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민주주의의 미래를 여는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가실 분은 남영역 1번 출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남영역으로 들어서는 1호선 전철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플랫폼에 내려 고개를 들면 방음벽 너머 검은색 벽돌 건물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바로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끌려와 고문당한 장소로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오는 6월 10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재탄생을 앞둔 남영동 대공분실이 아주 특별한 연극 무대로 변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소재로 2023년 초연된 연극 ‘미궁의 설계자’(연극집단 반)가 ‘관객이동형 장소특정 연극’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곳에서 상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으로 경험하는 70분간의 남영동 대공분실 추체험기 공연 시간에 맞춰 대공분실 앞 잔디마당에 모인 관객들은 삼면에서 순서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순간, 테니스 코트가 있었던 흔적이 선연히 남아있는 잔디마당에는 3개의 시간대가 뒤섞인다. 대공분실을 설계하라는 압박을 받는 건축가의 조수 양신호(1975년), 대공분실로 끌려와 고문 피해자가 되는 대학생 송경수(1986년), 그리고 지금 현재에 서서 대공분실을 바라보는 해설사 윤미숙과 다큐멘터리 작가 권나은(2025년)의 시간이다. 30여명의 관객들은 이때부터 배우들의 안내에 따라 극장의 객석이 아닌 연극 속 실제 배경인 대공분실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성인 남자 5명이 달라붙어도 안 열렸다는 육중한 철문을 실제로 보고, 어디가 정문인지 알 수 없게 하려고 데려간 좁은 뒷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른다. 그렇게 연극의 전개를 따라 조사실이 있는 5층까지 한 층 한 층 올라가면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추체험한다. 연극으로 재구성된 역사의 현장을 엿보는 심정은 생각보다 무겁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에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공간의 힘이 더해지자 좀처럼 마음을 가누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극이 진행되는 약 70여분의 시간 동안, 관객들의 표정에는 착잡함이 가득 어렸고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관객들은 설계자의 이름 없이 발주자인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이름만 새겨진 초석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미궁을 만들라고 명령한 자와 설계한 자 초석에 설계자의 이름은 없지만, 대공분실은 한국 건축계의 대부 고(故) 김수근이 설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완공된 이 건물에서 김근태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이 고문당했고,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그리고 김수근은 박종철보다 7개월 먼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극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그리스 신화 속 미노스 왕의 미궁 ‘라비린토스’에 빗대고, 그 설계자인 김수근을 크레타 왕 미노스의 명령에 따라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에 비유한다. 그리고 ‘설계자의 의도’와 ‘외부의 압박’ 가능성을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감독인 나은의 입을 빌어 제시한다. 군부독재 시대였으니 설계과정에서 압박이 있었을 수도 있고, 건축물의 용도를 몰랐을 수도 있다는 반론이다. 실제로 대공분실을 설계한 이가 김수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을 때 건축계 일각에서 주장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반론은 극 중에서 대공분실을 해설하는 윤미숙이 토해내는 반박에 금세 힘을 잃는다. “자신이 만든 칼로 사람을 찌를 걸 알았다면 팔지 말았어야 한다, 칼끝을 무디게라도 했어야 한다”고 소리친 미숙은 나은에게 묻는다. 왜 나선형 계단이 1층에서 바로 5층까지 이어지도록 되어있겠냐고. 어린 아이도 머리를 내밀 수 없을 만큼 좁고 긴 창문, 지그재그로 설계돼 문을 열어도 오직 벽만 보이는 조사실을 본 관객들은 미숙의 말에 침통하게 고개를 숙인다. 한 관객은 “건물을 굳이 이렇게까지 만들었어야 했나 싶었다”라는 힘겨운 소감 한 마디를 남겼다. 안경모 연출은 “피해와 가해, 설계와 흔적, 반성과 책임으로 과거를 현재화하고 현재를 미래의 디딤돌로 만들고자 했다”라며 “시대는 다르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 얽힌 사람들의 삶과 선택을 보면서, 예술과 폭력, 인권과 과거사에 대한 반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난 대공분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시범 운영을 거쳐 6·10 민주항쟁 38주년인 다음달 10일 정식 개관을 앞두고 있다. 당초 민주회운동기념사업회는 10일 있을 개관식 기념 공연으로 ‘미궁의 설계자’를 올리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논의 끝에 결과적으로 27일부터 6월 1일까지 6일간 총 9차례 ‘미궁의 설계자@남영동’이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진행하게 됐다. 김지은 연극집단 반 대표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업회 쪽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초연과 재연을 극장에서 올렸을 때도 (이재오) 이사장님을 비롯해 직원분들이 계속 보러 와주셨다”라며 “개관일이 결정된 뒤 제안이 왔고, 힘든 작업이지만 동시에 의미있다고 생각해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공간적인 제약으로 인해 한 회차당 관람이 가능한 최대 인원은 30명 남짓이다. 인원이 적다 보니 예매는 그야말로 ‘피켓팅’이었다. 김 대표는 “예매를 못했는데 어떻게 볼 수 없겠느냐, 자리를 구할 수 없냐는 연락이 매일 온다”라며 “더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속상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어렵게 표를 구해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 중에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상설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이 대공분실의 역사를 연극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경수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송현섭도 “울음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연기하면서도 계속 울컥울컥하더라”며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이 공간이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몰랐는데, 이 연극을 통해 전시보다 조금 더 친숙한 형식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오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전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5-05-29 01:30:56행정안전부가 오는 10일 ‘제3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을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개최한다. 올해 기념식은 ‘민주주의 100년, 그리고 1987’이란 주제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공유하고 평화추구 의지와 민주주의 발전 과제를 제시하는 축제 형식으로 진행한다. 과거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인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에서 기념식을 개최해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긴다. 작년 문재인 대통령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고 시민사회에 환원키로 발표한 바 있다. 진영 행안부 장관, 고문피해자, 민주화운동 당사자·후손, 독립유공자 후손, 6월항쟁계승사업회 등 민주화 운동단체 등 400여명이 참석한다. 주제영상 상영, 국민의례, 대통령 기념사(행정안전부 장관 대독), 국민의 소리 낭독, 기념공연과 ‘광야에서’를 함께 부르는 순서로 진행된다. 행안부는 6.10민주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경찰·소방·서울시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할 계획이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2019-06-07 21:04:56과거 인권 탄압의 상징이었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민주주의 포럼'이 열린다. 1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지선)에 따르면 '남영동 민주주의 포럼'은 세계 민주주의의 주요 흐름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월례 토론회로,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정기 개최된다. 첫 번째 포럼은 오는 21일 오후 4시 옛 남영동 대공분실(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7층에서 열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동춘 한국민주주의연구소장이 사회를 맡고, 프랑스 낭트대 이길호 박사가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에서 혁명까지’의 주제를 발표한다. 이후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지정 토론, 참여자들의 원탁 토론이 진행된다. 발표에서는 ‘노란 조끼’를 분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조명하고, ‘노란 조끼’를 둘러싼 사회과학적 논쟁을 소개한다. 또한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현안인 ‘노란 조끼’가 한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망할 예정이다. ‘노란 조끼’는 2018년 11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발표에 반대하면서 시작돼, 점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시위를 말한다. 노란 조끼는 운전자가 사고를 대비해 차량에 의무적으로 비치하는 형광 노란 조끼를 집회 참가자들이 입고 나온 것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한편 1976년 10월 건립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근무했던 곳으로, 인권 탄압의 상징적 장소다. 이 건물에서 김근태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고문받았고, 1987년 1월에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받다가 숨졌다.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다가 2018년 12월 26일 사업회로 운영권이 이관됐다. 사업회는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만드는 사업에 매진 중이다. win5858@fnnews.com 김성원 기자
2019-03-18 09:09:4526일 서울 남영동 경찰청인권보호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열린 '옛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행사'에서 참석인사들이 버튼을 누르자 현수막이 내려와 건물을 덮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박종철 열사 등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고문을 받은 곳이다. 정부는 이 자리에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사진=박범준 기자
2018-12-26 17:10:4426일 남영동 경찰청인권센터 마당에서 열린 '남영동 대공분실' 이관 행사에서 이낙연 총리와 박원순 시장, 김부겸 행안부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아픈 역사를 지닌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artpark@fnnews.com 박범준 기자
2018-12-26 14:51:31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항쟁 31주년을 맞아 남영동 옛 대공분실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6.10 항쟁 기념식에서 이런 내용의 문 대통령 기념사를 대독했다.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고문과 불법감금, 장기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폭력이 자행된 대표적인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며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조금만 소홀하면 금세 시들어버린다"며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되살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2001년 여야 합의에 의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을 제정하고 '민주화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온 것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국민과 나누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공기관, 인권단체, 고문 피해자와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민주인권기념관을 함께 만들고 키워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도울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제 민주주의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얼굴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할 때 6월 민주항쟁도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주의와 함께 우리 국민 모두의 소망이었던 한반도 평화가 다가오고 있다"며 "우리에게 평화는 민주주의와 한몸이고 민주주의의 진전은 평화의 길을 넓히고 평화의 정착은 민주주의의 토대를 더욱 굳건히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에 위치한 남영동 옛 대공분실은 과거 경찰청 산하의 대공 수사기관으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18-06-10 15:20:42경찰 지휘부가 고(故)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았던 전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고인을 추모한다.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철성 경찰청장(사진)은 박 열사 기일을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박종철 기념전시관)를 방문한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8-01-12 18:10:57영화 ‘1987’의 흥행 혹은 새 정부의 기조 탓일까. 지지부진했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시민의 인권기념관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일 사단 법인 민주열사박종철기념회는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올렸다. 서울시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는 1970~80년대 대표적인 고문 기관으로 악명을 떨치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던 건물이다. 1985년 고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이 이곳에 끌려와 전기 고문을 받았으며, 1987년에는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숨졌던 장소다. 이외에도 수많은 민주인사와 학생들 그리고 조작 간첩들이 끌려와 물·전기 고문을 당했던 경찰 고문수사의 상징적인 장소다. 2005년 들어 경찰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에게 내놓겠다'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대공분실 기능을 홍제동으로 옮겼다. 현재는 인권센터 소속 경찰이 상주하고 1층 인권센터 역사관과 4층 박종철 기념관, 5층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509호를 비롯한 옛 조사실 모습 그대를 보존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박종철기념회를 비롯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와 고문피해 유가족은 여전히 달갑지 않다. 고문 가해자였던 경찰이 인권센터라는 미명하에 ‘인권경찰로 거듭 태어난 경찰상’을 과시하는 그들만의 공간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8일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김학규 사단법인 민주열사박종철기념회 사무국장(사진)을 만나 시민이 주체가 된 옛 대공분실 인권기념관화에 대한 자세히 내막을 들어봤다. -영화 '1987'은 봤나. “두 번 봤다. 처음에는 종철이의 부검 장면을 못 봤다. 제 살이 도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두 번째는 눈을 부릅뜨고 봐야겠다 싶어 어렵게 봤다. 보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고 박종철 열사와는 어떤 관계였나. “종철이와는 같은 서울대학교 인문대 84학번 동기였다. 3학년 올라와 학생운동을 같이 하면서 친해졌다. 종철이는 재주가 많았다. 특히 타이핑을 잘 쳤는데 종철이가 타이핑팀 팀장을 맡으면서 유인물 원고를 '청타지'에 쳐서 나에게 건네면 나는 그것을 등사기로 밀어 유인물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김 사무국장이 박 열사를 마지막으로 본 건 1986년 10월이었다. 이후 김 사무국장은 수배 상태에 놓였고 1987년 1월 15일 자취방 근처에서 신문을 통해 박 열사의 죽음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기념회에서 펴낸 책 ‘그대 촛불로 살아’ 에서 생전 고 박 열사에 대해 ‘빨려 들어갈 듯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고 남기기도 했다. - 기념회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 달라는 청원을 넣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우리 사회 민주 역사에서 아주 상징적인 공간이다. 사실 여기 못지않게 남산의 안기부, 서빙고의 국군 보안사 등도 매주 중요한데 현재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유일하게 여기만 남았다. 이곳은 살려야 한다. 그런데 이곳마저 여전히 경찰의 손아귀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곳만은 시민사회가 운영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아야 한다.” -최근 대공분실에 관람객이 조금 늘긴 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옛 대공분실에서 일어난 일은 그들의 숨기고 싶은 치부다.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하지만 누구든 자신의 과오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경찰은 이곳을 옛 대공분실이 아닌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꿨고 적극적인 홍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국민들이 이곳에 많이 오는 걸 부담스러워할 정도다. 현재는 갓 임관한 신임 경찰의 견학코스로 쓰일 뿐이다.” -현재 경찰청이 관리하는 옛 대공분실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전시 배치를 살펴보면 이곳을 옛 대공분실이 아닌 경찰청 인권센터로 홍보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1층은 ‘대공분실 역사관’가 아닌 ‘인권센터 역사관’이라 되어있다. 4층도 박종철 기념관이 있지만 그 앞엔 두 배 더 큰 경찰 인권 교육전시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상은 박종철 기념관이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경찰은 자신들의 ‘인권 경찰상’을 설파하기 위해 박 열사의 죽음과 고 김근태의 전기고문, 간첩조작 역사를 아직까지 이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은 여기서 손을 떼야 한다. 시민 사회가 운영할 때 온전히 제대로 이 공간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경찰은 경찰 박물관이 따로 있다. 굳이 이 공간까지 자신들의 치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나 의구심이 든다.” -시민 사회가 운영하는 대공분실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박종철 기념전시관만 있다. 물론 상징성이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민주인사와 간첩조작 피해자들이 있는데 이분들에 대한 전시 공간을 제대로 배치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시민들이 와서 이 공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지금처럼 박 열사의 전시관만 있으면 제한된 정보만 줄 수 있다고 본다. 또 해설사와 학예사 등이 상주하면서 적극적으로 연구와 홍보에 나서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고문 치료센터도 설치되면 좋겠다.” -그렇다면 시민 사회가 대공분실을 운영한다면 그 운영주체는 누가 맡아야 하나. “일부에선 이 터 자체를 넘겨달라는 줄 안다. 이곳은 국유지다. 국가에서 이 터를 관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그 관리 주체가 경찰이 되어선 안된다. 구체적으론 국가 인권위원회나 행정자치부가 관리하면서 시민사회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리고 위탁 운영 주체는 인권 관련 시민단체가 모여서 일종의 시민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해야 한다. 어느 한 특정 단체가 독점하면 안 된다.” 한편 고 박 열사의 학교 선후배 등을 포함한 시민단체 회원은 지난 8일부터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날 시민단체는 강남구 코엑스의 한 영화관에서 발대식을 가졌으며,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청와대 국민 청원을 독려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2018-01-10 15:11:381987년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이철성 경찰청장이 과거 인권유린의 대표적 장소였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현직 경찰 총수가 6월 항쟁에 즈음해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청장은 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를 방문했다. 30년 전 6월 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유명한 경찰청 산하 대공분실이 있던 곳으로, 2006년 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이날은 30년 전 연세대에서 대정부 시위를 벌이던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날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함께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으로 작용했다.이 청장은 약 10분간 인권센터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 전시실을 둘러봤으며 박 열사 영정사진 앞에서는 국화를 헌화하고 묵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청장의 이날 방문은 최근 인권 경찰로 거듭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청장은 센터 직원들에게 인권 업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이 비공개로 조용히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왔다"며 "경찰이 과거에 대해 반성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7-06-09 17:47:411987년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아 이철성 경찰청장이 과거 인권유린의 대표적 장소였던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현직 경찰 총수가 6월 항쟁에 즈음해 이곳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청장은 9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를 방문했다. 30년 전 6월 항쟁의 기폭제로 작용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유명한 경찰청 산하 대공분실이 있던 곳으로, 2006년 인권센터로 탈바꿈했다. 이날은 30년 전 연세대에서 대정부 시위를 벌이던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날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함께 6월 항쟁의 직접적인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 청장은 약 10분간 인권센터에 있는 박종철 열사 기념 전시실을 둘러봤으며 박 열사 영정사진 앞에서는 국화를 헌화하고 묵념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 청장의 이날 방문은 최근 인권 경찰로 거듭나라는 문재인 정부의 주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청장은 센터 직원들에게 인권 업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장이 비공개로 조용히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다녀왔다”며 “경찰이 과거에 대해 반성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7-06-09 15: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