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8일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백골단에 이어 음모론자까지 국회로 불러들인 국민의힘은 극우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며 “‘윤상현 징계안’을 시작으로 따박따박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윤 의원 징계안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헌정질서를 부정하고 헌법재판소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자는 준동을 획책하는 자유민주주시민회의 대표 김진홍 목사와 세이브코리아 대표 손현보 목사, 한국사 강사 전한길 등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설 수 있도록 협조했다”며 직권남용 혐의를 규정한 형법 제123조와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제4조를 위반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또 “국회의원 윤상현은 국가적 혼란과 사회적 위기를 수습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해태하고, 오히려 헌정질서와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행위, 사회의 자유와 정의를 폭력으로 위협하는 행위에 동참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윤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전씨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씨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면 헌법재판관들은 ‘제2의 을사오적’이 돼 역사 속에 기록될 것”이라며 “(헌법학자) 허영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헌재는 가루가 돼 사라질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전씨는 지난 15일 세이브코리아가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윤 대통령은 억울하게 구치소에 갇혀 있다”며 “나도 처음엔 12·3 비상계엄 선포를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거대 야당이 29명을 탄핵한 반민주적 행위를 알게 됐고, 비상계엄이 ‘계몽령’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윤 대통령 구속을 촉구하는 농민단체의 ‘트랙터 시위’에 대해 “몽둥이가 답”이라고 말한 윤 의원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윤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민주당이 저를 기어코 9성 장군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한다”며 “그만큼 윤 대통령 탄핵 각하를 위해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2-28 20:23:27[파이낸셜뉴스] "나는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인단 중 한 명인 김계리 변호사의 이 한 마디는 대중에 회자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해당 발언은 김 변호사가 지난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기일에 종합변론 주자로 나서며 했다. 이후 이 말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차용됐다. 탄핵을 반대하는 쪽은 윤 대통령의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고, 반대편은 계엄을 계몽령이라 말하는 윤 대통령의 주장을 비꼬는 용도로 쓰고 있다. 이제 '람보르계리'라 부른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김 변호사의 한 마디 말을 두고 "비상계엄 선포는 '계엄령'이 아닌 민주당, 반국가세력으로부터 국민들의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한 '계몽령'이라는 강경 보수층의 주장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지와 응원이 쏟아지는 이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제 우리는 그녀를 람보르계리라 부르기로 했다. 계몽된 아기 엄마"라거나 '계몽계리', '퀸계리' 등의 호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보수 커뮤니티엔 "윤느님(윤 대통령) 영접한 김계리 간증은 역대급"이라며 헌재에서 발언한 김 변호사의 영상을 봤다는 인증글도 속속 올라왔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김 변호사도 적극적인 대외 활동에 나서고 있다. 28일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리는 '3·1절 전야집회 청년 만민공동회'에 참석한다. 이 자리엔 매주 토요일 전국을 돌며 탄핵 반대 집회를 열고 있는 '세이브코리아'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 등이 함께 한다. 온라인에도 "우리 편이라서 든든하다"며 대표적인 보수 유튜버로 꼽히는 그라운드C의 이름을 가져와 김 변호사를 계라운드C라 칭하며 응원하고 있다. 尹, 계엄계몽학의 창시자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다. 패러디물로 윤 대통령의 '계몽령'을 설파한 김 변호사 논리를 꼬집기도 했다. '역사뇌피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은 지난 26일부터 간단한 투표를 시작했다. "'계몽주의 학자'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이라는 질문과 함께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 루소, 네덜란드의 합리주의 철학자 스피노자와 함께 윤 대통령의 이름을 올렸다. 27일 오전 10시 현재 7100여명 중 65%의 표를 받은 윤 대통령이 압도적 1위다. 투표 내용에 대한 반응도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계몽주의 최고 권위자는 윤석열, 수제자는 계몽계리", "계엄계몽학의 창시자", "역시 우리는 해학의 민족이었다" 등 조롱 섞인 글이 대부분이다. 추억의 출판사인 '계몽사'가 소환되기도 했다. 풍자 일러스트를 그리는 전종원 작가는 '판사, 검사, 변호사 그리고…'라는 제목의 만평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한 네티즌은 "나 계몽사 다녔었는데"라는 글과 함께 계몽사 로고를 게시하기도 했다. 계몽사는 1946년 당시 경북 대구부에서 서점으로 시작해 동화책, 교육서적 등을 출판해 몸집을 키웠고 문화 사업까지 확장했다. 이후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까지 간 계몽사는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엔 계몽사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등록돼 영업 중이라는 정보만 적혀 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의 궤변을 대변하다 동기화된 걸 보여준 장면"이라며 해당 영상을 띄우기도 했다. 계몽령 외에도 김 변호사의 또 다른 발언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제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이라는 표현이다. 김 변호사는 “제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하려고 비워둔 시간을 나누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스레드엔 한 이용자가 "직장 여성으로 나는 왜 엄마들 모욕하는 것처럼 들릴까"라는 짧은 질문을 던졌다. 이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직장맘'이지만, 치열하게 나라를 고민했다"는 고백이 잇따라 댓글로 올라 왔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2025-02-27 12:43:19[파이낸셜뉴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란죄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저리도 뻔뻔스러울 수 있느냐”며 지적했다. 이준구 교수는 지난 1월 30일 자신의 누리집에 “죽은 사람이나 다친 사람 하나도 없이 끝났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윤 대통령이) 반문하는 모습을 볼 때 사람이 어떻게 저리도 뻔뻔스러울 수 있느냐는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이어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는 말이나, 의원을 끌어내라 한 것이 아니라 ‘요원’을 끌어내라 한 것이라는 도대체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윤석열과 내란 동조자들이 벌이고 있는 허언의 퍼레이드는 하나의 코미디극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정말 위험한 부분은 우리 사법제도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아무런 근거 없이 정당한 사법 절차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민주헌정 질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윤석열과 내란 동조자들이 우리의 민주헌정 질서에 가하고 있는 위협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에 융단폭격식의 공격을 가하고 있으며, 사법부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더티플레이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극도의 갈등과 혼란의 모든 책임이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에게 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며 “그런 윤석열이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허탈해 했다. 이어 윤 대통령을 향해 “음험하고 위험한 더티플레이로 국민을 이간질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민주헌정 질서에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인 이 교수는 함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경제학원론’을 집필하는 등 국내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그는 지난달 5일에도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 불응을 질타하는 글을 올리고 “남들은 다 지키는 법 질서를 헌신짝처럼 여기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2-06 05:33:40"우리는 고대 인류의 위대하고 복잡하게 발전된 감각적 인식과 지식을 거의 완전하게 상실했다". DH로렌스는 인간이 세상과 분리된 존재로 자각할 때 원초적 감정이 상실된다고 했다. 이 분리된 감정은 보통 자의식 발달의 결과로 해석된다. 고통과 불안, 욕망의 확장으로 인간은 세상과 단절된 채 거친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가는 생존의 기계로 변했다는 뜻이다. 보통 이런 과정에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충동과 지식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을 질서정연한 그 무엇으로 바꾸려는 지식과 욕망이 합쳐져 세상과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된다. ■자의식이 촉발한 지식폭발 분리 이전의 세계는 자연과 통합하며 소통하고 공동체와 연대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특징들이 인간세계를 지배했다. 자연 전쟁이나 소유에 따른 불평등, 집단 간 갈등이 거의 없거나 미미했다. 인간이 세상과 분리되는 것은 환경 변화와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치열한 생존 투쟁의 결과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생존하려면 경쟁과 갈등은 필수적인 과정이었고 이를 조직하기 위한 권력 형성의 과정도 뒤따라야 했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과 계급구조는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절대적 표상이다. 이른바 자의식의 발전은 소유욕과 지배력을 동반하며 세상을 '탈취'라는 개념으로 변모시켜 적대적 인식을 낳게 하는 원동력으로 여겨진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분석하고 생존에 필요한 지식으로 무장할 수 있는 '지식폭발'이라는 긍정적 결과도 만들어냈다. 자의식의 발전은 개인성의 시대를 앞당긴 촉매제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나'라는 사고 자체가 없었고 '우리'라는 공동체 감정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사회였다. 굳이 나를 앞세울 이유가 없었다. 자의식이 발전할 이유와 조건 자체가 갖춰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농경'이라는 인류의 문명사적 발전은 인간의 자의식을 폭발적으로 팽창시켰다. 정착과 농경은 많은 인구와 이를 관리하기 위한 고도의 행정체계가 필요했으며 다른 집단으로부터 자기 집단을 지켜야 하는 절박성으로 군대와 전쟁이 필요했다. 전쟁과 기부장제·사회적 불평등은 인류 사회의 온갖 억압과 차별을 강제하고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대한 역전'의 세계 자의식의 과잉 발전과 개인성의 확장은 이 모든 세계사의 지형을 변혁시켜 '거대한 역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인류가 지녔던 만족과 충만함의 감정을 잃고 정신적인 불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문명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분출됐다는 지적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렌슬롯 로 화이트는 기원전 2000년이 시작될 무렵 유럽인의 의식 분열과 마음과 몸의 분열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곧 이성적 자기의식이 발전하면서 마음은 분리된 독립체가 돼 몸으로부터 독립했고 사람들은 자기분열을 경험하는 것을 의식했다. 세익스피어가 햄릿에서 "결실이 갖는 천연의 혈색 위에 사색의 창백한 병색이 그늘지게 됐다"는 표현처럼 생각과 본능의 충돌,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이 사라진 것이다. 모든 비극의 뿌리는 세계와 분리되면서 시작한다. 분리와 소외는 세상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든다. 인간들이 벌이는 인정투쟁은 개인 차원을 넘어 집단 간 경쟁을 낳고 마침내 전쟁이라는 파국적 결말을 초래한다. 인간의 의식이 세상을 다른 그 무엇으로 인식하면서 비극의 서막이 열린다. 통합과 공감이라는 원초적 감정은 약해지는 반면 경쟁과 투쟁이라는 적대적 감정이 인류사회를 지배한다. 문제는 이런 감정들이 마치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여기면서 이를 인정하는 자세와 관행이다. 지나온 역사를 살펴보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 인정투쟁은 인류사회의 극히 짧은 순간 섬광처럼 나타난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인류 문명 이전에 살았던 원시사회는, 아니 인류 문명 초기만 해도 인간들은 소유하거나 지배하려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치밀한 고증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원시사회에서 자원은 늘 공동체에 동일하게 분배됐고 권력을 획득하거나 그럴 의사도 없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인정투쟁이라는 현상이 마치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거나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비역사적 태도다. 이런 사실을 전제로 한 모든 이론과 사상은 맹목적이고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전개되면 불평등·불공정·억압적 권위주의·성차별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부족주의와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나치가 우생학을 이용해 전쟁 야욕을 벌인 것처럼 한 집단이 이런 유사우생학을 현실적 통치수단으로 써먹게 되면 그 사회의 메커니즘은 파괴된다. 특히 한국사회는 권력기관들이 모든 권력구조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원칙을 파괴하는 기형적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수단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사회를 운영하고 지배할 수 있다는 과잉된 '자의식'을 획득했다. 권력을 통한 사회감시와 통제 기능은 급기야 이들에게 무한정의 자유와 정의라는 자의식의 확신을 심어주고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과 면죄부를 발급해주는 신성불가침의 표식이 됐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라는 자의식을 태동시킨 결과다. 반면 모든 사회집단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문화를 통해 이를 묵인·방조하면서 벌어진 현상일 수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는 별것 아닌 일로 여겨진다. 권력을 소유한, 혹은 소유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행위는 이런 비정상적 운영체제가 속속들이 체화돼 있어 배타성과 잔인성을 특징으로 한다. 계속 이어지는 정부채무 등의 논란도 이런 연장선이다. 정부채무가 급증하니 정부 지출을 줄이고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채무와 부채의 개념을 교묘히 혼용해 정부채무가 1000조원이 넘는다는 논리로 사회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무리한 재정지출 최소주의는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약화시키고 성장률 둔화, 재정 악화라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런 시도를 구체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재정준칙' 도입은 종전 통합수지로 잘 관리되던 재정을 관리수지라는 지표로 관리해 무분별한 재정 지출을 막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재정지출 최소화로 재정 적자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입을 해야 하고 이는 다시 정부 채무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부처의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집단들이 사회라는 전체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자신들만의 조직이익이나 논리로 운영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과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상상은 늘 현실이 된다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견제와 감시·감독이 시급하다. ■자기기만의 마술 계몽주의 시대에 볼테르는 낙관주의가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해악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인생이라는 회전목마에서 황금기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장밋빛 자기기만'이라는 마법을 곧잘 부린다. 약간의 자기기만은 강한 정신력에 더 유익하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기만은 '긍정적 착각'이라는 중립적 의미로 변했다. 쉽게 말해 긍정적 착각은 약간의 인지적 결함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뤄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끈질기게 붙들고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현실에서는 이런 자기기만이라는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구세주라는 증거가 많다. 기만의 '기이한 연금술'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러니 기만에 취한 뇌는 앞뒤 재지 않고 자신이, 또는 특정 집단이 설정해놓은 좌표를 향해 나아간다. 진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 독버섯처럼 증가하는 이런 자기기만의 확산은 고통이 서서히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가린다. 단기적으로는 혜택을 받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된다. 장밋빛 렌즈의 힘에는 한계가 따르며 나중에라도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공격적이며 자신을 매우 높게 평가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패권주의·지배욕에 대한 과잉된 욕망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무질서를 질서로 깔끔하게 재편할 수 있다는 과한 믿음에 갇혀 있다. 권력과 지배에 도취된 자들의 특성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하고, 비판받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러면서 자신의 관대함과 관용을 칭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율배반적 특징을 종종 보인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ktitk@fnnews.com
2024-12-15 18:26:11올해 하반기 개최하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참여 작가가 공개 되는 등 국내 양대 비엔날레의 윤곽이 드러났다.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는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참여 작가를 발표했다.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은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치러지는 이번 비엔날레에 대해 "판소리가 소리와 스토리(이야기), 형식이 결합한 하나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면, 이번 전시는 소리와 공간이 함께하는 오페라적인 전시"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보는 작가들을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오는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86일간 열리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는 참여 작가가 모두 생존 작가로 구성됐고 여성 작가가 43명이다. 한국 작가 비중은 15%(11명)다. 부리오 감독은 "의도적으로 여성 작가를 더 많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이 반영된 것 같다"면서 "대다수 작품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한 커미션(주문제작) 작품으로 새로운 작업 상태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하늘과 김영은, 권혜원, 이예인, 박미미 등이 참여하며 해외 작가로는 마르게리트 위모, 노엘 W 앤더슨, 비앙카 본디, 도라 부도어, 존 도웰, 맥스 휴퍼 슈나이더, 소피아 스키단, 아몰 K 파틸, 캔디스 윌리엄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현재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필립 파레노도 참여 작가에 포함됐다. 오는 8월 17일 개막해 10월 20일까지 65일간 이어지는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주제로, 벨기에 출신의 필립 피로트, 뉴질랜드 출신의 베라 메이 두 예술감독이 전시를 진두지휘한다. 두 감독은 이날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시에 영감을 준 것으로 '해적'과 '불교'라는 키워드를 꼽았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저서 '해적 계몽주의'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베라 메이 예술감독은 "'해적'은 해양을 배경으로 언어·문화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라는 점에 주목했다"며 "공동체를 위해 서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이들에게 시각적 언어와 더불어 스토리텔링이 중요했다는 점에 착안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참여 작가들의 이름도 다채롭다. 오래된 오브제를 활용하며 회화와 설치 작업을 함께 하는 세네갈 작가 셰이크 은디아예가 이번 전시에 참여한다. 또 베트남 하노이 출신으로 베트남의 역사를 추상적으로 표현해온 응우엔 프엉 린과 투엉 꾸에 치 듀오 작가, 뉴질랜드 통가 출신의 존 베아도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3-26 18:25:12아흔여덟이 넘은 분이 대학생들을 상대로 정규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침 서울대학교에서 함께 보직하였던 서범석 박사가 총장으로 있는 광주 남부대학교의 창립자 조용기 학원장(사진)이었기에 바로 연락이 되었다. 교정에 들어서자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라"라는 글이 큰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장수학자로서 조 학원장에 대해 궁금했던 점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의 형식과 내용이었다. 백살 가까운 나이에 가끔 강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정기적인 강좌를 운용하는 일은 여러모로 무리라고 생각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좌 제목은 '인간학'이었다. 동서고금의 역사적 인물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업적을 이룬 과정과 자신이 일제,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4·19, 5·16, 5·18 등의 격동기를 지내면서 직접 겪은 위기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했는가를 후학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는 강좌였다. 후학들이란 80년의 나이 차이가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격변기를 살아오면서 겪어낸 과정을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다가올 미래사회의 변화를 통찰해 슬기롭게 대처하도록 이끌어 주는 진정한 인성교육이었다. 백 살이 다된 분이 증손자 뻘의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치고 나갈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모습에서 거룩함을 느끼면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조 학원장이 가장 존경하는 분은 당신의 선친과 '덴마크 중흥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니콜라스 구룬트비히다. 어린 시절 선친께서 어느 비 오는 날 낙숫물이 토방에 놓인 돌에 떨어지는 모습을 가리키면서 "저 봐라. 꾸준하게 하면 빗물이 돌을 뚫을 수 있듯이 열심히 노력하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깊숙이 새기고 살았다. 그러한 각오로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모두 극복해냈고, 자신의 호도 어리석은 바위라는 의미에서 '우암(愚岩)'으로 정했다. 조 학원장이 교육시스템 확립에 열정을 기울였던 근원적인 이유는 가장 존경하는 구룬트비히의 영향 때문이었다. 덴마크가 전쟁 패배로 대부분의 영토를 뺏기고 침몰하고 있을 때 등장한 그룬트비히는 교육자이자 종교인이었으며 정치인이기도 했다.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愛天 愛人 愛國)"는 삼애(三愛)의 구호를 내세우며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돌아가게 하는 농촌살리기운동을 추진했다. 계몽의 일환으로 농촌 지역에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생활개선운동을 벌여 덴마크가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발전하는데 주춧돌을 놓아 덴마크를 중흥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룬트비히의 행로를 따라 조 학원장도 농촌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해 고향인 전남 곡성군 옥과면에 옥과고등학교를 세웠고 나아가서 실사구시를 목적으로 전문기술인력을 배출하기 위한 전남과학대학교를 설립했다. 이어서 보다 크게 봉사하겠다는 의지로 광주에 남부대학교를 설립해 지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유아원, 유치원, 시니어클럽 등 인간의 전 생애를 포괄하는 우암학원이라는 전방위적 메가교육체계를 농촌사회에 구축해, 외진 농촌 시골인 옥과라는 면 단위 농촌에서 어린이, 젊은이는 물론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희망과 꿈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더욱이 노동자와 군인들을 위한 야간교육 과정도 개설해 학위를 수여하는 사회적 교육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고령사회로 변환한 농촌에 '시니어클럽'을 설립해 노인들이 자활적 삶을 살고 당당한 노인상을 갖추도록 유도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전인적 교육을 통해서 아름답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 평생을 헌신한 셈이다. 대화 도중 뜻밖에도 조 학원장은 이미 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나의 선친과 동갑으로 가까이 벗하며 지냈던 분임을 알게 되어 선친을 뵌 듯 더욱 반가웠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우리 사회의 희망은 오로지 청소년에 있다는데 공감해 보이스카웃, 적십자, YMCA, 산악회, 청소년문화 운동을 함께 추진했고 광주살리기운동에 앞장섰던 분들이었다. 나는 오십 년 넘게 타관 생활을 해 온 탓으로 선친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던 고향 분들을 미처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였다. 조 학원장은 타계하신 나의 선친과 달리 여전히 사회활동을 능동적으로 하고 있어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버려서 함께 벗할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면서 요즘은 매일 교정을 거닐면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나 길 옆에 놓인 돌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60~70년 전 자신이 직접 심고 옮겨 놓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면은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조 학원장은 새벽 3시면 일어나서 전날 이루어졌던 일들을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십년 써왔다. 95세가 되었을 때 한해 동안 썼던 일기를 모아 '아침단상365: 살아온 길 95년'이라는 책을 내어 장수인의 생각과 삶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한 시간 이상 산책하고 돌아와 목욕하고 아침 식사 후 출근하고 돌아와 저녁식사 후 다시 샤워하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이고 능동적인 생활이었다. 바로 전형적인 장수인의 생활 패턴이었다. 대화 마무리에 변화하는 세태와 젊은이들의 별난 행동들이 미래사회에 미칠 우려에 대해 물었다. 조 학원장의 답은 의표를 찌르는 감동을 주었다. "무슨 걱정인가? 후학들은 우리들보다 더 잘할 것이네. 나는 그들을 믿네." 후학에 대한 신뢰가 이토록 단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친과 나를 잘 알고 있는 조 학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네 부친보다 자네가 더 잘하고 있지 않은가!"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 이상 반론을 던질 수 없게 압도했다. 인류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신념으로 교육자로서 후배들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표현했다.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장수인의 초월적 생각에 감화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으로 바위도 뚫는 불굴의 정신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백 살이 넘더라도 강의를 지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삶에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2023-08-24 18:05:39각국이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바리케이드를 높이자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스테디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이 대열에 섰다. 즉 "각 정부가 자신들만 살고자 다른 국가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로 '세계적 디스토피아' 도래 가능성을 점쳤다. 경제·공급망의 특성을 감안할 때 '글로벌 연대' 없는 고립은 파국을 부른다는 경고였다.국제정치학자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하라리의 견해에 장단을 맞췄다. 5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는 그 이전과 전혀 다를 것이라며 '자유 세계의 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전제적 통치자가 지배하던 '성곽도시'(walled city)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고도 했다.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한 번영의 시대가 저물고 전 세계가 계몽주의 이전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걱정인 셈이다. 키신저의 말마따나 '성곽도시' 출현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세 서양의 자급자족식 장원이나 동양 각국이 외적을 막으려 쌓은 성을 떠올리면 그렇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도 근대화로 농성(籠城) 체제의 시효가 끝났다고 지적했다. 즉 "과거엔 대도시가 외부 위험으로부터 안전판이었지만, 공중전으로 이젠 그 속 시민이 인질이 돼버렸다"면서….지금은 재화와 인력이 하루 만에 이동하고, 정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여행과 이주가 어려워지고,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마비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실업 쓰나미가 밀어닥칠 참이다. 만일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에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공장을 모국으로 속속 이전하는 상황까지 이어진다면? '성곽도시' 도래라는 불길한 미래가 현실화되는 꼴일 게다. 이런 치명적 사태를 막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석학들의 권고대로 세계 각국이 당장의 감염병 차단 노력과 함께 '글로벌 공조'의 끈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2020-04-06 17:05:16[군포=파이낸셜뉴스 강근주 기자] 군포시 중앙도서관이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와 함께 ‘동아시아 침략과 저항의 인문학’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한다. 이남구 군포시 중앙도서관장은 16일 “9월에 열린 ‘근대한국철학’ 특강이 큰 호응을 얻어 연세대와 군포시가 다시 한 번 손을 잡고 특강을 진행한다”며 “앞으로도 국내 유수의 대학들과 협력해 양질의 시민강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특강은 모두 8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내년 1월2일부터 2월27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중앙도서관 소극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100여년 전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을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 차원에서 조명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 근대 일본의 아나키즘, 중국의 계몽사상가인 량치차오 사상 등이 이번 특강에서 집중 거론된다. 윤영실 숭실대 교수, 가케모토 츠요시 연세대 교수, 이연도 중앙대 교수 등 근대 동아시아 전공 학자가 특강을 맡는다. 한편 수강 신청은 16일부터 26일까지 군포시도서관 홈페이지나 전화, 방문을 통해 10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하며, 수강료는 없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2019-12-16 13:24:57▲ 사진=MBC '1919-2019, 기억록' 방송 캡처배우 진구, 이희준, 박성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1919-2019, 기억록'은 3.1운동, 임시정부 수립부터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주의까지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온 대한민국의 100년을 기억하여 기록하는 취지의 캠페인 다큐멘터리로, 100년 전 그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100개의 화두를 다룬다. 이에 진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춧돌 예관 신규식을, 이희준은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백암 박은식을, 박성훈은 국어학자 주시경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업적을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 사진=MBC '1919-2019, 기억록' 방송 캡처#진구, 신규식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진구는 을사늑약 강제 체결에 분노해 독약을 들이켜 한쪽 눈을 잃은 예관(흘겨볼 睨 볼 觀) 신규식을 조명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단결과 임시정부 수호를 당부하다 세상을 떠난 그의 업적을 기렸다. 1917년 박은식, 신채호 등과 '대동단결 선언문'을 발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까지 이어진 그의 노력과 독립 호소는 진구의 목소리로 2019년에 전해지며 깊은 울림을 안겼다. 진구는 "신규식 선생님의 자료를 찾아보고, 기록하다 보니 가슴 한쪽에 뜨거움이 생기는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신규식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분을 기억하고, 기려주셨으면 한다"며 후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 사진=MBC '1919-2019, 기억록' 방송 캡처#이희준, 박은식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이희준은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독립운동가이자 학자 백암 박은식의 정신을 되새기는 작업에 함께하며 뜻을 함께했다. 박은식은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에서 주필로 활동하며 애국계몽사상을 전파하는가 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이에 이희준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 박은식의 국혼 정신을 직접 목판에 새기며 "이번 기회에 이런 분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으면서 또 그동안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목소리를 보탤 수 있다는 게 뜻깊었다"는 감회를 밝혔다. ▲ 사진=MBC '1919-2019, 기억록' 방송 캡처#박성훈, 주시경을 기억하고 기록하다 박성훈은 일제에 맞서 민족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국어 연구와 한글 보급에 힘써 최초의 한글 사전인 '말모이'의 편찬을 계획한 학자 주시경의 업적을 전했다. 주시경은 한글 교육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주보따리'라 불렸던 인물로 훗날 한글의 근대화와 대중화를 선도했던 개척자로 남아 있다. 박성훈은 한글날을 맞아 진행된 이번 기록에 "대본을 체화해서 표현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한글의 표현력과 우수성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편하게 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을 재정립하고 보급했던 주시경 선생님을 기억하는 데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진구, 이희준, 박성훈은 진심을 전하는 눈빛과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100년을 탐험하며 보는 이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캠페인 다큐멘터리 '1919-2019, 기억록'은 MBC와 네이버TV, 유튜브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chojw00_star@fnnews.com fn스타 조정원 기자
2019-10-18 12:13:46"처음부터 공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인간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는지 관심을 갖게 됐어요." 텅 비어있는 오페라극장의 내부. 때때로 그곳은 밤마다 관객으로 가득찼을 것이다. 화려한 조명이 내리쬐고 오페라 가수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뽐내는 어느 저녁, 관객들의 박수소리와 열기로 가득찼을 그곳은 낮에는 전혀 다른 적막감과 온도를 드러낸다. 누군가가 학구열을 불태웠을 도서관도 그의 사진 속에선 비어있다.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비어있다고 느끼는 순간 갑자기 그 공간이 새삼 가득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미 그곳은 나란히 늘어선 책장마다 책으로 가득했는데 비어있다 착각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림 하나 만으로도 아우라를 내뿜는 미술관. 그의 사진 속에선 이 공간마저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을 스쳐지나갔을 수많은 이들의 흔적과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프레임 밖에 서있는 작가, 칸디다 회퍼의 세밀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비어있는 공간 속에 투영된 시대와 사람의 흔적에 주목했던 칸디다 회퍼(74). 그의 작업들이 다시 한국의 관람객을 찾아왔다.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2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깨달음의 공간(Spaces of Enlightenment)'이다. 지난 50여년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간과 인간을 사유해 온 칸디다 회퍼의 작품들 중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근래까지 촬영된 '공연장', '도서관', '미술관' 등의 작품이 이번 전시에 걸렸다. 전시장의 1층은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을 시작으로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아르헨티나의 극장과 오페라하우스의 내부 공간을 담은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들 공간은 다양한 건축 양식은 물론 시대적, 사회적 변화를 가늠하게 한다. 예컨대 명문가의 사유지에 마련됐던 개인 극장, 닫힌 공간을 더 넓고 깊게 보이도록 원근법을 이용한 설계 방식, 공공 기금을 통해 건립되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극장은 이전 왕족과 귀족에 국한됐던 음악과 청중의 존재가 계몽시대 중간계급의 부상과 맞물려 확대되고, 공적 기관의 설립 및 대중화로 이어진 일련의 역사를 대변한다. 귀족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박스석, 일반 청중들이 대부분 서서 관람하던 오늘날의 스톨석과 같은 '파르테르'의 구성과 비교해 이후 파르테르에 의자가 설치되고 나아가 공간의 계급적 분할이 사라지는 변화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전시장의 2층에서는 인간의 지적, 심미적 추구의 장으로 한데 묶일 수 있는 도서관과 미술관의 공간들이 소개된다. 중세 수도원 내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 프랑스국립도서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내 복도에 놓인 작은 서가, 에르미타주미술관과 율리아 슈토셰크 컬렉션 등 작품 속 내부 공간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곳에 머물고 스쳐간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인문학적 장소로서의 역할을 획득했다. 특권계층을 위한 곳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장소로 바뀌게 된 이러한 공간들은 무수히 많은 예술가, 역사학자, 철학자들이 청중, 관객과 교류했고 이 과정에서 생긴 인식의 변화는 깨달음으로, 더 나아가 예술 창작의 위대한 순간으로 이어졌음을 시사한다. 50여년 꾸준히 사진가라는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는 이번 전시와 관련해 "공간 속에 되도록 사람의 모습을 담지 않으려 했다"며 "사람이 비어있는 공간과 프레임 안에 들어오면 모든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기에 오히려 그 공간 자체를 왜곡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비어있는 공간 속에서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싶었던 셈이다.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 그 안에 드나들었던 이들이 누구였을까를 역으로 상상하게 하는 그의 작품들은 가볍게 훑으면 매우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래 볼수록 그 안에서 그 공간을 만들었을 시대와 사상을 읽을 수 있어 묘미가 있다."저는 공간 자체가 사회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없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거쳐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따라 다른 수많은 건축물의 내부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마저 드러내는 것 같아요. 과거에 지어진 공간과 건물은 그때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현대에 새롭게 지어진 건물은 앞으로 쌓아갈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아요."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8-08-13 16:3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