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안성=장충식 기자】 경기도 안성시는 오는 27일부터 바우덕이 축제기간까지 6070 추억의 거리에서 '골목식탁' 행사를 진행한다고 24일 밝혔다. 6070 추억의 거리(장기로 74번길 일원)는 옛 쇠전거리라고 불리며 안성천과 원도심을 잇는 골목으로 과거에는 인기를 끌던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활기를 잃어감에 따라 안성시 도시재생지원센터, 도농교류지원센터 등이 새로운 명소로 조성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추억의 거리 내 입점 상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기획됐다. 행사 주요 내용으로는 △추억의 거리 상인이 직접 참여하는 '골목 식탁' △지역 상단과 연계한 '골목 프리마켓' △도시재생 주민 역량 강화 교육(라탄공예 등) 작품전시 및 체험부스 △청년 예술가가 참여하는 '문화공연(버스킹)', △추억의 사진 전시 '골목길 전시회' 등이 마련됐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먹거리와 체험 프로그램, 공연 등을 즐길 수 있으며, 특히 7080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레트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추억의 거리 골목식탁은 오는 10월 3~6일까지 열리는 바우덕이 축제기간에도 개최될 예정이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24-09-24 13:38:41【파이낸셜뉴스 무안=황태종 기자】전남도가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사랑받는 골목상권 조성에 본격 나선다. 전남도가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특색 있는 곳을 특화 브랜드로 육성하는 '전남형 골목상권 첫걸음 지원 사업'을 펼친다고 3일 밝혔다. 이 사업은 골목형 상점가 지정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상인조직이 구성된 골목형 상점가를 대상으로 특색 있는 상권을 발굴해 특화 브랜드 개발 등 각종 마케팅을 지원한다. 올해는 강진읍 상권, 해남 문내면 상권, 무안 청계면 상권 등 3곳을 선정해 개소당 1억원을 지원한다. 강진군은 상권 중심 SNS 홍보 및 온누리상품권 페이백 행사, 해남군은 상권 내 예비창업자 및 특화 브랜드 컨설팅, 지역 행사와 연계한 소비 행사, 무안군은 상인회 고유 브랜드 등 개발, 주요 수요 층인 목포대 학생 대상 행사 및 축제를 추진한다. 특히 무안 청계면 상권의 경우 '전남형 골목상권 첫걸음 지원 사업'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부의 동네상권발전소 사업, 로컬콘텐츠 중점대학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3개 사업을 연계한 로컬 상권 활성화 프로젝트인 '한달이면 청계도 변한다'가 진행된다. 이 프로젝트는 전남도, 무안군, 청계면상인회, 목포대 로컬크리에이터육성사업단·총학생회가 함께 추진한다. 지난 17일부터 8가지 세부 행사가 시작됐다. 로컬 커뮤니티 살롱인 '100배 식탁'과 '없었던 책방', 상권 아카이빙 프로젝트인 '언니들의 사진전' 등이 열리고, 상인 협력 클래스 '사장님 클래스'도 선보인다. 또 '낮술이 있는 골목 축제', '없는 디자인, 없는 티셔츠'와 같은 로컬 페스타도 열리고, 목포대 학생들의 팝업 스토어 '나의 첫 번째 영끌'도 오픈한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국립목포대 총학생회 대동제 기간에 집중돼 학교와 상권을 하나로 연결하는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수미 전남도 중소벤처기업과장은 "전남형 골목상권 첫걸음 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민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사랑받는 골목상권을 조성해 생활인구 유입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4-11-03 09:23:18[파이낸셜뉴스] 뜨거웠던 무더위가 물러가면서 서울 대표 상권에서 색다른 축제가 시민들을 맞이한다. 불(不)멍캠핑, K-뷰티 체험, 미리크리스마스 등 취향 따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축제가 10월부터 연말까지 이어진다. 서울시는 매력 상권으로 육성 중인 '로컬브랜드 상권' 9곳에서 연말까지 다양한 축제를 개최한다고 2일 밝혔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육성 중인 로컬브랜드 상권은 △양재천길(서초구) △합정(마포구) △장충단길(중구) △선유로운(영등포구) △오류버들(구로구) △용마루길(용산구) △경춘선숲길(노원구) △강남역케미스트릿(서초구) △샤로수길(관악구)이다. 올해 신규 상권으로 선정한 강남역 9번 출구 인근 강남역 케미스트릿에서는 2~3일 맛(K-FOOD), 멋(K-POP), 미(K-BEAUTY) 등 다양한 한류 문화를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2024 강남역 케미스트릿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 아이돌 메이크업, 향수 만들기 등 K-뷰티 관련 체험 프로그램과 뷰티 팝업스토어도 운영한다. 강남역 고기골목에서는 독일 옥토버페스트 분위기의 야외 맥주 축제가 열린다. 다양한 육류 요리와 함께 맥주를 즐길 수 있으며, 무소음 디제이 파티, K-POP 공연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에서는 4~5일 '샤로수길 로컬in 스테이'를 개최한다.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DIY디퓨저 만들기, 플로리스트 클래스, 샤로수길 최고의 음식을 뽑는 100인의 식탁과 플리마켓도 마련했다. 지역 최대 축제인 '강감찬 축제'와 연계한 콘서트를 개최해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양재천길에서는 5~27일까지 창의적이고 개성 넘치는 소상공인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수공예품과 로컬푸드를 만나볼 수 있는 플리마켓이 펼쳐진다. 캔들라이트 콘서트, 수변영화제 등 가을 낭만을 더해줄 공연으로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장충단길에서는 '장충 불(不)멍 캠핑'이 열린다. 오는 25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남소영광장과 장충단길 상권 일대(3호선 동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도로 캠핑야장·장충 야외시네마 등 도심 속 이색체험을 할 수 있다. 선유로운 상권에서는 26~27일 '2024 시월의 선유' 행사를 진행한다. 플리마켓과 선유푸드존을 운영한다. 더현대 서울 지하 1층 대행사장에서는 11월 1~3일 '선유로운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스탬프투어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해 참여자들에게 선유로운 굿즈와 상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유페이 등 특별한 사은품을 제공한다. 오류버들에서는 구로구 내 지역자원과 연계한 투어 프로그램 '버들 나들이'를 운영한다. 해설사와 함께 푸른수목원, 성공회대 구두인관 등 인근 명소와 오류버들 시장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지역 상권과 역사적 자원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합정역 7번 출구 인근 하늘길에서는 '하늘길 페스타'를 개최한다. 5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마포새빛문화숲 및 하늘길 일대에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문화창작예술'을 주제로 커피, 논알콜 칵테일 등 하늘길 대표 점포들의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버스킹 댄스 공연 등 행사를 마련했다. 용마루길에서는 '용마루길 미리크리스마스 축제'가 11월 8일부터 12월 중순까지 열린다. 축제 기간 크리스마스 테마 거리와 포토존을 설치하고 음악공연, 플리마켓이 함께 열려 연말 분위기를 북돋울 예정이다. 경춘선 공릉숲길에서는 겨울 축제 '경춘선 공릉숲길 윈터파티'가 12월 7일 열린다.경춘선 공릉숲길 산책로, 공릉동 도깨비시장, 웰컴센터 등 다양한 공간과 연계해 플리마켓, 무대공연 등 풍성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송호재 서울시 민생노동국장은 “올 하반기에도 지난 상반기 봄맞이 행사에 이어 시민들이 서울 골목상권에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행사로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서울 곳곳의 골목을 살려 서울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고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ronia@fnnews.com 이설영 기자
2024-10-02 14:32:47사람이 먹어야 하는 필수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단백질은 요긴하다. '맹자'의 ‘양혜왕편’에 노부모를 잘 봉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돈구체지축(鷄豚狗彘之畜)”이란 구절인데, 풀어쓰면 “닭, 돼지, 개, 돼지”로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얘기다. 산동성 근처에서 기원전 4세기경 즉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당시 농사를 위한 축력의 원천이었던 소는 고기로 먹지 않았다. 양(羊)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서역과의 문물교류가 아직 없었던 결과다. 닭이 등장한 것은 달걀을 목적으로 하였고, 고기는 주로 돼지(豚)와 개(狗)로부터 공급되었던 모양이다. 재생산율이 가장 뛰어난 가축이 돼지와 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맛은 물론이다. 이 짧은 문구에 돼지가 두 번 등장하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뒤에 등장하는 돼지를 일컫는 '체(彘)'자는 ‘늙은 암퇘지’를 의미한다. 암퇘지가 있어야 기본적으로 집안이 돌아간다는 뜻으로 집 가(家)가 있고, 돼지가 농사의 근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축(畜)”자, 즉 ‘밭을 검게 만든다’는 말은 거름이라는 영농자원이 돼지로부터 공급되는 순환원리가 숨겨져 있다. 과거에 변소(통시)에 있었던 돼지를 말함이고, 약 2000여년 전 양한(兩漢)의 대표적인 고고학적 기표유물이 저권(猪圈)이다. 양한으로부터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난 지금의 농사법은 차원이 달라졌다. 서양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때 소스가 중요하다. 소스를 무엇으로 어떻게 만드느냐가, 특히 프랑스 셰프들의 영업 비밀이다. 내가 경험한 지상 최고의 고기 소스를 소개한다. 정년퇴임을 하면서 곧바로 만 3년간 이어진 직장이 중국 귀주대학의 특빙교수라는 직함이었다. 야연(野硏)이 직업인 인류학자에게 중국은 매력적이다. 소위 소수민족 지대로 자료 수집을 나간다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명절이 포함된 일주일간 동족(侗族) 산촌(이핑현 황강촌)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고, 도시로부터 귀향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축제 분위기를 만났다. 긴밀한 이웃 관계로 이어진 소추렴이 있었다. 새벽 4시. 장년 남자 둘 옆에선 나는 어둠 속의 골목으로부터 한 마리의 소를 끌고 오는 남자, 그 장면을 기다리는 도끼 든 남자, 밧줄을 하나씩 들고 있는 남자 넷을 지켜보았다. 도끼자루를 휘두르는 남자의 도끼등이 소의 이마를 내리쳤고, 커다란 소는 순식간에 쓰러졌다. 기절한 소의 네 발이 사방의 밧줄로 탱탱하게 당기어 묶이는 동안, 장년 두 명이 소의 배에 올라타서 손칼로 가슴으로부터 날렵하게 가죽을 벗기면서 정맥을 찔렀다. 이 모든 행동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다른 골목에서도 동일한 소리가 들렸다. 발버둥치는 소의 염통이 드러나면서 소는 느러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의 발작 때문에, 밧줄의 팽팽함은 긴장감을 유지했고, 간헐적인 경련을 보여주는 소는 숨도 몰아 쉬었다. 갈라진 배에서 위가 드러났다. 속을 드러낸 커다란 1번 위(혹위) 속에는 초록빛 풀잎만 반짝이며 가지런히 쌓여있고, 옆에 섰던 부인네가 넓은 그릇에 그것들을 받아냈다. 2번 위(벌집위)가 갈렸다. 초록빛이 가신 누런색 풀줄기들을 조심스레 들어서, 동일한 그릇에 담겼다. 되새김된 풀이다. 3번(겹주름위)과 4번 위(주름위)는 그냥 잘라서 옆에 뒀다. 강산성을 띤 유미(乳糜 chyme)라는 물질이 들었기 때문에, 버려야 한다고. 두 군데의 위로부터 나온 되새김된 풀은 넓은 그릇 속에서 잘 버무려졌다. 아침 동이 이미 튼 8시가 되었다. 네 시간만에 소 한 마리가 완전 해체되었다. 도살이 진행됐던 땅바닥에는 흠집 없는 소가죽 한 장만 깨끗하게 누었다. 소머리는 ‘도끼로 이마 깐’ 전문가의 몫이다. 이웃하는 8집이 공평하게 갹출하여 이루어낸 소추렴이었고, 여름철 기우제인 함천절(喊天節)이란 명절의 행사였다. 도시로 나갔던 젊은이들은 이 맛 때문에 고향을 찾는다고 했다. 이튿날 만난 소가죽 수집상은 누런색과 검정색으로 양질의 46장을 구입했다고 싱글벙글이었고, 나는 도살 과정과 함께 반추미생물학의 완판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도살된 소는 부위별로 분류되어서 모두 8몫으로 나뉘었다. 물론 뼈도 포함되었다. 되새김된 풀도 똑같이 분배됐고, 그것의 이름은 동족 언어로 '베에'(중국어는 없기 때문에 음차하여 별㿜-비에라고 발음)였다. 혼자 들기 편한 정도 크기의 광주리 두 개가 따로 마련되었는데, 그 속에는 부위별로 조금씩 담겨 있었다. 작은 종재기에 베에도 담겼다. 이웃에 있는 독거노인 두 분의 몫이라고 했다. “남는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미리 나누는 것”이 노인복지라는 얘기다! 페르디난트 퇴니스가 말했던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의 원조가 생생하게 작동하는 현장임이 직감되었다. 한몫을 받은 집으로 따라갔다. 식수가 담긴 그릇에 베에를 한움큼 풀어 넣어서 주무르니, 이어서 초록빛으로 걸쭉한 액체가 되었다. 부뚜막에는 항상 베에를 담은 호리병이 있고, 고기 요리를 할 때에는 반드시 한 국자씩 넣는다. 말하자면 부엌살림의 상비품인 양념이다. 수육을 썰어서 베에에 적셔서 먹는다. 찹쌀밥이 차려진 식탁에 끼어서 시식할 기회를 얻었다. 여태까지 먹어본 어떠한 스테이크 소스보다도 월등한 형언불가의 맛이었다. 미네아폴리스에서도, 뉴욕에서도, 도쿄에서도 스테이크는 많이 먹었다.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는 슈하스코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아사도를 먹었다. 그런데 귀주의 베에 적신 수육 맛을 따라갈 수 없다. 인간이 어떻게 이 구극의 양념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살림살이의 지혜이고, 자연전유의 문화 문제인 것이다. 자연 속에 어우러진 삶의 모습이다. 소가 먹는 풀은 한 종류여야 하고, 인공사료를 먹은 소로부터는 베에를 얻을 수가 없다. 베에를 얻을 수 있는 생태학적 사이클은 지독히도 정밀할 뿐만 아니라 엔트로피 제로의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염소(양)로부터도 베에를 얻는다. 인근의 도시에서는 ‘뉴베에’와 ‘양베에’를 전문으로 하는 고깃집이 성업 중이다. 몽골의 낙타와 북유럽 사미족의 순록에서도 얻을 수 있을까? 몇 년 뒤 곤명의 운남대학에 강연을 가서도 베에를 제공하는 식당을 찾았다. 중국 서남부에 공유된 양념 문화의 일면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6-24 18:22:04사방이 꽃으로 가득했던 밤, 제자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 봄을 어쩌면 좋아요" 무슨 사정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취해 우는 그 앞에서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 돼 있었다 제자는 다음날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꽃길을 걸으며 되는 일 없는 자신이 떠올랐다 했다. 아름다움은 상처를 건드린다. 이 꽃이 지고 녹음이 오면 그 마음도 단단해지리라 지난해는 4월에 비가 내렸다. 막 피어 오르던 꽃들이 봄비에 젖어 흘러내려 화사한 봄꽃을 제대로 못 본 것 같다. 젖은 꽃잎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올해는 너무 화려하다. 여기저기 눈길이 가는 곳에는 꽃이 있다. 올해처럼 완벽한 봄을 보는 일은 큰 행복이다. 우리 동네는 효성고등학교 옆에 벚꽃동산이 있는데, 외출할 때나 산책을 하다 보면 거의 전교생이 나와 선생님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본다. 왜 이리 설레는가. 개나리는 지금도 남아 있고, 조팝나무도 하얗게 고개를 내밀고 멀리서 산벚나무들의 연한 봄빛이 너울거리고 있다. 내 작은 정원에는 할미꽃, 명자나무꽃, 돌단풍, 수선화들이 피어 있다. 모란은 곧 터질 것 같은 봉오리를 지어 올리고 있다. 풀을 뽑다가 꽃 피운 풀은 뽑지 않는다. 그것도 봄의 한가락에 음악의 한 곡조가 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날 밤이었다. 11시쯤 전화가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울리는 것은 위급뿐인데, 서둘러 받았는데 제자 민식군이었다. "선생님 봄이 왔어요. 이 봄을 어쩌면 좋아요." 그는 취해 있었다. 아마도 술에 취하고 봄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봄에는 남자가, 가을에는 여자가 취한다고 듣긴 했지만 그에게 무슨 절박한 사정이라도 있는가 나는 그것부터 걱정했다. 그만큼 나는 현실적이 되어버렸고, 아직 그는 봄에 취해 울었던 것이다. 남자는 울어선 안 된다고 어른들은 가르쳤다. 우리 어머니도 외아들인 내 동생에게 오직 한가지 울면 회초리를 들었다. 울음을 허락받지 못한 남성들은 미세한 감정을 어디다 풀어버리는지 모르지만 사실 인간은 울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강한 남자로 보이려면 눈물은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남자에겐 거의 철칙이었다. 이 세상에는 절벽 같은 좌절이 있고, 얼음 덩어리 같은 냉대도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은 주고 싶은데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벚꽃잎처럼 후다닥 떨어져 가벼워지면 좋겠지만 온몸을 털어도 달라붙어 있는 홀로라는 외로운 병은 함께 살아가는 몸속의 장기 같기도 한 것이다. 그다음 날 그는 말했다. 온 천지에 꽃들이 피어나고 봄은 온통 사람 마음을 흔들고 있는데 되는 것이라곤 없고 뼛속까지 외로운데 늦게 친구들과 헤어져 잎이 자욱이 쌓인 분홍빛 꽃길이었다고 한다. 한 발짝 한 발짝 걷다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왔고 순간 '사나이의 울음'에 대한 내 강의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눈물이 터질 때 그의 운동화에는 연분홍 꽃잎들이 묻어 있었을 것이고, 그의 눈에는 자신의 눈물방울로 보였을 것이다. 꽃잎은 지고 신록이 눈부시다가 곧 녹음으로 변하고 검푸른 녹음으로, 짙푸른 녹음으로 변하면서 민식이도 마음이 단단해지리라 생각한다. 젊은 날 꽃잎 위를 걸으며 봄에 취하고 술에 취해 한번 울었다는 것,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말해 주었다. 그다음 날도 민식이는 다시 전화를 해 죄송했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다 아니야 내게 잘했어, 그런 순간에 전화하고 싶은 선생이 되어 나는 많이 기뻤어 그리고 걱정도 되고. 세번이나 신춘문예에 떨어졌지만 반드시 기회는 올 거야. 넌 이미 시인이다. 이번엔 그가 웃었다. 술에 취해 언, 골목길을 걷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단다. 가끔 아름다움은 우리들 상처를 건드리지. 외로움을 툭 차기도 하지. 그러면서 그 아름다움을 힘으로 다시 살아가는 거지. 네 가슴속에 쌓인 꽃잎들이 하나하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면 너의 글은 사람들을 위로하게 될거야. 난 널 믿는다. 딸이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 왔다. 식탁에 놓으니 집이 환하다. 밤에도 낮에도 전등불 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밖은 꽃들이 피어나 거리를 환하게 하지만, 아직은 집 안에 두는 꽃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꽃을 자주 사는 편이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언제나 꽃을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눈길을 주게 하였다. 꽃은 혼자 보는 게 아니다. 함께 보고 함께 웃어주는 것이 꽃에 대한 예의다. 꽃을 바라보면서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아주 옛날에 고향 마당 뒤편은 화려한 꽃밭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아버지, 어머니가 얼굴이 붉어지고 한바탕 싸움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시간엔 아버지가, 어느 시간엔 어머니가 그 꽃밭에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화를 다스리느라 그 꽃밭에 계셨다는 것을. 내가 남편과 싸우고 나서 알았다. 내가 마흔쯤이었을 때 우리 집은 한 오십평의 정원이 있었다. 집안이 바위에 짓눌린 듯 무거워지면 때로는 남편이 그 정원에 서 있고, 그가 들어오면 내가 그 정원에 서 있었다. 자신을 견디느라 남편과 나도 그 정원이 어머니 같은 곳이었다.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작약과 모란이 피어나는 그 정원에서 참 오랫동안 눈물을 견디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만 시끄러워도 정원에만 나가면 어머니의 쓰다듬는 손길이 있고, 함께 웃어 주는 어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그 정원을 떠나왔지만, 그래서 아파트에서도 빌라에서도 살았지만 언제나 꽃을 안고 살았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그 견디는 힘을 나는 참 많이도 꽃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는 그를 반려라고 하지만 나는 꽃이 반려다. 너무 시간이 짧다고 친구는 말하지만 꽃이 피려는 준비기간에도, 몽우리로 바시시 얼굴을 내밀려는 순간에도 개화에서 지는 과정이 다 인생사다. 꽃이 지고 그것을 쓰레기봉투에 담을 때도 한바탕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그 사랑 때문에 빈자리를 견디어 낸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기다림을 배우면서. 지금은 꽃의 계절이다. 민식이가 꽃처럼 피어나는 생의 계절이 오기를….
2024-04-16 18:26:49당정이 설을 앞두고 14일 민생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역대 가장 많은 39조원을 풀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40만명에게 3월 말부터 제2금융권에서 빌린 돈의 이자를 최대 150만원 줄여주고, 취약계층 365만가구의 전기요금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전통시장·골목상권에서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은 월 구매한도를 150만원으로 50만원 늘린다.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살아나면서 우리 경제는 긴 침체를 벗어날 조짐이 미약하게나마 보인다. 그러나 서민들이 체감하는 살림살이는 팍팍하기만 하다. 버스·지하철뿐 아니라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과 장바구니 물가, 외식비까지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서울 자장면 한 그릇 평균 가격도 1년 전보다 7.6% 올라 7000원(7069원)인 시대가 됐다. 지난해 12월 전통시장, 대형마트에서 쓴 카드 사용액 증가율은 전년 동기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서민들로서는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 불황이 더하다는 말이 나온다. 치솟는 물가에 소비자들이 지갑 열기를 무서워하니 수출과 함께 경제의 또 다른 축인 내수는 더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의 민생대책은 가뭄 속의 단비 같다. 어느 때보다 대규모인 민생대책을 내놓은 것은 정부도 서민들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명절 전후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유동성을 늘리는 것 이외에 참신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민생대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국민이 장바구니와 식탁을 보면서 한숨을 쉬지 않도록 고물가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그 하나다. 중소사업장에선 임금체불이 없는지, 하도급대금이 제때 지급되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새해 들어 부동산, 일자리, 돌봄 등의 민생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일요일에 발표한 이번 지원책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의식주와 교통, 복지 등 여러 면에서 애로를 청취하고 해소해 주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받고 있지만, 서민들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때만 되면 민생을 외치지 말고 사시사철 관심을 갖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선심성 정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임시방편으로 경기를 띄우려는 목적이라면 후유증이 더 클 것이다. 먼저 고소득자와 외국 관광객들이 돈을 쓰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 나아가 투자 측면에선 산업계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악성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시한이 정해진 투자촉진세액공제도 다시 들여다보고 실정에 맞게 조정하기 바란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2년 유예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 민생법안 처리도 화급하다. 그러잖아도 민생에 대해 말뿐인 여야가 총선판 손익계산에 바빠 민생을 외면하거나 선거용으로 이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24-01-14 19:39:25【파이낸셜뉴스 순천=황태종 기자】알차게, 뜨끈하게, 건강하게,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우는 순천의 겨울 별미는 뭘까? 순천시가 찬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스치는 겨울철을 맞아 몸의 체온을 유지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국밥, 꼬막 정식, 짱뚱어탕, 미나리 삼겹살, 백반과 한정식, 매실 닭강정을 순천의 겨울 음식으로 추천했다. 2일 순천시에 따르면 국밥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이자 순천의 대표 음식이다. 예로부터 5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에 가면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국밥이었다. 북쪽에 웃장과 남쪽에 아랫장이 있는 순천 5일장의 대표 음식 역시 국밥이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순천의 대표 먹자골목인 웃장국밥골목은 매년 국밥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올해엔 'K-관광 마켓(전통시장) 10선'에 선정될 정도로 전국구 맛 시장으로 유명하다. 주황색 천막 아래 20여개 국밥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웃장국밥골목에 들어서면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식당 앞에 자리를 잡고 쉼 없이 썰어대는 돼지고기와 하루 종일 김 폴폴 올라오는 대형 국밥 솥의 냄새 공격에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밥집 안으로 들어서면, 다닥다닥 붙은 식탁과 의자가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분위기를 자아낸다. 순천의 대표 국밥은 같은 돼지국밥이라도 부산의 국밥과는 그 맛과 풍미가 다르다. 주문을 하면 양파와 부추, 쌈장과 초장, 새우젓이 사이좋게 등판하고, 날마다 새로 버무리는 겉절이 느낌의 새 김치와 잘 익은 깍두기가 뒤를 잇는다. 국밥이 나올 차례라고 생각하는 순간 살짝 데친 부추가 올라앉은 수육 한 접시가 떡 하니 배달된다. 국밥을 2인 이상 주문하면 나오는 웃장국밥골목만의 특급 서비스라니, 전라도 인심은 순천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수육으로 든든하게 한 번, 국밥으로 뜨끈하게 두 번, 순천 웃장 국밥이 당길 땐 꼭 친구나 연인, 가족과 함께 가야 한다. 다음으로는 겨울의 풍미를 담은 푸짐한 꼬막 정식 한 상이다. 전라도의 겨울은 꼬막의 계절이다. 갯벌 너른 순천 역시 뻘의 영양을 듬뿍 품은 꼬막이 그 맛의 나래를 펼치는 시기다. 찬바람 돌기 시작하는 11월부터 3월까지 꼬막은 맛과 영양의 절정을 이룬다. 순천만 주변 맛집들을 시작으로, 순천만국가정원, 낙안읍성, 시내 곳곳의 식당들까지 순천 어딜 가든 맛볼 수 있는 대표 시그니처 식재료 역시 꼬막이다. 꼬막 하나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내는 '순천食 꼬막 정식'은 로컬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까지 극진한 사랑을 받는 순천의 대표 음식이다. 다양한 꼬막 음식들에 계절의 풍미를 담은 나물과 김치 등 정갈한 계절 반찬들까지 골고루 챙겨 먹을 수 있다. 꼬막 정식을 시키면 일단 데친 꼬막 한 그릇이 등판한다. 이렇다 할 양념도, 반찬도 필요 없이 오로지 꼬막 본연의 맛을 즐기는 순천식 애피타이저이다. 밥상에 꼬막 껍데기가 쌓여갈 즈음, 꼬막 정식의 본식이 진행된다. 비법의 양념장 골고루 무친 꼬막무침, 따신 쌀밥에 비벼 먹기 좋은 새콤달콤 꼬막 초무침, 꼬막이 푸짐하게 들어가 더 시원한 꼬막 된장찌개(혹은 꼬막 된장국), 실한 꼬막이 통째로 들어간 고소한 꼬막 부침개, 아이들을 꼬막의 세계로 입문시킬 꼬막 탕수육까지 펼쳐진다. 최근에는 꼬막 꼬치구이, 치즈 올린 꼬막 햄버거 등 퓨전 꼬막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도 있다. 꼬막 정식용 밥은 밥그릇이 아닌 냉면 그릇에 나온다. 꼬막 초무침을 듬뿍 넣은 후 참기름 두르고, 김 가루 살짝 뿌려 싹싹 비벼 먹는 게 꼬막 정식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순천 갯벌이 내어준 자연의 맛인 짱뚱어탕은 순천에서도 겨울 별미로 통한다. 짱뚱어는 생긴 걸로만 보자면 이걸 왜 먹지 싶기도, 너무 작아 먹잘 것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몸뚱이가 품은 영양가를 안다면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물건)'할 만한 순천의 먹거리가 바로 짱뚱어다. 순천에는 '짱뚱어마을'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순천 사람들의 짱뚱어 사랑은 남달랐다. 갯벌이 조금만 오염돼도 살지 못하는 까다로운 짱뚱어는 해양오염의 지표가 되었고, 양식이 불가능해 100% 자연산으로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천에 몇 안 되는 짱뚱어 전문가가 홀치기 낚시로 한 마리, 두 마리 시간과 공을 들여 잡아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짱뚱어는 굽거나, 말리거나, 조리거나, 끓이는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순천에서도 별미로 통하는 짱뚱어는 미꾸라지보다 어획량이 적다 보니, 추어탕보다 값비싼 보양식으로 통한다. 일반적인 생선요리법과 닮았지만, 그 맛만큼은 달라도 확실히 다른 짱뚱어 요리 중 겨울에 특히 매력 발산을 하는 것이 짱뚱어탕이다. 푹 삶아 살만 발라낸 짱뚱어에 된장 풀고 시래기를 더한 짱뚱어탕은 추어탕과 비슷해 보이지만, 짱뚱어 특유의 갯 내음이 살아있어 진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짱뚱어탕이 나오면 일단 국물 맛에 집중해야 한다. 구수하면서 걸쭉하고, 시원하면서 칼칼한 짱뚱어탕 맛에 적셔들 때쯤에 밥을 말기 시작한다. 짱뚱어 국물이 진하게 밴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한 입, 순천 특산품인 고들빼기김치를 곁들여 또 한 입, 짱뚱어탕 하나만 시켜도 제철 식재료로 만든 밑반찬이 골고루 나오니 순천식 반찬들까지 야무지게 즐길 수 있다. 다른 계절엔 짱뚱어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짱뚱어 전골도 인기다. 짱뚱어가 통째로 들어간 전골은 짱뚱어의 찐 맛을 느낄 수 있는 보양식 중에 보양식이다. 일단 국물 맛은 살을 발라내 걸쭉한 탕과는 또 다른 시원함이 있다. 순천산 미나리의 상큼한 맛에 든든한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미나리 삼겹살도 겨울 별미로 손색이 없다. 흔히 미나리를 봄의 전령사라고 한다. 하지만 순천 미나리의 수확 시기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 사이로, 한겨울에도 실하게 자란 미나리를 맛볼 수 있다. 도사면과 별량면 200여 농가가 미나리를 손수 키우는 순천은 60여년 전통의 미나리 산지다. 순천의 청정 자연이 키운 미나리는 꽉 찬 식감과 풍부한 섬유질로 전국 최고의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미나리를 복탕이나 오리탕의 부재료로 생각하는 시대는 이제 갔다. 순천의 식당들은 미나리 파전, 미나리 떡갈비 등 미나리를 활용한 음식 개발에 열성적이고, 미나리 삼겹살 식당까지 있다. 산지에서 바로 수확해 바로 제공하니 그 신선함이야 두말하면 입 아플 일이다. 불판이 달아오르면 삼겹살 바로 옆자리에 미나리가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부재료가 아닌 메인 재료로 대등한 관계 형성이 이뤄지는 것이다. 돼지고기로 느끼해지기 일보 직전, 미나리 특유의 상쾌한 향과 맛이 입맛을 산뜻하고 개운하게 잡아준다. 고지방인 삼겹살이 우리 몸을 산성으로 변하게 하려는 찰나, 알칼리성 식품의 대표주자인 미나리가 등판해 몸의 균형까지 잡아주니 영양 측면에서도 금상첨화다. 기왕이면 미나리 삼겹살을 기본으로 미나리 생목살, 미나리 항정살에 미나리 육회비빔밥까지 알뜰하게 챙기길 추천한다. '나만 알고 싶은' 귀한 맛인 백반과 한정식도 순천의 자랑이다. 사통팔달의 도시 순천은 예로부터 물자가 풍부한 고장이었다. 순천의 비옥한 땅과 넉넉한 바다에서 나는 식재료는 물론 이웃한 주변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까지 역전시장, 아랫장시장, 웃장시장으로 총집합한 덕분에 사시사철 종합먹거리백화점을 방불케 했다. 덕분에 순천의 식당들은 제철 음식 내기가 쉬웠다. 제철에 나는 찬들로만 차려내도 그 자체로 특별한 상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순천의 백반집들이 긴 세월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켜온 이유기도 하다. 순천 백반은 가성비가 좋다. 계절에 맞는 육해공군, 산해진미를 차려내고도 서민들 주머니 생각해 주는 착한 맛집이다. 맛 좋은 엄마표 집밥에 인심까지 후하니 수십 년 단골들이 없을 수 없다. 최근 인기 유튜브 채널 '또 간 집'에 추천할 만한 백반집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단골들은 싫어할지 모른다. '나만 알고 싶은' 귀한 맛집일 테니까. 백반보다 좀 더 차림새 있고, 격식 있는 밥상을 원한다면 한정식을 추천한다. 손님 접대가 많은 시청을 중심으로 60여 년 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한정식집은 각자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음식들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계절별 나물 반찬들과 김치류, 전라도를 대표하는 갖은 젓갈류를 기본으로 수육에 갈비찜, 홍어, 홍어찜, 육회, 육회사시미, 생선구이, 생선찜, 탕에 조림 등 그 가짓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상 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을 어디 가서 하면 안 될 것 같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 맛집이다. '비싼 값'을 맛과 정성,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으로 채우는 '가심비' 좋은 한정식은 함께 먹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순천의 귀한 맛이다. 순천의 건강한 매실을 더한 매실 닭강정도 겨울철 별미로 인기다. 닭요리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다. 특히 순천은 닭 한 마리를 압력솥에 통째로 튀겨낸 마늘 통닭, 산장의 역사와 함께 해온 닭구이, 푸짐한 닭 코스 요리 등을 발굴해 온 닭요리 대표 도시다. 게다가 순천은 당도 높고, 신맛이 조화로운, 대한민국에서 매실이 가장 잘 자라는 지역 중 하나다. 이렇듯 소화를 돕는 건강한 매실과 인기 만점 닭의 이유 있는 만남으로 순천 매실 닭강정이 탄생했다. '2022 순천 푸드앤아트페스티벌 전국음식경연대회' 대상 수상작이자, 올해 열린 '순천매실 시그니처 디저트 공모전'에서도 영예의 대상을 거머쥔 뼈대 있는 이력의 순천 매실 닭강정은 대한민국 한식 대가가 직접 개발한 작품이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매실액과 직접 개발한 매실 간장을 섞어 숙성을 시킨 뒤 바삭하게 튀겨낸 닭강정에 머스터드 크림소스와 매실 소스를 섞어 버무리고 그 위에 국산 들깨를 뿌려 건강에 건강함을 더했다. 시그니처 닭강정과 수제 매실 양념 특제소스로 달콤함을 배가시킨 달콤 매실 닭강정은 기존에 먹어왔던 닭강정과는 닭의 육질부터 소스까지 확연히 다른, 차별화된 맛과 건강함을 품고 있다. 함께 나오는 매실장아찌는 느끼해지기 쉬운 튀긴 요리의 맛을 달콤·새콤·상큼하게 채워준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와 식감은 먹는 재미는 덤이다. 순천이 키운 매실을 더해, 순천의 손맛으로 만들고, 순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세상 단 하나뿐인 닭강정, 우리 가족에게 주고 싶은 순천의 건강하고 행복한 맛이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3-12-02 09:16:47"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본 적 있나요. 피렌체를 감싸 흐르는 아르노 강과 우뚝 솟은 피렌체 두오모 돔을 발갛게 비추는 석양이 너무도 멋진 곳입니다. 해가 진 후 아르노 강변을 따라 하나둘씩 켜지는 주광색 조명은 어느새 먼발치의 사람들을 중세속으로 이끌고 들어갑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피렌체 공국입니다." 며칠 전 그런 와인을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와인명가 안티노리(Antinori)가 토스카나의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만드는 '바디아 아 파시냐노(Badia a Passignano)'입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잔잔하게 입속을 물들이는 아로마가 마치 피렌체 시내를 포근히 덮는 미켈란젤로 언덕 노을을 닮았습니다. 또 와인이 입속에서 사라질때면 진한 아로마에 가려있던 여러가지 부케가 서서히 안개처럼 피어납니다. 무심코 오래된 성당 한켠의 대리석을 쓰다듬을 때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을 차례차례 마주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바디아 아 파시냐노는 안개가 살짝 내려앉은 중세의 어느 골목길을 걷는 그런 감동을 주는 와인입니다. #1.수도사는 최고의 지식인이자 뛰어난 미식가 바디아 아 파시냐노는 '파시냐노 대수도원'이라는 뜻입니다. 파시냐노 수도원은 891년, 멀게는 395년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아주 오래된 수도원입니다. 만일 그 역사의 기원이 395년이라면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죽던 해입니다. 테오도시우스는 392년 가톨릭을 로마의 국교로 선포해 오늘날의 기독교를 있게 한 위대한 황제입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로마는 자식들에 의해 동서로 완전히 갈라지며 서양사의 물결이 바뀌게 됩니다. 파시냐노 수도원은 이후 1049년에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로 편입됐으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587년부터 2년간 수도회 수학교사로 머무르기도 했던 유서깊은 수도원입니다. 예부터 수도원 인근에서는 늘 좋은 와인이 났습니다. 성찬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와인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죠. 오래된 수도원 인근에 늘 포도밭이 있는 이유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던 중세 수도사들이 그 시대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문맹사회였고 문맹을 장려하던 기독교 문화권에서 수도사들은 유일하게 문자를 아는 뛰어난 지식인이자, 농부이고, 미식가였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맛있는 포도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와인이 맛있어지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 노하우는 후배 수도사들에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수도사들은 같은 포도밭, 같은 품종의 포도인데도 밭고랑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형에 따라 토양의 성분과 퇴적층이 서로 다를 수 있고, 건물이나 나무에 의해 일조량과 바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사진 밭의 경우 그 위치에 따라 포도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수도사들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일찍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로 야트막한 담을 쌓아서 구분해놨습니다. 프랑스 와인, 특히 부르고뉴 와인을 보면 라벨에 '끌로(Clos)', '뀌베(Cuvee)' 등의 단어들을 본적이 있을 겁니다. 끌로는 바로 수도사들이 쌓아놓은 그 '돌담'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돌담에 따라 포도맛이 정확하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혹시 지금 마시는 와인의 라벨에 끌로라는 단어가 있다면 수도사들의 오랜 노하우가 담긴 좋은 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도사들은 같은 밭이라 하더라도 포도를 밭고랑별로 구분해 수확하고 과즙도 분리해서 짜냈습니다. 이후 와인 맛을 보며 다른 밭고랑의 와인을 섞었습니다. 이렇게 제조된 와인은 훨씬 복합적인 맛을 내고 늘 일관된 품질을 유지했습니다. 이같은 방식을 '뀌베 시스템(Cuvee System)'이라고 합니다. 뀌베는 프랑스 부르고뉴나 상파뉴에서 포도를 수확해 압착했을 때 처음 나오는 좋은 과즙을 말합니다. 그 해 농사가 너무 가물었다면 경사진 포도밭의 위쪽에 위치한 포도는 물이 부족해 품질이 떨어지지만, 맨 아랫쪽 포도는 품질이 좋습니다. 물이 위에서 흘러 아랫쪽에 모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비가 많이 온 해라면 아랫쪽 포도는 물을 많이 머금어 맛이 흐린 반면 위쪽은 과즙 농도가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각 고랑마다 포도맛을 보고 이를 섞는 것이죠. 이 뀌베 시스템도 수도사들이 처음 고안한 블렌딩 기법입니다. 보르도에서는 각 품종 별로 비율을 정해 섞습니다. 또 상파뉴에서는 샴페인을 만들 때 여러 해 동안 만들어진 와인을 섞습니다. #2. 중세 식탁과 세계사 물줄기 바꾼 금식일 신앙이 지배했던 중세 가톨릭 세계는 금식일에 지방 섭취를 철저하게 금지했습니다. 육고기는 물론이고 부산물인 유제품, 달걀까지도 제한했습니다. 더운 성질을 가진 붉은색 고기가 성욕을 부추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음식을 하루이틀 못먹는 것은 참을 수 있겠지만 금식일은 그 기간이 너무 길고 자주 찾아왔습니다. 사순절은 장장 6~7주일에 달했고, 매주 금요일과 각종 축일까지 합치면 1년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40~160일이 금식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축제를 의미하는 '카니발(Carnival)'도 금식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기는 사순절 시작에 앞서 육고기를 맘껏 먹으며 거리 축제를 즐기던 풍습이 오늘날 카니발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금식일이라 하더라도 생선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성질이 차고, 살의 색깔도 흰색이었기 때문에 비늘이 없는 뱀장어, 메기 등을 제외한 생선은 모두 허용했습니다. 중세 수도원을 방문하면 어딜가나 양식장 시설이 있는 이유입니다. 당시 서민들은 금식일에 민물고기를 먹었습니다. 구하기 쉬운데다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귀족이나 부자들은 바닷고기를 즐겼습니다. 바닷고기는 대부분 크고 기름기가 있어 지방에 목마른 귀족들을 입맛을 부족하나마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바닷고기는 대구를 좋아했습니다. 대구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유럽이 접한 대서양은 대구가 정말 크고 많이 잡혔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연안 국가들이 주식처럼 즐기는 '바깔라우(Bacalhau)'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중세 식탁을 바꾼 금식일은 세계사 물줄기도 바꿨습니다. 연근해에 머물던 당시 선원들이 대구를 잡으러 큰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대항해시대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절벽처럼 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스크 지역 선원들은 용감하게도 대구를 잡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뉴펀들랜드 연안까지 나가면서 먼 바다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먼저 연 이유입니다. #3. 중세 골목길로 안내하는 바디아 아 파시냐노 '바디아 아 파시냐노 2016'을 조심스럽게 따라 봅니다. 진한 포도향이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합니다. 신선하고 고급스런 아로마가 일품입니다. 마주하기 전 4시간 전에 보틀 브리딩을 하고, 다시 1시간 정도 디캔터에서 브리딩을 거쳐 병에 다시 담는 더블 디캔팅을 했는데도 그 향이 폭발적입니다. 입안에 살짝 흘려보면 제법 묵직한 질감에 놀랍니다. "어? 산지오베제(Sangiovese) 와인 맞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미디엄 바디와 풀바디 사이에 있지만 풀바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입속에서 마주하는 첫 아로마는 붉은 색 과일입니다. 입안에서 와인이 사라질때쯤 치솟는 침이 고일 정도의 기분좋은 산도가 인상적입니다. 산지오베제 100% 와인 맞네요. 이어 낙엽, 가죽, 연필심, 흙내음 등 복합적인 부케가 입안을 맴돌고 난 뒤 혀와 입안에 소복소복 내려앉는 타닌은 정말 좋습니다. 7년이 지난 와인임에도 타닌은 아직 두껍습니다. 세월이 더 흐르면 타닌도 아주 잘게 쪼개져 살포시 스며들 것 같습니다. 구조감 좋은 와인은 이런 감동을 줍니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모금 머금습니다. 이 와인, 라벨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피렌체 노을 빛을 닮은 바탕에 흐릿하게 자리잡은 바디아 아 파시냐노 수도원 건물, 저는 어느새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11-16 18:07:02[파이낸셜뉴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본 적 있나요. 피렌체를 감싸 흐르는 아르노 강과 우뚝 솟은 피렌체 두오모 돔을 발갛게 비추는 석양이 너무도 멋진 곳입니다. 해가 진 후 아르노 강변을 따라 하나둘씩 켜지는 주광색 조명은 어느새 먼발치의 사람들을 중세속으로 이끌고 들어갑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는 피렌체 공국입니다." 며칠 전 그런 와인을 만났습니다. 이탈리아 와인명가 안티노리(Antinori)가 토스카나의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만드는 '바디아 아 파시냐노(Badia a Passignano)'입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잔잔하게 입속을 물들이는 아로마가 마치 피렌체 시내를 포근히 덮는 미켈란젤로 언덕 노을을 닮았습니다. 또 와인이 입속에서 사라질때면 진한 아로마에 가려있던 여러가지 부케가 서서히 안개처럼 피어납니다. 무심코 오래된 성당 한켠의 대리석을 쓰다듬을 때 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을 차례차례 마주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바디아 아 파시냐노는 안개가 살짝 내려앉은 중세의 어느 골목길을 걷는 그런 감동을 주는 와인입니다. ■수도사는 최고의 지식인이자 뛰어난 미식가 바디아 아 파시냐노는 '파시냐노 대수도원'이라는 뜻입니다. 파시냐노 수도원은 891년, 멀게는 395년에 세워졌다고 알려진 아주 오래된 수도원입니다. 만일 그 역사의 기원이 395년이라면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죽던 해입니다. 테오도시우스는 392년 가톨릭을 로마의 국교로 선포해 오늘날의 기독교를 있게 한 위대한 황제입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로마는 자식들에 의해 동서로 완전히 갈라지며 서양사의 물결이 바뀌게 됩니다. 파시냐노 수도원은 이후 1049년에 베네딕토 수도회 산하로 편입됐으며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587년부터 2년간 수도회 수학교사로 머무르기도 했던 유서깊은 수도원입니다. 예부터 수도원 인근에서는 늘 좋은 와인이 났습니다. 성찬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와인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죠. 오래된 수도원 인근에 늘 포도밭이 있는 이유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던 중세 수도사들이 그 시대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독한 문맹사회였고 문맹을 장려하던 기독교 문화권에서 수도사들은 유일하게 문자를 아는 뛰어난 지식인이자, 농부이고, 미식가였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맛있는 포도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와인이 맛있어지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 노하우는 후배 수도사들에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수도사들은 같은 포도밭, 같은 품종의 포도인데도 밭고랑마다 서로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형에 따라 토양의 성분과 퇴적층이 서로 다를 수 있고, 건물이나 나무에 의해 일조량과 바람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사진 밭의 경우 그 위치에 따라 포도 맛이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수도사들은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일찍부터 알았습니다. 그래서 돌로 야트막한 담을 쌓아서 구분해놨습니다. 프랑스 와인, 특히 부르고뉴 와인을 보면 라벨에 '끌로(Clos)', '뀌베(Cuvee)' 등의 단어들을 본적이 있을 겁니다. 끌로는 바로 수도사들이 쌓아놓은 그 '돌담'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이 돌담에 따라 포도맛이 정확하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혹시 지금 마시는 와인의 라벨에 끌로라는 단어가 있다면 수도사들의 오랜 노하우가 담긴 좋은 와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도사들은 같은 밭이라 하더라도 포도를 밭고랑별로 구분해 수확하고 과즙도 분리해서 짜냈습니다. 이후 와인 맛을 보며 다른 밭고랑의 와인을 섞었습니다. 이렇게 제조된 와인은 훨씬 복합적인 맛을 내고 늘 일관된 품질을 유지했습니다. 이같은 방식을 '뀌베 시스템(Cuvee System)'이라고 합니다. 뀌베는 프랑스 부르고뉴나 상파뉴에서 포도를 수확해 압착했을 때 처음 나오는 좋은 과즙을 말합니다. 그 해 농사가 너무 가물었다면 경사진 포도밭의 위쪽에 위치한 포도는 물이 부족해 품질이 떨어지지만, 맨 아랫쪽 포도는 품질이 좋습니다. 물이 위에서 흘러 아랫쪽에 모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비가 많이 온 해라면 아랫쪽 포도는 물을 많이 머금어 맛이 흐린 반면 위쪽은 과즙 농도가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각 고랑마다 포도맛을 보고 이를 섞는 것이죠. 이 뀌베 시스템도 수도사들이 처음 고안한 블렌딩 기법입니다. 보르도에서는 각 품종 별로 비율을 정해 섞습니다. 또 상파뉴에서는 샴페인을 만들 때 여러 해 동안 만들어진 와인을 섞습니다. ■중세 식탁과 세계사 물줄기 바꾼 금식일 신앙이 지배했던 중세 가톨릭 세계는 금식일에 지방 섭취를 철저하게 금지했습니다. 육고기는 물론이고 부산물인 유제품, 달걀까지도 제한했습니다. 더운 성질을 가진 붉은색 고기가 성욕을 부추긴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음식을 하루이틀 못먹는 것은 참을 수 있겠지만 금식일은 그 기간이 너무 길고 자주 찾아왔습니다. 사순절은 장장 6~7주일에 달했고, 매주 금요일과 각종 축일까지 합치면 1년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140~160일이 금식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축제를 의미하는 '카니발(Carnival)'도 금식일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기는 사순절 시작에 앞서 육고기를 맘껏 먹으며 거리 축제를 즐기던 풍습이 오늘날 카니발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금식일이라 하더라도 생선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성질이 차고, 살의 색깔도 흰색이었기 때문에 비늘이 없는 뱀장어, 메기 등을 제외한 생선은 모두 허용했습니다. 중세 수도원을 방문하면 어딜가나 양식장 시설이 있는 이유입니다. 당시 서민들은 금식일에 민물고기를 먹었습니다. 구하기 쉬운데다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귀족이나 부자들은 바닷고기를 즐겼습니다. 바닷고기는 대부분 크고 기름기가 있어 지방에 목마른 귀족들을 입맛을 부족하나마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바닷고기는 대구를 좋아했습니다. 대구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유럽이 접한 대서양은 대구가 정말 크고 많이 잡혔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연안 국가들이 주식처럼 즐기는 '바깔라우(Bacalhau)'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중세 식탁을 바꾼 금식일은 세계사 물줄기도 바꿨습니다. 연근해에 머물던 당시 선원들이 대구를 잡으러 큰 바다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대항해시대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절벽처럼 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스크 지역 선원들은 용감하게도 대구를 잡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의 뉴펀들랜드 연안까지 나가면서 먼 바다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먼저 연 이유입니다. ■중세 골목길로 안내하는 바디아 아 파시냐노 '바디아 아 파시냐노 2016'을 조심스럽게 따라 봅니다. 진한 포도향이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합니다. 신선하고 고급스런 아로마가 일품입니다. 마주하기 전 4시간 전에 보틀 브리딩을 하고, 다시 1시간 정도 디캔터에서 브리딩을 거쳐 병에 다시 담는 더블 디캔팅을 했는데도 그 향이 폭발적입니다. 입안에 살짝 흘려보면 제법 묵직한 질감에 놀랍니다. "어? 산지오베제(Sangiovese) 와인 맞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미디엄 바디와 풀바디 사이에 있지만 풀바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입속에서 마주하는 첫 아로마는 붉은 색 과일입니다. 입안에서 와인이 사라질때쯤 치솟는 침이 고일 정도의 기분좋은 산도가 인상적입니다. 산지오베제 100% 와인 맞네요. 이어 낙엽, 가죽, 연필심, 흙내음 등 복합적인 부케가 입안을 맴돌고 난 뒤 혀와 입안에 소복소복 내려앉는 타닌은 정말 좋습니다. 7년이 지난 와인임에도 타닌은 아직 두껍습니다. 세월이 더 흐르면 타닌도 아주 잘게 쪼개져 살포시 스며들 것 같습니다. 구조감 좋은 와인은 이런 감동을 줍니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모금 머금습니다. 이 와인, 라벨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피렌체 노을 빛을 닮은 바탕에 흐릿하게 자리잡은 바디아 아 파시냐노 수도원 건물, 저는 어느새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11-15 21:18:43'먹보 형제' 김준현-문세윤이 진기명기한 '크랩 발골쇼'로 홍콩을 접수한다. 14일(화) 밤 8시 30분 방송되는 SBS Plus '먹고 보는 형제들'(이하 '먹보형') 6회에서는 '홍콩 MZ세대 성지' 다이파이동(포장마차 노천식당)에서 홍콩에서의 반짝이는 첫날밤을 보낸 김준현-문세윤의 모습이 펼쳐진다. '홍콩&마카오 대탐험'의 첫째 날, '파워J(계획형)' 김준현이 짠 코스대로 딤섬 맛집을 뽀개고, 쿵푸 수업까지 마친 두 사람은 현지인 쿵푸 사부가 추천해준 다이파이동 식당으로 이동한다. 이윽고 다이파이동 골목에서 해당 식당을 찾은 두 사람은 '대기번호 83번' 소식에 잠시 좌절한다. 하지만 곧, 오픈 주방에서 펼쳐진 주방장의 '저세상 불쇼'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급기야 김준현은 "(주방장) 전완근 좀 봐~ (쿵푸) 영춘권이야!"라며 쿵푸 사부와 비교까지 해 폭소를 안긴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드디어 식당에 입성하는데, 김준현은 "선..선생님!"이라고 한국말로 종업원을 부르며 다급한(?) 주문 스킬을 펼쳐, 문세윤을 빵 터지게 만든다. 뒤이어 두 사람은 주문한 메뉴들과 맥주가 식탁에 푸짐하게 깔리자, 뿌듯하게 악수를 나눈 뒤 본격 식사에 돌입한다. 특히 쿵푸 사부가 추천한 '소고기 감자볶음'을 맛본 김준현은 "맛이 간드러진다"고 표현하고, 문세윤은 "불 컨트롤이 어마어마하다"며 감탄한다. 나아가, 김준현은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믿먹(믿고 먹는)' 조합을 연거푸 완성하며 '먹술사' 포텐을 터뜨린다. 그런가 하면, 두 사람은 스파이시 크랩이 서빙되자, 머리를 맞대고 초몰입 발골쇼를 펼친다. 이에 식당에 자리한 현지인들도 진기한 '발골 투샷'을 힐끗거리며 구경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부끄러움 없이 '네버엔딩 발골쇼'를 펼친 두 사람은 "오늘 너무 좋다!"며 대만족의 '엄지 척'을 날린다. 오로지 먹방으로 '홍콩 MZ의 성지' 다이파이동을 접수한 '대한민국 대표 먹선수' 김준현-문세윤의 모습은 14일(화) 밤 8시 30분 방송하는 SBS Plus '먹고 보는 형제들' 홍콩&마카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slee_star@fnnews.com 이설 기자 사진=SBS Plus
2023-11-13 13:3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