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중해를 지나는 난민 구조선에서 한 난민 여성이 아기를 출산했다. 국경없는의사회(MSF)는 해당 여성과 아이가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 레푸블리카’와 안사(ANSA)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7일(현지시간) 오전 11시 31분께 MSF가 운영하는 난민 구조선 ‘지오 바렌츠’호에서 남자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MSF는 “기쁜 일이지만 산모의 상태가 위중해 전문적인 치료가 당장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몰타와 이탈리아 정부에 그녀와 아들 4명을 위한 긴급 의무 후송을 준비해둘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여성은 아들 셋과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출발해 유럽으로 향하던 중 난민 구조선을 통해 구출됐다. 여성의 네 번째 아들이 태어나기 7시간 전이었다. 당시 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90명이 구조되면서 이 난민 구조선에는 총 255명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MSF는 트위터에 “‘지오 바렌츠’호에 탑승한 인원은 더 이상 254명이 아니라 255명”이라며 해당 여성의 출산 소식을 전했다. 이후 MSF는 재차 트윗을 올려 “해당 여성과 그녀의 네 아이들이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무사히 도착했다. 더 지연되었으면 그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것”이라며 “그들이 그곳에서 적절한 도움과 보호를 받길 원한다”고 밝혔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
2022-12-08 08:09:40[파이낸셜뉴스]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윤여정은 오늘 28일(현지시간 27일)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이 열리기 직전 진행된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이날 윤여정은 깔끔한 블랙 롱드레스에 검은 구두를 신고 레드카펫에 올랐다. 특히 왼쪽 어깨 부분에 파란색 리본을 달았는데, 리본에는 '#With Refugees'(난민과 함께)라는 문구가 담겨 눈길을 끈다. 윤여정은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처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 한국 배우 최초로 연기상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는 시상자로 참석해 2년 연속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게 됐다. 한편 윤여정은 지난 25일 공개된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프로모션을 위해 미국 현지에 체류 중이다. 또한 미국에 머물며 나영석 PD의 새 예능 '뜻밖의 여정' 촬영도 진행할 예정이다. ck7024@fnnews.com 홍창기 기자
2022-03-28 10:01:13배우 정우성이 '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19일 정우성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 난민의 날, 난민과 함께 걸어주세요"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해 7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었습니다. 1분마다 25명의 사람이 모든 것을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둔 채 전쟁과 폭력으로부터 피신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오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이는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국제연합(UN)이 2000년 유엔총회특별 결의안을 통해 지정했다. 정우성은 수년째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난민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자신이 집필한 에세이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인세의 전액을 UN난민기구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우성 #난민 #소신발언 #호소 onnews@fnnews.com 디지털편집부
2019-06-19 15:26:42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가 전개하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가 환경을 생각하고 난민의 자립을 지원하는 즐거운 축제인 ‘리믹스 파티’를 오는 7월 1일 일요일에 명동성당 지하의 1898광장에서 진행한다. 래코드의 리믹스 파티는 ‘한데 어울려 즐거움을 더하자’는 의미로 최근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기 시작한 난민 문제를 문화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갖기 위해 함께 월드뮤직을 감상할 수 있는 공연과 난민들이 낙하산 줄을 활용하여 직접 제작한 업사이클링 팔찌를 구입할 수 있도록 부스도 마련했다. 월드뮤직 공연은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 에서 활동 중인 콩고 난민으로 구성된 공연팀 ‘Strong Afrika’와 ‘DJ소울스케이프’,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출연하며, 아프리카의 음악과 그 밖에 다양한 제 3세계 음악을 선보여, 음악으로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한마당으로 구성했다. 또한 래코드의 업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해 이라크와 케냐에서 온 난민 여성이 직접 만든 팔찌를 판매하며, 모든 판매수익은 난민들의 자립 프로젝트에 사용될 예정이다. 래코드를 총괄하는 코오롱FnC의 한경애 상무는 "래코드는 단순히 패션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담은 브랜드를 지향한다"며 "환경을 생각하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번 리믹스 파티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난민들과도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2018-06-22 10:56:18▲ 난민 꼬마 조롱 만평난민 꼬마 조롱 만평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전 세계를 울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를 조롱하는 만평을 실어 비난을 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터키 일간 데일리사바 등에 따르면 샤를리 에브도는 최신호에서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어린이인 아일란 쿠르디를 다룬 만평을 게재했다. 이 만평은 모래에 얼굴을 묻고 숨져 있는 3살 꼬마의 옆에 ‘목표에 거의 다 왔는데’라는 글과 ‘하나 가격으로 두 개의 햄버거 어린이 세트’라는 맥도날드의 광고를 함께 그렸다. 마치 난민 어린이가 햄버거를 먹으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향한 게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긴 것. 또 다른 만평에서는 예수로 보이는 남성이 물 위에서 ‘기독교인은 물 위를 걷는다’라고, 옆에는 물에 거꾸로 처박힌 아이가 ‘무슬림 아이들은 가라앉는다’라고 각각 말하는 장면을 그렸다. 그동안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나체로 묘사하는 등 도발적인 만평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월에는 무함마드 만평에 분노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프랑스 파리 소재 이 회사 사무실에서 총기를 난사해 편집장 등 12명이 숨졌다. 난민 꼬마 조롱 만평 소식에 누리꾼들은 “난민 꼬마 조롱 만평, 안타깝다.” “난민 꼬마 조롱 만평, 도대체 왜 이런 만평을?” “난민 꼬마 조롱 만평. 대박이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2015-09-15 13:21:20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장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칼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델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게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녀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녀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 산맥,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 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6 16:46:08[파이낸셜뉴스] 대한적십자사가 학업·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모금 활동에 적극 나서는 등 이들의 안정적 사회 정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가족돌봄청년 지원을 위한 '2024 레드크로스 갈라'(갈라)를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개최했다. 지난 2015년 시작해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갈라는 적십자의 대표적인 연말 자선 모금행사다. 올해는 '갈라 10년, 희망의 빛으로 피어나다'를 주제로 가족돌봄청년의 꿈과 희망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이 진행됐다. 이번 갈라에는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인 배우 안재욱과 정일우, 사회협력 기관 관계자 및 적십자 고액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아너스기업 회원 등 4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아나운서 신영일의 사회로 시작된 갈라는 10년간 재난안전 취약계층, 난민, 다문화가정, 자립준비청년 등 약자를 지원하며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역대 레드크로스 갈라에 대해 소개됐다. 이후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의 환영사와 함께 적십자 개인고액기부자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법인·단체고액기부자모임인 레드크로스 아너스기업 가입식이 진행됐다. 이날 조의영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274호), 이성용 태봉광업 회장(275호) 2명이 1억원 이상을 기부(약정)해 새롭게 아너스클럽에 가입했고, 엠오티(대표 마점래), 오토트리뷴(대표 양봉수), 재단법인 일우재단도 법인 명의로 1억원을 기부(약정)해 아너스기업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이와 별도로 이날 제10회 갈라를 기념해 아너스클럽 회원에 대한 공로패 및 감사패 수여식도 열렸다. 우선, 갈라를 최초로 기획하고 추진한 공로로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1호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과 2호 김선향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사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또한, 아너스클럽 회원 중 가장 많은 금액을 기부한 김종기 회원(산청 명예회장)과 일가족 4명이 아너스클럽에 가입한 기부 명문가의 김영자 회원(승산나눔재단 이사장)과 한주식 회원(지산 회장), 아너스클럽 회원을 가장 많이 유치한 김철수 회장 등 총 4명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후 갈라 10주년을 맞아 정채영 부회장과 안재욱 홍보대사 등이 적십자 가족을 대표해 갈라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10년을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이밖에 가수 인순이는 나눔 공연으로 꿈과 희망이 필요한 가족돌봄청년에게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음악을 통해 꿈을 펼치고 싶어 하는 노비따스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4주간 KBS 관현악단 단원들에게 특별레슨을 받고 함께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그 의미를 더했다. 김철수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가족의 경제적·신체적 돌봄을 홀로 부담하고 있는 청년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위해 연대의 힘을 보여달라"며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한편, 올해 갈라 모금 목표액은 15억원으로, 모금액은 가족돌봄청년 등 위기가정 지원을 위한 인도주의 사업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11-15 10:33:58[파이낸셜뉴스]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의문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한 러시아 출신의 유명 셰프가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3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유명 셰프 알렉세이 지민(52)이 지난 12일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한 호텔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영국 런던에서 레스토랑 '지마'를 운영하는 그는 영국에 관한 새 책 '앵글로마니아'를 홍보하기 위해 베오그라드를 방문 중이었다. 지민의 구체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당국은 부검 및 독성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베오그라드 검찰은 방이 안에서 잠겨 있었고, 사망에 의심스러운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해외에서 러시아 반푸틴 인사들이 연이어 의문사 하는 있어, 지민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971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에서 여러 레스토랑을 운영한 지민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뒤 러시아를 떠나 영국에서 지내왔다.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러시아의 인기 요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한 뒤 방송에서 하차했다. 그는 2022년 5월 BBC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기부했다가, 런던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무더기 예약 취소는 물론 방화 위협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그가 운영했던 런던 레스토랑 '지마'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알렉세이는 친구이자 많은 경험을 함께 나눈 동반자였다"라며 "알렉세이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러 대륙에서 러시아인들의 '의문사'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위키피디아를 인용해 2022년부터 현재까지 사인이 풀리지 않은 채 '미스터리한 죽음'을 맞았던 러시아 사업가는 51명이나 된다고 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전 러시아군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28)가 스페인의 한 빌딩 주차장에서 최소 여섯 군데에 총을 맞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같은 달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불리던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도 의문사 했다. 러시아 당국은 나빌나의 사인이 자연사라는 입장이지만, 그의 부인은 살해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14 10:32:48[파이낸셜뉴스] 팔레스타인 구급대원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여성의 시신을 이송하던 중 그가 이송한 망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깨달은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는 바르디니는 전날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중부로 출동해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서 사망한 시신을 수습했다. 바르디니는 흰색 천에 덮인 피 묻은 시신을 구급차에 싣고, 약 2km 떨어진 순교자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병원에 도착해 의료진이 사망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흰 천을 걷어내자 그의 얼굴은 충격과 슬픔으로 가득찼다. 바르디니는 시신 곁에서 “어머니인 줄 몰랐다”며 오열했고, 어머니 시신 위로 몸을 기댄 채 감싸 안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바르디니의 어머니 사미라(61)는 지난달 30일 이스라엘군이 마가지 난민캠프 인근의 차량을 공격할 당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공격으로 3명이 숨졌고, 최소 10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사미라는 차량 근처에 서 있다가 폭발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고 이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번 공습에 대해 함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줄곧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표적으로 정밀공습을 실시해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러한 공습으로 인해 여성과 어린이가 사망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4만3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이중 절반 이상이 여성과 어린이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01 16:3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