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가유산청은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제2회 대한민국 전통조경대전' 공모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대한민국 전통조경대전은 국가유산청이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전통조경의 역사적·미학적 가치를 이해하고,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전통조경공간을 재조명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공모전에 출품되는 작품들을 전통조경공간의 가치를 지키고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공모는 △전통조경 디지털 설계 △근현대 전통조경공간 사진 및 영상 △전통조경 우수시공사례 3개 부문으로 진행된다. '전통조경 디지털 설계' 부문은 한국 전통정원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창의적인 설계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공모다. 한국전통조경공간 표준모델 마련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근현대 전통조경공간 사진 및 영상' 부문은 1990년 이전 전통조경공간을 배경으로 한 사진과 영상을 출품하는 공모다. 근현대 시기 변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출품작들은 고문헌 등 관련 자료와 전통조경공간 복원정비 근거자료로 사용된다. '전통조경 우수시공사례' 부문은 지난해까지 완료된 국내 실내외 전통조경공간(전통정원)의 우수 사례를 발굴해 전통조경 분야 산업 활성화를 독려하고자 올해 신설된 공모다. 공모 수상작은 부문별 전문가 심사를 거쳐 오는 11월 3일 발표될 예정이다. 수상작에는 국가유산청장·한국전통문화대학교총장·궁능유적본부장·한국전통조경학회장·한국조경학회장 표창과 총상금 3000만원이 수여된다. 수상작은 11월 17일부터 28일까지 덕수궁 선원전 권역에서 전시를 통해 국민에게 선보인다. 디지털 설계 및 근현대 사진·영상 부문은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전통조경 우수시공사례 부문은 응모 대상에 대한 실적을 보유한 개인과 사업주체가 참여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공모전 웹사이트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접수하면 된다. 이후 9월 23일부터 30일까지 분야별 공모 작품을 전자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5-06-30 12:22:09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면서 중등 교과서에도 실린 '메밀꽃 필 무렵'과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로 잘 알려진 작가 가산 이효석(1907~1942)은 근현대 문학가 중에서 구체적으로 지리와 지리적 개념을 많은 작품과 글에 직접 언급한 보기 드문 작가다. 이효석은 태생적인 자연미(自然美)를 존중하면서도 '첨단의 도시미(都市美)'에도 천착한다. 자연미와 도시미, 서구미(西歐美) 등과 함께 도시와 농촌, 산골, 해안, 대하천 등에 있어서 장소와 지리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분석과 기술이 탁월하다. 이효석은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비교하면서 풍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위도와 지리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풍토 내지 문학과 기후는 결코 새로운 제목은 아닐 것이다. 풍토와 기후는 생활을 규정하고, 생활을 비추어낸 것이 문학일지니 문학과 풍토의 관련은 심히 큰 것이다. 격정이 없는 이 가난한 풍토와 거세된 환경에서 발자크적 훌륭한 문학을 낳는다는 것은 극난의 일이다."(수필 '북위 42도' 중) 작가는 1907년 강원 평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평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봉평의 자택과 거리가 40㎞ 떨어져 있는 학교 인근에서 하숙을 했다고 하는데, 이 초등학교가 평창군에서 유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친은 진부면장을 지내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친의 직장(교육직 공무원)으로 인해 경성(서울)에서 잠시 살았지만 다시 평창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그 후 경기고보와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도서과 검열계에 취업해 있는 동안, 서울에서 1920년부터 1930년까지 10년을 살았다. 이효석은 또 193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의 미술학도 이경원과 결혼을 하면서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약 4년을 살게 된다. 그 뒤 이효석은 1934년부터 1942년 세상을 뜰 때까지 평양에서 지내게 된다. 평양에서는 숭실전문학교(1936~1938)와 대동공업전문학교(1939~1942) 영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사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함북 경성과 평양에서 만들어졌다. 경성과 평양에 있는 동안에는 만주와 연해주 등을 자주 여행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여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만주와 연해주 외 일본, 중국 등 가까운 해외 방문 관련 내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평양에 대한 작품들에서 대동강 지형, 평양의 문화유적, 대동강 보트 놀이, 평양의 식당, 다방, 꽃집, 주점, 공연장들은 평양의 도시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서 언급된 시설들이다. 그는 다방을 비롯한 주점과 요정도 늘어나서 평양의 중심가가 번성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물위' '유도소식' 등). 또한 대동강, 을밀대, 부벽루, 전금문(轉錦門), 청류정(淸流亭), 대성산 고구려 유적 등의 명승과 문화유산 등을 묘사한다('은은한 빛'). 그 외 반월도('물위'), 주암산('유도소식') 등의 자연 경관들도 언급된다. 평양의 도시 구조와 인접한 근교와 원교를 결합한 거대 도시권에 대한 의견도 가진다. "광장이 있고 언덕이 있으며 폭포가 있고 호수가 있어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광장에 홀을 만들고 조명을 밝히고(…) 온갖 근대시설을 갖춘다면(…) 평양이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로 발전하여(…) 평양은 가까이에 강을 끼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야(…) 여름철에 평양부 인구의 몇 분의 일이 (여기서) 살다시피한다."('물위' 중) '메밀꽃 필 무렵'을 제외하면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적, 도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의 일상생활 장소와 지역들은 도시, 도심지와 교외 주택, 휴양지, 국내외 여행지 등이 주류를 이룬다. 도회적, 모더니즘적 취향이 많았던 이효석의 작품에서 도시적인 '경물(景物)'에 대한 것이 많다. 작품에 언급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커피(자바, 모카 등 품종도 언급), 맥주, 위스키, 포도주, 머루주, 아파트, 호텔, 백화점, 서점, 다방, 레스토랑, 카바레, 방송국, 신문사, 음악 연주홀, 영화관, 토키(talkie), 대학 강의실, 만찬, 정원수, 보일러, 욕실, 목욕실, 목욕통, 보트, 별장, 극장, 냉난방, 온실산 양딸기, 잼, 소시지, 버터, 통조림, 우유, 크리스마스 트리, 색 전기(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스키, 스케이트, 등산 피켈 등이 보인다. 이러한 용어들은 지금으로 보아도 그리 오래되거나 낯설지 않고, 경제적 수준 면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앞선 '댄디보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효석의 잘 알려진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1938)는 그의 서구적 모더니즘을 매우 잘 보여준다. 어두운 식민지 시절에 이러한 낭만적인 모습을 글로 남기기는 쉽지 않겠지만, 혹은 어두운 시기를 기피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에 은닉되는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30여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은 조련치 않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낟은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 전기로 장식하는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특별한 예를 들면 그의 수필 '채롱'(조선일보 1938년 4월 28일~5월 5일)의 '우유' 편을 본다. 우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으며 시민들의 생활과 연관된 미래지향적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현대인의 환상'이기도 하다.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거리의 복판마다 우유 탱크를 세우고(…) 시민에게 자유롭게 마시게 하거나(…) 수도와 마찬가지로 우유도(牛乳道)를 만들어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언제든지 쏟아지게 하는 설비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이효석의 작품들 중에서 공간 인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작가 이효석은 공간과 장소에 관해 서지학적 발굴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자신의 평전적 요소와 함께 문학지리 분석의 대상이다. 평양에서의 생활을 담은 그의 작품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는 100년 전 평양 연구의 역사지리이기도 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2-23 18:44:37단편소설의 백미로 꼽히면서 중등 교과서에도 실린 '메밀꽃 필 무렵'과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로 잘 알려진 작가 가산 이효석(1907~1942)은 근현대 문학가 중에서 구체적으로 지리와 지리적 개념을 많은 작품과 글에 직접 언급한 보기 드문 작가다. 가산은 태생적인 자연미(自然美)를 존중하면서도 ‘첨단의 도시미(都市美)’에도 천착한다. 자연미와 도시미, 서구미(西歐美) 등과 함께 도시와 농촌, 산골, 해안, 대하천 등에 있어서 장소와 지리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분석과 기술이 탁월하다. 이효석은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비교하면서 풍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위도와 지리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문학과 풍토 내지 문학과 기후는 결코 새로운 제목은 아닐 것이다. 풍토와 기후는 생활을 규정하고, 생활을 비추어낸 것이 문학일지니 문학과 풍토의 관련은 심히 큰 것이다. 격정이 없는 이 가난한 풍토와 거세된 환경에서 발자크적 훌륭한 문학을 낳는다는 것은 극난의 일이다.”(수필 '북위 42도' 중) 작가는 1907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평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봉평의 자택과 거리가 40㎞ 떨어져 있는 학교 인근에서 하숙을 했다고 하는데, 이 초등학교가 평창군에서 유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부친은 진부면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부친의 직장(교육직 공무원)으로 인해 경성(서울)에서 잠시 살았지만 다시 평창으로 내려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그 후 경기고보와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총독부 도서과 검열계에 취업해 있는 동안, 서울에서 1920년부터 1930년까지 10년을 살았다. 이효석은 또 1931년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의 미술학도 이경원과 결혼을 하면서 함경북도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약 4년을 살게 된다. 그 뒤 가산은 1934년부터 1942년 세상을 뜰 때까지 평양에서 지내게 된다. 평양에서는 숭실전문학교(1936~1938)와 대동공업전문학교(1939~1942) 영어과 교수로 재직했다. 사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함북 경성과 평양에서 만들어졌다. 경성과 평양에 있는 동안에는 만주와 연해주 등을 자주 여행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여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만주와 연해주 외 일본, 중국 등 가까운 해외 방문 관련 내용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평양에 대한 작품들에서 대동강 지형, 평양의 문화유적, 대동강 보트 놀이, 평양의 식당, 평양의 다방, 꽃집, 주점, 공연장들은 평양의 도시 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에서 언급된 시설들이다. 그는 다방을 비롯한 주점과 요정도 늘어나서 평양의 중심가가 번성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물위' '유도소식' 등). 또한 대동강, 을밀대, 부벽루, 전금문(轉錦門), 청류정(淸流亭), 대성산 고구려 유적 등의 명승과 문화유산 등을 묘사한다('은은한 빛'). 그 외 반월도('물위'), 주암산('유도소식') 등의 자연 경관들도 언급된다. 평양의 도시 구조와 인접한 근교와 원교를 결합한 거대 도시권에 대한 의견도 가진다. “광장이 있고 언덕이 있으며 폭포가 있고 호수가 있어서(...) 호수에 배를 띄우고 광장에 홀을 만들고 조명을 밝히고(...) 온갖 근대시설을 갖춘다면(...) 평양이 인구 수백만의 대도시로 발전하여(...) 평양은 가까이에 강을 끼고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야(...) 여름철에 평양부 인구의 몇 분의 일이 (여기서) 살다시피한다.”('물위' 중) ‘메밀꽃 필 무렵’을 제외하면 그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들은 대부분 현대적, 도시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의 일상생활 장소와 지역들은 도시, 도심지와 교외 주택, 휴양지, 국내외 여행지 등이 주류를 이룬다. 도회적, 모더니즘적인 취향이 많았던 이효석의 작품에서 도시적인 ‘경물(景物)’에 대한 것이 많다. 작품에 언급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커피(자바, 모카 등 품종도 언급), 맥주, 위스키, 포도주, 머루주, 아파트, 호텔, 백화점, 서점, 다방, 레스토랑, 카바레, 방송국, 신문사, 음악 연주홀, 영화관, 토키(talkie), 대학 강의실, 만찬, 정원수, 보일러, 욕실, 목욕실, 목욕통, 보트, 별장, 극장, 냉난방, 온실산 양딸기, 잼, 소오세지, 버터, 통조림, 우유, 크리스마스 트리, 색 전기(크리스마스 트리 전구), 스키, 스케이트, 등산 피켈 등이 보인다. 이러한 용어들은 지금으로 보아도 그리 오래되거나 낯설지 않고, 경제적 수준 면에서도 높은 편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앞선 ‘댄디보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이효석의 잘 알려진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1938)는 그의 서구적 모더니즘을 매우 잘 보여준다. 어두운 식민지 시절에 이러한 낭만적인 모습을 글로 남기기는 쉽지 않겠지만, 혹은 어두운 시기를 기피하면서 개인적인 생활에 은닉되는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30여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 시중은 조련치 않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낟은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 전기로 장식하는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특별한 예를 들면, 그의 수필 '채롱'(조선일보, 1938년 4월 28~5월 5일)의 '우유' 편을 본다. 우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으며 시민들의 생활과 연관된 미래지향적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현대인의 환상’이기도 하다. “시민마다가 우유를 풍족히 마실 수 있다면(...) 거리의 복판마다 우유 탱크를 세우고(...) 시민에게 자유롭게 마시게 하거나(...) 수도와 마찬가지로 우유도(牛乳道)를 만들어 각 가정에서 나사만 틀면(...) 언제든지 쏟아지게 하는 설비를(...) 충심으로 원하는 바이다.” 이효석의 작품들 중에서 공간 인식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작가 이효석은 공간과 장소에 관해 서지학적 발굴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자신의 평전적 요소와 함께 문학지리 분석의 대상이다. 평양에서의 생활을 담은 그의 작품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는 100년 전 평양 연구의 역사지리이기도 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2-17 14:12:55전북 익산(益山)은 서울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길목이고, 여산은 그 입구다. 현재 익산은 행정구역으로 익산시이며 과거 오랫동안 익산은 익산군과 이리시로 분리돼 있었다. 1906년 익산군, 1931년 이리읍, 1949년 이리시, 그리고 1995년 통합으로 익산시가 되었다. 익산시의 읍면 행정구역으로 익산시 외 금마면, 여산면, 왕궁면, 황등면, 함열읍, 함라면 등이 있다. 전체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전북에서 전주 다음이며 군산보다 인구가 많다. 전북은 지형적으로 동쪽의 소백산지(무주·진안·장수), 서쪽의 호남평야(전주·이리·군산), 그리고 그 중간에 중산간지(임실·순창·남원)로 이루어진다. 익산은 금강 북쪽의 논산평야, 익산 남쪽의 호남평야와 연결된다. 익산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장항선) 등의 철도가 교차하는 호남 최대 교통요지가 되었다. 익산의 지리적 위치, 지정학적 장소성의 영향으로 백제와 고려시대의 불교, 근현대의 천주교·기독교·원불교의 터전으로서 종교도시로서 익산의 단면을 본다. 익산은 고대사에서 백제 이전의 마한과 청동기·석기 시대의 문화유적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호남의 입구 여산은 특히 현대시조의 거두인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와 문학관으로 유명하다. 이병기 선생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도 잘 인식하면서 전북의 여러 초중등 학교와 전국 유수 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경남중, 경기중, 경복중, 경북중 등 당시 전국 명문들도 포함된다. 가람문학관에는 이병기 선생이 작사한 모든 교가를 다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문학관의 한국 학교 교육에 대한 큰 기여를 보여준다. 전북 익산시는 1995년 행정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돼 이루어졌다. 고조선시대에는 건마국(乾馬國)이었고, 위만(衛滿)에 쫓긴 기자(箕子)의 준왕(準王)이 익산으로 내려오면서 마한국(馬韓國)이 됐다. 현재의 금마를 중심으로 백제시대에는 금마저(金馬渚)라 했고, 통일신라가 되면서 금마군으로 바뀌었다. 1344년 고려시대 원나라 순제의 황후 기황후 친정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익주(益州)'로 높여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다시 익산으로 변경됐다. 고산자 김정호는 지리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익산을 백제의 별도(別都)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의 수도 사비에 버금가는 특별수도로 여겼음을 뜻한다. 왕궁 터와 미륵사지, 많은 산성들이 그 의미를 더한다. 백제 무왕의 새로운 통치이념을 위한 철저한 계획 왕도(王都)로 개발했다고 본다. 백제가 더 존속했다면 아마도 수도를 익산 금마로 이전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도 왕도로 손색없는 많은 시설과 유물이 나오고 있어 백제와 마한의 역사를 살펴준다. 역사적으로 마한과 백제, 부여로 연결되며 고려의 역사유적도 더러 살필 수 있다. 마한은 진한(경북), 변한(경남)과 함께 삼한으로 불린다. 마한은 기원전에서 대략 기원후 400년까지 경기, 충청, 전라도에 존속한 정치체제였다. 익산은 역대 왕조에서 수도가 된 일이 없는 곳임에도 한국의 4대 고도(古都)로 공식 인정되었다. 4대 고도는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익산이다. 고도는 과거의 왕궁, 왕성, 왕릉, 왕사(王寺)가 있는 도읍이다. 익산에는 백제 무왕과 관련된 미륵사와 왕궁 유적, 쌍릉 등이 있다. 4대 고도의 보존과 육성을 위해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2017년 입법예고되고 2020년 5월 정식으로 시행됐다. 이에 힘입어 익산에도 '국립익산박물관'이 설립됐다. 지형 및 지질에 있어 익산은 화강암 지대로 유명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강암으로 1억5000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백악기 정도의 질이 좋고 아름다운 화강암이다. 현재 채석되고 있는 한국의 화강암 생산에서 가장 높은 품질을 보여준다. 황등면에 국내 최대 화강암 채석장이 있고, 암석의 질도 매우 높다. 익산의 발전은 자연 및 인문지리의 연관성에서도 살필 수 있다. 산지의 지역 특성에 대한 영향, 호남평야의 개간과 수리시설, 저수지시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의 근대적 개발과 현재의 상황 등으로 지역의 문화와 경제가 잘 나타난다. 고대와 중세의 도로, 하천, 해안 교통과 근현대의 철도와 신작로 건설 등이 익산의 역사지리와 현재의 익산 지리에 반영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익산, 여산, 함열, 용안 등이 통합돼 현재의 익산이 됐다. 일제강점기 솜리 마을에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을 잇는 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익산의 중심은 금마에서 솜리로 옮겨졌다. 솜리(혹은 솝리)는 '깊은 속 마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데 그대로 한자어 이리(裡里)로 변경되었다. 여기서 이(裡)는 한자 표리(表裏)에서 속을 뜻하는 이(裏)와 같은 뜻이다. 이리라는 지명은 '대동여지도' '동국여지승람' 등 고문서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호남선 개통으로 솜리가 철도 요지가 되고, 이를 배경으로 금마에 있던 익산 행정 중심을 솜리로 옮기면서 1931년 전격적으로 익산을 한자 지명 이리로 바꾼 것이다. 이리시가 다시 익산시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 때문이다. 그럼에도 익산에는 이리초, 이리중, 이리고, 이리공고 등 이리 명칭 학교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이리시와 익산군으로 분리됐다가 현재는 익산시로 변경됐다. 여전히 익산의 경제와 행정중심지는 과거 이리에 있다. 주요 문화유적은 청동기 문화, 초기 철기 문화 유적과 함께 마한과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가 모두 함께한다. 그중에서도 마한과 백제 유적이 대표적이다. 익산은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만경강이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이 경계가 되고 서쪽으로는 호남평야 군산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부여군과 논산시, 동쪽으로는 완주군, 남쪽으로는 김제시와 전주시, 서쪽으로는 군산시와 행정 경계를 이룬다. 호남평야상으로 보면 평야의 북동부에 해당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경제개발에 따른 대규모 평야 개척은 익산에서는 만경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강점기의 거대한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황등제는 당시 익산 농업의 큰 힘이었다. 익산역은 철도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의 교차역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농업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해왔다. 사실 평야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논산평야, 익산평야, 호남평야, 나주평야가 연결돼 있다. 익산은 지형, 물산, 장소와 위치, 역사와 문화 등에서 풍요로운 지역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2-09 18:49:18전북 익산(益山)은 서울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길목이고 여산은 그 입구다. 현재 익산은 행정구역으로 익산시이며 과거 오랫동안 익산은 익산군과 이리시로 분리돼 있었다. 1906년 익산군, 1931년 이리읍, 1949년 이리시, 그리고 1995년 통합으로 익산시가 되었다. 익산시의 읍면 행정구역으로 익산시 외 금마면, 여산면, 왕궁면, 황등면, 함열읍, 함라면 등이 있다. 전체 인구는 약 30만명으로 전북에서 전주 다음이며 군산보다 인구가 많다. 전북은 지형적으로 동쪽의 소백산지(무주·진안·장수), 서쪽의 호남평야(전주·이리·군산), 그리고 그 중간에 중산간지(임실·순창·남원)로 이루어진다. 익산은 금강 북쪽의 논산평야와 익산 남쪽의 호남평야와 연결된다. 익산은 근현대를 거치면서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장항선) 등의 철도가 교차하는 호남 최대의 교통요지가 되었다. 익산의 지리적 위치, 지정학적 장소성의 영향으로 백제와 고려시대의 불교, 근현대의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의 터전으로서 종교도시로서의 익산의 단면을 본다. 익산은 고대사에서 백제 이전의 마한과 청동기, 석기시대 문화유적도 다수 보유한다. 호남의 입구 여산은 특히 현대시조의 거두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와 문학관으로 유명하다. 이병기 선생은 학교 교육의 중요성도 잘 인식하면서 전북의 여러 초중등 학교와 전국의 유수의 학교들 교가를 작사했다. 경남중, 경기중, 경복중, 경북중 등 당시 전국 명문들도 포함된다. 가람문학관에는 가람선생이 작사한 모든 교가를 다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문학관의 한국 학교 교육에 대한 큰 기여를 보여준다. 전북 익산시는 1995년 행정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돼 이루어졌다. 고조선시대에는 건마국(乾馬國)이었고, 위만(衛滿)에 쫓긴 기자(箕子)의 준왕(準王)이 익산으로 내려오면서 마한국(馬韓國)이 됐다. 현재의 금마를 중심으로 백제시대에는 금마저(金馬渚)라 했고, 통일신라가 되면서 금마군으로 바뀌었다. 1344년 고려시대 원나라 순제의 왕후 기황후 친정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익주(益州)’로 높여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다시 익산으로 변경됐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 김정호는 지리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익산을 백제의 별도(別都)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백제의 수도 사비와 버금가는 특별수도로 여겼음을 뜻한다. 왕궁 터와 미륵사지 터, 많은 산성들이 그 의미를 더한다. 백제 무왕의 새로운 통치 이념을 위한 철저한 계획 왕도(王都)로 개발했다고 본다. 백제가 더 존속했다면 아마도 수도를 익산 금마로 이전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도 왕도로 손색없는 많은 시설과 유물이 나오고 있어 백제와 마한의 역사를 살펴준다. 역사적으로 마한과 백제, 부여로 연결되며 고려의 역사유적도 더러 살필 수 있다. 마한은 진한(경북), 변한(경남)과 함께 삼한으로 불린다. 마한은 기원전에서 대략 기원후 400년까지 경기, 충청, 전라도에 존속한 정치체제였다. 익산은 역대 왕조에서 수도가 된 일이 없는 곳임에도 한국의 4대 고도(古都)로 공식 인정되었다. 4대 고도는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익산이다. 고도는 과거의 왕궁, 왕성, 왕릉, 왕사(王寺)가 있는 도읍이다. 익산은 백제 무왕과 관련된 미륵사와 왕궁 유적, 쌍릉 등이 있다. 4대 고도의 보존과 육성을 위해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2017년 입법예고되고 2020년 5월 정식으로 시행됐다. 이에 힘입어 익산에도 ‘국립익산박물관’이 설립됐다. 지형 및 지질에 있어 익산은 화강암 지대로 유명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강암으로 1억5000만년전 중생대 쥬라기, 백악기 정도의 질이 좋고 아름다운 화강암이다. 현재 채석되고 있는 한국의 화강암 생산에서 가장 높은 품질을 보여준다. 황등면에 국내 최대 화강암 채석장이 있고 암석의 질도 매우 높다. 익산의 발전은 자연 및 인문지리의 연관성에서도 살필 수 있다. 산지의 지역 특성에 대한 영향, 호남평야의 개간과 수리시설, 저수지 시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후의 근대적 개발과 현재의 상황 등으로 지역의 문화와 경제가 잘 나타난다. 고대와 중세의 도로, 하천, 해안 교통과 근현대의 철도와 신작로 건설 등이 익산의 역사지리와 현재의 익산 지리에 반영되고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익산, 여산, 함열, 용안 등이 통합돼 현재의 익산이 됐다. 일제강점기 솜리 마을에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을 잇는 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익산의 중심은 금마에서 솜리로 옮겨졌다. 솜리(혹은 솝리)는 ‘깊은 속 마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데 그대로 한자어 이리(裡里)로 변경되었다. 여기서 이(裡)는 한자 표리(表裏)에서 속을 뜻하는 이(裏)와 같은 뜻이다. 이리라는 지명은 대동여지도, 동국여지승람 등 고문서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호남선 개통으로 솜리가 철도 요지가 되고, 이를 배경으로 금마에 있던 익산 행정 중심을 솜리로 옮기면서 1931년 전격적으로 익산을 한자 지명 이리로 바꾼 것이다. 이리시가 다시 익산시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1977년 11월 11일 일어난 이리역 폭발사고 때문이다. 그럼에도 익산에는 이리초, 이리중, 이리고, 이리공고 등 이리 명칭 학교들이 많이 남아있다. 해방 이후 이리시와 익산군으로 분리됐다가 현재는 익산시로 변경됐다. 여전히 익산의 경제와 행정중심지는 과거 이리에 있다. 주요 문화유적은 청동기 문화와 초기 철기 문화 유적과 함께 마한과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가 모두 함께한다. 그중에서도 마한과 백제 유적이 대표적이다. 익산은 북쪽으로는 금강, 남쪽으로는 만경강이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이 경계가 되고 서쪽으로는 호남평야 군산과 경계를 이룬다. 북쪽으로는 부여군과 논산시, 동쪽으로는 완주군, 남쪽으로는 김제시와 전주시, 서쪽으로는 군산시와 행정 경계를 이룬다. 호남평야 상으로 보면 평야의 북동부에 해당하며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경제개발에 따른 대규모 평야 개척은 익산에서는 만경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의 거대한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사라진 황등제는 당시 익산 농업의 큰 힘이었다. 익산역은 철도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의 교차역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농업 물산의 집산지 역할을 해왔다. 사실 평야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논산평야, 익산평야, 호남평야, 나주평야가 연결돼 있다. 익산은 지형, 물산, 장소와 위치, 역사와 문화 등에서 풍요로운 지역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2-03 16:29:20【파이낸셜뉴스 무안=황태종 기자】전남도가 조선시대 지어진 나주 척서정 등 지역 생활유적, 불교미술, 고문서 등 7건을 도 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6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정 유산 가운데 나주 척서정은 고려 후기 무신 정지(1347~139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후손 정해일이 1915년 건립한 정자다. 이후 영정(影幀)을 모셔둔 사당(祠堂)인 영당(靈堂)으로 기능이 변용됐다. 종중 활동의 공간이자 선현 제향과 연관되는 공간으로, 전통 목조 구조가 견실하고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여수 한산사 지장시왕도는 18세기 전반 불화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유려한 색감과 표현 방식이 돋보인다. 조성 연대와 봉안처, 참여 제작자들의 기록이 남아 불교사와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다. 순천 금룡사 지장보살본원경은 임진왜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간행처와 간행 과정을 통해 당대의 불교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서지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해남 남천교 및 어성교 중수비와 청류정 표석은 해남지역 다리 중수 과정과 청류정의 존재를 알 수 있다. 해남지역 향촌사회사와 당시 지명사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유산이다. 해남 방죽샘과 중수비는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까지 주민에게 중요한 식수원이었던 생활유적이다. 우물 조성 시기와 참여한 인물들이 기록에 남아 있어 지역사와 우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장흥 열호재는 1800년대 초반 사랑채와 행랑채를 붙여 세운 건물이다. 향촌서재 등으로 활용돼 많은 전적이 보존돼 있다. 장흥부사나 인근 선비들의 많은 시문이 전해지고 있어, 건축적인 특징과 함께 복합적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지정 가치가 크다. 장흥 수의봉과 위원량 망곡 암각시문은 1920년 회은 위원량이 한일 병탈에 따른 국망(國亡) 통한을 칠언절구에 담아 수의봉에 새긴 암각문이다. 전국적으로 희귀한 사례로 역사적·학술적 의의 크다. 김지호 전남도 문화자원과장은 "이번 지정으로 다양한 분야 유산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후손에게 길이 전승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여러 분야 문화자원을 지속해서 발굴·관리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는 강진 大平명 양각해석류화문 청자, 강진 월남사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권제16, 고흥 봉암사 이여재 등 3건을 지정 예고했다. 앞으로 30일간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해 검토한 후 문화재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4-10-06 10:14:19한반도에서 고래는 울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남부 연안에서 많이 나타난다. 울산 장생포를 중심으로 근현대 포경업이 발달한 이유다. 전 세계 고래류는 100종에 이르고, 우리나라 연안에는 약 40종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끔 통발어선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는데 최근 사례는 지난 5월 23일 6.1m에 달하는 밍크고래가 혼획됐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래 자료는 약 7000년 전 선사시대 울산 대곡천의 반구대 고래 암각화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다음으로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 연오랑이 미역을 따다가 해안에 접근한 바위 등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바위는 고래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년)에도 고래가 나온다. 고래는 남해는 물론 서해에서도 나타난다. 자산어보에 의하면 '빛깔은 칠흑색이고 비늘이 없다. 길이는 100여자, 200~300자에도 이른다. 일본인들이 화살로 잡다 놓치면, 표류하여 서남해안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1912년 미국의 세계적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앤드루스는 울산 앞바다에 나타난 귀신고래를 보면서 한국 고래(Korea Grey Whale)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공식 통용되고 있다. 귀신고래는 태평양 북극해에서 북미연안으로 가는 종이 있는데 아시아 연안에 나가는 고래를 대표해 한국 고래로 명명한 것이다. 한반도 인근, 특히 최고 깊이가 거의 4000m에 이르는 동해는 고래의 회유지로 유명하다. 동해에 많이 출현하는 고래류는 가장 대표적인 귀신고래를 비롯해 참고래, 참돌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등이다. 자라면 크기가 15m까지 이르고 수명도 50년에 이른다. 온순하면서도 매우 빠른 동작을 보이고, 가족애가 가장 높은 종이라고 한다. 북극해에 가장 가까이 사는 종으로 캄차카를 거쳐서 동해로 내려온다. 이동 거리는 최대 2만㎞에 이른다. 귀신고래는 다른 고래에 비해 비교적 연안 가까이에 접근한다. 관찰에 따르면 새끼를 낳으면 미역류를 먹는다고도 한다. 한국 산모를 많이 닮고 있다. 현해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는 바닷길로 고래의 길이기도 하다. 현해는 공식적으로 대한해협으로 명명된다. 이곳에서 자세히 살피면 이동하는 고래를 볼 수 있다. 고래는 태평양에서 상대적으로 좁은 대한해협을 지나서 동해로 들어간다. 동해 바다는 고래들의 좋은 먹이처이고 은신처이고 회유처다. 조선시대 동해를 경해(鯨海), 즉 고래바다로 부르기도 했다. 고래는 매우 지혜로운 포유류 동물로 넓은 바다에 적응해 지구상 최고의 큰 몸체로, 가장 먼 바다를 이동하면서 진화하고 생존해왔다. 시베리아와 북미 대륙에서 매머드가 사라진 것과는 대조가 된다. 고래는 몸체에서 버릴 것 없는 그 모든 것으로 인간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우리나라는 이제 법으로 고래를 잡을 수 없다. 예외적으로 우연히 그물에 걸리거나 좌초, 표류해 생명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허용이 된다. 북태평양의 북위 20도까지의 저위도에서는 늘 일정하게 북적도해류가 서쪽으로 흐른다. 난류다. 이 해류가 동아시아 대륙을 접하면서 급격히 동북으로 방향을 틀면서 일본 열도 아래로 흐르는 것이 쿠로시오 해류다. 이 쿠로시오 해류의 일단이 분리돼 대한해협으로 들어오는 것이 동한해류 혹은 동한난류다. 적도의 영향으로 역시 난류다. 동한난류는 동해로 들어오면서 동해안 방향과 독도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동해의 표면을 덥힌다. 동해안에서는 거의 두만강까지 올라간다. 동시에 동해의 북쪽에서는 차가운 북한해류가 남으로 내려온다. 거의 울산과 부산까지 내려온다. 당연히 동해에서 난류와 한류가 만난다. 서로 다른 성질의 해류가 만나는 해역을 조경(潮境)수역이라고 한다. 만나는 경계대에서 차가운 물은 대체로 해저 아래로, 더운 물은 해저 위로 오르면서 층서를 이룬다. 이러한 조경 수역은 조류와 어류가 해류를 따라 계절에 맞게 다양하고도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만들어준다. 해류가 부산 쪽에 와서 먼저 닿는 가덕도는 고기잡이의 보고다. 겨울철 방어, 봄철 숭어, 가을 전어 등이 가덕도 해역에서 잡힌다. 가덕도는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육지에서 공급되는 영양분을 듬뿍 받는다. 이 영양분들은 동한해류를 타고 동해로 유입된다. 남해안의 동쪽 끝과 동해안의 남쪽 끝이 만나는 부산을 중심으로 거제도, 가덕도, 영도, 기장, 울산 그리고 경북 포항, 영덕 등으로 이어진다. 생물계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해 각 지역과 장소에 적응하는 생태계를 형성한다. 동해 남부의 바다와 연안은 해양생태에서 영양분-조류(미역·다시마)-소어류(멸치)-대어류(고등어·방어)-고래 등으로 이어진다. 부산에서 울산에 이르는 동남해안의 특산물로 말하면 기장 미역, 대변 멸치, 방어진 방어, 장생포 고래 등이 유명하다. 다들 한국 최고의 특산물이다. 이들이 모여서 사다리꼴 먹이사슬을 이루며 고래가 맨 위에 있다. 장생포는 고래마을로 지역특화하고 있다.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이고, 그 넓은 바다에 적응한 가장 큰 몸체의 생물이 포유류 고래다. 고래가 다니는 바다 면적은 엄청나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세를 가지고 넓은 바다를 이해하고 살아간다. 울산 출신 작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1956년)은 이러한 동해안의 먹이사슬 구조를 잘 보여준다. 소설에는 기장, 일광 인근의 동해안 남부에서 미역 따기, 멸치떼잡이, 고등어 원양 출어 등이 함께 나온다. 소설에 보면 멸치 계절이 오면 해안에서 거의 건지다시피 한다. 원양 출어는 그 예로 울릉도와 대마도를 말하고 있다. 또한 해녀들의 활동과 함께 해양 생태계에 의존하는 마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언급된 바다 생태계가 잘 유지되면 그 최상의 높이에서 고래도 잘 서식한다. 울산 장생포는 고래잡이의 중심기지로 고래문화재단과 고래박물관이 있고, 인근 마을은 고래문화마을로 지정되고 '고래로'라는 도로명도 만들어졌다. 매년 9월 말이면 울산고래축제가 열린다. 고래를 보호하고 관찰하는 가장 좋은 위치다. 울산 태화강을 거슬러 가면 지류 대곡천 반구대에 경이로운 고래 암각화가 있다. 구석기시대의 작품으로 다양한 고래 모습들을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적인 선사시대 문화유적이다. 동해안 영덕 병곡면 사빈해안의 이름은 '고래불'이다. 경북에서 가장 긴 사빈으로, 멀리서 고래가 많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고래는 귀한 존재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2024-09-30 18:44:06한반도에서 고래는 울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남부 연안에서 많이 나타난다. 울산 장생포를 중심으로 근현대 포경업이 발달한 이유다. 전 세계 고래류는 100종에 이르고 우리나라 연안에는 약 40종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끔 통발어선의 그물에 걸리기도 하는데 최근 사례는 지난 5월 23일 6.1m에 달하는 밍크고래가 혼획됐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래 자료는 약 7000년 전 선사시대 울산 대곡천의 반구대 고래 암각화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다음으로 삼국유사의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 연오랑이 미역을 따다가 해안에 접근한 바위 등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고 나오는데, 여기서 바위는 고래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1814년)에도 고래가 나온다. 고래는 남해는 물론 서해에서도 나타난다. 자산어보에 의하면 ‘빛깔은 칠흑색이고 비늘이 없다. 길이는 100여자, 200~300자에도 이른다. 일본인들이 화살로 잡다 놓치면, 표류하여 서남해안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 1912년 미국의 세계적인 탐험가이자 고고학자인 로이 앤드루스는 울산 앞바다에 나타난 귀신고래를 보면서 한국 고래(Korea Grey Whale)로 불렀다. 이 명칭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공식 통용되고 있다. 귀신고래는 태평양 북극해에서 북미연안으로 가는 종이 있는데 아시아 연안에 나가는 고래를 대표해 한국 고래로 명명한 것이다. 한반도 인근, 특히 최고 깊이가 거의 4000m에 이르는 동해는 고래의 회유지로 유명하다. 동해에 많이 출현하는 고래류는 가장 대표적인 귀신고래를 비롯해 참고래, 참돌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등이다. 자라면 크기가 15m까지 이르고 수명도 50년에 이른다. 온순하면서도 매우 빠른 동작을 보이고, 가족애가 가장 높은 종이라고 한다. 북극해에 가장 가까이 사는 종으로 캄차카를 거쳐서 동해로 내려온다. 이동 거리는 최대 2만㎞에 이른다. 귀신고래는 다른 고래에 비해 비교적 연안 가까이에 접근한다. 관찰에 따르면 새끼를 낳으면 미역류를 먹는다고도 한다. 한국 산모를 많이 닮고 있다. 현해는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는 바닷길로 고래의 길이기도 하다. 현해는 공식적으로 대한해협으로 명명된다. 이곳에서 자세히 살피면 이동하는 고래를 볼 수 있다. 고래는 태평양에서 상대적으로 좁은 대한해협을 지나서 동해로 들어간다. 동해 바다는 고래들의 좋은 먹이처이고 은신처이고 회유처다. 조선시대 동해를 경해(鯨海), 즉 고래바다로 부르기도 했다. 고래는 매우 지혜로운 포유류 동물로 넓은 바다에 적응해 지구상 최고의 큰 몸체로, 가장 먼 바다를 이동하면서 진화하고 생존해왔다. 시베리아와 북미 대륙에서 매머드가 사라진 것과는 대조가 된다. 고래는 몸체에서 버릴 것 없는 그 모든 것으로 인간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어왔다. 우리나라는 이제 법으로 고래를 잡을 수 없다. 예외적으로 우연히 거물에 걸리거나 좌초, 표류해 생명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만 허용이 된다. 북태평양의 북위 20도까지의 저위도에서는 늘 일정하게 북적도해류가 서쪽으로 흐른다. 난류다. 이 해류가 동아시아 대륙을 접하면서 급격히 동북으로 방향을 틀면서 일본 열도 아래로 흐르는 것이 쿠로시오 해류다. 이 쿠로시오 해류의 일단이 분리돼 대한해협으로 들어오는 것이 동한해류 혹은 동한난류다. 일본에서는 쓰시마 해류라 한다. 적도의 영향으로 역시 난류다. 동한난류는 동해로 들어오면서 동해안 방향과 독도 방향으로 흩어지면서 동해의 표면을 덥힌다. 동해안에서는 거의 두만강까지 올라간다. 동시에 동해의 북쪽에서는 차가운 북한해류가 남으로 내려온다. 거의 울산과 부산까지 내려온다. 당연히 동해에서 난류와 한류가 만난다. 서로 다른 성질의 해류가 만나는 해역을 조경(潮境)수역이라고 한다. 만나는 경계대에서 차가운 물은 대체로 해저 아래로, 더운 물은 해저 위로 오르면서 층서를 이룬다. 이러한 조경 수역은 조류와 어류가 해류를 따라 계절에 맞게 다양하고도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만들어준다. 해류가 부산 쪽에 와서 먼저 닿는 가덕도는 고기잡이의 보고다. 겨울철 방어, 봄철 숭어, 가을 전어 등이 가덕도 해역에서 잡힌다. 가덕도는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육지에서 공급되는 영양분을 듬뿍 받는다. 이 영양분들은 동한해류를 타고 동해로 유입된다. 남해안의 동쪽 끝과 동해안의 남쪽 끝이 만나는 부산을 중심으로 거제도, 가덕도, 영도, 기장, 울산, 그리고 경북 포항, 영덕 등으로 이어진다. 생물계에는 먹이사슬이 존재해 각 지역과 장소에 적응하는 생태계를 형성한다. 동해 남부의 바다와 연안은 해양생태에서 영양분-조류(미역, 다시마)-소어류(멸치)- 대어류(고등어, 방어)-고래 등으로 이어진다. 부산에서 울산에 이르는 동남해안의 특산물로 말하면 기장 미역, 대변 멸치, 방어진 방어, 장생포 고래 등이 유명하다. 다들 한국 최고의 특산물이다. 이들이 모여서 사다리꼴 먹이사슬을 이루며 고래가 맨 위에 있다. 장생포는 고래마을로 지역특화하고 있다. 지구 표면의 71%가 바다이고 그 넓은 바다에 적응한 가장 큰 몸체의 생물이 포유류 고래다. 고래가 다니는 바다 면적은 엄청나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세를 가지고 넓은 바다를 이해하고 살아간다. 울산 출신 작가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1956년)은 이러한 동해안의 먹이사슬 구조를 잘 보여준다. 소설에는 기장, 일광 인근의 동해안 남부에서 미역 따기, 멸치떼 잡이, 고등어 원양 출어 등이 함께 나온다. 소설에 보면 멸치 계절이 오면 해안에서 거의 건지다시피한다. 원양 출어는 그 예로 울릉도와 대마도를 말하고 있다. 또한 해녀들의 활동과 함께 해양생태계에 의존하는 마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언급된 바다 생태계가 잘 유지가 되면 그 최상의 높이에서 고래도 잘 서식한다. 울산 장생포는 고래잡이의 중심기지로 고래문화재단과 고래박물관이 있고, 인근 마을은 고래문화마을로 지정되고 ‘고래로’라는 도로명도 만들어졌다. 매년 9월말이면 울산고래축제가 열린다. 고래를 보호하고 관찰하는 가장 좋은 위치다. 울산 태화강을 거슬러 가면 지류 대곡천 반구대에 경이로운 고래 암각화가 있다. 구석기시대의 작품으로 다양한 고래 모습들을 정교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적인 선사시대 문화유적이다. 동해안 영덕 병곡면 사빈해안의 이름은 ‘고래불’이다. 경북에서 가장 긴 사빈으로 멀리서 고래가 많이 나타난다고 붙인 이름이다. 거제와 통영 사이에도 고래섬이 있다. 울주군 언양읍 다개리는 내륙인데도 고래섬 지명이 있다. 고래 식용과 연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고래는 귀한 존재이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9-26 16:03:46【파이낸셜뉴스 광주=황태종 기자】광주광역시가 아직 휴가 계획을 세우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기름값 걱정 없고 휴가비도 적게 드는 도심 속 피서지를 물놀이장, 미디어아트, 여름축제·페스티벌, 실내 전시·공연, 어린이체험 등 테마별로 안내해 눈길을 끈다. 27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내 곳곳에 공공기관이 운영해 안전하고 청결하며 무엇보다도 비용 부담도 없는 물놀이장이 즐비하다. △광주시민의 숲 △상무시민공원 △쌍학어린이공원 △송산근린공원 △산동교친수공원 △동강대 △광주천 자연친화형 물놀이장 등이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휴식할 수 있는 캠핑장도 여름 나기를 위해 고려해 볼만하다. △국민 여가 친화 환경 오토캠핑장 △광주시민의 숲 야영장 △패밀리랜드 카라반 캠핑장은 접근성과 편의성이 좋고, 캠핑장 인근의 관광지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가족과 함께 피서를 즐기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이색 체험을 원한다면 '서창 향토문화마을 한옥스테이'도 권할 만하다. 근사한 전통한옥에서 가족,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옥스테이는 바쁜 도시민에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될 수 있다. 밤에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광주'에서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다. 미디어아트 영상과 레이저쇼, 음악이 결합한 '5·18민주광장 음악(빛)의 분수'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피서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음악(빛)분수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발길을 돌리면 옛 광주읍성을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새롭게 조성한 '빛의 읍성'도 빼놓을 수 없는 미디어아트 맛집이다. '빛의 읍성'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광주공원에는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관람할 수 있는 '광주미디어아트 플랫폼(G.MAP)'이 있다. 이곳을 시작으로 산책길을 따라 사직공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몽환적인 '빛의 숲'과 광주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도 빠뜨릴 수 없다. 도심 속 문화 예술 축제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먼저, 동구에 위치한 대인예술야시장에선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며 맛있는 음식도 맛보고 공연·전시와 함께 각종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올해 대인예술야시장은 지난 13일 1회차를 시작으로 2회차 20일, 3회차는 27일 운영한다. 개장 시간은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오는 8월 24일 시청 야외음악당에서는 '여름(SUMMER) 워터파크닉'이 열린다. 물놀이 축제와 함께 수박씨 멀리보내기, 수박시식회 등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어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사흘 동안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과 열린마당, 5·18광장 등에서 '2024 ACC 월드뮤직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 행사는 ACC 여름 대표축제로, 국내·외 최정상급 16개 팀과 신진 아티스트 팀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여름을 날 수 있는 전시와 공연도 풍성하다. 오는 9월 1일까지 열리는 광주과학관의 공룡특별전 '2024 다이노 월드'에선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공룡과 함께 지구의 탄생부터 공룡시대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탐구하고 즐길 수 있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은 8월 4일까지 실감콘텐츠전 '너머의 세계'를 연다. 장 샤오타오(중국)와 한윤정 작가가 참여해 몰입형 전시공간에서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실감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시립미술관에선 8월 15일까지 여름특별전 '우주의 언어-수×한국미술명작' 전시가 열린다. 현대미술과 한국 근현대미술 명작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선 '이건희 컬렉션, 피카소 도예전'을 만날 수 있다. 지난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고 이건희 컬렉션 중 피카소 도자 작품 100여점이 처음으로 광주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도예 작품을 비롯해 피카소가 직접 스케치한 포스터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광주예술의전당도 예술 공연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5개 핵심 콘텐츠'를 선보인다. 광주·대구 교류 프로그램 '달빛동맹 기획', 국내외 트렌디한 예술가들의 무대를 선보이는 '포시즌',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 열리는 '11시 음악산책', 남녀노소 즐기는 공연 '아트위크', 뮤지션들과 지역 청년들이 만나는 자리 '포커스'가 매주 번갈아가며 열린다. 여름방학 중인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광주시보건환경연구원은 오는 8월 3일부터 10일까지 광주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어린이 과학체험교실'을 운영한다.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생활 속 과학을 경험할 수 있게 체험 위주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으로, '과학체험교실'과 '어린이 주말 과학놀이터' 2개 과정을 운영한다. 광주시립도서관(무등·사직·산수도서관)은 '여름독서교실'을 운영한다.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만들기 체험, 영어 그림책과 우주를 주제로 한 독후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신창동 마한유적체험관의 '마한인과 함께 떠나는 캠핑여행'도 눈여겨볼 만한다. 8월 중 총 4회, 초등학생과 보호자가 참가해 신창동 유적과 출토유물을 소개하고 공예체험도 할 수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거리였던 충장로도 MZ세대를 비롯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어 가볼 만하다. 'K-POP 스타의 거리'는 지역 출신 유명 연예인의 핸드프린팅과 애장품 전시장 등을 둘러볼 수 있어 팬들의 K-POP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일 문을 연 'K-POP 공유카페'는 평소에는 K-POP 관련 물품 등을 전시하고 포토존을 마련해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오가며 만남·놀이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 충장로에 위치한 아시아음식문화지구내 음식공방도 들려볼 만하다. 7월부터 12월까지 '아시아 퀴진 클래스'가 열려 깐풍기, 브라우니, 수제청 등 다양한 아시아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다. 클래스 참여를 원한다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 최근 문을 연 여행객을 위한 공유 플랫폼인 '충장의 집'도 빼놓을 수 없는 핫플이다. 굿즈 숍과 사진 인화, 휴대폰 충전, 짐 보관소 등 편의시설을 갖췄으며, 근대화 콘셉트의 사진관에서는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다. 휴가를 갈 수 없어 출근을 해야 한다면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이색 공간에서 회의와 미팅을 하면 새로운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광주관광공사는 이색 회의 명소로 '유니크 베뉴(Unique Venue)' 12개소를 선정했다. '유니크 베뉴'는 공간의 고유한 콘셉트와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행사나 회의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말한다. 광주를 대표하는 '유니크 베뉴'는 △10년후 그라운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구 인문학당 △아이와즈 △△어반브룩 △우제길미술관 △월봉서원 △이이남스튜디오 △전통문화관 △휴심정 △오가헌 △해담헌 등으로, 기업, 법인, 단체 등이 해당 장소에서 소규모 회의 개최 시 임차료, 다과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2024-07-27 11:24:05국가유산을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할 목표로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이 17일 본적적으로 출범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전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 대강당에서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날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 되기 때문에 발 맞춰 국가유산청이 출범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범식에 참석해 "그간 문화재 관리는 유산을 보존하는 데 집중하는 '과거 회귀형'이었다면 앞으로는 국가유산을 발굴, 보존, 계승하는 동시에 더욱 발전시키고 확산하는 '미래 지향형' 체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통 문화유산의 미래 문화자산 도약'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다. 앞으로 국가유산청은 △문화 △자연 △무형으로 나눠 각 유산 특성에 맞는 지속 가능하고 미래지향적인 관리체계를 구축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가유산청으로 거듭나면서 기존의 정책국·보존국·활용국 체계의 1관3국19과는 문화유산국·자연유산국·무형유산국과 국가유산 정책총괄, 세계·국외유산, 안전방재 등 업무를 수행하는 유산정책국 등 '1관4국24과'로 재편된다. 문화유산국은 건축유산, 근현대유산, 민속유산, 역사유적 등을 담당한다. 자연유산국은 동식물유산, 지질유산, 명승전통조경을, 무형유산국은 국가무형유산의 지정 심사와 전승 지원, 조사연구기록 등을 담당한다. 또 국가유산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 등을 담당하는 국가유산산업육성팀, 소멸위기의 유산 보호·관리를 담당하는 지방소멸위기유산대응단과 종교 관련 유산 업무를 다루는 종교유산협력관은 신설된다. 조직 개편과 동시에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국가유산 정책들이 추진된다. 지열별로 운영해 오던 국가유산 활용 사업을 한데 엮어 광역 단위의 지역유산축전인 '국가유산주간'을 오는 10월 개최할 예정이며, '국가유산방문의 해' 사업을 새로이 추진해 올해와 내년 첫 대상 지역인 제주에서 다양한 활용 프로그램과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밖에 △국가유산경관 개선 사업 △국가유산 영향진단 제도 도입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합리적 재조정 △발굴·보존조치 비용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한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이날 국가유산 체계 전환에 맞춰 그간 생산·축적해온 국가유산 원형(원천) 디지털 데이터와 콘텐츠 등 약 48만건을 전면 무료로 개방한다. 아울러 무형유산 다큐영상, 가상현실(VR)로 만나는 한반도 자연유산, 한국의 세계유산 3D 영상 등 첨단기술로 국가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 콘텐츠'도 함께 공개한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산업 활용 수요가 높은 국가유산 디지털 데이터 및 콘텐츠로 서비스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5-17 14:2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