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는 비행을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이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날개가 달린 동물 중 5%의 날개는 날개가 아니다. 타조처럼 달리는 과정에서 균형을 잡거나 힘을 과시하거나 구애하거나 혹은 새끼를 숨기기 위해 날개를 사용한다. 자연사는 늘 어디로 튈지 모를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진화는 정밀한 설계자가 아닌 멋진 임기응변의 재능을 지닌 땜장이다. 생물체는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지 않는다. 기존 구조를 기반으로 적응을 이어가며, 때로는 비효율적이거나 불완전한 요소들이 남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척추는 이족 보행을 위해 적응했지만 여전히 허리 통증을 유발하기 쉽다. 진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완벽함과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쉽게 말해 재활용이 진화의 핵심이라는 말이다.이미 존재하는 형태를 환경변화에 맞게 다시 사용하는 체계가 진화의 핵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특하 '굴절적응', 즉 원래 기능이 없거나 미미했던 형질의 부산물이 발달해 오히려 쓰임새가 확대된 경우가 그렇다. 굴절적응은 진화과정의 혁신들을 수반한 중요 요인으로 간주된다. 날개가 비행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처럼 동둘들의 수많은 기관은 과거와 현재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진화는 수백만년에 걸쳐 자기 작업물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손질하고 이쪽을 자르고 저쪽을 늘리며 계속해서 수정하는 땜장이처럼 행동한다. ■ 진화는 돌연변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은 환경적 상황이 변하면서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진화했다. 이른바 진화는 불완전함을 특징으로 개체들의 생명을 지속한다. 진화는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을 덧붙이거나 오래된 것 위에 새로운 것을 구축해나가는 방식으로 작동 할 뿐 필요하지 않게 된 DNA를 지워버리진 않는다. 대개 쓸모없는 특징을 유지하면서 유전자의 활성화를 억제하고 단순히 발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DNA는 놀라울 정도로 보편적이다. 모든 생명체의 기본 단위는 고분자,핵산, 네개의 염기서열, 2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이 보편성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을 계속 사용하면서 생명체가 진화해 온 것이다. 즉 제한적인 재료를 지속적으로 재조합하면서 진화했다. 따라서 진화는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거나 만드는게 아닌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활용하는 땜질식의 체계와 같은 무엇이다. 쥐가 인간과 형태학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유전적 구성을 가질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같은 구조의 분포를 달라지게 하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다양한 진화의 형태를 거칠수 있다. 항상 같은 요소를 사용하고 잘라내고 때른 조합으로 배열해 점점 복잡해지는 새로운 객체를 생산한다. 진화는 항상 땜질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다는 말이다. 결국 진화는 수백만년에 걸쳐 서서히 자기 작업물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손질하고 이쪽을 자르고 저쪽을 늘리며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수정하는 땜장이처럼 행동한다. 진화는 이처럼 불완전함을 특징으로 변화된 상황에 맞게 자신을 수정하고 땜질하고 적응해나가는 체계다. 인간은 늘 다른 종들과의 차이를 내세우며 자신을 영장류로 추켜 세우고 차이를 강조하지만 다른 종들의 기능적 우월성에 비해 별다른 기능적 특성은 없다. 단지 거대한 역사적 진회의 역사적 과정속에서 한순간의 균열로 만들어진 우연한 사건으로 형성된 돌연변이라 할수 있다. 이 돌연변이는 특정 순간에 지구라는 행성에서 자신의 종을 확산시키고 다른 종들을 지배할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라는 찰나의 순간을 맞았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숨어 지내던 또 다른 종들이 인간의 지위로 성큼 올라갈수도 있다는 것이 진화가 보여주는 신비로운 경험이자 역설이다. 물론 자연에는 도약은 없다. 긴 시간을 상정할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인간은 늘 모든 것이 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서 팡그로스는 이같은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데 실은 자신조차 이런 사실을 믿지 않았다. 팡그로스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것들이 일어나야 할 곳에서 일어나고 모든 건 최선의 상태에 있을 뿐이라고 자신의 위태로운 확실성을 위로하는데 자족한다. 진화의 지속적인 갈등과 고통의 과정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반영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 괘락과 고통...고군분투의 여정 언어는 질식의 위험이라는 항구적인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얻는 광징히 값비싼 적응이다. 통상적으로 언어가 의시소통을 위해 진화해왔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다양한 언어로 인한 오해와 이에 따른 갈등을 고려해보면 언어는 수많은 오류와 빈틈으로 가득하다. 이런 언어의 불완전한 측면은 그냥 대강 이해하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수도 있다. 언어는 비이성적 혼합물로서 명확한 의사전달과 소통에서는 강점이 별로 없다. 인간은 지속되는 진화적 불일치로 심각한 문제를 겪으며 생존하고 있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위험을 돌파하면서 생존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적응적 가치라는 위험을 인식하고 대응하는데 효과적이었던 기능이 퇴화하면서 의미를 잃고 만 것이다. 남은 것은 고통의 비용이다. 쾌락이 대표적이다. 인간의 쾌락이 생물학적 욕구를 넘어서 문화적 측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유추할수 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고유한 기능을 잃고 쾌락 그 자체만 남았기에 인간은 취약해 질수 밖에 없다. 진화는 인간을 둘러싼 지속적으로 변하는 환경 사이의 지속적인 고군분투다. 따라서 인류는 생명의 정수라기보다 여전히 만들어가는 존재.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오랜 기간 기술과 과학이 인간의 불완전함을 보충해주는 보완물로 작용한 이유다. 진화가 걸어온 길은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포장된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 곳곳에 생채기가 나고 깊은 흔적이 베여 있는 예측 불가의 역사다. 역사는 우연히 일어난 일에 대한 '동결 사건'이다. 처음에는 특정한 필요에 따라 개발됐지만 그 필요성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해 유행이 될 뿐 아니라 사회적 표준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록 역사가 비필수적인 조건들의 우연적 결합에 따른 형성물이라고 해도 이런 흐름을 뒤집고 효울성을 향해 반드시 전진하지는 않는다.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진화는 완벽한 시스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종종 '미완의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이를 통해 때로는 '땜질'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진화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궁극적으로, 진화는 땜질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시스템이 끊임없이 조정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반영한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진화의 지속적인 갈등과 고통의 과정은 인간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반영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R)이나 인공지능(AI)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다만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쾌락 추구가 인간의 주된 목표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행복 머신'처럼 기술이 인간의 본질적 목적과 어긋날 위험을 내포할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경각심이 요구된다. 쾌락만을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 윤리적 가치, 공동체 의식 등 중요한 측면이 희생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할수 있다. 반대로, 쾌락이 창의력과 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만약 쾌락 중심의 행동이 환경 적응이나 생존 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이는 진화적으로 선택될 수 있지만 쾌락이 단기적인 만족만을 추구한다면,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에 치명타를 가할수 있다. ■ '지적기계'가 인간을 구원할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은 수십가지 추상화 수준을 지닌 복잡한 계층 구조로 조직된다. 이것이 인간 문명의 핵심 부분이며 언어와 관습을 통해서 대대로 전해진다. 화이트헤드는 "문명은 우리가 무심코 할수 있는 중요한 조작의 수를 늘림으로써 발전한다"고 통찰했다. 마찬가지로 최근 사회 변화를 추동하고 있는 AI의 발전도 이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추상화 능력을 AI가 갖추게 될 경우 AI의 진화는 급속도로 인간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I시스템이 무심코 수행할수 있는 중요한 조작의 수를 늘려 '지적기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특히 범용 AI의 모든 구현물은 인류의 모든 지식과 기술, 다른 많은 것에 접근하게 될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이런 측면에서 AI는 미래의 어떤 혁신적인 기술이 아니라 이미 인류가 혁신적으로 이룬 기술개발을 더 효율적이고 더 큰 규모로 이용하는 능력에 토대를 두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상당히 뛰어난 지능을 지닌 기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인류가 우월성과 자율성을 유지할수 있을까. 흡사 '기계파'와 '반기계파' 사이의 내전같은 양상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기계지능이 불러올 두려움의 반영이다. 극단적으로 인간 수준의 AI시스템의 개발과 보급을 금지하는 경향으로 치달을수도 있다. 다만 AI의 경제적 가치는 수천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입어 AI개발과 연구가 중단될 가능성은 극히 적다. 그럼에도 AI가 불러올 위험은 상존한다. AI의 진화의 끝은 아마도 알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인류사회는 오랫동안 사람을 로봇처럼 부려왔다. 머지 않아 로봇이 이런 역할을 떠맡는다면 인류는 일자리가 아닌 생존 소득을 유지할수 없을 정도의 빈곤선으로 추락하는 절망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ktitk@fnnews.com 김태경 기자
2025-03-23 18:57:46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출신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이다. 한 도시에 갑자기 원인 모를 '백색 실명'이 전염병처럼 퍼진다. 정부가 감염자들을 격리한 정신병원에선 식량 부족과 폭력 등 비인간적 상황이 벌어진다. 격리소 밖 도시 역시 실명 전염병으로 아비규환으로 전락한다. 유일하게 시력을 가진 의사의 아내 등 소수의 생존자들이 악전고투하던 중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시력이 회복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사라마구는 실명 전염병이 종식된 4년 후를 다룬 '눈뜬 자들의 도시'라는 후속작을 냈다. 한 수도에서 선거가 치러지는데 투표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70% 이상의 유권자가 어느 후보도 선택하지 않는 백지투표를 했다.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한 정부가 재투표를 실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작은 인간의 탐욕과 연대의 중요성을, 후속작은 시민들의 깨어남과 사회적 변화를 담았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이 작품의 핵심 기제인 '실명'은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현대사회에서 '눈먼 자'라는 인간 군상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진실과 정보에서 배제된 자 혹은 가짜 뉴스에 현혹된 자가 쉽게 떠오른다. 어쩌면 눈이 멀지 않았는데도 눈먼 척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출간된 지 약 30년이 지난 지금, 비상계엄 사태로 대혼돈에 빠진 한국 사회가 아른거린다. 사실과 진실이 가짜와 거짓으로 둔갑하고, 서로가 눈먼 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암흑기. 그 뒤에 남는 건 말의 쓰레기 더미뿐이다. 후속작에서 눈뜬 자들이 내린 선택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투표용지에 적힌 선택지를 거부하고 압도적인 백지투표를 했다. 평론가들은 시민들이 4년 전 실명사건 당시 갖게 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일종의 기존 제도와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비상계엄 사태로 날개 없이 추락 중인 한국 사회는 반전을 고대한다. 현상유지나 이전 상태로의 복원은 아닐 것이다. 아픈 만큼 더 성숙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강도 높은 회복 탄력성이 요구된다.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 열의가 회복 탄력성의 핵심 요건이다. 대한민국 시민들의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열의는 세계가 알아줄 만큼 탄탄하니 걱정할 게 없다. 우려되는 건 미숙한 제도다.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백지투표가 쏟아진 이유도 낡은 제도에 대한 부정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낡은 제도라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꼽을 수 있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 이후 37년 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건만 제왕적 대통령제는 예전 그대로다. 10년 사이 대통령 탄핵 이슈가 두 번이나 터졌다는 건 기존 제도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다. 개헌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주요 개헌 논의가 불리한 정국 전환용 카드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정치적 상황논리가 개헌 논의를 쥐락펴락하는 형국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는 소모적 정쟁 해소와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한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탄핵이라는 중대 상황논리에 개헌은 뒤로 밀릴 운명이다. 대통령 임기 단축을 통한 4년 중임제 개헌안도 여야 간 셈법이 달라 합의까지 길이 멀다. 흔히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나누지만, 환경과 제도 영향도 크다. 제도 변화 없이 사람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낡은 체제가 낳은 '정치혐오'는 눈뜬 자도 눈먼 자로 만드는 전염병이다. 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소모적 저항 혹은 체념적 순응밖에 없다. 제3의 선택지가 남아 있긴 하다. 제도를 바꿔 눈뜬 자들의 도시를 개척하는 길이다. 개헌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이유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
2024-12-09 18:17:02[파이낸셜뉴스] "경제학과 인문학의 거대한 지적 간극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모슨과 샤피로는 이 두 학문 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로버트 쉴러·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슨과 샤피로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경제학자들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취급하는 반면, 소설가들은 인간의 구체적인 면을 파헤친다."(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대학입학, 육아, 장기매매, 경제발전 등의 주제를 경제학과 문학 양자의 관점으로 다룬 책 '감성×경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김형석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김형주 연세대 강사가 공동으로 한울아카데미(400쪽, 4만4000원)를 통해 한국에 선보였다. 저자 게리 솔 모슨, 모턴 샤피로는 지난 2017년 내놓은 '감성×경제'에서 경제학이 추상 개념에 빠져 인간 존재를 잊고 있다고 지적하고 경제학에서 개인의 결정을 이해하려면 개인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인문학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며, 국가나 대학에 수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다'는 것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라면 인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면, 인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인문학의 가치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경제학은 인문학으로부터 윤리적 문제의 복잡성, 이야기의 필요성, 공감의 중요성, 공식화할 수 없는 올바른 판단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 경제학은 자부심이 강한 학문이다. 미국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절반 미만만이 다른 분야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 교수 79%와 사회학자 73%는 학제 간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나, 경제학자 중 42%만 이러한 견해를 지지했다. 경제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를 진지하게 다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간 행동에 대한 대부분의 경제학 모형은 심리학을 무시하고, 빈곤의 순환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무시하며, 과거에 대한 분석은 역사가들을 우회한다. 마치 여타 다른 학문 분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훌륭하지만 모든 답은 엄밀한 경제학만이 가지고 있다는 듯 말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방법, 대학이 학생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익을 추구할 때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라든가, 건강관리나 결혼, 가족에 관한 매우 개인적인 문제까지 고려할 때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수학에 기반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문화 인자를 규명하는 것, 내러티브(서사적) 설명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 범주로 환원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 등이다. 저자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은 화성이 태양 궤도를 도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수나 뉴턴 역학과 달리 삶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야 하는 '내러티브성(서사성)'을 지니고 있다. 내러티브 자체의 가치 및 서로 다른 시대가 어떻게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최고의 이해는 위대한 사실주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 소설은 단순한 문학 형식이 아니라 사회 세계를 이해하는 명확한 방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학이 그토록 가치 있는 학문이라면 왜 문학, 더 넓게는 인문학은 쇠퇴일로에 처했을까? 라고 저자는 의문을 나타냈다. 실제 이 분야의 대학 등록률과 전공자 수는 계속해서 급감하고 있으며, 이 분야 교수들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이 "학생들의 관심사는 오직 돈뿐"이라며 "트위터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무뇌충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비난한다. 경제학자들은 당연히 시장의 쇠락을 소비자의 나쁜 취향으로 돌리는 설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경제학이 변화할까? 라고 묻는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종교 등과 함께 문학, 철학, 기타 인문학에서 배움으로써 경제학이 인간 행동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모형을 개발하고,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예측이 정확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더 효과적이고 공정한 정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저자 게리 솔 모슨(Gary Saul Morson)1948년 출생으로 예일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스웨스턴 대학교 슬라브 어문학과 교수이다. 모턴 샤피로(Morton Shapiro)는 1953년 출생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노스웨스턴 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윌리엄스 칼리지 총장을 지냈다. 미국 인문과학 학술원, 전미 교육원의 회원이다. 한국에 번역·소개한 김형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응용수학 석사 학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거시경제학·경기변동론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형주 강사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 동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19세기 러시아 소설로 박사 수료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여행기 사료 관점에서 본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2024-09-19 15:48:55[파이낸셜뉴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나가사와는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손도 대려고 하지 않는다. 고전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상실의 시대 中) 하지만 살아있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좋은 점도 있다. 바로 그 작가가 아직 죽지 않고 펜을 들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언젠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다 우연히 하루키의 장편 소설 신작이 이달 6일에 한국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6일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교보문고에 들렸다. 하지만 해당 점포에는 아직 하루키의 신간이 진열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하루키의 신간(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집어들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는 3분1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필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언제나 성큼성큼 걸어가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계단의 오른편에 얌전히 서서 하루키의 책 첫장을 넘겨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사는 동네에 도착해서 가까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동네 심곡점'으로 살이 너무 쪄서 손님이 만져도 귀찮아서 피하지 않는 고양이가 있는 멋진 곳이다. 책을 읽다 마음속에서 문득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는 수많은 기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리뷰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사람의 평론이나 리뷰를 만에 하나 먼저 보게될 경우 내 자신의 온전한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작가 후기가 있는 마지막 페이지는 '767p'였다. 밤을 새서 읽으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마추어인 나보다 평론을 전공하거나 훨씬 더 훌륭한 리뷰를 써줄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각을 잡고 본격 리뷰를 쓰기 보다는 개인적인 감상과 하루키와 연결된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기로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 7일 오후 10시 33분 현재 필자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767p 중 275p까지 읽기를 마쳤다. ■하루키와 04학번의 고양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경희대학교 영어학부에 신입생으로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같이 수강신청을 하고 어울려 다니던 무리 중에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최초로 읽은 하루키의 글은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였던 것 같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 중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은 '댄스 댄스 댄스'였다. 그때 당시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던 동기 중에 어떤 사연으로 나보다 2살인가 3살이 많았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 다른 동기 여자아이들과 달리 확실히 화장이 능숙하고 진했다. 또 묘한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어서 다른 여자 동기들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걸 그어 놓고 '용건이 없다면 굳이 말 걸지 말아 줄래. 그리고 용건이 있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접근은 삼가주라'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눈치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던 그 애와 조심성 없이 말을 섞게 됐고, 그 친구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으며, '댄스 댄스 댄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에게 그 책을 빌려서 읽어보게 됐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 아이의 인상은 당시 자우림이란 그룹의 보컬이었던 가수 김윤아씨와 비슷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댄스 댄스 댄스'를 읽은 후에 나는 도서관에 있는 하루키의 소설들을 하나씩 독파해 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상실의 시대'를 최고로 꼽고, 그 다음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확실한데 세 번째는 조금 애매하다. 3위 후보로는 '해변의 카프카', '양을 쫓는 모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등등이 있다. 대학 신입생 당시 필자는 영문학과, 통번역학과, 영어학과 3개 과가 합쳐진 영어학부의 학부지 편집 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학기마다 한 번씩 200~300여 명 정도되는 학부생을 위해 학부지를 펴냈다. 당시 동아리를 같이 했던 여자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어느날 내게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마광수 작가(교수)의 소설 몇 권인가를 선물로 줬었다. 마광수 작가는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음란물로 간주되며 구속이 돼 감옥살이를 한 비운의 천재 작가로 유명하다. 선배가 주신 책 중에 '즐거운 사라'도 있었다. 시대를 앞서 파격적인 성애 묘사를 과감히 시도한 마광수 작가의 천재성은 느낄 수 있었지만 당시엔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체를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성애 묘사를 하더라도 보여주기와 숨기기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고, 훔쳐보기와 상상하기의 줄타기 속에서 윤리적 죄의식과 거리낌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마광수 작가의 그것은 너무나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지나서 김기덕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보면서도 마광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거부감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더 강하게 느꼈다. 인간 심연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날 것'을 퍼다 독자의 눈 앞에 들이미는 것은 그 자체로 파괴적 예술 행위이긴 하나, 그만큼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날 것'을 '레어'가 아닌 '웰던'으로 푹 익혀서 낼 경우 예술적 충격이 줄어들게 되므로 별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역시나 예술은 어렵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마광수의 책을 내게 선물해준 선배는 학교 교지에 실을 원고를 청탁 받았는데 그것을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제안해 왔다. 별도의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형식과 내용은 제한이 없었고 나는 짧은 단편 소설을 하나 쓰기로 했다. 대학 1년 내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왔으므로 알게 모르게 하루키의 문체를 흉내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당시 200매 원고지 한 장당 7000원 인가를 받았던 것 같다. 글을 써서 상금이 아닌 원고료를 받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썼던 단편 소설의 제목은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부제는 '학교 가는 지하철의 두 고양이 소녀에 대해'였다. 소설의 첫 문단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째서 하필 고양이인가? 하지만 그건 내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양이라는 말은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과 함께, 고양이적 신비스러운 힘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햇빛을 반사해 솜털이 반짝거리는 소녀의 하얀 목선이나, 부드럽고 적당하게 솟은 봉긋한 가슴, 아킬레스건이 드러나는 투명 에나멜 샌들을 신은 소녀의 발-과 같은 말처럼 고양이란 말은 나를 묘한 기분이 되게 만든다. 그렇다고 고양이란 말에 발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 cat이나 ねこ라는 말도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페니스와 그것의 우리말 번역이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리고 지금 나는 두 명의 고양이 소녀적 옆모습을 가지고 있는 소녀들의 사이에 있다. (계속)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3-09-07 23:13:45인구 350명(지난해 기준)이 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당시 지명 다부동). 이런 작은 동네를 두고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로 불린다. 베르됭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이다. 다부동에서도 베르됭 전투에 버금갈 정도의 참혹한 전투가 있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불법 남침으로 시작됐다. 초기 국군은 힘을 쓰지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더 밀리면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과 경북 동북부 산악지대를 천연장애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를 '낙동강방어선'이라고 한다.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한국군과 북한군 간 뺏고 뺏기는 점령전이 수차례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대구 다부동 전투가 꼽힌다.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만1500명의 병력과 전차 약 20대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명을 포함, 7600여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이 전부로 열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드러난 전력과 다르게 나왔다. 다부동 전투 승전의 주인공은 '국군'이었다. 북한군은 25일간 거의 밤낮없이 총공세를 펼쳤지만 다부동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국군을 이끌고 승리를 만들어 낸 인물은 백선엽 장군(당시 준장)이었다. ■"다부동 전투 승리, 구국의 영웅"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한규성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 "마지막 보루였다. 거기서 후퇴했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종군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공포에 질려있던 병사들을 독려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가장 앞서 (북한군을 향해) 돌격했던 분이 고 백선엽 장군이다. 자신이 후퇴하게 되면 자신을 쏘라고 하니 병사들도 감동해 도망가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다부동 전투 승리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더라면 낙동강방어선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몸을 사리지 않은 백선엽 장군 덕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극복했고 지금과 같은 세계 10위권 강국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다부동 전투 등 당시 북한군의 공세를 국군과 미군의 연합 작전으로 막아낸 점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연구가 있다. 나아가 한미 간 상호 신뢰도 형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는 다부동 전투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부동 전투 승전을 비롯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학생군사교육단(ROTC) 제도 도입에 역할을 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특히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5월 합동참모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의했고 그것이 한미동맹의 기초가 됐다"며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든든한 안보가 마련됐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선엽 장군 생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사례가 있다"며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도 백선엽 장군에 대해 세계적인 영웅이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고 언급했다. ■"5성 장군으로 추대할 것"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 2020년 7월 10일 치러진 백선엽 장군 장례예배를 기점으로 출범하게 됐다. 한 대표는 "(저는) 당시 ROTC 기독장교연합회 회장이었는데 백선엽 장군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유가족 대표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로부터 받아 장례예배를 드린 것을 인연으로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장례예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전기소설 '하늘의 별이 되어' 출간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 추모예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가장 의미가 깊었던 활동에 대해 한 대표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라며 "5개 주제로 영상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무대였다. 백선엽 장군의 세계적인 영웅성을 널리 알리는 음악회였다. 전국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원수(5성 장군) 추대와 함께 이른바 '백선엽 어워드'를 만드는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와 관련 한 대표는 "기념사업회 차원에서는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을 열었지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지 정부가 공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백선엽 장군을 원수로 추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백선엽 장군은) 5성 장군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백선엽 어워드'와 관련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백선엽 장군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첫번째 시상식을 열 계획"이라며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 사랑'의 정신이 바로 백선엽 정신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사람을 찾아 상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서거 3주기 추모행사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군에서 백선엽 장군 추모 행사를 주관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군에서 주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념사업회가 장례예배부터 맡아왔던 일인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 추모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맞다"며 "민간인 기념사업회가 주도하고 군이 돕는 방식으로 함께 행사를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SNS를 보면 백선엽 장군을 폄훼하는 글이 있다. 하지만 과가 30%고 공이 70%라면 나라를 위해 과를 잠재우고 공을 앞세워야 한다"며 "더구나 백선엽 장군 관련 과로 간주하는 내용은 모두 의도적이다.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모셨으면 한다"고 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2023-06-20 18:35:36[파이낸셜뉴스] 인구 350명(지난해 기준)이 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당시 지명 다부동). 이런 작은 동네를 두고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로 불린다. 베르됭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이다. 다부동에서도 베르됭 전부에 버금갈 정도의 참혹한 전투가 있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불법 남침으로 시작됐다. 초기 국군은 힘을 쓰지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더 밀리면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과 경북 동북부 산악지대를 천연장애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를 '낙동강방어선'이라고 한다.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한국군과 북한군간 뺏고 뺐기는 점령전이 수차례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대구 다부동 전투가 꼽힌다.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만1500명의 병력과 전차 약 20대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명을 포함, 7600여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이 전부로 열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드러난 전력과 다르게 나왔다. 다부동 전투 승전의 주인공은 '국군'이었다. 북한군은 25일간 거의 밤낮없이 총공세를 펼쳤지만 다부동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국군을 이끌고 승리를 만들어 낸 인물은 백선엽 장군(당시 준장)이었다. "다부동 전투 승리, 구국의 영웅"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한규성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 "마지막 보루였다. 거기서 후퇴했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종군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공포에 질려있던 병사들을 독려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가장 앞서 (북한군을 향해) 돌격했던 분이 고(故) 백선엽 장군이다. 자신이 후퇴하게 되면 자신을 쏘라고 하니 병사들도 감동해 도망가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다부동 전투 승리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더라면 낙동강방어선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몸을 사리지 않는 백선엽 장군 덕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극복했고 지금과 같은 세계 10위권 강국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다부동 전투 등 당시 북한군의 공세를 국군과 미군의 연합 작전으로 막아낸 점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연구가 있다. 나아가 한미간 상호 신뢰도 형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는 다부동 전투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부동 전투 승전을 비롯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학생군사교육단(ROTC) 제도 도입에 역할을 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특히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5월 합동참모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의했고 그것이 한미동맹의 기초가 됐다"며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든든한 안보가 마련됐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선엽 장군 생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사례가 있다"며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도 백선엽 장군에 대해 세계적인 영웅이라고 이야기 한 바가 있다"고 언급했다. "5성 장군으로 추대할 것"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 2020년 7월 10일 치러진 백선엽 장군 장례예배를 기점으로 출범하게 됐다. 한 대표는 "(저는) 당시 ROTC 기독장교연합회 회장이었는데 백선엽 장군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유가족 대표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로부터 받아 장례예배를 드린 것을 인연으로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장례예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전기소설 '하늘의 별이 되어' 출간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 △백선염 장군 서기 2주기 추모예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가장 의미가 깊었던 활동에 대해 한 대표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라며 "5개 주제로 영상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무대였다. 백선엽 장군의 세계적인 영웅성을 널리 알리는 음악회였다. 전국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원수(5성 장군) 추대와 함께 이른바 '백선엽 어워드'를 만드는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와 관련 한 대표는 "기념사업회 차원에서는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을 열었지만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지 정부가 공인한 것은 아니다"며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백선엽 장군을 원수로 추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백선엽 장군은) 5성 장군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백선엽 어워드'와 관련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의 업적 기리고 백선엽 장군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첫번째 시상식을 열 계획"이라며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 사랑'의 정신이 바로 백선엽 정신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사람을 찾아 상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서거 3주기 추모행사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군에서 백선엽 장군 추모 행사를 주관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군에서 주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념사업회가 장례예배부터 맡아왔던 일인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 추모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맞다"며 "민간인 기념사업회가 주도하고 군이 돕는 방식으로 함께 행사를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백선엽 장군을 폄훼하는 글이 있다. 하지만 화가 30%고 공이 70%라면 나라를 위해 화를 잠재우고 공을 앞세워야 한다"며 "더구나 백선엽 장군 관련 화로 간주하는 내용은 모두 의도적이다.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모셨으면 한다"고 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2023-06-01 10:12:35오늘날 인류는 미래의 삶이 정녕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할지도 모를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기후위기재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1인당 탄소 배출 규모를 말하는 탄소발자국은 점좀 거세지고 거침이 없다. 경제성장이라는 인간의 뇌를 마비시킨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기후위기에도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신기술로 기후위기를 축소하거나 해결할수 있다고 믿는 신념도 강고하다. 그러나 지금껏 인류를 지탱해온 현재의 운용체제는 그 한계가 노출되며 종말을 향해 돌진 중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성장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한 기후위기는 일시적이거니 자연적으로 회복될수 있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상상을 초월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국의 삶과 그렇지 못한 빈국이 동일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보편적 기후위기론은 진실을 감추고 기후를 추상화해 자칫 위기의 실체를 가려버리는 효과를 가져온다.기후위기는 단지 탄소배출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아니다. 지구라는 삶의 무대가 이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비극과 공포의 문제다. ■미개척지, 그 무한한 욕망을 향해 인류 역사는 미개척지를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풍요로운 땅과 숲을 갈아엎고 개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남미 대륙은 물론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풍요로운 대지는 이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뭉개졌다. 인디언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이들의 절멸 정책에 의해 대부분 멸종하거나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데 그쳤다. 원주민뿐만이 아니다. 대지에서 살아가던 온갖 종류의 동식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유럽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흑역사다. 흑역사는 '테라포밍'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되고 확산됐다. 테라포밍은 현재의 지구를 만든 정치학이자 인류학이다. 땅을 만든다는 의미의 테라포밍은 유럽인들의 정복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제노사이드를 부추겼다. 평화롭게 공존하던 대지와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이들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테라포밍은 미개척지를 개간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에 맞게 대지를 배치하고 구획지으면서 지구를 항폐화시켰다. 여기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대응은 살육과 처벌, 추방으로 이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직접적인 절멸 정책보다는 이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하도록 주변 대지를 황폐화시키고 공존하던 동물도 절멸시키는 간접적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원주민들이 생존할 수 없도록 주변 환경을 말살하는 총체적 폭력 행위다. 이 같은 직간접적 폭력과 수탈을 통해 정복지의 깃발을 꽂은 유럽인들의 행위는 오늘날 거대한 기후위기와 재난, 바이러스 창궐 등을 유도했다. 기후위기는 미개척지를 자신의 욕망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에서 연유한다. 자연 생태계 속에 질서잡힌 채 잘 기생하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이들이 인간세계로 침투함으로써 이른바 인간과 바이러스 간 전쟁이 공식화됐다. 인도 소설가 아미브 고시가 쓴 '육두구'에서는 테라포밍 네러티브는 제국적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이 개념이 후에 '정착형 식민주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려 유럽 사회에 매력적이고 호소력을 지닌 수사로 광범위하게 자리잡게 된다. 식민화와 정착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것이다. 다른 제국과 달리 유럽에 의한 식민화는 전 지구 표면의 25% 이상을 급격하게 바꿔놓은 그에 수반된 환경변화의 규모와 속도였다. 고시에 따르면 유럽인이 유럽식 생활방식에 맞게 방대한 면적의 토지를 유럽 모델과 흡사하게 재설계한 곳은 북미 대륙이다. 수천년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생활방식을 훼손하고 말살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이런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갈등을 유발하고 그 자체로 독특한 유형의 전쟁을 일으켰다.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닌 환경적 개입과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이한 전쟁이다. 테라포밍 전쟁은 말 그대로 인구 전체가 대규모 생물학적 생태파괴를 포함한 폭력형태에 시달리는 생물정치적 전쟁이었다. 이처럼 말살전쟁을 동반한 환경의 무기화가 생물정치적 전쟁의 주요소로 작용했다. 정착형 식민주의적 분쟁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이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다.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비인간존재로 분류되는 토착민과 온갖 환경 요소들은 역사나 정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무대를 빼앗겼다. 기껏해야 특정한 생태환경 속에 놓인 비활성 요소로 취급될 따름이다. ■우주개척 또 다른 '네오유럽' 북남미에서 유럽인의 정착은 황무지로 인식되던 영토를 유럽인의 생산적 토지 개념에 맞는 영토로 탈바꿈하는 것이 핵심 기제다. 이런 개념은 유럽인의 정복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틀짓기로 이 속에서 풍경은 공장으로,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같은 자원으로서의 세계라는 시각 중심부에는 억제할수 없는 과욕이 싹트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옴니사이드(생물의 절멸)라는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특정 자원의 희소성을 높이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그 나머지 자원은 절멸해야 하는 옴니사이드는 진화론을 통해 더욱 번성한다. 진화는 인간과 동식물의 동류관계를 공고히 해준 것이 아니라 단 한 종류의 인간 즉 백인우월주의와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인간 및 비인간존재 위로 이 최고종족을 끌어올리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인간의 이런 무모한 시도는 기후변화와 위기의 시대를 맞아 유탄을 맞고 있다. 지구의 보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연재해의 강력한 보복 속에서도 자원을 매개로 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석탄과 석유에 대한 갈망은 따지고보면 권력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끊임없는 추구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유지시켜주고 강화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에 대한 통제권이 곧 세계의 통제라는 법칙 앞에서 모든 기후위기의 경고는 무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수 있는데도 이를 기술적 한계로 치부하며 미루는 것은 석유를 고리로 한 지정학적 권력구조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즉 화석연료는 지금의 세계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접착제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하면 세계 체제의 패러다임은 순식간에 바뀐다. 재생에너지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채굴하고 수송하고 저장하는 일련의 값비싼 비용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사용할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원 탐욕이 열어젖힌 존재의 침묵 미국과 유럽이 식민지를 수탈하는 과정은 끝난 게 아니고 내용과 형태만 바뀌었지 현재진행형이다. 공통적인 것은 특정 자원을 상품화하면서 그 이익을 독점화할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영속화시키는 행위다. 그 밖의 자원은 절멸시켜 다른 대안의 싹을 잘라내는 폭력적 세계관이 판을 치는 것도 그래서다. 식민지화는 그저 인간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위주체성, 의사소통능력, 의미를 추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온갖 존재, 즉 동물·나무·화산을 정복하고 그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침묵의 강제 과정은 경제 추출 과정에 더없이 중요했다. 뭔가를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면 그것을 야수의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노예 하인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그들을 자원에 불과한 존재로 바꿔놓고 인간 및 비인간 존재의 연속체를 야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연속체 전체는 특정 종을 멸종이나 말살로 내모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제시됐다. 기후위기는 지나간 과거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과거에 대한 고찰 없이는 지구위기를 이해할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그저 한때 지나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낙관적 시각이 비극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이처럼 추락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전 세계가 식민지적 추출과 소비방식을 채택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엄청난 재앙의 가속화를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 에디터
2023-02-19 18:29:45[파이낸셜뉴스] 소설 '저주토끼'로 올해 멘부커상 후보까지 오른 정보라 작가가 11년 동안 근무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시간강사의 역할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31일 서울서부지법 민사3단독(박용근 판사)는 정 작가가 연세대를 상대로 낸 퇴직금과 수당 청구 소송의 첫 공판을 열었다. 공판에 앞서 정 작가는 이날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연세대로부터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시간강사, 비정규직의 현실"이라며 "평등한 대학사회 건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간강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이지만, 대학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이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니까 차별하겠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정 작가는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연세대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 러시아문화 등을 가르쳤지만 퇴직 후 학교 측으로부터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올해 4월 연세대를 상대로 5000만원의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해 달라며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정 작가가 이번 소송을 통해 연세대에 청구한 퇴직금은 총 5000만원이다. 관련해 정 작가는 이날 공판 이후 기자들을 만나 "10년 이상 연세대에서 근무했고, 6년에 걸쳐 우수 강사로 선정 되는 등 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며 "퇴직금 5000만원도 약소한 금액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반면 학교 측은 시간강사 퇴직금 지급 규정이 담긴 강사법 시행 이후(2019년 2학기)부터 근로시간을 계산해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작가가 1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한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에 강사법 시행 이전에 근무한 기간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 후 열린 첫 변론기일 재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원활한 강의 진행을 위해 전후로 쉴 틈 없이 일을 했다"며 "정당한 보상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판에 앞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도 이날 서울서부지법에서 정 작가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중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정 작가처럼 강의노동을 수행하는 대학강사들을 주 15시간 미만 노동하는 초단시간근로자로 간주해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대학의 시도 자체가 반노동적이고 차별적이다"라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2022-08-31 12:03:55현재 한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져 인구절벽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결책으로 젊고 유능한 해외 전문인력들에 문을 여는 것을 현실적 선택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42년의 한국 생활 중 앞선 30년은 외국인으로, 또 나머지 12년은 귀화한 한국 시민으로 산 사람으로서 이러한 변화는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불필요한 지연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 걱정스럽다. 외국인의 수용은 그 나라의 선진화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되었고,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러한 부분에서 선진화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개방적인 한국은 세계 시장과의 연결 속에서 발전의 욕구를 최대한 활용하며 대내외적 변화를 빠르게 수용했고, 대외 지향적인 경제정책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꼬리표를 떼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도 외국 문화와 상품 및 서비스에 빠르게 적응하며, 외국 제품을 쓰는 것을 덜 애국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보다 외국 제품 사용이 역으로 한국 제품을 해외에 더 잘 마케팅할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은 현대 문화 마케팅 능력에서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가는 코리안 웨이브는 다원주의 결과이며, 국가 인지도의 성공 사례이다. 한편 약 700만명의 한국인도 세계 곳곳으로 이민을 통해 뻗어 나갔고, 이제는 해외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주변의 많은 한국인도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민하지 않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돌아본다. 이렇듯 한국인에게 있어 외국 문화의 인지도는 높아졌고, 해외가 마냥 이질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외국인을 한국 사회에 참여시키는 데는 상당히 보수적인 측면이 보인다. 외국 인력, 혹은 이민자에게 있어 낯선 땅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을 초래하기 쉽다. 설령 가혹한 상황을 각오하고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험난한 항해를 시작하더라도 법이 정하는 행정적 불확실성은 해마다 반복되고, 사회에 동화되고 싶은 욕구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해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또 분열된 정체성을 반영하는 외부적 요소들은 그들을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몰며 삶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이든 처음 들어오는 외국인은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받고 들어온 손님이 대부분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은 소설 '파칭코'에서 이민자의 삶은 작고 보이지 않는 삶이라 했다. 그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민자 문학들의 공통적인 테마 중 하나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역사가 기록하지 않아 그들의 희생은 스토리텔링뿐이다. 이런 희생은 그들의 일방적 선택만이 아니라, 이주국가의 필요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이바지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인구이동이 활발한 국제화 시대에서 이주민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너와 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2022-01-27 17:40:49[파이낸셜뉴스] 우울증에 걸린 쥐가 일주일간 침치료를 받아 행동반응이 개선됐다. 이와 동시에 간 수치까지 좋아졌다. 이는 한의학에서 간과 감정활동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간주소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임상의학부 정지연 박사팀이 동물실험을 통해 침 치료가 우울증과 간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고 12일 밝혔다. 정지연 박사는 "한의학 대표 치료법인 침 치료가 우울증 개선에 효능이 있으며, 이를 통해 '간주소설' 이론의 과학적 근거까지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각종 영양소의 대사 및 저장 역할을 하는 간을 한의학에선 간주소설(肝主疏泄)이라 하여 정서(감정)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며 정신질환 치료에 간과 연계된 치료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간의 소설 작용에 따라 사람의 정서활동, 소화활동, 질환 유발, 월경 불순 등이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은 우울증이 있는 실험쥐를 이용해 7일간 침치료를 진행하면서 관찰했다. 우선 우울증 실험쥐를 무처치, 진짜 침 치료, 가짜 혈자리에 침 자극을 준 가짜 침 치료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행동을 관찰했다. 우울증이 있는 쥐는 움직임이 줄어드는 대표적인 행동증상이 나타난다. 그결과, 진짜 침으로 치료한 실험쥐들은 움직임을 확인하는 개방장 실험에서 이동거리가 약 36% 증가했다. 또한 구슬 파묻기 실험에서의 행동반응도 약 76% 증가했다. 구슬 파묻기 실험은 낯선 물체에 관심을 보이고 땅에 파묻는 쥐의 습성을 활용한 행동실험으로, 우울증 유발 시 관심 및 파묻는 행동이 감소한다. 연구진은 간의 기를 보호하거나 균형을 잡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하기 위해 음곡(陰谷), 곡천(曲泉) 등 경혈에 침을 놓는 간정격(肝正格) 치료법 활용해 7일간 치료를 진행했다. 나아가 연구진은 침 치료의 우울증 개선 효과가 실제 간과 관련 있는지 실험쥐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침 치료군에서만 특이한 간 지질체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우울증으로 줄어든 '불포화도가 높은 지질들'이 증가했으며 이를 통해 간수치도 약 32% 개선됐다. 이외에도, 간 지질대사 문제로 인해 유발되는 우울증 관련 염증인자 발생량이 낮아졌으며, 그중에서도 전신 면역을 담당하는 비장에서 40%이상 감소했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침 치료가 어떤 현상을 통해 우울증과 간 지질대사를 동시에 개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쥐의 뇌 및 체내에서 발생하는 물질 변화도 살펴봤다. 관찰 결과, 우울증 유발과 간지질 대사에 모두 영향을 미치며 연관 매개로 알려진 렙틴 수용체 활성이 대조군에 비해 1.7배 증가했다. 이를 통해 렙틴 저항성도 대조군에 비해 감소하며 우울증과 간 기능이 동시에 개선됐다. 정지연 박사는 "침을 활용한 우울증 치료가 한방 병·의원 등 임상현장에서 확산 될 수 있도록 임상시험에 적용하는 후속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박지연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국제학술지 '뇌, 행동, 염증 학회지(Brain, Behavior and Immunity)'에 게재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1-06-11 22:4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