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이동욱 교수팀은 바닷물에 녹아있는 나트륨 이온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저장하는 해수전지를 백금 대신 나무 찌꺼기로 저렴하게 만들었다고 18일 밝혔다. 나무 찌꺼기에서 나온 그리닌을 이용해 만든 해수전지는 과전압이나 전력밀도가 백금을 이용한 것과 근접한 수준을 보였다. 이동욱 교수는 "고가의 귀금속 촉매를 대체할 뿐만아니라, 바이오매스와 산업 폐기물의 가치를 극대화한 탄소중립적 접근법을 제시했다"며, "금속-공기 배터리 등 다양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해수전지 속 백금 촉매 대신 그리닌과 요소로 촉매를 만들었다. 리그닌은 나무의 15~35%를 구성하는 성분으로, 종이를 만드는 공정이나 바이오 연료 생산 과정에서 남는 부산물이다. 또 산업 폐수에 주로 포함된 요소는 질소가 많이 포함돼 있다. 이 리그닌을 800도에서 태운 뒤 요소와 같은 온도에서 반응시키면 리그닌 구석구석 질소가 달라붙어 고성능 촉매가 만들어진다. 리그닌을 구성하는 특정 탄소 원자 자리에 대신 들어간 질소는 방전에 필요한 에너지를 크게 낮추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만든 촉매를 해수전지 전극에 입혀 성능을 실험해 본 결과, 백금 촉매와 비슷한 성능을 보였다. 특히 전압 차는 0.71V로 백금 촉매(0.74V)보다 낮아 더 높은 효율성을 보였다. 과전압이 낮을수록 충전시킨 전기에너지 중 방전으로 뽑아 쓸 수 있는 에너지 비율이 높다. 또 최대 전력 밀도가 15.76㎽/㎠로 백금 촉매(16.15㎽/㎠)에 근접한 수준을 기록했다. 최대 전력 밀도는 방전 속도와 관련 있는 지표다. 특히 경제성 평가 결과, 새로 개발한 촉매의 생산 비용은 백금 촉매의 약 30% 수준으로 분석됐다. 이는 상업적 대규모 생산 시 더욱 낮아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실험실 규모의 고가 원료를 사용한 경우에도 경제적 이점을 확보했다는 것은 향후 산업 부산물 및 폐기물을 활용한 생산 공정 개발 시 높은 경제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진은 이번에 개발한 해수전지용 촉매를 국제 학술지 '케미컬 엔지니어링 저널(Chemical Engineering Journal)'에 발표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5-02-18 17:00:25[파이낸셜뉴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류정기·장지욱·장성연 교수팀이 나무 찌꺼기로 바닐라향료를 만들고, 이때 나오는 전자를 태양광 수소생산 시스템까지 작동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이 작동할때 외부 전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산소는 만들어지지 않고 순수한 수소 기체만 만들어져 효율적으로 수소를 모을 수 있다. 이번 기술개발에 참여한 제1저자 최유리 연구교수는 "이 시스템은 넓은 범위의 태양광을 흡수해 수소를 만들고, 산소나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며 "후속 연구를 통해 그린 수소 생산으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목질계 바이오매스에서 리그닌만 분리해내기 위해 저렴한 물질인 '인몰리브덴산(PMA)'를 촉매로 사용했다. 저온인 60℃에서 목질계 바이오매스에 PMA를 넣으면 리그닌만 분해돼 '바닐린'이 만들어진다. 바닐린은 바닐라 향이 나는 무색의 고체 가루다. 바닐린 자체는 단맛이 없지만 식품에 달콤함을 더하는 향료로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사탕 등에 들어간다. 또한 연구진은 리그닌이 바닐린으로 변할때 나온 전자를 추출해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기술에 활용했다. 즉, 수전해 기술은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얻는 기술이다. 기존 수전해 방식은 수소와 함께 산소도 만들어져 이를 분리 추출해야 하는 점과 폭발 가능성 등 여러 문제점 있다. 또한 수전해 기술 중 태양광 에너지를 연료로 전환하는 '태양광 수소 생산 시스템'은 높은 에너지가 필요해 전기를 추가해야 한다. 연구진은 리그닌 변환과정 중 얻은 전자로 산소 발생을 막는 수전해 시스템을 설계했다. 또 가시광선 전체 영역의 빛을 흡수하는 페로브스카이트 광전극을 적용해 수소 생산량을 늘렸다. 그 결과, 연구진이 개발한 시스템은 태양광 아래에서 20시간 동안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수소를 생산해 냈다. 류정기 교수는 "기존 태양광 수전해 시스템보다 적은 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해 냈다"며 "촉매를 활용한 목질계 바이오매스의 선택적 분해 기술은 셀룰로오스의 구조 변형 없이 리그닌만 분해해 목질계 바이오매스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구성 성분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경제적 기술"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3일 발표했다. monarch@fnnews.com 김만기 기자
2022-10-06 00:32:17[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영조 33년(1757년), 영조는 전국적으로 엄한 금주령을 내렸다. 영조가 금주령을 내린 이유는 가뭄으로 인해서 흉년이 들어서 쌀과 밀 등이 부족해진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술주정으로 인한 사건사고를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에는 술로 인해서 싸움이나 살인 등이 많았다. 그런데 술은 마시면 없어지는 것이어서 증거가 부족했다. 마시는 장면을 잡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백성들은 몰래 술을 빚어서 온돌방에 항아리를 숨겨 놓고 땔감으로 숨겨두기도 했다. 게다가 술독을 찾아내더라도 “이것은 식초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면 할 말도 없었다. 그러던 중 애매한 사건이 벌어졌다. 영조 33년(1757년) 11월 19일 늦가을 어느 날, 유세교라는 자가 몰래 술을 빚었다가 발각되었다. 유세교는 가전별초로 어영청 소속의 군인이었다. 영조는 “죄인을 잡아들여라.”라고 했다. 영조는 유세교를 보고 “너는 금주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술을 빚어서 금령을 어긴 것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유세교는 “이것은 식초이지 술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영조는 유세교의 말을 믿지 않고 곤장 2대에 처하도록 했다. 영조는 곤장을 때리도록 명한 후에도 유세교가 식초라고 우기자, 모든 신하들에게 술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유세교가 빚은 술독을 운반해 들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면서 “어영대장이 보라.”라고 했다. 어영대장 구선복이 “술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성부 당상 정윤명 또한 “술입니다.”라고 했다. 형조판서 홍상한은 “삼해주(三亥酒)의 찌꺼기입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술 이름까지 언급했다. 삼해주는 당시 절기에 맞춰서 가장 흔히 만들었던 곡주 중 하나였다. 영조는 또한 좌우의 호위를 맡고 있는 군병인 순령수들에게 명하여 모두 맛보게 하였다. 모두들 “술입니다.”라고 했다. 그다음으로 연로한 부로(父老)들에게 돌려 보였는데, 부로들조차 모두 “술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영조는 “부로들까지 술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대들은 숙정패(肅靜牌)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숙정패(肅靜牌)란 조선시대에 군영에 세워 두었던 푯말로 군령에 따라 사형을 집행할 때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숙정(肅靜)’이라는 두 글자를 나무 패(牌)에 써서 세워 둔 것을 말한다. 영조의 말인즉슨 ‘남들이 이미 술이라고 모두 말했기 때문에 두려운 나머지 자신들도 술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는 말이다. 사실 영조는 아직 술맛을 보기 전이었다. 영조가 숙정패라는 단어를 깨 낸 이유가 있었다. 영조는 다시 좌상과 우상에게 이르기를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므로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되니 경들이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좌의정 김상로가 눈치를 채고서는 “처음에는 술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이에 묻혀서 냄새를 맡아보니 식초와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신하들은 속으로 난리가 났다. 이미 모든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술이다’라고 했는데, 다시 정확하게 확인해 보라는 명을 받은 좌의정이 ‘식초같다’고 하는 바람에 어수선해졌다. 영조는 내시로 하여금 유세교의 술을 주발에 담아 가져오라고 명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술을 들여지지 않았다. 신하들은 술을 대령해야 할지 식초를 대령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주발에 담긴 것은 술 같기도 하고 식초 같기도 했던 것이다. 영조는 한참 뒤에 올라온 주발에 담긴 술맛을 봤다. 그러고 나서는 “나는 처음에 유세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여러 신하의 말을 들어 보니 모두 술이라고 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맛보니 과연 식초였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신하 김상로가 “식초로 돌리시니 성상의 뜻이 참으로 어지십니다.”라고 했다. 또한 자신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대답을 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여겼다. 여러 신하들은 유세교가 식초라고 하고 있고, 영조 또한 식초라고 했기에 무죄로 풀려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영조는 유세교에게 곤장 8대를 더 때려서 10회를 채우도록 했다. 그러자 김상로가 “술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곤장을 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영조는 “군자가 있은 뒤에야 소인이 있는 법인데, 만약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저것이 식초가 되었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곤장 2대만 더 때리고 다시는 식초를 만든다는 이유로 누룩을 비축하지 않을 것을 명하며 풀어 주었다. 영조는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효시로 삼아 온 백성들에게 음주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영조는 유세교를 잡아들인 낭청을 불러 “너는 어찌하여 식초인데도 유세교를 잡아 온 것이냐?”라고 묻자, 낭청은 “식초인 듯하였으나 식초가 아니었고 아직 술맛이 났기에 잡아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영조는 술잔에 담긴 것을 낭청에게 맛을 보도록 했다. 낭청은 “이것은 식초이옵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부로(父老)들을 다시 불러 맛을 보도록 했다. 그러자 부로들은 모두 “식초이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영조는 “처음에는 술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식초라고 하는 것이 앞뒤 말이 맞지 않는다. 임금을 속이는 것이냐?”라고 하고는 지금 이후로부터 문을 닫고 집 밖을 나가지 말고 다시는 먼저 궁으로 들어오지 말도록 했다. 사실 유세교는 처음에 술을 빚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각되었을 당시 술이 쉬기 직전으로 술맛과 식초맛이 동시에 났을 것이다. 따라서 낭청이나 부로들이 처음 본 맛은 술맛이 강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초 맛이 강했던 것이다. 실제로 술이 쉬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르게 식초맛이 강해진다. 신하들은 입맛 그대로 말했을 뿐이다. “이것이 술이냐 식초냐?”라는 물음은 마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밖이 밝으냐 어둡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 먼저 대답하는 사람은 밝다고 할 것이고 나중에 대답하는 사람은 어둡다고 할 것이다. 모두 맞는 대답이다. 신하들은 흉년으로 인해서 일시적인 금주령을 요청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지는 몰랐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금주령에 대한 여러가지 폐단들이 나타났고, 신하들의 상소도 빗발쳤다. 그러나 영조는 역정을 내면서 들어주지 않았다. 영조의 금주령은 이후 10년이나 이어졌다. 보통 술에 신맛이 나기 시작하면 ‘술이 쉬었다’라고 한다. 술은 누룩을 이용해서 밀이나 쌀의 전분을 당화시켜 발효가 일어나는데 이때 알코올이 생성된다. 우리는 이것을 ‘술’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누룩이 남아 있는 상태의 술은 시간이 지나면 과발효되는데, 이때 술 속의 초산균이 초산발효를 일으켜 점차 신맛이 나기 시작한다. 술에 신맛이 나기 시작하면 쉬었다고 하고, 완전하게 쉬게 되면 ‘식초’가 된다. 옛날에는 식초를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막걸리를 만들어서 술을 빚은 다음 일부를 용기에 넣어서 부뚜막 따뜻한 곳에 두면 시간이 지나면 식초가 된다. 이것을 보통 막걸리 식초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는 포도주로 식초를 만들어 먹었는데, 바로 발사믹 식초다. 알코올 발효를 거치지 않고 식초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예를 들면 홍시를 오래두면 감식초가 되고, 김치도 오래되면 신맛이 강한 김치물 식초가 된다. 이 경우는 알코올발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초산발효가 일어나는 것이다. 막걸리와 같은 술의 과발효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술이 바로 소주(燒酒)다. 소주는 막걸리를 끓여서 그 증기를 받아내 다시 액화시킨 것을 말한다. 막걸리는 색이 탁해서 탁주(濁酒), 소주는 맑아서 보통 청주(淸酒)라고 부른다. 소주에는 누룩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이상 발효가 일어나지 않아 오래 보관해도 식초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와인으로부터 얻은 코냑도 마찬가지 원리다. 중국에도 금주령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한나라 말기에 기근이 심해서 조조가 금주령을 내리자 주객들이 술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하여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고 불렀다. 일례로 한나라를 이어서 들어선 위나라 상서랑인 서막이 몹시 술을 좋아했는데,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마시다 적발되자 “나는 성인에게 중독되었을 뿐이다.”라고 한 것이다. 어느 날 위나라 황제인 문제가 서막을 보고는 “요즘도 성인에게 중독되는가?”라고 묻자, “아직도 자신을 혼내지 못하고 때때로 다시 중독되곤 합니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술은 인간의 음식역사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산물이다. 전 세계의 역사를 보면 일시적인 금주령들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발효라는 신기한 현상은 인간에서 술과 식초를 선물했다. 식초는 술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그래서 전에는 술이었지만 나중에는 식초였던 것이다. 술과 식초는 한 끗 차이다. * 제목의 ○○는 ‘식초’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승정원일기> ○ 영조 33년 1757년 11월 18일. 上曰, 酒禁, 近日, 何如? 象漢曰, 悶悶. 南部有捉送者, 卽駕前別抄柳世僑爲名漢也. 又有慕華館·箭串里等處捉來者矣. 上曰, 令前所釀歟? 不測矣, 何以捉之云耶? 象漢曰, 一則堗後置薪而 埋甕云矣. (상이 이르기를, “주금은 근일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상한이 “고민스럽습니다. 남부에 잡아서 보낸 자는 바로 가전별초 유세교라는 놈입니다. 또 모화관과 살곶이 등에서 잡아온 자가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에 빚은 것인가? 예측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고 하였다. 상한이 아뢰기를, “한번은 온돌 뒤에 땔나무를 숨겨두고 거기에 항아리를 묻는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영조 33년 1757년 11월 19일. 上曰, 秋曹, 是矣. 分付傳授罪人拿入後, 上命宣傳官, 問以所釀, 於新令之前後, 何居乎? 罪人供曰, 醋也, 非酒也. 上曰, 奸矣。汝直告則可容恕, 不然則當於東郊梟示矣. 決棍二度後, 上命御將諭之曰, 今此下問, 只在令之前後而已, 豈問酒與醋乎? 罪人供曰, 果是令前矣. 右議政申晩曰, 令前後下問之聖意, 可見其至仁盛德, 而渠不知感激, 不爲承款, 無狀矣. (상이 이르기를, “형조가 옳다. 전해 준 죄인을 잡아들인 뒤에 상이 선전관에게 명하여 술을 빚는 것을 신문하게 하였는데, 새 법령 전후로 언제냐?”라고 물었다. 죄인은 공손히 “식초이지 술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상은 “간악하다. 너는 사실대로 고하면 용서해 줄 만하고 그렇지 않다면 동교에서 효시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결국 곤장 2대를 친 후에 상이 어영대장에게 명하여 유시하기를, “이번에 하문하는 것은 단지 명령을 내리기 전뿐이니, 어찌 술인지 식초인지를 묻는 것이겠는가?”라고 하였다. 죄인은 공손하게 “결과적으로 이것은 명령이 있기 전입니다.”라고 했다. 우의정 신만이 아뢰기를, “전후로 하문하신 성상의 뜻에서 그 지극한 인과 성대한 덕을 볼 수 있는데, 그는 감격할 줄 모르고 승복하지 않았으니, 한심합니다.”라고 했다.) ○ 上命曳酒甕入之. 上曰, 御將見之. 善復曰, 酒也. 京兆堂見之. 允明曰, 酒也. 秋判見之. 洪象漢曰, 三亥酒滓也. 上又命左右巡令手, 皆嘗之. 皆曰, 酒也. 輪示諸父老, 父老皆曰, 酒也. 上曰, 父老之言酒, 似恐其拿入於肅靜牌之內矣. 上謂左右相曰, 人命至重, 不可不愼, 卿等見之. 尙魯曰, 初似酒矣。染紙而嗅之, 亦似醋矣. (상이 술동이를 운반해 들이라고 명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영대장이 보라.”라고 했다. 구선복이 아뢰기를, “술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성부 당상이 보았다. 정윤명이 아뢰기를, “술입니다.”라고 했다. 형조 판서가 그것을 보았다. 홍상한이 이르기를, “삼해주의 찌꺼기입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또 좌우의 순령수에게 명하여 모두 맛보게 하였다. 모두 말하기를 “술입니다.”라고 했다. 여러 부로에게 돌려 보였는데, 부로들이 모두 “술입니다.”라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부로가 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숙정패 안으로 잡아들임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 상이 좌상과 우상에게 이르기를,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므로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경들은 보라.”고 하였다. 김상로가 아뢰기를, “처음에는 술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이에 뭍여서 냄새를 맡아보니 역시 식초와 같았습니다.”라고 했다.) ○ 上命宣傳官, 諭于世僑曰, 汝稱三代近侍之人, 而酒禁之下, 尙留麯醋, 是亦罪也. 加棍八度, 以滿十度, 可也. 尙魯曰, 旣知其非酒而加棍, 無乃太過乎? 上曰, 有君子, 然後知小人, 無此酒, 則何以知彼醋乎? 又加棍二度後, 命宣傳官諭之曰, 以御吏書啓觀之, 或有決笞十度而死者. 若滿十度而致斃, 則非生汝之意也, 故只加二度而送之. 此後汝須以麯醋被罪之言, 歸傳閭里, 毋使民間, 復儲麯醋也. 今後人必以汝爲被罪之人, 而當枳塞於軍門, 汝則自同平人而行世, 宜矣. (상이 선전관에게 명하여 유세교에게 유시하기를, “너는 삼대 가까이에서 근시를 지냈던 사람인데 주금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누룩이 남아 있으니 이 또한 죄이다. 여덟 번 곤장을 쳐서 10회를 채우는 것이 가하다.”라고 하였다. 김상로가 아뢰기를, “술이 아닌 줄 알면서도 곤장을 쳤으니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군자가 있은 뒤에야 소인을 알 수 있는데, 이 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저것이 식초됨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9-20 15:07:08[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먼 옛날 또다시 북쪽에서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다. 마을 사람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몇 년 전에도 짧은 피난 길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군이 몰려온다는 소문이다. 몇 달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곡식이라는 것은 생명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긴 시간동안 곡기를 끊게 되면 곧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가거나, 혹은 죄를 지어 도망쳐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은거하거나, 혹은 깊은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가 있어야 한다면 굶어 죽지 않으려면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을에서는 보통 흉년이 들었을 때는 곡식 이외의 것으로 배고픔을 면해 왔다. 이러한 것들로는 솔잎(송엽), 측백나무잎(측백엽), 둥굴레뿌리(황정), 천문동, 삽주뿌리(출), 마(산약), 칡(갈근), 하수오(백수오), 느릅나무의 껍질(유백피), 복령, 도토리(상실), 밤(율), 연근(우), 잣(해송자), 들깨, 개암열매 등으로 가급적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먹었다. 마을에는 의원이 한 명 있었다. 의원은 “의서에 보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처방들이 있으니 그것을 만들어서 피난 길에 오르면 굶어 죽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 뭘로 만드는 것이 좋겠소?”하고 물었다. 의원은 “검정콩이 좋겠습니다. 모두 집에 있는 검정콩을 모조리 가져오시오. <구황본초>에서도 검정콩은 좋은 구황식품이라고 했으니 피난길에 배고픔을 견디게 하는 효과가 클 것이요.‘라고 했다. <구황본초(救荒本草)>는 명나라때 주숙이 지은 서적으로 ‘검은콩은 굶주림으로부터 구한다. 싹과 잎이 어릴 때 채취해서 데치거나 삶아서 물에 일궈서 쓴맛을 제거한다.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를 해서 먹는다. 콩깍지가 생기면 콩깍지를 채취해서 삶아 먹는다. 혹은 두들겨서 얻은 콩을 먹어도 모두 좋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우선 마을에 있는 검은콩은 모두 구해 한 곳에 모았다. 그리고 의원의 지도하에 검은콩 1되의 껍질을 제거하고 관중(貫衆), 감초 각 1냥, 복령, 창출, 사인 각 5돈을 썰고 찧은 다음 물 5잔에 검은콩 등을 함께 넣고 약한 물로 달였다. 물이 다 졸아들면 다른 약은 골라내어 버리고 검은콩만 취하여 진흙처럼 찧어서 가시연밥만 한 크기로 만들었다. 배가 고플 때면 매번 이 환을 한 개씩 먹는 것이다. 관중(貫衆)은 마치 고사리처럼 생겼다. 우리말로는 회초미라고 부른다. 관중은 늦가을까지도 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예로부터 뿌리를 캐서 삶아 먹어서 구충제나 해독제로 사용했다. 옛날에 말이나 소가 꼴풀을 잘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때에는 꼴풀을 끓일 때 관중 1~2매를 같이 삶아 오래도록 먹이면 충(蟲)이 저절로 빠져나왔다. 여기에 감초를 넣어서 해독기능을 높였다. 검은콩과 감초는 감두탕(甘豆湯)의 재료가 되는데, 각 5돈씩 끓여서 먹으면 백약(百藥)과 백물(百物)의 독을 푼다고 했다. 그리고 복령과 창출, 사인을 추가한 것은 곡식을 제외한 이름 모를 초근목피를 먹었을 때 배탈을 막고자 한 목적이었다. 의원은 “이렇게 검은콩으로 환을 만들어 먹으면 피난 길에서 푸성귀를 아무거나 먹어도 종일 배불리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록 평소에는 알지 못하던 이상한 풀이나 나무 종류라도 중독되는 일이 없을 것이요. 그리고 풀뿌리나 나무껍질조차도 마치 밥을 먹는 것처럼 달게 느껴질 것입니다. 의서에는 이 환을 피난대도환(避難大道丸)이라고 했으니 피난할 때 챙기면 길을 크게 밝혀준다는 의미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을 피난대도환을 가능한 많이 만들어 식구 수대로 나눴다. 피난대도환을 만들다 보니 복령, 백출이나 사인이 모두 동이 났다. 그러자 의원은 “검은콩과 관중 뿌리만을 삶아서 환을 만들어도 좋습니다. 검은콩 1되를 곱게 썬 관중 1근과 함께 푹 삶아 검은콩의 향이 진하게 나면 다시 여러 번 뒤집어 펴주고, 관중의 나머지 즙이 다 마르고 나면 관중 찌꺼기는 까불러서 버리고 검은콩만 취하여 빈속에 매일 5~7알씩 먹으면 됩니다. 이 환 또한 며칠만 먹으면 다시는 음식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도가(道家)에서 곡식을 끊고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을 때도 검은콩관중환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이 환만 있으면 몇 개월 동안 도를 닦는데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고 많은 식량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일종의 단식이나 금식을 하고자 할 때도 먹기도 했다. 사실 검은콩만 익혀 먹어도 곡식을 끊고서도 어느 정도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 가능했다. 검정콩을 볶아 익혀서 먹으면 양식을 대신할 수 있었다. 알이 꽉찬 검은콩 21알을 골라 익혀서 주물러서 매일 아침 찬물로 삼키면 된다. 간간이 곡기를 하루정도씩 끊도록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먹으면 그럼 밥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갓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응애~ 응애~” 피난길에는 배고픔도 문제지만 간난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문제였다. 간혹 피난 때 아이들이 울음소리 때문에 적들에게 발각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갓난 아이들이 울음을 멎지 않을 때는 적들이 들을까 염려되어 길옆에 버리고 가는 부모들까지도 있었다. 어느 부모가 그러고 싶겠느냐마는 주위 사람들의 눈총에 시달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우는 아이들을 안고 있는 엄마들은 차갑게 쳐다보는 시선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의원은 갓난 아이의 엄마들에게 솜뭉치와 감초 달인 물을 따로 챙겨 주었다. “아이들이 업고서 피난을 갈 때 아이의 입에 감초물을 적셔서 물리시구려. 그럼 아이가 울지 않을 것이요.”라고 안심을 시켰다. 마을 사람들은 드디어 피난 길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적들이 진을 치고 있는 진지 곁을 지나게 되었다. 간난 아이들을 업은 엄마들은 서둘러 솜뭉치를 감초물에 적혀서 아이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단맛이 나는 감초물을 빨면서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솜 때문에 말소리도 내지 못했다. 솜은 부드러워서 아이의 입이 상하지도 않게 했다. 이렇게 솜뭉치와 감초물이 있어서 안심하고 피난길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배고픔과 지치고 힘듦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식구 수대로 나눈 피난대도환 등을 먹으면서 며칠을 걸었다. 많이들 굶주렸고 지쳐있었다. 그래도 남자나 젊은이들은 견딜만 했으나 너무 어리거나 여자나 노인들은 힘에 부쳤다. 사람들은 달포 정도를 걸어서 산속 깊은 곳으로 왔다. 그곳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난리가 난 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산속이었다. 그곳에는 쌀과 곡식이 넉넉했다. 사람들은 모두 굶주려서 배가 고팠지만 그래도 가장 지치고 허기가 진 사람들에 밥을 얻어 먹이고자 했다. 그때 의원이 나섰다. “잠시 멈추시오. 굶주려 파리해서 죽게 된 사람에게 갑자기 밥을 먹이거나 뜨거운 음식물을 먹게 하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럴 때는 먼저 장즙(醬汁)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한 다음에 식은 죽을 주고 점차 기력을 차리기를 기다려서 점점 죽(粥)과 밥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흔하게 하는 단식 후에 회복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 사람들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의 배려로 그곳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다가 무사히 자신들의 마을로 되돌아갔다. 의원이 알려준 피난대도환은 나중에 흉년이 들었을 때도 만들어 먹었고, 밥을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쉽게 찌는 사람들에게 식욕을 억제할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검정콩은 여러모로 식량이자 약이 되었다. * 제목의 〇〇〇은 ‘검정콩’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구황본초(救荒本草)> 山黒豆. 救飢, 苗葉嫩時, 採取, 煠熟水淘, 去苦味, 油鹽調食, 結角時, 採角, 煮食, 或打取豆, 食皆可. (산흑두. 굶주림을 구한다. 싹과 잎이 어릴 때 채취해서 데치거나 삶아서 물에 일궈서 쓴맛을 제거한다. 기름과 소금으로 조리를 해서 먹는다. 콩깍지가 생기면 콩깍지를 채취해서 삶아 먹는다. 혹은 두들겨서 콩은 얻어서 먹어도 모두 좋다.) <동의보감> 〇 避難大道丸. 黑豆 一升 去皮, 貫衆, 甘草 各一兩, 茯苓, 蒼朮, 砂仁 各五錢, 剉碎, 用水五盞, 同豆慢火熬煎, 直至水盡, 揀去藥, 取豆擣如泥作芡實大, 磁器密封, 每嚼一丸, 則恣食苗葉, 可爲終日飽. 雖異草殊木, 素所不識, 亦無毒甘甛, 與進飯粮一同. 一方, 黑豆一升, 貫衆 一斤細剉, 同煮豆香熟, 反覆令展盡餘汁, 簸去貫衆, 只取黑豆, 空心, 日啖 五七粒, 任食草木無妨, 忌魚肉, 菜果, 及熱湯. 數日後, 不復思食. (피난대도환. 껍질을 벗긴 검정콩 1되, 관중, 감초 각 1냥, 복령, 창출, 사인 각 5돈을 썰고 부수어 물 5잔에 콩과 함께 약한 불에 물이 사라질 때까지 졸인다. 약을 골라내고 콩을 질게 찧어 검실만 하게 환을 만들어 사기그릇에 밀봉한다. 이것을 1알씩 먹고 식물의 싹이나 잎을 마음대로 먹으면 하루종일 배가 부르다. 비록 평소에 알지 못했던 이상한 풀이나 나무라도 독이 없어지고 밥을 먹는 것처럼 달다. 또는 검정콩 1되, 관중 1근을 얇게 썰어 콩내가 날 정도로 함께 달이고 반복해서 눌러 남은 즙을 다 뺀다. 키로 까불러서 관중을 제거하고 검정콩만 취해 하루에 5~7알씩 빈 속에 먹는다. 초목의 싹이나 잎을 마음대로 먹어도 무방하지만, 생선, 고기, 채소, 과일, 뜨거운 물을 피한다. 먹은 지 며칠이 지나면 음식 생각이 나지 않는다.) 〇 避難止小兒哭法. 用綿作一小毬略, 使滿口而不致閉其氣. 以甘草煎湯, 或甛物, 皆可漬之, 臨時, 縛置兒口中, 使嚥其味, 兒口有物實之, 自不能作聲, 而綿軟不傷兒口. 盖不幸而遇禍難, 啼聲不止, 恐爲賊所聞, 棄之道傍, 哀哉. 用此法, 活人甚衆, 不可不知. (피난 갈 때 소아의 울음을 멎게 하는 방법. 솜을 작고 둥글게 뭉쳐서 입에 채우되, 숨이 막히지 않게 한다. 그리고 감초 달인 물이나 단 것으로 적신다. 위험할 때 아이의 입에 묶어 놓아 그것을 빨게 한다. 아이의 입에 물건이 채워져 있으니 저절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고 솜은 부드러워서 아이의 입이 상하지도 않는다. 불행히 난리를 만나 울음이 멎지 않을 때는 적들이 들을까 염려되어 길 옆에 버릴 때가 있으니, 아! 슬프구나. 이 방법을 써서 많은 사람을 살렸으니 이것을 모르면 안 된다.) <의림촬요> 〇 黑豆. 炒熟,以棗肉同搗之,爲麨,可以代粮. 左元放救荒年法. 擇取雄黑豆三七粒,生者,熟挼之,令煖氣徹豆心,先一日不食,次早以冷水呑下. 魚肉菜果,不復經口,渴則飮冷水. 初雖小困,十數日後,體力壯健,不復思食矣. (검은콩. 볶아 익혀서 대추육과 함께 찧어서 밀기울처럼 해 먹으면 양식을 대신할 수 있다. 좌원방의 흉년 구휼법. 튼실한 검은콩 날것 21알을 골라 익혀서 주물러 따뜻한 기운이 콩의 가운데까지 뻗치게 한 다음 먼저 하루는 밥을 먹지 않고 다음날 아침에 찬물로 삼킨다. 생선이나 고기, 나물, 과일은 다시는 입에 대지 말고 갈증이 나면 찬물을 마신다. 처음에는 조금 괴로워도 십 수일 후에는 체력이 강건해지고 다시는 음식 생각이 나지 않게 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4-01-16 14:22:17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가 커피박을 활용한 친환경 조경 토양개량제 '리코(RE:CO) 소일'울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포스코이앤씨와 삼화그린텍이 함께 개발한 '리코 소일'은 재활용의 'RE', 친환경(eCO)과 커피의 'CO' 그리고 토양이라는 뜻의 '소일(Soil)'을 결합한 단어로 '커피를 활용한 친환경 토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커피박이란 일명 '커피 찌꺼기'다. 공동주택 인공지반 슬라브 상부에 반입되는 토양은 자연 토양 보다 조경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척박한 인공지반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 '개량제'를 사용하는데 커피박을 활용해 개발한 토양개량제가 리코소일이다. 기존 펄라이트 등 무기질로 구성된 토양개량제 대비 운반 또는 작업 시 비산 먼지 발생도 줄어 작업성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탄소 저감을 위한 경영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친환경미래사회 건설을 위해 업의 한계에 도전하는 혁신기업으로서 회사의 비전 실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용준 기자
2023-10-22 17:59:57[파이낸셜뉴스]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가 커피박을 활용한 친환경 조경 토양개량제 '리코(RE:CO) 소일'울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포스코이앤씨와 삼화그린텍이 함께 개발한 '리코 소일’은 재활용의 'RE', 친환경(eCO)과 커피의 'CO' 그리고 토양이라는 뜻의 '소일(Soil)'을 결합한 단어로 '커피를 활용한 친환경 토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커피박이란 일명 '커피 찌꺼기'다. 공동주택 인공지반 슬라브 상부에 반입되는 토양은 자연 토양 보다 조경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 척박한 인공지반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 '개량제'를 사용하는데 커피박을 활용해 개발한 토양개량제가 리코소일이다. 기존 펄라이트 등 무기질로 구성된 토양개량제 대비 운반 또는 작업 시 비산 먼지 발생도 줄어 작업성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탄소 저감을 위한 경영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친환경미래사회 건설을 위해 업의 한계에 도전하는 혁신기업으로서 회사의 비전 실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2023-10-20 09:14:58[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아들은 효장세자(孝章世子)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는 효장세자가 어릴 적 요절하고서 7년 이후에 태어난 이복동생이다. 효장세자가 모름지기 장자이자 종묘사직을 이을 후사였다. 효장세자는 1724년 영조가 즉위하고서 난 다음 해 음력 2월에 7세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런데 그해 음력 8월 심한 열감기를 앓게 되었다. 의관들의 탕약을 처방하면서 열은 잡히는 것 같았지만 몸의 상태는 쉽게 회복을 보이지 않았다. 음력 5월에는 두창(痘瘡)을 가볍게 앓은 적이 있고, 이후 감기에 걸려 회복되자마자 또다시 감기에 걸린 것이다. 효장세자는 몸이 마르고 병약했으며 평소 잦은 감기에 걸렸다. 그래서 영조는 “논어에 ‘부모(父母) 유기질지우(唯其疾之憂)'라고 하였으니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만을 우려한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는구나”라고 하면서 항상 세자의 건강을 걱정했다. 음력 9월의 어느 날, 효장세자는 감기가 조금씩 회복되면서 동궁(東宮) 뜰을 거닐 정도가 되었다. 당시 동궁에는 대추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동궁 정원을 산책하다가 붉게 물든 대추를 한 개 따 보려다가 그만 큰 가시에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아얏~!”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에 신하들이 “저하~ 무슨 일이시옵니까?”하며 놀랐다. 신하들이 보기에 분명 대추나무 가시에 찔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효장세자는 “아무 일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거라.”라고 하면서 오늘 일에 대해서 함구령을 내렸다. 효장세자는 어린아이임에도 항상 의젓했고 참을성 또한 강했다. 왕세자의 손가락이 대추나무 가시에 찔렸다면 분명 신하들도 문책을 받을 것이고, 아바마마에게도 전해져 또다시 걱정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냥 견디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수였다. 대추나무의 가시는 무척 크다. 대추를 원래 한자로 대조(大棗)라고 하는데, 대추나무 조(棗) 자는 가시 자(朿) 자 두 개가 붙여진 것으로 그만큼 가시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추나무를 가시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대추나무의 가시는 크고 굵어서 어른들도 한번 찔리면 그 통증이 대단하고 상처가 남기 때문에 대부분 심한 염증으로 곪기 일쑤였다. 효장세자는 그날 밤 욱신거리는 통증 때문에 전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시에 찔린 손가락은 잘 익은 대추마냥 붉게 부어올랐으며 후끈거리는 열감이 느껴졌다. 효장세자는 소위 말하는 생인손에 걸린 것이다. 생인손은 바로 조갑주위염으로 손톱 옆의 거스러미를 함부로 떼거나 가시 등에 찔려 상처가 생긴 상태에서 세균이 감염되면서 생기는 화농성, 염증성 질환이다. 의서에는 대지(代指)라고 기록되어 있다.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손톱이 문드러져 빠지기도 하고, 면역력에 따라서 패혈증이 합병되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한다. 효장세자의 손가락은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북채처럼 퉁퉁 부어올랐고 가시에 찔린 부위는 마치 삶아 놓은 대두콩 같았다. 벌써 고름이 차는 듯했다. 심장이 뛸 때마다 박동에 맞춰서 욱신욱신거렸다. 하룻밤 자고 나면 좋아질 줄 알고 참았건만, 증상이 날로 심해지자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왕세자를 모시는 내시가 어디서 들었는지, 찹쌀밥을 구해와서 종창부위에 붙어 주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다. 가시에 찔린 날로부터 3일째 되는 어느 날 영조가 효장세자를 불렀다. 영조는 효장세자가 글공부를 잘해 오고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간혹 경연장으로 불러 왔던 것이다. 효장세자는 지금껏 암송했던 사서삼경의 일부를 외우고 질문에 답했다. 영조는 “대견스럽구나”라고 하면서 강론을 담당한 관원에게도 칭찬을 했다. 그러고서는 “그럼 내가 말하는 문구를 써 보거라. 대학에 나오는 문구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는 것이다. 효장세자는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그러나 손가락의 통증으로 인해서 붓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고, 나무 목(木) 자의 한 획을 그어 내리다가 눈물을 흘렸다. 7살 어린 나이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나타난 것이다. 영조는 붓글씨 쓰는 것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는 효장세자를 보고서는 멈칫했다. 곧바로 그것이 퉁퉁 부은 손가락 때문임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초지종을 들은 영조는 효장세자에게 호통을 쳤다.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느냐?”하면서 큰소리로 나무랐다. 그러자 효장세자는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제 육신 손가락 종창의 고통보다 아바마마께서 평소 하시는 소자의 건강에 대한 걱정이 더 괴롭기 때문이었사옵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속으로 ‘너의 효심이 갸륵하구나.’라고 여겼다. 이에 다행스럽게도 왕세자를 모시던 신하들의 문책도 피할 수 있었다. 영조의 부름을 받고 도제조 민진원이 대령했다. 민진원은 의관들과 함께 경연장으로 들어왔다. 민진원은 왕세자의 손가락 상태를 의관들과 함께 살펴보고 고하기를 “송구하게도 왕세자 손가락의 종창(腫脹)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의관들의 말을 들으니 악종(惡腫)이 대단해서 의관들이 조금이라도 만져 보려고 하면 고통스러워하시면서 손도 못 대게 하신다고 합니다. 너무도 놀랍고 걱정됩니다.”라고 했다. 영조는 “그럼 어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치료방법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민진원은 “의관들과 논의를 해 보니 첫째, 침으로 곪은 부위를 찔러 농을 빼내는 것이 가장 효과가 빠르다고 합니다. 그러나 왕세자 저하의 나이가 어려서 두려움과 통증을 견디기 어려울 수 있어 적합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탕을 다려서 먹는 것입니다. 적절한 처방으로는 선방활명음(仙方活命飮)이 있다고 합니다. 선방활명음은 일체의 옹저(癰疽)와 독종(毒腫)에 효과적이며 열독(熱毒)을 푸는데 특효라고 합니다. 그러나 먹어서 치료하는 경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민진원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보다 자신있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세 번째, 바로 생민들레를 으깨서 그 즙을 먹고 찌꺼기를 손가락에 대고 싸매 주는 방법입니다. 민들레는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해서 의서에도 대지(代指)에 사용하는 처방이 나와 있으니 지금 바로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의관 김필우 또한 일전에 손가락에 상처가 있어 20여 일 동안 고통에 시달리다가 민들레를 바르니 바로 효험이 있었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영조는 “지금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인데, 생민들레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하고 의아해했다. 그러자 민진원은 “지금도 궁밖에는 가을 민들레가 지천에 깔려 있사옵니다. 가을에도 민들레는 파릇파릇하게 잎을 펼치고 노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솜 같은 씨앗뭉치를 가지고 노는 학동들을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의관들을 내보내 준비를 한다면 저녁 입진 때면 사용이 가능하겠습니다.” 영조는 “민들레가 바로 효과가 있겠는가? 탕보다 빠르겠는가?”하고 물었다. 그러나 민진원은 “왕세자의 증세가 가볍지 않으니, 우선 오늘 저녁 민들레를 붙이고 며칠 지켜본 뒤라야 효험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날 저녁 의관들은 생민들레를 짓찧어 그 즙은 마시게 하고 찌꺼기를 모아서 종창이 생긴 부위에 감싸 놓았다. 저녁 무렵 민들레를 붙이고 난 뒤에 왕세자의 손가락 종창에서는 고름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붓기도 조금씩 가라앉았으며 욱씩거리는 통증도 줄어들었다. 다음 날에는 손가락 종창의 고름이 스며 나오는 것이 확연히 줄었고 그날 밤에는 통증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민들레 처방은 이렇게 해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3일간 적용했다. 영조는 3일 후 다시 효장세자를 불렀다. “지난번 경연장에서 세자의 손가락에 난 악창(惡瘡)이 매우 심해서 처음에는 내가 차마 눈뜨고 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나아진 다음에야 비로소 보는데도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니 어찌 이와 같이 쉽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이는 바로 포공영(蒲公英)의 효과로다. 도제조와 의관들에게도 마땅히 포상을 해야겠지만, 공을 세움의 으뜸은 바로 포공영이니 마치 벼슬의 이름이로다.”라고 하면서 껄껄껄 웃었다. 효장세자는 민들레 처방으로 생인손이 깔끔하게 낫게 되었다. 지천(至賤)의 민들레가 손가락의 종창을 치료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만약 민들레가 아니었다면 병약했던 효장세자는 어떤 합병증으로 고생을 했을런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효장세자는 또다시 원인 모를 병으로 앓아누웠다. 1728년 음력 11월 16일 추운 겨울밤, 안타깝게도 병은 회복되지 않아 밤 11시경에 훙서(薨逝)하였다. 효장세자는 무엇보다 아비에게 끝까지 건강에 대한 걱정만을 끼치고 죽는 것에 대해 불효함을 안타까워했다. 아들을 잃은 영조는 “종묘사직을 장차 어찌할 것인가?”하며 탄식하고서는 한참 만에 곡(哭)을 그쳤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효장세자의 곁에는 마른 민들레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 제목의 〇〇〇은 ‘민들레’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승정원일기> 〇 英祖 1年 乙巳(1725年) 9月 27日. 鎭遠曰, 王世子手指傷處, 茫然不知矣。聞醫官之言, 則所傷大段云, 不勝驚慮, 今有向差之漸乎? 上曰, 非望向差, 恐有肆毒之慮耳. (영조 1년 을사년. 1725년 9월 27일. 민진원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손가락 상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의관의 말을 들으니 상처가 대단하다고 하니, 너무도 놀랍고 걱정됩니다.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까?”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아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독이 기승을 부릴까 우려될 뿐이다.”라고 하였다.) 〇 閔鎭遠曰, 王世子手指傷處, 極爲可慮矣. 伏聞醫官金弼佑, 曾有手指傷處, 苦痛二十餘日矣, 以蒲公英草, 塗之則卽有效云, 厥草, 覓來試用, 未知, 何如. 上曰, 依爲之。醫官曰, 厥草性味無毒, 女人乳腫, 塗之則有效矣, 可將及用於夕間入診時矣. 吳重卨曰, 手指傷處, 最近掌心, 而外邊則無毒氣, 然傍人欲見之, 則使不得接手, 今日則不然, 其小差, 可知矣, 而第以蒲公草, 塗之似宜矣. 權聖徵曰, 掌心外邊毒氣, 猶未消滅, 誠爲可憫, 而中指本節, 不無差漸, 以蒲公塗之, 則可知有效矣. 閔鎭遠曰, 其症候不輕, 姑觀數日, 然後可知差效矣. (민진원이 아뢰기를, “왕세자의 손가락 상처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삼가 듣건대 의관 김필우가 전에 손가락 상처가 있어 20여 일 동안 고통에 시달리다가 민들레를 바르니 바로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풀을 찾아서 와 써 보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리하라.”하였다. 의관이 아뢰기를, “그 풀은 성미가 독성이 없어 여인의 유종에 바르면 효과가 있습니다. 저녁 입진 때가 되면 가져다 쓸 수 있을 것입니다.”하고, 오중설이 아뢰기를, “손가락의 상처 난 데가 손바닥과 가장 가까운데 외변엔 독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옆 사람이 보려고 하면 손도 못 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상처가 조금 나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민들레를 바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하고, 권성징이 아뢰기를, “장심 외변의 독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참으로 걱정됩니다만 중지의 관절에 차도가 없지 않으니, 민들레를 바르면 효험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니, 민진원이 아뢰기를, “그 증세가 가볍지 않으니, 우선 며칠 지켜본 뒤라야 효험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〇 9月 29日. 藥房都提調閔鎭遠, 提調申思喆, 副提調柳復明啓曰, 중략. 王世子手指瘡腫, 蒲公草貼付之後, 瘡汁渗出云, 夜間卽有消減之勢, 而痛候亦已止歇乎? 臣等不勝區區憂慮, 敢來問安. 答曰, 중략. 世子手指瘡處腫汁滲出之後, 夜間更不作痛矣. (9월 29일. 약방 도제조 민진원, 제조 신사철, 부제조 유복명이 아뢰기를, “중략. 왕세자의 손가락 종기는 민들레를 붙이고 난 뒤에 고름이 스며 나오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밤사이 바로 증세가 완화되었고 통증도 그쳤습니까? 신들은 구구한 우려를 금할 수 없어 감히 와서 문안을 드립니다.”하니, 답하기를, “중략. 세자의 손가락 종기는 고름이 스며 나온 뒤로 밤사이 다시 통증이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壬戌. 夜三更一點, 王世子薨逝于昌慶宮之進修堂. 是日, 再行祈禱于宗廟社稷, 夜, 疾益㞃, 亥時薨. 上對領議政李光佐、兵曹判書趙文命等, 哭之慟曰: “將奈宗廟、社稷何?” 良久哭已. (임술년. 영조 4년 1728년 11월 16일. 밤 3경 1점에 왕세자가 창경궁의 진수당에서 훙서하였다. 이날 종묘와 사직에서 두 번째 기도를 거행하였는데, 밤에 병이 더욱 심해져 해시에 홍서하였다. 임금이 영의정 이광좌, 병조 판서 조문명 등을 대하여 슬피 곡하며 말하기를, “종묘·사직을 장차 어찌할 것인가?”하고, 한참 만에 곡을 그쳤다.) <본초강목> 蒲公英. 甘, 平, 無毒. 婦人乳癰水, 腫煮汁飮及封之, 立消. 解食毒, 散滯氣, 化熱毒, 消惡腫, 結核, 丁腫. 摻牙, 烏鬚髮, 壯筋骨. 白汁, 塗惡刺, 狐尿刺瘡, 卽愈. (포공영. 맛은 달고 성질은 평하고 독이 없다. 부인의 유종에는 물에 달여 낸 즙을 마시고 달여 낸 찌꺼기를 붙이면 즉시 사그라든다. 음식의 독을 풀어주고 막힌 기를 흩어 내며 열독을 변화시키고, 악성 종기, 멍울, 정종을 삭인다. 이를 닦거나 머리를 검게 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한다. 흰 즙은 가시가 박혔거나 호뇨자창에 바르면 즉시 낫는다.) <동의보감> 代指者, 指頭先腫, 焮熱掣痛, 然後於爪甲邊結膿潰破, 甚者, 爪甲俱脫. 代指, 亦謂之天蛇頭瘡. 治代指, 蒲公英, 與蒼耳草等分爲末, 好醋濃煎, 浸洗卽愈. 蒲公英擣細, 水和去滓服之, 滓𨠭患處, 累效. 手足觸木惡刺, 及狐尿刺腫痛, 蒲公英摘取白汁, 多塗, 立差. (대지는 손가락 끝이 먼저 붓고 화끈거리며, 당기면서 아프다가 손톱 주위가 곪았다가 터지는 것이다. 심하면 손톱이 모두 빠진다. 대지를 천사두창이라고도 한다. 대지를 치료하려면 포공영과 도꼬마리를 같은 양으로 가루내어 좋은 식초에 진하게 달이고, 여기에 담그고 씻는다. 그러면 낫는다. 포공영을 곱게 찧어 물에 타서 찌꺼기를 걸러낸 뒤 마시고, 찌꺼기는 아픈 곳에 덮는다. 자주 효과를 보았다. 손발이 나무에 닿아 생긴 악자나 호뇨자로 붓고 아플 경우 포공영을 따서 흰 즙을 내어 많이 바르면 곧 낫는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8-23 18:01:53BNK경남은행은 태풍 카눈 피해지역의 환경정비를 위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고 13일 밝혔다. 경남 창원특례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광려천 일대와 진주시 남강 일원에서 진행된 환경정비 봉사활동에는 은행 임직원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경정비 봉사에 참여한 BNK경남은행 임직원들은 집중호우로 인해 수변에 쌓인 각종 쓰레기와 나무 찌꺼기 등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어 14일에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일원에서 태풍피해 환경정비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23-08-13 18:47:37[파이낸셜뉴스] BNK경남은행은 태풍 카눈 피해지역의 환경정비를 위해 봉사활동을 실시했다고 13일 밝혔다. 경남 창원특례시 마산회원구에 위치한 광려천 일대와 진주시 남강 일원에서 진행된 환경정비 봉사활동에는 은행 임직원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경정비 봉사에 참여한 BNK경남은행 임직원들은 집중호우로 인해 수변에 쌓인 각종 쓰레기와 나무 찌꺼기 등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어 14일에는 울산광역시 태화강 일원에서 태풍피해 환경정비 봉사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사회공헌홍보부 최대식 부장은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철저히 준비한 덕분에 태풍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곳도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BNK경남은행도 지역 피해 복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BNK경남은행은 지난 9일 1000억원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을 포함한 '태풍 피해 지원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실시 중이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23-08-13 11:32:45[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옛날 한 관리가 지방시찰에 나셨다. 벌써 집을 나선지 한 달이나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길에서 희한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나이가 한 16~18세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젊은 여자가 80~90세 정도 돼 보이는 늙은 노인에게 회초리를 때리는 것이다. 관리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젊은 사람이 어쩌자고 노인에게 매질을 하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여성은 “당신은 누군데 남의 집안일에 참견을 하시는 것이요?”하고 되물었다. 관리는 “남의 집안일? 그러면 이 노인은 친할아버지라는 말인데, 그럼 더더욱 안될 일이 아닌가?”하면서 여인이 손에 들고 있는 회초리를 밀치듯이 빼앗으며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대뜸 “아니 내 증조할머니께 뭐 하는 짓이요?”하는 것이다. 관리는 노인이 젊은 여자를 보고 자신의 증조할머니라고 하니 깜짝 놀랐다. 그러자 여자는 “이 늙은 놈은 내 증손자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약을 먹어서 늙지 않고 장수를 하고 있는데, 이놈은 어려서부터 게을러서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아서 이렇게 늙은 모습이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혼을 내고 있는 중이요.”라고 했다. 그러나 관리는 “그렇다면 당신의 나이는 도대체 얼마란 말이요?”하고 묻자, “내 나이는 올해 372살이요.”라고 하는 것이다. 관리는 화들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그게 가능이나 한 말이요? 그런 약이 있단 말이요? 그 약 이름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바로 구기자요. 구기자를 사철내내 채취해 먹으면 목숨이 천지와 더불어 장수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바로 그때 길가던 어떤 남자가 관리를 톡톡쳤다. “여기서 혼자서 뭐하는 거요?” 묻는 이는 이 동네 의원이었다. 관리는 별 질문이 다 있다고 생각하면서 젊은 여성과 늙은 노인을 이 남자에게 소개를 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관리는 ‘도대체 어떤 일인가?’하고 어리둥절했다. 관리는 의원에게 방문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자 의원은 “나으리는 방금 전 신선들을 만난 것이요. 이 마을의 뒷산에는 구기자를 먹은 신선이 사는데, 간혹 이렇게 마을에 내려와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하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관리는 “그럼 구기자가 사람에게는 효능은 없다는 것이요?”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의원은 “그렇지 않지요. 나는 의원인데, 사람도 구기자를 먹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선이 될 수는 없는 노릇아니겠습니까? ”하고 웃었다. 관리는 “도대체 구기자가 어떤 약재요? 좀 알려주시오.”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의원은 관리에게 구기자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구기자는 구기자 나무의 열매를 말합니다. 의서에 보면 구기자는 성질이 차고 맛은 쓰고 달며 독이 없다고 했소이다. 내상(內傷)이나 심한 허로(虛勞)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음을 강하게 하고 오로(五勞)와 칠상(七傷)을 치료하며, 정기를 보하고 얼굴색을 희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으며,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고 장수한다고 했습니다.”라고 설명을 했다. 의원은 이어서 말하기를 “우리 마을은 원래 장수하는 마을이요. 그 이유가 바로 구기자 나무에 있지요. 마을 우물가에 구기자 나무들이 많은데, 구기자의 기운이 우물물에 스며들어 그 우물을 먹는 마을 사람들은 병이 없이 장수하는 것이요. 그 증거로 어느 우물가에 있는 구기자나무를 누군가 베어 버렸는데, 그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장수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라고 했다. 관리는 호기심에 궁금증이 많았다. “그 젊은 여자가 말하는 것을 보면 구기자를 사시 사철 채취한다고 했는데, 구기자 열매는 한 철에만 나는 것 아니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의원은 “구기자나무는 모든 부위를 모두 약으로 사용합니다. 구기자나무는 열매인 구기자를 주로 약으로 사용하지만, 나무의 껍질은 구기(枸杞)라고 하고, 그 뿌리를 지골(地骨)이라고 합니다. 모두 비슷한 효능이 있으면서도 약이 되는 것이 다릅니다.”라고 했다. 관리는 “그런데 의원님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신선에게 내 구기자 복용법을 미처 듣지 못했소.”라고 아쉬워했다. 그러자 의원은 “구기자 열매는 물에 넣고 차처럼 끓여서 먹어도 되고 가루내어 꿀로 환을 만들어 늘 복용해도 됩니다. 평소에 가루내서 죽을 쒀 먹어도 정혈(精血)을 보해 주고 신기(腎氣)를 북돋아 줍니다. 특히 금수전(金髓煎)이라는 구기자주가 있는 있는데, 붉게 익은 구기자를 2달 동안 술에 담갔다가 구기자를 걸러내어 짓찧어 베에 다시 거른 후 찌꺼기는 버리고 걸러진 즙은 앞에서 담갔던 약주와 함께 은그릇이나 돌그릇에 넣고 졸여서 만든 고약입니다. 매일 따뜻한 술에 큰 숟가락으로 2술씩, 하루에 2번 먹습니다.”라고 했다. 관리는 “효과는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이 방법으로 해서 오래 복용하면 이백일내에 신체는 광택하고 피부는 연유와 같아지며 삼백일여가 지나면 다니는 것이 말처럼 달릴 수 있고, 늙은이는 다시 젊어지며 오랫동안 복용하면 장수하여 가히 진인(眞人)이나 신선(神仙)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의서에는 여자의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가 생겼을 때 구기자 10근, 생지황 3근을 가루 내고 1방촌시(方寸匕)씩 따뜻한 술로 하루 세 번씩 오랫동안 복용하면 얼굴이 아이처럼 된다고 했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관리는 좋은 건강재료를 알게 된 것 같아 눈이 반짝거렸다. 1방촌시(方寸匕)는 약 4그램 정도의 양을 말한다. 그런데 의원은 “그런데 혹시 지금 집을 터나 출타 중이라면 구기자를 먹지 않는 것이 좋겠소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관리는 “아니 이렇게 좋은 것을 먹지 말라니요? 이 마을에 구기자나무가 많다면 구기자 또한 많을 것이 아니요?”하고 아쉬워하면 물었다. 그러나 의원은 “나으리를 보니 지금 집에서 멀리 출타 중인 것 같은데, 옛 속담에 ‘천리 먼 길로 집을 떠나거든, 구기(枸杞)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구기자가 남성의 정기를 보익하고 음도(陰道, 음경)를 강성하게 해주지만 쓸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거든 먹도록 해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다. 관리는 얼굴이 붉어지며 “내가 예전에 ‘남편이 먼길로 출타할 때 부인이 새우젓을 싸 주면 안된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구기자도 그렇구려.”라며 겸연쩍어 하면서 껄껄껄 웃었다. 관리는 이제 곧 지방시찰을 마칠 것이라고 하자 의원에게 구기자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관리가 흥분돼서 서두르는 모습을 보고서는 의원은 “구기자는 성질이 서늘한 편이니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할 수 있소이다. 특히 속이 냉한 체질은 과용하면 안 될 것이요. 체질이나 증상에 맞는 경우라도 꾸준하게 오랫동안 복용해야 효과를 볼 것이니 너무 욕심내면 안 될 것이요.”라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관리는 잘 새겨듣겠다고 하면서 구기자를 얻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관리 역시 얻어온 구기자를 꾸준히 먹었더니 더욱 건강해짐을 느꼈다. 이로써 구기자는 신선이 먹는 음식에서 건강하게 하고 장수하는 약초로 온 나라에 소문이 났다. * 제목의 〇〇〇는 구기자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神仙服枸杞法, 出淮南枕中記方. 有一人往西河爲使, 路逢一女子, 年可十五六, 打一老人, 年可八九十, 其使者深怪之, 問其女子曰, 此老人是何人, 女子曰我曾孫, 打之何怪, 此有良藥不肯服食, 致使年老不能行步, 所以決罰, 使人遂問女子今年幾許, 女曰, 年三百七十二歲, 使者又問, 藥復有幾種, 可有聞乎, 女云, 藥惟一種, 然有五名, 使者曰, 五名何也, 女子曰, 春名天精, 夏名枸杞, 秋名地骨, 冬名仙人杖, 亦名西王母杖, 以四時採服之, 令人與天地齊壽, 使者曰, 所採如何, 女子曰, 正月上寅採根, 二月上卯治服之, 三月上辰採莖, 四月上巳治服之, 五月上午採藥, 六月上未治服之, 七月上申採花, 八月上酉治服之, 九月上戊採子, 十月上亥治服之, 十一月上子採根, 十二月上丑治服之, 但依此採治服之, 二百日內, 身體光澤, 皮膚如酥, 三百日徐行及馬, 老者復少, 久服延年, 可爲眞人矣.(신선이 구기자를 복용하는 방법. 한 관리가 서하지방을 가는 도중 길가에서 나이 열대여섯 나 보이는 여자가 80~90세 됨 직한 늙은이를 때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여 그 여자에게 “이 늙은이가 누구인가?”라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이 사람은 나의 증손자요, 좋은 약이 있는데 먹지 않아 이같이 늙어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벌을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관리가 “그렇다면 그대의 나이는 얼마인가?” 하고 물으니 그 여자는 “내 나이 372살이요.”라고 하였다. 관리는 놀라며 “그 약의 종류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그 여자의 말이 “약은 단 한 가지고 이름은 다섯 가지인데 봄에는 천정, 여름에는 구기, 가을에는 지골, 겨울에는 선장 또는 왕모장입니다. 이것을 사철 채취해 먹으면 목숨이 천지와 더불어 장수합니다.”라고 하였다. 사자가 말하기를,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여자는 “정월의 첫 인일에는 뿌리를 채집하여 이월의 첫 묘일에 치복하고, 삼월의 첫 진일에 줄기를 채집해서 사월의 첫 사일에 치복하고, 오월의 첫 오이에 약을 채집하여 유월의 첫 미일에 치복하고, 칠월의 첫 신일에 꽃을 채집하여 팔월의 첫 유일에 치복하고, 구월의 첫 무이에 씨를 채집하여 시월의 첫 해일에 치복하고, 십일월의 첫 자일에 뿌리를 채집하여 십이월의 첫 축일에 치복합니다. 단지 이러한 채집과 치복에 의거하면 이백일내에 신체는 광택하고 피부는 연유와 같아지며 삼백일여가 지나면 다니는 것이 말처럼 달릴 수 있고, 늙은이는 다시 젊어지며 오랫동안 복용하면 장수하여 가히 진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식물본초> 枸杞, 諺云, “去家千里, 莫食枸杞”, 言其補益强盛, 無所爲也. 和羊肉作羹食, 和粳米煮粥食, 入葱豉五味, 補虛勞, 尤勝. 南丘多枸杞, 村人多壽, 食其水土也. 潤州大井, 有老枸杞樹, 井水益人, 名著天下. (구기자. 속담에 “천리 먼 길로 집을 떠나거든, 구기를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정기를 보익하고 음도를 강성하게 해주지만 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양고기와 함께 국을 끓여 먹거나, 갱미로 죽을 쑤어 먹는데, 파, 총시와 각종 양념을 넣으면, 허로를 보하는데 더욱 좋다. 봉래현 남구촌에 구기자나무가 많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많이들 장수를 누렸던 까닭은, 그 땅의 물과 토산물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윤주의 큰 우물곁에 오래된 구기자나무가 있었는데, 그 우물의 물이 사람에게 유익하여, 천하에 유명하였다.) <동의보감> 枸杞子. 性寒一云平, 味苦一云甘, 無毒. 補內傷大勞噓吸, 堅筋骨, 强陰, 療五勞七傷, 補益精氣, 易顔色變白, 明目安神, 令人長壽. 莖名枸杞, 根名地骨. 枸杞當用梗皮, 地骨當用根皮, 枸杞子當用其紅實, 是一物有三用. 其梗皮寒, 根皮大寒, 子微寒, 性亦三等. (성질이 차거나 평하고 맛은 쓰고 달며 독이 없다. 내상이나 심한 허로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음을 강하게 하고 오로와 칠상을 치료하며, 정기를 보하고 얼굴색을 희게 하며, 눈을 밝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장수하게 한다. 줄기를 구기라 하고 뿌리를 지골이라고 한다. 구기는 줄기 껍질을 써야 하고, 지골은 뿌리 껍질을 써야 하며, 구기자는 붉은 열매를 써야 한다. 한 식물이 3가지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枸杞. 久服, 輕身, 不老, 耐寒暑, 令人長壽. 皮及子, 作末蜜丸, 常服亦可, 酒浸服. 金髓煎, 取紅熟枸杞子, 酒浸兩月, 漉出, 硏爛, 以布濾去滓, 取汁, 幷前浸藥酒, 於銀石器內, 熬成膏. 每日溫酒下, 二大匙, 日二次. 久服可以羽化.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 않으며,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고 장수한다. 껍질과 열매는 가루내어 꿀로 환을 만들어 늘 복용해도 되고 술에 담가 먹어도 된다. 금수전은 붉게 익은 구기자를 2달 동안 술에 담갔다가 구기자를 걸러내어 짓찧어 베에 다시 거른 후 찌꺼기는 버리고 걸러진 즙은 앞에서 담갔던 약주와 함께 은그릇이나 돌그릇에 넣고 졸여서 만든 고약이다. 매일 따뜻한 술에 큰 숟가락으로 2술씩, 하루에 2번 먹는다. 오래 복용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3-07-21 22:5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