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된지 4개월차로 접어든다. 정보통신기술(ICT), 금융, 산업 등 분야별로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던 기업들이 규제샌드박스에 벅찬 기대를 걸고 몰려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말 그대로 모호한 제도의 틀을 벗어나 일정기간동안 규제를 유예해주면서 우선 사업을 해보도록 하는 제도이니, 그동안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고 느낀 기업들에게는 자유공간인 셈이다. 이구순 느린걸음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샌드박스에는 9개 기업이 신청했고, 4월 시작된 금융위원회 규제특례에는 105개 기업이 몰렸다. 모두가 규제에 힘들어했던 기업들일게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 혁파를 외치고, 규제 혁파의 모델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고 얘기할 때 일각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있었다. 규제샌드박스가 규제의 자유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규제허들로 작용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4개월차로 접어드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운용과정에서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 규제샌드박스는 9개 신청 기업 중 2개 기업만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았다. 금융위에 규제특례를 신청한 105개 기업 중에서는 19개 기업이 우선심사 대상이 됐다. 금융위는 우선심사 대상 기업들에게 정식신청을 다시 받아 혁신금융심사위원회를 열고 금융위원회가 최종 심사를 통해 규제특례 여부를 결정한다. 2단계 3단계의 복잡한 심사를 거쳐 규제를 유예해 주는 제도가 과연 샌드박스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게다가 규제특례를 신청한 기업은 웬만한 기업설립 서류만큼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 제출해야 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업내용을 묻는 담당 공무원에게 일일이 설명하느라 아예 한달 넘도록 사업을 못했다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에 진입하는게 웬만한 정부 인가 받는 것 만큼 어렵다고 한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일단 한번 해보라는 제도 아닌가? 우선 사업을 시작하고, 제도에 맞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면이 드러나면 특례를 거둬들이고 다시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테스트 같은 개념 어난가? 그런데 그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지금처럼 까다롭게 운용된다면 존재 이유가 있는가? 결국 ‘일단 한번 해볼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새로운 규제허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무원들이 곰곰히 따져줬으면 한다. 대통령은 기회 닿을 때 마다 신산업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해 달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움직이는 모양새는 기회 닿을 때 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줬으면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을 심사하기 전에 규제샌드박스 운용 실태 먼저 따져봤으면 한다. 적어도 규제샌드박스는 최소한의 범죄 여부만 따진 뒤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 줘야 한다. 관계부처 고위 공무원들이 모여 한달이 넘도록 회의를 거듭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또다른 인허가 제도로 운용하지 않아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들 열에 아홉은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고 자유롭게 사업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 진정한 규제샌드박스 운용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2019-04-02 13:56:48나이가 들면서 걸음이 느려지면 노화가 심해져 건강악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 장일영 전임의와 KAIST 정희원 연구원(내과 전문의)팀이 평창군 보건의료원과 함께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평창군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1348명(남자 602명, 여자 746명)의 건강상태를 관찰했다고 21일 밝혔다. 노인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고, 관찰기간동안 23명은 사망하고 93명은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그 결과, 보행속도가 정상보다 느린 노인들의 사망률은 2.54배, 요양병원 입원율은 1.59배 높아졌다. 특히 사망과 요양병원 입원을 포함한 전반적인 건강악화의 위험도 보행속도가 느린 노인들에서 2.13배 높았다. 또 이은주 교수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농촌 노인들의 보행속도가 외국 노인의 보행속도에 비해 전반적으로 느리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보통 근감소증이나 노화를 평가할 때 전체 노인의 보행속도를 기준으로 하위 4분의 1을 보행속도가 떨어진 집단으로 본다. 느린 보행속도의 국제 기준이 0.8m/s이다. 하지만 국제 기준과 달리 이은주 교수팀의 연구결과 평창군 남자 노인들의 하위 4분의 1의 보행속도는 0.663m/s였다. 여자 노인들의 경우에는 0.545m/s였다. 즉, 외국의 노인들이 1분에 약 48m를 이동할 때 우리나라 남자 노인은 40m, 여자 노인은 32m를 이동한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노인들이 걷는 속도가 외국에 비해 많게는 3분의 1 정도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평소 보행속도는 노화 정도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정확한 지표로서 최근 노인들의 근감소증과 함께 노년 건강의 핵심 지표로 알려지며 노인에서 적절한 보행속도를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걸음이 느려진 노인에서 사망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건강악화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특히 한국 농촌 노인들의 보행속도가 국제적인 기준에 비해서도 많이 느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평소에 꾸준히 걸으며 걸음 속도를 비슷한 연령대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르게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노인의학 분야의 국제학술지인 '임상노화연구(Clinical interventions in Aging)' 최신호에 게재됐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18-08-21 14:39:33[이구순의 느린걸음]통신업계의 치킨게임이 걱정된다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SK텔레콤이 자기회사 가입자들끼리 음성통화는 공짜로 쓸 수 있는 '망내 무료통화'요금제를 내놓은 이후 KT가 비슷한 모양새로 요금제를 내놨다. 이후 LG U+가 다른 회사 가입자에게도 공짜로 음성전화를 걸 수 있는 파격적인 요금제를 내놓더니, KT가 요금제를 업그레이드해 유선전화와 이동전화 모두 공짜로 음성통화를 쓸 수 있는 요금을 내놨다. 결국 SK텔레콤도 결국 30일부터 유·무선 공짜 음성통화를 할 수 있도록 요금을 수정해 경쟁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정보통신기술(ICT) 전문가들이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에 대한 걱정을 내놓고 있다. 공멸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강한 비난도 쏟아진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생각해 본다. 통신 회사들이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을 벌이면 소비자는 싼 값에 이동전화를 쓸 수 있는데 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동통신 회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 이동통신 회사들은 기업이다. 자선단체가 아니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이 공짜로 퍼주는 경쟁을 한다. 결국 기업은 공짜가 아닌 다른 상품에서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통신 3사가 공짜 음성통화 요금으로 경쟁을 벌이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상품은 무엇일까? 치열하게 공짜 음성통화 경쟁을 벌이면 경쟁회사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이동통신회사는 누구일까? 애초 처음 망내 무료 음성통화 요금제가 선보였을 때까지는 가능성이 보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은 3~4년 전부터 음성통화 매출로는 더 이상 성장이 어려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니 수익을 높일 수 있는 무선인터넷 매출 비중을 높이고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또 음성통화 매출을 '조금' 줄여 휴대폰 보조금 경쟁을 줄일 수 있는 덤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경쟁이 엇나가버렸다. 무선인터넷에서 새 수익모델을 착기도 전에 경쟁회사들이 공격적으로 경쟁 레이스에 나서버린 것이다. 미처 손해를 계산하고 대비할 틈도 없이 경쟁이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당사자 누구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이 치킨게임이다. 결국 치킨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치킨게임은 '너 죽고 나 죽자'는 게임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이동통신 회사들의 공짜 음성통화 요금 경쟁의 희생양은 이제 막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알뜰폰(이동통신 재판매) 사업자들이 됐다. SK텔레콤, KT, LG U+ 같은 기존 이동통신 회사들보다 요금이 싸다는 것을 내세워 시장에 진입한 알뜰폰 사업자들은 공짜 음성통화 경쟁 때문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국 알뜰폰 사업자들도 공짜 음성통화 경쟁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면서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장 사업을 시작해 매출 한 푼 못 올려본 알뜰폰 사업자들이 공짜전쟁부터 하게 생겼으니 속앓이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통신산업은 이런 구조 때문에 정부가 대형 통신회사의 요금변경을 주시하고 통제하는 특성이 있다. 대형 사업자가 무작정 싼 요금 경쟁을 벌여 작은 사업자를 경쟁에서 탈락시키고는 다시 시장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통신산업을 주시하는 당국의 존재이유고 의무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통신당국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통신정책 목표가 온통 통신요금 인하에만 집중돼 있다보니 시장의 경쟁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조차 망각한 것 아닌가 싶다. 자본주의가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해 주는 이유는 경쟁의 생태계 속에서 서로 성장하라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벌여 공멸하는 환경을 막기 위해 규제가 존재한다. 치킨게임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 국민의 몫이다. 시간문제다. 정부도 기업도 더 이상 걱정스러운 치킨게임을 이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13-04-30 15:26:14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혁신’이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기존의 방식대로 안주하다가는 도태될 수 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급변하는 외부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대통령을 비롯하여 기업과 개인 모두 혁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만큼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혁신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참여하고 있는 시장의 경우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이 개발되어도 시장 전체에 파급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리며 매우 느린 속도로 혁신이 이루어진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전략컨설팅 회사인 모니터 그룹에서 컨설팅 부서를 맡고 있는 바스카르 차크라보티가 저술한 ‘혁신의 느린 걸음’(이상원 옮김)은 근본적으로 혁신이 시장에 늦게 확산되는 원인은 경제 주체들 간의 긴밀한 상호 연결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각 경제 주체들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과 같은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사실 다른 경제 주체들의 선택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혁신을 빠르게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참가자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요지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해를 위한 이론적 배경으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로 널리 알려진 또한 존 포브스 내쉬의 게임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즉, 혁신(적 제품)의 시장 도입의 속도를 좌우하는 요소들에 대한 개념의 틀을 내쉬의 ‘균형 상태’에서 찾은 것이다. 균형 상태란 기업이나 소비자 등 시장의 핵심 참여자들이 각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동시에 남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 기대할 때 나타나는 역동적인 정지 상황이다. 따라서 혁신가가 성공하려면 특정 균형 상태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뜨릴 방법을 알아내야 하고 그런 방법을 통해 경쟁자보다 앞선 전략 수립이 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저자는 균형 상태 개념을 ‘뷰티풀 마인드’, 즉 아름다운 구속이라 부르고 있다. 이 구속의 구조에 바탕을 이루는 것이 시장의 네트워크 특성이다. 내쉬 이론에서 선택의 균형 상태는 시장의 각 참여자가 특정 선택이 다른 모든 대안보다 더 좋다고 여길 때, 그리고 동시에 다른 시장 구성원들이 모두 같은 행동을 선택하리라 가정할 때 만들어진다. 결국 상호 연결된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의 신제품 도입 여부는 다른 이들의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새로운 제품인 만큼 참여자들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지 좀더 궁금해하며 추측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상호 연결성이 점점 더 커지는 시장, 그리고 참여자들의 의사결정이 서로 뒤엉키는 상황에서 기업이 혁신가로서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 특별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이 책은 혁신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얘기보다는 혁신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혁신의 속도가 느린 원인과 이를 해결하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jochoi@bookcosmos.com 최종옥 북코스모스 대표
2005-02-02 12:31:15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판매지원금 담합에 대한 판단을 담아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내년 초 전원회의를 통해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는 공식 절차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사안을 보는 관계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당사자인 이동통신 3사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까지 "이 사안은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정당한 행위"라고 목청을 높인다. 정부 부처 간에도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이 사안을 놓고 공정위의 담합 판단이 과연 무엇을 위한 정의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안의 시작점이 되는 단통법을 들여다봐야 이 사안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듯하다. 단통법은 소비자에게 차별 없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 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통법 골자는 모든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투명하게 지급하고,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균형 있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의 과열경쟁으로 소비자의 불평등이 횡행하던 시기에, 경쟁을 제한하더라도 소비자 차별을 줄이는 정책적 목표를 선택한 것이다. 단통법 시행 10년이 지난 최근 소비자 사이에서 이동통신 3사 간에 단말기 지원금과 요금제의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이동통신사 간의 실질적인 경쟁이 사라지고, 소비자에게는 획일적 선택지만 남았다는 비판이다. 이번에 공정위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동통신 3사의 경쟁이 제한돼 과도한 가격 안정화를 도모했다는 의혹이다. 이동통신사들이 단통법 틀 안에서 협력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논리다. 최근 제기되는 소비자의 불만과 일맥상통한다. 이 지점에서 핵심을 따져보자. 공정위 잣대에 '담합'으로 찍힌 행위가 이동통신 3사의 자발적 협의인가? 법과 제도에 따른 결과인가? 단통법 자체가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인해 특정 소비자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고 수많은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는 불합리를 막겠다는 목표를 가진 법이었으니, 이동통신 3사는 법률과 주무부처의 지시에 따라 지원금을 조정하고 선택약정할인제도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선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경쟁이 제한됐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비자에게 보편적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반작용이자,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던 이동통신 시장의 정상화를 목표로 정한 정책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법률과 정책을 만든 정부가 정책을 따른 기업을 의도적인 담합행위자로 몰아세우는 것이 이동통신사 담합 사건의 본질 아닌가 싶다. 특히 통신시장은 기업 간 무한경쟁이 소비자 이익으로 직결되는 일반적 경쟁논리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성이 있다. 본질적으로 고정비가 높은 독과점 구조를 가진 통신시장에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면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여력이 약화된다. 이 때문에 통신산업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경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전문 규제기관을 두고 주무부처의 전문성을 다른 부처에서도 우선적으로 수용한다. 공정위의 역할은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업이 공정했는가 하는 단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권익을 최고의 정의로 놓고 기업 간 경쟁이 공정했는지, 제도가 시효를 다한 것은 없는지 따지는 것이다. 세간에는 공정위가 "모든 사건에서 부처 의견부터 일일이 고려하면 조사 자체에 나서기 어렵다"며 과기부·방통위 의견에 대해 난처해한다는 소문도 돈다. 이 대목에서 공정위가 기관의 역할을 직시했으면 한다. 공정위는 기업을 처벌하는 조직이 아니다. 소비자 권익이라는 정의를 위해 공정한 시장을 조성해 가는 기관이다. 공정위는 이동통신사 제재를 논의하기 전에 통신 소비자 권익이라는 정의를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cafe9@fnnews.com
2024-11-20 18:06:23[파이낸셜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에 판매지원금 담합에 대한 판단을 담아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내년 초 전원회의를 통해 제재 여부와 수위를 결정하는 공식 절차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 사안을 보는 관계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당사자인 이동통신 3사 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까지 "이 사안은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정당한 행위"라고 목청을 높인다. 동일한 사안을 놓고 정부부처 간에도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이 사안을 놓고, 공정위의 담합 판단이 과연 무엇을 위한 정의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사안의 시작점이 되는 단통법을 들여다 봐야 이 사안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듯 하다. 단통법은 소비자에게 차별없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 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통법 골자가 모든 소비자에게 지원금을 투명하게 지급하고, 요금할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균형있게 제공하라는 것이다. 이동통신 회사들의 과열경쟁으로 소비자의 불평등이 횡행하던 시기에, 경쟁을 제한하더라도 소비자 차별을 줄이는 정책적 목표를 선택한 것이다. 단통법 시행 10년이 지난 최근 소비자들은 이동통신 3사 간에 단말기 지원금과 요금제의 차별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기는 하다. 이동통신사 간의 실질적인 경쟁이 사라지고, 소비자에게는 획일적인 선택지만 남았다는 비판이다. 이번에 공정위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동통신 3사의 경쟁이 제한돼 과도한 가격 안정화를 도모했다는 의혹이다. 이동통신 회사들이 단통법 틀 안에서 협력적으로 행동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논리다. 최근 제기되는 소비자들의 불만과 일맥상통한다. 이 지점에서 핵심을 따져보자. 공정위 잣대에 '담합'으로 찍힌 행위가 이동통신 3사의 자발적 협의인가? 법과 제도에 따른 결과인가? 단통법 자체가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인해 특정 소비자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고 수많은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는 불합리를 막겠다는 목표를 가진 법이었으니, 이동통신 3사는 법률과 주무부처의 지시에 따라 지원금을 조정하고 선택약정할인제도를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선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경쟁이 제한됐다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비자에게 보편적인 요금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반작용이자,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던 이동통신 시장의 정상화를 목표로 정한 정책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법률과 정책을 만든 정부가 정책을 따른 기업을 의도적인 담합 행위자로 몰아세우는 것이 이통사 담합 사건의 본질아닌가 싶다. 특히 통신시장은 기업간 무한경쟁이 소비자 이익으로 직결되는 일반적인 경쟁논리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성이 있다. 본질적으로 고정비가 높은 독과점 구조를 가진 통신시장에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면 기업들의 인프라 투자여력이 약화된다.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의 서비스 품질이 떨어지고 국가적 통신 인프라가 낙후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신산업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경쟁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전문 규제기관을 두고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장기적 투자계획과 시장정챡을 결정한다. 그래서 주무부처의 전문성을 다른 부처에서도 우선적으로 수용한다. 공정위의 역할은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업이 공정했는가 하는 단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권익을 최고의 정의에 놓고 기업간 경쟁이 공정했는지, 제도가 시효를 다한 것은 없는지 따지는 것이다. 세간에는 공정위가 "모든 사건에서 부처 의견부터 일일이 고려하면 조사 자체에 나서기 어렵다"며 과기부·방통위 의견에 대해 난처해 한다는 소문도 돈다. 이 대목에서 공정위가 기관의 역할을 직시했으면 한다. 공정위는 기업을 처벌하는 조직이 아니다. 소비자 권익이라는 정의를 위해 공정한 시장을 조성해가는 기관이다. 공정위는 이동통신사 제재를 논의하기 전에 통신 소비자 권익이라는 정의를 큰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11-19 18:04:46"CDMA(부호분할다중접속)를 한국의 디지털 이동통신 단일표준으로 선정한다". 이동통신 서비스 시작을 앞둔 1993년 한국 정부는 운명을 건 모험을 선택했다. 당시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주력기술인 유럽단일표준(GSMA)을 사용하지 않고, 아직 상용서비스조차 없던 CDMA를 국가 단일표준으로 사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정부는 "GSMA를 선택하면 안정적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한국은 단순한 이동통신 소비시장에 멈출 수밖에 없다. CDMA를 선택하면 한국 기업이 이동통신 장비와 단말기를 개발·생산하고, 서비스 기술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CDMA의 기회론을 제시했다. 한국 이동통신 시장을 단순소비시장이 아닌 공급과 소비가 공존하는 생태계로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구글이 세계 인터넷 시장을 무섭게 점령해가고 있던 1990년대 중반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이라는 방식으로 무모해 보이는 도전장을 냈다.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국인의 문화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어, 한국을 단순 인터넷 소비시장으로 만들지 않고 소비와 공급이 공존하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기업가 정신이었다. 얼핏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정부와 기업의 도전은 결국 'IT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을 일궈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027년 한국을 AI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킬 것"이라며 'AI 국가 총력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가AI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국가 AI전략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나섰다. 'AI 3대 강국' 목표가 'AI를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쓰는 나라' 전략은 아닐 게다. 이동통신과 인터넷에서 그랬듯 한국의 AI 기반 위에 한국 기업들이 금융·의료·산업 등 부문별 AI서비스를 개발하고, 한국 서비스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밑그림일 것이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숙제이지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오픈AI를 주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 한 회사가 이미 140억달러(약 19조3326억원)를 AI에 투자했다는데, 국내 AI투자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네이버의 투자계획이 1조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AI전쟁 참여가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간 협력을 중재해 낼 윤 대통령의 지휘봉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 AI기술의 고품질 핵심연료가 쌓여 있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같은 통신회사들의 네트워크상에서 오가는 무수한 정보는 AI가 학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AI산업에서 이 둘은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다. 이 둘이 협력하면 AI의 폭발적인 시너지가 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좀체 이들의 협력 소식이 없다. 오히려 KT는 MS와 손잡고 국내 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KT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총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국내 최고 국민기업 KT가 그럴 리 없겠지만, 아쉽다. 'AI 3대 강국'이라는 국가전략을 위해서라면 자립적인 AI 생태계 구축이 한발 앞서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지휘봉에 힘이 실렸으면 한다. 자립적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내 데이터·네트워크 기업 간 협력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도록 세심한 지휘를 해 줬으면 한다. 당장 국내 기업들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들고 협력할 수 있도록 칸막이 규제를 없애고, 협력의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 또 AI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법률조항이 없는 개인정보, 공공정보 활용방안에 대해서는 서둘러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 기껏 기업들이 AI서비스를 만들어 놨는데, 뒤늦게 만들어진 법률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말이다. 빅테크기업들에 비해 자금력이 달리는 국내 상황을 고려해 대량의 GPU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국내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국가AI데이터센터를 서둘러 만들면 투자비 걱정도 덜어줄 수 있을 게다. IT신화가 AI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힘 있고 세심한 AI 지휘를 응원한다. cafe9@fnnews.com
2024-10-22 18:25:52[파이낸셜뉴스]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를 한국의 디지털 이동통신 단일표준으로 선정한다". 이동통신 서비스 시작을 앞둔 1993년 한국 정부는 운명을 건 모험을 선택했다. 당시 세계 이동통신 시장의 주력기술인 GSMA(유럽단일표준)를 사용하지 않고, 아직 상용서비스 조차 없던 CDMA를 국가 단일표준으로 사용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정부는 "GSMA를 선택하면 안정적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한국은 단순한 이동통신 소비시장에 멈출 수 밖에 없다. CDMA를 선택하면 한국기업이 이동통신 장비와 단말기를 개발·생산하고, 서비스 기술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CDMA의 기회론을 제시했다. 한국 이동통신 시장을 단순소비시장이 아닌 공급과 소비가 공존하는 생태계로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구글이 세계 인터넷 시장을 무섭게 점령해가고 있던 90년대 중반 네이버와 다음은 포털이라는 방식으로 무모해 보이는 도전장을 냈다.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국인의 문화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어, 한국을 단순 인터넷 소비시장으로 만들지 않고 소비와 공급이 공존하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기업가 정신이었다. 얼핏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정부와 기업의 도전은 결국 'IT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을 일궈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027년 한국을 AI 3대강국으로 도약시킬 것"이라며 'AI 국가 총력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가AI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국가 AI전략을 진두지휘하겠다고 나섰다. 'AI 3대강국' 목표가 'AI를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쓰는 나라' 전략은 아닐 게다. 이동통신과 인터넷에서 그랬듯 한국의 AI 기반 위에 한국기업들이 금융, 의료, 산업 등 부문별 AI서비스를 개발하고, 한국서비스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밑그림일 것이다.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숙제지만 결코 가벼운 숙제가 아니다. 오픈AI를 주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 한 회사가 이미 140억달러(약 19조3326억원)를 AI에 투자했다는데, 국내 AI투자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네이버의 투자계획이 1조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AI전쟁 참여가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 기업과 기업 간 협력을 중재해 낼 윤석열 대통령의 지휘봉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한국은 AI기술의 고품질 핵심연료가 쌓여있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같은 통신회사들의 네트워크 상에서 오가는 무수한 정보는 AI가 학습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사용자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AI산업에서 이 둘은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다. 이 둘이 협력하면 AI의 폭발적인 시너지가 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좀체 이들의 협력 소식이 없다. 오히려 KT는 MS와 손잡고 국내 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KT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국총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국내 최고 국민기업 KT가 그럴리 없겠지만, 아쉽다. 'AI 3대강국'이라는 국가전략을 위해서라면 자립적인 AI 생태계 구축이 한발 앞서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이라도 정부의 지휘봉에 힘이 실렸으면 한다. 자립적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내 데이터·네트워크 기업간 협력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도록 세심한 지휘를 해 줬으면 한다. 당장 국내 기업들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들고 협력할 수 있도록 칸막이 규제를 없애고, 협력의 당근도 제시해야 한다. 또 AI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법률조항이 없는 개인정보, 공공정보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서둘러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 기껏 기업들이 AI서비스를 만들어 놨는데, 뒤늦게 만들어진 법률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말이다. 빅테크기업들에 비해 자금력이 달리는 국내 상황을 고려해, 대량의 GPU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국내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국가AI데이터센터를 서둘러 만들면 투자비 걱정도 덜어줄 수 있을게다. IT신화가 AI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힘있고 세심한 AI지휘를 응원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10-22 07:19:59지난 8월 프랑스 검찰은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을 방조·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브라질 법원은 엑스(옛 트위터)가 가짜뉴스와 혐오·증오 표현의 범람을 방치한다는 이유로 엑스의 인터넷망 접속을 차단했다. 호주 정부는 가짜뉴스를 방치한 플랫폼에 전 세계 매출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 메타(옛 페이스북)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입하는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계정을 '10대 계정'으로 지정,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접속을 막고 성적인 콘텐츠나 자살 관련 콘텐츠를 추천하지 않도록 했다. 범죄자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을 메타가 수용한 것이다. 전 세계가 유튜브, 넷플릭스, 엑스, 텔레그램 등 디지털미디어의 폐해에 손놓고 있지 않겠다며 정책 정비에 나섰다. 단편적인 기업 간 경쟁이나 세금정책이 아니다. 신문이나 지상파방송 같은 전통미디어에 요구하던 소비자 보호, 청소년 보호, 시민의 건전한 여론 형성 같은 미디어의 본질을 디지털미디어에 적용하는 정책이다. 올 2월 전 세계 디지털미디어 정책의 총아로 주목을 받으며 시행된 유럽연합(EU)의 '디지털 서비스법(DSA)'은 디지털미디어 기업에 불법 콘텐츠 유포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기본권과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 민주적 시민의 담론 형성을 방해하는 콘텐츠 유포 금지 같은 책임을 지웠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지상파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전통미디어 정책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야당은 KBS, MBC의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을 벌이느라 3년째 모든 미디어 정책을 멈춰세웠다. 국회에서는 신문사가 광고를 기사로 속여 노출하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올해 1월 기준 한국인 한 명의 월평균 유튜브 이용시간은 40시간이다. 전 세계 유튜브 이용자의 월평균 사용시간이 23시간이니, 한국인이 세계 평균보다 1.7배 더 유튜브를 보는 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버스, 지하철 등 공공장소의 무료 와이파이 제공 같은 복지서비스가 한국을 디지털미디어 소비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이면에 우리 청소년들이 마약·성추행 같은 불법 디지털 콘텐츠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해외 디지털미디어 기업의 기습 요금인상에 반론조차 내놓을 수 없는 허점도 깊어졌다. 결국 국민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여론을 형성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전통미디어만 주무르며 미디어 정책을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미디어 정책은 아예 손도 못댄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디지털미디어에 대한 종합적 룰세팅에 나서야 한다. 지상파방송, 신문, 디지털미디어를 망라해 종합적인 미디어 정책의 새판을 짜줬으면 한다. 전통미디어와 디지털미디어의 영향력 크기에 맞춘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콘텐츠 기준, 청소년 유해 콘텐츠와 불법 광고의 처벌 근거도 제시해야 한다. 또 디지털미디어의 특성에 맞춰 통신 인프라 사용료 지급 기준을 만들고, 해외 기업들이 대부분인 디지털미디어 기업들의 한국 내 세금 징수 방안, 방송발전기금 같은 기금 납부 원칙도 정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요금인상에 대한 기준도 정해야 한다. 외국에 본사를 둔 대형 디지털미디어기업이 한국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 수익만 올리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면 안 된다. 단편적인 플랫폼 기업 간 경쟁정책으로 축소하면 안 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BBC 등 해외 언론들은 한국에 '텔레그램 N번방' 사태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어두운 역사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첨단기술 발전, 낮은 처벌 등이 한국 내 디지털 성범죄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며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 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이 디지털미디어의 어두운 측면을 방치해 전 세계의 문제아로 찍히지 않을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cafe9@fnnews.com
2024-09-25 18:28:40[파이낸셜뉴스] 지난 8월 프랑스 검찰은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을 방조·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브라질 법원은 엑스(옛 트위터)가 가짜뉴스와 혐오·증오 표현의 범람을 방치한다는 이유로 엑스의 인터넷망 접속을 차단했다. 호주 정부는 가짜뉴스를 방치한 플랫폼에 전 세계 매출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 메타(옛 페이스북)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입하는 18세 미만 청소년들의 계정을 ‘10대 계정’으로 지정, 모르는 사람으로 부터 접속을 막고 성적인 콘텐츠나 자살 관련 콘텐츠를 추천하지 않도록 했다. 범죄자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을 메타가 수용한 것이다. 전 세계가 유튜브, 넷플릭스, 엑스(옛 트위터), 텔레그램 등 디지털미디어의 폐해에 손놓고 있지 않겠다며 정책 정비에 나섰다. 단편적인 기업간 경쟁이나 새금정책이 아니다. 신문이나 지상파방송 같은 전통미디어에 요구하던 소비자 보호, 청소년 보호, 시민의 건전한 여론형성 같은 미디어의 본질을 디지털미디어에 적용하는 정책이다. 올 2월 전세계 디지털미디어 정책의 총아로 주목을 받으며 시행된 EU(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DSA)’은 디지털미디어 기업에 불법 콘텐츠 유포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기본권과 청소년을 보호할 의무, 민주적 시민의 담론 형성을 방해하는 콘텐츠 유포 금지 같은 책임을 지웠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지상파방송사나 신문사 같은 전통미디어 정책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야당은 KBS, MBC의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을 벌이느라 3년째 모든 미디어 정책을 멈춰세웠다. 국회에서는 신문사가 광고를 기사로 속여 노출하면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신문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올해 1월 기준 한국인 한 명의 월평균 유튜브 이용 시간은 40시간이다. 전 세계 유튜브 이용자의 월평균 사용시간이 23시간이니, 한국인이 세계 평균보다 1.7배 더 유튜브를 보는 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버스, 지하철 등 공공장소의 무료 와이파이 제공 같은 복지서비스가 한국을 디지털미디어 소비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 이면에 우리 청소년들이 마약, 성추행 같은 불법 디지털 콘텐츠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해외 디지털미디어 기업의 기습 요금인상에 반론조차 내놓을 수 없는 헛점도 깊어졌다. 결국 국민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여론을 형성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전통미디어만 주무르며 미디어 정책을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미디어 정책은 아예 손도 못댄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디지털미디어에 대한 종합적 룰셋팅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더이상 늦추면 안된다. 지상파방송, 신문, 디지털미디어를 망라해 종합적인 미디어 정책의 새 판을 짜줬으면 한다. 전통미디어와 디지털미디어의 영향력 크기에 맞춘 균형잡힌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의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콘텐츠 기준, 청소년 유해 콘텐츠와 불법 광고의 처벌 근거도 제시해야 한다. 또 디지털미디어의 특성에 맞춰 통신 인프라 사용료 지급 기준을 만들고, 해외 기업들이 대부분인 디지털미디어 기업들의 한국 내 세금 징수 방안, 방송발전기금 같은 기금 납부 원칙도 정해야 한다. 아울러 국내 소비자 보호를 위해 요금인상에 대한 기준도 정해야 한다. 외국에 본사를 둔 대형 디지털미디어기업이 한국의 규제 틀에서 벗어나 수익만 올리도록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면 안된다. 단편적인 플랫폼 기업간 경쟁정책으로 축소하면 안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BBC 등 해외 언론들은 한국에 '텔레그램 'N번방' 사태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어두운 역사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첨단기술 발전, 낮은 처벌 강도 등이 한국 내 디지털 성범죄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다"며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 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이 디지털미디어의 어두운 측면을 방치해 전 세계의 문제아로 점찍히지 않을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2024-09-24 17:3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