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최보윤 작가의 시집 '너무 예쁜, 개같은' 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 2022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서 시집 부문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고 30일 밝혔다.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으로 등단한 최보윤의 첫 시집 '너무 예쁜, 개같은'은 MZ세대의 재기발랄한 언어적 감수성과 처절한 진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평이다. 2006년부터 시작 된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은 매년 국내에서 발간되는 도서들을 대상으로 심의 평가를 진행하며 각 분야별 우수도서들을 선정·보급함으로써 문학 출판시장 진흥과 창작 여건 활성화를 견인하고, 국민의 문학 향유·체험 기회 확대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진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수월성’, ‘문학발전 기여도’, ‘파급효과 및 기대도’라는 세 가지 심의기준을 적용하여, 작품의 완성도와 독창성 등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도서를 우선 선정한다.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최보윤의 시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며 “흐린 눈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은 진실이고, 어쩌면 바로 그 실루엣이 우리가 지나친 사랑의 형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최보윤의 시집이 우리에게 전하는 진리”라고 언급했다. 작년 첫 시집을 출간한 최보윤 작가는 “등단 후 생각보다 빨리 첫 시집을 낼 수 있어서 놀랐다. 시인수첩 시선에서 제안을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전편이 시조로 이루어져 엄밀히 말해 시조집인 제 시집이 아르코 문학나눔 사업을 통해 대중들에게 한발짝 더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만큼, 우리 전통문학 장르인 시조에 대한 인식과 관심에 한겹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20대 때부터 연극과 시, 소설, 희곡 등 문학 분야를 아우르며 창작활동을 해 온 최보윤 작가는 작년 ‘제4회 노작홍사용단막극제’에서 대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현재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를 집필 중이다. kakim@fnnews.com 김경아 기자
2022-07-30 20:47:26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독일을 향해 가던 중 폴란드 남동부의 브로츠와프를 지나게 되었다. 예전에 한 TV 여행프로에서 이 도시에 작은 난쟁이 동상들이 있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실제로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매우 신이 났다. 브로츠와프에는 2005년 처음 등장한 약 600여 개의 작은 난쟁이 동상들이 있는데 그 중 6개는 도시외곽의 LG 공장에 있다고 한다. 까브리를 타고 2차로의 좁은 돌바닥길을 지나다가 탄이 먼저 발견을 하고 "엇! 여기! 여기!"라고 한다. 나는 "우왓, 나도 보고싶다아~!"하며 열심히 두리번거리는데 탄이 차를 세워주었다. 내리다가 또다른 동상도 발견. 뛰어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맨처음 발견한 것은 높이 약 30~40cm정도의 청동으로 만든 작은 공중전화기 모양의 조형물 안에 난쟁이 3명이 무심하게 앉아있는 동상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고 너무 귀여웠다. 다음 것도 건물벽 가까이 붙어있었는데 이번엔 헤드랜턴을 쓰고 한 손에는 곡괭이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광석을 들고 있는 광부 난쟁이였다. 난쟁이들을 찾는 전용 앱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현실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있을 만한 곳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세 번째 난쟁이들을 발견한 순간 다른 외국 관광객들도 우리와 비슷한 타이밍에 발견해 다가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도면통과 설계도를 든 건축가 난쟁이들이었다. 이번엔 아주 현대적인 건물 앞에 홀로 서있는 난쟁이를 발견했다. 이 건물에 쓰여있는 것과 같은 글자가 새겨진 캠샤프트를 안고 서있다. 너무 귀엽다. 우리는 30여분 만에 난쟁이 동상들을 몇 개 발견한 것에 매우 만족해하며 브로츠와프 관광을 마치고 계속해서 베를린으로 향했다. 점심때가 되어 주차장이 잘 되있는 KFC를 발견했다. 오래간만에 치킨을 먹을 생각에 매우 즐거웠다. 좋아하는 메뉴를 잔뜩 시켜 든든히 잘 먹었다. 2시간 정도만 더 가면 독일에 입국한다. 독일도 한때는 우리나라처럼 분단 국가였다가 통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러운 나라이다. 그 역사적 증거인 베를린의 무너진 장벽을 보러 가고 있다. 독일에 넘어온 후 베를린으로 가는 중 날이 어두워져 고속도로 옆 휴게소에서 대형 트럭들과 함께 차박을 했다. 4월 초순이지만 밤에는 영하로 기온이 떨어진다. 독일의 휴게소에는 우리나라처럼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파는 곳은 없지만 그래도 유료가 아닌 화장실이 있어 잘 사용하고 잘 쉴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이 흰 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베를린에 도착했다. 베를린의 상징 동물이 곰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오자마자 여기저기에 곰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색깔의 손을 번쩍 든 곰 동상이 매우 눈길을 끈다. 도시 이곳저곳에 곰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이 많다고 한다. 어제는 난쟁이 찾기를 했는데 오늘은 베를린에서 곰 찾기를 해야 하나.ㅎㅎ 독일의 도시는 환경 관련 규제가 심해서 친환경 인증을 받은 차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Low Emission zone(저공해지역)이 있는 경우가 많다. 여행 중 요소수 찾아넣는 부담을 덜려고 요소수가 필요 없는 2016년형 포터를 샀기 때문에 까브리는 그 지역에 들어갈 수 없어서 독일 도시를 다닐 때마다 매우 신경써야 했다. 차 유리창에 친환경 녹색 스티커가 없으면 저공해지역에서는 100유로의 벌금을 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무너진 장벽이 있다는 마우어 파크 또한 까브리로 갈 수 없는 곳이어서 그 선 밖에 차를 주차하고 20여분을 걸어가기로 했다. 베를린 거리를 탄이와 걷는 것도 천천히 이것저것을 볼 수 있어 좋았는데 그 지역이 좀 외곽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독일의 수도인데 낡고 정비되지 않은 모습들이 조금 의외였다. 헤매지 않고 마우어 파크를 잘 찾아왔는데 공원은 꽤 넓었다. 공원 한쪽에 있는 가장 장벽 같은 곳으로 다가갔는데 내 머릿속에 있던 베를린 장벽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국경 이라기엔 별로 높지도 않고 길게 이어진 벽에 빼곡히 그래피티가 빈틈없이 그려져 있어 매우 어지럽고 지저분해 보였다. 1989년 동-서 독일이 통일되며 기념물로 남은 베를린 장벽. 이곳 마우어 공원의 mauer는 독일어로 장벽을 뜻한다. 나는 장벽에 손을 대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기를,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본 탄이 "우리에게도 그 날이 오겠지요"라고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베를린을 나와 서쪽 쾰른으로 향한다.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한 독일에 아우토반을 달린다. 생각처럼 그렇게 쌩쌩 달리는 차는 많지 않다. 그리고 아우토반이라고 모든 길에서 무제한이 아니라 그 중 약 20% 정도만 무제한 속도 구간이라고 한다. 통행료를 걱정했으나 12톤 이상의 화물차에만 통행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단 아우토반의 주유소는 도시에 비해 20% 이상 비싸니 주유는 꼭 도시에서 하고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트럭들이 주로 다니는 맨 오른쪽 차로로 다녔는데 시속 80~90km 정도로 느리지않아 운전이 매우 편안하다. 쾰른이 가까워 오자 마음이 설렌다. 오늘 우리는 쾰른 인근의 놀이공원 판타지아 랜드(Phantasia land)에 가기로 했다. 나는 놀이공원을 무척 좋아하는데 외국의 놀이공원을 방문할 흔치 않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어젯밤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찾아 예약한 입장권 바코드를 입구에서 스캔하니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61유로(8만8000원). 동화 속에 들어온 듯 예쁜 건물들과 아기자기 꾸며진 길들을 따라 롤러코스터로 향했다. 첫번째로 탄 것은 RAIK.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옆으로 지나가는 롤러코스터 위의 사람들 환호성이 즐겁게 들린다. 시작하자마자 뒤로 움직이는 롤러코스터. 얼마간 뒤로 이동하더니 덜컹 하며 멈추고 바로 굉장한 속도로 앞쪽으로 출발했다. 마치 그네를 뒤로 힘껏 땡겼다가 놓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빠른 속도로 앞으로 한참 가다가 또다시 뒤로 가는 특이한 롤러코스터였다. 무난하다 생각하며 다음은 이곳의 인기 라이드인 타론(Taron)을 타러갔다. 입구에서 사람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여 별생각없이 들어와보니 인기가 많다더니 역시 안쪽 줄이 어마어마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기는 처음인 것 같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탄은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며 그 시간도 나름 즐기며 보냈다. 독특한 염색을 하거나 복장이 특이한 희안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 시스템 중 특히 좋은 것이 롤러코스터에 맨 앞자리를 앉고 싶은 사람들은 탑승 직전 따로 줄을 또 선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지만 확실하게 맨 앞자리를 탈 수 있다는 것이 어딘가. 우리는 기꺼이 기다려 맨 앞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시작과 함께 바로 뿅하고 굉장한 속도로 발사하듯 튀어나갔다. 속도와 커브가 장난이 아니다. 가다 보면 중간중간 갑자기 더 빨라지는 가속 구간도 있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며 스피드를 즐기자 어느새 코스가 끝나 있었다. 아드레날린 최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줄 서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인생 롤러코스터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라이드가 멈춘 뒤에도 한동안 물개 박수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판타지아 랜드는 각 구역을 아프리카, 라틴 등 세계 여러 문화권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는데 점심은 멕시코 분위기가 물씬 나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멕시코를 여행 할 때 많이 본 색색깔의 종이장식과 스페인어로 된 메뉴판이 반가웠다. 단지 내가 잘 못 먹는 고수가 또 많이 들어가 있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들어있지 않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잉카, 마야 문화를 테마로 한듯한 라이드가 멈춰 서있는 것을 보았다. 사실 인터넷에서 이걸 보고 판타지아랜드에 꼭 가야겠다고 했었는데 하필 오늘 점검 중이라니. 에버랜드의 더블 락스핀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행되는데 위에서는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고 아래에선 불길이 뜨겁게 올라와 굉장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라이드였다. 아쉬웠지만 어김없는 머피의 법칙을 뒤로 하고 "이것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 스스로 위로하며 다른 것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탈 것은 아프리카 분위기 블랙맘바. 25분 기다려서 탑승한 블랙맘바는 레일이 머리 위에 있고 다리가 붕 떠서 가는, 예전 에버랜드의 독수리 요새와 비슷한 방식의 놀이기구이다. 빠른 속도로 어두운 동굴도 지나고 빙글빙글 돌며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코스며 속도며 모든 것이 근사하다. 역시 독일제라 잘 만든 것 같다. 분수의 물줄기가 발밑까지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회전 그네도 탔다. 판타지아 랜드에 2층짜리 회전목마는 보자마자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살면서 본 회전목마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하지만 타기에는 좀 시시하게 느껴져서 구경만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놀이공원을 너무 좋아해서 어릴적에는 항상 공원 오픈 시간에 맞추어 뛰어들어가 하루에 열댓가지가 넘는 놀이기구를 타고는 오늘은 몇번탔는지 자랑하곤 했는데 이제 체력이 딸려 그렇게 놀 수가 없다. 이제 서너 개를 탔을 뿐인데 벌써 힘이 든다. 마지막으로 크레이지 배트 라는 라이드를 타고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VR 헤드셋을 쓰고 타는 특이한 라이드이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눈으로는 VR 영상을 보는 컨셉인데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막상 타보니 너무너무 실감나고 엄청나게 몰입되면서 완전 새로운 차원의 놀이기구를 경험했다. 나오면서 완전 감탄하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라이드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과학이 발달하고 앞으로의 문화, 여가 생활은 이렇게 될것이라고 평소에 상상했었던 바로 그대로의 놀이기구가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 쾰른의 판타지아랜드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놀이기구를 경험하고 아름답고 편한 공원속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고 롤러코스터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탄이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해주어서 더욱 좋았다. 놀이공원에서 나와서 쾰른 시내로 갔다. 한 달 전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만났던 마리아가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약속 장소가 저공해지역이어서 우리는 또 도시 외곽에 차를 주차하고 걷기엔 좀 먼 거리라서 이번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유로 현금이 없어서 요금을 어떻게 지불을 해야 할지 걱정을 했었지만 다행히 버스에 탑승하자 버스 내에 신용카드로 요금을 낼 수 있는 기기가 있어 잘 해결했다. 독일에서 무사히 대중교통을 타고 약속 시간에 잘 맞춰 마리아를 만났다. 독일에서는 꼭 학센을 먹어 보리라 별렀던 차에 마리아에게 학센 맛집을 소개받아 함께 식사를 했다. 지역 맥주도 맛있었고 고기도 푸짐하게 잘 먹었다. 식사 후 함께 라인강변을 걸으며 쾰른 대성당에 갔는데1880년 완공된 고딕양식의 어마어마한 웅장한 성당이었다. 40층 건물과 같은 높이라고 한다. 마침 석양이 성당 윗부분을 붉게 물들여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리아 덕분에 쾰른시내 구경을 잘 하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또다시 길을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kuBZHf7Uxs?si=5gt9FdA4bcVzzZXh>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1-08 13:49:07【대전=전상일 기자】 아쉬운 승부였다. 2R 마지막 18번홀에서 그림같은 이글퍼트가 꽂혔다. 22일 오후 골프존조이마루 경기장에 모든 갤러리들이 흥분했다. 이대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디펜딩챔프 홍현지(22)는 그리 쉽게 심지연(23)에게 왕좌를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홍현지가 먼저 무너졌다. 홍현지는 연장전에서 더블보기를 범하며 롯데렌탈 롯데렌터카 GTOUR WOMEN'S 챔피언십 왕관을 심지연에게 넘겨줬다. 2024시즌 3승 도전 실패였다. 하지만 경기 후 그녀는 밝게 웃으며 인터뷰실에 들어섰다. “오늘 경기 재미있었죠?”라는 농담까지 던졌다. 홀가분하다는 시선이었다. 사실 그러했다. 홍현지는 이미 압도적인 스크린 여제로 군림했다. 작년까지 7승, 올해 2승을 더해서 무려 9승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3년 연속으로 골프존이 개최한 GTOUR에서 대상-상금왕을 싹쓸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이 4연패 도전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홍현지는 올해 KLPGA 풀시드를 획득해 필드와 GTOUR 무대를 병행했다. KLPGA를 컷탈락하면 GTOUR에 참여해서 주말 경기를 하는 초강행군이었다. 올 시즌 상금랭킹이나 대상랭킹이 작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쉬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날 승부처는 2라운드 14번홀. 심지연의 홀인원이 나오면서 경기가 뒤집혔다. 홍현지는 그때를 상상하며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하지만 18번홀에서 이글이 나와서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드린 것에 만족한다”라며 웃었다. 스크린골프에서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필드에서는 2024년이 루키 시즌이다. 작년 점프투어에서 우승하고 KLPGA 시드를 받았다. 시즌 초반에는 계속 헤맸었지만, 하반기 폭발적인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난 11월 4일 S-OIL 챔피언십 2024에서는 공동 3위를 기록, 상금순위 39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홍현지는 제주시 엘리시안 제주(파72·6752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9개에 보기 1개로 8언더파를 몰아치며 필드를 점령했다. 한때는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올해 9월 대보 하우스디 오픈에서 공동 8위, 10월 상상인·한경 와우넷 오픈 2024 공동 7위를 기록하며 후반기에만 3번의 톱텐을 기록했다. 홍현지 또한 “시즌 초반에 루키라서 분위기도 모르고 환경을 전혀 몰랐다. 하지만 하반기에 작정하고 달려드니까 너무 잘풀려서 만족한다. S-Oil 당시에도 내 역량을 다 보여준 것 같아서 그 자체로도 너무 만족한다. 잠깐이라도 공동 1위까지 올라갔던 것이 기분이 좋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홍현지는 폭발적이고 예쁜 스윙을 자랑한다. 온 몸을 이용하는 빠른 배트스피드와 몸통 회전은 보는 이에게 청량감을 선사한다. 실제로 홍현지는 “항상 겨울 시즌이 되면 거리가 줄고, 봄되면 거리가 확 는다. 드라이버의 평균적인 거리가 강점"이라며 "거리에 비해서 드라이버가 정확한 편이고, 스스로 아이언이 굉장히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현지는 스크린골프에서 이름을 알려졌고, KLPGA 투어에 입성한 케이스다. 그에게 GTOUR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홍현지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준 고마운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 한해 KLPGA 풀시드를 따내고 GTOUR에서 우승을 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한해가 아닌가 싶다. 일단 KLPGA와 GTOUR에서 동시에 의미있는 성적이 나왔으니까”라고 GTOUR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홍현지는 내년시즌에는 KLPGA에 조금 더 전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혹시라도 컷탈락을 하게 되면 GTOUR에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빈도는 올해보다는 낮아질 전망이다. 홍현지는 내년 시즌 목표에 대해서 “첫 승”이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이제는 필드의 여왕으로 우뚝 서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는 “스크린골프에 대한 편견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홍택 선배처럼 KLPG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GTOUR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이면 풀시드 2년차다. 초반부터 안정적인 성적으로 안착하고 싶다.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대회를 개최한 골프존 고위 관계자는 "내년 KLPGA 풀시드를 획득한 홍현지 선수와 황연서 선수의 활약을 진심으로 응원한다"며 "GTOUR가 KLPGA 신예 선수들을 발굴하는 등용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직 필드에서는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홍현지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다. '스크린 여왕' 자리는 내려놓고 필드의 여왕을 향한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는 KLPGA 2년차 신예 홍현지의 활약에 많은 팬들이 응원과 관심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2024-12-22 23:53:49<42> 튀르키예 메르신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3주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숙소에서 나오는 날 주인집 가족들(꼬맹이 두명과 아저씨 두분)이 배웅을 나왔다. 탄이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일일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는데 2살쯤 되보이는 막내 꼬마는 수줍어하며 아빠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곳에서 머물며 가진 휴식도 좋았지만 다시 길을 떠나니 또 설레고 좋다.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리는 길, 옆에 펼쳐진 바다 구경에 눈이 맑아지는 듯 하다. "바닷물이 엄청 맑네." 흑해 남쪽 해안도로 버금가게 지중해쪽도 도로가 매우 잘 되어있어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이런것이 내 차로 여행하는 최고의 장점인것 같다. 배낭여행이나 단체여행으로는 올 수 없는 곳을 찾아다니고 발견하는 기쁨. 해안도로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말피에도 가봤지만 내 마음속 최고는 튀르키예 해안도로들이다. 아말피보다 길도 훨씬 넓어 다니기도 편하고 구비구비 돌때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대로 휙 지나가기가 아쉬워 갓길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푸른 하늘과 햇빛에 빛나는 푸른 지중해, 저멀리 섬들. 뒤돌면 언덕위의 집들과 초록빛 산의 풍경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꿈속인지 동화속인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예뻤다. 가는 길 길가에 비닐하우스도 많고 오렌지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길 옆 어떤 가게에 울트라 특대형 망에 오렌지를 가득가득 담아 매달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가격이 너무 궁금해서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깜짝 놀랄만큼 저렴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이 정도로 싸지는 않았는데 거의 1미터 크기의 망에 가득 든 오렌지가 만원도 안했다. 대지진 이재민을 돕는 교민가족을 만나다 메르신에 도착해서 우리는 한국문화원을 운영하시는 교민가족을 만나 그댁 거실 한켠에서 일주일 이상 신세를 졌다. 김 원장님은 문화원 말고도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데 최근에는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피란 온 이재민들을 돕고있다고 한다. 얼마전의 대지진으로 인해 이곳 메르신에도 곳곳에서 피란민들의 텐트를 볼 수 있었고 친척들이 있는 경우 더부살이를 하거나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마련한 공동대피소에서 지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마침 우리 까브리가 트럭이라 이재민들께 가져다줄 많은 양의 구호품들을 나르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양말, 속옷, 휴지 등 생필품들을 잔뜩 싣고 메르신 외곽에 카잔르라는 작은 마을에 많은 이재민이 지내는 공동대피소에 갔다. 카잔르에만 4000여명의 이재민이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마을회관에는 100여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칸막이도 없이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중이었다. 침구와 짐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다행히 식량수급은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하는데 생활에 꼭 필요한 의류며 생필품이 부족해 지원하러 간 것이었다. 박스를 뜯고 물품을 분배할 테이블을 설치하고 인당 최소의 제품만 나누어드릴 수 있었다. 대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나 미디어에서는 더이상 이곳의 상황을 전하지 않지만 이재민들의 삶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한다. 집을 잃은 사람들. 고향이 폐허가 되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할 것이다. 대피소에서 15살 하산이라는 소년을 만나서 지진이 났던 날, 집이 흔들리고 뭔가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리고 하늘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였다는 생생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긴박하게 가족들의 생사를 챙기며 도망나와야했고 구조를 기다리며 추위와 공포에 떨던 일들, 미쳐 빠져나오지 못해 잔해속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하루 빨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재건하고 싶다는 소년의 말이 매우 대견하게 느껴졌다. 남이 해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직접 해야한다고, 우리가 가서 다시 그곳을 일으켜 세울거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표정에서 강한 의지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지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폐허로 변한 도시들이 정상적으로 복구될 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산의 바램대로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예전의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는 남의 일, 먼 나라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분간의 지진으로 삶의 많은 것을 잃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이재민 구호외에도 김 원장님을 통해 메르신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한국어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거의 한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우리가 있던 없던 상관안하고 K팝을 틀어놓고 수준급 K팝댄스를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K팝 랜덤댄스와 K팝댄스 콘테스트(공연)에 참가한 영상이 유튜브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원장님이 자랑하셨다. 메르신 지역대표로 공연도 했다고 한다. 작은 나라인 한국의 문화파워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매우 좋아해주고 환영해주었다. 또 원장님 부부는 우리가 아직 카흐발트(튀르키예식 아침정식)를 못먹어봤다고 하니 카흐발트를 아주 제대로 하는 메르신의 멋진 식당에 데려가주셨다. 커다란 나무도마위에 빵, 계란, 토마토, 올리브, 잼 서너가지, 치즈 등이 가득 나왔다. 메네멘이라는 토마토와 각종 야채와 계란으로 만든 요리도 맛있었다. 너무 이것저것 많아서 무얼 먼저 어떻게 먹어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재료가 신선하고 다 몸에 좋을 것같은 음식들이 맛도 좋다. 두분은 한국문화원이있는 건물 1층에 한류카페를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3D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가지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제안해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셨다. 함께 자재상도 돌아다녀보고 조명도 보러 다녔다. 키르기스에서는 뭘 구하려고해도 물건이 없었는데 튀르키예는 타일이며 예쁜 자재들이 참 많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렇게 모델링도 해서 보여드리고 자재도 함께 보고나니 두분은 감이 안잡혀 몇달간 답보상태였는데 다시 진행할 의욕이 생긴다고 고마워하셨다. 우리도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사모님은 손이 매우 크셔서 함께 수산시장에 가서 우리나라 꽂게정도 크기의 블루크랩을 4상자나 사왔다. 이때가 게가 잡히는 제철이라고 한다. 집에 가지고와서 어른 5~6명이 함께 손질을 하고, 아는 사람들 다 초대해서 게 파티를 벌였다. 하루는 당일코스로 문화원 선생님들과 메르신과 멀지않은 다소로 관광을 갔다. 현지사람과 같이 다니면 길을 찾아헤메지 않아도 되고 식당과 가게등에서 무얼 사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 다소는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고향이라고 한다. 바울 뿐만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등 유명한 옛사람들의 자취가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곳이었다. 다소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클레오파트라 문. 마치 광화문의 아치형 문만 떼어다 놓은듯 벽이 하나 서있을 뿐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에 무척 특별해보였다. 선생님들과 사진을 찍고 다음은 바울의 우물이라고 전해져오는 곳을 찾았다. 아기자기 조경을 잘 꾸며놓은 작은 공원 한가운데에 몇천년은 되어보이는 우물이 있다. 공원관리인이 옛날방식의 도르레같은 것으로 물을 직접 길어주었다. 우물의 깊이는 21m라고 한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한참을 돌리니 양철 양동이 가득 맑은 물이 올라왔다. 양동이에 길은 물로 우선 손을 닦고 다시 손에 우물물을 받아 마셔보았다. 바울도 이 물맛을 봤겠지? 이렇게 오래된 우물에서 아직도 맑은 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원에서 나와서 조금 걷다보니 다니엘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나왔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희안한 광경이 나왔다. 무덤위의 모스크를 공사하던 중 지하에 로마시대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하에는 고대 유적이 복원중이고 그 위로 현대적인 건물이 서있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유리난간과 통로를 설치해서 유적의 훼손없이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놓았다. 옛날에는 지진이 나면 쓰러진 건물을 그냥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도 한개가 아닌 시대가 다른 2가지의 건축물이 모스크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이 만든 기둥없이 서있는 넓은 아치천장을 보니 고대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골목을 걷기만 해도 좋은 이국적이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다소의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탄이 역사가 느껴지는 구두방을 발견하고 넉살좋게 들어가 인사를 한다. 오랜 세월동안 구두를 만들어 오셨을것 같은 하얀머리의 장인이 기분좋게 자신이 만든 구두를 보여주신다. 친절한 장인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이 멋있었다.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쇼핑. 다소의 중심가에 있는 한 견과류상점을 찾았다. 수십종류의 터키쉬 딜라이트와 처음보는 밤을 닮은 견과들이 여러가지가 쌓여있는 모습에 우리는 꿀통에 빠진 벌처럼 떠날줄을 모르고 구경하고 물어보고 시식도 하고 완전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좋아하는 호두를 잔뜩 샀는데 한국에서는 비싼 호두를 착한 가격에 싱싱한 상태로 살 수 있어 너무너무 좋았다. 호두를 잘못사면 쩔은 맛이 나서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여기 호두는 절대 그럴일이 없다고 한다. 알도 굵고 탐스럽게 생겼다. 터키쉬 딜라이트는 보기에 너무 예쁘고 맛있게 생겼지만 얼마나 달지 무서워 살 수는 없었고 그냥 구경만 잔뜩 했다. 관광을 마치고 닭꼬치 맛집이라는 다소의 커다란 레스토랑에 갔는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몇백명도 함께 먹을 수 있을만한 넓이였다. 메뉴를 보니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있는 다양한 닭꼬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시켜주신 닭요리와 구운 고추, 싱싱한 올리브등을 정신없이 먹었다. 불맛이 가득밴 윙이며 신선한 지중해 야채들이 정말 맛있고도 건강한 먹거리였다. 탄은 다소에 들어올때부터 길가에서 파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던 빨간 음료가 있어 주문했는데 한입 마셔보더니 과일주스같이 보이는데 맛없는 야채주스라며 투덜대고는 물만 마신다. 당근을 발효시킨 음료라고한다. 이곳사람들에게는 인기있는 음료인가보다. 곳곳에서 커다란 통에 담아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 열흘간 메르신에서 선생님들과 참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날 사모님은 마치 친정엄마처럼 먹을것들을 잔뜩 싸주셨다. 순무와 오렌지, 자몽, 말린 무화과와 말린 딸기, 직접 담그신 너무너무 맛있는 귀한 김치까지 커다란 사랑을 한아름 받았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b1d_bymxX2M?si=vw9u29twTijZjhfM>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04 13:12:42<41> 튀르키예 서남부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나일항공을 타고 2시간의 짧은 비행 후 택시를 타고 곧장 사비하 귁첸공항 근처의 까브리가 서있는 곳으로 갔다. 혹시 차가 털리거나 뭐가 깨져있거나 견인되버린건 아닌지 불안해 하면서 갔는데 떠난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멀쩡히 서있는 까브리를 보자 너무너무 반가왔다. "야~ 까브리야! 잘 있었어? 아따, 오랜만에 본다." 다시 까브리에 타니 내집같이 편안하다. 원래 이집트 가기 전에는 다녀와서 튀르키예를 해안도로를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며 계속해서 여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난지 벌써 7개월. 그동안 여행의 피로가 많이 쌓인데다 이집트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피곤에 절어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곳에 좀 오래 머물며 영상작업도 하고 휴식도 취하자고 마음을 모으고 저렴하고 조용한 숙소를 찾아보았다. 번잡하고 비싼 대도시 이스탄불을 떠나 튀르키예 서남부 사클리켄트 국립공원 근처의 시골마을에 무지무지 저렴하고 조용한 숙소를 구했다. 3주에 430달러, 1박에 3만원도 안된다. 숙소까지는 750km, 차로 9시간 거리. 이동중에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설경을 만났다. 아침까지만해도 한여름 같은 뙤약볕의 카이로에 있다가 오후에는 눈 쌓인 풍경을 보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맛있는 것도 해먹고 편히 쉴 생각에 기운이 났다. 중간에 길가에서 하루 차박을 하고 다음날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빠져나와 또 산속길로 한참을 들어가서 도착한 숙소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얀 3층 건물의 1층을 통으로 쓸 수 있었다.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있고 넓은 거실에 방 세개에 화장실 두개를 우리가 몽땅 사용한다. 지은지 얼마 안된 집인듯 깨끗하고 정말 좋았다. 저렴한데다 시골에 있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한 곳은 베란다였는데 커다란 창이 유리도 없이 뻥 뚫려 있어 거기를 통해서 보면 산과 들과 나무들이 마치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조용하고 평화로와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1시간 거리에 관광도시인 페티예(Fethiye)가 있다. 장을 보러 한두번 갔다오기도 했다. 식료품 물가가 이집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생각하면 무지하게 저렴하다. 한번은 장을 보고온 것을 풀어보니 둘다 과일을 좋아해서 담다보니 과일만 7종(사과, 오렌지, 석류, 딸기, 감, 자두, 바나나)이 되었고 계란한판에 두툼한 소고기 1.5kg, 찢어먹는 치즈, 각종 채소(감자, 상추, 고추, 생강, 마늘, 버섯, 파, 양파, 당근 등), 호두 커다란 한봉투, 식빵, 음료수 세병, 마요네즈, 버터, 파스타면과 과자등 어마어마하게 사왔는데 모두 다해서 9만원이 안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다음날은 어디로 갈지, 어디서 잘지,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이 없이 3주간 우리는 그동안 먹고싶었던 꼬리곰탕, 짬뽕, 짜장면, 닭볶음탕 등등 한식을 마음껏 해먹으며 잘 쉴 수 있었다. 식료품 가격이 4분의 1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탄이 갑자기 와서 뜬금없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회사 다닐때 한번 타본 경험이 있었는데 썩 좋지 않았더래서 반반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타고싶다며 여기서 가까운 욀뤼데니즈(Oludeniz)라는 곳이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인데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안가볼 수 없지. 인터넷으로 정보를 좀 검색한 후 낙하산을 타러 갔다. 욀루데니즈는 야자수가 있는 예쁜 휴양지같은 마을이었다. 바닷가 옆에 패러글라이딩 업체들이 모여있었다. 비행 후 랜딩하는 곳이 바로 이 해변 모래사장인가보다. 잔잔한 지중해 바다가 햇빛에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여서 너무너무 아름다왔다. 꼭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더라도 예쁜 해변과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몇개의 업체를 방문해서 가격과 출발시간을 알아보았는데 우리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가격과 큰 차이가 없고 곧 타러갈 수 있는 스케줄의 업체로 정했다. 직원분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주의할 점,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곧 우리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작은 미니버스에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말고도 손님이 서너명 더 있었고 손님 한명마다 한명의 파일럿이 함께 가기 때문에 일행이 꽤 된다. 파일럿들은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버스 뒤 트렁크에 실었는데 깜짝 놀랄만큼 크기가 컸다. 2월은 비수기로 인당 100$이었는데 눈이 많이 오고 길이 얼어서 1200m까지만 올라간다고 한다. 여름 성수기 가격은 175$인데 거의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1900m에서 뛴다니 어마어마하다. 한라산이 그정도 높이일텐데 역시 튀르키예에는 훨씬 높은 산이 많구나 싶었다. 올라가는 길에 창밖으로 산아래가 보이는데 난간도 없는 비포장 도로를 올라가는 것이 아찔하다. 1200미터도 엄청 높아서 산 아래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활공장에 도착하니 뿌연 하늘밖에 안보였는데 흐린것이 아니라 산에 걸린 구름속에 있던 것이었다. 바람이 불자 구름이 눈앞에서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파일럿들이 자기 몸집보다 더 커다란 장비를 짊어지고 넓은 활공장으로 이동해서 낙하산을 펴고 준비를 한다. 흥분과 기대로 미처 탄의 상태를 못보았는데 다시보니 반쯤 실성해서 울상이다 웃다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탄이가 왜 패러글라이딩을 타자고 했는지 짐작가는 것은, 겁이 많은 본인이 타고 싶었다기보다는 스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타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사랑은 겁도 이기는구나. 해발 1200m에 펼쳐진 기가막힌 장면을 보고 벌어진 입이 닫히지를 않는 탄이의 모습이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었다. 반면에 나는 언제 패러글라이딩 타는 것에 시큰둥했나 싶게 마냥 신이나고 좋아서 너무너무 설레었다. 다이나믹한 것을 원하면 파일럿에게 말하면 된다. 나는 공중 체류시간이 줄어도 좋으니 다이나믹하게 운전해달라고 부탁했고 탄이는 제발 천천히, 평화롭게 해달라고 몇번이고 강조를 했다. 탄이가 좋아하는 주황색 낙하산을 타고 탄이가 먼저 출발한다. 파일럿이 뒤에 앉아 함께 타는 텐덤덤비행이었다. 아무리 파일럿이 함께 있다해도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줄을 잡고 뛰라고 끌어주시는 직원분의 호령소리에 머뭇거릴 새도 없이 탄이가 후딱 뛰어 날아가버렸다. 우와!~ 탄이의 용기에 박수. 다이나믹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런건지 내 차례는 맨 마지막이었다. 파일럿이 쓰라고 건네준 까만 헬멧이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 긴 셀카봉도 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촬영에 진심인듯 패러글라이딩 장비 말고도 360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등 촬영장비가 매우 잘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내 담당 파일럿이 한국말을 몇마디 하며 긴장을 풀어주신다. 여기도 한국 관광객이 무지 많이 왔었나보다. 같이 달리면서 우리를 끌어주는 직원분이 "달리기~달리기~달리기~!"하며 나에게 열심히 뛰라고 시킨다.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부웅~~ 와... 떴다! 발아래 까마득한 땅과 바다가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보기에 바빴다. 산을 지나 바다위에 떠서 보는 풍경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왔다. 까마득한 아래에 집들이 레고블럭만하게 보였고 푸르른 지중해가 햇빛을 받아 더욱 푸르게 빛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다만 내 뒤의 파일럿이 한국 손님을 많이 경험하셨는지 자꾸 "행복해? 행복해?"하고 물어봐서 오롯이 내 감동에 푹 빠지는 것을 방해받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저절로 나오는 "우와... 세상에.. 대박..."이란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넓은 바다위로 위치를 잡자 파일럿이 "이제 go?" 한다. 으아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18년 경력의 능수능란한 파일럿의 조종으로 패러글라이더는 롤러코스터 정도는 절대 비할 수 없는, 상상도 못하는 스릴을 맛보게 해주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다가 내 머리위로 바다가 펼쳐지고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 눈앞에 바다만 보이다가 뚝 떨어졌다 상승하고,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너무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간에 파일럿이 나에게 조종줄을 맡겨 스스로 왼쪽, 오른쪽으로 돌게하도록 해주었는데 내가 움직이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참 다이나믹한 스릴을 경험하고나니 지상이 가까와져 있었다. 손톱만하게 보이던 집들이 점점 커지고 우리는 바다 바로 앞 해변에 안전히 착륙했다. 땅에 발이 닿고나서도 흥분과 감격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함께해준 파일럿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탄이는 원하는대로 고요하고 잔잔한 비행을 했다고 한다. 하늘 위에서 푸른 지중해와 예쁜 튀르키예의 산과 들을 마음껏 보는 것이 너무 좋았고 겁이 많은 편임에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큰 움직임이 없던 탄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15분정도나 늦게 착륙했다. 탄이 내려온 것을 보고 달려가 맞이했다. 탄이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좋았어?" "대박~ 미쳤어." "100점 만점에 몇점?" "아유.. 천점!!!"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평생 한번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하늘 위에서 지구를 감상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싶다. 새처럼 나는 꿈을 실현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평생 잊지못할 최고의 추억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시에 간 김에 돼지고기를 파는 곳을 찾아갔는데 삼겹살 비슷한 것을 살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돼지고기 먹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비쌌지만 살 수 있어 다행이라며 숙소에 와서 쌈채소와 함께 맛있게 구워먹었다. 그렇게 마냥 편하고 여유롭게 보내던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핸드폰과 메일등에 온통 난리가 났다. 알고보니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나서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지인과 구독자분들의 확인 연락들이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있던 곳은 안탈리아 근처의 서쪽으로, 대지진이 발생한 시리아 국경근처 동부 가지안테프 지역과는 매우 떨어져 있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만 쿨쿨 잘 자고 일어났던 것이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는 우리가 있는 지역이 아닌 것이 너무너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지진이 쓸고 간 후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다음 목적지가 그곳에서 3시간 거리인 메르신이어서 그곳에서 만날 예정인 분들이 걱정되었다. 혹시나 하며 연락해보니 다행히 그쪽도 큰 피해는 없으시다고 한다. 잘 먹고 쉬고나서 집을 렌트한 기간이 끝나고 메르신을 향해서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7MZZbNOR_dg?si=1N8llVOuOP0l6vS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28 19:23:33<32>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이집트 카이로 가기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실 이스탄불에서 만나기로 한 분과 키르기스스탄 때처럼 얼마간 머물며 도울 일이 있으면 함께 할 생각으로 왔었는데 이분도 준비가 안돼있으셨고 우리도 적절하지 않다 싶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날 밤 우리는 어차피 계획이 바뀌었으니 튀르키예를 더 돌기 전에 여기서 이집트를 바로 가면 어떨까하는 의논을 했다. 이집트는 무척 더운 나라라 겨울에 가는 것이 좋은데 1월인 지금이 적기였고 더 서쪽으로 가다가는 괜히 비행기값만 올라갈 것 같았다. 나는 대학생때 이집트에 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하고 인상깊어 탄과 꼭 같이 가고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정해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했지만 이집트와 모로코는 꼭 가자고 했었다. 까브리를 타고 이집트에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찾아봐도 이집트를 육로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혹 갈 수 있더라도 입국시 외국인이 차를 가져가면 7000만원 상당의 까르네(무관세 통행증)를 보증금으로 맡겨야한다는 소리에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일단 결정이 나자 우리는 바로 비행기와 렌트카를 예약했다. 비행기시간은 3일뒤. 출발하는 사비아 괵첸 공항에 가까운 곳으로 숙소도 예약했다. 갑자기 결정한 이집트 방문! 이스탄불에서 사비하 괵첸공항까지는 한시간도 안걸린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이 있지만 사비하 공항은 김포공항같은 느낌이다. 같은 국제공항이지만 규모가 좀 작다. 우리는 출발일까지 이틀간 머물 숙소가 있는 마을로 갔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아 동네를 돌다가 시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경갔다.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을 수북히 진열해 파는 곳에서 50TL(3300원)어치 딸기를 달라고 했더니 큰 종이봉투에 가득히 담아주신다. 딸기가 크기도 크고 아주 실해보인다. 내친김에 오렌지도 도전해보자. 똑같이 50TL를 내밀고 오렌지를 가리키자 자몽만한 오렌지를 11개나 담아주셨다. "와..미쳤다." 둘이 감격을 하며 과일봉투를 받아들었다. 약간 번화한 식당가에서 일식집을 발견하고 신나서 라멘을 먹었다. 큰 도시라 서울과 다르지 않다 일본 라멘도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숙소에 가보니 이번 예약한 곳은 주인과 거실공간을 함께 쓰는 형태였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가 있다. 돈을 조금 낸 카우치서핑이라 생각하니 나름 괜찮았다. 주인인 청년도 좋은 사람이어서 웰컴 드링크로 차를 주고 거실에 있는 호두며 음식들을 편하게 먹으라고 했다. 우리도 우리가 사온 오렌지를 드셔도 된다고 인심을 썼다. 그곳에서 머물며 이집트 여행준비를 했다. 가져갈 짐을 잘 싸고 두고갈 짐들을 정리하고 까브리는 숙소 근처의 놀이터옆에 세워두었는데 거기에는 다른 캠핑카도 주차되어 있어서 안전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스탄불과 많이 떨어져있지도 않았는데 복잡하지 않고 한가롭고 여유있는 동네여서 괜찮겠지 싶었다. 출발일이 되었다. 숙소로 택시를 불러 짐을 싣고 5km 떨어진 사비하 괵첸공항으로 간다. 이렇게 또 갑자기 이집트에 가게 되다니 셀렘 반 걱정 반이다. 급하게 예약한 비행기며 렌트카가 제대로 예약되있을지 이집트여행 루트는 어떻게 할지 머리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거의 30년만에 이집트에 다시 갈 수 있다니 너무 흥분되고 그립고 좋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이름도 예쁜 나일에어. 이집트 항공기이다. 티켓팅도 무난히, 보딩도 크게 헤메지 않고 잘 찾아 탈 수 있었다. 피라미드 쪽으로 선회한 비행기.. 기장님의 센스? 공항사람들도 모두 친절하다. 내 여권을 보고는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도 해주었다. 저가항공이라 기내잡지나 좌석스크린 같은건 없다. 비닐가죽이 분명한 좌석에 앉았다. 창너머로 비행기들과 공항의 풍경에 새삼 이집트로의 여행이 실감난다. 머리가 닿는 곳에 부직포가 붙어있었는데 예쁜 이집트 문양이 새겨져있어서 내릴때 기념으로 챙겼다. 사비하에서 카이로까지는 4시에 출발하고 5시 10분쯤 닿는데 시간으로는 2시간 걸린다. 시차가 있어서 그렇다. 저가항공임에도 정시에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코로나 이후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나는 창밖 아래에 하얀 구름들이 융단처럼 깔려있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볼때마다 어릴적 읽은 무민의 동화에서 이상한 모자에 들어갔다 나온 달걀껍질 생각이 난다. 어? 두시간짜리 비행인데 기내식이 나온다. 쥬스나 한잔 주면 다행이지 싶었는데 종이박스에 빵, 쥬스, 스낵, 밥과 치킨 또는 밥과 소고기 등이 들어있다. 심지어 맛도 있어서 냠냠 잘 먹고 한참을 가다가 바다를 건너 이집트쪽으로 넘어왔다. 반가운 이집트 땅을 내려다보던 중 '아니 저 멀리 보이는건 피라미드 아닌가!' 지는 해에 뚜렷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세개의 피라미드를 발견한 나는 흥분해서 탄을 불렀다. "저기 피라미드! 피라미드!" 탄이 "어디?"하고 보고 같이 탄성을 짓는다. 그대 비행기가 피라미드쪽으로 선회를 했다. 탄이 "와 기장님이 우리 보라고 일부러 이렇게 해주는 것 같아"라고 했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하늘 위에서 피라미드를 보다니 너무 신기하고 멋있고 좋았다. "나일의 물을 마신자 다시 나일로 돌아오리라" 하늘위에서 보는 나일강도 너무 아련하고 반갑고 좋았다. 약 30여년전 이집트 여행을 할때 "나일의 물을 마신자 다시 나일로 돌아오리라"라는 말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일의 물을 마시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옆에있던 사람들이 강물이 더럽다며 마시지말라고 말려서 차마 마시지는 못하고 그래도 손으로 떠서 입술을 댔던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나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음이 뭉클하고 너무 좋았다. 햇빛이 아주 예쁠때 카이로에 도착해서 하늘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갑작스럽게 결정해서 3일만에 오게되었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오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행기가 이집트 땅에 닿는 순간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났다. 나에게 이집트는 아주 어릴때부터 깊은 관심과 사랑이 가는 그런 나라였다. 현재 이집트보다는 고대 이집트의 찬란했던 문화와 유적에 매료되어 오랜시간 그에 대한 서적을 모으고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아왔다. 30여년 전에는 룩소르까지만 가보았는데 이번에는 남쪽 끝 아부심벨까지 꼭 가보리라 생각하고 있다. 활주로에 선 비행기에서 이동계단을 통해 내리니 우리를 이집트로 데려다준 고마운 비행기를 통으로 볼 수 있었다. 이집트 비자에 대해 잘못알고 있었다. 한국인은 여기서도 비자가 필요 없겠지 했었는데 입국하려고 하니 날짜별로 비자를 사야했다. 가장 짧은 것이 14일간 인당 25달러, 한달은 더 비싸고 그런 식이다. 사실 20일정도 있을 생각도 있었는데 비자를 구입하며 14일로 일정이 정해져버렸다. 비자 스티커를 여권에 붙이고 출국심사를 받고 나오니 우리 짐이 먼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보다폰 유심도 1만3000원 정도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남은 것은 렌터카 수령하기. 공항을 아무리 둘러봐도 "Rent"같은 단어가 안보인다. 밖으로 나오니 택시를 타라며 호객꾼들이 파리떼처럼 달려들 뿐 역시 렌터카 사무소나 관련된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난감했지만 마침 다행히 유심을 샀기에 예약한 렌터카 회사로 전화를 해보니 터미널 3으로 오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터미널 1이었다. 카이로 공항도 인천처럼 터미널이 여러개 있나보다. 사실 우리가 택시호객꾼들이 타라고 할때 렌터카를 물어봤는데 택시를 타면 데려다준다고 하길래 무시했는데 무료 셔틀버스가 있었다. 전화하고 알아보지 않았으면 까딱 속아 택시비를 낼 뻔했다. 셔틀버스는 또 어디서 타는건가 산넘어 산이네 하고 있는데 알아보고 온 탄이 "바로 저기야"라고 한다. 눈앞에 정류장이 떡하니 있었다. 안내표지판도, 데스크같은 것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정보가 제대로 된 것이 없어 공항에서 2시간 넘게 헤매고 겨우 셔틀버스를 탔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수령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발생하기 마련인 것 같다. 터미널 3에 도착. 오히려 이곳이 더 큰 공항같다. 금색의 고대 이집트 여인 동상이 맞아준다. 안으로 들어가서 드디어 반가운 렌터카부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직원과 함께 주차장으로 가서 받은 차는 은색의 승용차였다. 차를 좋아하는 탄이 모르는 브랜드라고 한다. 까브리를 보다가 보니 많이 작고 날렵해보였다. 차키를 받기전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반납시 문제가 되지 않도록 흠집난 곳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놓았다. 세차는 깨끗하게 잘 되있는데 흠집이 여기저기 많이 나있다. 탄이는 신경을 덜써도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한다. 휴 드디어 렌터카에 짐과 몸을 실으니 그제야 좀 안도가 되었다. 오후 5시에 랜딩해서 2시간반만이다. 오늘 우리가 묵을 곳은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70km떨어진 마흐멧이라는 친구 집이다. 우리가 지난 3일간 여행준비를 하며 함께 알아본 것은 이집트의 카우치서퍼들이었다. 조지아에서 만났던 압둘은 아쉽게도 현재 이집트에 없어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싶어 여행계획을 카이로, 룩소르 등등의 카우치 홈피에 올렸더니 몇몇 친구들에게 답이 왔다. 친구들이 있으면 여행이 더욱 의미가 커진다. 참 감사하고 더 기대가 되었다. 마흐멧의 집으로 네비를 찍고 가는데 중간에 톨게이트가 몇번 나왔다. 렌터카에 온 신경을 쓰느라 공항에서 환전하는 것을 깜빡해서 무척 난감했는데 번역기를 이용해 사정을 이야기하니 웃으면서 그냥 가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정말 그냥 가도 되나 하며 얼떨떨한 상태로 지나왔다. 밤길에 초행인데 도로 상태가 매우 좋지 않고 도로에 사람, 오토바이, 툭툭이 버스들이 뒤엉켜 운전이 쉽지 않다. 네비도 이상한 곳으로 안내했다가 나오기도 하는 등 헤메게 되었으며 친구의 동네에 들어서자 사실 잘못온게 아닌가 싶었다. 동네가 으스스하고 사람들이 당장이라도 우리차를 막고 세워 끌어내고 무슨 짓을 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바짝 긴장을 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겨우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는데 2시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0teRbNNoVw?si=cdQ9G4ysUzoZ7ZuQ>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26 16:18:0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투미에서 편히 쉬고 난 어느날 드디어 튀르키예로 출발한다. 바투미에서 국경까지는 단 30분밖에 안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않아 줄지어 서있는 대형트럭들을 보니 벌써 국경이구나 실감이 난다. 처음 이런 광경을 봤을 때는 저 많은 트럭들 뒤에 서야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이젠 당연하다는 듯 트럭들을 피해 앞으로 쭉 나가서 소형차들의 뒤에 선다. 화물을 실은 대형트럭들은 다른 절차를 밟아야하는지 항상 따로 줄을 지어있었다. 조지아 출국심사대에서 우리 서류를 유심히 보던 사무관이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별문제 없을거라 마음놓고 있었던 우리는 당황해서 보니 자동차등록증에 알파벳이 하나 틀린 것이 있던 것이었다. 출국후 반년 가까이 돼서야 겨우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게되다니 좀 황당스러웠다. 하지만 올바르게 표기된 다른 서류를 찾아 보여주며 우리나라 관공서의 실수라고 이야기하자 다행히도 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큰 문제없이 통과해 다행이었다. 튀르키예 입국때는 최소 3개월짜리 자동차 보험이 의무라고 해서 162달러를 주고 가입했다. 까브리는 큰 차라서 이 가격이고 작은 승용차는 조금 저렴한 것 같았다. 또한 미리 준비하면 좀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은 튀르키예에 무비자로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보험료도 냈으니 3개월 꽉차게 잘 놀다 가야겠다. 튀르키예 세번째 방문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색다르네" 나는 95년도에 처음 튀르키예에 여행을 왔었다. 그리고 2014년에 탄이랑 9일간 패키지여행을 했고 이번이 세번째이다. 비행기로만 왔던 튀르키예에 까브리를 끌고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완전 다르다. 길가에 빨간바탕에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를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형제의 나라여서 그런지, 몇번 왔던 곳이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바투미에서 2시간 거리의 흑해 연안의 소도시 리제(Rize)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심카드 구입과 점심해결을 하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길가에 흑해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을 파는 가판대가 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풍경이 반갑고 풍요로워 보인다. 통신사 사무실인 듯한 Turkcell이란 곳에 들어가 심카드를 파냐고 물어보니 없다는 것 같다. 직원은 친절하게 시내 중심으로 가면 살 수 있다고 안내해주어서 그곳을 나와서 중심쪽으로 걸어갔다. 걷다가 너무 맛있어 보이는 피자 비슷한 빵을 파는 식당이 보여 일단 점심부터 먹자 하고 들어갔다. 식당밖에 음식 사진이 너무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진이 있는 메뉴판도 있어서 무사히 주문을 하고 났는데 탄의 시선을 끄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이것은 뭔가요?", "수틀라치(Sutlac)입니다." 디저트라고 한다. 탄이는 그것도 추가로 시켰다. 이곳은 아랍식 피자인 피데를 파는 곳이었는데 음식사진을 보고 주문할 때 한개에 3000원정도 해서 한손에 잡을 정도의 작은 크기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큰, 미디엄피자만한 사이즈였다. 하나 가지고 둘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화덕에서 막 구워나와 정말 맛있었다. 아랍식 피자 '피데'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당황했다 디저트로 수틀라치를 먹어보았는데 쌀을 우유에 말아 끓인 것 같았는데 달달하니 좋았다. 계산하며 탄이 "레..젯"하고 헤메니까 주인아저씨가 "레젯트르!"라고 알려주며 웃으신다. '맛있다' 라는 튀르키예어이다. 반이상 남아서 포장해서 또 한끼를 먹었는데 1만3000원가량 냈다. 한번만 가기 아까운 식당이다. 우리동네에 있었으면 단골이 되었을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 식사 잘하고 조금 걸어서 중심가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여기에는 심카드가 있겠지. 헛 몰 입구에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스벅이다. 스벅팬은 아니라 그냥 지나갔지만 아는 곳이 보이니 반가웠다. 익숙한 문명사회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커피값은 한국의 반값 정도였다. 안에 들어와보니 서울에서 보던 대형몰과 다름없는 정말 크고 현대적인 몰이다. 아는 브랜드도 꽤 있다. 내부가 무척 넓어서 심카드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말이 안통해서 손짓발짓하다 1층에 있다는 듯한 대답을 들었다. 영어를 못하시는것 같아 그냥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내려가려는데 코리아냐고 물어보아서 맞다고 "네 코리아!" 그러자 튀르키예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들은 한국말에 너무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는 "I love Korea"라고 하며 스마트폰에 한국 아이돌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잘 모르는 한국 아이돌의 팬이 튀르키예의 이 작은 도시에 있다. 정말 한류가 대단하다 싶었다. 기분 좋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1층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유심파는 곳을 찾았다. 인터넷에서는 1만원 정도로 유심을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5만원이 넘는 돈을 이야기한다. 두세군데 물어보았지만 비슷한 가격이어서 일단 구입을 미뤘다. 혹시 외국인이라 비싸게 부르는게 아닐까 싶어 현지 사는 분께 물어보고 저렴히 구입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리어카 같은데에 견과류를 파는 분이 갑자기 붙잡고 호두와 말린 블루베리를 주신다. 사실 며칠 전부터 호두가 먹고싶다고 탄에게 말했었는데 이게 웬떡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튀르키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장사하는 자세가 지금까지 지나온 나라들과 차원이 다르다. 감사히 받아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호두와 똑같이 고소하다. 사드리고 싶었지만 카드밖에 현금이 없어 아쉽게 발을 돌렸다. 리제는 금간 앞유리때문에 트라브존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며칠이고 머무르고 싶은 정말 편안하고 예쁜 곳이었다. 사람들도 좋고 동네 느낌도 좋은 곳. 계속해서 오른쪽에 흑해를 끼고 서쪽으로 트라브존으로 간다.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모습은 여러나라에서 봤지만 튀르키예 과일 노점상의 진열솜씨는 남다르다. 사고싶게 예쁘게 진열해놓고 조명까지 설치해서 눈길을 확 끄는 등 상술이 매우 발달한 것 같다.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유리창은 끄떡 없을거야" 석양이 질 무렵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리제보다 큰 도시라 그런지 주차할 곳 찾기도 만만찮고 복잡하고 빡빡한 느낌이 든다. 번화가를 지나 차량정비소가 모여있는 동네에 왔다. 유리를 갈아끼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정비사인 듯한 분이 갑자기 작은 칼같은 도구로 거침없이 까브리 앞유리의 금간 끝을 둥글게 팠다. 깜짝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끄떡없을거야"라며 호언장담한다. 유리교체에 시간도 돈도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게다가 돈도 한푼 안받고 그냥 가라고 한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완전 럭키비키였다. 트라브존은 너무 복잡한 도시라서 해는 졌지만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서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기로 했다. 도시밖에서 한적하게 차박할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다가 주유소를 보고 주유를 했는데 서비스로 유리를 세제까지 묻혀 정성스레 닦아주신다. 촬영하는 것을 보더니 엄지척까지 하며 웃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튀르키예에 온지 하루만에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좋은 일들이 많아 너무 좋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주유 후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다가 해변공원의 주차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밤 우리는 앞으로의 경로에 대한 진지한 회의를 했다. 원래 계획은 트라브존에서 남쪽 메르신으로 갔다가 지중해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 유럽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탄이 해안드라이브를 하려면 반시계방향이 좋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면 이스탄불을 두번 들르게 되는데... 뭔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여행에서 효율이 뭐가 중요한가. 회사를 떠난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나는 생산성-스피드-효율성에 사로잡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더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쪽으로 경로를 바꾸기로 하였다. 좋은 판단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흑해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갈 수 있었다. 동틀녘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서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새벽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해서 차박을 할때면 항상 일찍 일어나 출발한다. 오른편에 펼쳐진 핑크빛 하늘과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다. 흑해의 풍경에 감탄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판단이 좋았음을 확인했다. 구글지도를 보니 이 해안도로는 계속해서 바다 바로옆으로 이어져있었다. 앞으로 며칠 간의 드라이브가 너무도 기대되었다. 이만한 드라이브 코스는 다시 만나기 힘들거라고 탄이 장담한다.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크고 넓은 고속도로도 있었지만 우리는 최대한 바다 가까이에 난 도로로 흑해를 최대한 즐기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바닷가 드라이브를 하다보니 한국의 7번국도가 생각이 났다. 몇년 전 부산에서 양양으로 7번국도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긴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드라이브가 너무너무 멋있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마음껏 이 장소와 시간을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6DSUJPeo8?si=xDH3y9YJ6tL_gZjn>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19 11:08:39[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 <29>] 조지아 '바투미'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트빌리시에서 여러나라 친구들과 함께 맞은 새해 이벤트는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역시 우리는 큰도시와 안 친하다. 흑해 연안의 소도시 바투미에 가서 넉넉히 머무르며 쉬고 밀린 영상작업도 하기로 하고 트빌리시를 떠난다. 트빌리시에서 바투미까지는 자동차로 6시간 거리이다. 아침일찍 출발했는데 다행히 휴일이어서인지 교통체증없이 빠져나왔다. 도로상태도 좋고 날씨도 좋다. 지금껏 다녔던 스탄국가와 뭔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다. 길가에 멋진 휴게소와 주유소도 보이고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긴 시간을 이동하던 중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10년전 아메리카 장기여행을 할때말야 캐나다, 미국같이 잘사는 나라에서 멕시코-과테말라 등 점점 못사는 나라로 이동했었잖아. 그때는 사회 인프라며 치안 등이 점점 안좋은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가난한 나라에서 점점 잘사는 나라로 이동 중이라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물가가 점점 비싸지는 것이 힘드네. 디젤가격, 식비, 숙박비가 점점 더 들고 어려워지니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 그러자 탄이 이야기했다. "맞아, 그래서 긍정의 힘이 중요한 것 같아. 힘들고 어려운 것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모든 일에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 어떤 일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고 감사할 것에 생각을 집중하면 즐길 수 있는 여행이 될거야." 참으로 그랬다. 길옆에 지나가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중앙아시아의 황량함에 익숙해있다가 물도 많고 푸르른 들판을 보니 마냥 좋았다. 사방을 둘러보다보면 산이 보이는 것도 너무 반가왔다. 한참을 달려와서 드디어 바투미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다, 흑해다.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카스피해를 만나고 이제 흑해에 왔다. 바투미는 조지아 최대의 항구도시라더니 과연 커다란 컨테이너선들과 대형 크레인이 많아 무척 활기차 보였다. 이곳은 유럽풍의 예쁜 건물들과 현대적인 고층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며 있었다. 머리위로 케이블카도 다닌다. 잘 정돈된 깨끗한 거리와 가로수가 야자수인 이국적인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Orbi city라는 거대한 3개 동의 빌딩이었다. 현지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개인들이 사서 공유숙소로 대여를 해주는 분위기였다. 프론트에서 키를 받으려는데 집주인과 소통이 잘 안되었는지 문제가 있어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한시간반을 기다려 겨우 카드키를 받을 수 있었다. 한쪽은 바다가, 다른 쪽은 바투미 시내가 보이는 베란다가 있는 원룸이었는데 간단한 주방도 있고 둘이 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하루 18달러로 가격이 매우 좋아서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된다. 이곳에서 예약한 것보다 열흘정도 더 머물기로 결정하고 집주인에게 연장요청을 했다. 오랜만에 집같은 곳에 머물게 되어 너무 좋았다. 저녁때 베란다에 나와 바다를 보면 석양이 아름답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는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나와 3분만 걸어가면 바닷가이다. 흑해의 모래사장은 곱고 보드라운 까만 모래와 동글동글 귀여운 자갈로 이루어져있다. 여행지에서 돌이나 모래를 가져오는 것이 금지된 경우가 많아서 참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자갈이 너무나 희고 동그란 찹쌀떡같이 예쁘게 보여서 참지 못하고 결국 대여섯개나 줍고 말았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고 바닷가를 떠날때 모두 놓아두었다. 그래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으니 됐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서 걸어다니기에 참 좋았다. 바투미에서 머무는 동안 탄의 생일이 되었다. 아침에 생일기념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으로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스팸과 계란후라이까지 그럴듯한 한상차림으로 잘 먹고 어떤 선물을 원하냐고 탄에게 물어보니 즐겨입던 옷에 구멍이 났다며 보여주는데 깜짝 놀랄만큼 커다란 구멍들이 양쪽 겨드랑이에 난리도 아니다. 탄이 그동안 이런 옷을 입고 다녔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시내에 바투미 몰이라는 곳에 가서 탄의 옷을 골라주었다. 가로줄무늬가 있는 긴팔 니트였는데 탄이 입어보고는 매우 좋아한다. 점심에는 탄의 생일을 기념으로 맥도날드 매장에 갔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신기한 건물이다. 키오스크에서 영어로 주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지아 글자는 예쁘긴 하나 절대 읽을 수가 없다. 2층의 야외 좌석에서 식사를 했는데 우리가 본 중 시설이 가장 멋진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케찹은 안주지만 자리로 서빙을 해준다. 이럴줄 알고 가방에 쭉 가지고 다녔던 케찹을 꺼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버거킹과 KFC 케찹이다. 역시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어디서건 맛있었다. 촛불도 케잌도 없지만 조촐한 우리끼리의 생일파티를 했다. 맥도날드에서 꺼낸 한국발 '버거킹, KFC케챱'...케챱을 돈주고 사먹는건 사치다! 이슬람 국가를 벗어났으니 이제 돼지고기를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마트에서 계란과 고기와 과일등을 잔뜩 사와서 하루는 돼지고기를 구워 고추와 마늘과 함께 상추쌈을 먹고, 또 하루는 스파게티면으로 자장면을 해먹고 냉동 오징어 등 해물도 사서 짬뽕도 해먹었다. 하루는 탄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된 프랑스의 Yon이라는 친구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에 가보자고 한다. 그 친구도 장기여행 중인데 얼마전 바투미에서 6개월간 살았다고 한다.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다니 기대가 된다. 길가에 위치한 'Leuville' 라는 레스토랑은 인도 한쪽을 막고 야외좌석을 만들어놨는데 여기는 이런 것도 가능한가 싶었다. 들어가는 문이 희안한 방식으로 열린다. 힌지가 가운데 있어 문을 90도 돌리면 양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도 힙한 분위기가 멋스러웠고 주문은 스마트폰을 통해 하는 방식이라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잘 했다.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하차푸리, 그리고 새우튀김 샐러드 등을 먹었는데 간도 잘 맞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며칠 후 1월 14일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서 심상치않은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점점 커져서 대체 뭔가 싶어 베란다로 나가보니 바투미 시내쪽에서 폭죽이 엄청나게 터지고 있었다. 조지아는 정교회의 율리우스력 새해를 축하하는 풍습이 있어 우리의 신-구정처럼 새해를 두번 축하한다고 들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보다. 휘파람소리등 환호성같은 소리도 계속해서 들리고 온 도시에서 쉴새없이 폭죽이 난리였다. 이미 1월 1일에 트빌리시에서 엄청난 새해축하 이벤트를 경험한 우리는 이번에는 숙소 베란다에서 맥주 한캔을 마시며 불꽃놀이가 정신없이 계속되는 야경을 편안하게 감상했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조지아가 새해를 맞기 가장 멋진 나라라며 이런 불꽃놀이를 2번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 것이 생각났다. 트빌리시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가 머물고있는 Orbi city는 가격과 시설 위치 등 다 좋은데 하나 아쉬운 것은 까브리 주차할 곳이 마땅치않아 한참 떨어진 길가에 세워두어야 했다. 짐을 가지러 가거나 할 때면 꽤 먼 거리를 왕복해야했다. 캥핑카의 앞유리 금이 어느새 20cm 정도로 길어졌다 여러날을 숙소에만 있다가 까브리에 가보니 앞유리의 금이 확 길어져있었다. 우즈벡에서 적은 돈으로 대충 때운 것이 아무래도 미봉책이었나보다. 계속 금이 커지고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대형 정비센터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도 여럿이고 무척 크고 제대로된 정비센터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리를 팔 뿐 교체는 다른 곳에서 해야한다고 해서 물어물어 10분 거리의 차량 유리교체 전문점을 찾아갔다. 넓은 주차장에 대형트럭들이 서있는 끝에 까브리가 서있는데 트럭들에 비해 매우 앙증맞아 귀여워 보였다. 대형차량 위주로 서비스를 하는 곳인가 하며 사장님께 유리교체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영어를 못하셔서 스마트폰의 번역앱으로 어렵게 소통을 시도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손님이 우리를 보고 영어를 할 수 있다며 통역을 자처해주셨다. 덕분에 필요한 것을 물어볼 수 있었고 사장님은 까브리로 와서 유리 크기도 재고 부품이 있는지도 이곳저곳에 전화하며 알아봐주셨는데 우리가 곧 튀르키예로 갈거라는 이야기를 듣자 이곳에는 까브리 차종인 포터2의 유리가 없어 튀르키예에서 주문해 와야하는데 5일이 걸린다며 그곳에 가서 고치는 것이 나을거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튀르키예의 트라브존에 가면 바로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해외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가 어려워 긴장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최선의 선택지를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우리는 보름간 바투미에서 잘 쉬고 흑해를 원없이 즐기고 밀린 작업도 잘 할 수 있었다. 여행을 계속할 새 힘을 얻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rc_87hS1vqI?si=_OEjakcEGe2UyKD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12 10:32:35[파이낸셜뉴스] ‘HAPPY’라는 제목의 랩 영상으로 인스타그램 조회수 1000만회를 기록하는 등 큰 사랑과 관심을 받은 차노을군과 아버지 차성진 목사가 “우리는 언젠가 잊혀질 것”이라며 그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나눈 대화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6일 ‘노을이의 작업실’ 인스타그램 계정과 유튜브 채널에는 “노을아, 우리는 언젠가 잊혀질 거야”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시됐다. 영상에서 차 목사와 노을군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부자는 트렁크에서 피아노 건반을 꺼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차 목사는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노을군과 대화를 시작했다. 차 목사는 노을군의 영상이 화제가 된 후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을 받았지만, “언젠가는 더 이상 사람들이 노을이를 좋아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노을군이 “왜?”냐고 묻자 차 목사는 다시 “새로운 음악과 사람이 나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면서 “그 때가 언제냐면, 우리 해피곡 만들기 전에, 이전의 원래 삶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을이가 그 때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며 “그러니까 지금 우리 사랑해주시는 분들 감사한 분들이잖아. 그 사람들한테 어떤 마음 가져야해?”라고 노을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에 노을군은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우리가 받은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흘려 보내줘야 한다”고 답한다. 두 사람의 이 같은 대화는 누리꾼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하루만에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 15만개를 돌파했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응원을 보냈다. 600개가 넘는 한 댓글에는 “아버지가 참 현명하다” “받은 사랑을 흘려보낸다는 노을이의 예쁜 마음에 감탄한다” “아이 마음이 다치지 않게 현실을 설명하는 모습이 예쁘다” “우리는 잊혀진다는 말에 울컥했다. 감사하다” 등 다양한 반응이 담겼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7-08 06:30:39[파이낸셜뉴스] "나 지금 행복해" "정말?" "그래" "나도"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게 기뻐. 너의 나쁜 점을 말해줄 사람을 내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도 말야" 1996년 개봉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내용 중 일부다.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 비엔나로 향하는 제시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빠져들고, 둘은 같이 비엔나에서 내린다. 이 영화의 흥행으로 2004년에는 '비포 선셋'이, 2013년에는 '비포 미드나잇'이 개봉한다. 여행은 나를 전혀 다른 낯선 환경에 던져놓는 일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환경에서 나는 필요에 의해, 혹은 자발적으로 나라는 자아를 해체하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나는 소개팅에서 상대방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찐따였지만, 이상하게도 이국의 어떤 나라에서는 낯선 이성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거는 인싸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누가 봐도 '이환주'의 형태로 존재하지만 일본에서는 '와타나베'가 되고 미국에서는 '제임스'가 되는 것 같은 상황이다. 일상과 단절된 여행지에서의 선택은 일상의 나(이환주)와는 다른 여행자의 선택이다. 평소와 다른 선택이 모여 여행의 과정은 일상과 다른 특별하고 재미있는 무언가가 된다. 긴 여행을 마치면 여행의 피로가 쌓이는데 이걸 '여독(旅毒)'이라고 한다. 7박 8일의 발리 여행 뒤 내 얼굴은 새까매졌고, 약하게 화상을 입은 얼굴과 팔, 다리의 피부는 허옇게 뜨고 며칠간은 각질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여행 뒤의 피로감과 함께 즐거움도 남았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게 하는 이 즐거움을 나는 '여흥(旅興)', 여행 뒤에 남은 즐거움의 잔향이라고 부른다. 착한 원숭이 보러 '상에 원숭이숲'으로발리에서 아침을 맞는 첫 날의 첫 일정은 '상에 원숭이숲' 방문이었다. 숙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몽키 포레스트'가 있었지만 유튜브 후기를 통해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은 공격적이라고 들었다. 조금 멀리 가더라도 더 온순하다는 '상에 원숭이숲'의 원숭이들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전날 렌트한 오토바이를 몰고 '럭키 패밀리 커피&푸드'라는 식당을 찾았다. 아기자기 한 소품과 재미있는 문구가 적힌 다양한 그림이 걸려 있는 흥미로운 식당이었다. 메뉴 판을 보고 비주얼이 예쁜 호박수프, 미고랭(볶음면) 한 개를 시켰다. 디저트로 색과 모양이 초코 푸딩처럼 보이는걸 하나 시켰는데 알고 보니 팥죽 비슷한 국물에 밥알이 들어가 있는 현지 디저트였다. 한동안 오토바이를 몰아 상에 원숭이숲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니 원숭이에게 줄 수 있는 땅콩 주머니와 생수 1병씩을 받을 수 있었다.숲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데 현지 직원 같아 보이는 분이 말을 걸고 우리와 발걸음을 맞췄다. 그 아저씨는 "상에 원숭이숲에는 총 700여 마리의 원숭이가 있고 약 3개의 그룹이 있다"며 이동하는 중간 중간 여러가지 설명을 해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원숭이 무리 중에는 유독 덩치가 크고 공격적인 녀석(한 무리의 대장이었다)이 하나 있었는데 녀석이 다가오면 돌멩이가 없는 새총으로 위협 사격과 함께 '쉿, 쉿'하는 소리로 쫓아내 주셨다. 원숭이들은 땅콩을 손 위에 놓으면 얌전히 땅콩을 받아갔다. 또 일부 작은 원숭이들은 특정 스팟에서 내 어깨 위에도 올라와 땅콩을 받아가기도 했다. 공원에서 먹이를 주는 시간이었는지 한 공간에서는 오이 수백개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원숭이들이 오이를 주워 먹었다. 원숭이가 오이를 먹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다양한 원숭이 동상과 여러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안내를 해 주신 분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5만 루피아(4200원)를 건넸다. 공원 입구에서 그분이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물어봤다면 경계심을 가졌겠지만 너무도 스무스하게 동선에 합류해서 별다른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아저씨가 "땡큐 쏘 머치"라며 연신 손을 모아 인사를 해주시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고아 가자(코끼리) 사원 다음 목적지는 '고아 가자' 사원이었다. 코끼리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도깨비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한 동굴의 입구 사진을 보고 찜해둔 곳이었다. 힌두교 신의 석조 조각으로 유명한 이 동굴은 9세기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사원의 입구로 들어가는 곳에는 실제로 코끼리 동상이 있었다. 발리에 있는 동안 여러 사원과 유적지를 갔지만 이곳은 세 손가락 안에 들만큼 맘에 들었다. 우선 덜렁 사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원과 함께 연못, 사원을 둘러싼 계곡과 트레킹 코스 등 부지가 넓어서 충분히 시간을 들여 둘러볼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 모양의 동상이 항아리를 들고 있고 항아리에서 물이 나오는 연못에는 현지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힌두교 동굴 안에서 잠시 더위를 식히며 종교 활동을 하는 현지인을 보거나 안에 있는 여러 조각품을 볼 수도 있었다. 작은 폭포를 보고 계곡을 따라 산책로를 한동안 걷는 것도 좋았다. 사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오니 더운 날씨 탓에 땀이 흠뻑 났다. 특히 사원에 입장할 때 반바지를 가릴 수 있는 천을 받아 치마처럼 두르고 다녔는데 이것 때문에 더 더웠다. 목이 너무 말라 사원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한 잔 먹었는데 관광지 안이라 확실히 밖에서 먹는 것보다 비쌌다. 참고로 이곳을 포함한 발리의 여러 사원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생리 기간에는 입장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원을 둘러 보고는 바로 근처에 있는 '따만 베지 그리야' 폭포를 찾았다. 하지만 이 폭포는 입구에서 해도해도 너무 하다 싶은 비싼 입장료를 요구했다. 폭포를 보는 것을 금지하고 일종의 무슨 힐링(종교) 프로그램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 욕을 하며 그냥 돌아 나왔다. 다음으로는 현지인이 찾는 바비 굴렁 맛집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의 이름은 'Warung Babi Guling Pande Egi'라는 곳이었다. 바비 굴링은 어린돼지를 돌려가면서 구워낸 바삭한 돼지껍질 요리다. 베이징덕 껍질의 돼지 버전인 셈이다. 식당에서 먹은 정식은 두 조각의 작은 바비 굴링과 돼지 고기가 나오는 음식이었다. 정식과 함께 돼지고기 꼬치도 시켰는데 둘 모두 차갑게 식은 상태로 나왔다. 복수의 후기에서 해당 식당을 극찬해 기대를 하고 갔는데 개인적으로는 맛도 그닥 이었다. 다만 식당이 위치한 곳이 논 바로 인접해 논 바람을 맞으며 푸른 논을 배경으로 밥을 먹는 분위기는 참 좋았다. 현지인 맛집인지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스타 필수 명소 칸토람포 폭포 밥을 먹고 바로 인근에 있는 칸토 람포 폭포로 향했다. 칸토 람포 폭포는 층층이 쌓인 계단 형태의 검은색 암벽 위로 폭포가 쏟아지는 곳인데 해당 암벽 위에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여러 사진을 통해서 비키니를 입은 각국의 여성들이 검은색 암벽 위에서 모델처럼 찍은 사진을 여럿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 왜 구글 리뷰에 "이곳에 가려면 반드시 아침 일찍 가세요"라고 적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스타 명소로 유명한 이곳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매우 긴 줄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인스타 명소인 폭포 말고도 뒤쪽의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좀 걸었다. 약간 높은 언덕 지형에 올라 폭포를 내려다보며 수백 명의 사람 구경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는 재미있었다. 이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티부마나 폭포'였다. 티부마나 폭포는 폭포 그 자체보다는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이 더 좋다는 후기를 봤는데 실제로 그랬다. 여러가지 열대 식물과 형형 색색의 꽃 등을 볼 수 있었다. 티부마나 폭포는 마치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스케치북에 그린 것처럼 정확하게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몇몇 관광객들은 폭포 아래에서 수영을 즐기기도 했지만 수질 상태가 도저히 들어가고 싶은 상태는 아니었다. 티부마나 폭포의 반대편에는 계곡이 있었는데 계곡의 바위 위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누워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이후에는 오토바이를 몰고 숙소에 도착했다. 발리의 기후는 한국의 여름처럼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여러곳을 이동하는 동안 땀에 절어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또 이동 대부분을 오토바이로 하다보니 헬멧을 썼음에도 숙소에 도착해 얼굴을 씻자 검은 검댕이 묻어 나왔다. 저녁은 숙소에서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와렁 폰독 마두(Warung Pondok Madu)'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아웃백에서 유명한 돼지폭립이 유명한 곳으로 발리에서 먹었던 저녁 중에는 2번째로 맛있었다. 사이드로 시킨 버섯 탕수 튀김도 훌륭했고, 하루 종일 땀을 흘린 뒤 먹는 빈땅 맥주는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음식을 먹는 동안 비가 내렸는데 창가 좌석에 앉아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름으로 운치있었다. 인생 뭐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OBJECT0#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06-17 21: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