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베트남)=부 튀 띠엔 통신원】고 김우중 대우회장의 숨결이 배어있는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이 세계 최대 여행 플랫폼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발표한 '세계 상위 10% 호텔'에 선정됐다. 5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하노이 대우호텔은 트립어드바이저로부터 ‘2025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즈(Travelers’ Choice Awards 2025)’를 수상하며, 전 세계 상위 10% 호텔에 이름을 올렸다. 이 상은 전 세계 여행객들의 리뷰와 평가를 바탕으로 선정되며 호텔의 서비스 품질, 휴식 공간, 다양한 미식 경험 등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입증하는 것이다. 하노이 대우호텔은 김우중 전 회장이 1996년에 직접 지휘해 개관한 베트남 최초의 한국 자본 투자 5성급 호텔이다. 411개의 객실과 스위트룸, 하노이 최대 규모의 야외 수영장, 다양한 회의와 이벤트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 개관 당시 웅장한 외관과 첨단시설로 주목받았으며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들이 투숙한 바 있다. 1990년대 하노이의 국제화와 개방 정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평가받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한국과 베트남 간의 경제 및 문화 교류의 상징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노이 대우호텔 서니 가이(Sunny Ghaiee) 부총지배인은 “서비스 품질 제고와 시설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인정받아 매우 자랑스럽다”며 “고객에게 잊지 못할 수준 높은 숙박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헌신과 전문성, 혁신의 정신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vuutt@fnnews.com 부 튀 띠엔 통신원
2025-06-05 10:29:08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1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엄수됐다. 전 대우그룹 임직원 등 조문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 전 회장은 영면에 들었다.장례 미사로 시작된 영결식은 300여석 규모의 강당에서 치러졌다. 유족과 친인척,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만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조문객들은 복도에서 상영되는 영상으로 김 전 회장의 영결식을 지켜봤다.영결식은 참석자들의 묵념 이후 김 전 회장의 생전 육성을 모은 '언(言)과 어(語)' 영상이 상영되는 순서로 진행됐다. 영상엔 김 전 회장의 그룹 창립 기념사, 생전 언론 인터뷰 내용 등으로 구성됐다. 대우그룹의 발전상과 김 전 회장의 경영철학인 '세계경영'을 재조명하는 내용도 담겼다.이어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이 조사를,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추도사를 했다.장병주 회장은 조사에서 "35만 대우가족과 전 국민이 기억하고 기꺼이 인생좌표로 삼기에 충분했다"면서 "대우를 창업하여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수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닦았다. 그 길을 따라 대한민국은 수출입국 실현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했다.손병두 전 부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김 전 회장에게 "당신은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우리 젊은이들의 우상이고 영웅이었다.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며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지 않고 세계라는 큰 공간을 헤매며 남들이 생각 못하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고 회고했다.추모사가 끝난 뒤에는 천주교식 종교행사가 진행됐고, 참석자 전원이 '대우 가족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영결식을 마친 후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등 유족들이 운구 차량으로 이동하는 고인의 영정 뒤를 따랐다. 운구 차량은 장지인 충남 태안군 선영으로 출발하기 전 아주대학교 본관을 돌며 마지막으로 고인을 회상했다.앞서 장례식은 지난 10일부터 가족장 형태의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 기간 동안 전 대우그룹 임직원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과 정치인, 문화·스포츠계 등 각계에서 총 8000여명의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았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2019-12-12 17:49:28[파이낸셜뉴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12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엄수됐다. 전 대우그룹 임직원 등 조문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 전 회장은 영면에 들었다. 장례 미사로 시작된 영결식은 300여석 규모의 강당에서 치러졌다. 유족과 친인척, 전직 대우그룹 임직원만 영결식에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강당에 들어가지 못한 조문객들은 복도에서 상영되는 영상으로 김 전 회장의 영결식을 지켜봤다. 영결식은 참석자들의 묵념 이후 김 전 회장의 생전 육성을 모은 '언(言)과 어(語)' 영상이 상영되는 순서로 진행됐다. 영상엔 김 전 회장의 그룹 창립 기념사, 생전 언론 인터뷰 내용 등으로 구성됐다. 대우그룹의 발전상과 김 전 회장의 경영철학인 '세계경영'을 재조명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어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이 조사를,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 추도사를 했다. 장병주 회장은 조사에서 "35만 대우가족과 전 국민이 기억하고 기꺼이 인생좌표로 삼기에 충분했다"면서 "대우를 창업하여 누구도 걸어본 적 없는 수출이라는 새로운 길을 닦았다. 그 길을 따라 대한민국은 수출입국 실현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했다. 손병두 전 부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김 전 회장에게 "당신은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우리 젊은이들의 우상이고 영웅이었다.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며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에 있지 않고 세계라는 큰 공간을 헤매며 남들이 생각 못하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고 회고했다. 추모사가 끝난 뒤에는 천주교식 종교행사가 진행됐고, 참석자 전원이 '대우 가족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을 마친 후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등 유족들이 운구 차량으로 이동하는 고인의 영정 뒤를 따랐다. 운구 차량은 장지인 충남 태안군 선영으로 출발하기 전 아주대학교 본관을 돌며 마지막으로 고인을 회상했다. 앞서 장례식은 지난 10일부터 가족장 형태의 3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 기간 동안 전 대우그룹 임직원은 물론 경제계 인사들과 정치인, 문화·스포츠계 등 각계에서 총 8000여명의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았다.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영결식 #대우맨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2019-12-12 10:50:40여야 정치권은 10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별세 소식에 고인이 생전 보여준 세계 경영에 대한 도전과 개척 정신을 이어받겠다며 저마다 고인의 넋을 기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대중 정부에서 대우그룹 해체 과정 등을 지켜본 안타까움과 개인적인 인연, 소회 등을 밝히며 고인을 애도했다.박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김 전 대통령과는) 야당 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기억했다. 또 "DJ는 김 회장님을 신임하셔 전경련 회장으로 피선된 김 회장님 말씀을 많이 참고하셨고, 대기업 간 구조조정에도 견해를 중시하셨다"고 기억했다.그러면서 대우그룹 해체 사태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은 )대우그룹 소생방안을 검토하여 직보하라 하셨으나 정부 부처 장관들은 김 회장님과 대립했고, 결국 대우자동차 등 6개사만 회생방침을 결정했다"고 했다.박 의원은 또 "회장님 편히 쉬십시오. 거듭 명복을 빕니다"라며 "하늘나라에서 DJ 내외를 만나 드리고 싶었던 말씀도 많이 나누시라"고 영면을 기원했다.이 밖에도 여야에선 김 전 회장의 생전 세계 개척과 도전 정신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이 이어받을 중요한 정신이라며 애도했다.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김 전 회장은 청년 정신의 상징이자 기업가 정신의 표본이었다"며 "기적의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계승하고 지켜내야 할지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그러면서 "경제사에 큰 별이었던 고(故) 김우중 회장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더불어민주당 소속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의원총회에서 "고도성장의 주역이었던 김우중 회장께서 운명하셨다"며 "그분의 공과는 많지만, 그분이 남기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다시 인용하면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대한민국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고인을 비난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세계경영을 꿈꾸는 그의 정신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하다"며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고인의 삶은 저에게도 큰 의미"라고 했다. 심형준 기자
2019-12-10 18:01:38경제계가 향년 83세로 영면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한국 기업의 세계화를 이끈 주역'으로 추모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0일 "한국 기업 글로벌 경영의 효시이자 한국 경제발전 성공의 주역이신 김우중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김 회장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셨다"고 회고했다.전경련은 "냉전이 끝나자 가장 먼저 동유럽으로 달려가 세계경영의 씨앗을 뿌리셨고 중남미, 중국, 베트남, 아프리카 등 당시 왕래도 드문 낯선 땅에 가장 먼저 진출해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알렸다"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씀처럼 세계를 누비며 한국을 알린 김 전 회장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영토는 한층 더 넓어질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아울러 전경련은 "김 전 회장의 열정적인 경영철학은 여전히 우리 경제계에 큰 발자취로 남아 있다"며 "무엇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장 앞서서 개척했던 기업가 정신은 경제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오래도록 귀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경총은 "김우중 회장은 세계 경영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해외수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대우그룹을 국내 정상의 기업으로 이끌었고, 우리나라가 자동차·조선·중공업 산업 분야에서 고도화의 내실을 다지고 세계적인 수출국가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며 "고인은 일선 기업현장에서 물러나신 이후에도 후임 청년사업가 양성에 힘쓰시며 기업가로서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영계는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이어받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산업 고도화를 통한 국가경제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최갑천 기자
2019-12-10 17:56:39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말년을 베트남에서 후진 양성에 쏟았던 열정도 새삼 회자되고 있다. 대우그룹 출신들이 설립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10일 "김 전 회장은 베트남을 '제2의 고향'처럼 푸근하게 느끼셨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1986년 베트남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추진한 '도이머이(새롭게 바꾼다는 뜻)' 정책이 지지부진한 시기 가장 먼저 현지에 진출한 해외 대기업 총수였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사태로 1999년 10월 해외로 도피했다가 2005년 6월 귀국할 때까지도 상당 기간을 베트남에 체류했다. 당시 베트남 정부가 인터폴에 수배된 김 전 회장을 사실상 보호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현지 정·관계와 깊은 인맥을 구축했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된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나갔다가 지난해 하반기 건강악화로 귀국할 때까지 주로 머문 곳도 막내아들 소유의 베트남 하노이 번찌 골프장 숙소였다.특히 김 전 회장은 2009년 전직 대우인들이 대우세계경영연구회를 만들고 대우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추진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의 첫 대상지로 베트남을 꼽았다. 김 전 회장은 "앞으로 베트남이 가장 빨리 성장할 것"이라며 해외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GYBM 거점으로 베트남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GYBM은 해외 대학과 협력해 현지에서 우리나라 청년들을 교육하고 해당 국가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중급 이상의 어학능력을 갖춰 현지 기업에서 경험과 실력을 쌓아 창업까지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워 '김우중 사관학교'로도 불린다. GYBM은 2011년 베트남에서 1기 40명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베트남과 미얀마, 인도네시아에서 1000여명의 글로벌 인력을 배출했다. 올해도 150명을 선발해 지난 7월부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생전에 "청년들이 해외에서 창업하고, 수출하는 게 좋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이런 과정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는 해외에서 많은 네트워크가 생기고, 그 나라에서 수출을 늘리고, 지점이 생겨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GYBM에 강한 애착을 보인 김 전 회장은 지난해 저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증보판을 내면서 받은 인세를 이 사업에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좁은 이 땅에서 벗어나면 세계에 희망이 있다던 큰 뜻을 저희는 잊지 않고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말씀에 많은 기업인들과 청년들이 두려움 없이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2019-12-10 17:56:37지난 9일 오후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80~1990년대 "세계경영"을 외치며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는 1999년 대우그룹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20여년 동안 우리 경제의 시야를 해외로 넓히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1981년 대우그룹 회장직을 맡은 이후 총 41개 계열사, 자산규모 국내 2위로 회사를 일궈냈다. 김 전 회장은 척박했던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대우를 신흥국 출신 중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를 내고 수년간 해외도피 생활을 하는 등 치욕의 세월도 보냈다. 김 전 회장의 83년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대한민국 창업 1세대 김 전 회장은 1936년 12월 대구에서 김용하와 전인항씨 사이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인 김용하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 은사였고, 이 인연이 김 전 회장의 사업에 도움이 된 것으로 재계에서는 전해진다. 6·25전쟁 당시 제주도지사였던 아버지가 납북되면서 15세부터 소년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도맡았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고등학교를 거친 뒤 1956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1960년 무역회사 한성실업에 들어가며 사업에 처음 눈을 떴다. 그는 1963년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 계약을 따내며 재능을 보였다. 당시 김 전 회장은 싱가포르에서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면서 인도계 기업인을 설득, 당시 37만달러가량의 생산계약을 성사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1967년에 '청년 김우중'은 트리코트 원단 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씨와 손잡고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31세 때였다. 대우(大宇)는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사업의 길을 걷던 김 전 회장은 해외시장에 골몰했다. 대우실업은 창업 1년 만에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과 제품을 팔아 58만달러 규모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인도네시아, 미국 등으로도 시장을 확장했다. ■'대우 신화'를 쓰다 1970~1980년대 김 회장은 세계 시장을 주무대로 승승장구한다.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활짝 열며 1976년 한국기계(대우중공업),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단기간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 또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무역업과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바탕으로 대우그룹은 삼성, 현대에 버금가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토대로 1982년 무역·건설부문을 통합, ㈜대우를 설립한 김 전 회장은 재계 4위 그룹 총수에 올랐다. 그는 세계경영을 강조했다. 자동차·중공업·조선·전자·통신·정보시스템·금융·호텔·서비스 등 각종 산업을 토대로 해외진출을 본격화했다.대우자동차 성장사도 세계경영의 사례로 꼽힌다. 김 전 회장은 1980년대 대우자동차의 생산능력을 연 200만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해마다 자체개발 모델을 내놓았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100만대에 불과한 때 대우는 1986년 르망을 시작으로 에스페로, 로얄 등 혁신제품을 출시하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김 전 회장은 당시 해외체류 기간이 연간 280일을 넘길 정도로 해외사업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나친 확장, 결국 화근 영원할 것만 같던 그의 성공도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9년 해체 직전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서 현지화 기반을 닦고 있었다. 당시 자산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기업 규모는 2위에 달했다. 그러나 1998년 당시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린 데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겪으면서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당시 일본의 노무라증권은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부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지만 같은 해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김 전 회장에게도 악재가 이어졌다. 당시 공격적 사업확장으로 대우그룹의 재무상황이 나빠지자 분식회계와 대규모 차입으로 메우려고 한 게 부메랑이 됐다. 이후 그는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고, 1999년 10월 중국으로 도피했다. 2005년 입국했지만 이듬해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8년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김 전 회장은 이후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김 전 회장이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3월 열린 대우 창업 51주년 기념행사였다. 그러다 지난해 8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글로벌 청년인재 양성교육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후 건강이 안 좋아졌다. 지난해 말부터는 병세가 크게 악화돼 아주대병원에서 장기 입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명 치료를 거부한 김 전 회장은 임종 전 "청년들의 해외진출을 돕는 GY교육사업의 발전적 계승과 함께 연수생들이 현지 취업을 넘어 창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체계화해달라"는 유지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잠들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2019-12-10 17:56:12'세계경영의 신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향년 83세로 영면했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관계자는 10일 "김 전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며 "김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건강이 악화돼 1년여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다만, 고인은 평소 연명치료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경영 신화'의 몰락 이후 주로 베트남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건강 악화로 귀국했다.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전 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었지만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 부실경영으로 사법처리까지 받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김 전 회장은 6·25전쟁으로 부친이 납북된 이후 서울로 올라와 당시 명문학교인 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왔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까지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일하다 만 31세인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45세 때인 1981년에는 대우그룹 회장에 올라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그룹을 확장했다.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로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199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다. 해체 직전인 1998년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달러로 당시 한국 총 수출액(1323억달러)의 14%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인이 1989년 출간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에세이집은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는 등 청년층의 필독서였다. 장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2019-12-10 17:52:4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함에 따라 17조원대 추징금 환수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다만 법원이 지난 2005년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해 추징금 23조원을 연대 부과하면서 미납금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1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김 전 회장과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고 해당 판결은 확정됐다. 김 전 회장은 다음해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약 18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유지됐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직접 추징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현재까지 집행된 금액은 약 892억원에 불과하며, 집행률 0.498% 수준이다.김 전 회장의 추징금이 환수되지 못한 이유는 본인 명의 재산이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도피 중이던 2005년 5월 강병호 대우 전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들과 공범으로 묶여 있어 추징금을 연대해 부담하게 돼 있다. 유선준 기자
2019-12-10 17:47:00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장례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고인을 애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10일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재계와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하루종일 이어졌다. 대우그룹 임직원 출신 인사들도 장례식장을 찾아 '세계경영' 기치를 내걸고 세계를 누볐던 고인을 추억하며 명복을 빌었다. 김 전 회장의 빈소는 평소 고인이 밝혔던 대로 소박하게 마련됐다.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생전 김 전 회장이 소박하고 조촐하게 장례를 하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고 전했다. 빈소에는 가족들과 대우그룹 출신 관계자들이 조문객을 맞았다. 유족 측이 부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에서 보낸 조화들이 빈소 입구 주변을 메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는 빈소 내부에 배치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근조를 보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같은 시대에 기업을 경영한 재계 총수들의 이름이 새겨진 조화도 눈길을 끌었다. 장례 첫날 각계 인사들과 일반인 등 2000여명의 조문객이 김 전 회장을 애도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첫 조문객으로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김 전 회장과 함께 근무했던 '대우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은 김 전 회장에 대해 "차나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자면서 쉬지 않고 일했다"며 "엄격하지만 자상하고, 직원들을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회고했다. 또 김태구 전 회장은 "다음 세대들이 잘 살도록 희생하자는 것이 고인의 뜻이었다"며 "대우인들은 그 뜻을 받아 인재양성 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대우그룹 임직원 중 가장 원로인 이경훈 전 ㈜대우 회장은 대우의 세계경영과 관련해 "전 세계 바닥에 금이 깔린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던 김 전 회장의 발언을 전하며 남다른 안목으로 시작한 경영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배순훈 전 대우전자 회장도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공장을 짓고 열심히 일했기에 가능했다"면서 "돈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해외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김 전 회장을 보고 돈을 빌려줘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경제계의 조문행렬도 이어졌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빈소를 찾아 김 전 회장에 대해 "압축 성장 시기에 대표적인 경영인"이라며 "경제를 빨리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조문하고 기업가정신을 기렸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정용진 부회장 등 사장단과 함께 조문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조문한 뒤 "예의를 갖추기 위해 왔다"고 김 전 회장을 추모하면서도 말을 아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 위원장(사장)도 이날 오전 빈소를 다녀갔다. 정·관계 및 문화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이문열 작가와 조훈현 기사도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다. gmin@fnnews.com 조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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