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유리조각들이 삼국시대에 유입된 로마양식 유리용기 '로만글라스' 제품으로 확인됐다. 2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발굴조사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 75호분에서 5세기 무렵 제작된 중국제 연꽃잎무늬 청자그릇 1점이 출토됐다. 그 주변에서는 일반적으로 '로만글라스'라 불리는 둥글게 말린 장식이 달린 감청색 유리조각이 아라가야 권역에서는 처음으로 수습됐다. 이와 비슷한 유리조각이 경주 금관총, 사천왕사지 등 신라권역과 김해 대성동 고분군 91호분, 합천 백암리사지 등 가야권역에서도 발견된 사례가 있어 이 유리조각은 아라가야가 주변국과 교류했음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유리 생산지 확인을 통해 유입 경로를 파악하고자 함안 말이산 고분군 출토 유리조각 2점과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유리조각 각 1점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유리조각 4점은 칼슘(라임)의 함량이 높고 알루미나 함량이 낮아 로만글라스라 부르는 소다-라임 유리로 확인됐다. 로만글라스는 소다 원료를 기준으로 다시 로마유리 또는 사사니아유리로 분류된다. 유리조각 4점을 소다 원료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로마유리 또는 사사니아유리의 분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천마총, 황남대총 등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가 전형적 로마유리 또는 사사니아유리 범주에 포함된다는 점과 비교할 때 분명한 차이점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로 미뤄 보아 4점의 유리 용기 조각은 제작과정에서 기존 로만글라스와는 다른 제작원료를 사용하였고, 제작 집단 또한 상이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로만글라스 형태의 유리 용기 조각이 영남권역에서만 발견되는 점을 볼 때 제작지와 제작 원료가 다양한 로만글라스가 고대에 한반도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유통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9일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에서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수습된 고대 유리 용기 조각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04-26 11:15:47【함안=오성택 기자】사적 제515호로 지정된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1600년 전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보물급 유물들이 출토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경남도와 함안군은 오는 29일 발굴현장과 함안박물관에서 이번 발굴성과를 공개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도는 함안군과 함께 지난 2월부터 말이산 고분군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북쪽지역 미정비구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는 말이산 고분군의 북쪽에 분포한 가야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등 7기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중 45호분은 1986년 처음 발굴을 시도했으나, 당시 무덤의 흔적을 찾지 못해 그동안 가야고분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왔다. 계속된 논란 끝에 지난해 실시한 시굴조사에서 가야고분임이 최종 확인된데 이어, 올해 발굴조사에서 덧널(木槨)을 내부구조로 하는 봉토분임을 추가로 밝혀졌다. 봉분의 규모는 지름 20m 높이 1.8m로, 중심능선에 위치한 암반대(巖盤臺)를 원형으로 비스듬히 깎아 봉분의 가장자리를 조성하고 가운데를 파내 덧널을 배치했다. 덧널의 규모는 길이 6.7m 너비 2.7m로, 기존 발굴된 아라가야 덧널무덤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또 덧널 내부에서 보물급 유물들이 쏟아졌다. 무덤 주인공의 머리 위쪽 유물 부장공간에서 다수의 토기들과 함께 집모양토기·배모양토기·등잔모양토기·동물장식뿔잔 등 다양한 형태의 상형토기(象形土器) 4점이 한꺼번에 출토됐다. 지금까지 한 고분에서 이처럼 다양한 상형토기가 한꺼번에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이 중 높이 19.6㎝의 집모양토기는 9개의 기둥 위에 건물을 올려놓은 고상(高床)가옥을 본떠 만들었다. 맞배지붕과 대들보·도리·서까래·빗장을 걸어 놓은 대문 등 한국 전통건축의 주요 부분을 자세하게 표현해 놓았으며, 지붕과 가옥 뒷면에 주둥이를 붙여 주전자(注子)로 사용했다. 배모양토기는 길이 23.6㎝로 가야시대 준구조선을 형상화해 유선형의 선체에 파도를 막는 판재를 앞뒤로 대었으며, 양 측판의 윗면에는 각 5개씩의 노걸이가 배치돼 있다. 배의 뒷부분인 고물부가 뚫려 있어 잔(盞)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무덤 주인공 주변에서는 투구와 큰 칼, 말 갑옷, 금동제 말갖춤(馬具) 등이 함께 출토됐다. 이주헌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은 “말이산 45호분에서 출토된 상형토기는 기존 알려진 집모양, 배모양, 등잔모양토기 등의 출토 맥락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고고자료”라며 문화재 지정을 권고했다. 하승철 가야고분군 세계유산등재추진단 조사연구실장은 “가야문화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학술자료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조사된 말이산 45호분은 고분의 입지와 규모 및 출토유물 등으로 볼 때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된 아라가야 최고지배층의 무덤이자 최초의 고총고분으로, 가야고분의 점진적인 발전과정과 가야의 건축 및 조선 기술을 복원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ost@fnnews.com 오성택 기자
2019-05-28 12:21:06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서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 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 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 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라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 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신음천·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19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 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2024-06-03 20:03:21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의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 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 신음천, 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 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 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서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띄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이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6-03 09:44:41【파이낸셜뉴스 안동·고령=김장욱 기자】 경북도가 우리나라 세계유산 중심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18일 경북도는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지난 17일 오후(사우디아라비아 현지 시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고 있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우리나라가 신청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등재키로 최종 결정했다. 가야고분군은 지난 5월초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심사·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등재 권고'를 받아 등재가 유력시됐고, 이번에 최종 결정됨으로써 우리나라는 16건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이철우 지사는 "이번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는 경북의 신라·유교·가야 3대문화를 전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쾌거이며, 등재를 위해 노력하신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특히 "경북은 세계유산의 보고(寶庫)인 만큼 전통 문화자원을 전승·보존하고 미래 먹거리로 적극 활용·발전시켜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고, 지방시대를 견인하는데 앞장서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등재 결정된 '가야고분군'은 1~6세기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7개 고분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는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가야연맹의 각 권역을 대표하는 고분군으로 신라, 백제 등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병존하면서도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했던 가야문명을 실증하는 독보적인 증거로,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이번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로 경북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신라·유교·가야 등 3대 문화와 관련한 세계유산을 모두 보유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또 경북은 우리나라 세계유산 16건 가운데 6건을 보유한 전국 최다 지역으로, 세계유산 중심지임을 확고하게 각인시켰다. 한편 도는 가야문화를 새롭게 조명하고, 기존 신라·유교문화와 연계한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등 문화관광 생태계를 새롭게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gimju@fnnews.com 김장욱 기자
2023-09-18 08:03:34고대 가야 문명을 대표하는 고분 유적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이 보유한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14건, 자연유산 2건 등 총 16건으로 늘어났다. 가야는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연맹체로, 주로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졌다. 경남 김해에 있었던 금관가야를 비롯해 경북 고령 대가야, 경남 함안 아라가야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영남과 호남 지역에 존재했던 고분군 7곳을 묶은 연속 유산이다. 여기에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을 비롯해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이 포함돼 있다. 가야고분군은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세계유산에 오르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당초 김해와 함안 고분군, 고령 고분군 등은 각각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해 잠정목록에 올랐으나 문화재청은 2015년 이를 '가야고분군'으로 묶어 등재를 추진하기로 하고 7곳의 유적을 추가 선정한 바 있다. 이번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는 2013년 잠정목록에 오른 이후 10여년 동안 민·관·학이 함께 마음을 모아 이뤄낸 쾌거"라면서 "세계에서 인정한 가야고분군의 가치를 지키고 널리 홍보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세계유산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3-09-17 22:20:02[파이낸셜뉴스] 고대 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고분 유적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Gaya Tumuli)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유산 16건을 보유한 국가가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45차 회의를 열어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목록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가야고분군에 대해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작은 나라들의 총칭이다. 세계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영남과 호남 지역에 존재했던 고분군 7곳을 묶은 연속유산이다.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으로 구성된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3-09-17 21:38:17[파이낸셜뉴스 세종=김원준 기자] 국립세종수목원 한국전통정원에 경남 함안군에서 온 아라홍련과 법수홍련이 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4일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 따르면 국립세종수목원이 다음달 31일까지 열리는 ‘700년 아라홍련 특별전’의 주인공인 아라홍련과 법수홍련이 꽃을 피기 시작했다. 국립세종수목원 한국전통정원에서 개화한 아라홍련은 지난 2009년 함안 성산산성 발굴 현장에서 수습된 연 씨앗을 틔운 것이다. 이 씨앗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해 방사성 탄소를 연대 측정한 결과, 700여년 전 고려시대의 연으로 밝혀졌다. 아라홍련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식물인 아라홍련은 함안군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처음으로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전시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는 함안군 법수면 옥수늪에 자생하던 토종 홍련 ‘법수홍련’이 나란히 선보인다. 이 꽃은 경주 안압지의 연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신라시대의 연이다. 국립세종수목원은 아라홍련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는 4일부터 한국전통정원의 ‘솔찬루’와 ‘도담정’에 배치된 ‘700년 아라홍련 첫 나들이’ 워크북 미션을 수행한 선착순 1000명에게 함안군과 함께 제작한 아름다운 책갈피 키트를 증정할 예정이다. 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은 “700년 역사와 전통을 담은 아라홍련과 토종 법수홍련 전시회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의 아름다움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릴 기회”라며 “동시에 함안군 홍보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세종수목원 솔찬루에서는 ‘아라홍련 사진전’이, 사계절전시온실 로비에서는 ‘함안 말이산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기원 사진전’이 오는 9일까지 각각 펼쳐진다. kwj5797@fnnews.com 김원준 기자
2023-07-04 08:56:33[파이낸셜뉴스] 한반도 남부에 남아있는 가야 유적 7곳을 묶은 '가야고분군'이 이르면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전망이다. 11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10일(한국시간) ‘가야고분군’에 대한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 권고’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통지받았다. 가야고분군은 1~6세기 중엽에 걸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의 7개 고분군으로 이뤄진 연속유산이다. 7개 고분군은 지산동고분군(경북 고령), 대성동고분군(경남 김해), 말이산고분군(경남 함안), 교동과 송현동고분군(경남 창녕), 송학동고분군(경남 고성), 옥전고분군(경남 합천),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전북 남원)이다. 이코모스는 고분군의 지리적 분포, 입지, 고분의 구조와 규모, 부장품 등을 통해 가야고분군이 주변국과 공존하면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해 온 ‘가야’를 잘 보여주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등재기준(ⅲ)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면서 가야고분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할 것을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했다. 이번 권고에 따른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오는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리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우리나라는 총 16건의 세계유산(문화 14건, 자연 2건)을 보유하게 된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23-05-11 13:03:18[파이낸셜뉴스] 국립중앙박물관은 3일 '백제실'과 '가야실'을 새롭게 단장하고 관람객에게 선보인다고 밝혔다. 상설전시관 1층의 선사·고대관에 있는 백제실과 가야실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전시환경을 개선해왔지만 지역 박물관과 전시 구성의 차별화와 최신 조사 성과 반영 등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전시 시설이 노후하여 쾌적하게 관람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백제와 가야의 전체 역사를 주제별 전시로 구성하고 전시 공간 개편에 나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 개편을 통해 최신 연구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품을 대폭 확대했다. 기존 354건의 전시품을 725건 2221점으로 늘렸다. 이 중에는 최근 조사한 부여 왕흥사지 치미와 함안 말이산 고분군의 등잔이 추가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치미로 알려진 부여 왕흥사지 치미는 결실된 부분을 3D 프린팅 방식을 이용해 완전한 형태를 갖춘 모습으로 선보인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등잔은 무려 7개의 등잔을 얹은 굽다리접시로 2015년 재발굴 당시 부러진 뚜껑돌 아래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돼 이번에 빛을 보게 됐다. 확대된 전시품과 함께 새롭게 시도된 전시 연출도 주목된다. 평면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이고 설명적인 연출을 시도해 관람객이 편안하게 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중 공주 수촌리 고분군 일괄 출토품과 가야 무기 전시를 눈여겨볼 만하다. 4~5세기 무렵 백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역학관계를 보여주는 공주 수촌리 유적 출토품 100여 점을 공개했는데 무덤 주인공의 위상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연출했다. 가야 무사가 사용했던 갑옷, 칼, 말갖춤 등 무기를 전시하는 공간은 마치 당시 그것들을 보관하는 모습으로 재현해 관람객이 생동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늘어난 전시품과 새로운 전시 연출에 맞춰 전시 관람 환경도 개선했다. 진열장의 높이와 너비를 늘리고 저반사 유리로 교체해 개방감을 높였고 관람 동선을 개선했다. 조명 역시 에너지 효율이 높으면서도 전시품 관람에 적합한 최신 LED 조명으로 전체 교체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향후에도 전시품의 안전과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노후 시설을 개선하고 새로운 전시 연출 흐름에 맞춰 상설전시실을 바꿔 나갈 예정"이라며 "최신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반 국민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전시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21-12-03 11:4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