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모교인 유서깊은 역사의 뉴욕군사학교가 중국인 사학 재벌에게 넘어가 운영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964년에 졸업한 5년제 중고교과정 기숙학교인 뉴욕군사학교가 폐쇄 직전까지 몰리며 쇠락한 상황에서 중국인 사업가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전성기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각)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이 학교가 1960년대 500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으나 현재는 50명뿐으로 문을 닫기 직전인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136년 역사를 가진 이 사립학교를 인수한 인물은 상하이출신 중국인 사업가 루 앨런. 그는 지난 2월 콘월 시의회에 나와 자신의 학교 소유권 인수를 보고하면서 "새로운 재단이 학생 수를 1500명까지 늘릴 것"이라며 학교 발전 계획을 밝혔다. 중국에 10개가 넘는 사립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루 이사장은 중국 푸단대에서 금융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상하이에 본사를 둔 광화교육그룹을 설립한 인물이다. 대부의 코폴라 감독,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손드하임 등도 트럼프의 동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25일 웨스트포인트(미 육사) 졸업식에 참가해 연설을 하면서 자신의 모교인 뉴욕군사학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학교는 웨스트포인트에서 10km 떨어져 있다. 트럼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좋은 곳”이라고 표현하면서 애착을 표시했다. 지난 1월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이 학교 생도 20명이 군복 모양의 교복을 입은 채 행진하면서 동문 선배의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도 했다. 뉴욕시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90분 떨어진 콘월에 위치한 이 학교는 캠퍼스 전체가 숲에 둘러싸여 있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 대작을 연출한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로드웨이 대표적인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과 등이 졸업했다. 손드하임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숲속으로' 등으로 아카데미상·토니상·그래미상을 다수 수상했다. 왈츠 전 보좌관 "중국인 소유 뉴욕군사학교가 웨스트포인트에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 우려" 지적 뉴욕의 요지에 있다는 점 등 때문에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던 마이클 왈츠 전 하원의원이 "2023년 중국인이 소유한 뉴욕군사학교가 웨스트포인트에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 우려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로이드 오스틴 당시 국방장관에게 보낸 적이 있다. 루 앨런에 앞서 중국에서 부동산 사이트를 운영하는 재벌 빈센트 티안취안 모가 2015년 파산보호신청을 한 이 학교를 인수했었다. 그는 뉴욕군사학교를 슈퍼 학교로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이 학교는 현재 780만 달러의 부채를 남긴 상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학교 운영을 더 어렵게 했다. 중국에서 흘러온 자금으로 학교를 매입한 탓에 소유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다고 WSJ은 지적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2025-06-05 15:36:27【하노이(베트남)=김준석 기자】인도군이 파할감 테러 2주 만에 파키스탄을 공습하면서 인도-파키스탄 양국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양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인도군은 파할감 테러를 이번 공습의 이유로 들었다. 지난달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 휴양지 파할감 인근에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한 총기 테러가 발생해 26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인도 정부는 테러의 배후를 파키스탄 무장 단체로 지목하고 있다. 앞서 양국은 국경검문소를 폐쇄하고 무역 중단과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인더스강까지 막는 등 극단으로 치닫은 바 있다. 7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인디아를 비롯한 인도 매체와 CNN,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군은 파키스탄 및 파키스탄이 통제하는 카슈미르 지역 내 9곳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파키스탄군 당국도 인도군이 이날 새벽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고 확인했다. 인도 정부는 자국군이 파키스탄 본토와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 중인 카슈미르 지역 내 9개 지역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파키스탄 군 당국은 펀자브 주와 자국이 통제 중인 카슈미르 지역 등 5곳이 공격받았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군 대변인은 무자파라바드를 포함해 바하왈푸르(펀자브 주), 코틀리, 바그(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무리드케(펀자브 주) 등 총 5곳이 공격당했다고 밝혔다. 바하왈푸르에는 파키스탄 기반 무장단체 자이시-에-모하마드와 연계된 종교 학교가 소재해 있다. 인도 정부는 성명에서 "우리의 작전은 집중적이고 절제되었으며, 갈등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공격에서는 파키스탄 군사 시설을 일절 목표로 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라즈나트 싱 인도 국방장관은 이날 인도군의 공습 후 X(구 트위터)에 "어머니 인도에 승리를"라고 글을 남겼다. 인도군은 이날 군사작전에 대한 브리핑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공습은 결코 무대응으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시기와 장소를 자국이 정해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성명에서는 "인도가 느끼는 잠깐의 쾌감은 곧 깊은 슬픔으로 대체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파키스탄 군은 "절제되었으나 단호한 대응"을 시작했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작전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군사 작전 이후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회의를 소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갈등 고조 상황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이 소식을 방금 들었다"며 "양국은 오랜 기간 싸워 왔다. 나는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인도군은 이번 작전을 '신두르 작전'이라 명명했다. 이는 힌두교 여성들이 결혼 후 머리카락에 바르는 붉은 가루 '신두르'를 뜻하며, 2주 전 테러 공격 당시 남편이 눈앞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2025-05-07 07:25:59[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래 여러 차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다. 최근에는 이미 물밑소통 중이라고도 밝혀 북미대화가 머지않아 추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1기 정부 때 북미대화의 중재자는 우리나라였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낄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남북관계가 절단이 나 할 수 있는 역할이 없기도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과 혈맹관계를 맺으면서 유력한 중재자로 떠올라서다. 트럼프 "김정은 소통 중"..韓 패싱 이미 현실화됐을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에게 연락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우리는 소통이 되고 있다(we have, there is communication)”며 “아마 어느 시점에 우리는 무엇인가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간 물밑소통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우리 정부는 외국정상 발언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이를 두고 이미 북미대화에서의 한국 ‘패싱’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비공식적으로 리처드 그레넬 백악관 특사나 알렉스 웡 국가안보수석부보좌관 등이 주뉴욕북한대표부 측과 전화나 이메일 접촉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대면접촉 발전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미 편지를 주고 받고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이런 북미 소통 내용은 한미 간에 공유가 되지 않고 있는 것 같고, 대화가 시작돼도 결과를 통보하는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북미대화 실패 경험 때문에 한국이 끼지 않길 바라는 눈치”라고 분석했다. 혈맹 거듭난 북러-푸틴 존중하는 트럼프.."韓 불리한 국면" 북미대화에서 한국이 패싱 당한다면 중재자 역할은 러시아가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대북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가 러시아라서다. 북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협력을 지속했고, 북한군 파병까지 이뤄지면서 지금은 혈맹으로까지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우크라 전쟁이 종전되더라도 북러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종전협상 중임에도 북한은 러 측을 ‘동지’라는 격상된 표현으로 부르며 추가파병을 했고, 김 위원장은 내달 9일 러시아 전승절에 방러 예정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 전쟁이 종전되면 북러가 중장기 군사협력과 경제협력 위주로 하는 등 범위가 넓어지고 얕아질 순 있어도 관계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거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상을 존중해준다는 점에서 먼저 북미대화 중재를 요청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 측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중재하면 우리에겐 불리한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우크라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푸틴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중간역할에 나서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며 “과거 6자회담은 중국이 주도했다면, 지금은 대북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가 러시아가 됐으니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북한은 최근 중국과의 관계 개선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러도 거리를 좁히고 있어 러시아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러 정상이 한 데 모일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중국과 북한의 전승절을 비롯한 기념일들도 75주년이나 80주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의미 깊게 여기는 5년 단위로 꺾이는 때를 맞은 터라, 올해 북중러가 뭉칠 여러 계기가 즐비하다. 학계에선 북중러 3국이 뭉치기는 어렵다고 보지만, 북중·북러·중러 등 양자관계는 강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때문에 북미대화가 시작되면 북중러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끌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안보 위험을 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5-04-03 01:06:50[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즉시 시행하겠다고 밝힌 대규모 불법 체류자 추방에 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불법 이민자 추방을 통해 주택 위기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1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보수 법률 단체 '사법워치'의 폼 피턴 회장의 "트럼프 행정부가 바이든 침공을 되돌리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사적 자산을 활용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고 올린 게시물에 "사실이다(TRUE)!!!"라고 답했다. 피턴의 게시물 내용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취임 첫날만 독재자가 되겠다"며 불법 이민자 추방을 취임 첫날 할 일로 꼽아왔었다. 이 업무를 총괄할 '국경 차르(국경문제 총괄 책임자)'로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내정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트럼프 당선자 측근들이 불법 이민자 추방을 위해 취임 첫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경 장벽 건설과 이민자 구금 및 추방에 국방 예산을 전용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에 급증한 불법 이민이 주택 가격 상승의 원인이라고 강조하며, 불법 이민자 추방으로 주택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뉴욕시 공립학교 학생 8명 중 1명이 주택 문제로 노숙자 신세에 처해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아동시민단체 AFC(Advocates for Children)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뉴욕의 공립학교 학생 14만6000명 이상이 안정적인 거주지 없이 노숙자 쉼터 등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3% 증가한 수치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AFC는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들의 유입 급증을 꼽았다. 교육부 자료에선 뉴욕시의 노숙자 학생 수가 9년 연속 1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NYT는 "이용 가능한 아파트가 적고 저렴한 주택을 찾기 어려운 지속적인 주택 위기가 지속되면서 이 수치는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기자
2024-11-19 16:51:50[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시절 군 지휘부를 지낸 이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CNN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가운데 가장 크게 걱정하는 이들이 바로 트럼프 시절 군 지휘부를 구성했던 이들이라고 보도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 트럼프가 합참의장으로 앉혔던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은 워터게이트 보도로 유명한 밥 우드워드의 신간 ‘전쟁’에서 트럼프는 “이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면서 “그는 뼛속까지 파시스트다”라고 못 박았다. 우드워드는 17일에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짐 매티스 장군도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밀리와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드워드는 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매티스 전 장관과 밀리 전 합참의장의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면서 “위험은 매우 높다”고 경고했다. 군에 대한 유아적 동경과 병역 기피 트럼프는 군에 대해 소년 같은 동경을 품고 있다. 2차 대전 영웅인 조지 패튼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우상화하고 있다. 그는 10대 시절을 뉴욕의 엄격한 군사 기숙학교에서 보냈다. 그러나 이같은 동경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것을 피하려 징집영장을 여러 번 연기했다. 병역은 기피했지만 군은 동경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워싱턴에서 화려한 열병식을 꿈꿨다. 러시아 식의 화려한 열병식을 워싱턴에서 열기 위해 주변 인사들을 설득했지만 끝내 꿈은 이루지 못했다. 트럼프는 또 대통령 시절 내각에 고위 장성 출신들을 다수 앉혔다. 퇴역 4성 장군 매티스를 국방장관, 비서실장에는 역시 퇴역 4성 장군인 존 켈리를 꽂았다. 국가안보 보좌관 2명은 각각 3성 장군 출신인 마이클 플린과 H R 맥마스터를 앉혔다. 외면당해 그러나 트럼프의 군 사랑은 외사랑이었다. 트럼프가 고위 장성과 제독들과 유대 관계를 맺기 위해 애썼지만 이들로부터 사랑받지는 못했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 당일 군이 ‘내부의 적’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 내부의 적이 바로 트럼프 자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매티스 전 장관은 ‘디 애틀랜틱’에 보낸 성명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내 생애 처음으로 미국인들을 하나로 묶으려 시도하지 않은 대통령”이라면서 “대신 그는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켈리 전 비서실장도 지난해 CNN과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우리의 민주적인 기구들, 우리 헌법, 그리고 법치에 도전하려는 인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맥마스터 전 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당시 백악관 시절을 기록한 자신의 회고록 ‘우리 자신과의 전쟁’에서 트럼프가 헌법 수호 의무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맥마스터는 2020년 대선에서 패한 뒤 트럼프의 “에고와 자기애가...그를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한다’는 자신의 맹세를 저버리도록 했다”면서 트럼프는 “대통령의 최고 의무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담당했던 합동특수전사령부(JSOC)를 혁신한 스탠리 맥크리스털 장군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자신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맥크리스털 장군은 과거 트럼프는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직접 담당한 빌 맥레이븐 해군 제독도 2020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트럼프를 비판했다. 맥레이븐 제독은 “대통령의 에고와 자아 보존이 국가 안보보다 더 중요해지면...악의 승리를 막을 그 어떤 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켈로그 그러나 트럼프에게도 군에 우군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국가 안보 보좌관을 지낸 키스 켈로그 중장이다. 켈로그는 트럼프에 대한 충성으로 지난 행정부에서 사임하거나 해고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고위 백악관 보좌관 가운데 한 명이다. 켈로그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핵심 보직으로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합참의장, 또 이후에는 트럼프에게 입안의 혀처럼 움직일 국방장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CNN은 켈로그 밑에서 일했던 고위 장교들은 이같은 시나리오가 미국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2024-10-20 07:32:27전쟁에 대한 인류 최초의 체계적인 기록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Peloponnesian War·BC 431~404)'다. 중국 춘추시대 손자병법이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5세기경 나왔지만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기보다는 군사학설과 경험을 묶은 병법서에 가깝다. 아테네의 역사가 펠로폰네소스는 낮에는 스파르타군과 싸우고, 밤에는 졸음을 참으며 전투 중에 일어났던 참상을 기록했다. 당시 전쟁은 두 동맹세력 간의 '세계대전'으로 27년간 지속된 장기전으로 '유례가 없는 전쟁(A war no like)'이었다. 도시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정치와 사회의 기반이 무너졌고, 무모한 정치가들은 전쟁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2500여년의 역사를 들추어내는 것은 작금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 못지않게 참혹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국제판에는 일주일에 최소 3회는 두 개의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시신 앞에서 울부짖는 사진이 1면 톱기사와 함께 실린다. 평화의 상징인 파리올림픽 기간에도 전선에서는 각종 첨단무기들이 불을 뿜었다. 양측은 영토를 한 치라도 더 확보하는 것에 금메달을 따는 것처럼 총력전을 전개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는 방어전략에서 벗어나 러시아 영토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아파트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이 미사일 공격으로 계단에 피신시킨 부인과 세 딸이 사망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우크라이나 가장의 비극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 갑자기 차출당해 피해가 발생한 러시아 징집병 부모들은 푸틴을 원망하며 불안감을 표출했다. 우크라이나군에 포로가 된 징집병들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지도력이 흔들린 푸틴은 다시 강공을 선택했다. 중동 가자지구 중부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여건 보장을 위한 사흘간의 임시휴전이 시작됐지만 휴전지역을 제외한 북부와 남부에서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계속됐다. 학교에도 포탄이 떨어져 11명의 인명이 숨졌다. 인명 살상은 일상사가 되었다. 가자지구에 억류되어 있던 이스라엘 인질 6명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반전시위가 일어났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책임자들을 잡을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라고 전쟁 지속을 선언했다. 내부 결속이 특징인 유대인 사회에서 인질들이 돌아올 때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들이 반(反)네타냐후 시위를 전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마스 공격 전에 부정부패 혐의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완전 소탕을 주장하며 휴전을 거부했다.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전쟁, 만 1년이 다가오는 중동전쟁 모두 스트롱맨들의 정의롭지 못한 국내정치에서 비롯되었다. 러시아 국민들의 자존심을 내세워 나토(NATO)의 동진을 막는다는 명분하에 종신집권을 꿈꾸는 푸틴, 부정부패로 초유의 탄핵 위기에 처했던 네타냐후 역시 자신의 위기 탈출을 모색하던 중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내세워 반전을 모색했다. 국내정치의 돌파구로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보았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고, 중단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제는 두 독재 지도자의 개인적 야망을 제외하고는 전쟁이 지속될 이유는 없다. 살상과 비극은 충분하다.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합리적인 집단지성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 두 달도 안 남은 미국 대선의 승자는 조속한 종전을 모색해야 한다.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를 위해서 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그게 미국의 존재 의의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약력 △65세 △미주리대학교 대학원 응용경제학 박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민주평통 사무처장 △서울시 통일기반조성위원장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2024-09-10 18:37:03【파이낸셜뉴스 도쿄=박소연 기자】 미국을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11일(현지시간) 미국이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계속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미국이 그 부담을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일본이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미국 의회의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수십 년간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세상은 미국이 국가 간의 문제와 관련해 계속해서 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여러 세대 동안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국제 질서가 우리와 가치와 원칙이 매우 다른 이들로부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전 세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현재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위협의 사례로 "중국의 현 대외 입장과 군사 행동은 일본의 평화와 안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가장 크고 전례가 없는 전략적 도전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직접적인 위협이고 납북자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은 (인도·태평양) 지역을 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탄도미사일을 수출해 우크라이나 국민이 더 큰 고통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인들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미국과 함께하겠다"면서 "미국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이 미국, 한국, 호주, 인도, 필리핀, 주요 7개국(G7),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등 "유사 입장국과 함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노력에 대한 의회의 초당적 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연설 초반에 기시다 총리는 초등학교 시절인 1963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도착해 뉴욕시에서 생활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의원들과 친근감을 형성했다. 그는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큰 환호를 받자 자신의 저조한 국내 지지율을 의식한 듯 "일본 국회에서는 이렇게 친절한 박수를 못 받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2024-04-12 06:00:13'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는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래 한미 동맹 70주년인 올해까지도 한미 행사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모토이자 전통적 구호다. 구호와 같이 그동안 양국은 정치, 외교, 안보,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 세계 최빈국이자 원조국이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며 미국과 국제,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국가'로 성장했다. 이러한 70년간의 공고한 관계를 그 태동기부터 오롯이 담고 있는 곳이 바로 용산 개리슨(Garrison), 즉 용산기지다. 남산 아래 둔지산 자락에 자리한 용산기지는 여의도와 비슷한 크기인 약 243만㎡로 축구장 340개가 들어갈 만한 면적이기도 하다. 그 크기만큼 입지적 특성이나 공간 활용성 측면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용산기지는 주한미군으로부터 전체 부지를 돌려받은 이후 '용산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은 단절된 남산과 한강을 녹지-수경축으로 연결시켜 대한민국 수도의 중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허파의 기능을 할 것이며, 동시에 녹색국토환경과 미래 도시문화를 체감할 수 있는 국가 도시공원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용산기지 반환은 2004년 한미 간 용산기지이전협정으로 평택 이전이 결정되며 시작됐다. 하지만 용산기지 내에는 다양한 군사시설뿐 아니라 주한미군과 그 가족들의 생활공간이 오랜 기간 자리했던 만큼 돌려받는 데는 다양한 사안이 엮여 있어 반환협상은 상당 기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지지부진하던 반환은 2022년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속도가 붙었다. 이를 계기로 한미 간 합의가 적극적으로 추진됐으며, 그 성과로 지난해에 기지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을 돌려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주변에 넓은 공간을 조성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국민께 약속드린 바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반환된 부지 일부를 '용산공원 시범 개방'으로 17일간 2만2000여명의 국민에게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지난 5월에는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인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이를 재조성, 임시개방했다. 지난달에는 미군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와 지원시설들이 있던 부지를 약 2000㎡ 규모의 초대형 분수가 있는 '분수정원'으로 재탄생시켜 추가 개방하는 등 약 30만㎡의 공간을 알차게 구성해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용산공원을 온전히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용산공원을 방문하는 국민이 안심하고 올 수 있도록 환경관리 역시 철저하게 진행됐다. 본디 용산어린이정원 구역은 주한미군과 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그들이 살던 주택은 물론 미군 자녀들이 반환 직전까지도 다니며 맘껏 뛰놀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가 있는 마을이었다. 국토교통부는 이들이 안심하고 살았던 거주공간을 국민들도 충분히 안심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환경부와 협력해 정원 조성 준비 단계부터 환경안전성을 검증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으로 용산기지 반환의 물꼬가 본격적으로 트인 만큼 국토교통부는 이제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 조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뉴욕 센트럴파크를 계획한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는 공원이 단순한 생태적 공간일 뿐 아니라 개인과 사회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해주는 사회통합의 수단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용산공원 역시 이 시대 우리 문화의 역량을 선보이고 미래세대에게 국토를 어떻게 바라보고 운영해야 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이자 어린이부터 전 세대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국민소통의 한마당으로서 우리 모두가 '같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김오진 국토교통부 1차관
2023-09-10 20:13:21【 칠곡·안동=김장욱 기자】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지난 1950년 8월 21일 한국전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낙동강 지구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아군에게 이 같은 절체절명의 명령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2만여명의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3분의 1에 불과한 아군에게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마음으로 싸우라는 지시였다. 백 장군은 돌격명령 이후 선두에서 앞으로 먼저 달려 나아갔다. 이에 병사들도 사단장의 뒤를 따라 돌격했고 삽시간에 고지를 탈환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정면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돌파당했다면 임시수도인 대구가 곧바로 함락되고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남은 것은 미군의 철수와 함께 한반도의 공산화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틀 마련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의 기세를 꺾으면서 전세를 완전히 바꿨다. 북한군은 다부동 패전으로 낙동강 전선 돌파에 실패했다. 반면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고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기적적으로 막아낸 덕분에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백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후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후퇴 뒤엔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한국전쟁의 최대 변곡점이 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에 영웅 백선엽 장군이 5일 다시 돌아왔다. 백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이날 칠곡군 다부동에 우뚝 섰다. 경북도는 지난해 12월부터 추진한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사업을 완료하고, 이날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 및 서거 3주기 추도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민간에서 개최해왔던 '백선엽 장군 서거 추모행사'를 올해 처음으로 경북도, 국가보훈부, 육군본부, 칠곡군이 공동 주최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사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사업은 민간에서 주체가 돼 지난해 12월 21일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동상은 총사업비 5억원(국비 1억5000만원, 도비 1억원, 성금 2억5000만원)을 투입해 제작됐다. 성금 모금활동에는 많은 국민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로 제작된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높이 6.5m)보다 약간 작다. ■칠곡군 주민들과 함께한 영웅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성금은 모금 2개월 만에 목표액을 달성할 정도로 국민의 관심과 열기가 높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늘날 자유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호국영령과 6·25전쟁 시 참전용사와 지게부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 '호국 메모리얼 공간' 등을 조성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안보 교육 장소로 만드는 등 경북을 대한민국 호국의 성지로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6·25전쟁 다부동 전투 당시 지게부대원으로 참여한 지역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 제막행사도 이날 열려 6·25전쟁의 숨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게부대는 다부동 전투 당시 지역민으로 구성된 민병대로 지게에 탄약과 식량, 보급품 등을 신속하게 실어 나르며 치열했던 전투의 숨은 영웅들이다.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는 백 장군의 장녀인 백남희 여사가 사비(1500만원)로 추모비를 건립,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를 잇는 호국정신을 계승했다. 백 여사는 "아버님은 자신의 동상보다 주민 위령비가 먼저 서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기에 칠곡군과 함께 위령비를 마련하고 제막식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아버님이 못다 한 뜻을 이루고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주민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칠곡군은 생전 백 장군을 칠곡 명예군민으로 추대했고, 이에 화답하듯 백 장군도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서 칠곡군까지 내려와 지역 축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미동맹의 상징… 미국도 영웅대접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시기에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은 더욱 뜻깊다. '한미동맹' 용어를 처음 꺼낸 주인공이 바로 백 장군이다. 그가 지난 1953년 전쟁 와중에도 미 군사고문단은 물론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한 것이 시발이다. 한미동맹의 상징이기도 한 백 장군의 공로는 미국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전쟁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으며, 6·25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군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백 장군의 생전 98세 생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의 군사 및 외교 주요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백 장군은 마지막 유언에서도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장녀 백남희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다"면서 "한 가지는 유해를 바로 묻지 말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전우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백씨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경기 평택의 미군 부대를 찾아 부대 내 워커 장군 동상 앞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워커 장군은 6·25전쟁 당시 백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 방어선인 '워커라인'을 사수해 승리를 이끈 전우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2주 동안 백 장군이 포함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홍보영상이 지난 4월 상영되기도 했다. 타임스스퀘어에 자리한 삼성전자와 LG전자 전광판을 통해 매일 약 680회 송출됐다. 유엔군 초대 총사령관을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밴 플리트 부자(父子)와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도 10대 영웅에 포함됐다.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손꼽혀 백 장군이 처음부터 군인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백 장군은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1920년 11월 23일 출생했다.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만주군 활동 이력이 백 장군에게 오랜 꼬리표처럼 따라붙기도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에 대해 "역사적 인물에는 공과(功過)가 있는데 일부 사람들이 과(過)에 집착해 영웅들을 폄하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과 같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인물들에 대한 보훈과 선양은 과감하게 추진해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백 장군은 해방 직후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백 장군은 이런 이유로 근대화 국군 창설의 아버지로 손꼽힌다. 백 장군은 32세이던 1952년 최연소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지난 2020년 7월 10일 향년 100세로 타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gimju@fnnews.com
2023-07-05 17:59:19【칠곡·안동=김장욱 기자】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장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가 나를 쏴라!" '한국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지난 1950년 8월21일 한국전 최대 격전지였던 경북 칠곡 낙동강 지구 다부동 전투에서 후퇴하는 아군에게 이같은 절체절명의 명령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2만여명의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3분의 1에 불과한 아군에게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마음으로 싸우라는 지시였다. 백 장군은 돌격 명령 이후 선두에서 앞으로 먼저 달려 나아갔다. 이에 병사들도 사단장의 뒤를 따라 돌격했고 삽시간에 고지를 탈환했다. 백병전이 난무했던 다부동 전투에서 아군이 패할 경우 한반도는 공산군에게 완전히 점령되는 위기를 맞을 뻔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정면에서 벌어진 이 전투에서 북한군에게 돌파당했다면 임시수도인 대구가 곧바로 함락되고 낙동강 방어선 전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남은 것은 미군의 철수와 함께 한반도의 공산화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기틀 마련 다부동 전투는 북한군의 기세를 꺾으면서 전세를 완전히 바꿨다. 북한군은 다부동 패전으로 낙동강 전선 돌파에 실패했다. 반면 유엔군은 낙동강 전선을 고수함으로써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병력 8000명으로 북한군 2만여 명의 총공세를 한 달 이상 기적적으로 막아낸 덕분에 유엔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백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후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입성했고, 1·4 후퇴 뒤엔 서울을 최선봉에서 탈환했다. 한국전쟁의 최대 변곡점이 된 다부동 전투의 격전지에 영웅 백선엽 장군이 5일 다시 돌아왔다. 백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이날 칠곡군 다부동에 우뚝섰다. 경북도는 지난해 12월부터 추진한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사업을 완료하고, 이날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장군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 및 서거 3주기 추도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민간에서 개최해왔던 '백선엽 장군 서거 추모행사'를 올해 처음으로 경북도, 국가보훈부, 육군본부, 칠곡군이 공동 주최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사를 개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백 장군 동상 건립사업은 민간에서 주체가 돼 지난해 12월 21일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동상은 총 사업비 5억원(국비 1억5000만원 도비 1억원, 성금 2억5000만원)을 투입해 제작됐다. 성금 모금 활동에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 4.2m, 너비 1.56m 크기로 제작된 동상은 동서남북 사방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아 동상이 36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높이 6.5m)보다 약간 작다. 칠곡군 주민들과 함께 한 영웅백 장군 동상 건립성금은 모금 2개월 만에 목표액을 달성할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높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오늘날 자유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호국영령과 6·25전쟁 시 참전용사와 지게부대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칠곡군 다부동 일대에 '호국 메모리얼 공간' 등을 조성해 자라나는 세대들의 호국·안보 교육 장소로 만드는 등 경북을 대한민국 호국의 성지로 만들어가겠다"라고 강조했다. 6·25전쟁 다부동 전투 당시 지게부대원으로 참여한 지역주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 제막행사도 이날 열려 6·25전쟁의 숨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게부대는 다부동 전투 당시 지역민으로 구성된 민병대로, 지게에 탄약과 식량, 보급품 등을 신속하게 실어 나르며 치열했던 전투의 숨은 영웅들이다. 다부동 전투 참전 주민위령비는 백선엽 장군의 장녀인 백남희 여사가 사비(1500만원)로 추모비를 건립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를 잇는 호국정신을 계승했다. 백 여사는 "아버님은 자신의 동상보다 주민 위령비가 먼저 서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기에 칠곡군과 함께 위령비를 마련하고 제막식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아버님이 못다 한 뜻을 이루고 다부동 전투에서 희생된 주민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칠곡군은 생전 백 장군을 칠곡 명예 군민으로 추대했고, 이에 화답하듯 백 장군도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서 칠곡군까지 내려와 지역 축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미 동맹의 시발점..미국도 영웅대접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시기에 백선엽 장군의 동상 건립은 더욱 뜻 깊다. 한·미동맹' 용어를 처음 꺼낸 주인공이 바로 백 장군이다. 그가 지난 1953년 전쟁 와중에도 미 군사고문단은 물론,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 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한 것이 시발이다. 한미동맹의 상징이기도 한 백 장군의 공로는 미국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 국립보병박물관은 백 장군의 6·25전쟁 경험담을 육성으로 담아 전시하고 있으며, 6·25전쟁 회고록 '군과 나'는 미군 주요 군사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백 장군의 생전 98세 생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의 군사 및 외교 주요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백 장군은 마지막 유언에서도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장녀 백남희씨는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다"면서 "한 가지는 유해를 바로 묻지 말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전우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백씨는 또 "다른 한 가지는 경기도 평택의 미군 부대를 찾아 부대 내 워커 장군 동상 앞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메시지를 남겨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워커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백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 방어선인 '워커라인'을 사수해 승리를 이끈 전우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2주 동안 백선엽 장군이 포함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홍보 영상이 지난 4월 상영되기도 했다. 타임스퀘어에 자리한 삼성전자와 LG전자 전광판을 통해 매일 약 680회 송출됐다. 유엔군 초대 총사령관을 지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밴 플리트 부자(父子)와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등도 10대 영웅에 포함됐다. 국군 창설의 주역으로 손꼽혀백 장군이 처음부터 군인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였다. 백 장군은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1920년 11월 23일 출생했다. 1939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사로 재직하다가 만주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걸었다. 1942년 12월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1943년 4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했다. 만주군 활동 이력이 백 장군에게 오랜 꼬리표처럼 따라 붙기도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에 대해 "역사적 인물에는 공과(功過)가 있는데 일부 사람들이 과(過)에 집착해 영웅들을 폄하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과 같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인물들에 대한 보훈과 선양은 과감하게 추진해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백 장군은 해방 직후 잠시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45년 2월 월남했다. 1945년 12월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고, 1946년 2월에 임관했다. 그해 1월 창설된 국방경비대에서 제5연대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방경비대가 정식 국군으로 재편되면서 제5연대장과 육본 정보국장을 거쳐 1950년 4월 개성을 관할하는 국군 1 보병사단 사단장(당시 계급 대령)으로 부임했다. 1951년 겨울에는 지리산의 빨치산 소탕을 위한 '백(白) 야전사령부'를 구성했으며 이 사령부를 모태로 이듬해 4월에는 한국군 최초로 근대화된 2군단을 창설했다. 백 장군 이런 이유로 근대화 국군 창설의 아버지로 손꼽힌다. 백 장군은 32세이던 1952년 최연소로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 우리 군 최초 4성 장군이 됐다.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된 후 군 훈련체계의 개혁, 보급체계 개편, 상이군인들에 대한 복지 향상 등에 힘썼다. 이때 10개 상비사단 창설(11~20사단), 10개 예비사단 창설 등을 추진했다. 1959년 합참의장을 지냈고, 이듬해 예편했다. 퇴역 후에는 외교관 생활을 한 뒤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태극무공훈장과 미국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 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지난 2020년 7월 10일 향년 100세로 타계해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gimju@fnnews.com gimju@fnnews.com 김장욱 기자
2023-07-05 09: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