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파이낸셜뉴스 강근주 기자] 안산시의회 도시환경위원회가 6일 의회 대회의실에서 안산시로부터 시화호 간석지(북측-MTV 동측)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 및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았다. 이날 보고회에는 나정숙 도시환경위원장과 이기환 간사, 윤석진 김진숙 위원이 참석했으며 안산시 도시재생과-용역사 관계자들은 작년 6월부터 진행 중인 2개 용역 개요와 추진경위, 향후 계획 등을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도환위 위원들은 간석지 매립사업과 용역 방향성을 제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위원들은 향후 조성될 공유수면매립지가 산업용지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공간으로 활용돼야 하며 그에 맞는 사업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적극 수렴하라고 주문했다. 또한 별도 토취장을 확보해 자연을 훼손하지 말고 여타 사업에서 발생하는 흙을 활용하는 방안과 자연환경을 고려한 조성으로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해 달라고 제언했다. 나정숙 위원장은 “이번 사업은 경제와 환경, 공익성 등을 감안한 이용계획 수립이 중요하다”며 “도시환경위원회도 사업이 합리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살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안산시는 오는 4월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거쳐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 반영요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며, 용역 준공은 5월에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2020-02-08 02:06:22평안북도 곽산간석지 2계단 건설과 대계도간석지 내부망 공사가 16일 완공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17일 통신에 따르면 최영림 내각 총리와 로두철 내각 부총리가 준공식에 참석했다. 통신은 1년 반 남짓한 기간에 관도와 달양도, 외장도와 내장도 등 여러 섬을 연결하는 수천 미터의 구간에 방조제를 쌓아 1600정보(1587만㎡)의 간석지를 대지로 전변시켰다고 전했다. 이울러 제38차 정일봉상청소년학생체육경기대회도 이날 개막했다. 통신은 각 도에서 선발된 5000여 명의 청소년 학생이 참가하는 경기대회에서는 태권도, 농구, 배구, 탁구 등 30여 개 종목의 경기가 중학교와 소학교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된다고 소개했다 이날 평양 청춘거리 농구경기관에서 있은 개막식에서 전용남 청년동맹중앙위원회 1비서가 개막사를 했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2012-05-17 16:39:18경기 안산·화성시 일대에 걸쳐 있는 시화호 남측간석지 1720만평이 오는 2009년까지 문화·레저·첨단기능 등 첨단복합 생태도시로 탈바꿈한다. 이곳은 친환경개발을 기본 컨셉트로 ▲생태·레저 ▲생태·문화(공룡알 화석지) ▲도시·첨단산업 ▲관광·레저 등 4개 단지로 나눠 개발된다. 특히 관광·레저중심의 친환경 생태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공룡알 화석지 및 시화호 수변지역을 중심으로 생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경기 부천시 소사동∼안산시 원시동 복선전철을 남측간석지까지 연장해 무공해 대중교통망 중심의 간선교통망을 갖추기로 했다. 건설교통부는 시민환경단체 및 해당 지자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시화지역 지속가능 발전협의회’를 구성해 지난 1년 동안 현지조사와 외국사례 조사, 각계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시화호 남측간석지 개발 기본원칙을 이같이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남측간석지 개발 기본원칙에 따르면 단지별 개발면적은 각각 400만평 안팎으로 조성된다. 특히 생태·문화체험 관광단지는 450만평 규모로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개발이 추진된다. 건교부는 이달 중 단지별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업체를 선정한 뒤 개발계획 수립에 본격 착수해 연말까지 구체적인 개발계획을 확정하고 실시계획 수립 등을 거쳐 오는 2006년말부터 부지조성 등 개발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건교부는 오는 2008년부터는 남측 간석지 일대가 복합문화 레저단지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면서 수도권 주민의 휴양과 문화레저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될 것으로 내다봤다. 건교부 서종대 신도시기획단장은 “이번 시화호 남측간석지 개발기본 원칙은 개발계획 수립 이전에 환경 및 시민단체, 해당 지자체 등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합의도출을 통해 개발 방안을 마련한 첫 사례로서 의미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계획 및 실시계획 수립 단계는 물론 개발단계에서도 지속적으로 이해 관계인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새로운 국토개발 방식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건교부는 안산시 대부동 시화방조제 작은가리섬에 추진중인 인구 50만명 도시 규모에 공급할 수 있는 25만4000㎾의 조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이달부터 본격 착공해 오는 2009년 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 poongnue@fnnews.com 정훈식기자
2005-01-04 12:19:55250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포함해 복합해양도시로 개발될 시화지구는 시화호(1329만평)와 간석지(3254만평)로 구성돼 있다. 지난 75년 농어촌진흥공사가 이 지역을 간척사업을 위한 개발 우선지구로 선정하면서 시화지구의 개발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는 86년 관계부처와 합의아래 한국수자원공사를 사업시행자로 확정하고 이듬해인 지난 87년 4월 공사에 착수, 약 7년만인 94년 1월 시화방조제 끝막이 공사를 마무리했다. 정부는 당초 간척사업으로 생겨나는 간석지를 농업용지와 도시용지로 개발한다는 기본구상만 세웠다. 하지만 97년부터 일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독자적인 개발계획을 잇따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화방조제 공사 완료이후 수질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해 97년 3월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최고 26�x까지 올라갔다. 이로 인해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이 간석지 개발 중단을 요구하며 정부 및 지자체와 마찰을 빚기 시작해 개발계획이 장기보류됐다. 정부는 이후 시화호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2000년 9월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해양부, 수자원공사, 지자체 등 총 13개 부처 및 기관으로 ‘시화지구 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 정부는 시화호 수질개선을 위해 2001년 2월 시화호 담수화 계획을 완전 백지화한 뒤 이듬해인 지난해 1월 국토연구원에 시화호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의뢰했다. /정훈식기자
2003-12-12 10:29:45소금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에 필수적인 요소다. 인류의 탄생과 그 역사를 함께한다. 1960년대까지도 가정에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만들었던 시절에 소금은 필수였다. 그리하여 산간마을에서 재배한 콩 등 여러 작물들은 강가 나루터로 올라온 서해안 소금과 교환했다. 한강의 지류 섬강의 문막나루터는 서해의 소금과 어류가 강원 평창 일대의 콩, 쌀 등 작물과 교환됐던 중요한 장소였다. 소금이 쌓이면 소금산이라 했다. 중국의 차마고도는 중국 남서부와 부탄, 미얀마 등과 연결된 무역로로 차, 말 그리고 소금이 주요 교역품이었다. 소금과 연계된 지명으로 서울의 염창동(소금창고), 염리동(소금마을), 아산 염치(소금고개) 등이 있다. 또 경남 남해 서면 해안에는 염해 마을이 있다. 염해 등대와 방파제가 있는 작은 해안마을이며, 조선시대 염전터가 있었던 곳으로 염전포라고도 했다. 긴 해안을 가진 한국에서는 동해안까지도 소규모 염전터가 많았지만 거의 사라졌다. 염해처럼 부분적으로 소금 관련 유적지들이 남아있다. 로마시대 병사 봉급으로 소금을 주었는데, 이것이 어원이 되어 영어로 봉급을 지금도 샐러리(salary)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의 암염 생산지인 잘츠부르크(Salzburg)는 글자 뜻 그대로 소금성이다. 최근 소금이 주제가 된 상품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소금사탕, 소금비누, 소금치약, 소금빵 등이 있다. 소금 원산지로 중동의 사해 소금, 히말라야 암염, 천일염, 정제소금 등이 소개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소금 생산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①염전에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 ②광물화된 소금인 암염 ③과거 빙하기에 형성된 내륙 호수가 건조해지면서 생긴 염호 소금 ④라오스의 경우처럼 과거 바다가 육지화되면서 지질적으로 지하수화된 지하수염 ⑤지하염수가 솟아 생긴 염정염 ⑥인공적으로 해수를 끓여서 만든 자오염 ⑦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인공염 ⑧소금물을 다시 정제해 적절한 용도로 사용하는 재생소금이 있다. 최근 소개된 용융소금은 천일염을 830도로 가열해 만든 정제된 재생소금이다. 건조 지역의 암염에서는 석회동굴과 유사한 형태의 암염동굴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스라엘 소돔 암염동굴이 대표적이다. 염호로는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솔트레이크가 좋은 사례다. 염호수에서 식탁 소금은 물론 리튬, 마그네슘, 칼륨 등 희소금속도 얻는다. 남미 우유니 소금호수는 이러한 자원과 함께 광활한 평탄 염호의 아름다움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했다. 한국의 천일염은 고급 소금으로 서해안 많은 곳에서 이뤄졌다. 현재는 이러한 염전들이 농경지, 공업단지 등으로 생산성이 높은 토지 이용으로 전환됐다. 인천 소래, 시흥 군자 등 경기만 염전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거의 사라졌다. 현재 소금 생산이 되는 가장 잘 알려진 염전으로는 신안염전, 곰소염전 등이 있다.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은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된다. 영광군의 염전은 한국의 염전 소금 10%가량을 생산하면서 영광9경으로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한국 서해안의 염전은 세계 5대 간석지에 들어가는 넓은 간석지로 갯벌 식생인 함초와 많은 유기물 함량 등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자염(煮鹽)은 전오염이라고도 하며 소금물을 끓여서 염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빠른 시간에 염도를 높이는 것으로, 넓은 염전을 만들기 힘든 곳이거나 날씨 관계로 천일염 하기가 힘든 시기에 자염이 이뤄진다. 작은 공간으로 염분(鹽盆), 염소(鹽所), 염정(鹽井), 염창(鹽倉) 등이 발달했으며 자염 일을 하는 사람을 염한(鹽干)이라고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염분이 가장 많았던 곳은 전라도 영광군으로 113개의 염분이 있었고, 조기잡이 중심지인 파시두(波市頭·법성포 부근)에 많이 위치했고, '염창은 읍안에 있고, 염한은 1129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 평안도 영유현 103개, 황해도 강령현 89개의 염분이 있었고 옹징현·울진현·연안도호부·평해현 등도 주요 소금 산지였다. 암염은 내륙이나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소금이 암석화한 것이다. 당연히 1억년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도 과거 바다였던 해양지대들이 대륙판들과 충돌하면서 융기해 바닷물이 육지에 갇히고, 지질층으로 지하 깊숙이 모여 오랜 기간 수분이 빠져나가고 염분만 남아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판매되는 '히말라야 핑크솔트'가 대표적이다. 호수 소금은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소금호수에서 생산된 것이다. 볼리비아의 우유니와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솔트레이크가 유명하다. 이들은 대략 1만3000년 전 빙하가 물러가고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증발이 대량으로 이뤄져 호수 물이 소금 바닥을 보이거나 혹은 진한 염도의 염수 호수가 됐다. 인근의 산지에서 더러 내려오는 여러 광물질인 리튬, 망간 등도 이곳 염호에서 자원으로 채취된다. 소금호수 물은 건조 증발에 의해 일반적으로 바닷물에 비해 염도가 5~13배에 이른다. 수영을 할 경우 자연적으로 물에 뜬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의 경계를 이루는 갈릴리 호수, 요르단강, 사해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강을 통해 사해로 물이 흘러들어 가는 일반호다. 그러나 사해의 물은 빠져나갈 방법이 증발 외에는 없으므로 소금호수와 소금사막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한 소금이 생산된다. 미국 유타주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물기가 매우 적어서 우기에도 물기가 없는 고급 소금임을 광고한다. 지하수염도 특이한 것이다. 이 지하수는 지질학적 시기가 늦거나 지하화된 해양염수에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염도가 높은 지하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하수는 관정으로 지하 200m까지 뽑아 올려서 열을 가해 건기에는 천일염 형태로, 우기에는 자염 형태로 생산된다. 라오스 콕싸앗 소금공장이 대표적이다.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답사기행록을 남겼다. 여기에 보면 당시 함경북도 해안을 거치면서 소금 생산을 관찰했고, 생산된 소금은 바구니에 담겨 중국 훈춘으로 운반되는데 소금 수송 중국인 마차는 각각 7마리 노새로 조종되고,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적고 있다. 또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은 한강을 통해 여러 나루터에서 지역의 쌀, 콩 등과 교환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2-10 18:34:12소금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들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인류의 탄생과 그 역사를 함께 한다. 1960년대까지도 가정에서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만들었던 시절에 소금은 필수였다. 그리하여 산간마을에서 재배한 콩 등 여러 작물들은 강가 나루터로 올라온 서해안 소금과 교환했다. 한강의 지류 섬강의 문막나루터는 서해의 소금과 어류가 강원 평창 일대의 콩, 쌀 등 작물과 교환되었던 중요한 장소였다. 소금이 쌓여지면 소금산이라 했다. 중국의 차마고도는 중국 남서부와 방글라데시, 부탄, 미얀마 등과 연결된 무역로로서 차, 말, 그리고 소금이 주요 교역품이었다. 소금과 연계된 지명으로 서울의 염창동(소금창고), 염리동(소금마을), 아산 염치(소금고개) 등이 있다. 또 경남 남해 서면 남상리 해안에는 염해 마을이 있다. 염해 등대와 방파제가 있는 작은 해안 마을이며 조선시대 염전터가 있었던 곳으로 염전포라고도 했다. 긴 해안을 가진 한국에서는 동해안까지도 소규모 마을 염전터가 많았지만 거의 사라졌다. 염해처럼 부분적으로 소금 관련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로마시대 병사 봉급으로 소금을 주었는데, 이것이 어원이 되어 영어로 봉급을 지금도 샐러리(salary)로 부른다. 오스트리아의 암염 생산지인 잘츠부르크(Salzburg)는 글자 뜻 그대로 소금성이다. 최근 소금이 주제가 된 상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소금사탕, 소금비누, 소금치약, 소금빵 등이 있다. 소금 원산지로 중동의 사해 소금, 히말라야 암염 발굴 핑크 소금, 천일염 정재 소금 등이 소개되고 있다. 소금은 겨울철 도로 결빙을 녹이는데도 요긴하게 사용된다. 생물은 소금에 의존하고 적응한다. 모든 동물들도 어떠하든 적은 양이나마 소금을 섭취한다. 일상에서 식품을 조금 오래 보관하는 방법으로 ‘빛과 소금’이 있다. 햇볕에 말리거나 염장을 하여 보관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발효를 시키는 방법이 있다. 모두 세계적으로 많이 사용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소금 생산의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염전에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드는 천일염 △광물화된 소금인 암염 △과거 빙하기에 형성된 내륙 호수가 건조해지면서 생긴 염호 소금 △라오스의 경우처럼 과거 바다가 육지화되면서 지질적으로 지하수화된 지하수염 △지하염수가 솟아 생긴 염정(鹽井)염 △인공적으로 해수를 끓여서 만든 자오염(煮鰲鹽) 혹은 전오염(煎鰲鹽)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만든 인공염 △이미 대규모로 사용된 소금물을 다시 정제해 적절한 용도로 사용하는 재생소금이 있다. 최근 소개된 용융소금은 천일염을 830도로 가열해 만든 정제된 재생 소금이다. 건조 지역의 암염에서는 석회동굴과 유사한 형태의 암염동굴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소돔 산맥이 대표적이다. 염호로는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가 좋은 사례다. 염호수에서 식탁 소금은 물론, 리튬, 마그네슘, 칼륨 등 희소 금속도 얻는다. 남미 우유니 소금호수는 이러한 자원과 함께 광활한 평탄 염호의 아름다움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전했다. 한국의 천일염은 고급 소금으로 서해안 많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현재는 이러한 염전들이 농경지, 공업단지 등으로 생산성이 높은 토지 이용으로 전환되었다. 인천 소래, 시흥 군자 등 경기만 염전은 도시화와 산업화로 거의 사라졌다. 현재 소금 생산이 되는 가장 잘 알려진 염전으로는 전라남북도 서해안인 신안염전, 곰소염전 등이 있다.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은 관광자원으로 되어 있다. 영광군의 염전은 한국의 염전 소금 10%정도를 생산하면서 영광9경으로 멋진 경관을 보여준다. 한국 서해안의 염전은 세계 5대 간석지에 들어가는 넓은 간석지로 갯벌 식생인 함초와 많은 유기물 함량 등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최근 신안에서는 첨단 소재에 들어가는 리튬이 발견돼 화제가 되었다. 2014년 한때 장애인을 몰래 데려가서 거의 노예 상태로 부렸다는 노예염전 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자염은 전오염이라고도 하며 소금물을 끓여서 염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빠른 시간에 염도를 높이는 것으로, 넓은 염전을 만들기 힘든 곳이거나, 날씨 관계로 천일염 하기가 힘든 시기 등에서 자염이 이루어진다. 작은 공간으로 염분(鹽盆, 소금 굽는 장치), 염소(鹽所, 바닷물을 뽑아 올리는 소금밭), 염정(鹽井, 소금 우물, 지하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거나 인공적으로 만듦), 염창(鹽倉, 소금창고) 등이 발달했으며, 자염일을 하는 사람을 염한(鹽干)이라고 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염분이 가장 많았던 곳은 전라도 영광군으로 113개의 염분이 있었고, 조기잡이 중심지인 파시두(波市頭, 법성포 부근)에 많이 위치했고, ‘염창은 읍안에 있고, 염한은 1129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외 평안도 영유현 103개, 황해도 강령현 89개의 염분이 있었고, 옹징현, 울진현, 연안도호부, 평해현 등이 주요 소금 산지였다. 또 북한의 경우는 현재 함경북도 어랑군 어대진 노동지구에 사구에 의한 석호 지형에 비교적 대규모 염전을 개발해 소금을 얻고 있다. 암염은 육지 내륙이나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소금이 암석화한 것이다. 당연히 1억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면서도 과거에 바다였던 해양지대들이 지구의 대륙판들이 충돌하면서 융기하여 바닷물이 육지에 갇히고, 지질층으로 지하 깊숙이 모여져서 오랜 기간 수분이 빠져나가고 염분만 남아 단단한 암석으로 변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그리고 히말라야 산지의 암염들이 생산돼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된다. 최근 국내서 판매되는 ‘히말라야 핑크솔트’가 대표적이다. 호수 소금은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소금 호수에서 생산된 것이다. 과거 빙하기에 위도가 낮은 곳에서는 기온차로 빙하가 잘 없고, 지금보다는 습윤한 빙하 변경으로 더러 눈과 비가 많이 와서 해안으로 진입하는 수로가 없는 곳에 일반 호수가 형성되었는데, 페루의 우유니와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 솔트 레이크가 유명하다. 이들은 대략 1만3000년 전, 빙하가 물러가고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증발이 대량으로 이뤄져 호수물이 소금 바닥을 보이거나 혹은 진한 염도의 염수 호수가 되었다. 인근의 산지에서 더러 내려오는 여러 광물질들인 리튬, 망간 등도 이곳 염호에서 자원으로 채취된다. 소금 호수물은 건조 증발에 의해 일반적으로 바닷물에 비해 염도가 5배에서 13배에 이른다. 수영을 할 경우 자연적으로 물에 뜬다. 중동의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의 경계를 이루는 갈릴리호수, 요르단강, 사해는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갈릴리 호수는 요르단강을 통해 사해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일반호다. 그러나 사해의 물은 빠져나갈 방법이 증발 외는 없으므로 소금호수와 소금사막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한 소금이 생산된다. 미국 유타주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물기가 매우 적어서 우기에도 물기가 없는 고급 소금임을 광고한다. 한국에도 이스라엘에서 수입되는 호수 소금의 예로 ‘사해 소금 비누’가 생산되고 있다. 중국 티베트 지역에서는 소규모 염정에서 소금을 생산한다. 지하수염도 특이한 것이다. 이 지하수는 지질학적 시기가 늦거나 지하화된 해양염수에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염도가 높은 지하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하수는 관정으로 지하 200m까지 뽑아 올려서 열을 가해 건기에는 천일염 형태로, 우기에는 자염 형태로 생산하는 것이다. 라오스의 콕싸앗 소금공장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왕립학회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은 1894년에서 1897년까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답사기행록을 남겼다. 이곳에 보면 당시 함경북도 해안을 거치면서 소금 생산을 관찰하였고, 생산된 소금은 바구니에 담겨 중국의 훈춘으로 운반되는데, 소금 수송 중국인 마차는 각각 7마리 노새로 조종되고,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은 한강을 통해 여러 나루터들에서 지역의 쌀, 콩 등과 교환되었다고 적고 있다. 한국은 경제가 발전하면서 많은 소금을 수입하고 있다. 중국(제설용, 연수기용 소금), 아르헨티나(안데스 소금), 호주(장류 제조용 천일염), 베트남(천일염) 등이다. 앞서 언급한 히말라야 소금(파키스탄)과 사해 소금(이스라엘)도 있다. 필자가 가본 소금 생산지는 신안과 영광의 염전, 미국 유타주의 소금호수, 중국 신장 염호지대, 라오스의 콕싸앗 소금공장 등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2-09 12:17:29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탑승객 179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9일, 사고 발생 11일 만에 희생자분들 모두가 영면에 들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편안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시길 빈다. 사고 원인으로 조류충돌, 활주로의 길이와 로컬라이저, 저비용항공사들의 무리한 운행 등의 문제가 제시됐다. 간단하나마 한국 공항의 역사와 지리적인 조건을 살펴본다. 이번 제주항공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새떼충돌(bird strike)로 본다. 엔진에서 깃털 흔적이 발견됐다. 무안공항뿐 아니라 울산공항, 그리고 김해공항도 그 새떼의 영향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하필이면 새떼가 많은 곳에 공항을 만든 것은 아니다. 공항의 필요성은 항공 수요가 있기 때문인데, 당연히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의 인근이 좋다. 하지만 도시권의 주거지는 물론 대규모 산업지역, 그리고 농경지에는 들어설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여유 있는 공항 대상지역은 대규모 하천변과 범람원, 해안과 가까운 평지와 간석지, 그리고 낮은 해수면의 해안 지역 등이 될 수밖에 없다. 넓고 긴 평지 공급은 이런 지역밖에 없다. 매립과 간척이 가능하므로 하천과 연안의 충분한 면적이 좋은 조건이다. 이런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어 먹잇감과 함께 철새들의 이동로와 계절 주거지로도 적절하다. 철새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가 없고 물리쳐서도 안 된다. 철새와 함께하는 공항학과 생태학, 지형학의 치밀한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철새의 나라다. 여름과 겨울철의 기온차가 40~50도에 이르는 4계절 지대이며, 또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해양이 바로 접하는 자연생태의 지정학이 첨예한 지역이다. 철새들이 겨울과 여름을 오가고 대륙과 해양을 오가는 길목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자연조건인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 수요 증가는 경제발전과 함께한다. 세계적 인구조밀국이며, 평지 비율이 30%인 국가이면서도 경제적인 선진국이 되면서 해외 왕래가 매우 많은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 독일로 광부 및 간호사 파견과 1970년대의 베트남전과 중동 건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로의 이민 등으로 항공 수요는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1970년대 공항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항에서의 이별과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당시 저음의 여가수 문주란은 1972년부터 공항에 관한 노래 4개를 불러 당대 큰 히트를 쳤다. '공항의 이별'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이여 잘 있거라' '공항대합실' 등으로 문주란의 공항 시리즈는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인천공항, 김포공항, 김해공항, 제주공항 등 국제공항은 이용량이 엄청나고 흑자를 이루는 4대 공항이다. 특히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의 공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공항은 서울과 부산의 인구밀집 대도시와 최고 관광도시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요청으로 건설돼 현재 운용되고 있는 전국의 15개 공항 중 위의 4개 공항만이 흑자 공항이다. 도시 인구의 수요와 매우 밀접하다. 적자 공항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지역별 주요 거점공항을 지정하고 지역 내에서 육상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고려하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새로이 부산의 가덕도,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 등에 공항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이다. 백령도 사곶해안 사빈은 6·25전쟁 때 유엔군 군용 활주로로 이용됐고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보존돼 있다. 울릉도와 흑산도는 좁은 면적으로 소형 비행기가 다닐 수 있도록 하면서 날씨 관계에 철저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초기의 민간공항은 서울 여의도공항과 부산 수영공항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기 고양 용강면의 여의도공항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군사공항으로 시작해 1958년 공항 기능을 상실한다. 1953년 국제공항으로 승격했지만 가장 큰 약점은 한강의 홍수가 심해지면 자주 범람해 공항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결국 1958년 서울에서 조금 멀어진 인접 김포로 공항이 이전한다. 활주로도 길어졌다. 여의도는 군사공항의 기능은 살아있었으나 이것도 1971년 성남 공군기지로 이동하면서 여의도공항은 완전히 사라지고 첨단의 대도시 권역이 되었다. 공항이 사라지면서 그 넓은 평지는 여의도광장으로 불리면서 국가적 행사도 자주 열렸다. 군용항공기 전시회도 열렸다. 현재는 국회단지, 금융지역, 아파트지역, 상가지역이 자리 잡고 있다. 영등포와 김포에 인접한 샛강지역은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성남공항의 현재 명칭은 서울공항으로 국가적, 외교적, 공공적 이용으로 요긴한 역할을 한다. 서울 송파구, 경기 성남 주민들은 낮게 떠다니는 항공기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초기 부산의 공항은 수영공항이다. 1940년 동래 수영강 하류 강변이 군사공항으로 개발돼 1996년까지 사용됐다. 활주로 길이는 2012m로 내륙으로 약 500m의 활주 여유공간이 보이고, 남쪽 해안은 도로와 수영해수욕장이 있는데 만약 이쪽으로 더 연장한다면 약간의 해안 매립까지 포함해 500m를 더 연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늘어나는 제2의 도시 부산권의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작은 공항이었다. 현재는 공항 지역이 센텀시티·마린시티 등 부산의 새로운 거주지역으로 변모하고, 행정구역은 해운대구로 수영강을 경계로 수영구와 접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제주국제공항과 대한항공이 개별적으로 이용하는 정석공항이 있다. 제주 동부에 제2 제주공항 건설에 대한 제안이 있다. 그리고 제주 서남부 송악산 인근 평탄지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일본 군부가 만든 알뜨르비행장이 있다. 격납고 등 탐방할 수 있는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한국 항공사고 역사를 살펴보면 네 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다. 1983년 대한항공 보잉747기가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인접해 비행할 무렵 소련 전투기에 피격돼 탑승자 269명이 사망했다. 1987년에는 북한 공작원 일당의 비밀작전으로 미얀마 안다만 해상에서 공중 폭파했고,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1997년의 괌 사고는 악천후와 공항시설 낙후 등이 원인이 돼 21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번 2024년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나 네 번의 대형 사고가 기록되고 있다. 두 차례는 자유권과 공산권의 지정학적 원인이었고, 나머지 두 차례는 공항 자체의 문제로 파악된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1-20 19:23:46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무안공항 참사로 탑승객 179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9일, 사고 발생 11일만에 희생자 분들 모두가 영면에 들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편안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시길 빈다. 원인으로 조류충돌, 활주로의 길이와 로컬라이저, 저비용 항공사들의 무리한 운행 등의 문제들이 제시됐다. 간단하나마 한국 공항의 역사와 지리적인 조건을 살펴본다. 이번 무안공항 사고의 1차적인 원인은 새떼충돌(bird strike)로 본다. 엔진에서 깃털 흔적이 발견됐다. 무안공항뿐 아니라 울산공항, 그리고 김해공항도 그 새떼의 영향이 자주 보인다고 했다. 하필이면 새떼가 많은 곳에 공항을 만든 것은 아니다. 공항의 필요성은 항공 수요가 있기 때문인데, 당연히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의 인근이 요구된다. 하지만 도시권의 주거지는 물론 대규모 산업지역, 그리고 농경지에는 들어 설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여유 있는 공항 대상 지역은 대규모 하천변과 범람원, 해안에 가까운 평지와 간석지, 그리고 낮은 해수면의 해안 지역 등이 될 수 밖에 없다. 넓고 긴 평지 공급은 이러한 지역밖에 없다. 매립과 간척이 가능하므로 하천과 연안의 충분한 면적이 좋은 조건이다. 이런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물어 먹이감과 함께 철새들의 이동로와 계절 주거지로서도 적절하다. 철새들을 모조리 물리칠 수가 없고 물리쳐서도 안된다. 철새와 함께하는 공항학과 생태학, 지형학의 치밀한 조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철새의 나라다. 여름과 겨울철의 기온차가 40~50도에 이르는 4계절 지대이며, 또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해양이 바로 접하는 자연생태의 지정학이 첨예한 지역이다. 철새들이 겨울과 여름을 오가고 대륙과 해양을 오가는 길목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자연 조건인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 수요 증가는 경제발전과 함께한다. 세계적인 인구조밀국이며, 평지 비율이 30%인 국가이면서도 경제적인 선진국이 되면서 해외 왕래가 매우 많은 국가가 되었다. 1960년대 독일로의 광부 및 간호사 파견과 70년대의 베트남전과 중동건설,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로의 이민 등으로 항공 수요는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1970년대 공항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항에서의 이별과 만남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당시 저음의 여가수 문주란은 1972년부터 공항에 관한 노래 4개를 불러 당대 큰 히트를 쳤다. '공항의 이별', '공항에 부는 바람', '공항이여 잘 있거라', '공항대합실' 등으로 문주란의 공항 시리즈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인천공항, 김포공항, 김해공항, 제주공항 등 국제공항은 이용이 엄청나고 흑자를 이루는 4대 공항이다. 특히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의 공항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공항은 서울과 부산의 인구밀집 대도시와 최고의 관광도시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요청으로 건설돼 현재 운용되고 있는 전국의 15개 공항 중 위의 4개 공항만이 흑자 공항이다. 도시 인구의 수요와 매우 밀접하다. 적자 공항을 계속 유지하기보다는 지역별 주요 거점 공항을 지정하고 지역 내에서 육상 교통망으로 연결하는 방안도 고려하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새로이 부산의 가덕도,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 등에 공항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이다. 백령도 사곶해안 사빈은 6·25 때 유엔군 군용 활주로로 이용됐고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보존돼 있다. 울릉도와 흑산도는 좁은 면적으로 소형 비행기가 다닐 수 있도록 하면서 날씨 관계에 철저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가덕도 공항은 부산 김해공항의 보조적 기능을 할 것으로 본다. 인천공항은 시설과 운영에 있어 세계적인 첨단 공항의 하나다. 조차간만이 거의 9m에 이르는 경기만의 영종도, 삼목도, 용유도를 연결하는 간척과 매립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대한민국 초기의 민간공항은 서울 여의도공항과 부산 수영공항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기도 고양 용강면인 여의도공항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부터 군사공항으로 시작해 1958년 공항 기능을 상실한다. 1953년 국제공항으로 승격했지만 가장 큰 약점은 한강의 홍수가 심해지면 자주 범람해 공항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결국 1958년 서울에서 조금 멀어진 인접 김포로 공항이 이전한다. 활주로도 길어졌다. 여의도는 군사공항의 기능은 살아있었으나 이것도 1971년 성남 공군기지로 이동하면서 여의도공항은 완전히 사라지고 첨단의 대도시 권역이 되었다. 공항이 사라지면서 그 넓은 평지는 여의도광장으로 불리면서 국가적 행사도 자주 열렸다. 군용항공기 전시회도 열렸다. 현재는 국회단지, 금융지역, 아파트지역, 상가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영등포와 김포에 인접한 샛강지역은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성남공항의 현재 명칭은 서울공항으로 국가적, 외교적, 공공적 이용으로 요긴한 역할을 한다. 서울시 송파구, 성남시 주민들은 자주 낮게 떠다니는 항공기들을 볼 수 있다. 초기 부산의 공항은 수영공항이다. 1940년 동래 수영강 하류 강변이 군사공항으로 개발돼 1996년까지 사용됐다. 활주로 길이는 2012m로 내륙으로 약 500m의 활주 여유 공간이 보이고, 남쪽 해안은 도로와 수영해수욕장이 있는데, 만약 이쪽으로 더 연장한다면 약간의 해안 매립까지 포함해 500m를 더 연장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늘어나는 제2의 도시 부산권의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적은 공항이었다. 현재는 공항 지역이 센템시티, 마린시티 등 부산의 새로운 거주지역으로 변모하고, 행정구역은 해운대구로 수영강을 경계로 수영구와 접하고 있다. 제주도에는 제주국제공항과 대한항공이 개별적으로 이용하는 정석공항이 있다. 제주 동부에 제2제주공항 건설에 대한 제안이 있다. 그리고 제주 서남부 송악산 인근 평탄지에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일본 군부가 만든 알뜨르비행장이 있다. 격납고 등 탐방할 수 있는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지만, 한국 항공 사고의 역사를 살펴보면, 4번의 대형 사고가 있었다. 1983년 대한항공 보잉747기가 러시아 캄차카반도에 인접해 비행할 무렵 소련 전투기에 피격돼 탑승자 269명이 사망했다. 1987년에는 북한 공작원 일당의 비밀작전으로 미양마 안다만 해상에서 공중 폭파했고,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1997년의 괌 사고는 악천후와 공항시설 낙후 등이 원인이 돼 214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번 2024년 무안공항 참사가 일어나 4번의 대형 사고가 기록되고 있다. 두 차례는 자유권과 공산권의 지정학이 원인이었고, 나머지 두 차례는 공항 자체의 문제로 파악된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1-14 13:52:05교동의 첫 모습은 넓은 평야와 저수지 그리고 북해안의 길게 늘어선 철책선, 화개산에서 바라보이는 서해안 여러 섬들, 개펄과 같은 자연경관, 북녘의 연백평야다. 남과 북이 바다를 두고 직접 맞닿는다. 바닷물은 토사와 섞여 흐린 모습이다. 썰물 때는 넓은 갯벌이 깔린다. 밀물 땐 한강으로 물이 올라가고 교동도 남안의 남산포항에서는 파도가 많이 인다. 북녘 바다가 철책이고 휴전선이다. 남북한 모두 인위적인 어떤 통행도 없다. 예성강, 임진강, 한강과 물길로 연결되고 강화도와 석모도가 인접한 비교적 넓게 보이는 섬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6·25를 맞이하면서 멀리 떨어진 섬이 되었다. 이제는 돌아볼 섬이다. 교동도에는 해방과 6·25를 전후해 황해도 연백평야 출신들이 많이 건너와서 연백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대룡시장이 그 현장이다. 교동도는 과거 경기, 충청, 평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곳이다. 즉 한양과 강화를 지키는 곳이다. 한양에서 바다로 가장 서쪽으로 나가 있는 섬이다. 그리하여 연산군을 비롯한 조선의 많은 왕과 왕족들이 유배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한양에 인접하고 고립된 곳이니 유배지로 적합했다. 해방과 분단, 6·25의 흔적들이 갈등의 기억과 함께 섬에 산재해 인구와 지역사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남북 관계상 어업은 거의 없고 농경이 주업인 도시다. 지리적 위치 관계로 농업, 특히 쌀농사 외 산업이 거의 없다. 지금은 생산이 덜하지만 조선시대부터 화문석 왕골 품질로 교동산이 유명했다. 안동 예안, 황해 연백에 이어 강화 교동산을 다음으로 쳤다. 둘러볼 곳들이 많다. 고구리 고읍성터, 교동읍성, 고구저수지,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전망대, 교동향교, 남산포항, 사신당, 대룡시장, 망향대 등이다. 모두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난정 저수지, 피난시설, 철망시설, 도로망과 도로시설, 여러 농경시설, 철새 조망들이다. 역사지리 및 지정학 연관 경관들, 농업과 관련된 쌀 중심 농경지가 뚜렷하다. 광대한 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저수지, 잘 정비된 농로, 크고 작은 정미소와 창고들 그리고 농기구와 농기계 수리시설 등이 있다. 축산업 시설과 일반 산업 시설이 없는 특이한 경관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교동도는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경 126도, 북위 37도다. 면적은 47.14㎢(대략 서울 송파구 1.4배)로 현재 행정구역은 인천 강화군 교동면이다. 교동도는 전국에서 13번째로 큰 섬이다. 교동면은 강화군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면이다. 마을로는 봉소리, 상룡리, 고구리, 읍내리, 대룡리, 양갑리, 삼선리, 인사리, 지석리, 무학리, 난정리, 동산리, 서한리 등 13개 리가 있다. 지난 2002년 촬영된 위성지도는 교동도 일대 경기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으로 표기된 산지를 보면 상대적으로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 숲이 많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교동도는 산지 중심의 과거 3개의 큰 섬들이 확인되고 농업에 중요한 동쪽의 고구저수지와 서쪽의 난정저수지가 보인다. 교동도는 평균 고도가 낮다. 섬의 3분의 2가 간척된 평야지대로 이들은 해발 10m 이하에 해당한다. 원래의 간석지는 뻘지대와 갯골로 이뤄지는 자연 해안 지형들이다. 경기만은 조차가 8~9m에 달해 간조 시에 매우 넓은 간석지가 드러난다. 제방과 매립에 의한 간척이 매우 유리한 지역이다. 현재는 섬의 중앙 지역 모두가 간척에 의한 농경지로 비교적 넓은 교동평야를 이루고 있다. 섬에서 고도가 높은 곳은 동부의 화개산(260m), 동북부 봉황산(75m), 봉재산(76.1m), 삼성산(65m), 북동부의 율두산(89m), 서남부의 수정산(75m) 등으로 이들은 간석지가 아닌 독립된 구릉의 섬지역으로 간척이 되면서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섬, 교동도가 되었다. 간척사업은 고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뤄져 왔다. 교동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통하여 육지와 연결된다. 과거 개성과 한양을 지키는 길목이었다. 이들 하천을 통해 육지로부터 많은 퇴적물이 경기만에 쌓이면서 외해로 나가더라도 가까운 곳은 깊이 40m 이하의 해저퇴적층이 넓게 발달한다. 과거 6000~8000년 전 해빙기 이후 현재의 해수면 높이로 정착되면서 많은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경기만을 비롯한 서해의 전반적인 경향은 마찬가지이지만 만을 이루는 있는 해안지형과 거대한 하천들의 퇴적물 등으로 퇴적층의 발달은 경기만이 가장 뛰어나다. 과거 역사적으로 교동도는 어업과 염업이 발달했다. 현재는 남북관계로 인해 모든 해안은 출입이 금지되고 남산포만이 포구와 어선 정박이 허용된다. 경기만의 평균 조차는 572㎝이며 사리 때는 780㎝, 조금 때도 340㎝에 이를 정도로 조차가 심하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으로부터 유입되는 비교적 미세한 토사로 인해 바닷물은 매우 흐리다. 수심은 일반적으로 10m 이하로 낮은 편이다. 말탄포 앞 10m, 교동대교 인근 호두곶은 20m까지 나오지만 대개 5~10m 정도이다. 유속은 매우 빠른 편으로 최대 초당 1.8m까지 나온다.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의 유속은 썰물 때 초당 1.42m, 밀물 때 초당 1.34m로 빠른 편이다. 이곳에는 유기물이 많아 다양한 어류와 새우류가 많이 잡힌다. 6월 새우, 5~6월 밴댕이, 겨울 숭어, 봄철 농어 등이 잡힌다. 6월 새우젓을 육젓이라고 하며 최상품이라고 한다. 비무장지대(DMZ)는 동해안 고성군에서 서해안의 김포, 강화도, 교동도를 거쳐서 강화 서도면 말도리 해역까지다. 155마일, 248㎞에 이른다. 더 서쪽으로는 황해도 남쪽 해역으로 북방한계선(NLL)으로 불리면서 연평도, 백령도까지 이른다. 남북 간의 경계선은 지형과 해안 조건에 따라 3가지다. 철책선 DMZ, 철책선 없는 해양과 하천 DMZ 그리고 NLL 해양 북방한계선이다. 내륙 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이 분명하게 남북을 가르고 있지만, 서해안 쪽은 바다 자체가 경계이고, 임진강 하구는 하상이 경계대이므로 군사분계선 장치가 없다. 교동도는 아시다시피 쌀농사의 섬이다. 추수가 지나면 많은 낙곡들이 논바닥을 덮는다. 남북을 오가는 철새들의 먹이 낙원이다. 바다 건너 북녘에는 역사 이래 한국의 곡창지대인 북한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다. 철새들은 바다를 질러서 남북을 오간다. 교동도는 평야와 함께 해안의 넓은 갯벌 또한 새들의 낙원이 된다. 교동도를 드나드는 철새로는 청둥오리, 황오리, 큰기러기 등 오리와 기러기 종류들이 많다. 봄가을로 도요, 물떼새도 들른다. 여름에는 러시아, 알래스카 등에서 번식을 마친 민물도요, 붉은어깨도요, 큰뒷부리도요, 흰물떼새, 왕눈물떼새 등이 이곳을 찾아온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0-14 18:31:53교동의 첫 모습은 넓은 평야와 저수지, 그리고 북해안의 길게 늘어선 철책선, 화개산에서 바라 보이는 서해안 여러 섬들, 개펄과 같은 자연경관, 북녘의 연백평야다. 남과 북이 바다를 두고 직접 맞닿는다. 바닷물은 토사와 섞여 흐린 모습이다. 썰물 때는 넓은 갯벌이 깔린다. 밀물 땐 한강으로 물이 올라가고 교동도 남안의 남산포항에서는 파도가 많이 인다. 북녘 바다가 철책이고 휴전선이다. 남북한 모두 인위적인 어떤 통행도 없다. 예성강, 임진강, 한강과 물길로 연결되고 강화도와 석모도가 인접한 비교적 넓게 보이는 섬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6·25를 맞이하면서 멀리 떨어진 섬이 되었다. 이제는 돌아볼 섬이다. 교동도에는 해방과 6·25를 전후해 황해도 연백평야 출신들이 많이 건너와서 연백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대룡시장이 그 현장이다. 교동도는 과거 경기, 충청, 평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곳이다. 즉, 한양과 강화를 지키는 곳이다. 한양에서 바다로 가장 서쪽으로 나가 있는 섬이다. 그리하여 연산군을 비롯한 조선의 많은 왕과 왕족들이 유배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한양에 인접하고 고립된 곳이니 유배지로 적합했다. 해방과 분단, 6·25의 흔적들이 갈등의 기억과 함께 섬에 산재해 인구와 지역사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남북관계상 어업은 거의 없고 농경이 주업인 도시다. 지리적 위치 관계로 농업, 특히 쌀농사 외 산업이 거의 없다. 지금은 생산이 덜하지만 조선시대부터 화문석 왕골 품질로 교동산이 유명했다. 안동 예안, 황해 연백에 이어 강화 교동산을 다음으로 쳤다. 둘러볼 곳들이 많다. 고구리 고읍성터, 교동읍성, 고구저수지, 연산군 유배지, 화개산 전망대, 교동향교, 남산포항, 사신당, 대룡시장, 망향대 등이다. 모두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난정 저수지, 피난시설, 철망시설, 도로망과 도로시설, 여러 농경시설, 철새 조망들이다. 역사지리 및 지정학 연관 경관들, 농업과 관련된 쌀 중심 농경지가 뚜렷하다. 광대한 논,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저수지, 잘 정비된 농로, 크고 작은 정미소와 창고들, 그리고 농기구와 농기계 수리 시설 등이 있다. 축산업 시설과 일반 산업 시설이 없는 특이한 경관도 함께 살펴볼 만하다. 교동도는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경 126도, 북위 37도다. 면적은 47.14㎢(대략 서울 송파구 1.4배)로 현재 행정구역은 인천 강화군 교동면이다. 교동도는 전국에서 13번째로 큰 섬이다. 교동면은 강화군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면이다. 마을로는 봉소리, 상룡리, 고구리, 읍내리, 대룡리, 양갑리, 삼선리, 인사리, 지석리, 무학리, 난정리, 동산리, 서한리 등 13개 리가 있다. 지난 2002년 촬영된 위성지도는 교동도 일대 경기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붉은색으로 표기된 산지를 보면 상대적으로 북한 황해도 지역에서 숲이 많이 사라졌음을 보여준다. 교동도는 산지 중심의 과거 3개의 큰 섬들이 확인되고 농업에 중요한 동쪽의 고구저수지와 서쪽의 난정저수지가 보인다. 교동도는 평균 고도가 낮다. 섬의 3분의 2가 간척된 평야지대로 이들은 해발 10m 이하에 해당한다. 원래의 간석지는 뻘지대와 갯골로 이뤄지는 자연 해안 지형들이다. 경기만은 조차가 8~9m에 달해 간조시에 매우 넓은 간석지가 드러난다. 제방과 매립에 의한 간척이 매우 유리한 지역이다. 현재는 섬의 중앙 지역 모두가 간척에 의한 농경지로 비교적 넓은 교동평야를 이루고 있다. 섬에서 고도가 높은 곳은 동부의 화개산(260m), 동북부 봉황산(75m), 봉재산(76.1m), 삼성산(65m), 북동부의 율두산(89m), 서남부의 수정산(75m) 등으로 이들은 간석지가 아닌 독립된 구릉의 섬지역으로 간척이 되면서 모두 합쳐져서 하나의 섬, 교동도가 되었다. 간척사업은 고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이뤄져 왔다. 교동도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을 통하여 육지와 연결된다. 과거 개성과 한양을 지키는 길목이었다. 이들 하천을 통해 육지로부터 많은 퇴적물들이 경기만에 쌓이면서 외해로 나가더라도 가까운 곳은 깊이 40m 이하의 해저퇴적층이 넓게 발달한다. 과거 6000~8000년 전 해빙기 이후 현재의 해수면 높이로 정착되면서 많은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경기만을 비롯한 서해의 전반적인 경향은 마찬가지이지만 만을 이루는 있는 해안지형과 거대한 하천들의 퇴적물 등으로 퇴적층의 발달은 경기만이 가장 뛰어나다. 과거 역사적으로 교동도는 어업과 염업이 발달했다. 현재는 남북관계로 인해 모든 해안은 출입이 금지되고 남산포만이 포구와 어선 정박이 허용된다. 경기만의 평균 조차는 572㎝이며 사리 때는 780㎝, 조금 때도 340㎝에 이를 정도로 조차가 심하다. 한강, 예성강, 임진강으로부터 유입되는 비교적 미세한 토사로 인해 바닷물은 매우 흐리다. 수심은 일반적으로 10m 이하로 낮은 편이다. 말탄포 앞 10m, 교동대교 인근 호두곶은 20m까지 나오지만 대개 5~10m 정도이다. 유속은 매우 빠른 편으로 최대 1.8m/초까지 나온다. 교동도와 석모도 사이의 유속은 썰물 때 1.42m/초, 밀물 때 1.34m/초로 빠른 편이다. 이곳에는 유기물이 많아 다양한 어류와 새우류가 많이 잡힌다. 6월 새우, 5~6월 밴댕이, 겨울 숭어, 봄철 농어 등이 잡힌다. 6월 새우젓을 육젓이라고 하며 최상품이라고 한다. DMZ는 동해안 고성군에서 서해안의 김포, 강화도, 교동도를 거쳐서 강화 서도면 말도리 해역까지다. 155마일, 248㎞에 이른다. 더 서쪽으로는 황해도 남쪽 해역으로 북방한계선(NNL)으로 불리면서 연평도, 백령도까지 이른다. 남북간의 경계선은 지형과 해안 조건에 따라 3가지다. 철책선 DMZ, 철책선 없는 해양과 하천 DMZ, 그리고 NNL 해양 북방한계선이다. 내륙 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이 분명하게 남북을 가르고 있지만, 서해안 쪽은 바다 자체가 경계이고, 임진강 하구는 하상이 경계대이므로 군사분계선 장치가 없다. 교동도는 아시다시피 쌀농사의 섬이다. 추수가 지나면 많은 낙곡들이 논바닥을 덮는다. 남북을 오가는 철새들의 먹이 낙원이다. 바다 건너 북녘에는 역사 이래 한국의 곡창지대인 북한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다. 철새들은 바다를 질러서 남북을 오간다. 교동도는 평야와 함께 해안의 넓은 갯벌 또한 새들의 낙원이 된다. 교동도를 드나드는 철새로는 청둥오리, 황오리, 큰기러기 등 오리와 기러기 종류들이 많다. 봄, 가을로 도요, 물떼새도 들린다. 여름에는 러시아, 알래스카 등에서 번식을 마친 민물도요, 붉은어깨도요, 큰뒷부리도요, 흰물떼새, 왕눈물떼새 등이 이곳을 찾아온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9-24 11:3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