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중국에서 일본인 초등학생이 등교 중 괴한에게 습격당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내에서 일본인 어린이가 피습을 당한 건 지난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 18일 일본 정부 부대변인인 모리야 히로시 관방부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중국 광둥성 선전시 일본인학교 학생 1명이 오늘 오전 남성에게 습격당해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라고 밝혔다. 피해 학생은 현지 일본인학교에 다니는 남자 초등학생으로, 등교 중 괴한의 흉기에 찔린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야 부장관은 "중국 당국이 용의자들 신병을 확보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일본 총영사관은 일본인 보호를 위해 현지 당국에 재발 방지와 정보 공유를 요청했다"라고 덧붙였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역시 이날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18일 오전 선전 일본인학교의 한 10세 학생이 학교 입구로부터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에 의해 칼에 찔렸다"라며 "다친 학생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고 전력으로 처치 중"이라고 설명했다. 린 대변인은 "용의자는 이미 현장에서 붙잡혔고, 사건은 현재 추가 조사 중"이라며 "중국은 계속해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 중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선 지난 6월에도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중국인 남성이 하교하는 자녀를 맞으러 나간 일본인 모자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했다. 3개월 만에 다시 일본인 어린이를 노린 피습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이 사건으로 일본인 여성과 미취학 아동인 아들이 다쳤으며 이들 모자를 지키려다 중상을 입은 일본인학교 통학버스 중국인 여성 안내원인 후유핑(胡友平)씨는 치료를 받다가 끝내 숨지기도 했다. 쑤저우시 정부는 고인에게 '견의용의 모범' 칭호를 추서했고, 일본대사관도 애도를 표했다. 특히 이번 일본인 피습 사건은 1931년 일제가 만주 침략 전쟁을 개시한 만주사변(9·18사변) 93주년 당일에 발생해 증오 범죄(hate crime)가 동기인지 여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린 대변인은 이 부분에 대해 “현재 추가 주사 중이라고 답했다”라고 답한 뒤 "중국은 법치국가로 우리는 일본을 포함한 각국 인사가 중국에 와 여행·공부·사업·생활하는 것을 늘 환영해왔고 계속해서 효과적 조치를 취해 재중국 외국인의 안전을 보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09-19 07:13:43【베이징=이석우 특파원】중국과 일본 관계가 일본인 초등학생 피습 사망 사건으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 중국 남부 광둥성 선전에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10살 된 일본인 초등학생이 하루 만에 숨지면서 재중 일본인들에게 안전 비상 속에 동요하고 있다. 중일, 양국 관계는 교류 축소 등 악영향이 불가피하게 됐다. 20일 주중일본대사관과 주중일본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들은 주재원과 가족 안전을 우선하라는 통지를 보냈다. 최근 몇 년 새 악화일로에 있던 양국 관계가 침체된 가운데 대중 리스크가 다시 부각됐다. 일부에서는 주재원 감축 및 투자 계획 철회 등 교류 축소 등의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 기업들, 주재원 파견 제도 감축 및 교류 축소 등 움직임 확산 피해자 부모가 근무 중인 파나소닉홀딩스(HD) 등은 파견자와 가족들의 일시 귀국을 허용하면서 안전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적지 않은 일본계 진출 기업들은 사원들에게 회사 부담으로 일본인 종업원과 가족들의 일시 귀국 등을 돕겠다고 밝혔다. 상담 창구를 설치한 것 외에 재택 근무나 근무 시간 변경 등 유연 근무 방법도 도입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취지에서이다. 앞서 지난 6월 중국 동부 장쑤성 쑤저우시에서 하교하는 자녀를 맞으러 나간 일본인 모자 등 3명에게 중국인 남성이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한 뒤 3개월 만에 귀가하는 일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재발한 것이다. 6월 피습 사건 때에는 괴한의 범행을 막으려던 일본인학교 스쿨버스 승무원이 칼에 찔려 사망했었다. "가족 만이라도 일본에 귀국시키겠다"라는 일본 기업 주재원들도 증가세 이 처럼 중국 주재 일본인 주재원 자녀를 겨냥한 범죄가 잇따르자 "먼저 빨리 가족 만이라도 일본에 귀국시키겠다"라고 하는 일본 기업 주재원들도 늘고 있다. 중국 주재 일부 일본계 회사들은 "잇따라 아이들을 겨냥하고 노린 폭력 사건이 이어지고, 사망 사건까지 이르자 주재원 파견 제도와 가족 동반 문제를 재검토해야 할 단계"라고 밝히고 있다. 사망 피습 사건이 발생한 광둥성 선전시 인근의 광저우시에 공장을 둔 혼다는 "가족대동 직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면서 "향후 대응을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광둥성은 중국의 공장으로 불리는 제조업의 메카로 자동차 등 일본계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다. 닛산 자동차도 "주재원들의 개별 청취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동이 다니는 학교의 안전 관리 상황도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주중 일본인 상주인구 2012년 15만명 대에서 30% 가량 감소 일본 기업과 재중 일본인 상주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 상황으로 중국주재 일본인 수는 최고점을 찍은 2012년 15만명 대에서 30% 가량 준 10만 여명 대로 내려갔다. 기업 수도 최고 시점에 비해 10% 가량 줄어들었다. 주중일본대사관은 "우리는 사태를 엄중하게 인식한다"면서 "중국 정부가 중국에 있는 일본 교민을 보호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진상을 규명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피해 학생은 전날 오전 등교 도중 학교 교문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괴한 습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숨진 학생은 일본 국적이고, 부모는 각각 일본과 중국 국적이다. 사건 당일 중국 외교부는 남성 용의자를 현장에서 붙잡았다고 밝혔으나 이 남성이 '증오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 중"이라며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은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를 초치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하는 한편 중국 내 일본인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사건 당일은 만주사변 93주년으로 민족주의 감정 고조중 사건 당일은 일제가 1931년 만주 침략 전쟁을 개시한 만주사변(9·18사변) 93주년을 맞아 중국 당국이 일제의 전쟁 범죄와 식민지 침탈 등을 강조하던 시점과 맞물리기도 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오랜 기간 학교 교육 등을 통해 일본을 비판하면서 애국·역사의식을 고취해왔다는 점과, 오염수 방류 문제나 동·남중국해 갈등 등으로 일본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감정이 나빠져 왔었다. NHK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지극히 비열한 범행으로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중일 관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는 "현시점에서 예단을 갖고 말하는 것은 삼가겠지만, 우선 중국 측에 사실관계 설명을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며 "일본인의 안전 확보와 재발 방지를 중국 측에 요구하면서 일본 정부로서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2024-09-20 13:27:40[파이낸셜뉴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폐허의 청년들, 존재와 탐색’을 주제로 ‘2022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개최한다. 2001년부터 해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인들을 기리고 그들의 문학을 연구해온 본 문학제는 1922년생 문인들 중 김구용, 김차영, 김춘수, 선우휘, 손창섭, 여석기, 유정, 정병욱, 정한숙 등 9인을 대상작가로 선정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12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문학의 밤 및 각종 부대행사를 개최한다. 심포지엄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하여 실시하며, 오프라인 청중은 세션별 30명 이내로 모객하고 온라인으로는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한다. 문학의 밤은 무관객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된다. 피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난 1922년생 작가들은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931년에 만주사변을 겪는다. 스무 살이 되는 1942년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다. 징집 대상이었던 이들은 23세에 8.15 해방을 맞이했고, 이어 한국전쟁을 겪게 된다. 유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에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겪은 이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한국문학을 풍요롭게 했다. 김구용은 1949년 ‘산중야(山中夜)’로 등단하였고, 김차영은 1941년 문예지 ‘신시대(新時代)’에 ‘야영(夜詠)’ 등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김춘수는 1946년 ‘애가’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로 제5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우휘는 1955년 ‘귀신’을 ‘신세계’에 발표하면서 등단, 단편 ‘불꽃’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손창섭은 1949년 소설 ‘얄궂은 비’를 선보이고 1952년 ‘문예’에 ‘공휴일(公休日)’이 추천되어 본격 등단했다. 여석기는 1970년에 ‘연극 평론’을 발행하며 평론 부재의 연극 풍토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유정은 1939년 문예지 ‘와까꾸사(苦草)’에 시 ‘소년 연모’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병욱은 윤동주를 세상에 알린 국문학자이자 1952년 에 국어국문학회를 창립하면서 국문학계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정한숙은 1948년 ‘흉가’를 ‘예술조선’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한국전쟁까지 모든 것이 허물어진 폐허를 체험했던 ‘폐허의 청년들’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실존의 의미를 묻는 사조(思潮)가 흘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있음의 의미를 묻는 ‘존재에의 탐색’은 이들이 거쳐야 할 뜨겁거나 식어버린 아궁이 같았다. 1922년생 문사(文士)들의 고투를 담아 이번 문학제의 주제를 ‘폐허의 청년들, 존재와 탐색’으로 명명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2-05-02 15:09:28[파이낸셜뉴스] 1921년에 태어난 문학인들은 피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만주사변과 뒤이은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성장했고, 장년기에는 8.15해방과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감당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격변의 세월로 허송했기에 이들의 문학 활동은 다른 세대 작가들보다 늦게 시작됐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는 “시민의 탄생, 사랑의 언어”를 대주제로 ‘2021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개최한다. 3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경영임원은 “2001년부터 매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 문인들을 재조명해 온 이번 문학제는 1921년생 문학인들 가운데 김광식, 김수영, 김종삼, 류주현, 박태진, 이병주, 장용학, 조병화 등 8인을 대상작가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13일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문학의 밤 및 각종 부대행사를 개최한다. 1921년생 작가들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긴 학습의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 장용학과 이병주는 학병에 징집되고, 김광식과 김수영은 학병을 피해 만주로 도피하였다. 이러한 고난의 시간을 보낸 뒤 이들은 작가의 길로 나서게 되는데, 그 시기는 1945년부터 1960년대에 걸쳐있다. 등단이 가장 빠른 김수영은 1945년 ‘예술부락’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한 뒤 김경린·박인환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올렸고, 장용학은 1949년 연합신문에 ‘희화’를 연재한 뒤 1950년 단편 ‘지동설’로 ‘문예’지의 추천을 받아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류주현은 1948년 ‘백민’에 ‘번요(煩擾)’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으며, 박태진은 1948년 연합신문에 ‘신개지에서’를 발표하면서, 조병화는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면서 각각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종삼은 6.25전쟁 중 피난지 대구에서 ‘원정(園丁)’과 ‘돌각담’을 발표했고, 김광식은 1954년 ‘사상계’에 단편 ‘환상곡’을, 이병주는 1965년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세대’지에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전후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걸쳐있는 이들의 문학은 전쟁과 분단, 민족문제, 시민사회 건설, 자본주의적 근대화 등에 대한 탐구로 나타났다. 전쟁은 한순간에 자신이 처한 삶의 뿌리를 빼앗아 정신적 아노미 상태를 만들었고 그로 인해 작가들은 대상과 주체, 사회와 개인을 조망할 언어를 상실했다. 4.19혁명은 학병체험과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성찰과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4.19로 인해 가능해진 자유의식의 고취와 시민사회 형성의 제반 여건을 통해서 이들은 죄의식의 속박에서 탈출해 스스로를 역사적 책임감을 갖는 주체로 정립하게 된다. 그 방식은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데, 총괄하자면 ‘시민의 탄생’과 ‘새로운 문학 양식의 탄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주제를 ‘시민의 탄생, 사랑의 언어’로 정했다. 이번 문학제에서는 이들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고 한국문학의 내일을 논하기 위해 △심포지엄을 13일 오전 10시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컨벤션홀에서 개최하고 △문학의 밤을 14일 오후 7시 전태일기념관 2층 공연장 울림터에서 대상문인들의 작품을 낭독하는 무대를 꾸며 선보인다. 행사는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다. 이어 부대행사로 △김수영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과 한국시학회와 공동개최하는 △탄생 100주년 시인 기념 학술대회(6월 26일 고려대학교), 한국현대소설학회와 공동개최하는 △학술대회 ‘장용학, 이병주, 류주현, 김광식 문학의 재조명’(11월 27일 서울대학교) 등 다양한 작가별 행사를 연중 진행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류주현, 장용학, 조병화의 유가족들이 아버지로서의 작가들의 모습을 회고한 글 ‘나의 아버지’를 계간지 ‘대산문화’ 2021년 여름호에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심포지엄 발제문, 토론문, 작가 및 작품 연보를 엮은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논문집을 발간한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심포지엄 세션별 청중 수를 30명 이내로 제한하여 진행하고 유튜브로 생중계한다. 문학의 밤은 무관객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1-05-03 11:54:37문재인 대통령의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 경축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 광복 74주년 기념식을 특별히 독립기념관에서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며 모든 것을 바쳤던 선열들의 뜨거운 정신은 이 순간에도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독립 선열들과 유공자, 유가족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광복의 그날, 벅찬 마음으로 건설하고자 했던 나라,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 뜻을 이어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국민들과 함께 그려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울산에서 수소산업을 공부하여 남포에서 창업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안과 인도양, 남미의 칠레까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의 항해사가 되는 나라입니다.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우리의 삶과 상상력이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이 한반도 남쪽을 벗어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나라입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가가 가져야 할 당연한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7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고,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문화국가의 꿈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자유무역 질서를 기반으로 반도체, IT, 바이오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나 자신의 강점을 앞세워 성공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뒤처졌던 동아시아는 분업과 협업으로 다시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세계는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침략과 분쟁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훨씬 긴 교류와 교역의 역사가 있습니다. 청동기 문화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는 서로 전파하고 공유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고, 함께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광복은 우리에게만 기쁜 날이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 년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날이며, 동아시아 광복의 날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랍니다. 협력해야 함께 발전하고, 발전이 지속가능합니다. 세계는 고도의 분업체계를 통해 공동번영을 이뤄왔습니다.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왔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입니다.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입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입니다.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오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한반도’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첫째,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자유무역의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경제에서 주권이 확고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통합된 국민의 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도전은 우리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중동의 열사도, 태평양의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 산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세계적 IT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5G 등 세계 기술표준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을 추격해 왔지만, 이제 앞서서 도전하며 선도하는 경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 경제구조를 포용과 상생의 생태계로 변화시키겠습니다. 대중소 기업과 노사의 상생 협력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겠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를 존중하며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성찰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함께 격려해 나갈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하여 이웃 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둘째,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초라하고 힘이 없으면, 한반도는 대륙에서도, 해양에서도 변방이었고, 때로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겪었던 지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 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정신입니다.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 상생번영의 평화공동체’는 우리부터 시작해 한반도 전체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으로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신북방정책은 대륙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협력의 기반을 넓히고 동북아시아 철도공동체로 다자협력, 다자안보의 초석을 놓을 것입니다. 신남방정책은 해양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주변 주요국들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공동번영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올해 11월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아세안 및 메콩 국가들과 획기적인 관계발전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남과 북 사이 끊긴 철길과 도로를 잇는 일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한반도의 땅과 하늘, 바다에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혈맥을 잇고 남과 북이 대륙과 해양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면,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 아세안, 인도양을 잇는 번영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공동체는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평등한 국가들의 다양한 협력이 꽃피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셋째,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여 겨레의 에너지를 미래 번영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남과 북, 미국은 지난 1년 8개월, 대화국면을 지속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입니다.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국내외에 적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 말의 판문점 회동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남·북·미 모두 북미 간의 실무협상 조기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그 역시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일입니다. 국민들께서도 대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입니다.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IMF는 한국이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며, 2024년경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과 북의 역량을 합친다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8천만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까지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2050년경 국민소득 7~8만 불 시대가 가능하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남과 북의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시장과 기회가 열립니다. 남북 모두 막대한 국방비뿐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무형의 분단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의 해답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광복의 그 날처럼 우리 민족의 마음에 싹틀 희망과 열정이 중요합니다. 희망과 열정보다 더 큰 경제성장의 동력은 없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시작하여 울산과 포항, 동해와 강릉, 속초, 원산과 나진, 선봉으로 이어지는 환동해 경제는 블라디보스톡을 통한 대륙경제, 북극항로와 일본을 연결하는 해양경제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여수와 목포에서 시작하여 군산, 인천을 거쳐 해주와 남포, 신의주로 향한 환황해 경제는 전남 블루이코노미,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신산업과 개성공단과 남포, 신의주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단지의 육성으로 중국, 아세안, 인도를 향한 웅대한 경제전략을 완성할 것입니다. 북한도 경제건설 총노선으로 국가정책을 전환했고 시장경제의 도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성장을 돕겠다 약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함께 잘 살자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 발전에 남북이 함께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평화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역량을 더 이상 분단에 소모할 수 없습니다.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남과 북이 손잡고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분단을 극복해낼 때 비로소 우리의 광복은 완성되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의주시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지만, 그 역시 궁극의 목표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에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민들께서 한마음으로 같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광복절을 맞아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북한과 함께 ‘평화의 봄’에 뿌린 씨앗이 ‘번영의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00년 동안 성찰했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기 위한 국민적 역량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고, 일본을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끄는 길입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한반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끝> fnkhy@fnnews.com 김호연 기자
2019-08-15 09:42:26*'다크 헤리티지'(Dark Heritage) 또는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는 '부정적 문화유산'을 말한다.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는 주로 일제강점기 시대나 군부독재 시절 참혹한 참상이 벌어졌거나 그들의 통치와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장소를 찾아가 과거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 기자 말 서울의 대표 명소 남산, 도심의 빌딩숲 사이에서 남산은 서울 시민의 쉼터인 동시에 우리 역사의 흉터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신궁이 그렇고 경성신사, 한양공원, 조선통감부가 그렇다. 그리고 노기신사도 있다. 일제는 조선을 지배하면서 내선일체를 꾀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1400여 개에 달하는 신사와 사당을 지었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신사가 남아 있는 곳이 없는데,, 이 대부분은 해방되던 해인 1945년에 우리 국민들이 거의 파괴시켰다. 내목신사(乃木神社)로도 불리는 노기신사는 ‘러·일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1849.11.1~1912.9.13) 일본군 장군을 기리는 신사다. 노기 장군은 일본 내에서도 근대 군인 가운데 사무라이 정신의 무사로 추앙받고 있다. 아직 그를 기리는 신사가 일본 본토 곳곳에 남아 있을 정도이니, 그에 대한 일본인의 존경심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갈 만하다. 그러나 일본인의 입장에서야 군신(軍神)이자 ‘라스트 사무라이’일지라도 우리에겐 적국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 노기신사가 제국의 식민지에 들어선 이유 '군국주의에 딱 맞는 우상화'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그의 이름을 딴 내목회(乃木會)도 있엇다. 이 단체는 노기 장군 부부의 뜻을 널리알려 식민교화의 수호신으로 모시자는 뜻을 모아 노기 부부 사망 20주기에 식년제를 열었고 뒤이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얻어 본격적으로 신사 창건에 나섰다. 1931년 일제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아시아 전체를 전쟁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군국주의에 딱 적합한 우상화였다. 부지는 남산 경성신사 옆 벚나무 계곡을 삼았다. 계곡 안쪽 국유지 1700여 평의 산림을 평평하게 골라 1934년 1월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9월 13일 준공식을 열었다. 신사 입구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난간이 있는 나무다리가 있었다. 상상해보자. 새소리가 재잘되고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남산 자락에 올라 목조 다리 건너 다다른 1930년대 고즈넉한 신사의 풍경을, 다만 이곳이 일제의 신사라는 점만 뺀다면 더없이 좋지 않았을까. ■ 일제 신사에서 해방조국의 꿈나무 키워낸 남산원 1952년 한국전쟁이 매듭되기 전 국군과 경찰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자녀 69명을 위해 보육원을 세웠다. 최기석 초대 군경유자녀보육원 원장은 노기신사 터에 자리를 잡았다. 전쟁으로 국토는 초토화되고 남아 있는 게 무엇이랴. 최 원장은 남아 있던 노기신사 본관을 시설로 사용했다. 그런데 1979년 들어 본관과 3동이 화재로 소실됐고 1993년에는 마지막 신사의 창고마저 헐면서 노기신사의 그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 답사를 가던 날 마침 눈이 내렸다. 남산원을 들어서자 운동장과 화단에는 예사롭지 않은 석재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요즘시대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석재는 신사에 사용됐던 유구들로 벤치 의자나 화단 지지대 등 남산원 곳곳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특히 노기신사 터를 증명하는 데미즈야(일본어: 手水舎)가 남았다. 이 돌 수조는 일본 신사나 사찰 경내에 두어 참배자가 참배하기 전 손이나 입을 씻는 용도로, 수조 앞면에는 마음을 씻으라는 뜻의 ‘세심’이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수조 기증 연도와 기증자가 쓰여져 있다. 그 뜻은 ‘타카기 토쿠야와, 타카기 사다코 부부가 봉납했다’라면서 ‘쇼와9년(1934년) 9월 어느 날’이라 한다. 원래 물이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낙엽이 쌓이고 빗물이 고인 상태다. 남산원 홈페이지의 과거 사진 중에선 석등을 거꾸로 뒤집어 테이블을 만들어 최 원장과 원생이 빙 둘러 앉은 사진이 있다. 이곳에서 ‘티타임’을 가지기도 한 모양이다. 전후 남산원은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 및 주한미군의 도움을 많이 받아 가족을 잃은 아이들의 꿈을 키웠다. 강당 건물에 붙어 있는 표석엔 ‘미국의 원조’라 써있다. 서울시는 2013년 남산원 강당(8호)과 본관(9호)를 나란히 서울미래유산에 등록했다. 올해 서울시가 완성하는 ‘국치의 길’코스에는 남산원이 들어 있다. 서울시는 치욕스러운 역사도 역사인 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보고 남아있는 유기를 그대로 둬 역사의 흔적을 둘러볼 수 있게끔 했다. 이어진 기사 보기 클릭 ▶▶ [다크 헤리티지를 찾아서] 일제강점기의 '타운하우스' 철도 관사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2018-02-01 17:42:14일제 강점기 국내외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 11명의 후손 25명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다. 법무부는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그동안 외국국적으로 살아오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남자현 선생과 김규면 선생, 이승준 선생 등 독립 유공자의 후손 25명을 대상으로 국적증서 수여식을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는 남자현 선생은 을미의병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우다 3·1 운동에 가담한 것을 계기로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에 앞장섰다. 영화 '암살'에서 배우 전지현씨가 연기한 실존인물로 잘 알려져있는 그는 평범한 주부에서 국권 회복에 목숨을 건 독립투사로 변신해 무장 투쟁에 적극 참여하며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려고 국내에 잠입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또 만주 길림에서 김동삼, 안창호 등 독립운동가 47명이 체포되자 석방투쟁을 벌이며 옥바라지를 했다. 1932년 만주사변 진상조사를 위한 국제연맹 조사단이 만주를 방문하자 왼손 두 마디를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조사단에 보내 우리의 독립정신을 국제연맹에 호소했다. 1933년 만주국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다 체포된 남 지사는 혹독한 고문에도 17일 동안 단식투쟁을 하다 병보석으로 석방됐으나 61세를 일기로 1933년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919년부터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신민단' 단장으로 활동한 김규민 선생은 같은 해 1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단을 조직,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24년 5월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차장 및 교통총장 대리에 선임됐다. 이후 모스크바 등지에서 어렵게 생활하다가 1969년 사망했다. 200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1882년에 태어난 이승준 선생은 1905년 23살에 멕시코로 이민을 떠나 1921년 쿠바에 정착, 한인동포를 상대로 국어교육운동을 전개했다. 1930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쿠바에 알려지자 현지에서 40여 명을 모아 지지대회를 열고 100달러를 모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조직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국민회에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1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번영은 독립유공자 등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의 산물이며, 앞으로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우리 국적을 부여할 것"이라며 "후손들도 선조들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해달라"고 당부했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매년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아 특별귀화 허가를 통해 총 1065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2017-08-10 10:22:08중국의 한 쇼핑센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죄하는 듯 한 밀랍인형이 전시됐다 일본 공관의 민원 제기로 철거됐다. 26일(현지시간) 중국 동방망 등에 따르면 최근 랴오닝성 선양 도심의 한 쇼핑몰 안에 아베 총리가 아베 총리가 공손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숙여 사죄하는 모습의 밀랍인형이 전시됐다. 실물에 가까운 크기로 제작된 이 인형에는 마치 히틀러를 연상케하는 콧수염까지 부착됐다. 인형 뒷편에는 '기억하자 9·18'이라는 문구와 중국 오성홍기가 인쇄된 대형 패널이 설치됐었다. '9·18'은 1931년 9월18일 일제가 선양 류타오거우의 남만주 철도를 폭파하고 이를 중국 군벌 장쉐량 군대 소행이라고 날조하며 만주 침략을 본격화한 날이다. 중국은 올해로 85주년을 맞은 이 사건을 '9·18 만주사변'이라 부르며 선양에 역사박물관을 세우고 매년 기념행사를 여는 등 일제 침략상을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베 총리 인형과 함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밀랍인형도 전시됐으나 이들 인형은 가슴을 활짝 펴고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인형이 주목받자 주 선양 일본총영사관은 민원 제기했고, 이후 즉시 철거됐다. 쇼핑몰측은 "미국·러시아·일본 지도자들의 밀랍인형 전시는 우리가 기획한게 아니라 단둥지역 밀랍인형 제작장인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2016-11-28 09:17:1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역사 자료를 관람 할 수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10일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간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지은 이 역사관 에는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강제동원 관련 유품, 기증품, 기록물 등 192건 354점이 전시된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역사 자료를 관람 할 수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착공 6년만에 문을 연다. 9일 부산시에 따르면 국무총리 소속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대일 항쟁위)'의 주관으로 부산 남구 대연동 당곡공원 내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10일 개관식을 가진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광복 70년 만에 일제 강제동원의 잔혹한 역사를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역사관이다. 대일 항쟁위가 총사업비 506억원을 들여 2010년 착공, 지난해 5월 완공했다. 이후 1년 6개월간 전시실 시범운영 등을 거쳐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춰 문을 열게 됐다. 7만5465㎡ 부지에 연면적 1만2062㎡의 6층 규모로 3개의 전시실과 추도·교육·연구공간을 갖췄다. 역사관에는 만주사변 이후 일제의 강제동원 관련 유품, 기증품, 기록물 등 192건, 354점이 전시된다. 대부분 전시물은 위원회가 강제징용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기증받거나 직접 수집한 자료들이다. 역사관은 올해 말까지 위원회에서 운영한 후 내년 1월부터는 행정자치부로 이관돼 위탁 운영 단체에 운영을 맡길 예정이다. 역사관이 부산에 들어선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돼 조국을 떠나던 조선인들이 마지막으로 밟은 땅이자 귀향할 때 가장 먼저 밟게 되는 곳이 부산이고, 강제동원자의 22% 가량이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역사성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부산시는 설명했다. 부산시는 앞으로 역사관 주변의 UN평화기념관, UN묘지, 평화공원 등과 연계해 시민들에게 평화와 인권의 역사를 기억하고 체험하는 세계적인 역사·관광의 명소로 조성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개관식에는 서병수 부산시장, 이해동 부산시의회 의장, 박인환 대일 항쟁위 위원장, 김정훈 국회의원,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 단체, 유물기증자, 시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15-12-09 09:36:46【 베이징=김홍재 특파원】 일본의 안보법안 통과와 관련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우려하는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중국의 패권주의를 우려하는 미국, 영국 등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과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 등은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환영의 입장을 보이는 등 이해관계에 따라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20일 각국 현지언론에 따르면 안보법안 통과에 가장 격앙된 반응을 보인 국가는 한국과 중국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이번 법안의 통과 배경에는 '중국의 굴기(우뚝 일어섬)'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양국은 중국에 칼을 겨누고 미·일 동맹을 통해 대중 억지력을 강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법안 통과 직후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을 통해 "국제사회는 일본이 전수방위 원칙(상대의 공격을 받았을 때에 한해 방위력을 행사하는 것)과 전후 걸어왔던 평화발전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지 묻고 있다"면서 "일본이 역사의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일본 국내외의 정의로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버에는 네티즌들의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9·18 만주사변 기념일을 즈음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악의가 가득차 있다" "일본이 정말 전쟁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냐" "이제 동북아의 전쟁 위험은 더욱 커졌다"는 등의 비판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반면 미국, 영국, 필리핀 등 중국의 '군사굴기'를 우려하는 이해 당사국들은 법안 통과를 환영했다. 일본 NHK,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는 법안이 통과되자 성명을 통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아시아 지역과 국제사회 안보를 위해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환영한다"면서 "일본은 70년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으며 모든 국가에 모범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 및 외교위원회도 법안 통과가 미·일 동맹을 강화시키고 국제평화 및 안보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월스리트저널은 "일본 의회가 시위대 수천명의 항의에도 아베 총리의 숙원이던 법안을 최종 승인했다"면서 "이로써 일본 정부는 2차대전 후 처음으로 국외 충돌 상황에 자국군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영국의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도 "일본이 국제 평화와 안보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일본이 평화 유지와 번영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법안 통과가 2차대전 후 일본의 대외·군사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일본이 법안 통과로 지역 평화와 안보를 증진시키는 데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반응은 중국과 충돌 시 새로운 법안에 따라 일본의 군사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hjkim@fnnews.com
2015-09-20 17:3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