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기독교 신자인 13세 소녀가 납치, 강제 개종 후 44세 무슬림 남성과 강제결혼할 뻔했다가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구조됐다. 3일(현지시간) BBC는 해당 소녀가 부모가 실종 신고한 지 3주가 지나서야 구조됐다고 보도했다. 법원이 소녀가 18세이고 자의적으로 결혼했다는 진술을 받아들여 초기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납치 사건을 인지한 파키스탄 교회 지도자들과 인권단체들은 이 소녀가 진술을 강요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법원에 재판결을 요청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2일 신드 고등법원은 경찰에 소녀 구출을 명령했고 소녀는 같은 날 구조돼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 용의자 알리 아자르(44)는 체포됐다. 파키스탄 기독교 기구에 따르면 소녀의 가족들은 지난달 13일 처음으로 실종 신고를 했는데 갑자기 알리가 소녀의 아버지에게 딸의 나이가 18세라 무슬림으로 개종 후 결혼했다고 적힌 결혼 증명서를 보내왔다. 가족들은 알리가 제출한 소녀의 신원 확인서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을 했다. 지난달 27일 법원은 되레 알리에게 소녀의 가족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보호처분을 내렸다. 이후 인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법원의 결정을 비난하며 언론에 제보하고 나서야 법원은 판결을 뒤바꿨다. 최근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시아 전역에서는 아동 결혼이 일반적이다. 파키스탄에서 20대 초반 여성의 약 25%가 18세가 되면 결혼을 한 것으로 집계됐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인턴기자
2020-11-04 08:04:37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콩고민주공화국의 드니 무퀘게와 이라크의 나디아 무라드가 선정됐다. 5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오슬로에서 이들이 전쟁 및 무력충돌 중 성폭력을 무기화하는 것을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으로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무퀘게와 무라드 모두 전쟁범죄에 용기있게 맞서 싸우고 가해자들에 대한 심판을 위해 개인의 위험을 감수했다며 올해 평화상 수상자들은 알프레드 노벨이 생전에 원하던 희망과 부합된다고 덧붙였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무퀘게는 지난 2008년에 부카부에 설립된 판지병원에서 성폭력 피해자 수천명을 치료해오는데 헌신해왔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장기간 이어진 내전으로 지금까지 600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무퀘게는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무기화하는 것을 콩고를 비롯해 다른 국가에서 막으려 노력하지 않았다며 비판해왔다. 노벨위원회는 무퀘게가 콩고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전쟁 중 발생하는 성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의 상징이 됐다며 그의 노력은 과소평가돼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본인이 전쟁 피해자인 무라드는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하며 용기를 보여줬다고 노벨위원회는 밝혔다. 지난 2014년 8월 수니파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인 야지디족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자르 지역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감행해 수백명이 사망했으며 어린이와 젊은 여성 약 3000명을 성노예로 납치했다. 무라드도 IS에 붙잡혀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으며 이슬람교로 강제 개종하지 않을 경우 처형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납치 3개월만에 탈출한 무라드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공개하면서 2년전 유엔으로부터 인신매매 생존자들의 존엄을 위한 첫 친선대사로 임명됐다. 위원회는 IS가 야지디족 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민족들을 겨냥해 계획적으로 성폭력을 군사전략으로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올해는 전쟁이나 분쟁 중 성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전쟁 범죄와 국제 평화 및 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유엔안보리 결의 1820호 통과 1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노벨상은 8일 발표되는 경제학상 수상자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내 내분과 성폭력 의혹, 재정 비리, 사전 유출 등으로 위원들이 사퇴하면서 1949년 이후 처음으로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고 대신 내년에 2명이 받게된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18-10-05 18:50:17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이른바 인육(人肉) 재판은 유명한 이야기다. 잘 알다시피 빌려간 돈을 제때 갚지 못했다고 하여 유대인 샤일록이 증서에 쓰인 대로 베니스 상인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하자 재판관 포셔는 "계약이 살 1파운드만 허용하고 있으므로 1파운드를 더해도 덜해도 안되고, 아울러 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법에 따라 전 재산을 몰수한다"고 경고하고는, 종국에 이방인이 베니스 시민의 생명을 노렸다 하여 샤일록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기독교로의 개종을 조건으로 샤일록의 목숨을 살려준다는 내용이다. 이 희곡에서는 당시 런던 시민의 반유대 정서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안토니오가 리얄토 다리 근처에서 샤일록을 '사람 죽일 개'라고 하면서 면상에다 침을 뱉고 발길질하곤 했을 만큼 유대인 고리대금업자는 전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샤일록이 법을 곡해하면서 계약문언대로 법 적용을 요구함으로써 부정을 행하고 있음에 격분을 느꼈다고 한다. 독일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 역시 샤일록의 계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치 없는 종류의 인간, 더구나 유대인의 생각이 깊지 못한 거래'라고 했다. 서구에서는 대체로 재판관 포셔를 솔로몬에 비유할 만큼 그 혜안과 통찰력을 높이 산다. 샤일록과 포셔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과연 보편적일까. 우선 포셔는 약혼자 밧사니오의 친구인 안토니오의 재판을 주재하기 위해 남자 옷으로 변장하고 변성기 소년의 목소리를 내어 남성 법학자인 양 법정 단 위에 앉은 공작과 샤일록을 속였다. 또 소송당사자인 안토니오의 친구이자 돈을 빌린 밧사니오의 약혼녀이기 때문에 이 재판을 맡아서는 안된다. 계약해석에 있어서도 증서상 '살 1파운드'로 되어 있다면 채권자인 샤일록이 정확하게 살 1파운드 전부를 다 떼내야 하고, 살 1파운드 아래를 떼내서는 안된다는 의무는 성립되기 어렵다. 담보물 1파운드 미만으로의 하향 조정은 자기 권리의 일부 포기다. 또 자연의 법칙상 살을 떼내는데, 어떻게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피를 흘리지 않겠다는 약정 역시 계약서에 규율된 바 없다. 샤일록이 빌려준 돈만 받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데도 포셔가 이를 거절한다는 것은 월권적 처사다. 더욱이 그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샤일록이 살인을 획책했다 하여 전 재산 몰수와 특별사면 조건으로 강제 개종을 명하는 가혹한 징벌이 과연 정의일까. 위약벌로서의 '살' 넘겨받음을 포기하고 원래대로의 차용금 청구를 하거나 아예 그 청구마저도 포기한다면 포셔는 그 선에서 이 사건을 종결했어야 했다. 심지어 샤일록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개종을 명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의 침해다. 십자군전쟁과 흑사병 창궐 후 일상화된, 유대인에 대한 약탈과 추방 그리고 학살 속에서 사랑과 자비를 외쳐대는 크리스천의 오만과 위선, 이중성에 유대인은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치욕의 징표인 노란색 모자와 가슴 위에 노란 천 마크를 착용해야 하고, 격리된 게토(ghetto)에서만 거주해야 하는 유대인으로서는 크리스천도 피를 흘려 봄으로써 자기 소유물로 여기는 노예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유대인이 같은 인간임을, 또 수모를 당하면 누구나 앙갚음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깨닫게 하려고 하지 않을까.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포셔의 재판을 음미해 보면서 최근 미국 대통령 후보 트럼프의 비기독교 세력, 특히 무슬림과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하 발언이 떠오른다. 지구상에서는 또 다른 '샤일록'이 외면과 곡해, 매도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마음이 든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2016-10-25 17:18:01\r \r \r \r \r \r \r \r \r \r \r \r \r 페르시아만과 중국 광저우를 오가던 다우선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리·건조되고 있다. 오는 2022년 카타르 도하 월드컵 개최 때 전시될 세계 최대 다우선을 배경으로 최고 기술자인 조선책임자(라자·오른쪽), 에이전시 대표(알리 코야·왼쪽)와 필자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페르시아만에서 중국 광저우에 이르는 바닷길 9600㎞는 지난 7~9세기부터 활성화된다. 오만정부는 1981년 당시 다우선을 건조해 '소하르'라 명명하고 수르에서 광저우에 이르는 바닷길을 재현했다. 소하르는 신밧드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으로 무스카트가 오만 중심항이 되기 이전 가장 번창한 해항이었다. 소하르는 현재 정부청사가 집결한 무스카트의 알 부스탄 거리에 전시돼 있다.오만정부는 '신밧드의 모험'에 등장하는 아랍 뱃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오만 선조들의 해양활동이라고 자부한다. 오만인들 못지않게 선조들의 해양활동을 자부심으로 내세우는 또 다른 민족은 이란인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란인들은 아랍제국에 점령당한 7세기 중엽 이후에도 100여년 이상 해상교역을 주도했다. 7세기 활동한 중국 승려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따르면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란인들 '포세'(Po-sse)와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란인들 '타쉬'(Ta-shih)가 해상교역을 주도했다.이들이 나들목으로 이용한 항구는 반다르아바스와 광저우였다. 그런데 정사는 아니지만 반다르아바스에서 경주까지 인적 물적·교류가 바닷길을 통해 왕성했을 것이라는 전승기록이 최근 새삼 주목받는다. 반다르아바스에 입항한 해양실크로드 탐험대를 이란국민들이 따뜻하게 환대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아랍인들의 침입을 받아 651년 멸망하자 이슬람 정복 이전 역사 속의 민족영웅들을 다룬 페르시아 문학이 탄생한다. 이란의 민족시인 피르다우시가 977년부터 1010년까지 30년에 걸쳐 쓴 이란 민족 대서사시 '샤나메'(Shah-nameh·'왕들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그는 아랍 지배자들이 아랍어와 아랍문학을 강제하는데 반발해 페르시아어로 이란의 전설과 역사를 서술해 이란 민족의 부활을 열망했다. '왕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란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유사한 저술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쿠쉬나메'(Kush-nameh·'쿠쉬에 관한 이야기')다. 쿠쉬나메에 따르면 몰락한 사산왕조의 유족인 압틴(abtin)은 쿠쉬의 추적을 피해 중국에서 바실라(Basila)로 망명한다. 바실라에 도착한 압틴은 그곳 공주 파라랑(Fararang)과 결혼한다. 그는 공주와 함께 바실라 항해자의 도움을 받아 14개월간의 항해 끝에 이란으로 돌아간다. 파라랑은 이란의 민족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는 파리둔(Faridun)을 낳는다. 파리둔은 아버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랍의 지배로부터 왕위를 재탈환한다. 여기서 바실라는 신라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설화는 신라에서 이란에 이르는 바닷길이 신라와 이란의 항해자들에 의해 숙지되고 주기적으로 활용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란으로 연결되는 바닷길의 결절점인 해항은 반다르아바스였을 것이다. 반다르아바스가 동남아의 여러 해항도시들과 왕성한 인적·물적 교류를 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고증된다. 630년 반다르아바스의 지도자 라자(Maharaja Debar Raja)는 아랍제국의 공격을 견디다 못해 스리랑카로 망명한다. 그는 여기서 다시 뱃길을 따라 말레이시아의 케다에 정착하며 힌두교를 신봉하는 원주민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라 케다왕국을 창건한다. 케다 연대기는 반다르아바스 출신의 라자가 랑카수카(Lankasuka) 왕국을 대체해 634년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케다왕국을 건국했고 1136년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반다르아바스는 '파르시'(Parsi)가 종교자유를 찾아 집단적으로 이주한 해항이었다. 8세기께 반다르 아바스에 근거지를 둔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란인들은 이슬람교도의 탄압을 피해 인도의 구자라트로 이주한다. 인도에 정착한 이들을 '파르시'라 부른다. 18세기 영국의 동인도회사 상관이 뭄바이로 이전하자 파르시의 대다수도 함께 이동했다. 이들은 면방적업을 필두로 인도의 철강, 항공 등의 중공업을 주도했으며 거상이 많아 인도 민족자본가를 대변했다. 오늘날 뭄바이 랜드마크의 하나인 타지마할 호텔은 세계적인 재벌 타타 그룹의 창시자인 파르시, 타타(1838-1904)가 세운 것이다. 파르시는 경제계 이외에도 예술, 사회개혁, 복지, 교육계에서 인도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지만 조장(사체를 새에게 먹게 하는 장례)과 같은 전통적인 조로아스터교의 관습을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반다르아바스는 지속적인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반다르 아바스와 관련된 신화·설화, 서사시,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이 해항도시가 페르시아에서 신라까지 연결된 바닷길의 결절점이었고 쉬라즈~이스파한으로 통해 육상실크로드와 연결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문수 교수 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연구소장 <fn·부산fn·한국해양대 국제해양문제硏 공동기획> \r \r
2014-11-11 11:32:03베르디의 초기 걸작 오페라 '나부코'가 16일 고양아람누리에서 막을 올린다.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작품을 고양문화재단과 대전예술의전당 공동 제작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우선 반갑다. 오페라에 연극적 요소를 결합하고 보편적인 설정으로 각색해 보다 친근하게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은 더 반갑다. 고양문화재단은 개관 초기부터 지역 문예회관들과 협업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춘 오페라 제작에 힘써 왔다. 2008년 오페라 '토스카'를 시작으로 지난해 '카르멘'까지 매년 채워진 무대가 그 결실이다.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보유하지 않은 공공극장에서 매년 200명 이상의 제작진과 출연진을 섭외해 신작을 올림으로써 순수예술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올해는 국내 무대에서 생소할 수 있는 오페라 '나부코'를 선보이기 위해 전문가 강연과 토론 등 보다 철저한 작품분석을 거쳐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바꿨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강한 종교적 색채를 중화시킨 점이다. 구약성서에서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강제로 끌려간 '바빌론 유수' 사건이 중심 내용인데, 바빌론의 정복왕 나부코와 히브리인의 충돌을 단순히 이교도와 기독교의 대립이 아닌 다른 가치관의 두 세계의 갈등으로 바라본다. 연극 '모범생들' '히스토리 보이즈', 뮤지컬 '아가사' 등으로 각광받은 신진 연출가 김태형의 기용도 한몫했다. 논리성을 중시하는 그는 나부코와 히브리인을 각각 물질·기계문명과 정신·자연문명을 대변하도록 설정했다. 즉 히브리인을 배척하고 억압하며 스스로를 유일신이라 자부하던 나부코가 잘못을 깨닫고 동화되는 과정이 종교적 회개와 개종이 아닌 물질문명이 자연문명의 가치를 깨닫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개 오디션으로 신예 성악가들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올해도 유지했다. 나부코 역의 바리톤 김진추와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의 소프라노 박현주 등 정상급 성악가들과 함께 두 번의 평가를 거쳐 선발된 이승왕과 오희진 등 차세대 주역들이 무대에 선다. 또 베르디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합창으로 꼽히는 '나부코'의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일명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는 고양시립합창단과 경기필하모닉의 연주로 듣게 된다.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24∼26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2만~7만원. 1577-7766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2014-10-14 14:33:05내년부터 일본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한층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일부 교과서에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해 독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주목된다. 일본문부과학성은 26일 오후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 심의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교과서들을 포함해 총 21종의 고교 사회과 교과서들을 통과시켰다. 4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교과서 개편·검정에서 일본 출판사들은 역사인식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일간 쟁점이 되고 있는 독도에 대해선 국제 영토분쟁으로 분류해 우경화 수위를 높이는 한편, 국제적으로 비난 여론이 거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부 교과서를 중심으로 전향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번 검정 대상 21종 가운데 독도문제가 기술된 건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3종(짓쿄출판·시미즈서원·도쿄서적)을 포함해 총 15종이다. "한국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점유하고 있다"거나 "유엔안보리나 ICJ 등의 제3자적 기관을 중개로 독도문제를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기술한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이 점거했다",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문제가 있다"는 기존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교과서들이 무더기로 통과된 것과 관련, 구라이 다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이날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강력히 항의하고 일본 측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담은 외교문서를 전달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여전히 일본 영토로 부당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이번에 1개종(실교출판사)이 증가해 총 12개종에서 기술하고 있다. 영토분쟁의 시각에서 접근한 독도문제와 달리 위안부문제에 대해선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시미즈서원의 일본사 교과서에선 기존의 '위안부로서 연행되는'이라는 표현이 '일본군에 의해 연행되어'라고 기술, 기존의 모호했던 연행의 주체가 명확하게 기술됐으며 짓쿄사가 만든 교과서에선 '위안부란 강제 모집돼 일본병사를 성적으로 상대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라는 정의가 적시됐고, 고노담화 등의 일본 정부의 반성의 내용을 담겼다. 다만 이번엔 후소사, 지유사 등 보수·우익 성향의 출판사들이 포함돼 있지 않아 일률적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역사인식은 일시적 대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 객관적 사실의 측면에서 꾸준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통과된 고교 사회과 교과서 39종은 현재 일선 학교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이번에 통과된 21종에 대해선 올해 7~8월 채택과정을 거쳐 내년 3~4월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게 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13-03-26 20:08:39내년부터 일본 고등학생들이 사용할 교과서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한층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일부 교과서에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국제사법재판소(ICJ)를 통해 독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추가됨으로써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주목된다. 일본문부과학성은 26일 오후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 심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교과서들을 포함해 총 21종의 고교 사회과 교과서들을 통과시켰다. 4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교과서 개편·검정에서 역사인식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취한 것으로 파악된다. 독도에 대해선 국제 영토분쟁으로 분류해 우경화 수위를 높이는 한편, 국제적으로 비난 여론이 거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일부 교과서를 중심으로 전향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번 검정 대상 21종 가운데 독도문제가 기술된 건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3종(짓교출판·시미즈서원·도쿄서적)을 포함해 총 15종이다. '한국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점유하고 있다'거나 '유엔안보리나 ICJ 등의 제3자적 기관을 중개로 독도문제를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기술한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이 점거했다'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문제가 있다'는 기존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외교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교과서들이 무더기로 통과된 것과 관련, 구라이 다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이날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강력히 항의하고 일본 측에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담은 외교문서를 전달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여전히 일본 영토로 부당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데 대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이번에 1개종(실교출판사)이 증가해 총 12개종에서 기술하고 있다. 영토분쟁 시각에서 접근한 독도문제와 달리 위안부문제에 대해선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시미즈서원의 일본사 교과서에선 기존의 '위안부로서 연행되는'이라는 표현이 '일본군에 의해 연행되어'라고 기술, 기존의 모호했던 연행의 주체가 명확하게 기술됐으며 짓교사가 만든 교과서에선 '위안부란 강제 모집돼 일본병사를 성적으로 상대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라는 정의가 적시됐고, 고노담화 등 일본 정부의 반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이번엔 후소사, 지유사 등 보수·우익 성향의 출판사들이 포함돼 있지 않아 일률적으로 예단하기는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역사인식은 일시적 대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 객관적 사실의 측면에서 꾸준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13-03-26 17:33:21■5개 인디언 부족, 백인 생활방식 수용 체로키, 촉토, 치카소, 크리크(또는 머스코기) 그리고 세미뇰족을 흔히 '5개의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으로 부른다. 영국계 이민자들의 잣대로 볼 때 유럽 문명을 받아들여 백인들의 생활방식을 따르는 인디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시대 조류의 변화를 잘 파악해 유럽식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해 나가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현실에 충실했던 인디언식 개방주의자인 셈이다. 크리크족 중 문명화를 거부하고 전통적 생활방식을 고수한 붉은 막대 지파는 백인들과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대체로 이들 5개 부족은 유럽 이민자들로부터 인간적 처우를 받았으며 백인과 결혼하는 사례도 흔했다. 부족민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가 되었으며 일부 인디언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면서 흑인 노예까지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1830년대에 들어와서는 백인들의 끝 모르는 탐욕에 희생돼 모두 고향 땅에서 쫓겨나 홍인종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는 오클라호마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만다. 이들 다섯 부족은 흙피라미드 문명의 마지막 시대인 미시시피 문명(기원후 800년 무렵부터 1500년대 유럽인이 침입할 때까지 번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미시시피 문명 5개 부족'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들이 살던 미국 동남부는 아열대성 기후에 강수량도 풍부해 농사 짓기에 매우 적합한 땅이었다. 따라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 지역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정착생활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부족민의 상당수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에 살았으며, 추장에 의해 통치되고 높은 수준의 군사조직까지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부족 중 체로키가 가장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쿼이 어족에 속하는 체로키의 현재 부족민 인구수는 약 30만명으로 이는 나바호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인구수다. 촉토족과 함께 치카소, 크리크, 세미뇰 족은 모두 머스코기언 어족에 속한다. 미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내전을 치르는 동안 다섯 개 부족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했다. 촉토와 치카소는 적극적으로 남군을 지지한 반면 크리크와 세미뇰은 북군 편에 섰다. 체로키는 부족 내에서도 둘로 나뉘어 다수가 남군을 위해 싸웠으나 소수는 북군 편에 서서 싸웠다. 이들 다섯 부족민은 미시시피강의 서쪽으로 쫓겨가야 하는 불운을 당했지만, 체로키족 일부는 스모키산 깊숙이 도피해 화를 면하기도 했고, 세미뇰족 일부는 끝까지 저항해 백인들의 강제이주정책 포기를 얻어내기도 했다. 특히 세미뇰 인디언 중 약 500명은 미군의 집요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 오클라호마로 강제추방을 피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현재 그들의 후손이 플로리다의 에버글레이드 호수 주변에서 상당한 관광수익을 올리면서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오늘날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체로키 인디언보호구역에는 오코날루프티 인디언 민속마을이 만들어져 있다. 1750년 무렵 체로키 인디언들이 유럽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의 생활상을 기본 테마로 건설됐는데 이곳에서 옛 주거시설을 비롯해 무기와 민속공예품 등의 제작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들의 문명 수준은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져온 석기시대 문명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곳 민속마을에서 우리 민족의 고대문명 원형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체로키라는 말은 오늘날 경비행기와 지프차의 브랜드로 쓰여 비교적 친숙한 이름이 되기도 했다. '레이더스'라는 이름을 가진 록밴드는 1971년에 체로키 인디언의 비극적 운명을 노래하는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을 발표해 큰 히트를 했는데, 그해 7월 24일에는 빌보드 차트 1위에까지 올랐다. 슬픈 사연으로 가득찬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콰이야와 체로키 문자 그들은 체로키 땅 전부를 가져갔네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집어넣고 우리의 생활방식, 손도끼 그리고 활과 칼마저 가져가 버렸네 우리 고유의 말도 빼앗고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네 그리고 우리가 손으로 꿴 구슬들은 지금은 일본에서 만들어내고 있다네 체로키 사람들, 체로키 부족 자랑스럽게 살고 자랑스럽게 죽네 그들은 인디언 나라의 전부를 가져갔네 우리를 이 보호구역에 가둬놓고 내가 셔츠와 타이를 걸치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선 인디언이라네 체로키 사람들, 체로키 부족 자랑스럽게 살고 자랑스럽게 죽네 그러나 아마도 언젠가 그들이 깨닫게 되면 체로키 나라는 다시 살아나리라 다시 살아나리라 다시 돌아오리라 ■세콰이야 5개 부족 중 체로키족이 백인의 생활방식에 가장 가까이 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한 걸출한 인재의 역할이 컸다. 세콰이야라는 선각자는 체로키 말을 기록할 수 있는 체로키 문자를 고안했다. 체로키 네이션은 1825년에 이 문자체계를 체로키 공식문자로 채택했다. 체로키 네이션은 1828년부터 우스터 선교사와 힘을 합쳐 체로키 네이션의 수도였던 에코타에서 '체로키 피닉스'라는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신문은 체로키 문자와 영어를 함께 사용했다. 조지아주 정부는 우스터가 조지아 주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체로키족 영토로 들어와서 인디언을 돕고 있다고 판단해 그를 체포하여 투옥했다. 체로키족이 강제추방으로 어려웠던 시기에는 발행이 중단된 적이 있지만 이 신문은 오늘날까지도 인터넷신문 발행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정부가 1980년 말부터 20년간 수행한 '위대한 미국인 기념우표 발행사업'의 일환으로 세콰이야, 레드 클라우드, 크레이지 호스, 시팅 불 등 네 명의 인디언을 선정해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김철 전 한양대 겸임교수
2015-12-31 17: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