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르도 와인중에는 라벨에 멋진 범선이 그려진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보르도 생 줄리앙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베이슈빌(Chateau Beychevelle)'과 그라브 뻬삭-레오냥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Chateau Malartic Lagraviere)'입니다. 베이슈빌은 1600년대 초 프랑스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자 공작 지위를 가진 에페르논(Epernon)이 소유했던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당시 배들은 그의 영지 옆을 지날때 배의 돛을 절반 정도 내려 존경과 충성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돛을 내리다'라는 뜻의 '바수 부아(Baisse Voile)'에서 와인의 이름 베이슈빌이 왔습니다.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 라벨에도 노란색 바탕에 멋진 범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1700년대 영국 해군을 상대로 연승을 했던 마우레스 드 말라르틱 백작의 범선입니다. 말라르틱 백작은 캐나다와 모리셔스 제도의 식민 총독을 지낸 프랑스의 저명인사였습니다. 당시 식민도시였던 캐나다의 말라틱(Malartic)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베이슈빌과 말라르틱 라그라베이르는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국력을 상징하던 귀족들이 소유했던 유명 와이너리였지만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일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비운의 와이너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프랑스 시민혁명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근대 세계사를 바꾸다 근대 이후 바다의 주인을 떠올리면 누구나 영국의 '로열 네이비(Royal Navy)'를 먼저 꼽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혁명 이전에는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 못지 않게 강했습니다. 프랑스 해군은 1690년 영국 앞바다 비치헤드(Beachy Head)에서 영국 해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안겼으며, 1700년대 후반에는 미국 독립전쟁을 도와 체서피크(Chesapeake)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대파합니다. 영국은 이 패전으로 미국을 놓아주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 해군은 나폴레옹 황제 시대인 1805년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에서 영국의 명장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에게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거의 '학살을 당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의 뼈저린 패전이었습니다. 이 단 한번의 패전으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나폴레옹 시대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영국 해군을 쉽게 물리쳤던 프랑스 해군에게 불과 십여 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789년 프랑스는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시민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들 혁명세력은 귀족을 악마처럼 여겨 닥치는대로 단두대에 올렸습니다. 어느 나라나 왕정시대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과 장교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조리 처형당하거나 지위를 잃게 되자 프랑스 해군의 전투력이 급락했던 것이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은 프랑스 해군과 영국 해군이 맞붙은 게 아니라 프랑스 해군이 전투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학살당한 전투였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양으로 나오며 시작된 '대항해 시대'에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은 바로 '세계의 주인'을 의미했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고 바다를 지배했던 시기에는 '아르마다(Armada)'가 있었습니다. 펠리페 2세가 편성한 무적의 해군 아르마다는 이름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1588년 자만에 넘친 모습으로 영국을 침범한 아르마다는 영국의 화공과 태풍에 생각지도 못한 참패를 당하고 주요 식민지이던 네덜란드마저 독립을 허용하게 되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스페인이 사라진 이후 1600년대 초 대양 해권을 쥔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향신료 무역과 해양 물류를 휩쓸며 바다를 경제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항해조례'를 트집삼아 네덜란드에 전쟁을 걸고 결국 160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네덜란드가 운영하던 북아메리카 대륙 등 모든 식민지와 대양의 헤게모니를 차지한 영국은 이 때부터 제국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유럽대륙에는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강력한 영국의 경쟁자로 등장해 제국주의 패권을 놓고 1688년부터 100년 넘게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에서 갑작스런 시민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주저앉고 맙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유럽 이전엔 명나라가 바다의 주인이었다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열며 바다를 지배한 것 같지만 앞서 바다를 호령한 '바다의 왕자'는 명나라 였습니다. 명나라는 3대 황제 영락제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8년 동안 '정화 함대'를 띄워 인도양과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샅샅이 훑고 다닙니다. 8000톤급 초대형 선박 60여 척과 소선 100여 척을 거느린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함대의 중심이 되는 기함은 '서양보선', '서양취보선' 등으로 불렸는데 그 크기가 길이 150m, 넓이 60m에 달했습니다.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할 당시 탔던 배의 길이가 30m 정도였고, 1800년대 세계 최강이던 영국 해군의 배가 2000톤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큰 배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항공모함 수십 척과 구축함 등이 인도양 앞바다를 휩쓸고 다닌겁니다. 가히 명나라 제국은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양은 세상의 모든 부와 물산과 기술이 집약돼 있던 중국과 인도가 있는 말 그대로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유럽이 1400년대 말 대양으로 나온 것도 바로 명나라가 지배하는 인도양으로 향하는 뱃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양을 호령하던 압도적인 제국 명나라는 돌연 1433년 이런 헤게모니를 다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가 다시는 바다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헤게모니가 서양으로 넘어가며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게 됩니다. 대양을 나와 아시아에 도착한 유럽 세력들은 주인없는 인도양 바다를 서서히 유린하며 제국주의의 꽃을 피웁니다. ■바다의 무법자 해적선, 그 안에는 민주주의 꽃이 근대 바다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습니다. 해적입니다. 바다에서 다른 선박을 공격해 재물을 탈취하는 무법자들이지만 해적은 18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라가 돈 받고 면허를 내주며 관리하던 합법적인 군사조직이었습니다. 해양 경쟁이 시작되던 당시 어느 나라도 영토는 통제했지만 영해까지는 국가 권력이 닿을 수 없었습니다. 민간조직인 해적이 다른 나라 선박을 공격해 약탈을 해오니 정부는 수익금의 일부를 챙길 수 있는데다 상대국의 군사적, 경제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해적들도 사익을 추구하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있어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즉, 국가가 직접 권력을 휘두르면 해군이 되고, 사적인 집단이 폭력을 휘두르면 해적이었던 것입니다. 앞서 1588년 당시 스페인 아르마다를 패퇴시킨 영국 해군 지휘관이 그 유명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였습니다. 드레이크는 당시 세계 최강의 해상국가이던 에스파냐 선박과 항구를 공격해 이름을 날린 해적입니다. 1579년에는 아메리카에서 금은보화를 싣고 오던 에스파냐 상선을 약탈하고 선장에게 약탈명세서까지 써줬던 대담한 인물입니다. 당시 영국은 백년전쟁에서 패한 후 변방의 작은 섬나라로 살던 시기입니다. 훗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스페인이 영국을 쳐들어오자 그를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스페인 아르마다 함대를 막아냅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라 비아냥 대는 말이 여기서 나온듯 합니다. 해적들은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무법자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어느 집단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잘 지키는 조직이었습니다. 배와 관련해 어떤 현안이 발생하면 모든 승무원이 표결을 통해 처리했습니다. 또 약탈을 통해 재물이 생기면 n분의 1로 나눴습니다. 또 전투 중 부상을 당하면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치료를 해주고 배당도 똑같이 했습니다. 만약 죽게되면 그 부인에게 배당을 했습니다. 일반 배의 선원들은 해적선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너도나도 해적이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해적선은 인원이 많아 노동 강도가 훨씬 덜했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지켜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식회사, 보험의 시작도 배였다 대항해 시대 길이 30m의 작은 배에 의지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모험이었습니다. 대양의 거친 파도에 맞서 막막한 두려움을 안고 거친 바다로 전진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배 안에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테니스 코트 크기보다도 작은 좁은 공간에 수개월 동안 갇혀있다보니 괴혈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괴혈병은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해 비타민C가 부족하면 생기는 병입니다. 배가 출발할 때는 깨끗한 식수와 여러 식자재를 가지고 나가지만 불과 몇주가 지나지 못해 다 떨어져 선원들은 그 이후엔 염장고기, 말린 생선을 먹었습니다. 신선한 야채를 먹지 못하니 대개 4주 정도가 지나면 입천장이 헐고 붓기 시작해 피가 나고 이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혈변을 보며 고열과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죽게 됩니다. 이후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실어 선원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면서 괴혈병의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그 이전까지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수시로 마주하는 폭풍우와 거센 파도보다도 무서웠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이 온갖 위험에 시달렸지만 이를 뒤에서 후원하는 투자자들도 매우 큰 위험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유럽에서 출발한 배는 대서양으로 나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가 있는 인도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너무도 길고 위험한 항로여서 배가 한 번 출항해 돌아오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수익률이 적어도 400%가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서양으로 떠난 배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큰 돈을 들여 무역 선단을 꾸려 바다로 보냈는데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거나, 돌아오는 길에 해적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투자금을 다 날리게 되는 일 이었습니다.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주식회사입니다. 출항에 앞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예치금 증서를 나눠준 후 나중에 배당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게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 회사입니다. 이어 해상무역의 손실 위험을 다수에게 분산시키는 보험이 등장합니다. ■와인에서도 대항해 시대의 강단이 느껴져 크리스토퍼 콜롬부스(Christopher Columbus),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함께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의 얼굴이 새겨진 라벨의 와인을 꺼내듭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입니다. 갑옷을 입고 있는 근엄한 얼굴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베라짜노 성의 주인이자 위대한 탐험가인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로 지금의 뉴욕과 북미대륙 동해안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낮선 이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1964년 뉴욕 브루클린과 스테이튼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만들어졌는데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려 '베라짜노 대교'로 이름 지을 정도로 베라짜노에 대해 각별히 생각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뉴욕마라톤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5%, 까나이올로(Canaiolo) 5%를 섞어 만드는 베라짜노는 잔에 따라보면 산지오베제 와인의 전형적인 루비빛을 띠며, 감칠맛 나는 붉은 계열의 과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미가 아주 좋으며 타닌이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줍니다.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국제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들보들한 와인과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와인을 열자마자 입안에 조금 머금어도, 오랜 시간 디캔팅을 거쳐 마셔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특한 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부러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등산모자 속 얇은 철사같은 그런 강단이랄까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 출발을 하는 지인이 있나요. 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담긴 와인을 선물해 응원하면 어떨지요. kwkim@fnnews.com
2023-02-05 21:19:47[파이낸셜뉴스]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는 라벨에 멋진 범선이 그려진 와인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보르도 생 줄리앙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베이슈빌(Chateau Beychevelle)'과 그라브 뻬삭-레오냥 지역의 그랑크뤼 클라세 와인 '샤또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Chateau Malartic Lagraviere)'입니다. 베이슈빌은 1600년대 초 프랑스의 유명한 해군 제독이자 공작 지위를 가진 에페르논(Epernon)이 소유했던 와이너리의 와인으로 당시 배들은 그의 영지 옆을 지날때 배의 돛을 절반 정도 내려 존경과 충성심을 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돛을 내리다'라는 뜻의 '바수 부아(Baisse Voile)'에서 와인의 이름 베이슈빌이 왔습니다. 말라르틱 라그라비에르 라벨에도 노란색 바탕에 멋진 범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1700년대 영국 해군을 상대로 연승을 했던 마우레스 드 말라르틱 백작의 범선입니다. 말라르틱 백작은 캐나다와 모리셔스 제도의 식민 총독을 지낸 프랑스의 저명인사였습니다. 당시 식민도시였던 캐나다의 말라틱(Malartic)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도시입니다. 베이슈빌과 말라르틱 라그라베이르는 제국주의 시대 프랑스의 국력을 상징하던 귀족들이 소유했던 유명 와이너리였지만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일반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비운의 와이너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프랑스 시민혁명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 근대 세계사를 바꾸다 근대 이후 바다의 주인을 떠올리면 누구나 영국의 '로열 네이비(Royal Navy)'를 먼저 꼽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시민혁명 이전에는 프랑스 해군이 영국 해군 못지 않게 강했습니다. 프랑스 해군은 1690년 영국 앞바다 비치헤드(Beachy Head)에서 영국 해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안겼으며, 1700년대 후반에는 미국 독립전쟁을 도와 체서피크(Chesapeake) 해전에서 영국 해군을 대파합니다. 영국은 이 패전으로 미국을 놓아주게 됩니다. 그러나 프랑스 해군은 나폴레옹 황제 시대인 1805년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에서 영국의 명장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에게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거의 '학살을 당했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의 뼈저린 패전이었습니다. 이 단 한번의 패전으로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나폴레옹 시대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영국 해군을 쉽게 물리쳤던 프랑스 해군에게 불과 십여 년 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789년 프랑스는 시민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시민정부가 들어섭니다. 이들 혁명세력은 귀족을 악마처럼 여겨 닥치는대로 단두대에 올렸습니다. 어느 나라나 왕정시대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과 장교들은 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조리 처형당하거나 지위를 잃게 되자 프랑스 해군의 전투력이 급락했던 것이었습니다. 트라팔가 해전은 프랑스 해군과 영국 해군이 맞붙은 게 아니라 프랑스 해군이 전투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다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그냥 학살당한 전투였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양으로 나오며 시작된 '대항해 시대'에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은 바로 '세계의 주인'을 의미했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삼고 바다를 지배했던 시기에는 '아르마다(Armada)'가 있었습니다. 펠리페 2세가 편성한 무적의 해군 아르마다는 이름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1588년 자만에 넘친 모습으로 영국을 침범한 아르마다는 영국의 화공과 갑작스런 태풍에 생각지도 못한 참패를 당하고 주요 식민지이던 네덜란드마저 독립을 허용하게 되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스페인이 사라진 이후 1600년대 초 대양 해권을 쥔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향신료 무역과 해양 물류를 휩쓸며 바다를 경제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항해조례'를 만들어 네덜란드에 전쟁을 걸고 결국 160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네덜란드가 운영하던 북아메리카 대륙 등 모든 식민지와 대양의 헤게모니를 차지한 영국은 이 때부터 제국주의 틀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유럽대륙에는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강력한 영국의 경쟁자로 등장해 제국주의 패권을 놓고 1688년부터 100년 넘게 전쟁을 벌이지만 프랑스는 갑작스런 시민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주저앉고 맙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유럽 이전엔 명나라가 바다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유럽이 대항해시대를 열며 바다를 지배한 것 같지만 앞서 바다를 호령한 '바다의 왕자'는 명나라 였습니다. 명나라는 3대 황제 영락제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28년 동안 '정화 함대'를 띄워 인도양과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샅샅이 훑고 다닙니다. 8000톤급 초대형 선박 60여 척과 소선 100여 척을 거느린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함대의 중심이 되는 기함은 '서양보선', '서양취보선' 등으로 불렸는데 그 크기가 길이 150m, 넓이 60m에 달했습니다. 1492년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할 당시 탔던 배의 길이가 30m 정도였고, 1800년대 세계 최강이던 영국 해군의 배가 2000톤급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큰 배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항공모함 수십 척과 구축함 등이 인도양 앞바다를 휩쓸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충격일겁니다. 가히 명나라 제국은 진정한 바다의 주인이었습니다. 당시 인도양은 세상의 모든 부와 물산과 기술이 집약돼 있던 중국과 인도가 있는 말 그대로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유럽이 1400년대 말 대양으로 나온 것도 바로 명나라가 지배하는 인도양으로 향하는 뱃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도양을 호령하던 압도적인 제국 명나라는 돌연 1433년 이런 헤게모니를 다 버리고 내륙으로 들어가 다시는 바다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헤게모니가 서양으로 넘어가며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게 됩니다. 대양을 나와 아시아에 도착한 유럽 세력들은 주인없는 인도양 바다를 서서히 유린하며 제국주의의 꽃을 피웁니다. ■바다의 무법자 해적선, 그 안에는 민주주의 꽃이.. 근대 바다를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또 있습니다. 해적입니다. 바다에서 다른 선박을 공격해 재물을 탈취하는 무법자들이지만 해적은 18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라가 돈 받고 면허를 내주며 관리하던 합법적인 군사조직이었습니다. 해양 경쟁이 시작되던 당시 어느 나라도 영토는 통제했지만 영해까지는 국가 권력이 닿을 수 없었습니다. 민간조직인 해적이 다른 나라 선박을 공격해 약탈을 해오니 정부는 수익금의 일부를 챙길 수 있는데다 상대국의 군사적, 경제적 힘을 약화시킬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해적들도 사익을 추구하면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분이 있어 모두가 만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즉, 국가가 직접 권력을 휘두르면 해군이 되고, 사적인 집단이 폭력을 휘두르면 해적이었던 것입니다. 앞서 1588년 당시 스페인 아르마다를 패퇴시킨 영국 해군 지휘관이 그 유명한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였습니다. 드레이크는 당시 세계 최강의 해상국가이던 에스파냐 선박과 항구를 공격해 이름을 날린 해적입니다. 1579년에는 아메리카에서 금은보화를 싣고 오던 에스파냐 상선을 약탈하고 선장에게 약탈명세서까지 써줬을 정도로 대담한 인물입니다. 당시 영국은 백년전쟁에서 패한 후 변방의 작은 섬나라로 살던 시기입니다. 훗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는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스페인이 영국을 쳐들어오자 그를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해 스페인 아르마다 함대를 막아냅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라 비아냥 대는 말이 여기서 나온듯 합니다. 해적들은 바다에서는 정말 무서운 무법자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어느 집단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잘 지키는 조직이었습니다. 배 안에서 어떤 현안이 발생하면 늘 모든 승무원이 표결을 통해 처리했습니다. 또 약탈을 통해 재물이 생기면 n분의 1로 나눴습니다. 다만 선장과 조타수만 2배로 가져갔습니다. 또 전투 중 부상을 당하면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치료를 해주고 배당도 똑같이 했습니다. 만약 죽게되면 그 부인에게 배당을 했습니다. 일반 배의 선원들은 해적선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너도나도 해적이 되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해적선은 인원이 많아 노동 강도가 훨씬 덜했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가 지켜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식회사, 보험의 시작도 배였다 대항해 시대 길이 30m의 작은 배에 의지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모험이었습니다. 대양의 거친 파도에 맞서 막막한 두려움을 안고 거친 바다로 전진한다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겁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배 안에 있었습니다. 선원들은 테니스 코트 크기보다도 작은 좁은 공간에 수 개월 동안 갇혀있다 보니 괴혈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괴혈병은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해 비타민C가 부족하면 생기는 병입니다. 배가 출발할 때는 깨끗한 식수와 여러 식자재를 가지고 나가지만 불과 몇 주가 지나면 모두 동나고 선원들은 그 이후엔 염장고기, 말린 생선을 먹었습니다. 신선한 야채를 먹지 못하니 대개 4주 정도가 지나면 입천장이 헐고 붓기 시작해 피가 나고 이가 빠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혈변을 보며 고열과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죽게 됩니다. 나중에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실어 선원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면서 괴혈병의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그 이전까지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수시로 마주하는 폭풍우와 거센 파도보다도 무서웠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이 온갖 위험에 시달렸지만 이를 뒤에서 후원하는 투자자들도 매우 큰 위험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유럽에서 출발한 배는 대서양으로 나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가 있는 인도양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너무도 길고 위험한 항로여서 배가 한 번 출항해 돌아오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물론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수익률이 적어도 400%가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서양으로 떠난 배 중 절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큰 돈을 들여 무역 선단을 꾸려 바다로 보냈는데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거나, 돌아오는 길에 해적에 약탈을 당하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투자금을 다 날리게 되는 일 이었습니다. 이런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주식회사입니다. 출항에 앞서 투자자를 모집하고 예치금 증서를 나눠준 후 나중에 배당을 하는 방식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게 최초의 주식회사 동인도 회사입니다. 이어 해상무역의 손실 위험을 다수에게 분산시키는 보험이 등장합니다. 이렇듯 거친 대양을 떠 다니던 범선 속에는 대항해 시대 패권 전쟁과 온갖 경제사가 다 담겨 있습니다. ■와인에서도 대항해 시대의 강단이 느껴져 와인셀러에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Christopher Columbus),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와 함께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의 얼굴이 새겨진 라벨의 와인을 꺼내듭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입니다. 갑옷을 입고 있는 근엄한 얼굴의 주인공은 이탈리아 베라짜노 성의 주인이자 위대한 탐험가인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로 지금의 뉴욕과 북미대륙 동해안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낮선 이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1964년 뉴욕 브루클린과 스테이튼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만들어졌는데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려 '베라짜노 대교'로 이름 지을 정도로 베라짜노에 대해 각별히 생각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뉴욕마라톤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5%, 까나이올로(Canaiolo) 5%를 섞어 만드는 베라짜노는 잔에 따라보면 산지오베제 와인의 전형적인 루비빛을 띠며, 감칠맛 나는 붉은 계열의 과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미가 아주 좋으며 타닌이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줍니다.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국제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들보들한 와인과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와인을 열자마자 입안에 조금 머금어도, 오랜 시간 디캔팅을 거쳐 마셔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특한 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부러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등산모자 속 얇은 철사같은 그런 강단이랄까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 출발을 하는 지인이 있나요. 대항해 시대의 숨결이 담긴 와인을 선물해 응원하면 어떨지요.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02-05 13:03:22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리처드 브랜슨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먼저 이들은 기업을 일구어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이다. 거기다 우주 관광의 꿈을 실현하고 이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우주 사업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항공기에 우주선을 실어서 높은 고도에서 로켓을 점화하거나 발사체를 재사용하는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로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우주여행의 대중화를 실현할 것이다. 우주산업은 달 탐사와 우주왕복선 프로그램과 같이 정부 주도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민간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한계에 이르자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우주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1960년대 예산은 연방정부 예산의 4.5%에 달했으나 지금은 0.5%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 20년간 꾸준한 투자와 기업가정신, 과학기술의 발전, 민간자본의 참여,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문화가 우주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스페이스 엑스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는 시장에서 65억달러의 자금을 모집했고, 이 회사의 가치는 740억달러로 평가되고 있다. 시간을 되돌려 600년 전으로 돌아보면 유럽의 변방 국가인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는 최남단 사그레스항에서 최초로 서아프리카 해역으로 남하했다. 포르투갈보다 70년 이상 뒤늦었지만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은 콜롬버스의 항해를 전적으로 후원하고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땅은 스페인으로 귀속시키기로 합의했다. 선도적이고 모험을 감내한 투자의 결과로 유럽 국가들은 역사를 주도하고 부를 축적한 반면 이들에게 정복당한 많은 식민지 국가들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머물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과거 대항해시대의 교훈을 바탕으로 우주 항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지난 16일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해 두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 13호를 쏘아 올렸다. 최근 몇 년 사이 달의 뒷면에 인류 최초로 탐사선을 보내고, 화성 무인탐사선을 무사히 착륙시켰다. 또한 태양 탐사 프로젝트를 잇달아 진척시키며 우주 정복을 위한 '우주굴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 유럽, 일본, 이스라엘, 인도도 우주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발사체 누리호를 지난 21일 성공적으로 발사했으나 궤도 안착에는 실패했다. 모든 과정을 순수 국내기술로 진행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스스로 우주발사체를 만들어 쏠 수 있는 나라는 9개국에 불과하다. 우리는 발사체 기술력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으나 달 착륙, 태양계 위성에 대한 탐사, 유인우주선 발사를 추진하고 있는 선도국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우주산업은 국가 과학기술의 결정체이다. 우리나라의 우주산업 규모가 세계의 1%에 불과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작년 기준 세계 우주산업의 시장규모는 3700억달러로 그 규모는 지속 증가할 것이다. 2040년까지 1조달러를 훨씬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항해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 명나라의 영향으로 바다 진출을 금지하는 해금정책으로 해외진출과 무역을 통한 번영의 기회를 놓쳤고 결국 식민지배를 경험해야 했었지만, 우주정복에서는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 우주산업을 발전시키고 우주 식민지도 개척할 수 있도록 정부의 재정지원과 민간의 모험투자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
2021-10-26 17:38:38[파이낸셜뉴스] 얼마 전 뉴요커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와인 중 하나인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를 접했습니다. 짧게 '베라짜노'로 불리는 이 와인은 미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끼안티 클라시코에서 생산되는 전형적인 끼안티 와인입니다. 라벨에 그려져 있는 갑옷을 입은 근엄한 얼굴의 기사는 이 와인이 생산되는 베라짜노 성의 주인이자 위대한 탐험가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Giovanni da Verrazzano)'입니다. 북미 대륙, 지금의 뉴욕과 미국 동해안을 발견해 콜롬부스, 바스코 다 가마 등과 함께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이끈 탐험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낮선 이름이지만 미국 뉴욕에서는 평가가 완전히 다릅니다. 1964년 뉴욕 브루클린과 스테이튼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가 만들어졌는데 시민들은 그의 업적을 기려 '베라짜노 대교'로 이름 지을 정도로 베라짜노에 대해 각별히 생각합니다. 매년 개최되는 뉴욕마라톤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베라짜노는 1485년 피렌체 공화국 끼안티에서 태어났지만 1506년 프랑스로 이주해 항해사가 됐습니다. 1523년 어느 겨울날 베라짜노는 "프랑스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찾겠다"며 프랑스 디에프에서 함선 4척을 이끌고 출발해 1524년 3월 북아메리카 뉴욕만, 나라갠셋만, 메인주 등 해안을 탐험한 후 그해 7월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은 모두가 모험정신이 강한 사람들이지만 베라짜노는 특히 '불굴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항해를 시작하자마자 큰 폭풍을 만나 배 4척 중 2척을 잃고 1척은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파됐지만 남은 배 1척을 이끌고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건넜기 때문이죠. 대항해 시대 유럽인들의 최종 목적지는 중국과 인도였습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도, 그에 앞서 1488년 아프리카 희망봉을 돈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도, 태평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나선 베라짜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우선 대서양으로 나간 후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 남아프리카 대륙 끝자락 희망봉을 돌아 다시 아프리카 동해안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인도양을 통해 인도와 동남아시아를 지나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멀어도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대서양으로 나간 후 남쪽으로 가지 않고 반대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면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서쪽 항로를 찾아 나섭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뜻하지 않게 유럽인에게 아메리카 대륙을 안겨주고 나중에 세계를 재패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1520년 11월28일 우리는 마젤란 해협을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들어갔다. 석달하고도 20일 동안 신선한 음식 없이 지냈다. 우리가 먹은 비스킷은 벌레들이 좋은 부분을 다 갉아먹고 남은 가루에 불과했다. 배에 덧댄 소가죽을 며칠간 바닷물에 담가 둔 후 건져서 깜부기 불에 구워먹었다. 며칠동안 부패한 노란색 물을 마셨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곤경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은 위아래 잇몸이 모두 부풀어 올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19명이 이 병에 걸려 죽었다. 25~30명 정도는 팔, 다리 혹은 다른 부위에 병이 났다. 몸이 성한 사람은 없다." 세계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마젤란 함대에서 마젤란이 사망한 후 선단을 지휘해 귀국한 안토니오 파가페타가 쓴 '최초의 세계일주'에서 당시 선박생활을 표현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선원들은 겨우 테니스 코트만한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면서 괴혈병과 사투를 벌였습니다. 괴혈병은 신선한 음식을 먹지 못해 비타민C 부족하게 되면 생기는 병으로 대개 4주 정도가 지나서 입천장이 붓기 시작해 잇몸에 염증과 출혈이 생기며 이가 빠집니다. 이후 혈변을 보며 고열과 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갑자기 죽게 됩니다. 1700년대 영국의 제임스 쿡(James Cook) 선장이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배에 실어 선원들에게 주기적으로 먹이면서 괴혈병이 사라졌지만 그 이전까지 선원들에게 괴혈병은 수시로 마주하는 폭풍우와 거센 파도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대항해 시대 바다를 누비던 범선들은 길이가 기껏해야 30미터 정도의 정말 작은 배였습니다. 이처럼 작은 배를 타고 대양을 나간다는 것은 다시 땅을 밟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대서양의 바다를 누빈 개척자들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를 향해 계속 나아가면 어느 순간 절벽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세상의 끝'이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공포와 대양의 거센 폭풍우, 괴혈병 같은 질병과 싸우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간 그들은 심지가 남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까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도 그런 꼿꼿한 심지가 있는 와인입니다. 산지오베제(Sangiovese) 95%에 까나이올로(Canaiolo) 5%를 섞어 만드는 베라짜노는 잔에 따라보면 산지오베제 와인이 가지는 전형적인 루비빛을 띠며 감칠맛 나는 붉은 계열의 과실향이 아주 좋습니다. 입에 넣어보면 산미가 아주 좋으며 타닌이 적절하게 무게를 잡아줍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산지오베제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등 국제품종을 블렌딩하는 보들보들한 현대적인 끼안티 와인과는 확실히 결이 다릅니다. 와인을 열자마자 입안에 조금 머금어도, 오랜 시간 디캔팅을 거쳐 마셔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특한 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구부러지지만 무너지지 않는 등산모자 속 얇은 철사같은 그런 강단이랄까요. 혹시 주변에 새로운 도전에 맞서 새 출발을 하는 지인이 있나요.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를 닮은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함께 나누며 응원해보시면 어떨지요. ------------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 2017(Castello di Verrazzano Chianti Classico 2017)는 -생산자:카스텔로 디 베라짜노 (Castello di Verrazzano) -생산지:이태리 토스카나, 그레브 인 키안티 (Greve in Chianti) -품종:산지오베제(Sangiovese) 95%, 카나이올로(Canaiolo) 5% -알코올도수:13.5% ■대한민국 최초의 와인 레스토랑 '베라짜노' 우리나라에도 '카스텔로 디 베라짜노'와 연관이 있는 멋진 곳이 있습니다. 2002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압구정로데오역 근처에 있는 국내 최초의 와인 레스토랑 '베라짜노'입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그레베에 있는 베라짜노 와이너리가 공식인증한 레스토랑입니다. 식당 이름에 '베라짜노' 이름을 붙인 곳은 피렌체, 뉴욕, 서울 등 세계에서 단 3군데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베라짜노 내부에는 이탈리아 탐험가 지오반니 다 베라짜노의 초상화와 이탈리아 지도, 베라짜노 성의 모습이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와인 전문 레스토랑 답게 300여 종의 와인을 갖추고 있으며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1층에는 테라스홀이 2개, 2층에는 도서관과 세련된 응접실을 컨셉으로 한 룸이 3개가 있습니다. 베라짜노 레스토랑에 비 오는 날 한번 가보세요. 투명한 유리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포도나무 등 여러 관목들의 잎사귀가 빗물을 굴려 떨어뜨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 온갖 감성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셰프가 내놓는 파스타와 스테이크도 정말 맛있습니다.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수준급입니다. 지난 2007년 한 언론매체가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무려 16%가 '베라짜노'를 꼽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1-04-19 20:08:46[파이낸셜뉴스]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게임 관계사인 라인게임즈는 현재 개발 중인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 ‘대항해시대 오리진’과 관련, 올 4·4분기 중 비공개 시범테스트(CBT)를 진행한다고 8월31일 밝혔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라인게임즈와 코에이테크모게임스(코에이테크모)가 맺은 공동사업 계약을 통해 개발 중이다. 현재 라인게임즈 개발 관계사인 모티프와 코에이테크모가 개발하고 있다.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사용자를 대상으로 CBT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추가 개발을 거쳐 내년에 PC 및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본격 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elikim@fnnews.com 김미희 기자
2020-08-31 17:07:3317세기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는 주식회사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평가된다. 동양의 향료·비단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지만 육로는 대규모 물품을 나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규모 교역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닷길이었다. 그러나 해상무역은 리스크가 훨씬 컸다. 선박을 건조하고 선원을 모집하는 데 많은 초기자금이 들어가는 데다 폭풍우로 배가 좌초되거나 해적에게 약탈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요즘 말하는 초고위험·초고수익 구조였다.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여러 투자자를 모아서 위험을 공유하는 벤처형 주식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수백년이 지난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신기술기업 성장 과정은 전통기업의 성공 방정식과 전혀 다르다. 유형의 상품을 제조·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을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Winner takes all). 혁신이라는 배를 타고 거친 경쟁의 파도를 넘어 성공에 이르면 막대한 수익이 약속되는, 21세기 대항해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기간도 길어지면서 종전의 자금조달 방식으로는 모험을 뒷받침하기 힘들어졌다. 대규모 혁신모험자본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우리 기업이 21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금융부문도 패러다임을 전환해 나가고 있다. 가계금융보다 기업금융을 장려하고, 부동산담보가 아닌 미래성장성을 중시하며, 은행보다는 자본시장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문재인정부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과거와 다른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동산금융 활성화다. 동산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가운데 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대출담보로 활용되는 비중은 0.05%에 불과했다. 동산금융이 활성화되면 혁신기업이 지식재산권, 매출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일괄담보로 묶어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성장지원펀드를 통한 대규모 모험자본 공급이다. 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민간 투자자금과 매칭하는 방식으로 3년간 8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펀드의 동일기업 투자한도를 폐지해 예비 유니콘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세 번째는 신(新)예대율 도입이다. 기업대출에 인센티브를 주어 은행권 자금이 가계보다는 기업으로 더 많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고 있다.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나타났다.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2016년말 610조원에서 꾸준히 증가해 올해 6월말 720조원을 상회했다. 동산담보대출도 지난해말에 비해 60% 넘게 늘어 1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성장지원펀드를 통해 지금까지 약 1조원의 투자가 집행됐으며 투자를 받은 국내 AI스타트업이 미국 나스닥 기업에 2000억원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되기도 했다.아직 갈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다.이정동 교수가 '축적의 시간'에서 강조했듯이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혁신의 토대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혁신을 달성해 나가기 위해선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 금융권은 기술금융 활성화 등을 통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인력과 역량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과감한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한 시도를 용인하는 금융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정부는 적극행정과 면책제도 개편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금융권에 도전적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한국의 혁신기업들이 21세기 대항해 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혁신금융이 앞장서기를 기대한다.은성수 금융위원장
2019-11-17 16:55:59온라인 게임 ‘대항해시대 온라인’이 북미 확장팩의 첫 번째 챕터 등 대규모 업데이트를 실시했다. 2일 CJ E&M 넷마블은 자사가 서비스하고 일본 코에이가 제작한 해양 모험 온라인 MMORPG '대항해시대온라인'의 북미 확장팩 '티에라 아메리카나(Tierra Americana)'의 첫 번째 챕터 '아틀란틱(Atlantic)'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북미 확장팩은 길드 단위로 미국 대륙에 도시를 개척할 수 있는 개척도시 시스템, 파리와 피렌체 같은 내륙도시 공개, 이용자가 직접 발동할 수 있는 대해전 시스템 등 다양한 업데이트가 포함됐다. 또한 기존 이용자들이 기대해왔던 '퀘스트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발주서 수량'이 대폭 증가하는 등 패치도 함께 이뤄져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넷마블 측은 "이번 업데이트와 파격적 동시 이벤트를 통해 기존 이용자들 뿐 아니라 신규 및 복귀 이용자들도 새로운 대항해 시대의 모험에 동참해 주시길 기대한다"며 "'대항해시대온라인'이 지금껏 한국 시장에서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아온 만큼, 이번 확장팩 공개를 통해서 일본 시장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월 일본에 미리 공개된 바 있는 ‘북미 확장팩’은 공개 후 최대 동시 접속자수가 30% 이상 늘어난 바 있다. 한편 '대항해시대온라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hofeel82@starnnews.com황호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관련기사 ▶ 고속도로 뱀 출몰 영상 화제, 난데없는 등장에 '화들짝' ▶ '악마의 게임' 문명5, 한국 지도자로 세종대왕 합류(?) ▶ 이화여대 수류탄 발견, 6.25 당시 사용 폭우로 떠내려와 ▶ 25인승 스쿠터, 22m 세계에서 가장 길어 "기네스북 감" ▶ 네이트 해킹, 中 악성코드 실명-핸드폰 번호까지 '충격'
2011-08-02 18:36:24게임포털 넷마블을 서비스하는 CJ인터넷㈜은 자사의 인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대항해시대 온라인(이하 대항해시대)’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서비스한다고 14일 밝혔다. CJ인터넷은 ‘테콤 코에이 게임즈(옛 KOEI)’와 대항해시대의 글로벌 판권계약을 하고 자사의 글로벌 게임포털 사이트 넷마블닷컴을 통해 유럽과 북미에 영문판 대항해시대 서비스를 실시한다. CJ인터넷은 현재 넷마블닷컴에 대항해시대 영문판 티저사이트를 오픈하고 있으며 15∼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E3 Expo’에서 동영상과 플레이 시연을 통해 해외 게임 이용자에게 첫선을 보이고 연내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대항해시대는 원작인 PC게임의 폭발적인 인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상당한 고정팬을 보유, 이번 유럽과 북미 진출이 더욱 기대된다고 CJ인터넷은 설명했다. CJ인터넷 해외사업총괄 이승원 이사는 “대항해시대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구현, 항해를 통해 중세 유럽을 탐험할 수 있는 만큼 유럽과 북미 유저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ong@fnnews.com홍석희기자
2010-06-14 23:42:22게임포털 넷마블을 서비스하는 CJ인터넷㈜은 자사의 인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대항해시대 온라인(이하 대항해시대)’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서비스한다고 14일 밝혔다. CJ인터넷은 ‘테콤 코에이 게임즈(옛 KOEI)’와 대항해시대의 글로벌 판권계약을 하고 자사의 글로벌 게임포털 사이트 넷마블닷컴을 통해 유럽과 북미에 영문판 대항해시대 서비스를 실시한다. CJ인터넷은 현재 넷마블닷컴에 대항해시대 영문판 티저사이트를 오픈하고 있으며 15∼1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E3 Expo’에서 동영상과 플레이 시연을 통해 해외 게임 이용자에게 첫선을 보이고 연내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대항해시대는 원작인 PC게임의 폭발적인 인기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상당한 고정팬을 보유, 이번 유럽과 북미 진출이 더욱 기대된다고 CJ인터넷은 설명했다. CJ인터넷 해외사업총괄 이승원 이사는 “대항해시대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구현, 항해를 통해 중세 유럽을 탐험할 수 있는 만큼 유럽과 북미 유저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ong@fnnews.com홍석희기자
2010-06-14 18:17:39게임포털 넷마블을 서비스하는 CJ인터넷㈜은 자사의 인기 다중사용자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 ‘대항해시대 온라인’(이하 대항해시대)을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서비스한다고 14일 밝혔다. CJ인터넷은 ‘테콤 코에이 게임즈’(TECOM KOEI GAMES·옛 KOEI)와 ‘대항해시대’의 글로벌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자사의 글로벌 게임포털 사이트 ‘넷마블닷컴’을 통해 유럽과 북미에 영문판 ‘대항해시대’ 서비스를 실시한다. CJ인터넷은 현재 ‘넷마블닷컴’에 ‘대항해시대‘ 영문판 티저 사이트를 오픈하고 있으며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리는 ‘E3 Expo’에서 동영상과 플레이 시연을 통해 해외 게임이용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고 연내 서비스를 계획중이다. ‘대항해시대’는 원작인 PC게임의 폭발적인 인기로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상당한 고정팬을 보유, 이번 유럽과 북미 진출이 더욱 기대된다고 CJ인터넷은 설명했다. CJ인터넷 해외사업총괄 이승원 이사는 “‘대항해시대’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구현, 항해를 통해 중세 유럽을 탐험할 수 있는 만큼 유럽과 북미 유저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ong@fnnews.com홍석희기자
2010-06-14 14: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