집트의 고유 복장인가보다. 조금 더 들어가면 신전의 맨 안쪽에는 작은 방같은 공간이 있는데 그 유명한 '태양의 방'이다. 이 곳에는 4개의 작은 신들의 좌상이 있다. 이 방이 신비한 이유는 일년에 두번, 람세스 2세의 생일(2월 22일)과 대관식날(10월 22일) 태양빛이 안쪽방까지 들어와 신상들을 비추는데 가장 오른쪽의 어둠의 신 프타의 상에는 이날에도 빛이 닿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기술의 정교함과 천문학적 이해가 놀라울 뿐이다. 이 특별한 두 날짜(2월 22일, 10월 22일)에는 아부심벨 신전 입장료도 약 1.5배 더 비싸진다고 한다. 대신전에서 나와 왼편으로 조금 더 가면 소신전이 있다. 대신전의 부록같은 느낌으로 크기며 규모가 작은데 사랑의 신 하토르와 람세스2세의 왕비인 네페르타리의 신전이라고 한다. 아내를 위해 신전을 지어주다니 람세스2세는 용맹하고 위대할 뿐만 아니라 사랑꾼이었나보다. 소신전 앞에도 6개의 서있는 석상들이 정면을 보고 있다. 아내사랑보다 더 큰 자기애로 6개의 석상중 4개가 람세스2세이고 나머지 2개는 네페르타리의 석상이다. 보통은 왕비의 석상은 파라오의 무릎크기로 만드는데 이곳처럼 파라오와 같은 크기로 왕비의 석상을 세워놓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역시 사랑꾼 맞나보다. 내부는 매우 심플하고 아부심벨과 비슷한 전투신의 벽화들이 있었다. 기둥마다 소의 귀를 가진 하토르 여신이 조각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었다. 고대하던 아부심벨을 죽기전 꼭 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풀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우리는 일행들과 약속시간에 만나 다시 아스완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스완댐을 지나는데 길 왼쪽과 오른쪽의 강의 수위 차이가 엄청나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와 관광과 아스완댐의 발전으로 돈을 번다고 하던데 과연 그럴만한 굉장한 규모인것 같다. 하지만 이 댐으로 아부심벨과 필레신전,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고대 유적들이 제자리를 떠나 옮겨지고 일부는 수몰되어 강아래에 있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 문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애증의 댐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로써 이집트 남쪽 끝까지 하고싶은 관광을 다 이루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_Ka18clF9bQ?si=BnRunkXjLPLkpjdO>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13 13:58:59"콜로세움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24년 만에 돌아온 '글래디에이터Ⅱ'의 중심에는 로마 장군 출신의 노예 검투사 '막시무스'가 있지만 그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는 없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이자 '막시무스'를 지지했던 '루실라 공주'를 연기한 코니 닐슨이 전편과 속편을 잇는 중심 인물이다. 닐슨은 지난 25일 한국 언론과 가진 화상 컨퍼런스에서 "다섯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같은 역할로 돌아오게 돼 너무나 놀라운 선물이 됐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속편은 모자 이야기로 출발'글래디에이터'는 2000년 개봉해 전 세계 4억6000만달러(약 6388억원)의 흥행을 기록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시각효과상 등 5관왕을 휩쓴 액션 블록버스터 시대극이다. 속편은 막시무스가 죽은 지 20여년이 지난 시점, 폭군 카라칼라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로마제국에 정복당한 변방 누미디아의 청년 루시우스(폴 메스칼 분)가 로마에 끌려와 검투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날 리들리 스콧 감독은 "속편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반문한다"며 "책이나 대본을 써본 적이 있냐고,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속편을 쓰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고 말했다. 1편이 나오고 4년 뒤 작가가 집필한 대본은 영 마음에 안 찼다고 한다. 그렇게 묵혀둔 이야기는 1편에서 생존한 모자 이야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속도가 났다. 속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1000년 넘게 이어진 로마제국 한복판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로마제국과 콜로세움의 재현을 위해 약 1000명의 미술팀을 꾸리고 바티칸 박물관 등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는 등 꼼꼼한 노력을 기울인 덕이다. 특히 콜로세움은 실제 크기의 60%에 달하는 세트로 직접 지어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검투사들의 결투장면은 '글래디에이터Ⅱ' 주요 볼거리인데, 무자비한 동물과 겨루는 날것 액션부터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고 상어를 푼 뒤 검투사들이 '살라미스 해전'을 재현한 장면까지 장관이 펼쳐진다. 스콧 감독은 "당시 로마의 건축, 의상, 생활양식 등 한마디로 로마 냄새가 날 정도로 세세히 조사하고 고증했다"며 "역사적 사실을 갖고 어떻게 나만의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을 어떻게 영화로 효과적으로 가져올지도 늘 생각한다. 영화는 재미뿐 아니라 정보도 줘야 한다"며 "당시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에서 산채로 잡아먹혔다. 그렇게 끔찍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다"고 바랐다. 스콧 감독은 앞서 모세와 유대민족의 이집트 탈출기를 소재로 한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을 연출했다. 속편의 주역은 칸영화제 초청작 '애프터썬'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폴 메스칼이 거머쥐었다. 다소 낯선 얼굴의 메스칼은 "'글래디에이터2'에 합류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세트장 발들이면 로마인 된 기분"폴 메스칼은 "영국 런던에서 연극을 하다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며 "감독님이 매사 좀 빨리빨리 움직인다. 30분 줌 미팅 후 빠르게 캐스팅을 결정했다. 내 삶이 완전히 뒤바뀌겠구나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최고의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검투사 역할이라 그는 촬영 내내 몸만들기에 몰두했다. 메스칼은 "굉장히 많은 닭가슴살과 브로콜리를 먹었다"며 "매일 아침 트레이닝을 했다. 감독님은 항상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촬영이 끝날 때쯤에서야 제 어깨를 잡고 '거의 다됐다'고 했다. 제 몸을 역대 가장 크게 키웠다"고 촬영 비화를 밝혔다.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석권한 덴젤 워싱턴은 강한 권력욕을 지닌 전투사들의 주인 '마크리누스' 역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세트장에 발을 들이면 굉장히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며 "그 압도적인 현장 덕에 내 역할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놀라운 것은 정말 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늘 1~2테이크에서 오케이가 났다"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에서만 세 컷 정도 촬영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스콧 감독은 "광고를 찍다 40세에 첫 영화를 찍었다"며 "덕분에 30~60초면 필요한 정보를 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연출관을 설명했다. 쌍둥이 황제로 분한 프레드 헤킨저는 이날 '같이 작업하고 싶은 한국 영화인'으로 박찬욱 감독을 꼽았다. 11월 13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10-28 18:28:08[파이낸셜뉴스] “콜로세움에 들어서자 모든 것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24년만에 돌아온 '글래디에이터Ⅱ'의 중심에는 로마 장군 출신의 노예 검투사 '막시무스'가 있지만 그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는 없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딸이자 ‘막시무스’를 지지했던 ‘루실라 공주’를 연기한 코니 닐슨이 전편과 속편을 잇는 중심 인물이다. 닐슨은 지난 25일 한국 언론과 가진 화상 컨퍼런스에서 "다섯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같은 역할로 돌아오게 돼 너무나 놀라운 선물이 됐다”며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24년만에 나온 속편, 모자 이야기로 출발 ‘글래디에이터’는 2000년 개봉해 전 세계 4억6000만달러(약 6388억원)의 흥행을 기록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시각효과상 등 5관왕을 휩쓴 액션 블록버스터 시대극이다. 속편은 막시무스가 죽은 지 20여년이 지난 시점, 폭군 카라칼라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로마 제국에 정복당한 변방 누미디아의 청년 루시우스(폴 메스칼 분)가 로마에 끌려와 검투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날 리들리 스콧 감독은 “속편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반문한다”며 “책이나 대본을 써본 적이 있냐고,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속편을 쓰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고 말했다. 1편이 나오고 4년 뒤 작가가 집필한 대본은 영 마음에 안 찼다고 한다. 그렇게 묵혀둔 이야기는 1편에서 생존한 모자 이야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속도가 났다. 속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1000년 넘게 이어진 로마 제국 한복판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로마 제국과 콜로세움의 재현을 위해 약 1000여명의 미술팀을 꾸리고 바티칸 박물관 등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하는 등 꼼꼼한 노력을 기울인 덕이다. 특히 콜로세움은 실제 크기의 60%에 달하는 세트로 직접 지어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검투사들의 결투장면은 ‘글래디에이터Ⅱ’ 주요 볼거리인데, 무자비한 동물과 겨루는 날것 액션부터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고 상어를 푼 뒤 검투사들이 ‘살라미스 해전’을 재현한 장면까지 장관이 펼쳐진다. 스콧 감독은 “당시 로마의 건축, 의상, 생활양식 등 한마디로 로마 냄새가 날 정도로 세세히 조사하고 고증했다”며 “역사적 사실을 갖고 어떻게 나만의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을 어떻게 영화로 효과적으로 가져올지도 늘 생각한다. 영화는 재미뿐 아니라 정보도 줘야한다"며 "당시 기독교인들이 콜로세움에서 산채로 잡아먹혔다. 그렇게 끔찍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다”고 바랐다. 스콧 감독은 앞서 모세와 유대민족의 이집트 탈출기를 소재로 한 '엑소더스:신들과 왕들'을 연출했다. 속편의 주역은 칸영화제 초청작 ‘애프터썬’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폴 메스칼이 거머쥐었다. 다소 낯선 얼굴의 메스칼은 “‘글래디에이터2’에 합류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덴젤 워싱턴 "세트장 발들이면 로마인 된 기분" 폴 메스칼은 “영국 런던에서 연극을 하다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며 “감독님이 매사 좀 빨리빨리 움직인다. 30분 줌 미팅 후 빠르게 캐스팅을 결정했다. 내 삶이 완전히 뒤바뀌겠구나 생각했다”고 돌이켰다. 최고의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검투사 역할이라 그는 촬영 내내 몸만들기에 몰두했다. 메스칼은 “굉장히 많은 닭가슴살과 브로콜리를 먹었다"며 “매일 아침 트레이닝을 했다. 감독님은 항상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촬영이 끝날 때쯤에서야 제 어깨를 잡고 ‘거의 다됐다’고 했다. 제 몸을 역대 가장 크게 키웠다”고 촬영 비화를 밝혔다.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 주·조연상을 석권한 덴젤 워싱턴은 강한 권력욕을 지닌 전투사들의 주인 ‘마크리누스’ 역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세트장에 발을 들이면 굉장히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며 "그 압도적인 현장 덕에 내 역할에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놀라운 것은 정말 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늘 1~2테이크에서 오케이가 났다"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에서만 세 컷 정도 촬영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스콧 감독은 “광고를 찍다 40세에 첫 영화를 찍었다"며 "덕분에 30~60초면 필요한 정보를 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연출관을 설명했다. 그는 “감독은 캐스팅을 잘한 뒤 그들이 훨훨 날게 해주면 된다"며 "첫 테이크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때 배우들은 약간 불안함을 갖고 연기한다. 그런 면이 있는 연기를 좋아한다"고 부연했다. 쌍둥이 황제로 분한 프레드 헤킨저는 이날 '같이 작업하고 싶은 한국 영화인'으로 박찬욱 감독을 꼽았다. 오는 11월 13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4-10-28 10:02:33[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휴가의 마지막 이틀을 육·해·공 3군본부가 위치한 계룡대에 머물며 육군과 공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안보태세를 점검했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이번 4박 5일간의 휴가를 시장 방문으로 시작해 육·해·공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안보태세를 점검하는 '민생·안보 휴가'로 마무리 했다. 윤 대통령은 9일 오전 충남 계룡대 전시지휘시설(U-3)을 방문해 2024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Ulchi Freedom Shield) 연습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이 3군 본부가 위치한 계룡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전시지휘시설 방문도 지난 2022년 8월 남태령 전시지휘시설(B-1), 지난해 8월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CP TANGO) 방문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계룡대 전시지휘시설에서 시설 현황을 보고받은 후, 3군 참모총장들과 함께 주요 구역을 꼼꼼히 둘러본 윤 대통령은 "지휘소 내의 모든 시설과 장비들이 언제라도 임무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시설 점검 후 윤 대통령은 전투통제실로 이동해 3군 참모총장이 배석한 가운데 2024년 UFS 연습 준비 현황을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안보가 곧 경제이고, 경제적 번영이 자유를 보장한다. 강력한 안보태세만이 우리의 자유와 번영을 지켜낼 수 있다"면서 "적의 선의에 기대선 절대 평화를 지켜낼 수 없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이성적인 북한의 위협에 마주하고 있다"고 강조, 군 관계자들에게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오후와 저녁엔 공군 F-35A, F-15K 조종·정비담당관, 육군 특전사 특수작전·고공전문담당관을 포함한 국토방위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간부·지휘관들과 다과 및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한 해군 지휘관은 "대통령께서 휴가 중에도 군 장병을 격려하시느라 푹 쉬지도 못하시고 쪽잠을 주무시는 것 같다"며 "이렇게 장병을 지지해 주시는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윤 대통령은 "휴가를 군과 함께 보내는 것이 나에겐 진짜 휴가다"라며 장병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고 전 대변인은 전했다. 한 육군 특전사 간부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게 특전사의 부대 구호"라며 "어떤 임무든 내려주면 무엇이든 되게 하겠다. 충성 한 가닥에 목숨을 걸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한 육군 중령은 "제게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은 대통령의 '힘에 의한 평화' 연설을 들을 때였다"면서 "현장에서 힘에 의한 평화가 구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고, 윤 대통령은 "군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4-08-09 16:37:01[파이낸셜뉴스]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국의 운명을 구하다 전사한 호국영웅의 신원이 지난 3일 확인돼 74여 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은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강한찬 일병으로 확인했다. 이날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대구광역시 서구에 있는 달성토성마을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조카 강영호(1955년생) 씨는 “아버지와 고모께서 평생 삼촌을 찾기 위해 노력하셨는데 이렇게 유해라도 찾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병환으로 누워계신 고모께서 눈물만 흘리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앞으로도 더 많은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번 행사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의 신원확인은 국군 장병들에 의한 유해발굴, 병적자료 검증을 통한 기동탐문,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채취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유단은 전사연구를 토대로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을 나선 결과, 개인호로 추정되는 곳에서 곧게 누운 자세로 있는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을 발굴했다. 이후 국유단 기동탐문관이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상북도 칠곡군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여동생 강길순(1940년생) 씨를 2024년 5월에 방문, 유전자 시료채취 및 유전자 분석을 통해 16년 만에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고인은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최초의 승리를 거둔 ‘춘천지구 전투’에서 치열하게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은 1932년 1월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유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입대 당시 병적이 확인되지 않아 입대 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전 이후 1957년 2월경 발급된 전사확인서를 통해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일인 1950년 6월 25일부터 28일까지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구국의 전투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고인은 전쟁 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남하를 치열하게 저지하다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희생은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5명으로 늘었다. 국유단은 6·25전쟁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참전용사와 유가족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유가족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전쟁’을 하는 상황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며,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유가족을 먼저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 불편,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운 유가족은 대표전화로 문의하면 유전자 시료를 채취를 위해 직접 방문한다고 밝혔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7-11 15:11:26[파이낸셜뉴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6·25전쟁 영웅 故 백선엽 장군 4주기 추모식이 10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거행됐다. 이번 추모식은 조국수호와 굳건한 한미동맹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백선엽 장군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됐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과 육군 공동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강대식 국회의원, 김재욱 칠곡군수, 고창준 2작전사령관, 크리스토퍼 라네브 미8군사령관과 김관진 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사장(전 국방부장관) 및 박형수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장이 참석했다. 권영해 국가원로회의 고문(전 국방부장관), 권오성 육군협회장(전 육군참모총장), 임호영 한미동맹재단 회장(전 연합사 부사령관) 등 안보단체 주요직위자와 역대 합참의장·육군참모총장·연합사 부사령관 등 군 원로들을 포함하여, 유관기관 및 보훈단체 관계관 총 3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유가족을 포함한 행사 참석자들은 다부동 구국용사충혼비에서 헌화·분향하고 백 장군 등 호국영령의 넋을 기렸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환영사를 통해 "국가와 군을 위해 일평생 바치신 백선엽 장군님의 위대하신 삶은 자유대한민국의 산 역사"라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라고 하셨던 장군님의 결기와 투혼이 어린 말씀을 가슴에 새겨 적들이 다시는 이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강한 힘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고 말했다. 백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살아오면서 한시라도 잊을 수 없는 것은 6·25전쟁 기간 수많은 전우의 고귀한 의생과 유족들의 아픔이다. 6·25전쟁의 진정한 영웅은 나와 함께 싸운 전우들이었다'라고 말씀하셨다"라며 "아버지의 평생 염원이었던 조국수호와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애쓰고 계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공연에서는 경상북도 도립국악단의 연주와 2작전사 군악대의 중창곡으로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서 참석자들은 백 장군이 생전에 가장 사랑한 군가 '전우야 잘 자라'를 제창하며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행사자에는 6·25전쟁 주요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오늘날 한미동맹의 기틀을 닦은 백 장군의 생전 인터뷰 장면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소개한 추모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백 장군은 1950년 6·25전쟁 발발시 국군 1사단장으로 낙동강 최후방어선인 대구 북방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서 미 27연대, 미 23연대와 국군 최초의 합동작전으로 북한군 3개사단의 공세를 저지시킴으로서 초기 6·25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3년여의 전쟁기간 동안 주요 직위를 거치면서 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고, 1953년 정전협정을 전후로 두 번의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국군의 근간을 구축한 6·25전쟁의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23년 국가보훈부는 백선엽 장군을 6·25전쟁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한 바 있다. 백 장군은 2020년 7월 99세의 나이로 별세해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7-10 1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