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북한과 가까운 쿠바와 수교를 맺는 데 성공했다. 1999년부터 시도해온 25년 노력의 결실을 본 것이다. 정부에선 대(對)사회주의권과 중남미 외교의 '미싱링크'를 채웠다는 점, 또 북한이 '형제국'이라 칭하는 최우방과 수교함으로써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를 강조했다. 이번 수교가 가능했던 이유로는 쿠바의 경제난이 가장 컸다는 분석이다.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한국과 쿠바의 주유엔대표부가 미국 뉴욕에서 외교공한 교환 형식으로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최종 합의했다고 전했다. 국가안보실에 의하면 물밑 합의가 이뤄진 건 지난 설 연휴 때였고, 곧장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면서 13일 국무회의에 비공개 안건으로 올라 의결됐다. 북한의 견제를 의식해 극비리에 진행한 것이다. 안보실 고위 관계자는 "쿠바와의 수교는 오랜 염원이자 과제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안보실과 외교부를 비롯한 유관부처의 긴밀한 협업, 다각적 노력의 결실"이라며 지난해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 측 고위 인사와 세번 접촉한 것, 또 수교 교섭을 맡은 허태완 주멕시코 대사가 쿠바를 직접 방문해 협의했던 노력을 언급했다. 쿠바와 수교를 맺은 의미에 대해선 중남미 모든 국가와 관계를 가지며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외교적 지평이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사회주의권과 중남미 국가들 중 유일한 미수교국이었다는 점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쿠바 빼고는 모든 사회주의권, 중남미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었기에 이제야 빠진 고리를 채웠다는 의미가 크다"며 "미싱링크와 같은 공백을 채웠기에 우리 외교의 폭이 확실히 넓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대한 대목은 북한이다. 안보실에 따르면 쿠바는 1986년 3월 북한과 친선 조약을 통해 '형제적 연대성 관계'를 맺은 나라라는 점에서, 이번 수교는 북한으로선 가장 믿고 있던 우방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정치적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있는 현실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기대다. 특히 안보실은 쿠바가 북한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것을 두고 "대세가 누군지 분명히 보여줬다"고 자평했는데, 구체적으로 남북의 경제력 차이가 큰 요인이라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쿠바는 미국의 제재를 받는 것은 물론 관광으로 먹고 살다가 코로나를 거치며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워낙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이념적인 것을 떠나 한국과 협력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자국 내 반응이 큰 한류와 많은 관광객들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만 쿠바와의 수교를 북한 견제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북한으로선 충격적이고 '이제 믿을 건 러시아뿐'이라는 정도의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쿠바는 우리와의 수교의 결정적 배경이 경제발전이라서, 그 외에 이념적인 문제는 없다고 하면서 북한과 단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쿠바와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미국의 제재다. 쿠바에서 원하는 경제발전을 위해선 통상 확대와 자유로운 관광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미국이 걸림돌이 된다. 안보실에 따르면 쿠바와의 교역은 미국의 제재로 인해 제3국을 통한 대금결제를 해야 해 규모가 약 2000만달러에 불과한 상태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4-02-15 18:55:55[파이낸셜뉴스] 이달 출범한 아르헨티나의 우파 정부가 전임 좌파 정부에서 비현실적으로 부풀려 놓은 화폐 가치를 약 54% 깎았다. 외신들은 이번 조치로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새 정부가 경제난을 인정하고 대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카푸토 신임 경제 장관은 12일(이하 현지시간) 새 정부의 첫 번째 비상 경제조치 10가지를 공개했다. 10가지 정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폐 가치를 반으로 깎는 조치다. 카푸토는 이날 기준 달러당 366.5페소인 공식 환율을 달러당 800페소로 조정한다고 예고했다. 지난 10월 기준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142.7%를 기록했던 아르헨티나는 정부가 환율을 결정하는 고정환율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정권들은 경제난 속에 모자란 외환보유고를 감추고 자본 이탈을 막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환율을 제시했다. 12일 기준 현지 암시장 환율은 달러당 1070페소에 이르렀다. 정부의 비현실적인 환율은 외국 투자자들의 아르헨티나 투자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10일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대선 운동 당시부터 페소를 버리고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도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 추락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미 JP모건체이스는 밀레이 취임 직후 페소 가치가 약 44% 떨어진다고 내다봤다. 밀레이는 취임식에서 자신이 전임자에게 물려받은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수개월 동안 고통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르헨티나 물가가 수개월에 걸쳐 20~40% 가까이 더 오른다고 예상했다. 카푸토는 12일 발표에서 환율 조정 외에도 에너지·교통 보조금을 삭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는 사람들 주머니에 돈을 넣어준다는 식으로 속이고 있는데, 우리는 모두 보조금이 무료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트에서 인상된 가격으로 사람들의 교통비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카푸토는 1년 미만의 정부 근로 계약 미갱신, 새로운 공공사업 입찰 중지, 일부 세금 잠정 인상안도 언급했다. 동시에 정부부처를 절반으로 줄이고 수입 절차를 간편하게 개편한다고 밝혔다. 밀레이 정부는 일단 사회취약계층 보조금은 그대로 유지하고 보편적 아동 수당을 인상할 예정이다. 카푸토는 "지난 123년 중 아르헨티나는 113년 간 재정 적자를 겪었고, 항상 그 적자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며 "이제는 재정 적자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별도의 녹화 영상에서 "주요 문제는 재정 적자"라며 "경제난에 대한 결과만 공격할 뿐 누구도 재정 적자라는 원인에 대해서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IMF의 줄리 코작 대변인은 카푸토의 발표 직후 “과감한 시작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아르헨티나 정부의 결정적인 정책 시행은 경제 안정 및 민간 주도의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1956년 IMF 가입 이래 구제금융을 22차례 받았으며 이미 440억달러(약 58조원) 규모의 구제 금융 지원을 받아 내년 9월부터 이를 갚아야 한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12-13 10:09:57[파이낸셜뉴스]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중국에 더 크게 손을 벌렸다. 중국에서 돈을 빌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상환하기로 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세르지오 마사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중국에서 65억달러(약 8조8000억원)를 위안화로 빌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마사 장관은 오는 22일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 여당인 중도좌파 페론 연정 후보로 나선다. 대선을 앞두고 경제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IMF 구제금융 상환 자금을 중국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날 중국의 일대일로 행사에 참석해 이같은 양측 통화스와프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아르헨티나는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외환보유액이 위험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이때문에 중국인민은행(PBOC)과 외환스와프 협정도 맺은 상태였다. 아르헨티나중앙은행(CBA)은 지난 4월 180억달러 통화스와프에 처음 접근해 그동안 50억달러 못되는 규모의 위안을 조달했다. 주로 아르헨티나 기업들이 수입대금을 지불하는데 썼다.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 부양을 위해 묶어 뒀던 달러를 회수하는데도 이 돈이 사용됐다. 마사는 이날 아르헨티나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이번에 추가로 확보하는 65억달러 규모의 위안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하게 된다고 밝혔다. 마사는 아울러 이 돈은 또한 IMF에서 빌린 구제금융을 '조기 상환'하는데도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엄청난 소식"이라면서 "시장을 상당히 안정시키고,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숨통을 터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르헨티나는 IMF 구제금융 440억달러 가운데 1차로 26억달러를 이달 중 갚아야 한다. 상환이 늦어져 체납이 발생할 경우 가뜩이나 대선을 앞두고 흔들리는 시장이 더 요동칠 수도 있다. 오는 22일 치러지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마사와 함께 주류 우파인 파트리치아 불리치, 비주류인 자유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맞붙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이가 다음달 18일 2차 결선 투표에 올라갈 확률이 가장 높다. 마사나 불리치 가운데 한 명이 1차 투표에서 패배할 전망이다. 밀레이가 선전하면서 금융시장이 휘청거리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하이퍼인플레이션(초물가상승)도 시장을 흔드는 요인이다. 아르헨티나의 9월 물가상승률은 138%를 찍었다. 중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맞았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컨설팅업체 로마노그룹 리서치 책임자인 살바도르 비텔리는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이 채무를 빼면 현재 약 76억달러 적자 상태라면서 중국측 통화스와프 확대가 없었다면 마사가 IMF 상환금 마련을 위해 다른 달러 조달원을 찾아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은 IMF가 채무상환 통화로 수용하는 5개 통화 가운데 하나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3-10-19 04:52:05경제난이 가중되는 가운데 여러 노조들이 동시다발로 '추투(秋鬪·노조의 가을 투쟁)'에 나서고 있다. 13일부터 국가 기간산업체인 현대차, 기아, 포스코 등과 철도노조 등 공기업들이 파업을 벌인다고 한다. 노조들은 경제 호황기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있다. 현대차는 정년 64세로 연장, 전년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 등을 수용하라고 한다. 기본급 10만1000원 인상, 성과급 300%+750만원 지급이라는 사측의 제안도 거부했다. 기아도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한다. 포스코의 노사 임단협 교섭이 결렬된 것은 1968년 창사 이래 처음, 즉 노조가 파업을 하겠다고 나선 게 55년 만에 처음이다. 철도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이달 중순부터 11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공동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주된 요구는 민영화 반대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노조의 요구들은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도를 넘어섰거나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들이다. 근로자의 정년은 법으로 60세로 정해져 있는데 현대차만 4년을 늘려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는 아직 정부가 공식화한 적도 없는 사안이다. 지레 선수를 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는 경영효율성의 차원에서 정부가 판단할 문제다. 파업을 벌이겠다는 기업들의 이름만 들어도 고임금을 받는, 이른바 '귀족노조'로 불리는 거대기업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적 경제불황으로 대다수 기업들은 경영난에 직면해 있다. 파산에 내몰린 기업도 많다. 이런 판국에 나라경제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나만 잘살고 보겠다는 노조의 파업은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물론 현대차가 품질 좋은 차를 만들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경영성과를 거두고 있긴 하다. 그러나 잘나갈 때일수록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미래차 개발과 시장개척을 위한 투자에 큰돈이 든다. 영업이익을 많이 냈다고 임금을 그만큼 올려주면 투자할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포스코의 경우도 노조 요구를 다 들어주면 노조원 1인당 연봉을 9500만원씩 올려주는 것이라는 사측의 주장이 맞는다면 과한 정도가 아니다. 하반기에 경제사정이 풀릴 것이라고 했지만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국제유가는 연말까지 계속 올라 물가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 삶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꼬박꼬박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 공기업 노조원들이 도로를 점거하며 벌이는 무법천지의 파업에 국민들은 이미 신물이 나 있고 일말의 동조도 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선에서 노사는 합의를 이끌어내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 민생과 국가경제는 안중에도 없이 나만, 노조만 우선시하다가는 공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2023-09-11 18:12:34부동산과 연계된 갈등이나 분쟁으로 법원을 찾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택·상가 세입자와 집주인 혹은 건물주간 벌어지는 명도소송은 민사소송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명도소송은 세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부동산 인도를 거절하는 경우 소유권자가 부동산을 비워달라는 목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매수인, 매수인의 상속인 등 매수인의 일반 승계인이 제기할 수 있으며 제기 기간은 제한이 없다. 주로 경매를 통해 부동산의 소유주가 바뀌었을 경우에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 경제난으로 임대료, 월세 지급 능력이 떨어지고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이 증가하면서 더욱 늘었다. 대법원의 '2022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제기된 명도소송은 3만5063건으로, 민사소송 중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함께 가장 많았다. 명도소송은 2017년 3만5566건, 2018년에는 3만9400건, 2019년 3만6709건, 2020년 3만3729건으로 최근 10년 간 해마다 3만 건이 넘는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민사소송에서 매년 3만건 이상이 제기되는 소송은 손해배상과 명도소송 정도다. 명도소송은 명확한 권리 여부를 따지는 소송이라 항소와 상고 비율이 크게 낮다는 점도 특징이다. 2021년 사법연감에서도 접수 기준으로 1심 3만2076건이 제기됐지만 항소심 2472건, 상고심 515건을 기록했다. 즉, 1심에서 대부분 결과가 판가름 난다는 의미다. 소송에서 건물주가 승소했다면 강제 집행으로 점유자를 내보낼 수 있다. 판결문에는 일반적으로 인도 시기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나가지 않고 버티는 세입자도 드물지 않다. 보통 건물주는 명도소송에서 승소 판결문이 나온 직후부터 강제집행 신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판결문의 시효는 기본적으로 최소 10년이며, 10년 이후에도 시효연장 판결을 받으면 강제집행에 문제가 없다. 명도소송에 걸리는 기간은 사건의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근 재판지연 등의 흐름을 보면 최소 6개월 이상이 일반적이다. 명도소송 전문인 법도 명도소송센터의 소송 기간 통계에 따르면, 가장 오래 걸린 소송은 21개월이었다. 양측 권리에 따른 법리 논쟁이 복잡한 사건일수록 길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몇 년을 넘기기도 한다. 흔한 소송이지만 소송 기간과 비용 부담이 적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소송 중 한쪽이 자신의 권리를 넘기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사망해 상속자가 대신 소송에 나서는 등 상황이 꼬이면 더욱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부담을 방지하고 싶다면 제소전화해가 있다. 제소전화해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 화해를 한다는 뜻으로 법원에서 성립 결정을 받는 제도다. 화해조서가 성립되면 강제집행 효력을 가져 주로 상가임대차 관계에서 많이 활용된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2023-08-10 17:48:56[파이낸셜뉴스]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사람들이 밀가루 등 구호품을 서로 받겠다고 몰려들었다가 압사하는 사건이 속출해 누적 사망자가 20명을 넘어섰다. 1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남부 카라치의 산업·무역지구에 한 기업이 설치한 구호품 배급소에 인파가 몰리면서 12명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는 좁은 배급소에 600∼700명이 갑자기 몰리면서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줄을 서는 등의 질서 유지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며, 일부는 덮개가 없는 배수구에 빠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망자 대부분은 여성으로, 여성들이 열기에 혼절했고 압사당했다"며 "관리 소홀을 이유로 공장 직원 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이슬람의 성월인 라마단 기간 동안 사업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 또는 음식을 나눠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구호 활동이 오히려 곳곳에서 비극으로 이어졌다며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달에도 곳곳의 무료 밀가루 배급소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면서 북서부 지역과 동부 펀자브 지역에서 각각 8명, 3명이 압사한 바 있다. 한편 파키스탄 경제는 중국 일대일로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 인해 대외 부채에 시달리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 불안, 대홍수 등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연속 20% 이상 폭등했으며, 곳곳에서 단전도 지속되는 등 극악의 상황에 치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키스탄 정부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소득층에 무료 밀가루를 배분을 계획하고 나섰으나 이날 압사 사건이 벌어진 배급은 정부 계획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04-03 08:46:40[파이낸셜뉴스] 북한 노동당 선전매체 노동신문은 지난 5일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열렸다고 24일 보도했다. 이날 신문은 24일 1면 사설에서 “사회주의 애국운동, 혁명적인 대중운동은 사회주의 건설의 위력한 수단”이라고 강조하고 ‘건국사상 총동원 운동’과 ‘증산경쟁 운동’, ‘애국미 헌납 운동’, ‘천리마 운동’ 등 해방 후 지금까지 북한 정권이 통치술로 활용했던 대중운동들을 언급했다. 북한 당국이 경제난 타개책을 내놓지 못해 주민들에게 사회주의 애국운동을 강조함으로써 사상무장을 통해 생산력을 끌어올리고 주민들로부터 국가를 위한 헌신과 헌납을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국가 부흥발전의 강력한 추동력인 사회주의 애국운동, 혁명적인 대중운동을 활발히 조직하고 옳게 이끌 것”을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에 따라 열린 궐기대회의 목적은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연초부터 사회주의 애국운동을 강하게 밀어 부치면서 ‘주민쥐어짜기식’ 통치술을 동원, 주민들의 노동력과 자금을 끌어내기 위한 대중운동을 강하게 전개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4일 자 보도에서도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 12월 한 농민이 나라에 곡식을 바친 것을 계기로 벌어진 ‘애국미 헌납운동’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대외선전매체 ‘류경’도 23일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일군들과 청년동맹원들이 수백t의 알곡을 애국미로 헌납하는 아름다운 소행을 발휘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국가경제개발 5개년 계획 3년 차를 맞았지만 수십년 전에 벌리던 대중운동을 재개한 것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경제난이 오히려 심화한 데 따른 고육책이라는 관측이다.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된 악재가 겹친 가운데 퇴행적인 자력갱생 노선을 천명하면서 경제난 타개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북한 매체들의 언급이 잦아지고 있는 ‘애국미 헌납운동’은 보릿고개가 오기도 전인 1월 말 현재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쌀과 옥수수 시장 가격에서 보듯 식량난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궐기대회 등 운동을 전개해 자연재해와 북·중 국경봉쇄, 제재 등으로 비워진 곳간을 주민들의 헌납으로 채우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탈북민 출신의 관계자는 ‘애국미 헌납운동’은 해방 직후 북한 정권 태동기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같은 비상한 시기에 전개됐었다며 장마당 활동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이들은 물론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일반 주민들도 부담하는, 사실상 강제적인 준조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흐름은 주민의 정신무장 외에는 지금의 경제난을 극복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의 정권 수립기나 주민 동원과 노력 경쟁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를 성장시켰던 1960년대와, 지금의 북한 주민들은 이런 대중운동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고 진단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01-25 06:45:40[파이낸셜뉴스] 미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최근 여러 형태의 도발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심각한 경제난은 숨기는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난이 심화하면 군사력 증강은 물론 체제 유지에도 타격을 주는 만큼 이런 취약성을 공략하고 대북 지원에 신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탈북민으로 미국에서 거주하는 익명을 요구한 A씨는 미국의소리(VOA)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 내 가족과 통화 과정에서 가족들의 어려운 생활을 전해듣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생필품도 엄청 비싸졌고, 장마당에 쌀과 강냉이는 그래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살 수 없어 굶주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전했다. 북한 주민들 중에 중국과 밀무역으로 살아가던 가족 등 많은 연선 지역 주민들이 국경 봉쇄로 3년 가까이 발이 묶이면서 생활이 심각하게 피폐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북한 내 주요 생필품 가격은 북·중 교역이 끊어지면서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세 배 정도 올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과 대북 소식통들의 분석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보고서에서 북한 국내총생산(GDP)이 지난 5년간 연평균 2.4% 축소됐고 대외무역은 “1955년 이후 최저라는 초유의 수준으로 급감해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다량의 미사일과 포 사격으로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이런 경제적 치부는 숨기는 이중적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는 '군사력을 위해 경제력을 보유해야 하는 등 균형을 추구'하지만 김정은은 그런 접근법을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생산을 독려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런 실책 때문에 김정은은 군사력을 과시해 주민들의 시선과 국제사회의 이목을 끈 뒤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 지원을 받아 문제 해결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발상을 했다면 미국과 한국이 호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순진한(awfully naïve)”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경제전문가인 메릴랜드주립대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난과 물가상승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과 불만족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큰 문제에 봉착하면 그것을 숨기고 다른 문제를 꺼낸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이 식량 상황에 관해 걱정하면 식량 상황을 주민들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대신 한국, 미국과의 갈등, 연합군사훈련 등에 관해 말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이 심각한 식량이나 경제문제로부터 관심을 돌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새 장 속에 갇힌 김정은과 북한의 구조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도발 등 군사력 과시에만 초점을 두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북한의 경제적 취약점을 간파해 포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연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연구원장은 최근 동아시아연구원(AEI) 강연과 언론 기고 등을 통해 "김정은의 핵·경제 병진 노선 즉 '핵을 쥐고 경제를 동시에 쥐면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것은 생존 코드"라고 설명하고 "이것을 핵·경제 상충구조인 '핵을 쥐면 경제를 포기해야 하고 경제를 얻으려면 핵을 놔야 한다'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를 이긴 독재자는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화력 쇼만 보고 과잉 대응하기보단 경제 취약점을 파고들어 김정은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북한이 소규모의 재원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해 왔기 때문에 근근이 버틸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도있다. 북한 김일성대에서 경제학 고위 과정을 마친 한 엘리트 출신 탈북민은 10일 VOA에 “북한 경제는 군수, 당, 내각 경제 3가지로 돌아간다”면서 군수와 당은 내각이 절대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여력이 있을 것”이라며 또 올가을 곡물 작황이 괜찮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아직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랜드연구소의 베넷 선임연구원은 이런 우려 때문에 김 위원장이 외부 정보 유입을 더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엘리트들도 심각한 경제 상황에서 군사력만 내세우며 위험을 무릅쓰는 김정은에 대해 불만이 쌓이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향후 김정은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2-11-12 12:49:04【파이낸셜뉴스 베이징·서울=정지우 특파원 박종원 기자】 코로나19 창궐 이후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이 정부와 투자시장에 불리한 경제 통계를 적극적으로 감추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경제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점점 더 애매한 민간 정보를 찾아봐야 하는 형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지을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 동안 최소 11개의 경제 실적 발표가 연기됐다. 중국 국가통계국 일정표 기준으로 이 같은 대규모 연기 사례는 사실상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경제난 신호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일 중국 국가통계국 홈페이지에 지난 17일 올라온 주요통계정보 발표 일정표를 보면 '연기하다(延期)'라고 표시된 지표는 모두 10개다. 전날 예정됐던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와 함께 분기별 주요업종 부가가치 잠정계산보고서, 전국 공업생산능력 가동률 분기 보고서 등이 모두 미뤄졌다. 또 9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도시지역 고정자산투자, 부동산 개발·분양, 에너지생산도 연기됐다. 70개 주요도시 주택 판매 9월 지표는 당초 이날로 계획이 잡혔지만 역시 발표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매달 내놓는 국민경제상황 브리핑도 미뤘다. 여기다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는 수출입 통계를 기존 14일에서 17일로 미룬 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통계국은 2007년 1월부터 모두 16차례 주요통계정보 발표 일정표를 홈페이지에 올려놨으나 이처럼 '연기'라고 적시한 적은 없다. 주요 실적 통계는 아니지만 발표 일정 연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8월 10일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를 하루 뒤 국민경제상황브리핑과 함께 발표했다. 2015년 9월의 경우 3~5일이 공휴일 연휴라는 점을 감안해 9일 발표할 CPI·PPI 통계를 다음날 공개한다고 그해 8월 26일 밝혔다. 2020년 2월 4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문화 관련 산업 통계를 6일에서 14일로 연기한다"고 국가통계국은 당시 전했다. 2007년 3·4분기 GDP 발표는 10월 24일에서 26일로 이틀 미뤘으나 국가통계국 주요 일정표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연기 사유와 향후 재조정 지점을 공지했다는 점이 올해와 다르다. 아울러 2007년을 제외하곤 경제 실적보다는 대부분 경기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였다. 한국은행 베이징 대표처는 "국가통계국이 과거에도 일정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연기 이유와 향후 일정 등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주로 옛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사례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외신은 당대회의 성공을 위해 지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좋지 않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중국 6대 국유은행이 외환 선물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현물시장에서 파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다는 점도 중국 경제난의 방증으로 지목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 "중국 금융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국유은행을 동원한 것은 3조달러 선이 위태로워진 외환 보유액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발표 연기를 데이터 조작 논란과 연관시키는 해석도 제기된다. 외신은 "중국 정부는 오랫동안 데이터를 조작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면서 "이런 불확실성은 정부의 데이터 품질 개선과 허위보고 단속 노력을 방해한다"고 진단했다. 앞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통계 논란이 지속되자 올해 6월 "2·4분기 주요 지표를 사실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고, 국가통계국은 "통계 조작을 예방하고 징벌하는 것은 통계 데이터의 질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향"이라고 브리핑을 통해 천명했다. 중국 최고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는 장쑤성 당위원회 장징화 부서기를 당적과 공직에서 제명하는 '솽카이' 처분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 데이터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2-10-19 18:39:16【베이징·서울=정지우 특파원 박종원 기자】 코로나19 창궐 이후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이 정부와 투자시장에 불리한 경제 통계를 적극적으로 감추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경제 상황을 가늠하기 위해 점점 더 애매한 민간 정보를 찾아봐야 하는 형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지을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 동안 최소 11개의 경제 실적 발표가 연기됐다. 중국 국가통계국 일정표 기준으로 이 같은 대규모 연기 사례는 사실상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경제난 신호가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19일 중국 국가통계국 홈페이지에 지난 17일 올라온 주요통계정보 발표 일정표를 보면 ‘연기하다(延期)'라고 표시된 지표는 모두 10개다. 전날 예정됐던 3·4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와 함께 분기별 주요업종 부가가치 잠정계산보고서, 전국 공업생산능력 가동률 분기 보고서 등이 모두 미뤄졌다. 또 9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도시지역 고정자산투자, 부동산 개발·분양, 에너지생산도 연기됐다. 70개 주요도시 주택 판매 9월 지표는 당초 이날로 계획이 잡혔지만 역시 발표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매달 내놓는 국민경제상황 브리핑도 미뤘다. 여기다 관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는 수출입 통계를 기존 14일에서 17일로 미룬 뒤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가통계국은 2007년 1월부터 모두 16차례 주요통계정보 발표 일정표를 홈페이지에 올려놨으나 이처럼 ‘연기’라고 적시한 적은 없다. 주요 실적 통계는 아니지만 발표 일정 연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8월 10일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를 하루 뒤 국민경제상황브리핑과 함께 발표했다. 2015년 9월의 경우 3~5일이 공휴일 연휴라는 점을 감안해 9일 발표할 CPI·PPI 통계를 다음날 공개한다고 그해 8월 26일 밝혔다. 2020년 2월 4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문화 관련 산업 통계를 6일에서 14일로 연기한다”고 국가통계국은 당시 전했다. 2007년 3·4분기 GDP 발표는 10월 24일에서 26일로 이틀 미뤘으나 국가통계국 주요 일정표에는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연기 사유와 향후 재조정 지점을 공지했다는 점이 올해와 다르다. 아울러 2007년을 제외하곤 경제 실적보다는 대부분 경기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였다. 한국은행 베이징 대표처는 “국가통계국이 과거에도 일정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연기 이유와 향후 일정 등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며 "주로 옛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사례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외신은 당대회의 성공을 위해 지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제가 좋지 않다는 신호”라고 풀이했다. 중국 6대 국유은행이 외환 선물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현물시장에서 파는 방식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다는 점도 중국 경제난의 방증으로 지목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식통을 인용, “중국 금융당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국유은행을 동원한 것은 3조달러 선이 위태로워진 외환 보유액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발표 연기를 데이터 조작 논란과 연관시키는 해석도 제기된다. 외신은 “중국 정부는 오랫동안 데이터를 조작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면서 “이런 불확실성은 정부의 데이터 품질 개선과 허위보고 단속 노력을 방해한다”고 진단했다. 앞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통계 논란이 지속되자 올해 6월 “2·4분기 주요 지표를 사실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고, 국가통계국은 "통계 조작을 예방하고 징벌하는 것은 통계 데이터의 질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향”이라고 브리핑을 통해 천명했다. 중국 최고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는 장쑤성 당위원회 장징화 부서기를 당적과 공직에서 제명하는 ‘솽카이’ 처분하기도 했다. 그는 ‘경제 데이터를 조작한 혐의’를 받았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2-10-19 12: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