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도 삶도 예술이다. 한 발 한 발 디디는 그 발걸음, 관문 하나하나를 통과하는 과정, 모든 것이 완성품으로 향하는 작은 시도다.’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흔히 대범함과 순발력, 그리고 남다른 혜안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제 CEO를 지낸 사람들은 경영이란 큰 판 돈을 걸고 벌이는 한 판 승부가 아니라 모든 경우의 수를 꼼꼼히 헤아리고 난관을 만나면 놀라운 인내심으로 버텨내고 늘 변함없는 속도로 치열하게 달리는 마라톤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 미포조선, 쌍용자동차, 맥슨 등의 CEO를 지낸 손명원씨가 그의 경영철학을 담은 책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경영자로 살고 싶다’를 냈다. 딱딱한 경영이론이나 원칙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의 경영철학에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녹여낸 자서전식 에세이다. 그는 ‘30여 년의 전문경영인 생활’이라는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로서 아직 인생의 바다로 나가보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늙은 어부의 경험을 나눠주겠다는 결심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CEO로 살았던 30여 년의 세월, 경영의 전선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히며 살다 보면 삶이 전투와도 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이 말을 생각하곤 했다. 이 말에서 나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채찍을 발견하곤 했다.” ‘성공신화’에서나 볼 듯한 그의 전투적인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늘 ‘끝’을 바라본 삶이었다. ‘끝’은 다름 아닌,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목표가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치열하게 이끌어줄 목표를 가져라.’ 바로 이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도 자신이 목표에 가깝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이내 곧 지치고 만다. 관문 하나 하나를 통과하며 한 발씩 목표에 다가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자신만의 목표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두 번째 성공 조건이요, 그만의 경영 노하우다. 이 책은 ▲당신의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경영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 젊음을 키운 열정의 습관 ▲경영이 내 인생에 남긴 것들 등 총 4장으로 구성된다. 2장에선 실제 그가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간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할 당시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던 입찰에 탈락하며 맛봐야 했던 좌절의 순간, 적자를 보던 미포조선을 맡아 6개월 만에 흑자로 바꿔낸 황색보드의 얘기 등을 들을 수 있다. 3장에선 해외에서의 대학생활과 그가 즐겼던 축구나 레슬링을 통해 배우게 된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가슴 뛰는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목표를 가시화하고 진행상황을 바로바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활용하여 바라는 바에 한발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 시절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목표관리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모두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란 화두로 장식할 만큼 그는 목표에 충실했던 사람이다. 그 목표에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기쁨을 알았기에 그는 30여 년의 긴 마라톤의 승자가 된 것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 eunwoo@fnnews.com 이은우기자
2005-04-06 12:48:56<37> 이집트 '룩소르②' - 나일강 야경과 카르나크 신전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나에게는 이집트에 가게되면 꼭 하고싶은 로망이 몇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나일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발코니가 있는 호텔에 묵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에어비앤비를 들여다보며 정말 가보고 싶은 멋진 숙소를 점찍어 놨었는데 정작 숙소예약을 해야할 때 보니 안타깝게도 이미 다른 손님이 있는건지 예약이 안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일강이 보이는 멋진 호텔을 찾으러 룩소르 근처를 돌아다녔다. 졸리 빌 리조트며 룩소르의 고급 호텔들을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아쉽게도 나의 맘에 딱 맞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무함맛이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한 날이다. 늦은 오후 무함맛과 만나서 무얼할까 하다가 나일강에서 배를 타고 일몰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잘 아는 곳으로 데려가주었다. 우리끼리였다면 어디에서 어떤 배를 타야할지, 가격은 어느 정도를 내야 사기를 안 당하는지 모든 것이 어려웠을텐데 친구와 함께 오니 아무 걱정 없이 즐겁기만 하다. 하얀 깔라베야(이집트 남자들이 입는 원피스)를 입은 선장님을 만났다. 뱃삯은 인당 10달러. 안내해준 친구 것도 우리가 함께 계산했다. 작은 부두를 걸어들어가니 하얀 작은 보트가 우리가 탈 배라고 한다. 사실 천으로 된 돗이 멋있게 펼쳐진 낭만적이고 옛스러운 보트를 기대했지만 뭐 이것도 감지덕지다. 배이름이 Aswan Moon(아스완 달)이다. 웬지 정감이 가서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스무명은 족히 탈수있을 만한 크기의 배였는데 우리가 전세냈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거 리얼?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 배가 출발한다. 나일강에서 여유롭게 배를 타는 것이 오랜 소망이었는데 드디어 이루어졌다. 28년전에도 나일강에 온적이 있긴 하지만 단체 패키지 여행이었기에 큰 배로 이동을 한 적은 있지만 뱃놀이할 기회는 없었다. 우리만 탄 배에서 고대 이집트를 상상하며 나일의 풍경에 흠뻑 빠지고 싶었다. 몇 천년전 이 강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배들이 물건을 싣고 오가고 있었겠지. 그리스, 시리아 등 주변 나라에서 배에 공물을 싣고 이곳에 도착하면 강에서 보이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신전들의 위용에 역시 이집트는 대단한 대국이구나 하며 감탄했겠지. 나일에 석양이 진다... 석양은 하늘과 강을 온통 물들여놓아 보는 이에게 깊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정신없이 강과 노을을 보고 있는데 무함맛이 배 지붕으로 올라가보라고 권한다. "어? 그래도 되나?"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도 되는 것 같아 조심조심 올라갔다. 와, 사방에 아무것도 거칠게 없이 그야말로 강과 하늘이 다 보인다. 우리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눈이 촉촉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풍경을 이렇게 특별하게 감상할 수 있다니. 이 순간은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은 커다란 유람선들이 강가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가에 유람선과 건물들에 하나 둘씩 불이 켜지는 모습 또한 아름다웠다. 이 땅, 이 강 자체가 그냥 역사이고 문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일강에서 석양과 일몰, 그리고 야경까지 모든 것을 가득히 기억 속에 담았다. 뱃놀이 후 날이 꽤 어두워져서 무함맛의 추천 맛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시내에는 차를 세우기가 힘들다며 걸어가자고 해서 함께 걸었는데 거리는 꽤 되었지만 룩소르를 걸어다녀보니 차타고 다닐때에는 미쳐 볼 수 없던 거리의 풍경을 하나하나 볼 수 있었다. 관광지답게 마차꾼도 다니고 걷다보면 도로 옆에 신전이 그냥 다 보인다. 한참 걷던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고 무함맛은 다리아래를 가리켰다. 타일로 된 길 양옆에 수많은 스핑크스들이 도열해있는 스핑크스 길이었다. 룩소르 신전에서부터 약 3km 떨어진 카르낙 신전까지 이어져있다고 한다. 역시 룩소르는 입장료를 내고 신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거리에도 이렇게 볼 것이 많다. 스핑크스마다 조명이 밝혀져있는 광경이 너무 멋있어서 한번 걸어보고 싶다고 하려다 거의 1시간 거리라는 소리에 말이 쏙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서 우리는 건물이 통채로 한 식당인 곳에 들어갔다. 딱 봐도 현지인, 외국인들이 자리에 가득가득 찬 것이 맛집포스가 느껴진다. 3층으로 올라가 겨우 자리를 잡고 마흐맛이 시켜주는 대로 음식을 받았다. 병아리콩과 마카로니, 면, 그리고 잡곡인듯한 곡물들을 한그릇 가득 받았고 그 위에 따뜻한 토마토소스인 듯한 것을 부어 섞어 먹는 음식으로 이름은 "쿠사리"라고 한다. 탄이 우리 말에 '핀잔을 듣다'의 의미인 '쿠사리 먹었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떠올리며 이 음식 이름은 절대 안잊어버리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무함맛이 매운 소스도 추가해줄까 묻자 한국인의 맵부심을 부리며 한숟갈 가득 넣었다. 역시 그다지 맵지 않았다. 냄새도 좋고 입맛에 잘 맞아 좋았다. 식사 후 우리가 돈을 내려하자 외국인에게는 비싸게 받는다며 무함맛이 계산을 했다. 얼핏 들었는데 한그릇에 1000원도 안하는 황당하게 저렴한 가격이었던것 같다. 날씨도 기온도 타이밍도 시간도 모든 것이 완벽한 나일강 뱃놀이와 처음 먹어본 쿠사리를 알게해준 무함맛에게 감사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룩소르를 30년만에 다시 찾은 가장 큰 이유인 카르나크 신전을 방문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곳의 거대한 기둥들과 아름다운 고대의 상형문자 부조들의 강렬한 느낌을 잊지못해 꼭 다시 오고 싶었고 탄에게도 몇천년전의 인류의 작품을 마주하는 감동을 오롯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카르나크는 옛 테베의 북쪽 절반을 지칭하는 지명으로, 그곳에 아몬 대신전을 중심으로 몬트, 무트 신전 등 세 신전으로 구성된 신전군을 통틀어 카르나크 신전이라 한다. 다만 몬트 신전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무트 신전 역시 일부만 잔존한다. 1월은 이집트 관광 성수기여서 사람들이 붐비기전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려고 인터넷으로 오픈시간을 확인해보니 웬걸, 새벽 6시에 연다고 한다. 낮이 뜨거운 이집트라 새벽과 저녁에 관광객을 많이 받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오픈시간 즈음해서 카르나크신전에 도착했다. 엄청 넓은 주차장에 차가 두어대밖에 없다. 기념품가게들도 아직 문을 열기 전 조용한 분위기에 새벽공기가 매우 상쾌하게 느껴졌다. 카르나크 신전 방향이 밝아지는 것이 해가 뜨기 시작하는 것 같다. 서둘러 표를 사서 들어갔다. 건물 안에 망자의 배와 카르나크신전의 축소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전 모형을 구경하던 중 탄이의 한국말이 들려온다. 사람좋은 탄이는 또 현지인에게 붙잡혀 유료가이드를 쓰라는 권유에 한국말 회피스킬을 시전하고있다. "하하, 그냥 우리끼리 보고싶어요~" 입장권의 QR코드를 찍고 검사대를 들어가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다. 지하철 봉같은 것을 밀고 들어가 광장으로 나오니 저멀리 카르나크신전 너머로 해가 뜨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넓은 광장을 지나 신전이 가까와지자 또 한번 검사대를 거친다. 중요유산이라 그런지 다른 곳 보다 검색이 매우 삼엄하다. 신전앞의 길에 늘어선 염소머리의 스핑크스들을 보니 어젯밤에 본 룩소신전과 카르나크신전을 잇는 스핑크스 길이 생각났다. '여기서부터 걸어가면 룩소신전이 나온다는 거지' 야외에 설치된 안내지도는 낡아서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입장료 받아 이런거나 깨끗하게 고쳐놓지. 아쉽지만 뭐 직접 다녀보면 되지 하며 들어간다. 첫번째 안뜰의 옆쪽 건물로 들어가니 벽마다 부조가 보였다. 앞서 방문한 신전들에서도 많이 본 부조이지만 왠지모르게 카르나크의 것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몇천년전의 사람이 손수 조각하고 정성스레 채색한 그 손길이 느껴지고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관심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내가 보고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다가온다. 신전을 관통하는 중앙 통로를 통해 해가 찬란하게 뜨고 있는 모습이 정말 장엄하고도 환상적이었다. 수천년전에도 해는 이렇게 떴을테니 당시 사람들도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 당시엔 화려한 채색으로 완성된 모습이었을테니 더 웅장하고 멋있었을것이다. 찬란한 고대 이집트의 기술이라면 분명 이런것을 다 고려해서 위치를 잡고 신전을 건설했을것 같다. 두번째 큰 탑문에 다가가니 양옆에 커다란 석상이 서있다. 람세스2세와 네페르타리의 석상이라고 한다. 문을 지나 드디어 카르나크 최고의 장관, 대열주전에 들어섰다. 134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주는 위압감이 대단하다. 기둥하나가 사람 여러명이 팔을 벌리고 둘러싸야할 정도로 크다. 기둥사이를 거닐며 내 오랜 지독한 그리움을 달래고 드디어 다시 이곳에 왔음을 충분히 만끽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둥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림과 문자들을 통해 몇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머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수많은 기둥들의 상형문자와 그림을 천천히 관찰하다보니 조각되어있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섬세하고 세련되게 양각부조로 조각되어 있는 것도 있고 투박하고 깊게 심조로 판것도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여러 파라오를 거쳐 긴세월동안 지어진 것이라 시대별로 방식과 솜씨가 달라졌다고 한다.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많이 소실되고 무너졌던 기둥들이 잘 복원된 것이 감사했다. 하지만 고대의 기둥들은 아마도 완벽한 곡률을 가지고 자로 잰듯 똑같은 모양으로 서있었을텐데 소실된 부분을 새로 만들어 채워놓은 곳은 좀 울퉁불퉁 일정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기둥의 방을 지나니 중간크기의 오벨리스크 두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보니 저멀리 또 커다란 탑문이 보인다. 또다른 새로운 신전으로 가는 길이다. 거의 무너져내린 탑문이 있는 신전은 아직 복원중인지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다시 되돌아가려고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나온 탑문앞에 거대한 석상이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는 4개의 석상이 일정한 간격으로 탑문앞에 자리하고 있었을것같았는데 현재는 2개만 있었다. 그래도 그 크기와 형상이 무척 멋있고 당대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신전 안쪽에는 커다란 호수같은 것이 있었는데 물고기도 살고 있었다. 우리나라 궁처럼 연못을 만들어 놓았나보다. 가장 안쪽에는 미로같은 작은 방같은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빠짐없이 다 보려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보고있는데 유니폼을 입은 한 경비원이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무로된 문이 있는 곳을 열어주더니 들어가보라는 것이다. 일반 관광객은 못 들어가게 막아놓은 곳 인 듯 싶었지만 호기심에 따라 들어갔다. 콘도르의 방으로 안내해준다고 한다. 요리조리 복원이 덜 된 유적 사이를 지나 깊숙히 들어갔다. 천장에 햇빛구멍이 하나 있는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는데 방안에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이 훼손된 돌덩이가 하나 놓여져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콘도르 석상인가 싶었는데 여기가 코브라이고 이것은 뭐고 설명을 해주는데 듣고 봐도 잘 모르겠다. 한쪽 벽에는 사람들 손때가 타서 까맣게 된 곳이 있는데 탄이에게도 손을 대보라고 한다. 풍뎅이 문양이다. 아마도 이걸 만지면 뭐 재물이 들어온다는 등 그런 의미 같다. 아무튼 남들은 못보는 것을 보았다는 묘한 만족감에 좋았다. 아직 안끝났다. 또 따라오라며 앞장서는 경비원. 아마도 딱히 할게 없는 경비원들이 이런식으로 부수입을 올리려는 것 아닌가 싶었다. 맨 마지막에는 좀 위험한 돌 위를 올라가 아래는 동물을 키우는 곳이고 위는 사람이 사는 방이라는 곳으로 갔는데 채색이 많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방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아직 많이 못본 벽화를 좋은 기회에 많이 봐두어야겠다 싶은 생각에 열심히 감상했다. 신전의 일하는 사람들이 지냈던 방이라고 하는 듯하다. 안내가 끝나니 역시 자기에게 프레젠트를 하라고 한다. 성의표시는 해야겠지 싶어 천원이 안되는 작은 돈을 팁으로 드렸다. 30년전과는 달리 복원도 많이 되어있고 장애인을 위한 통로 등 여러가지 신경을 쓴 것들이 보였다. 안쪽 구석구석까지 갈 수 있는 곳은 다 들어가고나서야 카르나크 신전관광을 마쳤다. 내가 사랑하는 기둥들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올지 기약이 없는 발걸음을 돌렸다. 맥도날드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걷는데 서점이 보였다. 혹시 이집트에 관련된 서적이 있을까싶어 들렸는데 상형문자 해석집이며 고대유물의 화보집 등 탐나는 책들이 한가득이다. 특히 책 전체를 오려서 접고 붙이면 신전이 되는 종이공작책이 있어서 한국에 가져가면 만들어보려고 샀다. 서점을 나와 또 걷는데 작은 은세공 전문점이 보였다. 전에 왔을때 이집트 상형문자로 엄마이름을 새겨넣은 금목걸이를 선물해드렸었는데 무척 좋아하시며 아직도 가지고 계신다. 내 이름으로 된 것도 하나 갖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서 만들어줄 수 있다고 한다. 세공사아저씨가 우리 둘의 이니셜을 즉석에서 상형문자로 번역해 써주신 것을 보니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아버지부터 2대째 이 일을 하고있는 장인이라고 한다. 내 이름을 상형문자로 조각한 은목걸이를 주문해서 받았다. 가격도 생각보다 크게 비싸지않고 세상에 하나뿐인 기념품이라 무척 만족스러웠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uDrSSwCBnpg?si=FAJJfJx3G1ASoTZX>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0-31 17:51:56[파이낸셜뉴스] 미국 백악관이 북한국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당국이 북한군 장병들에게 전투에 가담하지 말고 투항할 것을 촉구하며 세끼 식사와 의료 서비스, 수면 공간이 갖춰진 포로수용시설이 준비되어 있다고 전했다. "외국땅에서 무의미하게 죽지말라" 투항 핫라인 가동 23일(현지시간) 키이우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방부 정보총국(HUR)은 이날 러시아군을 상대로 운영하는 '투항 핫라인'을 통해 "우크라이나 포로수용소는 국적과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모든 군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라며 북한군의 투항을 촉구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푸틴(러시아 대통령) 정권을 위해 파견된 인민군 장병들에게 호소한다. 외국 땅에서 무의미하게 죽지 말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십만 러시아군의 운명을 되풀이하지 말라"라며 "투항하라! 우크라이나가 쉼터와 음식, 따뜻함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항복한 러시아 군인 수천 명도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와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종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는 살고 싶다'라는 이름의 투항 채널 텔레그램에 한국어로 제작한 1분14초짜리 홍보 동영상을 올리고, 북한군 포로를 위한 수용시설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이 영상에는 시설 전경과 침실 내부, 식사 준비 장면 등이 담겨있다. 영상은 "북한에서 새로 도착한 전쟁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가까운 장래에 전선의 여러 부문에서 포로가 된 최초의 북한 점령군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포로들은 별도의 수면 공간을 갖춘 크고 따뜻하고 밝은 방에 수용된다. 하루 세끼 식사를 받으며 식단에는 고기, 신선한 야채, 빵이 포함된다"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북한군 파병 확인 "참전땐 표적 될 것" 경고 한편 미국 백악관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공식 확인했다고 밝히며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되면 분명 피해를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10월 초에서 중반 사이에 최소 3천명의 군인을 러시아 동부로 이동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커비 보좌관은 "우리는 북한군이 배로 북한 원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면서 "이후 북한군은 러시아 동부에 있는 다수의 러시아군 훈련 시설로 이동했으며 현재 훈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에 임할지 아직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히 매우 우려되는 가능성이다"라면서 "북한군이 훈련을 마친 뒤 러시아 서부로 이동해 우크라이나군과 교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1진으로 파병한 병력인 3천명이 러시아의 훈련소 3곳에서 기본 전투 훈련을 받으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0-24 07:22:42【 안성=장충식 기자】 "안성시는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도시로, 직접 와 보면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김보라 경기 안성시장의 꿈은 안성시를 '기회와 희망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와 희망'은 지금 살고 있는 시민들에겐 더 나은 삶을, 삶의 터전을 옮겨 온 사람들에겐 제2의 인생을, 안성시에서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외지인들에겐 언젠가 뿌리 내릴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의미한다.김 시장의 꿈은 과거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안성시의 명성을 되찾는 일이다. '안성맞춤'은 어떤 사물이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의미로, 과거 안성 지방에서 유기를 주문해 만들면 요구에 신통하게 들어맞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운 도시의 모습을 뜻한다. 김 시장이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본인에게 안성시가 그런 도시였기 때문이다. 26살에 의료봉사로 안성시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30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안성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는 "젊은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안성시는 '마음먹은 것은 다 할 수 있도록 품어 준 곳'이었다"며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김 시장을 만나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그의 미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56만명 방문 김 시장을 만나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최근 개최된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의 성공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축제의 성공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안성시의 매력을 전국에 알리고 싶다"는 김 시장의 꿈이 실현되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열린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는 무려 56만여 명이 다녀가며 안성시의 매력을 만끽했다. 안성시 인구가 20만7000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그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특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음에도 1회용품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가능해 보였던 모습을 현실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축제 4일 동안 사용된 컵이나 접시, 수저 등 다회용기가 무려 15만5000개에 달했다. 평소에도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앞치마와 수저를 들고 다니는 김 시장의 고집이 만들어낸 축제의 성공이었다. 김 시장은 "올해 축제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안성시의 매력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문화는 안성시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문화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조성이와 함께 안성시를 기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는 김 시장의 가장 큰 계획은 다름 아닌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조성' 사업이다. 전통적인 농업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습을 설계하기 위해선 K-반도체 벨트를 축으로 하는 반도체 중심 도시로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이 같은 계획 속에도 "지금까지 안성시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만들어 더 살기 좋은 안성시를 만들고 싶다"는 김 시장의 바람이 담겼다. 그는 "대부분 안성시는 전통만 있는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지난해 7월, K-반도체 벨트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과 원활한 교통, 관내 반도체 관련 대학 등 다양한 강점과 적극적인 의지를 앞세워 '소부장 특화단지 유치'라는 특별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시장은 "특화단지는 안성시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며 "K-반도체 생태계 완성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토대로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도를 연결하는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김 시장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신규 일자리 창출과 생활 인구 유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성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만명 인구 증가의 꿈 김 시장의 미래 계획 중에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통한 약 10만 명 인구 증가의 꿈도 담겼다. 무엇보다 외지 청년들이 일자리를 위해 안성으로 모이고, 관내 반도체 관련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안성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며, 산단 내 기업에서 일하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등 '젊고 활기찬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현재 안성시에는 국립한경대학교를 비롯해 5개 대학이 있고, 여기에 약 2만500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또 자체 분석 결과 약 4만5000명 정도가 안성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모두 포함하면 약 7만여 명으로, 이들을 안성시에 정착하게 할 수만 있다면 가족들까지 포함해 10만 명의 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매년 최대 2000여 명의 인구가 안성시로 유입되는 추세이기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꿈이다. 이를 위해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인재 육성을 위한 반도체인력양성센터를 구축하고, 내년 8월 반도체 R&D 신사업 발굴과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안성산업진흥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한경대에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안성 폴리텍대학, 두원공대 등에서는 재직자들이 원하는 교육을 박사과정까지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는 중소기업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인근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안성시에서 실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 시장은 "안성시는 단순한 제조와 생산 거점을 넘어 반도체 인력양성센터를 통해 첨단산업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 되고, 기업들이 다양한 기술개발과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안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희망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jjang@fnnews.com
2024-10-16 18:07:16[파이낸셜뉴스]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최동석이 전처 박지윤과의 쌍방 상간 소송에 대한 심경을 털어놨다. 15일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이제 혼자다'에 박지윤과 이혼 소송 중인 최동석이 출연해 "감정이 앞섰다"며 소송을 빨리 취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최동석은 "사실 이혼 초반에 소장 준비를 했는데 소장을 접수하면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시끄러워질까 봐 안 했다"며 "그런데 (박지윤이) 내 지인에 대해 오해해 상대방이 소송을 걸었고, 이렇게 되니 변호사들도 소장 접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내가 불륜남이 되는 거니 억울한 면이 있었다"면서 "왜 이런 소송을 굳이 해서 시끄럽게 하는지 울컥하고 화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명을 뒤집어쓴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공인되는 것 같았다"며 박지윤에게 쌍방 소송으로 대응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최동석은 "이성적으로는 (얻는 게) 없다는 걸 알지만 감정이 끓어오르니까 '왜 나만 가만히 있고 참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라서 지금이 더 힘들다. (상처를) 봉합하고 싶다. 마음속으로는 빨리 좋게 끝내고 싶은데, (이대로 끝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소송을 빨리 취하하고 싶다. 많이 후회한다"면서 "내 개인 때문이 아니라 남은 가족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결될지 모르겠다. 서로 좋게 해결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동석은 전처인 박지윤을 향해 "미안하다"며 "어쨌든 나와 살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그 친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겪고 있는 거니 미안하다는 그 말을 가장 (하고 싶다)"고 사과했다. KBS 아나운서 30기 입사 동기인 최동석과 박지윤은 결혼 14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박지윤은 지난해 10월30일 제주지방법원에 이혼조정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최동석은 지난달 30일 박지윤과 남성 A를 상대로 상간자 위자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박지윤이 6월 최동석 상간녀로 지목한 B에 손해배상 소송을 건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그러나 양측 모두 불륜설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10-16 08:46:24【파이낸셜뉴스 안성=장충식 기자】 "안성시는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도시로, 직접 와 보면 진정한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김보라 경기 안성시장의 꿈은 안성시를 '기회와 희망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와 희망'은 지금 살고 있는 시민들에겐 더 나은 삶을, 삶의 터전을 옮겨 온 사람들에겐 제2의 인생을, 안성시에서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는 외지인들에겐 언젠가 뿌리 내릴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의미한다. 김 시장의 꿈은 과거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나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안성시의 명성을 되찾는 일이다. '안성맞춤'은 어떤 사물이 맞춘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는 의미로, 과거 안성 지방에서 유기를 주문해 만들면 요구에 신통하게 들어맞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만족스러운 도시의 모습을 뜻한다. 김 시장이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본인에게 안성시가 그런 도시였기 때문이다. 26살에 의료봉사로 안성시와 인연을 맺은 그는 이후 30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안성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는 "젊은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안성시는 '마음먹은 것은 다 할 수 있도록 품어 준 곳'이었다"며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는 도시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김 시장을 만나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 그의 미래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56만명 방문 김 시장을 만나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최근 개최된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의 성공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 축제의 성공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안성시의 매력을 전국에 알리고 싶다"는 김 시장의 꿈이 실현되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의 바람대로 지난 3일부터 6일까지 열린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는 무려 56만여 명이 다녀가며 안성시의 매력을 만끽했다. 안성시 인구가 20만7000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그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특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음에도 1회용품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가능해 보였던 모습을 현실로 보여준 사례가 됐다. 축제 4일 동안 사용된 컵이나 접시, 수저 등 다회용기가 무려 15만5000개에 달했다. 평소에도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앞치마와 수저를 들고 다니는 김 시장의 고집이 만들어낸 축제의 성공이었다. 김 시장은 "올해 축제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안성시의 매력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문화는 안성시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문화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조성...첨단 도시로의 도약 이와 함께 안성시를 기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는 김 시장의 가장 큰 계획은 다름 아닌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 조성' 사업이다. 전통적인 농업도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습을 설계하기 위해선 K-반도체 벨트를 축으로 하는 반도체 중심 도시로의 성장이 필수적이다. 이 같은 계획 속에도 "지금까지 안성시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만들어 더 살기 좋은 안성시를 만들고 싶다"는 김 시장의 바람이 담겼다. 그는 "대부분 안성시는 전통만 있는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지난해 7월, K-반도체 벨트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과 원활한 교통, 관내 반도체 관련 대학 등 다양한 강점과 적극적인 의지를 앞세워 '소부장 특화단지 유치'라는 특별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시장은 "특화단지는 안성시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며 "K-반도체 생태계 완성을 뒷받침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을 토대로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도를 연결하는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김 시장은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신규 일자리 창출과 생활 인구 유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안성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인력 양성...10만명 인구 증가의 꿈 김 시장의 미래 계획 중에는 반도체 인력 양성을 통한 약 10만 명 인구 증가의 꿈도 담겼다. 무엇보다 외지 청년들이 일자리를 위해 안성으로 모이고, 관내 반도체 관련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안성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며, 산단 내 기업에서 일하는 선순환이 이어지는 등 '젊고 활기찬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현재 안성시에는 국립한경대학교를 비롯해 5개 대학이 있고, 여기에 약 2만5000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또 자체 분석 결과 약 4만5000명 정도가 안성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모두 포함하면 약 7만여 명으로, 이들을 안성시에 정착하게 할 수만 있다면 가족들까지 포함해 10만 명의 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매년 최대 2000여 명의 인구가 안성시로 유입되는 추세이기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꿈이다. 이를 위해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실무인재 육성을 위한 반도체인력양성센터를 구축하고, 내년 8월 반도체 R&D 신사업 발굴과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안성산업진흥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한경대에는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안성 폴리텍대학, 두원공대 등에서는 재직자들이 원하는 교육을 박사과정까지 배울 수 있도록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는 중소기업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인근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안성시에서 실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김 시장은 "안성시는 단순한 제조와 생산 거점을 넘어 반도체 인력양성센터를 통해 첨단산업 인재를 길러내는 요람이 되고, 기업들이 다양한 기술개발과 테스트베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안성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희망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24-10-15 13:44:47[파이낸셜뉴스] 그룹 크레용팝 출신 초아가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초아는 14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암밍아웃"이라며 "저보다 더 아프고 힘든 분들이 많아 조심스럽지만 이제는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과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꺼내게 됐다"고 운을 뗐다. 초아는 "암은 많은 것을 가져가기도 했지만 삶의 방향에 큰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었고,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면서 "곧 가임력 보존을 위한 또 다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저는 경부를 제거했기 때문에 자궁 체부를 미리 묶는 수술을 한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임신과 출산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꼭 예쁜 아이를 만나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완치도 해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싶다"면서 "혹시 지금 지독히 힘들고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면 이 또한 지나갈 거라는 걸 꼭 기억하시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시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초아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그는 33살이던 지난해 암 진단을 받았다. 초아는 "행복한 신혼 1년 차. 산전 검사를 위해 찾아갔던 병원. 그날 나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며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이렇게 젊고 건강한 내가 암이라니. 혹시 오진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대학병원을 다섯 군데나 돌아다녔다"고 토로했다. 또 "난생처음 찍어보는 MRI, Pet CT 등 각종 암 검사들. 판독은 1기. 3cm 크기의 암으로 가임력 보존이 어렵다는 진단.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다리가 풀리고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물을 쏟아내며 살면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남편과 두 손 꼭 잡고 기도하며 포기하지 않았다"며 "암 크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매일같이 공부하고 운동하고 식단을 180도 바꿨다"고 전했다. 초아는 "그런 노력 덕분인지 수술 당시 암 크기는 예상보다 훨씬 작았고, 기적적으로 가임력도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어느덧 수술받은 후 1년여의 세월이 흘렀고, 얼마 전 4번째 추적 검사를 통과했다고 전했다. 한편 자궁경부암은 자궁의 입구인 자궁경부에 발생하는 여성 생식기 암이다. 자궁경부암의 예방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암이 되기 전 즉 전암성 병변을 일찍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국가암검진 권고안에 따르면 만 20세 이상 여성에게 3년 간격으로 자궁경부 세포 검사를 권고하고 있다. 국가암검진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 20세 이상 여성에게 2년 간격으로 자궁경부 세포 검사를 실시하는 국가암검진사업을 하고 있으며, 무료로 시행된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10-14 21:26:20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4.5%입니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는 1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데요. [혼자인家]는 새로운 유형의 소비부터,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정책, 청년 주거, 고독사 등 1인 가구에 대해 다룹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중국 사람이었고, 이름은 이미향이었어. 영어 이름은 안젤라. 나쁜X” 로맨스스캠. 사랑(romance)을 가장한, 사기 행각(scam).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데이팅 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 호감을 얻은 후 돈을 뜯어내는 방식의 전기통신금융사기다. 범죄자들은 호감형 외모의 인물을 계정 사진으로 내세우고,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피해자의 의심을 피한다. 이후 재산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금전을 송금하거나 이체하도록 유도한다. "항상 응원해주는데 힘이 나는 거야..." 연예인도 피해가지 못한, 로맨스스캠 가수 김상혁이 로맨스스캠을 당했다. 그는 지난 12일 한 웹예능에 출연, 로맨스스캠으로 1700만원을 잃었던 때를 회상했다. 게스트로 출연한 가수 딘딘은 “상식적으로 진짜야?”라며 이해불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상혁은 “더블 DJ 할 때 안 좋은 일(이혼)도 있었고, 아버지 묘도 한 번 옮겼다. 따뜻한 말 해주는 친구한테 항상 응원을 받는 데 힘이 났다. 그러다가 점점 비트코인 쪽으로 빠지더라. 얘기가.."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딘딘은 "기본적으로 전제 조건이, 그 여자의 프로필 사진이 예뻤으니까 형이 계속 연락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고, 김상혁은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중국 사람이었고 이름이 이미향이었다. 영어 이름은 안젤라. 나쁜 X"이라고 분노했다. “저 여군인데, 한번 만나볼래요?” 50대 남성 A씨도 로맨스스캠으로 1억원을 날릴 뻔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알게 된 여성은 자신을 우크라이나 현직 여군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해 왔다. “오랜 전쟁과 위험에 노출돼 한국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 “한국에 가고 싶다”, “당신을 만나고 싶다”, “석유 사업 투자를 통해 얻은 이익이 있는데 전쟁 중이라 보관할 곳이 필요하다. 대신 받아주면 보관료를 내겠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범인은 본인의 사진과 영상을 전송하면서 현금 1억원을 송금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말을 믿은 A씨는 지난 8월 23일 천안 서북구 NH농협은행 성정동지점을 방문해 범인의 계좌로 1억원을 송금하려 했다. 담당 직원이 송금 이유를 묻자 “외교관 지인에게 물건 값을 보내야 한다”고 답했는데 수상함을 느낀 직원이 보이스 피싱임을 직감하고 112에 신고,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중장년 남성 1인 가구, 외로움 등 심리적 요인에 취약 로맨스스캠은 ① 파병 여군·유학생·글로벌 기업 재직 한국계 외국인 등이라며 SNS에 가짜 프로필을 게시한 후 연락을 유도하거나 메시지를 보내 접근 ② 가짜인 외국은행·택배사·증권사 앱 화면을 보여주며 도움 유도 ③ 외국 관세청 직원·항공사 직원 등을 사칭해 통관비·등급 업그레이드 비용 등의 명목으로 계좌이체 시켜 금전을 편취하는 식이다. 외로움 등 상대적으로 심리적 요인에 취약한 중장년층이 표적이 되기 쉽다. SNS 활용에 능숙한 2030대도 범죄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8월까지 총 920건, 545억원(월평균 131건·78억원)의 신고가 접수될 만큼 로맨스스캠 피해는 커지고 있다. 피해자가 사기를 의심할 경우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한 영상통화까지 시도하는 등 그 수법이 더욱 교묘해 지고 있다. 해외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을 대표적 사례로 살펴보면 올해 1~6월 SNS형 투자사기 관련 피해액은 506억3000만엔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7배 증가한 수치로, 피해자는 50~70대가 전체의 70.9%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로맨스스캠 피해는 올해 상반기 합계 피해 건수가 1498건으로 피해액은 153억9000만엔에 달했다. 건당 평균 피해액만 1000만엔을 넘어선 것이다. 이에 일본 경찰청은 올해 4월 ‘특수 사기 연합 수사반(TAIT)’를 꾸려 로맨스스캠 단속에 나섰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피해 증가대비 여전히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로맨스스캠과 같은 신종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문턱을 넘지 못해 결국 폐기된 바 있다. 그나마 피해 심각성을 파악한 경찰이 올해부터 로맨스스캠을 금융 범죄로 관리, 피해 규모를 산정하고 있다. 또 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과 관련해 22대 국회 시작부터 전략적으로 추진해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는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관심 끄는 문자, SNS 메시지 받았을 때 사기 아닌지 의심해야 경찰청은 "사기범들이 민·관·경이 마련한 대응책들을 회피해 국민에게 도달하는 범행 시도가 늘어나면서 금융사기가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유형은 다양하지만 사기범이 접근한 후 피해자를 속여 금전을 편취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비슷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으므로 이를 평소에 숙지해두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3자로부터 관심을 끄는 문자나 링크, SNS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일단 멈추고 사기가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보는 모든 정보가 조작되고 가장됐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로맨스스캠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SNS상에서 무분별한 친구 추가 자제 ▲낯선 외국인과의 인터넷 교제 주의 ▲인터넷 교제 시 부탁을 가장한 금전 요구에 입금 금지 ▲ 과도한 개인정보 노출 등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기억하자, 이유 없이 잘해주는 여자는 ‘엄마’뿐이라는 걸.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9-25 13:45:31[파이낸셜뉴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잔소리는 전문 경영인을 포함한 직원들은 감히 하지 못한다. '메기'로서 할 일을 했다" 한국 행동주의 1세대로 평가받는 강성부 KCGI(Korea Climate & Governance Improvement Fund) 대표(사진)는 24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출범이후 그간의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강 대표는 한진칼, 오스템임플란트, 현대엘리베이터, DB하이텍 등에서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단행해 한국 액티비즘의 선구자로 꼽힌다. 실제 그는 애널리스트였던 2005년 국내 최초로 100대 기업의 지배구조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한 후 자신의 철학을 행동주의를 통해 실행에 옮겼다. 참여한 딜(거래)마다 이슈를 만들어내며 명실상부한 한국 대표 '딜메이커'로서 자리매김했다. 2023년 7월 메리츠자산운용(현 KCGI자산운용) 인수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KCGI대체투자운용(옛 케이글로벌, 2021년 창업) 등과 더불어 앞으로 준비할 KCGI금융그룹의 초석이다. 한양증권 인수를 통해 종합금융사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행동주의를 넘어 좋은 상품을 시장에 제공하는 '딜메이커'로서 DNA를 강화하겠다는 복안이다. 무엇보다 1973년생(51세)으로 한창 현역이지만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경남 함양 출신의 ‘흙수저’로써 18년간 누구보다 치열하게 새벽 6시에 출근하며 직장을 다녔고 옥탑방에서 신혼생활 한 만큼 치열하게 살아온 그다. 이에 재단은 만들지 않고 은퇴하는 날 현금으로 재산의 50%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생각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처럼 '투자의 달인'을 꿈꾸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좋은 투자처를 발굴하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있다. ▲ 왜 국내에서 생소한 행동주의를 선택 했나 ―LK투자파트너스 대표로 재직 시절, 기업가치는 좋지만 지배구조가 후진적인 곳에 투자, 구조를 개선하면 기업가치가 향상될 것이란 판단이 있었다. 요진건설 상속과 지배구조개선 문제가 첫 행동주의 투자다. 한국에서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투자가 작동한다고 보고 2015년 요진건설 투자 당시 출자자(LP)를 중심으로 2018년 한진칼 투자 펀드를 조성했다. 2018년 7월 1일 KCGI 창업의 배경이다. 행동주의펀드는 당장 대주주 입장에서 거슬리지만 장기적으로 회사가 발전하는 길을 제시한다. 부자가 된 한국의 기업은 주주, 채권자, 직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와 나눔의 문제에 있어 큰 벽에 봉착해있다. 한국의 법, 제도는 그동안 엘리트 기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기업이 돈을 벌었더니 지분이 얼마 안되는 오너(경영권 행사 주주)들의 배만 불린다는 우려에 일반 주주들이 주식 투자를 포기한다. 기업의 직원들도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다. 한국 경제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거버넌스(지배구조)에서 선진국이 될 필요가 있다. 모두가 행복하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모델을 위해 돌하나 얹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행동주의로 이끌었다. ▲KCGI 출범이후 행동주의를 포함한 투자 성과는 ―창업 후 설립 한달 만에 1600억원 규모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진칼 투자는 3년 반 동안 수익률 135%를 기록했다. 캠페인 등을 통해 기내식 서비스 매각, 호텔 부지 등 자산 매각에 대한 요구를 한진칼측이 받아들이면서다. 대한항공은 영구채를 포함해 부채비율이 1200%를 넘었지만 200%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19 전 비행기 30대 구매를 반대하지 않았으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2000%에 달할 뻔했다. LIG넥스원과 2018년 이노와이어리스에 공동투자한 인연으로 2021년 LIG넥스원에 투자했다. LIG에 1000억원, LIG넥스원 1000억원 등 총 2000억원 규모 투자다. 투자 후 주가는 4배 올랐고 수주잔고는 7배 넘게 늘었다. LIG넥스원은 공격용 무기가 아닌 방어용 무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 정신에 맞고 기술력도 우수하다고 판단했다. 대림코퍼레이션, 오스템임플란트, DB하이텍, 두나무, SBTL첨단소재(2차전지 파우치) 등 9개 포트폴리오에 투자해 IRR(순내부수익률) 20% 이상을 내기도 했다. KCGI자산운용 인수 후 사명을 변경하자 운용자산(AUM)이 4000억원 이상 줄었지만 지금은 인수 당시보다 늘어났다. 고객 계좌 증가는 물론 펀드 수익 확대에 따른 영향이다. 올해 현재 두 자릿수 이상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톱 레벨 연봉 베스트 애널리스트로서 삶을 왜 포기했나 ―2001년 수 천대 1의 경쟁을 뚫고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부 애널리스트로 시작했다. 채권 부문에서 크레딧(신용) 담당 애널리스트로서 기업의 부도율을 계산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동양증권에서 채권 소매영업을 하던 김병철 KCGI자산운용 대표이사 부회장의 제안으로 2004년 동양증권으로 옮겼다. 회사채를 리테일에 판매할 때 심사를 맡는 애널리스트였다. 2013년 동양그룹 기업어음(CP) 및 회사채 사태가 터지기 2년 전 동양그룹에 계열사 채권을 동양증권 지점에 파는 것은 모럴해저드(도덕적 헤이)라고 지적하며 회사를 나왔다. 신한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채권분석팀장을 맡는 등 애널리스트로서 15년 간 있었다. 톱 레벨의 연봉을 받던 애널리스트로서 남은건 리서치센터장였는데 관리보다 필드가 적성에 맞았다. 동문회에서 만난 선배의 '로켓이 연료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 우주로 날아가는가?'라는 한 마디가 인생을 바꿨다. 알량한 연료(연봉)를 아낄려고 그대로 있다가는 퇴직 걱정하며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봉을 대폭 낮추더라도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에 도전하고 싶었다. ▲ 앞으로 중점을 두는 것이 있다면 ―투자, 밸류에 있어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겠다. 부동산, 펀드에서 행동주의 장르를 만들어낸 것처럼 세상이 바뀐 것에 맞춰 찾아야 한다. 새로운 것이 없다면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안된다. 특히 세상에 유익하고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한국은 EV전환·반도체·AI·방산·조선 강점을 가졌다. 이런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굴, 투자하겠다. ▲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인생은 운7 기3 이라고 하는데 저야 말로 정말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애널리스트 시절부터 KCGI출범이후 그간 저를 도와주시고 감사한 분들이 너무도 많다 그분들에게 평생 빚을 갚아가며 살고 싶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강구귀 기자
2024-09-24 05:36:26[파이낸셜뉴스] 세계적인 팝스타 아델이 무기한 활동 중단을 발표한 가운데 그의 마지막 콘서트가 될지도 모를 티켓 가격이 급등했다. 6일 NME 등 외신에 따르면 오는 1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을 앞둔 아델의 콘서트 티켓이 정상가 보다 1700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어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델 콘서트 티켓의 가격은 원래 일반 티켓은 400달러(53만원), VIP티켓은 1000달러(한화 약 133만원)였다. 하지만 아델이 무기한 활동 중단을 발표하자 티켓값이 급등해 3819달러(한화 약 507만원)에서 1만7050달러(한화 약 2265만원)까지 웃돈이 붙었다. 지난달 31일 아델은 독일 뭔헨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오는 11월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마치면 긴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스스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지난 7년을 보냈다”면서 “이제 내가 준비해 온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델은 ‘새로운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2021년부터 교제 중인 유명 스포츠 에이전트 리치 폴과 약혼한 상태로 알려진 터라 결혼 후 가정에 전념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델은 앞서 지난 7월 독일 방송사 ZDF와의 인터뷰에서도 "연예계 활동에서 물러나 잠시동안 다른 창의적인 일을 할 것이다"라고 활동 중단을 암시한 바 있다. 한편, 아델이 긴 휴식기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첫 앨범을 낸 아델은 복귀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2015년에도 ‘25’를 발표한 뒤 6년의 기다림 끝에 새 앨범을 발표했다. 아델은 지난 2007년 싱글 '홈타운 글로리'(Hometown Glory'로 데뷔했다. 그의 히트곡으로는 '헬로'(Hello) ,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 '썸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 등이 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06 22:5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