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경제학과 인문학의 거대한 지적 간극은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모슨과 샤피로는 이 두 학문 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로버트 쉴러·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슨과 샤피로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소설가들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경제학자들이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추상적으로 취급하는 반면, 소설가들은 인간의 구체적인 면을 파헤친다."(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대학입학, 육아, 장기매매, 경제발전 등의 주제를 경제학과 문학 양자의 관점으로 다룬 책 '감성×경제'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판됐다. 김형석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김형주 연세대 강사가 공동으로 한울아카데미(400쪽, 4만4000원)를 통해 한국에 선보였다. 저자 게리 솔 모슨, 모턴 샤피로는 지난 2017년 내놓은 '감성×경제'에서 경제학이 추상 개념에 빠져 인간 존재를 잊고 있다고 지적하고 경제학에서 개인의 결정을 이해하려면 개인이 어떤 존재인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인문학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며, 국가나 대학에 수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다'는 것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라면 인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세상에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면, 인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인문학의 가치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경제학은 인문학으로부터 윤리적 문제의 복잡성, 이야기의 필요성, 공감의 중요성, 공식화할 수 없는 올바른 판단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 경제학은 자부심이 강한 학문이다. 미국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의 절반 미만만이 다른 분야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 교수 79%와 사회학자 73%는 학제 간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나, 경제학자 중 42%만 이러한 견해를 지지했다. 경제학자들이 다른 학문 분야를 진지하게 다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인간 행동에 대한 대부분의 경제학 모형은 심리학을 무시하고, 빈곤의 순환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과 인류학을 무시하며, 과거에 대한 분석은 역사가들을 우회한다. 마치 여타 다른 학문 분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훌륭하지만 모든 답은 엄밀한 경제학만이 가지고 있다는 듯 말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방법, 대학이 학생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사익을 추구할 때 제기되는 도덕적 문제라든가, 건강관리나 결혼, 가족에 관한 매우 개인적인 문제까지 고려할 때는 경제적 통찰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수학에 기반한 설명을 열정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경제학자들은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문화 인자를 규명하는 것, 내러티브(서사적) 설명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 범주로 환원할 수 없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것 등이다. 저자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은 화성이 태양 궤도를 도는 것처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수나 뉴턴 역학과 달리 삶은 이야기로 설명되어야 하는 '내러티브성(서사성)'을 지니고 있다. 내러티브 자체의 가치 및 서로 다른 시대가 어떻게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형성하는지에 관한 최고의 이해는 위대한 사실주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주의 소설은 단순한 문학 형식이 아니라 사회 세계를 이해하는 명확한 방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학이 그토록 가치 있는 학문이라면 왜 문학, 더 넓게는 인문학은 쇠퇴일로에 처했을까? 라고 저자는 의문을 나타냈다. 실제 이 분야의 대학 등록률과 전공자 수는 계속해서 급감하고 있으며, 이 분야 교수들은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다. 많은 이들이 "학생들의 관심사는 오직 돈뿐"이라며 "트위터가 학생들의 집중력을 무뇌충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비난한다. 경제학자들은 당연히 시장의 쇠락을 소비자의 나쁜 취향으로 돌리는 설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저자는 문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경제학이 변화할까? 라고 묻는다. 물론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정치학, 종교 등과 함께 문학, 철학, 기타 인문학에서 배움으로써 경제학이 인간 행동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모형을 개발하고,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예측이 정확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더 효과적이고 공정한 정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저자 게리 솔 모슨(Gary Saul Morson)1948년 출생으로 예일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스웨스턴 대학교 슬라브 어문학과 교수이다. 모턴 샤피로(Morton Shapiro)는 1953년 출생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2022년까지 노스웨스턴 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윌리엄스 칼리지 총장을 지냈다. 미국 인문과학 학술원, 전미 교육원의 회원이다. 한국에 번역·소개한 김형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응용수학 석사 학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거시경제학·경기변동론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KAIST(한국과학기술원) 경영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형주 강사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 석사, 동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19세기 러시아 소설로 박사 수료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여행기 사료 관점에서 본 러시아와 유럽의 관계'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2024-09-19 15:48:55[파이낸셜뉴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나가사와는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손도 대려고 하지 않는다. 고전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상실의 시대 中) 하지만 살아있는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좋은 점도 있다. 바로 그 작가가 아직 죽지 않고 펜을 들 힘이 남아 있다면 그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언젠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다 우연히 하루키의 장편 소설 신작이 이달 6일에 한국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6일 공식적인 업무 시간이 끝나자마자 가까운 교보문고에 들렸다. 하지만 해당 점포에는 아직 하루키의 신간이 진열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광화문 교보문고로 가서, 하루키의 신간(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집어들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는 3분1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필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언제나 성큼성큼 걸어가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계단의 오른편에 얌전히 서서 하루키의 책 첫장을 넘겨나갔다. 지하철을 타고 사는 동네에 도착해서 가까운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카페의 이름은 '카페동네 심곡점'으로 살이 너무 쪄서 손님이 만져도 귀찮아서 피하지 않는 고양이가 있는 멋진 곳이다. 책을 읽다 마음속에서 문득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는 수많은 기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리뷰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사람의 평론이나 리뷰를 만에 하나 먼저 보게될 경우 내 자신의 온전한 감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작가 후기가 있는 마지막 페이지는 '767p'였다. 밤을 새서 읽으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마추어인 나보다 평론을 전공하거나 훨씬 더 훌륭한 리뷰를 써줄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각을 잡고 본격 리뷰를 쓰기 보다는 개인적인 감상과 하루키와 연결된 나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보기로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 7일 오후 10시 33분 현재 필자는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767p 중 275p까지 읽기를 마쳤다. ■하루키와 04학번의 고양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4년 경희대학교 영어학부에 신입생으로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같이 수강신청을 하고 어울려 다니던 무리 중에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최초로 읽은 하루키의 글은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였던 것 같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 중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은 '댄스 댄스 댄스'였다. 그때 당시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던 동기 중에 어떤 사연으로 나보다 2살인가 3살이 많았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 다른 동기 여자아이들과 달리 확실히 화장이 능숙하고 진했다. 또 묘한 카리스마 같은 것이 있어서 다른 여자 동기들이 다가가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걸 그어 놓고 '용건이 없다면 굳이 말 걸지 말아 줄래. 그리고 용건이 있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접근은 삼가주라'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런 눈치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영문학 수업을 같이 듣던 그 애와 조심성 없이 말을 섞게 됐고, 그 친구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있으며, '댄스 댄스 댄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에게 그 책을 빌려서 읽어보게 됐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그 아이의 인상은 당시 자우림이란 그룹의 보컬이었던 가수 김윤아씨와 비슷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댄스 댄스 댄스'를 읽은 후에 나는 도서관에 있는 하루키의 소설들을 하나씩 독파해 나갔다. 개인적으로는 '상실의 시대'를 최고로 꼽고, 그 다음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확실한데 세 번째는 조금 애매하다. 3위 후보로는 '해변의 카프카', '양을 쫓는 모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등등이 있다. 대학 신입생 당시 필자는 영문학과, 통번역학과, 영어학과 3개 과가 합쳐진 영어학부의 학부지 편집 동아리에 속해 있었다. 학기마다 한 번씩 200~300여 명 정도되는 학부생을 위해 학부지를 펴냈다. 당시 동아리를 같이 했던 여자 선배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어느날 내게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마광수 작가(교수)의 소설 몇 권인가를 선물로 줬었다. 마광수 작가는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음란물로 간주되며 구속이 돼 감옥살이를 한 비운의 천재 작가로 유명하다. 선배가 주신 책 중에 '즐거운 사라'도 있었다. 시대를 앞서 파격적인 성애 묘사를 과감히 시도한 마광수 작가의 천재성은 느낄 수 있었지만 당시엔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문체를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성애 묘사를 하더라도 보여주기와 숨기기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고, 훔쳐보기와 상상하기의 줄타기 속에서 윤리적 죄의식과 거리낌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마광수 작가의 그것은 너무나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지나서 김기덕 감독의 여러 영화들을 보면서도 마광수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거부감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을 더 강하게 느꼈다. 인간 심연의 깊은 곳에 잠겨 있는 '날 것'을 퍼다 독자의 눈 앞에 들이미는 것은 그 자체로 파괴적 예술 행위이긴 하나, 그만큼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날 것'을 '레어'가 아닌 '웰던'으로 푹 익혀서 낼 경우 예술적 충격이 줄어들게 되므로 별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역시나 예술은 어렵다.) 1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마광수의 책을 내게 선물해준 선배는 학교 교지에 실을 원고를 청탁 받았는데 그것을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제안해 왔다. 별도의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형식과 내용은 제한이 없었고 나는 짧은 단편 소설을 하나 쓰기로 했다. 대학 1년 내내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왔으므로 알게 모르게 하루키의 문체를 흉내내서 글을 썼던 것 같다. 당시 200매 원고지 한 장당 7000원 인가를 받았던 것 같다. 글을 써서 상금이 아닌 원고료를 받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썼던 단편 소설의 제목은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부제는 '학교 가는 지하철의 두 고양이 소녀에 대해'였다. 소설의 첫 문단은 아래와 같이 시작한다.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바보 같은 질문이다. 어째서 하필 고양이인가? 하지만 그건 내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양이라는 말은 성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말과 함께, 고양이적 신비스러운 힘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햇빛을 반사해 솜털이 반짝거리는 소녀의 하얀 목선이나, 부드럽고 적당하게 솟은 봉긋한 가슴, 아킬레스건이 드러나는 투명 에나멜 샌들을 신은 소녀의 발-과 같은 말처럼 고양이란 말은 나를 묘한 기분이 되게 만든다. 그렇다고 고양이란 말에 발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 cat이나 ねこ라는 말도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페니스와 그것의 우리말 번역이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지듯이. 그리고 지금 나는 두 명의 고양이 소녀적 옆모습을 가지고 있는 소녀들의 사이에 있다. (계속)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3-09-07 23:13:45인구 350명(지난해 기준)이 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당시 지명 다부동). 이런 작은 동네를 두고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로 불린다. 베르됭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이다. 다부동에서도 베르됭 전투에 버금갈 정도의 참혹한 전투가 있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불법 남침으로 시작됐다. 초기 국군은 힘을 쓰지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더 밀리면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과 경북 동북부 산악지대를 천연장애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를 '낙동강방어선'이라고 한다.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한국군과 북한군 간 뺏고 뺏기는 점령전이 수차례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대구 다부동 전투가 꼽힌다.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만1500명의 병력과 전차 약 20대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명을 포함, 7600여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이 전부로 열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드러난 전력과 다르게 나왔다. 다부동 전투 승전의 주인공은 '국군'이었다. 북한군은 25일간 거의 밤낮없이 총공세를 펼쳤지만 다부동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국군을 이끌고 승리를 만들어 낸 인물은 백선엽 장군(당시 준장)이었다. ■"다부동 전투 승리, 구국의 영웅"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한규성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 "마지막 보루였다. 거기서 후퇴했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종군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공포에 질려있던 병사들을 독려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가장 앞서 (북한군을 향해) 돌격했던 분이 고 백선엽 장군이다. 자신이 후퇴하게 되면 자신을 쏘라고 하니 병사들도 감동해 도망가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다부동 전투 승리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더라면 낙동강방어선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몸을 사리지 않은 백선엽 장군 덕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극복했고 지금과 같은 세계 10위권 강국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다부동 전투 등 당시 북한군의 공세를 국군과 미군의 연합 작전으로 막아낸 점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연구가 있다. 나아가 한미 간 상호 신뢰도 형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는 다부동 전투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부동 전투 승전을 비롯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학생군사교육단(ROTC) 제도 도입에 역할을 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특히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5월 합동참모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의했고 그것이 한미동맹의 기초가 됐다"며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든든한 안보가 마련됐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선엽 장군 생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사례가 있다"며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도 백선엽 장군에 대해 세계적인 영웅이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고 언급했다. ■"5성 장군으로 추대할 것"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 2020년 7월 10일 치러진 백선엽 장군 장례예배를 기점으로 출범하게 됐다. 한 대표는 "(저는) 당시 ROTC 기독장교연합회 회장이었는데 백선엽 장군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유가족 대표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로부터 받아 장례예배를 드린 것을 인연으로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장례예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전기소설 '하늘의 별이 되어' 출간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 △백선엽 장군 서거 2주기 추모예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가장 의미가 깊었던 활동에 대해 한 대표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라며 "5개 주제로 영상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무대였다. 백선엽 장군의 세계적인 영웅성을 널리 알리는 음악회였다. 전국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원수(5성 장군) 추대와 함께 이른바 '백선엽 어워드'를 만드는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와 관련 한 대표는 "기념사업회 차원에서는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을 열었지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지 정부가 공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백선엽 장군을 원수로 추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백선엽 장군은) 5성 장군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백선엽 어워드'와 관련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백선엽 장군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첫번째 시상식을 열 계획"이라며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 사랑'의 정신이 바로 백선엽 정신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사람을 찾아 상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서거 3주기 추모행사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군에서 백선엽 장군 추모 행사를 주관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군에서 주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념사업회가 장례예배부터 맡아왔던 일인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 추모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맞다"며 "민간인 기념사업회가 주도하고 군이 돕는 방식으로 함께 행사를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SNS를 보면 백선엽 장군을 폄훼하는 글이 있다. 하지만 과가 30%고 공이 70%라면 나라를 위해 과를 잠재우고 공을 앞세워야 한다"며 "더구나 백선엽 장군 관련 과로 간주하는 내용은 모두 의도적이다.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모셨으면 한다"고 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2023-06-20 18:35:36[파이낸셜뉴스] 인구 350명(지난해 기준)이 사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당시 지명 다부동). 이런 작은 동네를 두고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다부동 전투'가 벌어졌다. '동양의 베르됭 전투'로 불린다. 베르됭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프랑스와 독일 간에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소모전이다. 다부동에서도 베르됭 전부에 버금갈 정도의 참혹한 전투가 있었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불법 남침으로 시작됐다. 초기 국군은 힘을 쓰지 못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났다. 더 밀리면 국가가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과 경북 동북부 산악지대를 천연장애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를 '낙동강방어선'이라고 한다. 낙동강방어선에서는 한국군과 북한군간 뺏고 뺐기는 점령전이 수차례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로 대구 다부동 전투가 꼽힌다. 낙동강방어선 가운데 대구 북방 22㎞에 위치한 다부동은 대구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였다. 만일 다부동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지형상 아군은 10㎞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하고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만1500명의 병력과 전차 약 20대 및 각종 화기 약 670문으로 필사적인 공세를 퍼부었다.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명을 포함, 7600여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 등이 전부로 열세였다. 하지만 결과는 드러난 전력과 다르게 나왔다. 다부동 전투 승전의 주인공은 '국군'이었다. 북한군은 25일간 거의 밤낮없이 총공세를 펼쳤지만 다부동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국군을 이끌고 승리를 만들어 낸 인물은 백선엽 장군(당시 준장)이었다. "다부동 전투 승리, 구국의 영웅"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한규성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 "마지막 보루였다. 거기서 후퇴했다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상황이었다"며 "당시 종군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공포에 질려있던 병사들을 독려하고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가장 앞서 (북한군을 향해) 돌격했던 분이 고(故) 백선엽 장군이다. 자신이 후퇴하게 되면 자신을 쏘라고 하니 병사들도 감동해 도망가지 않고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다부동 전투 승리로 나라를 구할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에서 패했더라면 낙동강방어선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몸을 사리지 않는 백선엽 장군 덕에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극복했고 지금과 같은 세계 10위권 강국도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다부동 전투 등 당시 북한군의 공세를 국군과 미군의 연합 작전으로 막아낸 점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역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연구가 있다. 나아가 한미간 상호 신뢰도 형성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에는 다부동 전투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부동 전투 승전을 비롯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과 학생군사교육단(ROTC) 제도 도입에 역할을 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 특히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중인 1953년 5월 합동참모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제의했고 그것이 한미동맹의 기초가 됐다"며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든든한 안보가 마련됐기에 우리나라가 세계 강국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백선엽 장군 생전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인사한 사례가 있다"며 "해리 해리스 전 주한미국대사도 백선엽 장군에 대해 세계적인 영웅이라고 이야기 한 바가 있다"고 언급했다. "5성 장군으로 추대할 것"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 2020년 7월 10일 치러진 백선엽 장군 장례예배를 기점으로 출범하게 됐다. 한 대표는 "(저는) 당시 ROTC 기독장교연합회 회장이었는데 백선엽 장군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해달라는 부탁을 유가족 대표 백남희 여사(백선엽 장군의 장녀)로부터 받아 장례예배를 드린 것을 인연으로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장례예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전기소설 '하늘의 별이 되어' 출간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 △백선염 장군 서기 2주기 추모예배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가장 의미가 깊었던 활동에 대해 한 대표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백선엽 장군 추모 음악회"라며 "5개 주제로 영상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국내 최초의 무대였다. 백선엽 장군의 세계적인 영웅성을 널리 알리는 음악회였다. 전국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백선엽 장군 원수(5성 장군) 추대와 함께 이른바 '백선엽 어워드'를 만드는 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와 관련 한 대표는 "기념사업회 차원에서는 백선엽 장군 원수 추대식을 열었지만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일이지 정부가 공인한 것은 아니다"며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백선엽 장군을 원수로 추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백선엽 장군은) 5성 장군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백선엽 어워드'와 관련 한 대표는 "백선엽 장군의 업적 기리고 백선엽 장군의 정신을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올해 첫번째 시상식을 열 계획"이라며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 사랑'의 정신이 바로 백선엽 정신이다. 이런 취지에 맞는 사람을 찾아 상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아울러 백선엽장군기념사업회는 올해 서거 3주기 추모행사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군에서 백선엽 장군 추모 행사를 주관하겠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군에서 주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념사업회가 장례예배부터 맡아왔던 일인 만큼 상주의 입장에서 추모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맞다"며 "민간인 기념사업회가 주도하고 군이 돕는 방식으로 함께 행사를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백선엽 장군을 폄훼하는 글이 있다. 하지만 화가 30%고 공이 70%라면 나라를 위해 화를 잠재우고 공을 앞세워야 한다"며 "더구나 백선엽 장군 관련 화로 간주하는 내용은 모두 의도적이다.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모셨으면 한다"고 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2023-06-01 10:12:35오늘날 인류는 미래의 삶이 정녕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할지도 모를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기후위기재난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1인당 탄소 배출 규모를 말하는 탄소발자국은 점좀 거세지고 거침이 없다. 경제성장이라는 인간의 뇌를 마비시킨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기후위기에도 그 존재감은 여전하다. 신기술로 기후위기를 축소하거나 해결할수 있다고 믿는 신념도 강고하다. 그러나 지금껏 인류를 지탱해온 현재의 운용체제는 그 한계가 노출되며 종말을 향해 돌진 중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와 성장의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한 기후위기는 일시적이거니 자연적으로 회복될수 있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상상을 초월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국의 삶과 그렇지 못한 빈국이 동일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보편적 기후위기론은 진실을 감추고 기후를 추상화해 자칫 위기의 실체를 가려버리는 효과를 가져온다.기후위기는 단지 탄소배출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아니다. 지구라는 삶의 무대가 이제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비극과 공포의 문제다. ■미개척지, 그 무한한 욕망을 향해 인류 역사는 미개척지를 둘러싼 끊임없는 투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풍요로운 땅과 숲을 갈아엎고 개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북남미 대륙은 물론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풍요로운 대지는 이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뭉개졌다. 인디언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이들의 절멸 정책에 의해 대부분 멸종하거나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데 그쳤다. 원주민뿐만이 아니다. 대지에서 살아가던 온갖 종류의 동식물들도 자취를 감췄다. 유럽인들이 저지른 '제노사이드'는 인류의 흑역사다. 흑역사는 '테라포밍'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동되고 확산됐다. 테라포밍은 현재의 지구를 만든 정치학이자 인류학이다. 땅을 만든다는 의미의 테라포밍은 유럽인들의 정복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제노사이드를 부추겼다. 평화롭게 공존하던 대지와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이들에 의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테라포밍은 미개척지를 개간함으로써 자신들의 욕망에 맞게 대지를 배치하고 구획지으면서 지구를 항폐화시켰다. 여기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대응은 살육과 처벌, 추방으로 이어졌다. 더 심각한 것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직접적인 절멸 정책보다는 이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하도록 주변 대지를 황폐화시키고 공존하던 동물도 절멸시키는 간접적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원주민들이 생존할 수 없도록 주변 환경을 말살하는 총체적 폭력 행위다. 이 같은 직간접적 폭력과 수탈을 통해 정복지의 깃발을 꽂은 유럽인들의 행위는 오늘날 거대한 기후위기와 재난, 바이러스 창궐 등을 유도했다. 기후위기는 미개척지를 자신의 욕망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에서 연유한다. 자연 생태계 속에 질서잡힌 채 잘 기생하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써 이들이 인간세계로 침투함으로써 이른바 인간과 바이러스 간 전쟁이 공식화됐다. 인도 소설가 아미브 고시가 쓴 '육두구'에서는 테라포밍 네러티브는 제국적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고 비판했다. 이 개념이 후에 '정착형 식민주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려 유럽 사회에 매력적이고 호소력을 지닌 수사로 광범위하게 자리잡게 된다. 식민화와 정착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것이다. 다른 제국과 달리 유럽에 의한 식민화는 전 지구 표면의 25% 이상을 급격하게 바꿔놓은 그에 수반된 환경변화의 규모와 속도였다. 고시에 따르면 유럽인이 유럽식 생활방식에 맞게 방대한 면적의 토지를 유럽 모델과 흡사하게 재설계한 곳은 북미 대륙이다. 수천년 전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생활방식을 훼손하고 말살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이런 테라포밍 프로젝트는 갈등을 유발하고 그 자체로 독특한 유형의 전쟁을 일으켰다.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닌 환경적 개입과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이한 전쟁이다. 테라포밍 전쟁은 말 그대로 인구 전체가 대규모 생물학적 생태파괴를 포함한 폭력형태에 시달리는 생물정치적 전쟁이었다. 이처럼 말살전쟁을 동반한 환경의 무기화가 생물정치적 전쟁의 주요소로 작용했다. 정착형 식민주의적 분쟁은 무기를 들고 싸우는 이전 전쟁과 차원이 다른 전쟁이다. 서구인의 사고방식에 따라 비인간존재로 분류되는 토착민과 온갖 환경 요소들은 역사나 정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무대를 빼앗겼다. 기껏해야 특정한 생태환경 속에 놓인 비활성 요소로 취급될 따름이다. ■우주개척 또 다른 '네오유럽' 북남미에서 유럽인의 정착은 황무지로 인식되던 영토를 유럽인의 생산적 토지 개념에 맞는 영토로 탈바꿈하는 것이 핵심 기제다. 이런 개념은 유럽인의 정복 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세계를 자원으로 바라보는 틀짓기로 이 속에서 풍경은 공장으로, 자연은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같은 자원으로서의 세계라는 시각 중심부에는 억제할수 없는 과욕이 싹트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옴니사이드(생물의 절멸)라는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특정 자원의 희소성을 높이고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그 나머지 자원은 절멸해야 하는 옴니사이드는 진화론을 통해 더욱 번성한다. 진화는 인간과 동식물의 동류관계를 공고히 해준 것이 아니라 단 한 종류의 인간 즉 백인우월주의와 예외주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진화는 다른 모든 인간 및 비인간존재 위로 이 최고종족을 끌어올리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인간의 이런 무모한 시도는 기후변화와 위기의 시대를 맞아 유탄을 맞고 있다. 지구의 보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연재해의 강력한 보복 속에서도 자원을 매개로 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화석연료로 대표되는 석탄과 석유에 대한 갈망은 따지고보면 권력구조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화석 연료에 대한 인류의 끊임없는 추구는 현재의 권력구조를 유지시켜주고 강화해주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에 대한 통제권이 곧 세계의 통제라는 법칙 앞에서 모든 기후위기의 경고는 무력하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수 있는데도 이를 기술적 한계로 치부하며 미루는 것은 석유를 고리로 한 지정학적 권력구조의 유지에 다름 아니다. 즉 화석연료는 지금의 세계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접착제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하면 세계 체제의 패러다임은 순식간에 바뀐다. 재생에너지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채굴하고 수송하고 저장하는 일련의 값비싼 비용과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사용할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자원 탐욕이 열어젖힌 존재의 침묵 미국과 유럽이 식민지를 수탈하는 과정은 끝난 게 아니고 내용과 형태만 바뀌었지 현재진행형이다. 공통적인 것은 특정 자원을 상품화하면서 그 이익을 독점화할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영속화시키는 행위다. 그 밖의 자원은 절멸시켜 다른 대안의 싹을 잘라내는 폭력적 세계관이 판을 치는 것도 그래서다. 식민지화는 그저 인간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는 과정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행위주체성, 의사소통능력, 의미를 추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온갖 존재, 즉 동물·나무·화산을 정복하고 그들을 침묵하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같은 침묵의 강제 과정은 경제 추출 과정에 더없이 중요했다. 뭔가를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면 그것을 야수의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다. 식민지 지배자들은 노예 하인 상품으로 써먹기 위해 그들을 자원에 불과한 존재로 바꿔놓고 인간 및 비인간 존재의 연속체를 야수라고 표현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연속체 전체는 특정 종을 멸종이나 말살로 내모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제시됐다. 기후위기는 지나간 과거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과거에 대한 고찰 없이는 지구위기를 이해할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고 그저 한때 지나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는 낙관적 시각이 비극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이처럼 추락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전 세계가 식민지적 추출과 소비방식을 채택하고 지속시킴으로써 엄청난 재앙의 가속화를 유발했다는 사실이다. 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 에디터
2023-02-19 18:29:45[파이낸셜뉴스] 소설 '저주토끼'로 올해 멘부커상 후보까지 오른 정보라 작가가 11년 동안 근무했던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과 주휴·연차 수당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시간강사의 역할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31일 서울서부지법 민사3단독(박용근 판사)는 정 작가가 연세대를 상대로 낸 퇴직금과 수당 청구 소송의 첫 공판을 열었다. 공판에 앞서 정 작가는 이날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연세대로부터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시간강사, 비정규직의 현실"이라며 "평등한 대학사회 건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간강사는 비정규직 근로자이지만, 대학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며 "이들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니까 차별하겠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정 작가는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연세대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문학, 러시아문화 등을 가르쳤지만 퇴직 후 학교 측으로부터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올해 4월 연세대를 상대로 5000만원의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 등 각종 수당을 산정해 달라며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정 작가가 이번 소송을 통해 연세대에 청구한 퇴직금은 총 5000만원이다. 관련해 정 작가는 이날 공판 이후 기자들을 만나 "10년 이상 연세대에서 근무했고, 6년에 걸쳐 우수 강사로 선정 되는 등 학교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며 "퇴직금 5000만원도 약소한 금액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반면 학교 측은 시간강사 퇴직금 지급 규정이 담긴 강사법 시행 이후(2019년 2학기)부터 근로시간을 계산해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작가가 1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근무한 초단시간 근로자이기 때문에 강사법 시행 이전에 근무한 기간에 대해서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이다. 정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 후 열린 첫 변론기일 재판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원활한 강의 진행을 위해 전후로 쉴 틈 없이 일을 했다"며 "정당한 보상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공판에 앞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도 이날 서울서부지법에서 정 작가의 소송을 지원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중렬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정 작가처럼 강의노동을 수행하는 대학강사들을 주 15시간 미만 노동하는 초단시간근로자로 간주해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대학의 시도 자체가 반노동적이고 차별적이다"라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2022-08-31 12:03:55현재 한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져 인구절벽에 대한 효과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해결책으로 젊고 유능한 해외 전문인력들에 문을 여는 것을 현실적 선택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 42년의 한국 생활 중 앞선 30년은 외국인으로, 또 나머지 12년은 귀화한 한국 시민으로 산 사람으로서 이러한 변화는 큰 놀라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불필요한 지연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더 걱정스럽다. 외국인의 수용은 그 나라의 선진화를 알아볼 수 있는 척도 중 하나가 되었고,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러한 부분에서 선진화를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개방적인 한국은 세계 시장과의 연결 속에서 발전의 욕구를 최대한 활용하며 대내외적 변화를 빠르게 수용했고, 대외 지향적인 경제정책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꼬리표를 떼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국민도 외국 문화와 상품 및 서비스에 빠르게 적응하며, 외국 제품을 쓰는 것을 덜 애국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보다 외국 제품 사용이 역으로 한국 제품을 해외에 더 잘 마케팅할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은 현대 문화 마케팅 능력에서도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가는 코리안 웨이브는 다원주의 결과이며, 국가 인지도의 성공 사례이다. 한편 약 700만명의 한국인도 세계 곳곳으로 이민을 통해 뻗어 나갔고, 이제는 해외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를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주변의 많은 한국인도 해외에 있는 가족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민하지 않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통해 세상의 다양성을 돌아본다. 이렇듯 한국인에게 있어 외국 문화의 인지도는 높아졌고, 해외가 마냥 이질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외국인을 한국 사회에 참여시키는 데는 상당히 보수적인 측면이 보인다. 외국 인력, 혹은 이민자에게 있어 낯선 땅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을 초래하기 쉽다. 설령 가혹한 상황을 각오하고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험난한 항해를 시작하더라도 법이 정하는 행정적 불확실성은 해마다 반복되고, 사회에 동화되고 싶은 욕구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해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또 분열된 정체성을 반영하는 외부적 요소들은 그들을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몰며 삶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이든 처음 들어오는 외국인은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받고 들어온 손님이 대부분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은 소설 '파칭코'에서 이민자의 삶은 작고 보이지 않는 삶이라 했다. 그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민자 문학들의 공통적인 테마 중 하나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역사가 기록하지 않아 그들의 희생은 스토리텔링뿐이다. 이런 희생은 그들의 일방적 선택만이 아니라, 이주국가의 필요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이바지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인구이동이 활발한 국제화 시대에서 이주민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너와 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2022-01-27 17:40:49[파이낸셜뉴스] 우울증에 걸린 쥐가 일주일간 침치료를 받아 행동반응이 개선됐다. 이와 동시에 간 수치까지 좋아졌다. 이는 한의학에서 간과 감정활동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간주소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임상의학부 정지연 박사팀이 동물실험을 통해 침 치료가 우울증과 간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고 12일 밝혔다. 정지연 박사는 "한의학 대표 치료법인 침 치료가 우울증 개선에 효능이 있으며, 이를 통해 '간주소설' 이론의 과학적 근거까지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각종 영양소의 대사 및 저장 역할을 하는 간을 한의학에선 간주소설(肝主疏泄)이라 하여 정서(감정)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며 정신질환 치료에 간과 연계된 치료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간의 소설 작용에 따라 사람의 정서활동, 소화활동, 질환 유발, 월경 불순 등이 영향을 받는다. 연구진은 우울증이 있는 실험쥐를 이용해 7일간 침치료를 진행하면서 관찰했다. 우선 우울증 실험쥐를 무처치, 진짜 침 치료, 가짜 혈자리에 침 자극을 준 가짜 침 치료 등 3개 그룹으로 나눠 행동을 관찰했다. 우울증이 있는 쥐는 움직임이 줄어드는 대표적인 행동증상이 나타난다. 그결과, 진짜 침으로 치료한 실험쥐들은 움직임을 확인하는 개방장 실험에서 이동거리가 약 36% 증가했다. 또한 구슬 파묻기 실험에서의 행동반응도 약 76% 증가했다. 구슬 파묻기 실험은 낯선 물체에 관심을 보이고 땅에 파묻는 쥐의 습성을 활용한 행동실험으로, 우울증 유발 시 관심 및 파묻는 행동이 감소한다. 연구진은 간의 기를 보호하거나 균형을 잡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하기 위해 음곡(陰谷), 곡천(曲泉) 등 경혈에 침을 놓는 간정격(肝正格) 치료법 활용해 7일간 치료를 진행했다. 나아가 연구진은 침 치료의 우울증 개선 효과가 실제 간과 관련 있는지 실험쥐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침 치료군에서만 특이한 간 지질체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우울증으로 줄어든 '불포화도가 높은 지질들'이 증가했으며 이를 통해 간수치도 약 32% 개선됐다. 이외에도, 간 지질대사 문제로 인해 유발되는 우울증 관련 염증인자 발생량이 낮아졌으며, 그중에서도 전신 면역을 담당하는 비장에서 40%이상 감소했다. 이외에도 연구진은 침 치료가 어떤 현상을 통해 우울증과 간 지질대사를 동시에 개선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쥐의 뇌 및 체내에서 발생하는 물질 변화도 살펴봤다. 관찰 결과, 우울증 유발과 간지질 대사에 모두 영향을 미치며 연관 매개로 알려진 렙틴 수용체 활성이 대조군에 비해 1.7배 증가했다. 이를 통해 렙틴 저항성도 대조군에 비해 감소하며 우울증과 간 기능이 동시에 개선됐다. 정지연 박사는 "침을 활용한 우울증 치료가 한방 병·의원 등 임상현장에서 확산 될 수 있도록 임상시험에 적용하는 후속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대전대 한의과대학 박지연 교수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국제학술지 '뇌, 행동, 염증 학회지(Brain, Behavior and Immunity)'에 게재됐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1-06-11 22:43:11[파이낸셜뉴스] EBS는 신축년(辛丑年) 설날을 맞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영화를 편성했다. 설 연휴 기간인 2월 11일 목요일부터 2월 14일 일요일까지, 나흘간에 걸쳐 총 5편의 명작 영화가 안방극장에 풍성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배우 유승호의 데뷔작으로 2002년 개봉 당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며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 대상을 받는 등 크게 화제가 되었던 가족 영화 <집으로...>를 비롯해,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할 수 있는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 뉴욕의 화려한 패션계를 배경으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열연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서부영화의 전설적인 두 배우 존 웨인과 커크 더글러스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웅장한 스케일의 서부극 <워 웨건>, 대한민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국내 블록버스터로는 이례적으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부산행> 등이 방송된다. 2월 11일 (목) 낮 1시 : 설 특선 영화 <집으로...> 2월 12일 (금) 낮 1시 : 설 특선 영화 <캐스트 어웨이> 2월 13일 (토) 밤 10시 45분 : 세계의 명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월 14일 (일) 낮 1시 30분 : 일요시네마 <워 웨건> 2월 14일 (일) 밤 10시 35분 : 한국영화특선 <부산행> ------------------------------------------------------------------------------------- 프로그램명: 설 특선 영화 <집으로...> 방송일: 2021년 2월 11일 (목) 13:00 감 독: 이정향 출 연: 김을분, 유승호 제작: 2002년 방송길이: 87분 나이등급: 전체관람가 줄거리: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한참 걸어, 엄마와 7살 상우가 할머니의 집으로 가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진 상우 엄마는 잠시 상우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기로 한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진 상우.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답게 ‘빳데리’도 팔지 않는 시골가게와 사방이 돌 투성이인 시골집 마당과 깜깜한 뒷간은 생애 최초의 시련이다. 하지만, 영악한 도시 아이답게 상우는 자신의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가 그렇듯 짓궂은 상우를 외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무라지 않는다. 같이 보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상우의 할머니 괴롭히기도 늘어만 간다. 빳데리를 사기 위해 잠든 외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훔치고, 양말을 꿰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방구들이 꺼져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그러던 어느 날,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은 상우는 온갖 손짓발짓으로 외할머니에게 닭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가 싶지만, 할머니가 장에서 사온 닭으로 요리한 것은 “물에 빠트린” 닭. 백숙이었다. 7살 소년과 77세 외할머니의 기막힌 동거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해설: 2002년 4월 5일 개봉, 450만 명을 동원하며 같은 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감동 대작 <집으로…>. 하지만 이 영화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흥행을 예측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였다. 당시 인기를 끌던 한국 영화들과는 달리,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에 스타 배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예산 영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들을 웃고 울리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영화의 힘 덕분에 입소문은 시작됐고 <집으로…>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화제가 됐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대종상 작품상, 관객이 뽑은 올해의 영화상(CJ CGV 주최), 모스크바 청소년영화제 대상, 산세바스찬영화제 특별언급,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뽑은 ‘좋은 영상물’, 북미 파라마운트사 배급, 아르헨티나에서 개봉한 최초의 한국 영화 등 다양한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영화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 <집으로…>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집으로…>의 백숙 에피소드가 실리며 영화를 보지 못한 이후 세대들에게까지 레전드가 됐다. <집으로…>는 <미술관 옆 동물원>에 이은 이정향 감독의 두 번째 영화지만, 사실 이정향 감독은 <집으로…>의 시나리오를 먼저 완성했다고 한다.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준 사랑을 기억하며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영화의 말미에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할머니=자연’이라는 연출 공식을 세웠던 이정향 감독에게 로케이션은 촬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였다. 제작진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뒤진 끝에 충북 영동군 깊숙한 자락의 마을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정향 감독은 그곳에서 김을분 할머니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또한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을 동네에서 거주하고 있는 실제 주민들로 설정했고 5개월 여의 촬영 기간 동안 마을에서 동고동락하며 자연스러운 장면들을 연출, ‘할머니의 사랑’이라는 소재를 아주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미안하다’라는 손짓과 ‘보고 십다’라는 삐뚤삐뚤한 글씨 하나로 할머니와 손자의 정을 이야기하는 <집으로…>는 힐링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2000년대 초반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추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할머니의 집에 가 그 푸근한 사랑을 받으며 잠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진짜 ‘힐링’을 선물할 것이다. 감독: 이정향 1964년생.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 졸업하고 한국영화 아카데미를 4기로 수료했다. 뮤지컬과 단편 영화, 다큐멘터리에 이어 <오늘 여자>, <천재선언>, <비처럼 음악처럼>의 조감독을 거쳤다. 1998년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데뷔. 비평과 관객 양쪽 모두 대성공을 거두며, 대종상, 청룡상, 영평상, 춘사영화제 등 그 해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2002년 <집으로...>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대종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작품으로 송혜교 주연의 <오늘>(2011) 등이 있다. ------------------------------------------------------------------------------------- 프로그램 명: 설 특선 영화 <캐스트 어웨이> 방송일: 2021년 2월 12일 (금) 13:00 원제: Cast Away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출연: 톰 행크스, 헬렌 헌트 제작: 2000년 / 미국 방송길이: 143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 택배회사의 간부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자신의 직원들에게도 시간을 아껴 쓸 것을 강조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고객들에게 소중한 물건을 제때 배달해주는 것만큼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토록 시간의 중요성을 말하는 그가 정작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는 하루를 내주는 것도 힘겨워한다는 것이다. 연인 켈리(헬렌 헌트)를 몹시 사랑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시간에조차 척은 호출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브 파티 중 급한 출장 건으로 심야 비행을 하게 된 척. 켈리에게 청혼하려던 그는 비행기 출발 시간이 촉박한 탓에 포장을 풀지 못한 반지 상자만 켈리 손에 쥐어주고 아쉽게 켈리로부터 등을 돌린다. 척은 켈리에게 선물받은 시계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심야 비행을 하던 중 갑작스레 조종석으로부터 경고 메시지를 듣는다. 대기 상황이 좋지 않은 까닭에 비행기가 항로를 잃고 하늘을 헤매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관제탑과의 연락도 끊긴 긴박한 순간, 결국 비행기는 바닷속으로 추락하고 만다. 척은 켈리가 준 시계와 구명보트백만 들고 추락을 경험한다. 천운으로 척은 구명보트 덕에 목숨을 건지지만 어디에 놓인지도 모를 외딴 섬에 홀로 떨어진다. 사람과 동물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그저 무성한 나무뿐인 섬에서 척은 생존을 고민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우울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질 만큼 굶주림과 갈증은 지독하게 척을 옥죈다. 척은 하루하루 먹을 것을 찾아다니며 섬 생활에 적응해간다. 오로지 켈리를 다시 만날 것만 꿈꾸며 4년이 흐르고, 고독과 자연에 웬만큼 단련된 척은 배구공 윌슨을 벗삼아 섬으로부터의 탈출을 계획한다. 어디로부턴가 떠내려온 문짝과 섬의 나무들로 튼튼한 뗏목을 만들어낸 척은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가까스로 민간 화물선과 조우해 극적으로 구조된다. 하지만 고향 멤피스로 돌아가보니, 모든 사람들은 이미 척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척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만 켈리는 이미 다른 남자와 가족을 만든 뒤다. 척은 더욱 깊은 고독에 빠지지만 섬을 탈출해낸 초인적인 의지로 좌절을 견디고 생의 다른 의지를 찾아 또다시 표류한다. 주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 할 수 있는 <캐스트 어웨이>는 살아남겠다는 의지와 특정 대상을 향한 사랑과 희망이 인간에게 얼마나 거대한 힘을 부여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 시계추처럼 기계적인 삶을 살던 남자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뒤 필사적인 힘으로 환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준다. 망망대해 섬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척에게 고독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시간이 막연하게 많다는 것은 빈틈없는 일과를 보내온 척에게는 굶주림과 외로움만큼이나 지독한 공포다. 이때 인간을 버티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꼭 만나리라는 강력한 의지가 척을 살아가게 만든다. 4년 뒤 고향 멤피스로 돌아온 척은 최악의 항공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았다는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젊고 건강해보인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의 힘으로만 이겨내온 덕에 척은 이미 ‘초월’을 학습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감상 포인트: 미국인의 가장 대표적이고 이상적인 얼굴, 톰 행크스의 명연기가 인상적인 작품. <캐스트 어웨이>는 당시 오스카를 겨냥한 기획영화였지만 인간의 생사고락에 관한 장대한 서사시이기도 했다. 그 서사시를 완성한 것은 전적으로 톰 행크스다. 톰 행크스는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을 일인극을 하듯 사색과 고뇌, 혼잣말로 가득 채운다. 그는 생물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섬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어내는 인간의 실존 투쟁을 온몸으로 그린다. <캐스트 어웨이>는 피지섬에서 촬영되었는데 영화 초반부부터 조난된 직후까지 102kg이었던 톰 행크스의 몸무게는 영화 속에선 4년, 실제 프로덕션 과정 중에선 8개월이 흐른 뒤 77kg으로 줄었다. 척이 그러했던 것처럼, 실제로 코코넛과 해산물만으로 급속으로 체중을 감량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캐스트 어웨이>는 영화가 제작되기 7년 전 톰 행크스가 직접 폭스사에 가져온 <정글의 척>이라는 시나리오로부터 기획된 영화라고 한다.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스필버그 사단의 대표적인 후배 감독이지만 명작을 숱하게 내놓은 비등한 명감독이다. 영화 <대탈주>(1963),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 등에 영향받은 시네키드였고, 고등학생 때부터 8mm 영사기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었다. 유명 제작자 밥 게일과 친구이며, 학생시절 밥 게일과 함께 쓴 <1941>의 시나리오는 존 밀리어스 감독에 의해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로 제작되었다. 그렇게 스필버그와 연을 맺었고 비틀즈의 동명의 곡을 소재로 삼은 코미디 영화 <당신 손을 잡고 싶어(I Wanna Hold Your Hand)>(1978)로 감독 데뷔했다. 액션 어드벤처 <로맨싱 스톤>(1984)으로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최고 흥행 감독 중 하나로 인정받은 저메키스는 오랫동안 다듬어온 SF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스필버그에게 가져간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다. 그 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1988), <백 투 더 퓨처> 후속작들, <죽어야 사는 여자>(1992)가 줄줄이 흥행에 대성공했고, <포레스트 검프>로 당시 골든글로브와 오스카를 휩쓸었다. 이후에도 <콘택트>(1997) <왓 라이즈 비니스>(2000) <캐스트 어웨이>(2000) <폴라 익스프레스>(2004) <크리스마스 캐롤>(2009) <플라이트>(2012) <하늘을 걷는 남자>(2015) <얼라이드>(2017) <웰컴 투 마웬>(2018) <마녀를 잡아라>(2020) 등의 수작들을 멈추지 않고 내놓고 있다. ------------------------------------------------------------------------------------- 프로그램 명: 세계의 명화 방송: 2021년 2월 13일 (토) 밤 10시 45분 부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원제: The Devil Wears Prada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 출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스탠리 투치, 에밀리 블런트 제작: 2006년 / 미국 방송길이: 109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명문대학을 졸업한 소도시 출신의 앤디 삭스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뉴욕에 상경한다. 그리고 모든 여자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장인 패션 잡지사 ‘런웨이’에 취직한다. 사수인 에밀리와의 첫 대면부터 앤디는 이곳이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닫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1년만 꾹 참고 일하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는 악마라고 불리는 런웨이의 실세인 편집장 미란다로부터 자신이 뽑힌 이유에 대해 듣게 되며 충격을 받는다. 이날 이후 앤디는 가족과 친구, 연인에게 소원해지며 오로지 자신의 자리에 꼭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어느 새 미란다의 눈에까지 쏙 들게 된다. 그런데 과연 앤디는 지금 이대로 행복할까?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자신의 진짜 꿈을 위해 런웨이를 떠날 것인가? 주제: “나는 나에게 맞는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렇기에 사회 초년생은 물론 직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실수 연발의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신입 앤디, 수다스럽지만 귀여운 사수 에밀리, 표정 하나로 백 마디 말을 대신하는 악마 같은 상사 미란다, 지옥 같은 직장 생활에 한 줄기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직장 선배 나이젤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화려하지만 때론 고독한 패션계 직장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감상 포인트: 화려한 뉴욕을 배경으로 패션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의 원작은 작가인 로렌 와이스버거가 실제로 <보그>지 편집장 비서로 지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어디까지가 실제인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될 텐데, 미란다의 실제 모델이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밝혀지면서 패션계 인사 등 유명인들은 그녀와의 관계를 생각해 영화 출연 섭외를 거절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의 협찬을 받아내는 데는 성공하였으며, 나중에 안나 윈투어는 미란다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훌륭했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메릴 스트립을 필두로 그녀와 완벽 케미를 선보인 앤 해서웨이, 동료로 출연한 에밀리 블런트, 스탠리 투치 등 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영화를 빛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선 그 인기를 입증하듯 2017년 5월에 재개봉된 바 있다. 감독: 1959년 4월 2일생인 데이비드 프랭클 감독은 실제로 뉴욕 출신이고,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86년에 ABC 시트콤 <The Ellen Burstyn Show>에서 작가로 데뷔하여 작가, 감독, 프로듀서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다. 이후 역시 뉴욕 배경의 유명한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1998)>와 전쟁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로 연출력을 인정받고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특히 <밴드 오브 브라더스>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19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최고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4년에 연출했던 <안투라지> 역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됐었다. 최근작으로 <말리와 나>(2008), <호프 스프링즈>(2012), <원챈스>(2013), 윌 스미스 주연의 인생 치유 스토리를 담은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2016)> 등이 있다. ------------------------------------------------------------------------------------- 프로그램 명: 일요시네마 방송일: 2021년 2월 14일 (일) 오후 1시 30분 부제: 워 웨건 원제: The War Wagon 감독: 버트 케네디 출연: 존 웨인, 커크 더글러스 제작: 1967년 / 미국 방송길이: 100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감옥에 갔던 토 잭슨(존 웨인 분)은 3년 만에 가석방되어 뉴멕시코 에밋으로 돌아온다. 잭슨은 자신을 감옥에 보내고 자신의 땅을 빼앗은 프랭크 피어스(브루스 캐봇 분)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잭슨이 돌아온 사실을 안 피어스는 그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그를 죽이기 위해 부하 둘을 시켜 로맥스를 찾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잭슨의 목숨 값으로 그에게 1만 달러를 주기로 한다. 하지만 잭슨 역시 로맥스를 찾아가 그의 몫으로 10만 달러를 주겠다며 함께 금을 수송하는 피어스의 무장 마차를 탈취하자고 제안한다. 로맥스뿐만 아니라 국경 근처에 있는 인디언 친구 리바이, 감방 동료로 폭탄 전문가인 빌리 하야트, 피어스 밑에서 일하는 웨스까지 동원해서 잭슨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탈취한 금은 6개월 후에 나눠 갖기로 한다. 결국 잭슨의 계획은 성공하고, 금 수송 마차를 탈취해서 금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잭슨 일당을 돕기로 했던 인디언들이 그들을 배신하고 그들이 탈취한 금을 다시 훔쳐가려고 한다. 빌리의 기지로 위기를 모면하지만 금을 실은 마차의 말들이 달아나기 시작한다. 금가루를 넣어둔 마차 위의 통들이 모두 땅으로 떨어지는데, 그것을 발견한 무지한 인디언들은 금가루를 위장하려고 함께 넣어 둔 밀가루를 보며 기뻐한다. 인디언들에게 조금 뺏기긴 했지만 금가루를 손에 쥔 잭슨은 6개월 후에 훔친 금을 나누겠다고 고집하고, 로맥스는 당장 자기 몫을 달라며 분을 참지 못한다. 주제: 이 영화는 복수심에 불타는 전과자 토 잭슨(존 웨인 분)이 명사수 로맥스(커크 더글러스 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감옥에 보내고 자신의 땅을 빼앗은 프랭크 피어스(브루스 캐봇 분)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원작은 클레어 허페이커의 ‘악당(Badman)'이라는 소설이며, 허페이커가 직접 각본도 썼다. 이 영화는 여느 서부극과 마찬가지로 황야를 가로지르는 말과 마차, 대평원을 질주하는 인디언들, 돈과 황금을 위해 총을 쏘는 총잡이가 등장하지만 악한을 물리치는 영웅이 등장하는 서부극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서부영화의 단골 소재인 골드러시 현상이 극의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으며,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갔지만 자신의 땅에서 채굴한 금을 되찾으려는 주인공과 그를 죽이려는 악한의 극명한 대립 등 서부영화 특유의 단순명료한 플롯을 보여 준다. 감상 포인트: 경쾌한 주제가와 함께 펼쳐지는 오프닝의 금 수송 마차 행렬은 시작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주제가를 비롯한 음악을 맡은 디미트리 티옴킨은 아카데미 작곡상을 3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음악가다. 오프닝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금을 수송하는 마차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규모와 웅장함은 45년이 지난 지금 봐도 압도적이다. 마을 술집에서 로맥스와 피어스가 다 모인 가운데 집단 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의 스케일 역시 굉장하다. 또한 거기에 전설적인 두 배우 존 웨인과 커크 더글러스의 명연기만으로도 서부영화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일 것이다. 존 웨인은 서부영화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름만은 알 정도로 서부영화에 자주 출연하였다. 하지만 서부극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다른 영화들에도 출연하였으며 직접 연출이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1970년에는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커크 더글러스 역시 연기뿐 아니라 연출, 제작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특유의 매력적인 턱 보조개는 이 영화 속에서 유머러스한 대사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감독: 특히 서부영화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겸 감독 버트 케네디(Burt Kennedy)는 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기병대 장교로 복무했으며, 종전후에는 <패서디나 커뮤니티 플레이하우스 (Pasadena Community Playhouse)>라는 극단에 들어갔다. 그러나 리허설에 불참한 이유로 한 편의 연극을 끝으로 쫓겨났다. 이후 라디오 프로그램 원고를 쓰다가 군대에서 훈련받은 경험을 살려 몇몇 영화에 스턴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TV 작가로 뽑혀 13개의 각본을 썼지만, 제작은 무산됐다. 그러나 케네디는 계속 배트잭(Batjac) 제작사에 남아 프로듀서 존 웨인을 위한 작품을 썼다. 그리고 작가로서 그의 처녀작 <7인의 무뢰한(Seven Men from Now) (1956)>라는 최고의 서부영화가 탄생했다. 이 영화는 버드 보티커가 감독을 맡았고, 랜돌프 스콧이 주연을 맡았다. 1960년에 케네디는 라는 서부영화로 감독 데뷔를 했지만 참패했다. 그는 다시 TV로 돌아와 그리고 가장 유명한 <전투(Combat!) (1962)> 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1965년에는 다시 영화계로 돌아가 을 성공시켰고, 이후 이 영화는 같은 이름으로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케네디는 TV와 스크린 양쪽에서 다수의 서부극을 히트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서부극이 아닌 장르의 영화도 많이 썼으며, 케네디 특유의 유머와 스타일리시한 대사가 특징이다. 1936년에서 1952년에는 팻 오브라이언의 스턴트 대역으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 프로그램 명: 한국영화특선 방송일: 2021년 2월 14일 (일) 밤 10시 35분 부제: 부산행 감독: 연상호 출연: 공유, 정유미, 마동석, 김의성, 최우식, 안소희 제작: 2016년 영화길이: 118분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대한민국 긴급재난 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단 하나의 안전한 도시 부산까지 살아가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442KM 지키고 싶은,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의 극한의 사투! 해설: 대한민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블록버스터. 제작 단계서부터 화제를 모았던 전대미문의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그간 국내에서 선보였던 재난 영화와는 전혀 다른 비주얼과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대한민국을 뒤덮은 가운데,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를 그린 재난 블록버스터 프로젝트 <부산행>. 서울에서 부산까지 대한민국 전역에 걸쳐서 진행되는 스토리는 국내 관객들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스릴과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역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퍼지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는 KTX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보는 이들에게 긴박감과 짜릿함을 전달한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감정과 이기심, 사회적 갈등,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한 각 캐릭터들의 사투는 관객들로 하여금 각 캐릭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부산행>은 제 69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섹션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되었다. 기존에는 홍상수 감독, 김기덕 감독, 박찬욱 감독 등 대한민국 예술 영화를 표방하는 감독들의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데 비해, 국내 블록버스터 프로젝트의 초청은 이례적이다. <부산행>은 <괴물>(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이후에 초청받은 대한민국 대표 상업영화로서, 국내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영화로 주목 받았다. 감독: 연상호 감독은 전작 <돼지의 왕>, <사이비> 두 작품을 통해 인간의 강렬한 묘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담아내 그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나갔고, 완벽한 비주얼과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크리에이티브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1년 <돼지의 왕>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 최초로 칸 국제 영화제 감독 주간 부분에 초청받았으며, 시드니 영화제,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뉴욕 아시아 영화제,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 세계 36개국에 소개되는 등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의 전작 <사이비>(2013)는 “올해 손에 꼽을만한 걸작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제 38회 프랑스 앙시 애니메이션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은 제 34회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되는 실버 크로우(Silver Crow)를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서울역>은 이 외에도 제 40회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및 제 20회 몬트리얼 판타지아 국제 영화제, 제 49회 스페인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 등 유수 영화제의 주요 경쟁 부문에 모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 영화인 <부산행>에서 그의 빛나는 크리에이티브와 디테일한 연출력은 다시 한번 전세계를 사로잡았고, 69회 칸 국제 영화제 공식 섹션과 비경쟁 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이라는 쾌거를 올렸다. 최근작으로 <염력>(2017), <반도>(2020) 등이 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2021-02-09 18:20:52[파이낸셜뉴스] '알페스' 논란이 뜨겁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알페스 이용자를 처벌해달라'는 청원글에 동의한 인원은 20만명이 넘었다. 국회의원까지 나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알페스란 'Real Person Slash'의 약자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작성되는 소설을 뜻한다. 그러나 일부 이용자 사이에서 남성 아이돌을 소재로 적나라한 성관계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글이 판매되면서 '성범죄' 논란이 일고 있다. ■"알페스, 폭력·범죄의 문제" 알페스를 보는 의견은 제각각이다. 이용자 처벌 요구는 남성 아이돌을 성적으로 대상화 한 성범죄와 동일시하는 시각에서 나왔다. 다만 아이돌 팬들이 만든 소설의 일종이라는 특성 상 'n번방'이나 음란물로 만들어진 '딥페이크'와는 다른 속성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2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게시된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은 21만명이 넘는 동의를 받아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게시자는 "피해자 상당수는 아직 미성년자이거나 갓 사회 초년생이 된 아이들"이라며 "잔인한 성폭력 문화에 노출돼 받을 혼란과 고통이 짐작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최근 서울 영등포경찰서를 방문해 알페스 등의 제조자 및 유포자 110명에 대해 경찰에 수사의뢰하기도 했다.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알페스가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해 음란물을 제조하는 '딥페이크' 등의 성착취물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나온다. 딥페이크나 알페스 모두 연예인들이 성적으로 대상화가 되고 대상들이 성적 수치심을 호소하는 만큼, 동일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 의원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알페스는)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로, 폭력과 범죄의 문제"라며 "신종 성범죄로 떠오른 알페스 제작자와 유포자를 일괄 소탕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착취물 간주 어려워, '팬픽' 몰이해" 반면 알페스를 '성범죄'의 일종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반론도 있다. 알페스가 '팬 픽션'의 일부인 만큼, 표현의 자유가 일정하게 보장되는 창작물과 성착취·음란물인 'n번방'·'딥페이크' 등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는 페이스북에 "오래된 강간문화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만나 열린 '소라넷-디지털 성범죄-n번방' 이후의 '이루다 사태'와 알페스 문화를 동일선상에 놓고 '제2의 n번방'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팬 픽션'에 대한 몰이해에서 이같은 논란이 일어났다는 시각도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알페스는 문화로 봐야 하며, 문제를 제기한 연예인들과 같은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창작물) 때문에 알페스를 없애자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2021-01-20 15:5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