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부산 덕성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다고 24일 밝혔다. 1953년 12월 5일부터 2001년 3월 5일까지 아동보호시설인 덕성원에 격리 수용돼 폭행·협박·감금·강제노역·성폭력 등의 피해를 당한 피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에게 명예회복과 보상금 등의 지원 방안 등을 법제화하기 위해서다. 법안은 국무총리 소속으로 부산덕성원피해사건진상규명위원회를 두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위원회는 진상규명 외 피해자와 유족의 심사·결정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피해자 및 유족, 이들과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 이외 해당 사건과 관련된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위원회가 구성된 날부터 1년 이내 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할 수 있다. 위원히는 진상규명 신청이 없어도 직권으로 조사개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 및 유족 지원 방안으로는 피해의 정도에 따른 보상금, 의료지원금, 생활지원금, 주거복지시설 등이 포함됐다. 이 같은 보상을 지급받을 권리는 양도할 수 없도록 하는 '꼼수' 방지 규정도 마련했다. 김미애 의원은 "50여 년 한 맺힌 삶 가운데 그래도 누군가는 억울함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정성은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본 제정법안은 부산 덕성원 피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그에 따라 실질적인 보상을 함으로써 이들의 생활안정과 인권신장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jhyuk@fnnews.com 김준혁 기자
2024-12-24 13:48:20"세 살 무렵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등에 업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몇 년 뒤 덕성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 이후 엄마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덕성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안종환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협의회)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제2의 형제복지원이라 불리는 덕성원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곳에 수용됐던 피해생존자는 형제복지원·영화숙·재생원 등 부산 부랑인시설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인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덕성원은 1952년 동래구 중동에 정착했고,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한 뒤 2000년에 폐원한 아동보호시설이다. 아직까지 덕성원에 대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은 수십여년만에 모였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협의회에 접수된 덕성원 관련 피해 건수는 40여건이다. 안 대표는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형제복지원과 재생원, 형제원 등의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피해를 용기 있게 말하고,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당시 겪은 피해에 대해서 비로소 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인 심모씨는 수용시설의 참혹한 삶이 어린 시절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씨는 "덕성원 재단은 어른이 돼 덕성원을 나간 원생들을 상대로 사기까지 쳤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몇천만 원, 많게는 몇억원씩 빌린 뒤 아직 갚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이제라도 국가와 부산시가 이런 문제를 살피고, 철저히 조사해서 어린아이들이 겪었던 한을 꼭 풀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진실 규명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사 권한을 가진 진화위에서 덕성원에 대한 직권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위는 내년 5월 만료될 예정인 활동 기간이 1년 연장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접수사건 2만 92건 중 처리 완료된 사건이 53%에 불과해 미처리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서다. 이들은 현재도 미처리 사건이 많은 상황이라 조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는 게 협의회의 설명이다. 이들은 정부에 피해 입증을 위한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안 대표는 "덕성원에 거주했던 아동들의 자료를 적극 발굴해 달라"면서 "덕성원 피해자들의 사건이 진화위에 접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4-02-05 18:50:42[파이낸셜뉴스]"세 살 무렵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 등에 업혀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가 몇 년 뒤 덕성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 이후 엄마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난 1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덕성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던 안종환 덕성원피해생존자협의회(협의회)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제2의 형제복지원이라 불리는 덕성원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곳에 수용됐던 피해생존자는 형제복지원·영화숙·재생원 등 부산 부랑인시설과 마찬가지로 상습적인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호소했다. 덕성원은 1952년 동래구 중동에 정착했고,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법인 명칭을 변경한 뒤 2000년에 폐원한 아동보호시설이다. 아직까지 덕성원에 대한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은 수십여년만에 모였고, 거리에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협의회에 접수된 덕성원 관련 피해 건수는 40여건이다. 안 대표는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가 형제복지원과 재생원, 형제원 등의 피해자들이 본인들의 피해를 용기 있게 말하고, 국가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당시 겪은 피해에 대해서 비로소 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인 심모씨는 수용시설의 참혹한 삶이 어린 시절에서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심씨는 "덕성원 재단은 어른이 돼 덕성원을 나간 원생들을 상대로 사기까지 쳤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몇천만 원, 많게는 몇억원씩 빌린 뒤 아직 갚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데, 재단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호위호식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자협의회 대표는 "이제라도 국가와 부산시가 이런 문제를 살피고, 철저히 조사해서 어린아이들이 겪었던 한을 꼭 풀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진실 규명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조사 권한을 가진 진화위에서 덕성원에 대한 직권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화위는 내년 5월 만료될 예정인 활동 기간이 1년 연장됐다고 밝힌 바 있다. 접수사건 2만 92건 중 처리 완료된 사건이 53%에 불과해 미처리 사건 진실 규명을 위해서다. 이들은 현재도 미처리 사건이 많은 상황이라 조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는 게 협의회의 설명이다. 이들은 정부에 피해 입증을 위한 지원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안 대표는 "덕성원에 거주했던 아동들의 자료를 적극 발굴해 달라"면서 "덕성원 피해자들의 사건이 진화위에 접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4-02-05 14:09:12"부산에서 형제 복지원에 가게 됐어요, 그리고 덕성원에 갔죠. 어머니를 찾고 싶어요. 덕성원의 진상 규명도 해야 합니다." 형제복지원과 덕성원 피해자인 안종환씨(49·사진)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아동 수용시설 덕성원의 직권 조사를 요구했다. 점촌(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안씨는 젖먹이 시절 원인도 모른 채 가족과 헤어졌다. 형제복지원 때문이었다. 안씨는 어머니인 김성분씨 품에 안겨 점촌에서 부산으로 왔다. 어머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부산을 찾았던 것뿐이다. 과정은 정확하지 않지만 부산역에서 경찰과 만나 파출소로 가게 됐고, 거기 있던 사람들과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입소를 당했다. 형제복지원 입소 후 결국 안씨와 어머니는 만나지 못했다. 1982년 그가 덕성원으로 옮겨지면서 작은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안씨에 따르면 덕성원은 형제복지원과 채무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의 재단 자산을 빼돌려 다른 시설에 빌려주는 식이었다. 안씨는 "덕성원에서 매일 밤만 되면 맞는 기억밖에 없다"며 "매일 집합을 당하고 방망이로 맞았다. 인권 유린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안씨 또한 주민등록 자료를 근거로 형의 신원을 확인했다. 형은 찾았지만 어머니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여전히 생사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안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덕성원이다. 덕성원의 진상 규명은 스스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게 안씨의 설명이다. 진실화해위는 내년 5월 활동 기간 만료를 이유로 조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혹여나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이 연장돼도 덕성원의 직권조사는 미지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안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덕성원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안씨는 1997년 덕성원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법인 관련 소송을 치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씨는 "덕성원 생활이 고통스럽긴 했지만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곳이고 가족 같다는 생각도 함께 있었다"면서 "덕성원측 요청으로 그동안 결혼도 하고 땅도 사고 사업도 키우고 싶어 모았던 돈을 빌려줬다. 매달 500만원씩 돈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총 5년 동안 3억원을 건넸다"고 전했다. 안씨는 "당시 덕성원장 부인이 장가갈 때 주겠다며 공증까지 써줬지만 돈을 갚지는 않았다"면서 "내가 25살 무렵 결혼할 여자가 생겼으니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끝내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씨 등 덕성원 피해자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음달 집회를 예고한 상황이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3-11-13 18:07:35"가족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했고 고생해서 번 돈도 지키지 못했다. 이제는 뿌리를 찾고 싶은 마음이다." 안종환씨(47·사진)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의 '뿌리'라고 했다. 점촌(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어린 젖먹이 시절 가족과 헤어진 이후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았지만 여러 힘든 일을 겪는 과정에서 '근원'에 대한 고민을 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안씨가 가족과 헤어진 것은 '형제복지원' 때문이었다. 젖먹이 시절 어머니(김성분씨) 품에 안겨 고향 점촌에서 부산으로 왔다. 어머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부산을 찾았던 것뿐이다. 과정은 정확하지 않지만 부산역에서 경찰과 만나 파출소로 가게 됐고, 거기 있던 사람들과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입소를 당했다. 형제복지원에 대해 안씨는 "해 질 무렵 탑차를 타고 철문을 넘었다. 내부에서는 큰 운동장 하나와 군대식 집을 본 것 외에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 후 결국 안씨와 어머니는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더구나 안씨는 1987년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옮기면서 만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덕성원은 부산 동래구(현 해운대구) 중동에 자리했던 아동시설이다. 덕성원은 형제복지원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라서 형제복지원에서나 덕성원에서나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성인이 된 안씨는 덕성원을 나왔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생선 도소매업에 뛰어들었다. 안씨는 "공업고등학교를 나왔는데 학교에서 자격증을 5개 땄고 취업기간에는 월 200만원을 벌었다. 그 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이어지는 고통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듯했던 안씨의 삶에 다시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7년이었다. 그해 '덕성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법인 관련 소송을 치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우나 고우나 성장을 했던 곳이고 엄마 같다는 생각에 그동안 결혼도 하고 땅도 사고 사업도 키우고 싶어 모았던 돈을 빌려줬다. 매달 500만원씩 돈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총 5년 동안 3억원을 건넸다. 문제가 터진 것은 안씨가 25세 될 무렵이었다. 결혼할 여자가 생겼으니 덕성원에 그동안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돈이 없다는 것이다. 덕성원은 더구나 안씨의 이름으로 보증을 서고 카드도 여러 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안씨는 45세가 돼서야 어머니와 가족들 다시 찾고 싶어졌다. 가족에 대한 기억을 묻자 안씨는 "젖먹이 시절 어머니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 갔던 기억이 있다. 당시 소를 잡아서 잔치를 했었다"며 "형과 누나가 있었고 태어난 마을 앞에는 동산과 논이 있었다. 논을 따라 내려가면 학교도 있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
2023-01-02 18:17:36[파이낸셜뉴스]"부산에서 형제 복지원에 가게 됐어요, 그리고 덕성원에 갔죠. 어머니를 찾고 싶어요. 덕성원의 진상 규명도 해야 합니다." 형제복지원과 덕성원 피해자인 안종환씨(48)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아동 수용시설 덕성원의 직권 조사를 요구했다. 점촌(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안씨는 젖먹이 시절 원인도 모른 채 가족과 헤어졌다. 형제복지원 때문이었다. 안씨는 어머니인 김성분씨 품에 안겨 점촌에서 부산으로 왔다. 어머니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부산을 찾았던 것뿐이다. 과정은 정확하지 않지만 부산역에서 경찰과 만나 파출소로 가게 됐고, 거기 있던 사람들과 함께 형제복지원으로 입소를 당했다. 형제복지원 입소 후 결국 안씨와 어머니는 만나지 못했다. 1982년 그가 덕성원으로 옮겨지면서 작은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안씨에 따르면 덕성원은 형제복지원과 채무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형제복지원의 재단 자산을 빼돌려 다른 시설에 빌려주는 식이었다. 안씨는 "덕성원에서 매일 밤만 되면 맞는 기억밖에 없다"며 "매일 집합을 당하고 방망이로 맞았다. 인권 유린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과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한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진상 규명을 통해 이곳에서 1960년부터 1992년까지 강제노역과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가 자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안씨 또한 주민등록 자료를 근거로 형의 신원을 확인했다. 형은 찾았지만 어머니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여전히 생사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안씨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덕성원이다. 덕성원의 진상 규명은 스스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실화해위는 내년 5월 활동 기간 만료를 이유로 조사 시간과 인력이 부족해 덕성원 사건을 직권조사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혹여나 진실화해위 활동 기간이 연장돼도 덕성원의 직권조사는 미지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안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덕성원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안씨는 1997년 덕성원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법인 관련 소송을 치를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씨는 "덕성원 생활이 고통스럽긴 했지만 어린 시절 함께 했던 곳이고 가족 같다는 생각도 함께 있었다"면서 "덕성원측 요청으로 그동안 결혼도 하고 땅도 사고 사업도 키우고 싶어 모았던 돈을 빌려줬다. 매달 500만원씩 돈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총 5년 동안 3억원을 건넸다"고 전했다. 안씨는 "당시 덕성원장 부인이 장가갈 때 주겠다며 공증까지 써줬지만 돈을 갚지는 않았다"면서 "내가 25살 무렵 결혼할 여자가 생겼으니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끝내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씨 등 덕성원 피해자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음달 집회를 예고한 상황이다. 안씨는 "덕성원 피해자들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조사는 매우 미비하다"며 "저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이에 대한 진상 조사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3-11-13 11:58:28【수원=장충식 기자】 경기도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2019년 경기도 전통시장 명품점포 육성지원 사업’ 10개 점포를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 ‘경기도 전통시장 명품점포 육성지원 사업’은 경기도 전통시장 내 경쟁력 있는 점포를 발굴해 단계별 지원을 통해 명품점포로 육성하는 사업으로, 2013년 시작해 올해 선정된 10개 점포 포함 총 64개의 점포가 인증을 부여받았다. 이번에 선정된 10개점포는 △수원시 남문패션1번가시장 ‘문화제분’ △조원시장 ‘이조순대 감자탕’ △매산로테마거리상점가 ‘대가’ △연무시장 ‘금터민물매운탕’ △정자시장 ‘착한탕국’ △시흥시 삼미시장 ‘고기천국’ △안산시 시민시장 ‘완도수산회’ △이천시 사기막골도자기시장 ‘토루’ △파주시 금촌명동로시장 ‘덕성원’ △하남시 신장전통시장 ‘산성상회’이다. 명품점포는 고객 친절도, 주위평판, 브랜드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되며, 명품점포로 선정된 10개소는 점포당 1000만원 한도에서 맞춤형 환경개선 지원을 받게 된다. 또 ‘경기도지사 인증’ 현판이 부여되는 동시에 3년간 명품점포 자격을 유지하게 되며, 점포별 현장컨설팅과 역량강화 교육도 받을 수 있다. 경과원 성인섭 서민경제본부장은 “명품점포의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성공사례를 만들고 이를 전파하여 확산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상인들이 공감하고 도움이 되는 지원사업을 통해 전통시장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 전통시장 명품점포 육성지원사업’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경과원 전통시장지원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jjang@fnnews.com 장충식 기자
2019-06-19 13:26:16【제주=좌승훈기자】 중국음식점에 가면 으레 하는 고민이 있다. 바로 짬뽕이냐, 짜장면이냐 하는 갈등이다. 그런데 올 겨울, 제주에서는 짬뽕이 승자다. 얼큰함과 다양한 해물들로 겨울철이면 더욱 생각나는 중독성이 있는 음식이다. 쫄깃한 면발에 가격도 알맞고 양도 적당하다. 올 겨울, 제주에서 부는 짬뽕 열풍. 제주 동부와 서부, 남부인 서귀포시까지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짬뽕의 맛. 제주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제주도민이면 다 아는 짬뽕집 7선’을 둘러봤다. ■ 불 맛 나는 국물이 독특한 비바리짬뽕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에 있는 비바리짬뽕은 “내 짬뽕이 최고”라는 음식점 주인의 자부심이 크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음 음식점명이 ‘이운 비바리짬뽕‘이다. 홍합, 게, 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과 양배추 등 각종 야채를 중국식으로 볶아 불 맛이 나는 짬뽕 국물이 독특하다. 속풀이에도 좋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이다. 해물짬뽕, 전복오징어짬뽕, 맑은 짬뽕 등이 있다. 짬뽕 위에 얹혀 있는 파채가 식감을 더한다. 유자소스를 넣어 상큼한 찹쌀탕수육,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고객들을 위해 크림짬뽕도 준비돼 있다. 반찬으로 무채를 주는 것이 특징이며, 로즈마리 허브차도 제공된다. ■ 직접 손으로 뽑아 더 탱탱한 수타명가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수타명가는 말 그대로 수타면을 제공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커다란 용 조형물이 건물 외벽을 타고 기어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음식점에 들어서면 “쩌어억, 쩍” 하는 수타 소리가 군침을 돌게 한다. 대표 메뉴는 용(龍) 짬뽕이다. 제주에서 나는 문어와 뿔소라, 홍해삼 등 제철에 나는 해산물이 듬뿍 들어있으며, 면은 무한리필이다. 3~4인분, 7만원이다. 홍합짬뽕, 탐라짬뽕(문어·삼선·전복)과 일반 중국집에서 접하기 어려운 크림 탕수육도 좋다. 수제 만두와 항아리 망고, 장독대빙수를 파는 디저트 코너도 있다. ■ 짬뽕도 좋지만, 간짬뽕이 더 유명한 보영반점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있는 보영반점은 1967년 문을 연 곳이다. 반세기가 넘은 곳으로 화교가 운영한다. 대표 메뉴는 간짬뽕(볶음짬뽕)이다. 다른 곳은 면까지 볶는데, 이곳은 비벼 먹는 짬뽕이다. 바삭한 식감의 옛날식 탕수육도 자주 찾는 메뉴다. 간짬뽕은 적당히 매콤한 맛에 딱새우 오징어 당근 양파 호박 표고버섯 등이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돋군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과 입맛이 다른 만큼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있기 마련. “짬뽕은 얼큰한 국물 때문에 먹는 게 아니냐?”고 반문 하는 이에게는 불만 일 수도 있겠지만. ■ 홍합 가득, 신선한 국물이 일품인 다래향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바닷가에 있는 짬뽕전문점이다. 종류도 많다. 홍합, 조개, 굴, 게, 새우 등 해산물이 주 재료다. 속풀이짬뽕, 굴짬뽕, 전복짬뽕, 왕짬뽕(2인)에 차돌박이짬뽕은 흰 짬뽕인데 국물 맛이 깊다. 몇 번 먹다보면 중독되는 맛이다. 짬뽕 국물에 밥 한 공기 말아먹는 것도 별미. 돼지고기, 감자, 양파 등의 재료를 잘게 다져서 만든 유니짜장도 추천 메뉴중 하나. 간장소스에 찍어먹는 탕수육도 색다르다. 다래향은 주방이 개방돼 있어 조리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 고기 육수가 내는 진한 짬뽕의 맛, 몰질식육식당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몰질식육식당은 지상파TV 프로그램을 통해 더 알려진 곳이다. 원래 중식당이 아닌 한식당(복어전문)인데 짬뽕이 더 잘 팔린다. 3대째 영업을 해오면서 음식점 외관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대표 메뉴는 옛날 돼지고기 짬뽕. 해물은 없고 고기와 버섯, 양파, 당근, 양배추, 대파 등의 각종 야채가 어우러져 국물 맛이 깊고 묵직하다. 음식점명, ‘몰질’은 말이 다니던 길을 뜻하는 제주어다. 강정마을 길 한 켠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비교적 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 짬뽕 외에 복지리, 복매운탕, 우동, 찐왕만두도 판다. ■ 게 향이 물씬 나는 꽃게짬뽕, 덕성원 서귀포시 서귀동 이중섭거리 근처에 있다. 1945년에 개점했다. 3대째 운영되는 전통 중국집이다. 인기 메뉴는 꽃게짬뽕. 각종 해물과 함께 끓인 꽃게 육수를 사용하며, 시원하고 매콤한 맛이 인기의 비결이다. 게살이 국물에 풀어져 있어 한 입만 먹어도 게 향이 확 난다. 얼큰한 맛의 삼선고추짬뽕과 (흰짬뽕)도 있다. 꿩탕수육과 꿩깐풍기는 겨울철 별미다. 현재 서귀포시 본점과 중문점, 제주시 이도동점을 두고 있다. ■ 고기육수로 만든 시원하고 진한 맛, 아서원 서귀포시 하효동에 있는 아서원은 고기짬뽕이 맛있는 곳이다. 최근 케이블TV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의 메뉴는 짜장, 짬뽕, 만두, 탕수육 4가지다. 짬뽕은 옛날 고기짬뽕(6500원)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의 맛이다. 돼지 뼈로 우려낸 진한 육수에 각종 해물과 채소, 굵은 고춧가루가 잘 어우러져 속풀이에도 그만이다. 곱빼기는 500원 추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들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짬뽕밥(7000원)을 선호한다. 중독성 있는 국물에 쫄깃한 면발과 적당한 양과 가격, 짬뽕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jpen21@fnnews.com 좌승훈 기자
2017-12-30 16: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