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정지우 특파원】23일 중국 공산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가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리창 상하이시 당 서기, 자오러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 차이치 베이징 당서기, 딩쉐샹 중앙판공청 주임, 리시 광둥성 서기가 순서대로 입장했다. 관례에 비춰 이들은 모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임된 것으로 보인다. 상무위원은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부다. 입장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졌던 점을 고려하면 절대 권력 시장핑 총서기(국가주석) 다음으로 리창 국무원 총리(2위),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3위),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4위), 차이치 중앙서기처 서기(5위), 딩쉐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6위), 리시 국무원 부총리(7위)가 된다. 리창 상하이 당 서기와 함께 총리 물망에 올랐던 후춘화 부총리는 결국 상무위원에 진입이 좌절했다. 후 부총리는 후진타오 전 총리가 ‘격대지정’(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지명해 권력투쟁 폐단을 막는 권력 승계 방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따라서 후진타오 계열로 분류된다. 이로써 리커창 총리, 왕양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함께 후진타오 계열 인사들은 모두 낙마하는 모양새가 됐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은 전날 열린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폐막식에서 돌연 퇴장했다. 관영 매체는 건강상 이유라고 뒤늦게 해명했지만, 일각에선 인사에 불만을 느낀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었다. 후 부총리는 또 리 총리, 왕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더불어 중국 정치의 3대 계파 중 하나인 공산주의청년당(공청단) 출신이다. 이로 인해 향후 5년 동안 신임 최고 지도부에서 공청단 출신은 사라지게 됐다. 상무위원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천민얼 충칭시 당 서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최고지도부 진입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2-10-23 13:30:37중국 베이징 공산주의청년단에서 3월30일 열린 사회공헌협약체결식에서 박근태 CJ그룹 중국본사 대표(왼쪽)와 져우창쿠이 중국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CJ그룹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손잡고 현지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기로 했다. CJ그룹은 3월30일 중국 베이징 공청단 중앙청사에서 청년창업 및 취업, 청소년 문화교류를 확대하는 내용의 양해각서( MOU)를 체결했다고 3월31일 밝혔다. 이번에 CJ그룹과 MOU를 체결한 중국 공청단은 청년을 중심으로 조직된 중국 공산당 인재 양성기관이다. 이번 협약을 통해 양측은 중국사회의 청년 창업과 취업, 문화교류 확대,교육문제 해결 등에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우선 CJ그룹 중국 사업장을 청년실습장으로 활용하고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CGV영화관람 프로그램과 모바일 청소년 영화공모전 진행, K-pop음악,영화, 제과제빵 등의 체험교육 프로그램, 한·중 청소년문화교류 등도 진행된다. CJ그룹은 ‘2020년 Great CJ’로의 도약을 위해 최근 그룹 내에 ‘사회공헌추진단’을 새롭게 꾸리는 등 그룹의 공유가치 창출 사업 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 Great CJ’는 그룹이 2010년 발표한 경영 목표로 2020년까지 매출 100조 중 70%를 해외 사업장에서 달성하는 내용이다. 이번 협약체결의 신호탄으로 CJ중국본사에서는 공청단 산하 공익교육기관인 백년직업학교과 함께 올해부터 재학생 대상으로 ‘CJ제과제빵 교실’, ‘CJ음악교실’ 등의 공동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는 백년직업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사천성 성도에서 3일간 K-pop아티스트와 함께 K-pop음악과 춤을 배우는 ‘CJ음악교실’을 개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북경 본교 학생을 대상으로 CJ푸드빌의 제과제빵 교육프로그램을 5주간 운영하고 점포 취업연계까지 지원해주는 ‘CJ 제과제빵교실’ 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근태 CJ중국본사 대표는 “중국 공청단과의 협력을 통해 한중 문화산업 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므로써 그룹의 나눔, 상생 철학을 글로벌화 하는데 중국 본사가 앞장설 계획”이라며 “젊은이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CJ그룹 뿐 아니라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2016-03-31 14:38:41【베이징=차상근특파원】 중국 공산당의 차세대 인재 양성소 역할을 하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지방조직을 1970년대 이후 출생한 치링호우(70後)세대들이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인민망이 17일 보도했다. 현재 쟝시, 신쟝,시쟝을 제외한 28개 성급 지방정부 공청단 서기중 치링호우들은 23명에 달했고 5명은 류링호우(60後)세대였다. 이들중 가장 젊은 성공청단 서기는 1976년 10월 출생한 36세의 구이저우성공청단 서기 마닝위였고 1972년생이 8명,1971년생 5명 등의 순이었다. 지난해 11월 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이후 교체된 9개 성급 지방정부의 공청단서기는 모두 치링호우였다. 이중 가장 젊은 인물은 후베이성 장구이화로 1975년생이었으며 나머지 8명은 1971~1973년생으로 40세 전후였다. 이들 9명중 4명은 박사학위 소유자였다. 인민망은 현재 전국 각성의 치링호우세대 고급간부들은 대부분 공청단 경력을 갖고 있고 일부는 지급시(성별 광역도시) 당위원회나 시정부의 최고위 간부로 활동하거나 그 이상의 위치의 인물도 있다고 전했다.csky@fnnews.com
2013-01-17 17:45:16【베이징=차상근특파원】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을 정점으로 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들이 중국 지방 당 조직을 대거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대만 중앙통신사가 14일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제 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이후 31개 성·직할시·자치구 가운데 15개 지역에서 당 간부 인사가 있었으며, 이들 지역의 당 서기를 비롯한 핵심 간부 45%가 '퇀파이'로 불리는 공청단 출신으로 채워졌다. 공청단은 공산당의 청년조직이지만 후 주석을 배경으로 정치세력화 됐다는 분석이며 후춘화 광둥성 서기와 한정 상하이시 서기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당 대회 과정에서 7인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공청단 출신으로는 리커창 상무부총리 한 명만 선출돼 시진핑 총서기 체제에서는 상하이방이나 태자당 세력에 밀려 결집력이 약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중앙 정치국원에 이어 지방 조직에도 공청단이 대거 포진하면서 다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평가했다. 인사가 이뤄진 15개 성·직할시·자치구의 고위 간부 가운데 70%는 해당 지역 인물이 진급했다. 중국 국가행정학원 레이창 교수는 "현지 출신을 발탁하면 지역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장점이 있다"면서 "체제의 연속성과 안정을 강조하는 인사 관행이 시진핑 체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csky@fnnews.com
2013-01-14 16:43:40중국 공산당의 핵심인력을 배출하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미국 광고업체와 제휴해 새로운 길을 건설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저널(WSJ)지가 25일 보도했다. 이는 앞으로 닥쳐올 수 있는 중국의 취업난과 더불어 신세대들이 자본주의를 배우려는 열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은 공청단이 뉴욕에 본사를 둔 광고회사 오길비 앤드 매더와 합작, ‘붉은 인력(Red Force)’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중국 젊은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자본주의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공청단은 7000만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엘리트 조직으로 후진타오 현 국가 주석이 지난 84년 제1 서기를 지낸 바 있다. 이 단체는 지난 2003년 중국 최대 온라인 게임업체 ‘샨다’를 설립한 천톈지오를 영입하기도 했다. 공청단은 지난 2002년 말 오길비와 제휴한 뒤 단원 3500명 이상을 마케팅 전문인력으로 교육시켰다. 현재 중국 대학 졸업자는 지난해 약 280만명으로 전년대비 3분의1 이상 늘어나 고용시장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오길비 직원들이 투입돼 이뤄지는 ‘붉은 인력’ 세미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저널은 전했다. 지난달 베이징에서 열린 2일 과정 세미나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법과 마케팅에 대한 기초교육이 이뤄졌으며 오길비 기업문화도 소개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공청단원들은 홍콩 디즈니랜드 등의 마케팅 사례를 교육받았다. 여자들에게는 고객에게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마케팅 도우미 과정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오길비는 성적이 좋은 일부 참석자들을 즉석에서 뽑아 스위스 시계업체인 스와치의 마케팅 도우미로 활동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오길비 관계자는 “‘붉은 인력’ 프로그램의 비즈니스 잠재력은 무한하다”며 “중국에 진출한 다른 외국 기업들처럼 대도시만이 아닌 지방으로도 확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길비가 이미 중국에 2000명가량의 직원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중국측이 워낙 적극적이어서 확장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2005-01-25 12:29:37[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쟁자였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27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원 총리로 결정되며 올해 초까지 10년간 중국 경제를 이끈 인물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쟁자였고 중국 서열 2위로 쓴소리와 소신 행보를 보였으나 시 주석이 독보적 지위를 구축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5년 출생, 후진타오와 동향 중국 관영매체인 CCTV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해왔으며 전날 갑작스러운 심장병이 발생, 이날 0시 10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지난 1955년 중국 안후이성 동부 추저우의 딩위안현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 8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인 1974년에는 19세의 나이로 당시 마오쩌둥의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서 배우라"는 '상산하향' 운동에 동참, 펑양현 다먀오공사 다먀오대대 생산대에서 근무한 뒤 1976년 다먀오대대 당지부 서기를 지냈다. 1976년 4월에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82년에는 베이징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1988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1994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각각 졸업했다.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계기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중앙학교부 부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이다. 리 전 총리는 그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후진타오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향의 선후배다. 44세에 허난성의 최연소 성장이 된 리 전 총리는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거쳐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맡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공청당 대표, 그러나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밀려 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인 리 전 총리는 비슷한 연배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밀어준 시 주석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2인자인 총리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임명 직후 실세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진핑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했다. 그는 총리 재직 10년간 절대 권력에 여러 차례 쓴소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20년 5월 전인대 기자회견 발언이 대표적이다. 리 전 총리는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지난해에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리 전 총리가 '제로 코로나'를 주장하는 시 주석에 맞서며 중국 정가의 권력 암투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으나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3월 퇴임, 쓸쓸한 죽음 지난 3월 퇴임 직전에는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이 유비 사후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문구를 놓고 전문가들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막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단됐지만,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했다. 지난해 20차 당 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갑자기 퇴장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던 장면도 유명하다. 당시 후 전 주석은 시 주석 및 리잔수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대화한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가 짧은 말을 건넸다. 일각에서는 공청단을 대표하는 그가 리커창 등 핵심 세력이 최고지도부에서 탈락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벌인 행동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중국 누리꾼 애도 제로 코로나 폐지 이후에도 중국 경제가 부진한 데다 부동산발 경제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고 권력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민생을 챙긴 리 전 총리에 대한 향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자유주의 시장경제 개혁에 조종이 울렸다”며 중국 누리꾼들이 애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은 “리 전 총리는 중국의 자유주의 시장 경제 개혁의 등대였다”며 "갑자기 등대가 꺼짐에 따라 자유주의 시장 경제 개혁이 끝났다"고 애도했다. 한편 일본 정부도 애도를 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각의(국무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리 전 총리는 2018년 5월 일·중·한 정상회담 때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등 일·중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삼가 명복을 빌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와 친분이 있었던 오자와 이치로 입헌민주당 중의원(하원) 의원은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하고 매우 놀랍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아직 젊은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중국의 국가적 손실이며 향후 일·중 양국의 우호 발전을 위해서도 아쉬워해야 한다. 지금은 그저 명복을 빌 뿐이다"고 전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3-10-27 15:12:14【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 관명 매체가 27일 오전 심장병으로 숨졌다고 주장한 리커창 전 중국 총리는 2013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원 총리로 결정되며 올해 초까지 10년간 중국 경제를 이끈 인물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경쟁자였고 중국 서열 2위로 쓴소리와 소신 행보를 보였으나 시 주석이 독보적 지위를 구축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8년 안후이성에서 태어났고 정파도 후진타오 전 주석과 같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으로 분류되면서 "리틀 후"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렸다. 당 간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교 졸업 후 고향에서 농촌을 체험했다. 문화대혁명 종료 후 베이징대 법학과에 입학해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공청단을 대표하는 인물로, 비슷한 연배 중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밀어준 시 주석에게 1인자 자리를 빼앗기고 2인자인 총리 자리를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임명 직후 실세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진핑 1인 권력이 강화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도 함께 약화했다. 그는 총리 재직 10년간 절대 권력에 여러 차례 쓴소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2020년 5월 전인대 기자회견 발언이 대표적이다. 리 전 총리는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7만원)밖에 안 되며,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강조한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으로 읽힐 수 있어서다. 지난해에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 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리 전 총리가 '제로 코로나'를 주장하는 시 주석에 맞서며 중국 정가의 권력 암투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으나 이변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 3월 퇴임 직전에는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 天在看)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이 유비 사후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남긴 것으로 알려진 이 문구를 놓고 전문가들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발언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막혀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차단됐지만,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SNS를 통해 널리 확산했다. 지난해 20차 당 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갑자기 퇴장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던 장면도 유명하다. 당시 후 전 주석은 시 주석 및 리잔수 전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대화한 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면서 리 전 총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무언가 짧은 말을 건넸다. 일각에서는 공청단을 대표하는 그가 리커창 등 핵심 세력이 최고지도부에서 탈락한 것에 불만을 품고 벌인 행동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제로 코로나 폐지 이후에도 중국 경제가 부진한 데다 부동산발 경제 위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고 권력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민생을 챙긴 리 전 총리에 대한 향수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3-10-27 11:21:16【베이징=정지우 특파원】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사망했다고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보도했다. 27일 매체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최근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해왔으며, 전날 갑작스러운 심장병이 발생했고, 이날 0시 10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고는 추후 발송될 예정이라고 CCTV는 전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인물 정보 검색 등을 보면 리 전 총리는 중국 안후이성 동부 추저우의 딩위안현에서 1955년 7월에 출생했다.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 8중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졸업 후인 1974년 19세의 나이로 당시 마오쩌둥의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서 배우라”는 ‘상산하향’ 운동에 동참해 펑양현 다먀오공사 다먀오대대 생산대에서 근무한 뒤 1976년 다먀오대대 당지부 서기를 지냈다.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같은 해 5월이다. 1982년 베이징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1988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1994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각각 졸업했다.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계기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중앙학교부 부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이다. 리 전 총리는 그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후진타오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향의 선후배다. 이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와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를 역임했다. 44세 때는 허난성의 최연소 성장이 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거쳐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맡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뒤인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영어에 능통하며 연설도 가능하다. 한때 시 주석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리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산과 엄격한 방역 통제로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등이 전면 봉쇄돼 경제가 충격을 받자 “과도한 방역으로 물류가 차질을 빚고, 농업 인력과 농자재 이동 통제로 곡물 수확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바이두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는 리 전 총리 사망 소식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렸으며, 인물 검색과 관련 소식을 흑백으로 처리하며 애도하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3-10-27 10:26:01【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집권 3기를 출범시키면서 장기 통치 기틀을 명확히 마련했다. 최고 지도부를 비롯해 최고 권력기관까지 견제 세력을 없애 이의를 제기할 기회의 싹은 잘라버렸고 그 자리엔 최측근들로만 채워는 방식으로 '시진핑 왕국'을 만들었다는 것이 외부의 시선이다. 대관식 이후엔 두 개의 확립과 수호, 집중통일영도체제(사실상 시진핑)에 대한 충성 서약을 서둘러 받기도 했다.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최고 사정·감찰기관이 3기 숙청을 시작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양방향 전략도 진행시켰다. 절대적인 권위에 표면적으론 포스트 시진핑은 없다. 최소 5년 또는 10년, 경우에 따라선 종신집권도 가능한 모양새다. 그렇다면 포스트의 가능성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뒤를 이을 후계 구도가 불명확해도 조직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래 권력 후보군의 실루엣 정도는 찾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기도 한다. 차기와의 유대 강화는 한중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밑거름이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국 위원 24명 중 후계자 없어 시진핑 1인 천하의 완성을 위해 공산당 인사 관례였던 7상8하(67세 유임·68세 은퇴)가 3기에서 깨졌다는 것은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소멸을 뜻하진 않는다. 최고 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경우 시 주석(69)을 제외하고 68세 원칙에 어긋나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유력)과 차이치 중앙서기처 서기가 67세로 그나마 최고령이다. 반면 2기 상무위원이었던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70), 한정 상무부총리(68) 등 2명은 7상8하 원칙으로 퇴임했다. 범위를 넓혀 중앙정치국 위원 24명(상무위원회 7명 포함)에서 보면 장여우샤(72)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유력), 왕이(69)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유력) 만이 관례를 피해 갔다. 시 주석까지 포함할 경우 24명 중 3명에게만 7상8하 원칙을 예외로 둔 것이다.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리우진궈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겸 국가감찰위원회 부주임은 67세이기 때문에 유임 명분이 된다. 따라서 7상8하 원칙은 특별한 경우를 빼곤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별한 경우는 시 주석의 남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외신들은 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새로운 라인업에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시 주석이 앞으로 5년 또는 그 이상 중국을 계속 통치할 것임을 시사한다"면서 "왕이와 장여우샤를 유지하는 것은 외교와 국방에서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처럼 7상8하가 존재하고 시 주석이 향후 10년을 더 집권한다고 가정할 경우 중앙정치국 위원 24명 중에서 57세 이하(57세+10년=67세)가 차기 주석 후보군로 유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젊은 리간제 산둥성 서기, 리수레이 중앙선전부 부장(승진), 장궈칭 랴오닝성 서기, 천지닝 상하이 당서기(확정) 등 4명은 이때가 되면 68세로 퇴임 대상이기 때문에 전체 정치국 위원 가운데는 후보군이 없는 셈이다. 시 주석이 5년만 집권하면서 7상8하도 완전히 깨진다고 예상해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딩쉐샹(60) 상무부총리(유력), 천민얼(62) 충칭시 당서기, 인리(60) 푸젠성 당서기, 천원칭(62) 국가안전부 당서기, 위안자쥔(60) 저장성 당서기 등 10여명의 중앙정치국 위원이 물망에 오른다. 다만 1인 왕국이 시작된 현 시점에서 5년 집권은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다. ■57세 이하·70허우는 후보군 존재 다음 아래 권력집단인 중앙위원회 위원 205명(중앙정치국 위원 24명 포함)까지 내려가면 57세 이하 인물 22명을 찾을 수 있다. 시진핑 10년 집권과 7상8하 관례 요건을 모두 만족시킨다. 5년 뒤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고 다시 10년 뒤 상무위원으로 고속 승진할 경우 포스트 후보자 가능성이 있다. △왕즈쥔 헤이룽장성 당 부서기 △예젠춘 장시성 당 부서기 △리우웨이 지린성 당 부서기 △쉬쿤링 장쑤성 당 부서기 △리러청 랴오닝성 당 부서기 △천강 중화전국총공회 당서기 △저우주이 인력자원과 사회보장부 당서기 △멍판리 광둥성 당 부서기 △자오이더 산시성 당 부서기 △황젠파 저장성 당 부서기 △청리화(여) 안후이성 당 부서기 등이 57세다. 또 △친강(56) 주미 대사 △왕셔우원(56) 상무부 당 부서기 △우샤오쥔(56) 칭하이성 당 부서기 △루하오(55)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주임 △자오룽(55) 푸젠성 당 부서기 △창팅치우(55)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사령관 △션하이슝(55) 중앙선전부 부부장 △자오강(54) 산시성 당 부서기 △쭝샤오쥔(54) 중앙군사위 판공청 주임 △인융(53) 베이징시 대리시장(시장권한대행) △허쥔커(53) 공산주의청년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등도 후보군으로 볼 수 있다. 이들 가운데 누가 시 주석과 각별한 연결 고리를 맺고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자오이더는 시 주석이 저장성 당 부서기를 할 때인 2002~2006년 공청단 저장성위원회 부서기와 공산청년동맹 저장성위원회 서기를 맡았다는 이력이 있다. 인융은 시 주석과 같은 칭화대 출신이며 차이치 상무위원의 지지를 받고 있다. 션하이슝은 2007년 시 주석의 상하이시 당서기 시절 신화통신 상하이 지부장과 당 지도부 부서기를 지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중국 20차 당 대회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7상8하, 5년 연임, 10년 연임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서 포스트 시진핑 후보자를 분석·관찰해 미래 한중관계의 인적 자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향후 고속 승진을 하면서 중앙당교 교장, 중앙서기처 서기, 부주석 등 요직을 두루 거치는 인물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시 주석은 2012년 당 총서기가 되기 전에 5년 동안 상무위원을 지냈고 그 전임자였던 후진타오와 장쩌민도 마찬가지였다. 또 최고 지도자로 오르기 위해선 후보자는 적어도 하나의 중요한 시장을 운영하고 베이징에서 핵심 직위를 채워야 한다. 시 주석의 경우 저장성과 상하이 당 서기를 거쳤고 중앙서기처 서기도 맡았다. 성균관중국연구소는 "공청단 중앙 제1서기를 역임한 루하오가 중앙위원에 재선임되고 허쥔커가 재진입한 것은 공청단 세력의 원천 제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정치국 후보위원에 스광후이, 양진바이 등 20여명이 넘는 '70허우'(70년 이후 출생자)들이 들어가면서 향후 세대교체를 통한 후계구도 형성 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누구도 포스트 시진핑 후보로 지목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곧 시 주석의 집권 장기화를 의미하며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이번 인사와도 상통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대학의 중국 엘리트 정치학 전문가인 빅터 시는 SCMP에 "마오쩌둥의 후계자들은 끔찍한 상황에서 사망하거나 삶을 교도소에서 보냈다"면서 "분명히 아무도 (시 주석의)권위에 도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고 시 주석은 4선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2022-11-06 18:13:59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막식 도중 후진타오 전 주석(80)이 퇴장당하는 동영상이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공교롭게도 후 전 주석의 공청당 일원인 리커창 총리, 왕양 정협 주석이 최고 수뇌부 인선에서 탈락한 직후였다. 전임 최고 지도자가 당 대회 진행 도중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성에게 팔을 잡힌 채 불명예스럽게 나간 이유에 대해 해석이 구구하다. 먼저 공청단의 몰락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리려는 시 주석의 연출 가능성이 꼽힌다. '1인 천하'의 완성을 기정사실화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불만을 품은 후 전 주석의 돌발적 항의소동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설명대로 건강이상설도 무시할 순 없으나 중국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해당 영상이 완전히 삭제된 점 등으로 미뤄 신빙성이 떨어진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상징으로 가득 찬 순간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헨리 가오 싱가포르대 교수는 "중국에서 이 같은 회의가 얼마나 철저한 예행연습을 거쳐 준비되는지를 고려할 때 당국이 모두 보는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뒀다는 점에 가장 주목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시진핑의 완전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라고 평가하면서 시 주석의 연출설에 힘을 실었다.카타르 국영방송 알자지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1분29초짜리 풀영상을 보면 후 전 주석이 반강제로 끌려나가며 실랑이를 벌이는 정황이 확연하다. 후 전 주석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흘려들으면서 귀찮아하는 시 주석의 표정도 뚜렷하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한사코 퇴장을 거부하며 시 주석의 등에 손을 댄 채 후 전 주석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또 자신이 10년 전 차기 주석으로 밀었던 리 총리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또 무슨 말을 했을까. 진위가 무엇이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옛말대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2022-10-24 18:3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