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녀 결혼식에 재계 총수들이 대거 참석했다. 27일 정 회장의 맏딸 진희씨는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의 손자 지호씨와 화촉을 밝혔다. 김 전 장관은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의 형으로 정 회장은 대우가(家)와 사돈을 맺게 됐다. 진희씨는 미국의 명문여대 웰즐리대학을 졸업한 후 컨설팅회사인 롤랜드버거에서 일하다 현재 현대차 해외법인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호씨는 미국 조지타운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에서 교육정책 석사를 수료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미국 유학 과정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가(家)는 전통적으로 맞선이 아닌 연애결혼을 장려해왔다. 정략결혼보다는 자녀들의 의지를 존중한 것으로 정 회장 역시 부인 정지선씨와 연애결혼을 했다. 신랑의 부친 김선욱씨는 MIT 박사 출신으로 아주대 교수를 지내다 에너지·파워 전문벤처기업 네스캡을 창업했다. 네스캡은 '울트라 커패시터(초고용량 축전기)' 관련 기업으로 지난 2017년 이 분야 1위인 미국 맥스웰에 인수됐다. 혼주인 정 회장은 이날 오전 11시40분께 제네시스 G90을 타고 식장에 도착해 하객을 맞을 준비를 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총수들이 대거 참석해 양가의 결혼을 축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딸 원주씨와 함께 참석했고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현식 한국타이어 고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등이 축하를 위해 결혼식장을 찾았다. 원주씨는 결혼식 참석을 위해 미국에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 회장 등 현대가 사람들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현대가가 결혼식에서 모인 것은 2020년 정기선 사장 결혼 이후 처음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날 결혼식은 경건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결혼식에서는 대부분의 총수들이 현대차그룹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타고 와 눈길을 끌었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제네시스 G90을 타고 등장했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홍요은 기자
2022-06-27 18:11:25[파이낸셜뉴스]'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맏딸 샘(15)과 함께 명예의 전당 입회식에 참석한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식은 오는 1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오거스틴에서 열린다. 우즈는 2010년 8월에 이혼한 엘린 노르데그린(스웨덴)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그 중 맏딸인 샘은 아버지 우즈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다. 이에 앞서 아들 찰리(13)는 지난해 12월 아버지와 함께 가족 골프 대회에 출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즈는 2020년 골프 명예의 전당 입회가 확정됐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 여파로 입회식이 미뤄졌다. 샘은 지난 2007년 우즈가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다음 날 태어났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전 커미셔너 톰 핀첨, 3차례 US여자오픈 챔피언에 오른 수지 맥스웰 버닝, 아마추어 골퍼로 여성 골프 발전에 크게 기여한 메리언 홀린스 등도 우즈와 함께 이날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다. 핀첨의 소개자는 데이비스 러브 3세(미국), 버닝의 소개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출신 명예의 전당 회원인 주디 랭킨(미국)이 맡는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22-03-09 12:24:31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자녀에 대한 취업지원 시, 장손을 '장남의 장남' 으로만 보는 것은 차별이라고 2일 판단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 A씨는 보훈처가 독립운동가의 맏딸의 아들은 장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독립유공자의 증손자인 본인이 취업지원 혜택을 받지 못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장손은 '장남의 장남(1남의 1남)'으로 보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이라며 "호주승계인(일가의 계통을 계승한 자)을 대체하는 개념으로서 명칭만 변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호주제는 폐지됐으며, 가족의 기능이나 가족원의 역할분담에 대한 의식이 달라졌음에도 반드시 남계혈통으로 계승돼야 한다는 관념으로 '장손'의 개념을 남성으로 한정하는 것은 성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장손(손자녀)의 자녀에 대한 취업지원 시 성평등에 부합하도록 진정인과 같은 경우에 구제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2019-07-02 10:27:3838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맏딸이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어려운 형편에 맞벌이를 하던 어머니는 딸을 억지로 학교에 보낸 뒤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등교한 줄로만 알았던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날 이후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21일 경찰청과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서경희씨(당시 9세.여)가 사라진 것은 1979년 11월 5일. 경기 부천시 중동에 살던 경희씨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부천 범박동(당시 신앙촌) 모 초등학교에 다녔다.평소 별다른 문제 없이 학교에 다니던 경희씨는 그날따라 아침부터 어머니에게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냐, 엄마 옆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수차례에 걸쳐 경희씨가 억지를 부리자 어머니는 직접 딸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어머니는 경희씨가 학교 정문에 들어가는 것을 본 뒤에야 안심하고 일터로 갈 수 있었다.그러나 그날이 어머니와 딸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경희씨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담임교사도 경희씨가 출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음날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 없었다. 방송의 도움도 받고 DNA 채취를 통해 유전자검사도 했지만 경희씨의 행방은 묘연했다.그렇게 세월이 흘러 38년이 지났고 경희씨의 부모도 몸이 불편해지면서 이제는 경희씨와 10살 차이가 나는 넷째 딸 순남씨가 대신해서 언니를 찾고 있다. 순남씨는 "당시 경희 언니가 삼남매 중 첫째였다. 나하고 남동생은 언니가 사라진 이후에 태어났다"며 "경희 언니가 말을 좀 더듬었다고는 들었는데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다.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순남씨는 "언니가 실종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 경기 의정부 모 고아원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살기 힘들어서 가보지 못했다"며 "당시는 고아원에서도 아이를 잘 보여주지 않을 때였는데 그래도 엄마는 그때 못 가본 게 평생의 한이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순남씨와 가족들은 여전히 경희씨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남은 단서는 어릴 적 찍은 흑백사진 한 장 뿐이어서 47세가 됐을 언니와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살아있을 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순남씨는 "언니 얼굴이라고 보고 싶다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울컥해진다"며 "언니 얼굴을 잊어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얼굴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설명했다.경희씨는 당시 키 135㎝, 체중 27㎏에 갈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빨간색 점퍼와 빨간색 바지를 입고 노란색 바탕에 흰색이 들어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며 빨간색 가방도 메고 있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7-08-21 20:47:2238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맏딸이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어려운 형편에 맞벌이를 하던 어머니는 딸을 억지로 학교에 보낸 뒤 일터로 향했다. 하지만 등교한 줄로만 알았던 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날 이후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21일 경찰청과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서경희씨(당시 9세·여)가 사라진 것은 1979년 11월 5일. 경기 부천시 중동에 살던 경희씨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부천 범박동(당시 신앙촌) 모 초등학교에 다녔다. 평소 별다른 문제 없이 학교에 다니던 경희씨는 그날따라 아침부터 어머니에게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냐, 엄마 옆에 있으면 안 되냐’고 물었다. 수차례에 걸쳐 경희씨가 억지를 부리자 어머니는 직접 딸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어머니는 경희씨가 학교 정문에 들어가는 것을 본 뒤에야 안심하고 일터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이 어머니와 딸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경희씨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담임교사도 경희씨가 출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음날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용 없었다. 방송의 도움도 받고 DNA 채취를 통해 유전자검사도 했지만 경희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38년이 지났고 경희씨의 부모도 몸이 불편해지면서 이제는 경희씨와 10살 차이가 나는 넷째 딸 순남씨가 대신해서 언니를 찾고 있다. 순남씨는 “당시 경희 언니가 삼남매 중 첫째였다. 나하고 남동생은 언니가 사라진 이후에 태어났다”며 “경희 언니가 말을 좀 더듬었다고는 들었는데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다.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순남씨는 “언니가 실종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 경기 의정부 모 고아원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연락이 왔는데 엄마가 살기 힘들어서 가보지 못했다”며 “당시는 고아원에서도 아이를 잘 보여주지 않을 때였는데 그래도 엄마는 그때 못 가본 게 평생의 한이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순남씨와 가족들은 여전히 경희씨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남은 단서는 어릴 적 찍은 흑백사진 한 장 뿐이어서 47세가 됐을 언니와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어디엔가 살아있을 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순남씨는 “언니 얼굴이라고 보고 싶다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울컥해진다”며 “언니 얼굴을 잊어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얼굴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설명했다. 경희씨는 당시 키 135㎝, 체중 27㎏에 갈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빨간색 점퍼와 빨간색 바지를 입고 노란색 바탕에 흰색이 들어간 운동화를 신고 있었으며 빨간색 가방도 메고 있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7-08-21 15:48:55생김새가 꼭 닮아 42년 전 사라진 딸인 줄만 알았다. 잃어버린 친딸을 찾았다는 생각에 지극정성을 쏟던 어머니는 어느 날 딸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자신은 친딸이 아니며 단지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충격을 받았지만 실망보다는 위안으로 삼았다. 새로운 딸을 통해 새로운 동력이 생긴 어머니는 지금도 42년 전 사라진 친딸을 찾고 있다. 24일 경찰청과 어린이재단 실종아동전문기관에 따르면 충북 청주시 운천동에 살던 신경하씨(47·여)는 지난 1975년 5월 9일 실종됐다. 어머니 한모씨는 이날 오전 3살 둘째딸과 6개월 막내아들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당시 5살이던 맏딸 경하는 동네 친구들과 놀겠다고 해 집에 남겨둔 채였다. 오후 2시께 한씨가 집으로 돌아왔으나 경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하가 집에서 약 1.5㎞ 떨어진 할머니 댁에 가는 걸 봤다는 마을 주민의 말에 한씨는 마음을 놓았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지만 한씨는 경하가 당연히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올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다. 한씨는 “평상시 수시로 다니던 곳이어서 걱정도 안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5살 애가 뭘 안다고 내가 너무 어른 취급을 했다”면서 “할아버지 수염을 메기수염이라며 붙잡고 놀고 아빠가 당시 택시를 운전하는 것도 기억하는 등 애교도 많고 똑똑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경하가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한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뒤늦게 경찰에 신고했지만 목격자도 없고 소지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씨는 맏딸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무당을 찾아가 굿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해가 지나 경기 안양시로 이사한 한씨에게 대구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급히 대구로 내려한 한씨는 경하의 어릴 적 모습을 빼닮은 20살 여성을 보고 ‘너 경하 맞지?’라고 물었고 여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을 집으로 데리고 온 한씨는 지극정성을 다했다. 딸과 함께 맛있는 음식도 먹고 쇼핑도 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3년을 함께 사는 동안 딸은 취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씨는 딸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들었다. 사실은 자신이 경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씨는 “딸이 ‘엄마를 보는 순간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지에 힘이 쭉 빠져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하가 아닌 새로운 딸을 얻은 경험은 오히려 한씨에게 큰 힘이 됐다. 경하를 못 찾았다는 실망감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위안이 됐다. 고령에 몸이 불편하지만 덕분에 한씨는 친딸을 찾기 위한 활동에 다시 나설 수 있었다. 한씨는 “경하를 못 찾았지만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고 딸이 사실을 말해줘서 오히려 다시 경하를 찾을 수 있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며 “경하를 찾기 전까지 대신 경하로 살고 있으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2017-07-24 15:15:39▲ 천경자 화백 별세천경자 화백 별세 천경자 화백 별세 소식이 뒤늦게 전해져 누리꾼들이 애도의 뜻을 보였다. 22일 한 매체는 천경자 화백이 향년 91세 나이로 두 달 전 사망한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뉴욕에서 천경자 화백과 함께 살며 그를 간호해온 맏딸 이혜선 씨는 “8월 6일 새벽 5시께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1924년생인 천경자 화백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갔다. 1924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했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가 입선하며 화단에 입성했다. 1952년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뱀 그림 ‘생태’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고인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곤 한다. 지난 199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고 절필선언을 하며 미국으로 떠난 뒤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그러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운 뒤 외부와의 접촉이 끊겼으며,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은 천경자 화백에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며 논란이 일었다. /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2015-10-22 13:14:46▲ 천경자 화백 사망천경자 화백 사망 천경자 화백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22일 한 매체는 천경자 화백이 향년 91세 나이로 두 달 전 사망한 사실을 보도했다. 보도에 의하면 뉴욕에서 천경자 화백과 함께 살며 그를 간호해온 맏딸 이혜선 씨는 “8월 6일 새벽 5시께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1924년생인 천경자 화백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고,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갔다. 1924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했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가 입선하며 화단에 입성했다. 1952년 당시 피란지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뱀 그림 ‘생태’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고인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하곤 한다. 지난 199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천경자 화백은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고 절필선언을 하며 미국으로 떠난 뒤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바 있다. 그러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운 뒤 외부와의 접촉이 끊겼으며,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은 천경자 화백에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며 논란이 일었다. /news@fnnews.com 온라인편집부
2015-10-22 10:00:46▲ 남보라 '해피투게더' 남보라 남보라가 ‘해피두케더’에 출연한 가운데 과거 인간극장 출연 모습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남보라는 2008년 KBS 2TV '인간극장'에 13남매의 맏언니로 출연 한바 있다. 당시 남보라는 많은 자녀를 돌보기 힘든 어머니를 도와 젖먹이 동생을 키우는 모습 등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예쁘장한 외모와 의젓한 모습에 방송 후 남보라는 큰 화제를 모았고 이후 남보라는 연예인으로 데뷔해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한편, 남보라는 20일 방송된 ‘해피두케더’에 출연해서도 연예계 데뷔 계기이기도 한 과거 KBS 1TV '인간극장' 출연을 언급했다. 남보라는 "내가 13남매 중 맏딸이다"며 "부모님까지 모든 가족이 모이면 총 15명이다. 아마 서울시에서는 우리 집 자녀수가 제일 많은 것이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fnstar@fnnews.com fn스타
2015-08-21 08:46:06▲ '해피투게더' 남보라 '해피투게더' 남보라 남보라가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가운데 과거 인간극장 출연 모습이 다시금 눈길을 끈다. 남보라는 2008년 KBS 2TV '인간극장'에 13남매의 맏언니로 출연 한바 있다. 당시 남보라는 많은 자녀를 돌보기 힘든 어머니를 도와 젖먹이 동생을 키우는 모습 등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예쁘장한 외모와 의젓한 모습에 방송 후 남보라는 큰 화제를 모았고 이후 남보라는 연예인으로 데뷔해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한편, 남보라는 20일 방송된 ‘해피두케더’에 출연해서도 연예계 데뷔 계기이기도 한 과거 KBS 1TV '인간극장' 출연을 언급했다. 남보라는 "내가 13남매 중 맏딸이다"며 "부모님까지 모든 가족이 모이면 총 15명이다. 아마 서울시에서는 우리 집 자녀수가 제일 많은 것이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fnstar@fnnews.com fn스타
2015-08-21 07:5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