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가 건축가 겸 방송인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를 지적했다. 8일 곽민수 한국 이집트학 연구소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현준과 '공간이 만든 공간'. 어제부터 화제가 되는 유현준의 책을 읽어보았다"라며 "근사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는데, 특히 2장 ‘문명을 탄생시킨 기후 변화’는 내 전공과도 관련이 있는 장이었기 때문에 특히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딱 이 2장까지였다"라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곽 소장은 "저자는 단편적인 사실적 근거를 토대로 꽤 진취적인 논리적 도약을 시도하는 것 같았고, 그런 ‘도약적 사유’는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그가 도약적 사유의 전제로 삼고 있는 사실적 근거들 가운데는 그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것들도 많았다"라고 비판했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농경 시작" vs "기원전 2500년보다는 씬 더 이전부터 농경 흔적"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는 기원전 9500년경부터…. 그리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라는 책 일부를 발췌하여 "문제의 여지가 상당한 문장이다. 최초의 농경이 확인되는 공간은 터키 동부-시리아 북부 지역이다. 이 지역은 유프라테스강 상류와도 관계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메소포타미아’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라며 "중국도 기원전 2500년보다는 훨씬 더 이전부터 농경의 흔적이 확인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류 최초의 도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만들어진 우루크라는 도시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곽 소장은 "우루크가 도시화되는 것은 우바이드 시기(기원전 5500-3700년 경) 후반부다. 그런데 반하여 차탈 회위크에서 집얍적 취락이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7500년 경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도시’라고 하면 보통은 차탈 회위크를 언급한다"라며 "그리고 차탈 회위크는 메소포타미아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농업 통해 인류는 지능상의 큰 변화" vs "인간 지능에 변화 가져오지 않아" 더불어 "농업을 통해서 수렵 채집보다 2천 배 가량 높은 인구밀도를 가진 공간을 만들면서 인류는 지능상의 큰 변화를 만들게 된다"라는 유 교수의 주장에도 "현생 인류, 다시 말해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대략 16만-9만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인류는 지능의 측면에서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다. 농업이라는 생계경제는 인간의 삶을 많은 부분에서 바꿔놓았지만, 인간 지능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앞서 곽민수 소장은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2회 ‘클레오파트라 편’이 방송된 이후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며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은 정말 큰 문제”라고 설민석을 공개 비난한 바 있다. 이에 제작진은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고 설민석 또한 “제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서 생긴 부분인 것 같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는 설민석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라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설민석은 2010년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논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서술에 나타난 이념 논쟁연구’의 표절률이 52%라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이후 2년 만인 지난 2022년 MBN ‘그리스 로마 신화-신들의 사생활’에 이어 최근에는 MBC‘ 선을 넘는 녀석들’에 출연한 바 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2-10 06:37:41【파이낸셜뉴스 양주=노진균 기자】 경기 양주시가 국가유산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양주 대모산성 14차 발굴 조사에서 4점의 목간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28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태봉국 목간' 출토 이후 또 다른 중요한 발견으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주시에 따르면 재단법인 기호문화유산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발굴에서 출토된 목간들은 성 내 상단부 집수시설에서 확인됐다. 이는 작년에 발견된 '태봉국 목간'과 동일한 위치다. 새로 발견된 목간 중 2점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으며, 하나의 나무를 반으로 잘라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간들에는 각각 '금와인(金瓦人)'과 '토와인(土瓦人)'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주술적 용도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 목간들의 형식과 내용은 의도적으로 대비를 이루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세 번째 목간에 등장하는 '차이인(此二人)'이라는 표현이 금와인과 토와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목간들이 신라 시대의 행정 문서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금와인과 토와인을 각각 금속 기와와 흙 기와의 제작자로 해석하며, 674년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네 번째 목간에서는 토지 면적과 곡물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들이 발견됐다. 이는 삼국시대 도량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주시 관계자는 "이번에 출토된 목간들은 이두식 표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어, 새로운 이두 자료로서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이 목간들의 성격과 지난해 발견된 '태봉국 목간'과의 관계를 밝혀낼 계획이다. 시는 29일 양주회암사지 박물관에서 학술 세미나를 개최해 이번 발굴 조사의 주요 성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12월 4일에는 '양주대모산성 14차 발굴 조사 현장 공개회'를 통해 출토된 목간 4점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njk6246@fnnews.com 노진균 기자
2024-11-28 10:24:45【파이낸셜뉴스 전주=강인 기자】 우범기 전북 전주시장이 역사문화도시 정체성 강화와 관광 중심도시를 만들 핵심사업 추진을 위해 국가유산청을 찾았다. 우 시장은 29일 정부대전청사를 찾아 이경훈 국가유산청 차장을 면담하고 주요 현안추진과 국가예산 사업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날 우 시장은 국가유산청 이경훈 차장을 만나 백제를 중심으로 후백제까지 분묘와 취락, 성곽, 건물지 등 관련 유적이 다수 확인되며 후삼국 시기 고대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는 전주 동고산성이 국가지정유산(사적)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동고산성의 국가유산지정은 ‘전주고도 지정’에도 영향을 미쳐 후백제 역사문화권의 재조명과 종합적인 연구, 조사, 역사문화자원 활용을 위한 관련 사업 추진뿐만 아니라 시의 핵심사업인 왕의궁원 프로젝트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중요한 현안으로 우 시장은 유산청에 동고산성의 국가유산 지정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주요현안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사업관련 부처와 긴밀한 소통을 바탕으로 예산지원을 이끌어내 전주의 역사문화도시로써의 정체성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kang1231@fnnews.com 강인 기자
2024-07-29 17:13:19[파이낸셜뉴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내달 1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경북 경주시 숭문대 전시동 강당에서 인문학 강좌를 연다고 27일 밝혔다. 상반기에는 고려시대 행정관청의 역할을 했던 경주 읍성을 주제로 한 강연을 시작으로 신라의 금관, 고대 경주의 위상 등을 다룰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한국 고대사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해상교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교섭, 해양 실크로드와 물질문화 등을 강연한다. 전화 또는 전자우편으로 신청하면 된다. 숭문대는 1145년 편찬된 역사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신라 관청 이름으로, 신라시대 왕실 도서관이자 태자의 교육기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3-27 13:28:48[파이낸셜뉴스] 백두산이 중국의 '창바이산'으로 중국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이 될 전망이다. 14일 정부 관계자 설명과 유네스코 자료를 종합하면 오는 27일까지 진행되는 제219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는 18개 신규 세계지질공원을 인증하는 안건이 논의될 예정이다. 인증을 앞둔 후보지엔 중국 창바이산(長白山)이 포함돼 있다. 창바이산은 중국에서 백두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18개 신규 세계지질공원 후보지들은 작년 9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이사회에서 '등재 권고' 결정이 내려진 곳이다. 세계지질공원 이사회에서 등재가 권고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집행이사회에서 그대로 인증되는 것이 관례다. 중국은 2020년 자신들 영토에 속하는 백두산 지역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해달라고 유네스코에 신청했다. 현재 백두산은 4분의 1이 북한, 4분의 3이 중국 땅에 해당한다. 다만 천지는 약 55%가 북한이다.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위한 설명자료에는 창바이산이 "지질학적으로 북중국강괴 북동쪽 경계와 유라시아대륙, 환태평양조산대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해 강력한 화산활동으로 수백만 년간 독특한 지역이 형성된 곳"으로 소개됐다. 또한 "창바이산에서는 1천년 전 '밀레니엄 분화'를 비롯해 다단계 분화가 있었고 이에 따라 다양한 암종과 복잡한 화산지형이 형성돼 시간에 따른 지구의 역동적인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자연 실험실과 같다"라고 설명됐다. 세계지질공원은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명소와 경관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지정된다. 총 48개국에 195곳의 세계지질공원이 있으며 한국과 중국에는 각각 5곳과 41곳이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중국의 창바이산 세계지질공원 인증 신청이 남북한이 모두 중시하는 백두산을 '중국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백두산의 중국화' 시도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문상명 동북아역사재단 한중연구소 연구위원은 2022년 학술지 '동북아역사논총'에 발표한 '중국의 백두산 공정과 대응' 논문에서 "중국은 2006년부터 백두산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는 남북한에서 모두 중시하는 백두산의 역사와 가치를 독점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 위원은 중국이 "백두산을 만주족 '성산(聖山)'으로 선전하고 중국 명칭인 창바이산만 내세워 자신들의 산으로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라면서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올리며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권으로 규정한 바 있는데 백두산은 발해를 (중국) 고대사로 편입하는 데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3-14 10:03:57튀르키예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월 동남부 11개 주를 강타한 대형 지진으로 지금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5만명이 넘는다. 건물은 30만채 가까이 붕괴됐고 집을 잃은 이재민이 200만명에 이른다. 절망과 탄식, 혼돈과 충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비극적인 참사에 세계인들의 온정은 계속되고 있다. 재난 초기부터 대규모 지원단을 급파해 '형제의 나라'의 우애를 보여준 우리나라도 물론이다. 민간 구호활동 중심에 있는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69)를 지난 12일 경기 의왕 한·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협회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이제는 살아있는 이들을 치유해야 하는 시간, 이 교수는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 구호활동은 피해가 가장 심각한 하타이주에 집중돼 있다. 당장 살 곳이 절실한 이들을 위해 컨테이너 임시 주택 360채를 짓는 것이 우선 목표다. 이 교수는 "튀르키예는 우리와 고대사를 공유하는 나라다. 6·25 참전 군인들의 희생과 헌신도 역사적, 정서적 유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월 지진 참사는 금세기 최악의 재난으로 꼽힌다. 지금 피해 지역은 어떤 상황인가. ▲피해 지역 11개주 규모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 여진이 계속 있었고 다들 지진이 언제 다시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지금도 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다. 지진 피해 영향권에 있는 사람이 14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15%에 육박한다. 이 중 800만명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는 실정이다. 잔해를 제거하는 데만 최소 4~5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지역 전체가 폐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지 구호 작업은 순조로운 편인가. ▲구호 1단계는 이재민들이 천막에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형태였다. 이제 그 단계를 지났다. 최소한 생활이 가능한 컨테이너 임시주택을 짓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현지 당국은 피해가 덜했던 지반을 찾아 새로운 도시를 구축하고자 한다. 입주까지 최소 3년은 걸린다.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할 공간 마련에 국제사회가 함께 지원하고 있다.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도시 재건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거기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컨테이너 주택 지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식인가. ▲임시 주택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목욕탕 등 위생 시설 공사까지 수반돼야 한다. 학교도 가동돼야 한다. 우리의 경우 지진 진앙지였던 하타이주에 360채 규모의 컨테이너 주택을 짓는 게 우선 목표인데 대략 200억원의 비용이 든다. 국내 30여개 단체가 함께 이 일을 하고 있다. 하타이 주지사와 주택 건립 양해각서(MOU)를 맺었고 지금까지 150채가 완료됐다. 컨테이너 앞에 지원 단체의 팻말이 붙어 있다. 하타이주는 이 일대를 '코리안 빌리지(한국 마을)'로 부르고 있다.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마을 운영 전반을 계속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고아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1950년 6·25전쟁 때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우리나라에 보냈다. 1만5000명이 왔다. 주둔 중이던 군인들이 고아원과 학교를 지어 우리 전쟁 고아 600명 정도를 보살핀 일화도 있다. 수원 앙카라 고아원이 그곳이다. 튀르키예 군 사령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다. 자신들 월급 일부를 떼고 식량을 받으면 조금씩 남겨서 고아들에게 나눠줬다. 세계 전쟁사에 보기 드문 일이다. 거기서 컸던 아이들이 지금 70, 80대 어르신이 됐다. 지진 성금으로 그분들이 1000만 원을 기부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받았던 은혜를 갚아야한다며 뜻을 모으셨는데 그분들로선 굉장히 큰돈이었다. ―튀르키예가 우리 전쟁 고아를 돌봤듯,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현지에 고아원을 짓고 그곳 아이들과 연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모금 운동과 별개로 추진 중이다. 벌써 고아 한 명을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나선 가족들이 많이 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월 20만, 30만원씩 지원해 주는 식이다.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겐 국내 연계가족들이 또 다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두세 가족 이상이 한 팀이 돼 고아 한 명을 책임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 문의를 하는 이들이 꽤 있다. 고아뿐 아니라 한국 유학을 원하는 학생들을 돕는 것도 함께 계획하고 있다. 사립대학 총장들과 네트워크를 짜서 학업을 지원하려고 한다. ―지진 성금 모금에 일반인들의 많은 호응이 있었던 걸로 안다. ▲일반인들의 공감대가 이 정도일 줄 몰랐다. 구호 물품은 산더미처럼 쌓여 물류비를 따로 지원해야 했다. 통장엔 소액을 보낸 이들의 이름도 빼곡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의 손을 잡고 부모가 은행에 가서 함께 송금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령 1258원을 보내고 그 옆에 25만 원을 보냈는데 이름이 같다. 아이의 성금을 부모가 대신 송금한 경우로 보였다. 이런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 사회의 글로벌 시민의식이 한층 성숙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평소 우리와 튀르키예의 정서적 유대감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극동사 강의를 위해 튀르키예 역사 교과서를 자세히 본 적 있다. 역사 구성이 한국을 특별하게 여길수 있도록 돼있다. 우리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까지 튀르키예와 국경을 맞대고 살았다. 청나라 말기 위구르제국이 중국에 강제 편입된 이후 아시아 끝과 끝에 우리와 튀르키예가 놓이게 됐다. 2000년 역사 중 초기 천년을 서로가 공유하고 있다. 이 고대사를 튀르키예는 비중있게 가르친다. 언어의 뿌리가 같고 역사적 인식을 함께하는, 문화적으로 지구상 가장 친근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 소중한 정서를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은 국사로 배우며 컸다. 피를 나눈 형제라는 동질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봐야 한다. 냉엄한 국제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나라를 우리가 잘 관리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이슬람권은 글로벌 가치기준에서 보면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다. 알카에다나 IS가 저지른 테러나 폭력성, 히잡 강제 착용 같은 문제는 스스로가 풀어야 할 분명한 악습이다. 하지만 적대적 관계의 서구 매체에 의해 지나치게 노출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알카에다, IS는 이슬람권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협력기구에 의해 반이슬람 범죄 집단으로 규정된 단체다. 알카에다나 IS는 지지율이 전체 이슬람권의 3%도 안된다. 일탈 집단이 만들어낸 반인륜적 행태가 이슬람으로 동일시되는 일반화는 지나친 과잉이다. 테러 집단은 제거돼야 마땅하지만 서구와 협력하면서 실용적으로 살아가려는 건강한 주류 이슬람 공동체는 끌어안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지진 참사를 통해 우리 정부가 교훈으로 삼을 것이 있다면. ▲재난이 닥치면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가가 가용 가능한 모든 역량을 즉시 동원해야 하는 것이 최고통수권자 책무다. 튀르키예는 이것을 제대로 못했다.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아비규환에 빠졌다. 난개발이 난무했고 내진설계를 못한 것도 책임이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키웠고 민심이 폭발했다.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이번 기회에 다시 복기하면서 튀르키예 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겠다. ■이희수 사무총장은... 이슬람권 전역 40여년 연구 ‘국내 최고 중동 전문가'이희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튀르키예 이스탄불대 첫 한국인 박사다. 한국외국어대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이스탄불대 국비유학생 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하면서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 튀르키예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이란,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권 전역에서 40여년 연구에 매진했다. 이슬람 포비아가 만연한 학계 풍토에서 쉽지 않은 길이었다. 이 교수의 결론은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이다. 중동 문명의 근원을 찾아 주류에서 배제된 오리엔트 역사를 복원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직접 쓰고 번역한 책이 80여권이다. 6년의 시간을 들여 지난해 출간한 '인류본사'는 유럽, 중국에 치우친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해 준 역작으로 호평받았다. 지금은 1000쪽 분량의 '이슬람 통사' 집필을 시작했다. 이슬람의 태동부터 시작해 이슬람 종교가 인류 문명에 기여한 방대한 역사를 한국 학자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한·튀르키예 친선협회는 1999년 튀르키예 서북부 이즈미트 지진 참사 지원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시형 박사가 초대 회장을 지냈고 박찬숙 전 국회의원에 이어 민남규 자강그룹 회장이 그 뒤를 이었다. 협회 산파역을 맡았던 이 교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무총장이다. 협회는 생존하는 튀르키예 참전용사들과 가족들 후원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이슬람학회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다. jins@fnnews.com
2023-04-23 18:16:14【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거 과정에서 '친미와 반중' 성향을 보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내면서 향후 한중관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은 중국이 극도로 경계해왔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뿐만 아니라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QUAD)'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혀왔다. 이처럼 윤 당선인의 대중 정책이 강경해질 것이란 전망속에서도 시 주석은 예상밖의 유화적인 축전을 보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축언을 표하는 바",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라면서도, '초심'을 언급하면서 '우호협력 심화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장기적인 발전'을 강조했다. 시 주석의 축전 내용은 표면적으로만 해석하면 우선 갈등이나 마찰보다는 유화적인 태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그동안 대중 제재 수위를 올려왔던 미국을 겨냥해 "중국을 괴롭히면 머리가 깨질 것"이라면서 직설적인 언행을 해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국이 아직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우려감이 적지 않다. 시 주석은 박근혜정부 시절 한중 정상회담 와중에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뜻의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언급했고 이후 사드 보복은 시작됐다. 전략적 동반자 역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중갈등 국면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지리·경제적, 문화·군사적 측면에서 양국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핵심 국가로 꼽히는 만큼 한국의 중립적 입장을 재확인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관측이다. 외교 소식통은 "(축전을 전달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윤 당선인에게 '좋게 노력할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은 바꿔 말하면, 한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여지는 남아 있다. 윤 당선인은 1992년 한중수교 때를 회상하면서 "한중관계가 더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 사실 수교도 국민의힘 전신 정당이 집권할 때 맺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측 모두 다른 한편으론 한중수교에서 우호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반복되며 현재의 난제를 풀 수 있는 명확한 교과서로 꼽힌다. 한중수교 30년 동안 양국관계가 어떻게 변하며 지금까지 흘러왔는지 살펴보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도 들여다봤다. ■비약적 발전한 한중관계 30년 한중관계는 진보·보수 중 어느 한쪽이 집권했다고 일방적으로 발전했거나 퇴보하진 않았다. 외교는 국가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권이냐 보다는 당시 정세에 맞춰 변해왔다. 진보·보수에서 긍정·부정적인 면이 공존했다는 의미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8월 24일 체결한 한중수교도 국제 정세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은 1949년 정부 수립 후 오랫동안 친미국가를 적성국으로 간주하며 대립해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냉전시대 거의 30년 동안 공산국가들과 외교를 끊었다. 그러나 1970년대초 미중이 화해무드로 접어들고 한반도주변 정세도 변화가 생기면서 한국은 1973년 6·23 선언을 통해 이념과 체제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중국은 197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최고 권력기구로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함께 '양회'로 불림) 제11기 3차 회의에서 개혁실용주의를 채택하고 대외개방정책을 전개했다. 양국이 곧바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자는 내용의 수료를 맺은 것은 아니다. 1983년 중국민항기가 공중 피랍돼 춘천에 불시착하는 사건으로 한중간 최초 공식 대면한 뒤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때 상호 선수단을 파견했고 관광과 이산가족, 친척방문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 교류의 문을 먼저 열었다. 수교 이후에도 문화 측면부터 관계를 강화했다. 한중은 수교 2년 뒤인 1994년엔 문화 협정을 맺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당시 김 대통령과 장쩌민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양국 외교장관이 협정에 서명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봤다. 초대 한국 주재 중국문화원장을 지낸 주잉제(65) 중국노인서화연구회 미술관 관장은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수천 년간 끊겼던 문화교류의 역사를 다시 회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국제정세와 한반도 상황에 변화가 있으므로 문화교류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곳곳 불협화음, 갈등의 '골' 北 이후 한중 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교역규모의 경우 1992년 63억8000만 달러(약 7조9000억원)에 불과했지만 20년 만인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35배에 육박하는 2206억 2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다시 9년 뒤인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엔 3624억 달러(약 448조3000억원)로 늘었다. 윤 당선인은 지난 11일 국민의힘 여의도 당사에서 싱 대사에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고, 중국의 3대 교역국이 우리"라고 말했고, 싱 대사는 "현재 3대 교역국이지만,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외교관계도 유대를 공고히 했다. 수교 당시 '우호협력 관계'에서 1998년 '협력동반자 관계'(김대중), 2003년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노무현)를 거쳐 2008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이명박) 등으로 빠르게 격상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불협화음은 존재했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열차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타야만 했고 이는 중국의 불만을 샀다. 중국 역시 북한과 관계에 신중히 접근하면서 한국의 우려를 가중시켰다. 2000년(김대중)엔 이른바 마늘 분쟁(한국이 중국산 냉동·초산조제마늘 관세율을 30%에서 315% 인상하고 중국은 한국산 휴대전화·폴리에틸렌 수입을 잠정 중단하는 보복 사건)이 발생했으며 2002년(김대중~노무현)부턴 동북공정(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등 한국 고대사 국가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부로 왜곡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중국이 주변 해역을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주장하면서 여러 해에 걸쳐 신경전도 벌였다. 북한 문제는 갈등과 감정의 골을 깊어지게 만든 단골 쟁점이었다. 남북한과 모두 수교한 중국은 중요한 순간이 되면 대북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명박)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까지 넘어갔지만 중국이 '북한 편들기'로 일관해 결국 대북 제재를 무산시켰다.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지도부 9명이 일제히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조의를 표하면서도 관련 정세 변화 논의를 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통화 요청을 거부했다. 외교적 결례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에 소집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도 북한 규탄 서명 채택을 중국이 반대했다. ■전승절 참석한 朴, 사드 '급랭' 2013년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중국의 전승절(2차 세계대전 승리 중국 기념일)에 참여할 만큼 상호 우호적이었다. 전승절에 국가 원수가 참여한 서방국가는 한국과 폴란드, 체코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드 문제가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롯데, 현대차 등은 경제보족에 중국 내 사업을 철수하거나 조정에 들어갔고 매년 수백만명씩 한국을 찾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발길을 끊었다. 교민은 상당수는 한국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이른바 한한령(한류제한령)도 이즈음 시작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빠른 관계 회복에 들어갔다. 중국은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이해한다고 밝혔으며 한국은 사드 3불 정책(추가배치·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한미일 군사동맹화 불가)을 언급했다. 통화 스와프는 연장했고 양국의 최대 공통현안인 북핵은 해결을 위한 소통과 협력에 상호 공감했다. 그러나 청년 세대의 반중·반한 감정이 양국관계 악화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중국발 미세먼지와 중국 어선 불법 조업, 시 주석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 발언에 이어 김치, 한복 등 역사·문화에 대한 중국의 원조 주장에 한국이 들끓었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한복이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소개됐다. 편파 판정 논란 끝에 중국 선수가 금·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정기·협력 확대 가능성 상존 오는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중정책 변화는 공통된 평가다. 윤 당선인은 미국과 EU에만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4강 파견 관행에서 탈피해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이미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한중 관계를 '상호 존중'에 바탕을 뒀다. 그러면서 쿼드 가입, 사드 추가 배치, 완전한 비핵화 달성까지 국제적인 대북 제재 유지 등 반중국 혹은 한미동맹 강화로 기울어져 있다. 다만 후보 시절 공약과 실질적 대통령직 수행은 다른 점이 상당히 존재하는 만큼 협력 확대 가능성도 상존한다. 사드 이후 막아놨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중국 내 상영·방영 소식도 들려온다. 한 대기업은 한한령 해제를 대비해 중국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5월 말 예상)에 이어 시 주석의 방한 가능성도 아직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시 주석의 첫 해외 순방 국가로 한국을 지목해왔다. 추궈홍 전 주한중국대사는 지난해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시 주석의 방한이 이뤄진다면 한중관계를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새로운 경제 성장 거점을 만들 방안, 중장기적인 인문 교류 비전을 (방한) 준비단계에서 소통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2-03-20 18:25:15【 울산=조용철 기자】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가을 풍경으로 치자면 울긋불긋한 단풍을 따를 것이 없다. 단풍이 화려한 가을을 맛보게 한다면, 억새는 보다 잔잔하게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을 제공한다. 해발 900m 이상의 고지대에 드넓게 펼쳐진 억새 평원은 단풍과는 색다른 가을의 멋과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가을 풍경이라면 억새만 한 것이 있을까. 선선히 부는 바람에 한없이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가을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억새는 여행객들에게 가을의 낭만을 안겨준다. 흔히 '영남알프스'로 불리는 울산 간월재에는 늦가을 낭만의 물결이 출렁인다.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 늦가을의 한켠에 섰다.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가 마음을 온통 휘저어놓고는 제대로 만끽할 새도 없이 돌아갈 채비를 한다. 주왕산, 설악산 등 단풍으로 유명한 산은 어영부영하는 사이 앙상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손끝까지 시려오는 늦가을의 끝자락이지만 이대로 보내기엔 왠지 허전하기까지 하다.■가을의 끝자락, 간월재 억새평원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성급하게 돌아가는 단풍과는 달리 억새는 여전히 가을빛 정취를 지키고 있다. 가을에 꽃을 피우는 억새는 가을이 깊어질수록 은빛 머리를 휘날리며 가을이 끝나도록 하얗게 나부낀다. 외롭거나 쓸쓸한 가을 낭만을 색깔로 표현하면 울긋불긋한 단풍보다는 하얀 억새가 보다 어울릴 듯하다. 바람에 휘청이는 가녀림도 가을의 쓸쓸한 감성을 채우기에 충분하다. 간월재 억새군락지에는 마지막 가을이 여행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간월재에 오르면 오른쪽은 간월산, 왼쪽은 신불산이다. 간월산 정상까지는 800m, 신불산까지는 1.6㎞다. 간월산은 배내봉으로, 신불산은 영축산과 통도사로 이어진다. 간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조성돼 있고 중턱에는 간월재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간월재 휴게소에서 파는 구운 달결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거나 거센 바람을 피해 잠시 쉴 수 있다. 억새 산행으로 유명한 간월재는 영남알프스의 핵심이다. 밀양시, 양산시, 울산 울주군을 아우르는 해발 1000m를 웃도는 산들이 거대한 산악지대를 이룬다. 가지산을 중심으로 신불산, 영축산, 운문산, 천황산 등 우뚝 솟은 산들의 능선이 가히 유럽의 알프스 산맥을 닮았다고 해서 영남알프스라고 불린다. 간월재는 신불산과 간월산 능선이 서로 만나는 자리다. 두 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간월재에는 가을이면 억새가 바다를 이룬다. 넓이가 무려 33만㎡에 이르는 간월재의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온통 억새로 뒤덮였다. 해발 900m 고개에 억새의 물결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햇살에 비친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 단지 바라만 봐도 좋지만 감사하게도 억새밭 사이에 데크가 놓여 있다. 데크길을 따라 억새밭 사이를 걷다보면 은빛 바다에 풍덩 빠져든 것 같다. 바람이 억새를 어루만지면 사르락사르락 소리가 어지러운 마음을 한껏 편안하게 만든다. 억새의 물결은 햇빛에 민감하다. 이른 아침에는 창백하도록 흰빛을 띠지만 해질 무렵에는 따뜻한 노란빛으로 바뀐다. 한낮에도 억새는 햇빛의 방향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역광에는 하얗게 빛나지만 순광에는 누런빛이다.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억새를 보기 위해 새벽같이 오르는 여행객도 있고, 해질 무렵까지 기다리는 여행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간월재를 뒤로 한 채 울산 반구대로 발길을 돌렸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반구대는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모양을 닮은 기암절벽이다. 반구대 주변으로 하천이 구불구불 흐르고 하천을 따라 수직절벽이 병풍처럼 이어져 계곡을 이룬다. 반구대를 중심으로 계곡의 남쪽과 북쪽에는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관념을 표현한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물이 흐르고 바위절벽에 암각화가 새겨진 주변 경관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덕분에 반구대는 선사시대부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계곡과 대곡리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를 묶어 반구대 계곡의 암각화라는 명칭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약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고래나 거북과 같은 바다동물과 호랑이, 사슴 같은 육지동물, 활을 이용한 동물사냥과 배와 작살을 이용한 고래사냥 그림 등 선사시대 사냥과 해양 어로 활동의 일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는 과거 태화강과 울산만 주변에 뛰어난 해양 어로 문화를 가진 포경 집단이 살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대곡리 암각화는 약 7000년에서 3500년 전인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천전리 암각화 중심 암면 왼쪽 부분에는 사슴, 물고기 등 동물 문양이, 상단부분에는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기하학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암각화나 청동거울, 청동검 등에 표현된 문양과 비슷해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심암면 밑에는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새긴 행렬 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 세선화를 볼 수 있다. 특히 신라 법흥왕대 명문이 새겨져 있어 고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울산의 허파, 태화강 십리대숲 울산은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등 우리나라 주요 중공업을 이끄는 산업 수도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공업도시라는 풍요 뒤에는 환경오염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 옛말이다. 악취로 숨 막히던 장소가 이제는 여행객들이 줄을 잇는 명소가 됐다. 태화강은 공업도시 울산을 가로지른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2004년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과 함께 태화강 살리기가 시작되면서 울산 시민은 물론 전국의 여행객들이 찾는 국가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중심에 태화강 십리대숲이 자리한다. 강변을 따라 십리나 펼쳐지는 대숲은 울산의 허파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70만 그루의 울창한 대나무숲은 말그대로 별천지다. 대나무 사이로 아담하게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태화강에서 불어오는 맑은 강바람이 댓잎을 흔드는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yccho@fnnews.com
2021-12-02 18:02:29[파이낸셜뉴스] 유라시아 대륙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우리에게 만만하지 않다. 미·중, 미·러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연결망으로 횡단하려는 중국이 일대일로만이 아니라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 왜곡을 넘어, 한민족의 문화 원류까지도 독점하려는 침탈 현장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나 중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유라시아를 장악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는 현실은 우리나라도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응의 필요성을 웅변한다. 우리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무형문화유산 연구를 통해 문화 원류와 실크로드 및 유라시아 투르크 국가와의 친연성과 연대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왜 무형문화유산인가? 안타깝게도 한민족의 근원과 문화 원류를 밝힐 수 있는 원형(prototype) 고대사 연구의 주요 대상 국가 대부분은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역사 사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중국 쪽 자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중화사상에 치우쳐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으며,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여러 약소민족과 국가들이 폄하 혹은 삭제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무형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가 빛을 발한다. 투르크 민족들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및 실크로드 국가들은 '활자와 문자 기록'보다는 '구전'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세계관 등을 후손들에게 전승해왔다. 구비전승은 속도와 이동이 자유롭기를 원했던 유목민들의 삶의 방식 속에서 강력하고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었고, 지식전달 체계였다. 구비전승, 민속놀이, 세시풍속 등 무형문화유산은 역사 사료로 고증이 어려운 고대인들의 생활방식, 세계관, 정신문화를 오늘날 '현재 시제'로 보여주고 있다.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시대를 초월한 살아 움직이는 연결망이며, 화석화된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숨쉬는' 현존하는 문화재(Living Heritage)이다. 한국은 한민족과 무형문화유산을 공유했던 다양한 국가들과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동체(Cultural Complex)를 형성할 수 있다. 한반도에 갇힌 우리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고대 선조들이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소통했고 교류했던 흔적을 발굴하고 복원하여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와 삶의 무대를 확장하자는 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 한국의 문화 원류 탐색임과 동시에 한국과 유라시아 문화의 연관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할 것이며, 신(新)실크로드권 투르크 국가들과의 유대성과 친밀감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유라시아 투르크 민족들이 목록 만들기와 이를 통한 국가 정체성 구축에 주력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유네스코의 정신에 부합하는 세계평화와 화합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 코드를 발굴하고 연구함으로써 실크로드 국가들의 연대와 '문화 간 화해(Rapprochement of Cultures)'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실크로드의 루트를 한국, 특히 경주까지 확장할 수 있는 논거를 마련할 수 있으며, 문화적 연대와 친연성을 기반으로 유라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메타버스가 몰고 올 거대한 가상현실의 창조로 더 본격화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10월 28~29일 유네스코 아태무형문화센터, 국제중앙아시아연구소 그리고 KF 한·중앙아협력포럼이 중심이 되어 9개 회원국(아제르바이잔,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대한민국,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 등)의 전문가와 단체가 뜻을 모아 활동하게 될 '실크로드 리빙 헤리티지 네트워크(Silk Road Living Heritage Network)'의 출범과 학술 포럼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날이 갈수록 그 중요성을 더하게 될 신북방경제협력의 인문학적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보다 구체화되길 기대한다.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
2021-10-25 13:21:50[파이낸셜뉴스]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은 12일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역사문화권정비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법은 우리나라 역사문화권에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맥역사문화권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현행 ‘역사문화권정비법’은 우리나라 역사문화권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등 6개 역사문화권으로 정의하고 있다. 죽,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 △부산 △제주를 권역으로 지정해, 문화유산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와 정비를 실시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국가 이전부터 강원 영동지역과 영서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온 예맥역사문화권 설정이 누락되어 우리나라 고대 역사문화권에 대한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되어 왔다. 예맥역사문화권은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역사서에도 ‘예국’과 ‘맥국’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지역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삼한’이나 여타 고대국가등과 차별화된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는 학계의 평가를 받아 왔다. 허영 의원은 "한국사의 범주임에도 국가적인 관심과 지원 대상에서 제외었던 예맥역사문화권에 대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해 졌다"며 "예맥역사문화권 신설로, 우리나라 고대사 연구가 다른 역사문화권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룸과 동시에, 예맥의 역사성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정안에는 민주당 대변인을 지낸 허 의원을 비롯해 강선우·강준현·김윤덕·박상혁·박정·소병훈·오영환·윤영덕·윤준병·이광재·이규민·이소영·이용빈·천준호·최종윤·홍기원·홍성국 의원 등 총 18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
2021-05-12 14: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