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된지 4개월차로 접어든다. 정보통신기술(ICT), 금융, 산업 등 분야별로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던 기업들이 규제샌드박스에 벅찬 기대를 걸고 몰려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말 그대로 모호한 제도의 틀을 벗어나 일정기간동안 규제를 유예해주면서 우선 사업을 해보도록 하는 제도이니, 그동안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고 느낀 기업들에게는 자유공간인 셈이다. 이구순 느린걸음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샌드박스에는 9개 기업이 신청했고, 4월 시작된 금융위원회 규제특례에는 105개 기업이 몰렸다. 모두가 규제에 힘들어했던 기업들일게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 혁파를 외치고, 규제 혁파의 모델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고 얘기할 때 일각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있었다. 규제샌드박스가 규제의 자유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규제허들로 작용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4개월차로 접어드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운용과정에서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 규제샌드박스는 9개 신청 기업 중 2개 기업만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았다. 금융위에 규제특례를 신청한 105개 기업 중에서는 19개 기업이 우선심사 대상이 됐다. 금융위는 우선심사 대상 기업들에게 정식신청을 다시 받아 혁신금융심사위원회를 열고 금융위원회가 최종 심사를 통해 규제특례 여부를 결정한다. 2단계 3단계의 복잡한 심사를 거쳐 규제를 유예해 주는 제도가 과연 샌드박스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게다가 규제특례를 신청한 기업은 웬만한 기업설립 서류만큼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 제출해야 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업내용을 묻는 담당 공무원에게 일일이 설명하느라 아예 한달 넘도록 사업을 못했다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에 진입하는게 웬만한 정부 인가 받는 것 만큼 어렵다고 한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일단 한번 해보라는 제도 아닌가? 우선 사업을 시작하고, 제도에 맞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면이 드러나면 특례를 거둬들이고 다시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테스트 같은 개념 어난가? 그런데 그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지금처럼 까다롭게 운용된다면 존재 이유가 있는가? 결국 ‘일단 한번 해볼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새로운 규제허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무원들이 곰곰히 따져줬으면 한다. 대통령은 기회 닿을 때 마다 신산업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해 달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움직이는 모양새는 기회 닿을 때 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줬으면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을 심사하기 전에 규제샌드박스 운용 실태 먼저 따져봤으면 한다. 적어도 규제샌드박스는 최소한의 범죄 여부만 따진 뒤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 줘야 한다. 관계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한달이 넘도록 회의를 거듭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또다른 인허가 제도로 운용하지 않아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들 열에 아홉은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고 자유롭게 사업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진정한 규제샌드박스 운용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2019-04-02 13:56:48나이가 들면서 걸음이 느려지면 노화가 심해져 건강악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 장일영 전임의와 KAIST 정희원 연구원(내과 전문의)팀이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평창군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1348명(남자 602명, 여자 746명)의 건강상태를 관찰했다고 21일 밝혔다. 노인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고, 관찰기간동안 23명은 사망하고 93명은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 결과, 보행속도가 정상보다 느린 노인들의 사망률은 2.54배, 요양병원 입원율은 1.59배 높아졌다. 특히 사망과 요양병원 입원을 포함한 전반적인 건강악화의 위험도 보행속도가 느린 노인들에서 2.13배 높았다. 또 이은주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농촌 노인들의 보행속도가 외국 노인의 보행속도에 비해 전반적으로 느리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근감소증이나 노화를 평가할 때 전체 노인의 보행속도를 기준으로 하위 4분의 1을 보행속도가 떨어진 집단으로 본다. 느린 보행속도의 국제 기준이 0.8m/s이다. 하지만 국제 기준과 달리 이은주 교수팀의 연구결과 평창군 남자 노인들의 하위 4분의 1의 보행속도는 0.663m/s였다. 여자 노인들의 경우에는 0.545m/s였다. 즉, 외국의 노인들이 1분에 약 48m를 이동할 때 우리나라 남자 노인은 40m, 여자 노인은 32m를 이동한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걷는 속도가 외국에 비해 많게는 3분의 1 정도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평소 보행속도는 노화 정도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정확한 지표로서 최근 노인들의 근감소증과 함께 노년 건강의 핵심 지표로 알려지며 노인에서 적절한 보행속도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걸음이 느려진 노인에서 사망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건강악화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특히 한국 농촌 노인들의 보행속도가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서도 많이 느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평소에 꾸준히 걸으며 걸음 속도를 비슷한 연령대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르게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노인의학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임상노화연구(Clinical interventions in Aging)' 최신호에 게재됐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18-08-21 14:39:33[이구순의 느린걸음]통신업계의 치킨게임이 걱정된다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SK텔레콤이 자기회사 가입자들끼리 음성통화는 공짜로 쓸 수 있는 '망내 무료통화'요금제를 내놓은 이후 KT가 비슷한 모양새로 요금제를 내놨다. 이후 LG U+가 다른 회사 가입자에게도 공짜로 음성전화를 걸 수 있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더니, KT가 요금제를 업그레이드해 유선전화와 이동전화 모두 공짜로 음성통화를 쓸 수 있는 요금을 내놨다. 결국 SK텔레콤도 결국 30일부터 유·무선 공짜 음성통화를 할 수 있도록 요금을 수정해 경쟁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이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에 대한 걱정을 내놓고 있다. 공멸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강한 비난도 쏟아진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본다. 통신 회사들이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을 벌이면 소비자는 싼 값에 이동전화를 쓸 수 있는데 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동통신 회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이동통신 회사들은 기업이다. 자선단체가 아니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이 공짜로 퍼주는 경쟁을 한다. 결국 기업은 공짜가 아닌 다른 상품에서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통신 3사가 공짜 음성통화 요금으로 경쟁을 벌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상품은 무엇일까? 치열하게 공짜 음성통화 경쟁을 벌이면 경쟁회사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이동통신회사는 누구일까? 애초 처음 망내 무료 음성통화 요금제가 선보였을 때까지는 가능성이 보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은 3~4년 전부터 음성통화 매출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니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무선인터넷 매출 비중을 높이고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또 음성통화 매출을 '조금' 줄여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덤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쟁이 엇나가버렸다. 무선인터넷에서 새 수익모델을 착기도 전에 경쟁회사들이 공격적으로 경쟁 레이스에 나서버린 것이다. 미처 손해를 계산하고 대비할 틈도 없이 경쟁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당사자 누구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이 치킨게임이다. 결국 치킨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치킨게임은 '너 죽고 나 죽자'는 게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의 희생양은 이제 막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알뜰폰(이동통신 재판매) 사업자들이 됐다. SK텔레콤, KT, LG U+ 같은 기존 이동통신 회사들보다 요금이 싸다는 것을 내세워 시장에 진입한 알뜰폰 사업자들은 공짜 음성통화 경쟁 때문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국 알뜰폰 사업자들도 공짜 음성통화 경쟁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면서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장 사업을 시작해 매출 한 푼 못 올려본 알뜰폰 사업자들이 공짜전쟁부터 하게 생겼으니 속앓이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통신산업은 이런 구조 때문에 정부가 대형 통신회사의 요금변경을 주시하고 통제하는 특성이 있다. 대형 사업자가 무작정 싼 요금 경쟁을 벌여 작은 사업자를 경쟁에서 탈락시키고는 다시 시장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통신산업을 주시하는 당국의 존재이유고 의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통신당국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통신정책 목표가 온통 통신요금 인하에만 집중돼 있다보니 시장의 경쟁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조차 망각한 것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가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 주는 이유는 경쟁의 생태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벌여 공멸하는 환경을 막기 위해 규제가 존재한다. 치킨게임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 국민의 몫이다. 시간문제다. 정부도 기업도 더 이상 걱정스러운 치킨게임을 이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13-04-30 15:26:14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혁신’이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기존의 방식대로 안주하다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급변하는 외부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하여 기업과 개인 모두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혁신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참여하고 있는 시장의 경우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이 개발되어도 시장 전체에 파급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며 매우 느린 속도로 혁신이 이루어진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전략컨설팅 회사인 모니터 그룹에서 컨설팅 부서를 맡고 있는 바스카르 차크라보티가 저술한 ‘혁신의 느린 걸음’(이상원 옮김)은 근본적으로 혁신이 시장에 늦게 확산되는 원인은 경제 주체들 간의 긴밀한 상호 연결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각 경제 주체들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사실 다른 경제 주체들의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을 빠르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참가자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요지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해를 위한 이론적 배경으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로 널리 알려진 또한 존 포브스 내쉬의 게임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즉, 혁신(적 제품)의 시장 도입의 속도를 좌우하는 요소들에 대한 개념의 틀을 내쉬의 ‘균형 상태’에서 찾은 것이다. 균형 상태란 기업이나 소비자 등 시장의 핵심 참여자들이 각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동시에 남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 기대할 때 나타나는 역동적인 정지 상황이다. 따라서 혁신가가 성공하려면 특정 균형 상태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뜨릴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그런 방법을 통해 경쟁자보다 앞선 전략 수립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저자는 균형 상태 개념을 ‘뷰티풀 마인드’, 즉 아름다운 구속이라 부르고 있다. 이 구속의 구조에 바탕을 이루는 것이 시장의 네트워크 특성이다. 내쉬 이론에서 선택의 균형 상태는 시장의 각 참여자가 특정 선택이 다른 모든 대안보다 더 좋다고 여길 때, 그리고 동시에 다른 시장 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행동을 선택하리라 가정할 때 만들어진다. 결국 상호 연결된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의 신제품 도입 여부는 다른 이들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새로운 제품인 만큼 참여자들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 좀더 궁금해하며 추측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상호 연결성이 점점 더 커지는 시장, 그리고 참여자들의 의사결정이 서로 뒤엉키는 상황에서 기업이 혁신가로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이 책은 혁신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보다는 혁신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혁신의 속도가 느린 원인과 이를 해결하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jochoi@bookcosmos.com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2005-02-02 12:31:15하루에도 서너가지씩 특이하게 생긴 액세서리나 주방용품을 온라인으로 사놓고 택배 기다리는 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요즘 쇼핑을 끊고 금단증상에 시달린단다. 스마트폰으로 작지만 차별적 물건을 파는 전문쇼핑몰에서 특이한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면 하루이틀 만에 택배상자가 도착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이 사라져 소소한 행복을 포기당했다고 하소연한다. 소소한 행복을 되찾기 위해 중국계 전자상거래나 아마존 같은 대형 플랫폼으로 갈아타야 하는지 고민 중이란다. 티몬·위메프(티메프)의 정산 지연사태가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었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해 있던 판매자나 물건 값을 결제해 놓고 피해를 본 소비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놓고 정부와 큐텐그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중소규모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폐업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각종 투자논의와 신사업 구상이 올스톱됐고, 중소규모 쇼핑몰들은 버티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대기업 산하의 일부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우리는 안전하다"며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니 전자상거래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정부는 티메프 사태 이후 부랴부랴 규제방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가 결제한 금액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주기를 줄여 법에 명시하고, 전자상거래 업체의 운영자금과 정산대금은 회계를 분리하겠다는 명쾌한 대안이 나와 있다. 그야말로 칼 한번 휘둘러 단번에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일도양단'의 선명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각오가 보인다."전자상거래는 일반 제조업과 다릅니다. 소비자와의 신뢰관계가 절대적입니다. 지금 누가 티몬·위메프의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려 하겠습니까. (티몬·위메프가) 회생신청을 했지만 회생할 수가 없어요."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티메프 사태를 질타하면서 지적한 발언이다. 정곡을 짚었다.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신뢰'다. 물건을 골라 결제하면 택배상자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장이 서고, 거래가 이뤄진다. 이것이 전자상거래 산업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신뢰를 잃었으니 티메프의 회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티메프 대책에 정작 중요한 '신뢰' 대책이 안 보인다. 신뢰가 전자상거래 산업의 핵심인데, 그 핵심 대책이 빠졌다. 정부가 지금 가장 먼저, 가장 근본적으로 할 일이 소비자의 신뢰를 찾을 대책 아닐까 싶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지난 한달간 폐업한 중소 전자상거래 업체가 7~8개는 된다. 소형 전자상거래 업체라도 한 업체가 폐업하면 소비자와 판매자를 합쳐 200억~500억원 사이의 피해가 발생한다. 정부가 이 피해자들의 불신과 분노를 차곡차곡 쌓으며 규제정책 만들겠다고 몰두할 때는 아니다 싶다. 그래봐야 이미 신뢰를 잃은 중소규모 쇼핑몰에 누가 물건을 사러 가겠는가. 우선 정부는 현재 전자상거래 산업 실태부터 면밀히 살폈으면 한다. 특정 기업을 때려잡으려 살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부분에 돈줄이 막혀 당장 소비자나 판매자가 피해를 입을 만한 급한 구석이 있는지 점검해 줬으면 한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계속 거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서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전자상거래 산업의 구조도 이해했으면 한다. 소비자의 신뢰가 핵심이니,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떤 정책을 쓰면 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줬으면 한다. 또 국경이 없는 전자상거래의 특성에 맞춰 국내외 기업이 차별받지 않는 산업정책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전자상거래 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일도양단의 특단책으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산업의 핵심이 되는 소비자의 신뢰와 기술적 지원, 금융의 도덕성, 국경을 초월한 제도의 투명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산업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급한 대책부터 찾고, 전문가들과 함께 산업 특성에 맞는 정교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세심한 정책설계를 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2024-08-21 18:22:06[파이낸셜뉴스] 하루에도 서너가지씩 특이하게 생긴 액서서리나 주방용품을 온라인으로 사놓고 택배 기다리는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라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요즘 쇼핑을 끊고 금단증상에 시달린단다. 스마트폰으로 작지만 차별적 물건을 파는 전문쇼핑몰에서 특이한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면 하루이틀 만에 택배상자가 도착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 믿음이 사라져 소소한 행복을 포기당했다고 하소연한다. 소소한 행복을 되찾기 위해 중국계 전자상거래나 아마존 같은 대형 플랫폼으로 갈아타야 하는지 고민중이란다.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사태가 벌어진지 한 달이 넘었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해 있던 판매자나 물건 값을 결제해 놓고 피해를 본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대책을 놓고 정부와 큐텐그룹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중소규모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폐업 소식이 줄을 잇고 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각종 투자논의와 신사업 구상이 올스톱 됐고, 중소규모의 쇼핑몰들은 버티기가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대기업 산하의 일부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우리는 안전하다"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도 한다니 전자상거래를 대하는 소비자들의 불안과 혼돈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정부는 티메프 사태 이후 부랴부랴 규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소비자가 결제한 금액을 판매자에게 정산하는 주기를 줄여 법에 명시하고, 전자상거래 업체의 운영자금과 정산대금은 회계를 분리하겠다는 명쾌한 대안이 나와 있다. 그야말로 칼 한번 휘둘러 단번에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일도양단'의 선명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각오가 보인다. "전자상거래는 일반 제조업과 다릅니다. 소비자들과의 신뢰관계가 절대적입니다. 지금 누가 티몬·위메프의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려 하겠습니까? (티몬·위메프가) 회생신청을 했지만 회생할 수가 없어요."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를 질타하면서 지적한 발언이다. 정곡을 짚었다.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신뢰'다. 물건을 골라 결제하면 택배상자가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장이 서고, 거래가 이뤄진다. 이것이 전자상거래 산업으로 자라는 것이다. 그 신뢰를 잃었으니 티메프의 회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티메프 대책에 정작 중요한 '신뢰'대책이 안 보인다. 신뢰가 전자상거래 산업의 핵심인데, 그 핵심 대책이 빠졌다. 정부가 지금 가장 먼저, 가장 근본적으로 할 일이 소비자의 신뢰를 찾을 대책 아닐까 싶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지난 한달간 폐업한 중소 전자상거래 업체가 7~8개는 된다. 소형 전자상거래업체라도 한 업체가 폐업하면 소비자와 판매자를 합쳐 200억~500억 원 사이의 피해가 발생한다. 정부가 이 피해자들의 불신과 분노를 차곡차곡 쌓으며 규제정책 만들겠다고 몰두할 때는 아니다 싶다. 그래봐야 이미 신뢰를 잃은 중소규모 쇼핑몰에 누가 물건을 사러 가겠는가? 우선 정부는 현재 전자상거래 산업의 실태부터 면밀히 살폈으면 한다. 특정 기업을 때려잡으려 살피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부분에 돈줄이 막혀 당장 소비자나 판매자가 피해를 입을 만한 급한 구석이 있는지 점검해 줬으면 한다.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계속 거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서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전자상거래 산업의 구조도 이해했으면 한다. 소비자의 신뢰가 핵심이니, 그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떤 정책을 쓰면 되는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줬으면 한다. 또 국경이 없는 전자상거래의 특성에 맞춰 국내외 기업이 차별받지 않는 산업정책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전자상거래 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일도양단의 특단책으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산업의 핵심이 되는 소비자의 신뢰와 기술적 지원, 금융의 도덕성, 국경을 초월한 제도의 투명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산업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급한 대책부터 찾고, 전문가들과 함께 산업의 특성에 맞는 정교한 대책을 만들겠다는 세심한 정책설계를 해줬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08-21 16:25:51퇴근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시계를 힐끔거리던 금요일 오후, 쎄~한 기운을 풍기는 속보가 모니터에 올라온다. 전산마비로 미국과 호주의 공항이 멈췄다는 외신이다. 해외 전산장애 소식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 클라우드 서비스가 장애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후속기사가 뜬다. 이제부터는 남 얘기가 아니다. 맡은 일이 디지털본부장이니, 당장 우리 회사 시스템 이상 여부부터 봐야 한다. 우리 직원들 PC도 점검해야 하고, 국내 피해상황에 대한 기사 출고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 여기저기 점검한 뒤 상황을 종합하면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나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보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회사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고, 국내 기업이나 공공서비스도 큰 피해는 없다'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어떤 사고가 난 거야? 원인이 뭐야? 왜 한국은 피해가 적은 거야? 이제부터는 진단과 대책이 궁금하다.주말까지는 MS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켰다는 추측이 주류였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라는 글로벌 사이버 보안업체의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MS의 윈도 운영체제(OS)와 충돌했고, 클라우드 서비스에 장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MS보다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를 주로 사용하고, 그나마 은행이나 공공기관들은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 적었다는 분석이 뒤에 붙여졌다. 이런 추측 속에서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국내에서는) 해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것으로 파악됐고, 이는 우리의 보안인증제도(CSAP), 국산 보안솔루션 등 IT 기반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공공기관은 보안인증(CSAP)을 받은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만 사용해야 하는데, 해외 서비스 중 CSAP 인증을 받은 곳은 아직 없다. 마침 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 낙점된 유상임 후보자는 22일 "우리의 정보기술(IT) 안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정책 방향을 시사했다. 대통령실과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의 말은 우리나라가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에 폐쇄적이어서 IT대란의 피해가 적었다는 자랑, 앞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할 때 한국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해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정도로 해석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클라우드 국경 수비를 강화해 외풍을 막겠다는 말일까. 그런데 전문가들은 IT대란에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일단 클라우드는 죄가 없단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시스템도 피해사례가 접수됐고, MS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더라도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 시스템은 피해가 없었단다. 결국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업데이트가 MS 윈도와 충돌을 일으켰고, 윈도OS와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 프로그램을 동시에 사용한 시스템이 피해를 입은 것이란다. 그렇다면 대통령실과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가 내놓은 클라우드 국경 강화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단이 달라졌는데 IT대란에 대한 처방은 유지하는 것일까? 사실 AI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산업에 파고들면서 우리 IT정책 중 재검토가 시급한 정책 중 하나가 클라우드 정책이다. AI와 클라우드컴퓨팅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하는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유독 클라우드 국경의 장벽이 너무 높아 AI를 이용한 서비스 개발이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 IT정책은 글로벌 클라우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클라우드 산업을 키우면서 AI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경의 장벽을 낮춰야 하는 숙제가 있다. 또 글로벌 IT대란이 생기면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해복구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 숙제들은 그동안의 폐쇄형 정책을 자화자찬하고, 장벽을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정책은 더 신중하고 세밀해야 한다. 근본적인 정책점검이 필요하다. cafe9@fnnews.com
2024-07-23 18:07:45[파이낸셜뉴스] 퇴근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시계를 힐끔거리던 금요일 오후, 쎄~한 기운을 풍기는 속보가 모니터에 올라온다. 전산마비로 미국과 호주의 공항이 멈췄다는 외신이다. 해외 전산장애가 소식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마이크로소프트(MS) 클라우드 서비스가 장애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후속기사가 뜬다. 이제부터는 남얘기가 아니다. 맡은 일이 디지털본부장이니, 당장 우리 회사 시스템 이상 여부부터 봐야 한다. 우리 직원들 PC도 점검해야 하고, 국내 피해상황에 대한 기사 출고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 여기저기 점검한 뒤 상황을 종합하면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나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보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회사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고, 국내 기업이나 공공서비스도 큰 피해는 없다'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어떤 사고가 난 거야? 원인이 뭐야? 왜 한국은 피해가 적은거야? 이제부터는 진단과 대책이 궁금하다. 주말까지는 MS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장애를 일으켰다는 추측이 주류였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라는 글로벌 사이버 보안업체의 업데이트 프로그램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MS의 윈도 운영체제(OS)와 충돌했고 클라우드 서비스에 장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MS보다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클라우드를 주로 사용하고, 그나마 은행이나 공공기관들은 글로벌 클라우드 서비스를 아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피해가 적었다는 분석이 뒤에 붙여졌다. 이런 추측 속에서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국내에서는)해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것으로 파악됐고, 이는 우리의 보안인증제도(CSAP), 국산 보안솔루션 등 IT 기반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공공기관은 보안인증(CSAP)을 받은 민간 클라우드 서비스만 사용해야 하는데, 해외 서비스 중 CSAP 인증을 받은 곳은 아직 없다. 마침 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 낙점된 유상임 후보자는 22일 "우리의 정보기술(IT) 안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정책 방향을 시사했다. 대통령실과 과기정통부장관 후보의 말은 우리나라가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에 폐쇄적이어서 IT대란의 피해가 적었다는 자랑, 앞으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할 때 한국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해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정도로 해석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 정부가 내놓은 처방은 클라우드 국경 수비를 강화해 외풍을 막겠다는 말일까. 그런데 전문가들은 IT대란에 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일단 클라우드는 죄가 없단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시스템도 피해사례가 접수됐고, MS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더라도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 프로그램을 쓰지 않는 시스템은 피해가 없었단다. 결국 크라우드스트라이크의 업데이트가 MS 윈도와 충돌을 일으켰고, 윈도OS와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 프로그램을 동시에 사용한 시스템이 피해 를 입은 것이란다. 그렇다면 대통령실과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가 내놓은 클라우드 국경 강화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단이 달라졌는데 IT대란에 대한 처방은 유지하는 것일까? 사실 AI가 전세계적으로, 모든 산업에 파고들면서 우리 IT정책 중 재검토가 시급한 정책 중 하나가 클라우드 정책이다. AI와 클라우드컴퓨팅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하는 기술인데, 우리나라는 유독 클라우드 국경의 장벽이 너무 높아 AI를 이용한 서비스 개발이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 IT정책은 글로벌 글라우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한국 클라우드 산업을 키우면서 AI를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국경의 장벽을 낮춰야 하는 숙제가 있다. 또 글로벌 IT대란이 생기면 신속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재해복구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이 숙제들은 그동안의 폐쇄형 정책을 자화자찬하고, 장벽을 높이는 것으로는 해결 안된다. 그래서 정책은 보다 신중하고 세밀해야 한다. 근본적인 정책 점검이 필요하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07-23 12:25:15현업 기자들의 공부란 게 통상 원포인트 교육이다. 현안이 생기면 주변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그 한 가지를 깊게, 빠르게 공부하고 충실한 기사로 써내는 훈련을 한다. 1990년대 기자를 시작하면서 통신시장 취재를 맡았으니 나 역시 정통하다고 소문난 전문가들을 쫓아다니며 통신정책을 공부했다. 당시는 통신시장 경쟁이 도입 초기여서 통신경쟁 정책의 세계적 동향이나 경쟁상황을 배울 수 있는 고마운 기회를 얻었다. 1984년에 미국 정부는 유선전화 시장의 9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던 AT&T를 7개 지역사업자로 분할하고, 장비제조 자회사 웨스턴일렉트릭은 다른 통신회사에 장비 판매를 제한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AT&T는 시내전화, 시외전화, 통신장비 생산을 모두 거느린 통신공룡이었는데 AT&T의 수직결합 모델이 독점력을 키우고 있어 이를 해소해야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통신산업의 원조인 미국의 경쟁정책은 1980년대 후반 통신시장 경쟁체제를 추진하던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에 경쟁정책 교과서 격이었다. 수직결합 모델의 AT&T를 분할하는 과정과 정책의 효과에 대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연구와 자국 적용방법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우리나라도 1986년부터 미국의 통신정책을 연구하고 경쟁정책을 하나씩 세워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은 30년 전 통신정책 얘기가 최근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재벌집 이혼사건에 당시 통신정책이 거론되면서다. 남의 집 안타까운 가정사를 온 국민이 들여다보는 게 면구스럽다는 생각에 굳이 들여다보지 않겠다 했었다. 그런데 법원 판결이 당시 통신정책을 소환했다 해서 눈길이 간다. 법원은 1991년 체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삼성, 현대, 대우, LG 등 4대 그룹이 제2이동통신 사업에 10% 이상 지분을 소유하거나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특혜라고 짚었단다. 당시 대통령이 사돈기업 SK에 유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여줬다는 말이다. 말의 '아'와 '어'는 이렇게 다른 결론을 내는구나 싶다. 4대 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라고 하니 어쩐지 기울어진 운동장의 느낌이 뒤따른다. 그런데 정확한 통신정책의 핵심은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개발한 전전자교환기를 4대 그룹이 생산했으니, 4대 그룹이 당시 국내 통신장비 제조사 전부다. AT&T처럼 장비 제조사가 통신서비스 사업을 수직결합하면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결한 미국 정부의 판단을 전기통신사업법에 담은 것이다. 게다가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 통신당국은 장비 수출을 위한 정책을 우선순위에 뒀다. 통신서비스는 내수산업이고, 장비는 수출산업이니 장비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전전자교환기 생산을 해외시장 개척 능력이 있는 4대 그룹에 맡기고 당시 유일한 시내전화회사 KT가 4개사의 교환기를 비슷한 비율로 구입하게 한다. KT에서의 필드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교환기를 해외 통신사업자에게 수출하라는 것이다. 이동통신 역시 같은 구조를 짰다. 장비 제조회사가 특정 이동통신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면, 해외의 통신회사는 경쟁 소지가 있는 장비업체의 장비를 구입하지 않게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4대 그룹 이동통신 진입 제한 정책을 특정인을 위해 운동장을 기울인 꼼수로 폄훼하면 안 된다. 오히려 통신장비와 서비스의 수직결합을 막고, 이동통신 장비 수출 확대를 위한 목표를 중립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어떤 권력자가 정책을 결정하면서 특정 기업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실제로 마음이 작동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통신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의 기록과 당시의 시장상황 기록 등 남겨진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1990년대의 통신정책은 재벌집 이혼판결에 소환돼 '의문의 1패'를 당하기에는 억울하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황적 추론보다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06-19 18:18:27[파이낸셜뉴스] 현업 기자들의 공부란게 통상 원포인트 교육이다. 현안이 생기면 주변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그 한가지를 깊게, 빠르게 공부하고 충실한 기사로 써내는 훈련을 한다. 선배기자들부터 제일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90년대 기자를 시작하면서 통신시장 취재를 맡았으니 나 역시 정통하다고 소문난 전문가들을 쫓아다니며 통신정책을 공부했다. 당시는 통신시장 경쟁이 도입 초기여서, 통신경쟁 정책의 세계적 동향이나 경쟁상황을 배울 수 있는 고마운 기회를 얻었다. 1984년에 미국정부는 유선전화 시장의 9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던 AT&T를 7개의 지역사업자로 분할하고, 장비제조 자회사 웨스턴일렉트릭은 다른 통신회사에 장비 판매를 제한하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AT&T는 시내전화, 시외전화, 통신장비 생산을 모두 거느린 통신공룡이었는데, AT&T의 수직결합 모델이 독점력을 키우고 있어 이를 해소해야 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통신산업의 원조인 미국의 경쟁정책은 80년대 후반 통신시장 경쟁체제를 추진하던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주요국가들에 경쟁정책 교과서 격이었다. 수직결합 모델의 AT&T를 분할하는 과정과 정책의 효과에 대해 세계 주요 국가들이 연구와 자국 적용방법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우리나라도 86년 부터 미국의 통신정책을 연구하고 경쟁정책을 하나씩 세워가기 시작했다. 그닥 재미있지도 않은 30년 전 통신정책 얘기가 최근 세간의 화제다. 재벌집 이혼사건에 당시 통신정책이 거론되면서다. 남의 집 안타까운 가정사를 온국민이 들여다보는게 면구스럽단 생각에 굳이 안들여다보자 했었다. 그런데 법원 판결이 당시 통신정책을 소환했다 해서 눈길이 간다. 법원은 91년 체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삼성, 현대, 대우, LG 등 4대그룹이 제2이동통신 사업에 10% 이상 지분을 소유하거나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한 조항이 특혜라고 짚었단다. 당시 대통령이 사돈기업 SK에 유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여줬다는 말이다. 말의 '아'와 '어'는 이렇게 다른 결론을 내는구나 싶다. 4대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라고 하니 어쩐지 기울어진 운동장의 느낌이 뒤따른다. 그런데 정확한 통신정책의 핵심은 통신장비 제조업체의 이동통신 사업 제한이다. 70년대 우리나라가 개발한 전전자교환기를 4대 그룹이 생산했으니, 4대 그룹이 당시 국내 통신장비제조사 전부다. AT&T처럼 장비제조사가 통신서비스 사업을 수직결합하면 경쟁이 제한된다고 판결한 미국정부의 판단을 전기통신사업법에 담은 것이다. 게다가 90년대까지 우리나라 통신 당국은 장비 수출을 위한 정책을 우선순위에 뒀다. 통신서비스는 내수산업이고 장비는 수출산업이니 장비산업을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전전자교환기 생산을 해외시장 개척 능력이 있는 4대그룹에 맡기고 당시 유일한 시내전화회사 KT가 4개사의 교환기를 비슷한 비율로 구입하게 한다. KT에서의 필드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교환기를 해외 통신사업자에 수출하라는 것이다. 이동통신 역시 같은 구조를 짰다. 장비 제조회사가 특정 이동통신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면, 해외의 통신회사는 경쟁 소지가 있는 장비업체의 장비를 구입하지 않게 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96년 PCS사업 불참을 선언하면서 "장비 사업에 역량을 집중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니 4대그룹 이동통신 진입 제한 정책은 특정인을 위해 운동장을 기울인 꼼수라고 폄훼하면 안된다. 오히려 통신장비와 서비스의 수직결합을 막고, 이동통신 장비 수출 확대를 위한 목표를 중립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어떤 권력자가 정책을 결정하면서 특정기업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 실제로 마음을 작동했는지는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신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의 기록과 당시의 시장상황 기록 등 남겨진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90년대의 통신정책은 재벌집 이혼판결에 소환돼 의문의 1패를 당하기에는 억울하다. 정책에 대한 평가는 상황적 추론보다는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06-19 08:3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