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전 축구선수 故 강지용의 심리 상담을 맡았던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교수는 2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흰 국화꽃 사진과 함께 "뜨겁고 치열하게 산 그리고 착하게 살다 안타깝게 떠난 이를 추모합니다. 남겨진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눈물의 끝에 희망을 기도합니다 RIP"라며 강지용을 추모했다. 앞서 이 교수는 지난 2월 JTBC '이혼숙려캠프'에 출연해, 강지용 부부의 심리 상담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금전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강지용 부부에게 "시가에 맡긴 돈은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라. 잊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남편은 돈에 대해선 이미 효도를 다했다"고 위로했다. 특히 우울감 지수가 높게 나타난 강지용에게는 "감독이 선수를 믿듯, 아내와 남편 서로 믿고 지지해야 한다"라고 다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이 나간 지 두 달 만에 강지용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한편 강지용은 강지용은 2009년 포항 스틸러스에 지명되며 프로로 데뷔했다. 이후 부산 아이파크, 경주시민축구단, 부천FC, 강원FC, 인천 유나이티드, 김포FC, 강릉시민축구단, 천안시 축구단 등을 거친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던 지난 2월 JTBC '이혼숙려캠프'를 통해 대중 앞에 나서며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해 알렸다. 그는 경제적 문제로 가정 불화를 겪고 있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4-24 15:33:47[파이낸셜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늘 기도해주셨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선종을 깊이 애도한다. 교황님은 전 세계인들에게 자비와 평화의 상징이었으며 언제나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포용을 보여주셨다”며 이같이 적었다. 그러면서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껴안아주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미사를 집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대통령 재임 중 바티칸 교황청을 두 번 공식 방문했을 때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 지지해주셨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북한을 직접 방문할 뜻이 있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해주셨다”고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은 “DMZ 철조망으로 만든 십자가를 교황님께 선물하며 한반도에서 꼭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던 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교황님의 격려와 성원은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며 “교황님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간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방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는 2014년 8월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성남 서울공항에 영접을 나왔을 때 “분단과 대립의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하자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화답했다. 또 문 전 대통령이 2018년 10월 교황청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 뵐 것을 제안했더니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갈 수 있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5-04-21 22:08:00[파이낸셜뉴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4일 선고한 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변호인단을 통해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전했다. 윤 전 대통령은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5-04-04 13:59:14[파이낸셜뉴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순간 산불 진압을 위해 헬기에 몸을 싣고 위험한 현장으로 향하는 아들과 함께하는 대원들을 굽어살펴 주시고, 뜨거운 불길과 매서운 연기 속에 이들을 지켜 주십시요." 아버지는 아들이 산불 진화를 위해 경북 영덕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뒤 가족과 공유한 기도문이었다. 이 기도문은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레드에 올라온 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누군가의 남편, 아빠, 아들인 그들... 가족의 간절한 기도 글을 올린 사람은 경찰항공대 소속 항공경찰관 아내라고 자신을 알린 뒤 경북의 대형 산불 지역에 해당하는 영덕군 산불 진화 현장에서 보내온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작성자는 "산불 꺼질 때까지 복귀 못하는 우리 집 세대주(남편). 아침에 첫째가 일어나 아빠를 찾아서 전화했더니 산불 끄러 비행 나간다며 전화를 바로 끊었다"며 소음이 가득한 헬기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 수리온 계열 헬기는 짙은 연기를 내뿜는 곳으로 접근해 물을 뿌리고 있다. 글 작성자는 하루 전에도 남편의 아버지가 가족에게 공유한 기도문도 올렸다. 항공경찰관 아버지는 "강한 체력과 침착한 마음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세요. 아들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잠잠해 지고 모든 대원들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아들의 헌신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산불이 하루 빨리 진압되고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며 "제 마음에도 평안을 허락하시고 우철이와 대원들에게 하나님 손길이 함께하길 기도한다"며 마무리했다. 해당 글에 "아버님 기도에 눈물이 난다", "무사히 임무 마치고 돌아오셨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올렸다. 장인이 소방관이라는 눈길을 끄는 댓글도 있었다. 글 작성자는 "우리 장인은 소방관"이라며 "오늘 대구 달성군에 산불 때문에 출동하셨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올 6월이 퇴직이신데, 인공관절 수술하시고 퇴원하신지 두 달도 안 되셨는데 화마를 잡으러 가셨다"면서 존경의 마음을 전했다. 5000원짜리 식사... 처우는 너무 열악한 소방관들 화재 현장에서 산불 진화에 나서며 사투를 벌이는 공무원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28일 현재 산불로 28명이 사망하고 마을 주민과 진화대원 등 37명이 크고 작은 부상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다. 네티즌들은 진화 현장 영상에 "불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하다",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 우려의 글을 달았다. 국회에도 이날 '소방공무원, 화재진화인력 처우 및 재난 대응 장비 개선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대한민국 산지는 70% 가량인데 지방자치단체별로 소방헬기가 있는 곳도 있고 없어서 임대로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면서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지형은 헬기가 필요할 텐데 부족한 인력과 노후된 장비로 버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뜨거운 화염을 대하는 소방공무원과 산불진화대원의 장비를 보면 저런 모습으로 거센 불길을 상대하라는 말인가 싶어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열악한 처우도 지적했다. 청원인은 "식대가 5000원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일부 지역은 3000원대라고 한다"면서 "최전선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분들은 편의점 도시락도 못 먹는 처지"라고 강조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2025-03-28 15:23:1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전국에서 30건의 산불로 큰 피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 "산불 진화 과정에서 안타깝게 생명을 잃으신 진화대원과 공무원 네 분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화대원들과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신속하게 진화된 곳이 많지만, 아직도 5곳에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고 이재민도 늘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우는 이재민들과 모든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위로를 드린다"면서 진화대원과 관련 공무원들의 안전도 기도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해선 "가용한 자산을 총동원해 산불을 빨리 진화하고 이재민들을 잘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정치적 메시지는 자제하면서 필요한 상황에 대한 언급만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이번 공식적인 메시지는 지난 8일 법원의 구속취소로 구치소에서 석방된 후 SNS를 통해 '석방 메시지'를 게재한 뒤 두 번째다.다만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자신의 탄핵에 반대하며 분신한 권모 씨에 대한 애도와 권씨 유족에게 "아버님 뜻을 잘 받들겠다"는 메시지를,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단식 중인 지지자들에게 "탄핵심판 결과가 아무리 중요해도, 여러분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 없다. 부디 단식을 멈추시고 건강을 회복하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5-03-23 18:20:48[파이낸셜뉴스]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현지시간) 폐렴으로 24일쨰 입원한 채 전날 조용한 밤을 보냈다고 교황청이 밝혔다. 그러나 4주 연속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주일 삼종기도는 참석하지 못하는 등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교황청 공보실은 이날 아침 "조용한 밤을 보냈으며 쉬고 있다"라고 밝혔다.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교황은 서면을 통해 "이곳에 장기간 입원해 있는 동안 사려 깊은 서비스, 상냥한 보살핌을 경험했다"며 "의사와 의료진에게 특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경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며, 고통의 밤에 작은 빛을 가져다주는 다정한 기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모든 사람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달한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14일 호흡 곤란으로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다. 즉위 후 최장 기간 입원 중이다. 88세의 고령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멜리 병원에 입원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21년 대장 수술을 받았고, 2023년 3월 급성 폐렴과 6월 복부 탈장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2월엔 약한 감기 증상으로 입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폐렴 증세를 보인 이후 여러 차례 호흡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진은 교황이 치료에 잘 반응하고 있다며 최근 며칠 간 "점진적인 약간의 호전"을 보였다고 밝혔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5-03-10 00:58:54[파이낸셜뉴스] 尹 "맡은 바 임무 수행한 공직자, 조속한 석방과 건강 기도"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5-03-08 18:04:30[파이낸셜뉴스] 尹 "저의 구속과 관련해 수감된 분, 조속히 석방 기도"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2025-03-08 18:02:54[파이낸셜뉴스]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하얼빈'에서 독립투사를 연기한 배우 전여빈이 새해에는 송혜교와 함께한 '검은 사제들'로 관객을 만난다. 전여빈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과 만나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같더라"며 남다른 의미를 짚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 무언가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의 연대를 그린 영화다. 또 나은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내 옆의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영화"라며 "'검은 수녀들'은 그 과정에서 용기와 사랑을 보여준다. 새해에 이 영화가 관객들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검은 사제들' 스핀 오프, '검은 수녀들' '검은 수녀들'은 지난 2015년 개봉한 장재현 감독 '검은 사제들'의 스핀 오프다.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여빈은 수녀에겐 특히나 금지된 의식인 구마를 거침없이 행하는 유니아 수녀(송혜교)에게 이끌려 그를 돕는 상처와 비밀이 있는 미카엘라 수녀를 연기했다. 어릴 적부터 귀신의 존재를 느낀 미카엘라 수녀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굿판에 놓이고 기도원에도 들어갔다가 결국 수녀가 됐다. 정신과 의사 바오로 신부(이진욱)가 미카엘라의 영적 능력을 정신 질환으로 진단하면서 그는 악령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신마저 부정한다. 영화의 서사에 마음이 흔들려 출연했다는 전여빈은 "자기 확신이 분명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유니아 수녀와 달리 미카엘라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비교했다. "자기 세계가 깨지고 확장되며,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인물이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모두가 힘들게 모이게 되는데, 그 과정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돌이켰다. '검은 사제들'의 팬이기도 했다는 전여빈은 "'검은 사제들'이 오컬트 장르로서 색채가 확연하게 드러났다면, 이번 작품은 드라마가 강하다"며 "저처럼 오컬트 장르를 무서워하는 관객들이 입문용으로 보기에 좋다"며 관심을 바랐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 자신을 '나일론 신자'라고 표현한 전여빈은 이번 역할을 위해 촬영 6개월 전부터 기도를 일상화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다"며 "한 6개월간 성당에 나갔고 지금도 가끔 미사드리러 나간다"고 말했다. 무엇을 빌었냐고 묻자 사려깊은 답변이 돌아왔다. "미카엘라로서 잘 표현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또 '검은 수녀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평안을 빌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오늘이 안녕했으면 좋겠다고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기도했습니다." 새해인데 올해 세운 목표가 있을까. 그는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크게 꿈꾸는 것은 있지만 세세한 목표를 촘촘히 세우는 편은 아니다"고 답했다. 이어 "20~30년 뒤에도 배우를 한다는 목표로 욕심부리지 말고 한걸음씩 착실히 걸어갔으면 좋겠다"며 "첫술에 배부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우직하게 걷고 싶다는 큰 소망은 있다"고 덧붙였다. "'검은 수녀들' VIP 시사회에 배우 선배님을 초청했더니 영화업계가 어려운데 연달아 작품을 한다니 부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소중한 기회를 내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저는 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작품은 '검은 수녀들'이에요."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1-21 17:57:34하와이 마키키 스트리트 2033번지 목조 주택은 이 박사의 거처를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 1년4개월간 기거했던 마지막 주택이었다. 거실 겸 부엌 하나에 방 두 칸으로 비탈길 옆에 지어진 집이어서 위쪽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아래쪽에서 보면 2층이기도 했다. 아래쪽에서 보이는 1층엔 창고 같은 자투리 공간 하나가 있었다. 오중정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마키키의 작은 집. 아주 쬐그만 집. 마당까지 해서 30여평이나 될까? 일층은 지하실까지 해서 창고 같은 방이 하나. 뒤에는 작은 뜰이 있었고, 이층에 사방 3m가 조금 넘을까 하는 침실이 두 개, 그리고 부엌 하나. 그뿐이었어요. 이 박사는 거기서 신문지를 갖다 놓고 붓글씨를 쓰시곤 했지. 지금도 이 집은 있지만 수리를 해서 조금 모양이 변했지요." 마키키의 집으로 이사할 때 동포들이 가져다준 가구 중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조립식 식탁도 거실에 놓여 있었는데, 현재는 이화장에서 볼 수 있다. 가로 120㎝, 세로 90㎝ 되는 포마이카 식탁은 3등분으로 접을 수 있는데, 건국 대통령 부부가 식사 때마다 성경 구절을 읽고, 일용할 양식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진심 어린 감사와 나라를 위한 기도를 계속했던, 두 분의 예배당 겸 식탁이었다. 오늘날까지 이 박사 부부의 청빈한 신앙 생활을 신학적이나마 제대로 연구한 성과물이 없다는 것에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1904년 한성 감옥에서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불교와 유교를 벗어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래, 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나 가족의 복리를 위한 기복적인 기도를 올려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나라와 백성을 위한 이타적 기도를 드린 참다운 신앙인이었다. 기도(聖)만이 아니라 그의 삶(俗)이 그러했다. 1913년 미국 감리교단의 요청으로 하와이 한인기숙학교 교장이 되기도 했지만, 이승만의 한국인을 위한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에 감리교단이 제동을 걸자 이승만은 과감하게 미국 감리교단과 단절했다. 그리고 1918년 한인들끼리 힘을 모아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했다. 무교파(無敎派) 자치교회인 '하와이 한인기독교회(Hawaii Korean Christian Church)'가 그것이다. 1938년 신축한 예배당은 건물 외부를 광화문을 본떠 지었지만 외부에는 십자가 하나 걸지 않았다. 십자가를 외부로 내걸지 않은 이 교회야말로 이승만의 종교철학이 스며든 '민족교회'였다. 교세 확장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교회였다. 그런 이승만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교민들이 신도가 되었고 조직원이 되었으며 이승만의 독립자금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그 신도들은 이 교회를 '자유 교회' '독립 교회'라고도 불렀다. 이승만이 세운 교회는 자유 독립의 대한민국을 잉태한 산실이었다. 이승만이 가장 좋아했던 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의 "두 발로 굳건히 서서,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처럼 무교파의 한인기독교회는 독립정신의 칼날을 세운 곳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그를 위한 기념관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지만, 정작 그의 종교적 태도를 본받기 위한 노력은 같은 종교계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정신을 살린 무교파 교회, 자유 교회, 독립 교회를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성(聖)과 속(俗)의 관계 정립을 이승만은 평생에 걸쳐 몸소 실천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저 그의 삶 속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또다시 구한말과 같은 위기 상황으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되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년에 이른 이승만의 신앙 생활이 감동적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푸른 눈을 가진 25살 연하의 프란체스카가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립식 포마이카 식탁에서 이 박사는 식사 때마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계속했고, 아침마다 서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서편이야. 바로 저쪽이 우리 한인들이 사는 데야" 하고는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아니 식사는 안 드실 생각이세요" 하고 프란체스카 여사가 주의를 환기하면 매우 못마땅한 듯이 "왜?"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카는 회고록에서 "우리 생활은 단조로웠다. 나는 워싱턴에서의 독립운동 시절과 같이 살림을 꾸려 나갔다. 우리를 도와주는 동지들과 제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우리는 이런 생활이나마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썼다. "단 두 식구가 사는 간단한 살림이었지만 나는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일했다. 나는 집안을 청소할 때마다 창문의 유리를 두 장씩 닦아 나갔다. 그렇게 하면 1주일이 지나는 동안 닦아야 할 집안의 유리 창문은 모두 나의 손을 한 번씩 볼 수가 있어 깨끗한 창문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넓지 않는 마당에 나가 화초에 물을 주기도 하고 나무에 손질을 하며 마음속의 시름을 달랬다. 대통령은 이때에도 무슨 음식이나 잘 들었고 체중이 주는 일도 없었으므로 나는 항상 과식을 삼가도록 배려했다. 체중이 늘면 고혈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며, 특히 노인의 건강에 해롭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통령의 보행을 위해 매일 시간을 정해 옥외로 함께 나가 산책을 했다. 이렇게 1960년 한 해를 하와이에서 넘기게 되자 1961년 설날, 나는 떡국을 끓여 대통령에게 아침 식사를 들게 했고 친지와 교포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세배를 와서 우리를 기쁘게 해주었다." 25년 연상의 동양 노신사를 만나 12년간의 독립운동, 12년간의 퍼스트 레이디, 그리고 유배지 하와이에서의 5년2개월간 병구완을 해낸 아름다운 여인 프란체스카를 잠시 만나러 가보자. <계속> 이동욱 전 KBS 이사
2025-01-14 18:4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