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파병됐다가 생포된 북한군 병사가 우리나라로 오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만 전해졌고, 외교당국은 사전에 파악하진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해당 병사의 귀순 의사를 확실히 확인한 뒤에 우크라 당국과의 협의 개시 여부를 본격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공개된 조선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우크라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북한군 포로 2명 중 1명이 “대한민국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생포된 지 한 달여 만에 처음 귀순 의사를 표한 것이다. 외교부는 지난달 북한군 포로에 대해 “헌법상 우리 국민인 만큼 귀순 요청 시 우크라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던 만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다만 귀순 의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만 짧게 비춰진 만큼, 별도로 당사자에게 귀순 의사를 재확인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크라가 포로를 잡은 교전당사국인 만큼, 북한군 포로의 의사 표명을 공식화하고 우리 측에 협의를 요청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줘야만 한다. 교전당사국이 아닌 우리 측이 인터뷰를 통한 귀순 의사만으로 포로를 인도하라고 요구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거기다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 전쟁 종전협상을 벌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서둘러 우크라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종전 합의가 이뤄지면 러우 간 포로 교환 협상이 진행될 것이고, 러 측이 북한군 포로들을 자국 병사들이라며 송환을 요구할 수 있어서다. 아직까지 북한은 우크라 전쟁 파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전투에 투입된 북한군도 러시아 신분증을 지니고 있다. 우리 측이 고려할 만한 사례는 6·25한국전쟁이다. 당시 북한군 포로들은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신변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호소해 우리나라 외에 제3국 여러 나라로 망명할 수 있었다. 현재 북한군 포로들도 인터뷰에서 “인민군에서 포로는 변절과 같다”며 본국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발언을 내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가 '전쟁 중 잡힌 우리 측 포로이니 우선적인 인도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 논쟁이 일 수 있다”며 “그래서 귀순 방식보단 한국전쟁 때처럼 인도적 차원에서 망명을 하는 식으로 우크라 당국의 협조를 구해 데려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uknow@fnnews.com 김윤호 기자
2025-02-19 15:42:00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개발도상국 중 70여년 만에 인구 2000만명 이상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최빈국에서 출발해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경제발전을 이룩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그런 나라를 건국한 대통령이 쫓기듯 망명해버렸다는 역사를 버젓이 기록하고 있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승만이 거주했던 이화장에는 모든 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망명객의 텅 빈 집이 아닌 것이다. 그는 망명 간 적이 없었다. 다만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오해는 매우 많지만 가장 큰 오해는 그가 망명했다는 주장이다. 장기집권을 해온 자유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창당한 채 권력이양 경험도 없었다. 당시 우리 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기 선출함으로써 서로 정당이 다를 수 있었으며, 대통령 유고 시 권력은 부통령에게 이양되도록 해 자칫 대선을 치르지도 않은 채 권력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 특히 1960년 3·15선거에서는 이승만의 경쟁자인 조병옥 대통령 후보가 신병 치료차 도미했다가 의료사고로 사망하게 됐다. 이로써 자유당은 단독후보가 되어 당선이 기정사실화된 이승만의 4대 대통령 선거에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44.03%)와 민주당의 장면 후보(46.43%)의 경쟁은 이미 1956년에도 있었지만 이기붕 후보의 경쟁력은 약했다. 선거에서 민주당이 부통령 선거를 이길 경우 84세로 이미 고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임기 내에 유고가 발생하면 권력은 자연히 민주당으로 이동하게 된다. 1957년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노쇠현상을 보이고 있었고 치매 초기 증상도 겪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자유당은 조직적으로 관권을 동원해 가며 부통령 선거에 개입하게 됐다. 그 결과 부통령 선거의 결과는 이기붕 79.19%, 장면 17.51%였다. 유권자들은 수긍하지 못했다. 개표소에서 유권자보다 많은 기표용지가 발견돼 유권자들의 항의가 쏟아졌다. 특히 마산에서는 1만여명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유혈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차별로 최루탄과 실탄을 발포하는 중에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군이 실종됐다. 그의 시신은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인 채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시위는 삽시간에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를 반공청년단이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자 4월 19일 오전부터 3만여명의 대학생과 중고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4·19혁명이었다. 총포 소리가 경무대에까지 들리자 대통령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각하의 당선을 축하하는 축포를 쏘는 겁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비극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 때는 경무대 발포 이후의 일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각 총사퇴(4월 21일)가 있고, 허정 외무장관이 과도정부 수반(4월 24일)이 되었다. 그사이 4월 23일 대통령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부상 학생을 찾아 손을 어루만지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장하다…장하다…젊은이들이 불의를 보고 일어서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 어떻게 백성을 죽일 수가 있어? 내가 그만두면 사람들이 더 안 다치겠지…." 이승만이야말로 전제정치의 불의를 보고 일어나 자유를 향해 평생을 달려온 투사였다. 60여년 뒤 자신이 세운 나라의 청년들이 자신을 향해 불의를 외치며 달려들고 있을 때 이승만은 "장하다"며 격려했다. 이승만은 주변 여러 인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퇴성명서를 작성했다. "국민이 원하니 대통령직을 사퇴하겠다. 3·15 선거를 다시 하겠다. 이기붕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 38선 이북에서 우리를 침입하고자 공산군이 호시탐탐 기다리는 것을 명심하라." 4월 26일 이승만은 12년간 머물렀던 대통령직에서 하야하고 이화장까지 승용차로 이동했다. 이승만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4·19혁명은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호헌혁명이었다. 이화장 가는 길의 시민들은 그런 이승만과 이미 화해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노후에 편안하시라" "리박사 하야-만수무강"이라는 벽보를 내걸었다. 이화장 담장 너머로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승만은 "놀러들 오시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과 반정부 지식인들은 여전히 적대적이었다. 그들은 이승만이 머지않아 망명을 떠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승만과 함께 이화장으로 돌아간 프란체스카 여사는 "일요일에는 정동교회에 가서 교우들과 예배를 봤다. 대통령 건강을 위해 하와이로 가서 몇 주일 쉬고 오는 게 좋지 않으냐는 측근의 제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것이 하와이로 가게 된 계기였다. 그녀는 "우리는 2주일 내지 한 달 정도 하와이를 다녀올 수 있는 짐을 챙겼다"고 자서전 '대통령의 건강'에 기록을 남기고 있다. 5월 중순경 프란체스카 여사가 하와이 출국을 위한 비자 문제로 주한 미대사관과 협의가 마무리되자 이승만의 제자이기도 했던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은 하와이의 오중정 총영사에게 외교행낭 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이 박사님 부부가 3주가량 요양하실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지였다. 이승만의 제자 윌버트 최, 최백렬, 그리고 오중정 총영사가 모여 초청장을 보내고 조경사업을 하던 윌버트 최의 별장으로 모셔서 임시로 지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5월 28일 저녁 동아일보는 다음 날인 29일자 신문을 발행하면서 "이박사 부처 해외망명설"이란 제하의 기사를 1면에 크게 내걸었다. 가판에서 많이 팔릴 수 있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경향신문 윤양중 기자는 새벽에 이화장에 가면 큰 기사를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달려갔다. 정치 담당 기자가 아니어서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했다. 망명할 것이란 기사였다. 윤양중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신문사 지프를 타고 이화장 밖에서 잠복대기하던 중인 오전 7시. 이승만과 프란체스카는 보름이나 길어야 한 달 정도 다녀올 짐을 챙긴 채 마당으로 나섰다. 대통령의 옷을 담은 트렁크, 여사의 옷가지와 소품을 담은 트렁크, 점심과 약품 상자가 든 가방, 그리고 평소에 사용하던 타이프라이터가 전부였다. 마당엔 경호관들과 집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대통령은 "늦어도 한 달 후에 돌아올 테니 집을 잘 봐 줘"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을 태운 검은 세단이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김포공항으로 달려갈 때 경향신문 기자를 태운 지프만이 뒤를 따라갔다. 공항에는 허정 수반과 이수영 외무차관이 나와 이승만을 배웅했다. 이승만은 허정에게 "나, 하와이에서 잠시 쉬고 아이크가 오기 전에 돌아오겠소"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두고 한 말이었다. 허정은 "염려 말고 푹 쉬고 오십시오"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비행기는 하와이의 교민들이 비용을 모아서 자유중국 민항기를 전세 낸 것으로, 대통령이 도착했을 때 승무원들은 공항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다. 출발이 지연되는 사이, 윤양중 기자와 사진기자는 비행기에 올라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경향신문은 호외를 뿌렸다. 저녁의 경향신문 석간은 4면 중 3면 전체를 망명 특집기사로 다뤘다. '이승만 부처 돌연 하와이로 망명' '주인 잃은 이화장, 싸늘하고 빈 무덤 같아' '책상 위엔 펼쳐놓은 성경 한 권만' '저 개 좀 봐 저것만 남았군' '온돌방에는 파리채만 뒹굴어'. 이중 기내에서의 인터뷰 기사도 실렸다. 당시 일간지 85개, 주간지 376개, 월간지 200개로 언론의 자유가 구가되던 시대였다.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윤양중 기자의 기사를 따라 쓰며 이승만 망명을 보도했다. 1896년 협성회회보를 시작으로 최초의 주간 신문사를 창간했고 1898년 4월 최초의 민간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운영한 언론의 선구자 이승만이었다. 그로부터 60년 뒤 자신의 후배 기자들에 의해 이승만은 필화를 겪게 됐다. 그리고 역사가 돼 버렸다. 이승만은 이역만리 하와이에서 90세로 눈을 감을 때까지 5년2개월간을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고국을 그리다 눈을 감았다. 자신이 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사람들이 왜 자신을 망명객이라 부르는지 잘 모른 채로. 이동욱 전 KBS 이사 ■ 이동욱 전 KBS 이사 △1959년생 △부산 △서강대 물리학과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석사) △월간조선 기자 △한국갤럽 전문위원 △KBS 이사 △저서 '우리의 건국대통령은 이렇게 죽어갔다' 외
2025-01-01 19:12:03[파이낸셜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이후 텔레그램 신규 설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계엄령이 선포된 지난 3일 텔레그램의 신규 설치 건수는 457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메신저 업종 당일 전체 신규 설치의 절반 가까운 47.09%로 전날 신규 설치 건수가 9016건인 것과 비교하면 4배 넘게 뛴 것이다. 지난달 메신저 업종 신규 설치 1위는 네이버 라인으로, 텔레그램은 4위에 그쳤다. 라인은 지난 10월과 9월에도 신규 설치 1위를 차지했으며, 카카오톡은 2위 텔레그램은 3위 순이었다. 그러나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네이버와 카카오의 포털 다음에 모두 트래픽이 몰려 접속 불안 현상을 빚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텔레그램을 새로 설치했다는 메시지가 다수 올라왔다. 여기에 통신 검열 등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등의 괴담까지 돌며 '디지털 망명' 분위기가 형성됐다. 계엄 선포 직후 앱스토어 등 인기 차트에서 50위권이던 텔레그램 인기는 3위까지 치솟았다. 계엄 정국이 오전까지 지속된 다음날에도 텔레그램 신규 설치는 3만3033건에 달했으며, 5일과 6일에도 1만건 넘는 신규 설치를 이어가며 메신저 분야 1위를 유지했다. 이 같은 추이는 국내에서 한동안 텔레그램 이용 추세가 주춤했으나 비상계엄 선포로 '디지털 망명'의 실체를 증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으며, 이전부터 보안성 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정치권과 관가 핵심에서 애용하는 메신저로 입소문을 타 왔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12-10 07:40:13[파이낸셜뉴스] 시리아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기 직전 시리아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러시아 모스크바로 피신했다. 크렘린궁의 한 소식통은 8일(현지시간) 스푸트니크 통신에 "아사드와 그 가족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며 "러시아는 인도주의적 고려에 따라 그들에게 망명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외신은 항공기 항로 추적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토대로 다마스쿠스가 시리아 반군에 함락됐다는 보도가 나온 무렵 항공기 한 대가 다마스쿠스 공항을 이륙했다고 보도했다. 이 항공기에 알아사드 대통령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쿠데타로 1971~2000년 장기 집권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로부터 권력을 넘겨 받았으며, 이들 부자가 통치한 기간은 53년에 달한다. 러시아는 이란과 함께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왔다. 2015년부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정부군을 지원했으며, 시리아에 해군기지와 군사 비행장도 두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축출된 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시리아에서 포용적 과도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냈으며, 시리아 상황에 대한 비공개 특별 회의를 9일 열어달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요청했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붕괴한 것과 관련 "오랫동안 고통을 받던 시리아 국민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의 순간"이라며 모든 시리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독립적인 새 정부 구축을 만드는 데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longss@fnnews.com 성초롱 기자
2024-12-09 07:38:06[파이낸셜뉴스] 지난 7월 베네수엘라 대선에 출마했던 야권 후보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수사를 피해 결국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야권은 마두로 정부의 부정선거 의혹과 탄압을 비난하며 해외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8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최대 야당인 벤테 베네수엘라(VV)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대표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글을 올려 지난 7월 VV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망명 소식을 전했다. 그는 "베네수엘라 대통령 당선인인 곤살레스가 나라를 떠나 스페인에 머물고 있다"라고 밝혔다. 마차도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를 비난하면서 "7월 28일 우리의 역사적인 승리와 함께 현 정권은 모든 시민을 상대로 가혹한 탄압의 물결을 일으켰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곤살레스가 "목숨이 위험한 상태였다"라고 설명했다. 마차도는 "2025년 1월10일 대통령 당선인인 곤살레스가 베네수엘라의 헌법상 대통령 및 총사령관으로 취임 선서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곤살레스는 우리 이주민들과 함께 외부에서 계속 싸울 것"이라며 "나는 이곳에서 당신들과 그렇게 하겠다"라고 했다. 지난 2013년 베네수엘라 좌파 진영 대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마두로는 지난 2017년 반정부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뒤 2018년 재선에서 승리했다. 당시 야당이 중심이 된 국회는 마두로가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며 임시 대통령을 자체적으로 선출하며 마두로와 대립했다. 마두로는 지난 7월 28일 열린 대선에 출마해 3선에 도전했다. 현지 선거관리위원회는 대선 종료 6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개표 80% 기준으로 마두로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최종 개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동시에 외국에서 해킹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추가 정보도 내놓지 않았다. VV는 지난달 1일 홈페이지를 통해 대선 전자 투표기 3만26개 가운데 2만4576개의 전산 자료를 추출하여 곤살레스가 67%의 득표율로 마두로(30%)를 꺾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베네수엘라 검찰은 VV가 불법으로 득표율을 공개했다며 곤살레스와 마차도를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현지 법원은 검찰의 요청에 따라 이달 2일 곤살레스에게 권력 찬탈, 정부 전복 음모, 문서 위조 등의 혐의를 적용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7일 성명을 내고 "수도 카라카스의 스페인 대사관에서 며칠간 자발적 난민으로 지내던 야당 당원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가 조국을 떠나 그 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는 베네수엘라가 '조국의 평온함과 평화를 위해' 곤살레스의 출국을 허용했다고 말했다. 같은날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무장관도 곤살레스가 스페인에 도착했다고 확인하면서 그의 정치적 권리와 신체 보전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날 성명을 내고 "베네수엘라 당국은 야당과 시민사회 구성원에 대한 탄압과 자의적 체포를 중단하고 모든 정치사범을 즉각 석방하라"며 "EU는 베네수엘라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마차도는 엑스를 통해 "2025년 1월10일 대통령 당선인인 곤살레스가 베네수엘라의 헌법상 대통령 및 총사령관으로 취임 선서를 할 것"이라며 마두로 정부를 상대로 계속 투쟁한다고 밝혔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4-09-09 08:43:46[파이낸셜뉴스] 홍콩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온 아그네스 차우(27)가 캐나다 망명 의사를 밝혔다. 4일(현지시간)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차우는 전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9월 석사 학위 과정을 밟기 위해 이미 캐나다 토론토로 떠난 사실을 밝혔다. 또 이날 일본 도쿄TV와의 인터뷰에서도 ”캐나다에 망명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우는 인스타그램에 “국가보안법 사건과 관련한 경찰 출두를 위해 이달 말 홍콩에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홍콩 상황과 나의 안전, 정신적·육체적 건강 등을 신중히 고려한 끝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고 적었다. 앞서 차우는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도중 불법 집회 참가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7개월간 복역하다 2021년 6월 풀려났다. 아울러 2020년 8월에도 중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일간지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75)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다만 경찰 수사는 기소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대신 그의 여권을 압수하고 정기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조사받을 것을 명령했다. 이와 관련해 차우는 올해 토론토 소재 대학으로부터 입학을 허가받고 중국 선전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경찰에게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차우는 당시 여행에 대해 당국이 자신에게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기술 발전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경찰에 감사를 표하는 서한을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도 했다. 차우는 “더는 하기 싫은 일을 강제로 하고 싶지 않고, 또 강제로 중국 본토에 가고 싶지 않다”며 “이런 일이 계속되면 내가 안전하다고 해도 몸과 마음은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두려움 없는 자유의 가치를 깨달았다”며 “이제 더 이상 체포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마침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차우는 그동안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려왔다고 호소했다. 홍콩 경찰 내 국가보안법 담당 부서인 국가안전처는 이날 성명에서 차우의 행동에 대해 “무책임하고 공개적으로 법치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돌아오지 않는 것을 선택하고 평생 도망자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대신, 더 늦기 전에 되돌릴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차우는 현재 복역 중인 조슈아 웡과 함께 홍콩의 반중국 집회를 상징해온 인물이다. 두 사람이 2011년 결성한 학생운동 단체 ‘학민사조’는 이듬해 홍콩 정부가 친중국적 내용의 국민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12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3-12-05 06:22:19[파이낸셜뉴스]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해외로 몸을 숨겼던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오는 22일 15년의 망명 생활을 접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은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통해 "8월 22일 화요일 돈므앙 국제공항에서 아버지를 만날 것"이라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탁신 전 총리는 지난 5월 14일 열린 총선에서 151석으로 제1당에 오른 전진당(MFP)의 피타 림짜른랏 대표가 의회에서 총리 선출 투표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신의 계열인 프아타이당이 새 정부 구성을 주도하기 시작하자 귀국을 추진했다. 당초 이달 10일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건강 검진을 위해 일정을 연기했다. 탁신 전 총리는 지난 2008년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징역형을 피해 태국을 떠나기 전까지 기간인 2001~2006년 총리직을 역임했다. 로이터통신은 탁신 전 총리가 태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수감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그가 태국에 도착하면 법원으로 이송되고 특별 구금 시설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태국은 지난 5월 선거에서 총리 선출이 무산되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하는 22일 총리 선출이 다시 실시된다. seung@fnnews.com 이승연 기자
2023-08-19 16:44:01[파이낸셜뉴스] 북한이 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 월북 이후 처음으로 그가 망명 의사를 밝혔다고 관영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6일 보도했다. 이날 통신은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결과' 제하 보도를 게재하고 킹 이병이 북한 영내에 "불법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北 "미군 내 인종차별 반감으로 킹 이병 월북"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역공세 통신은 또 지난달 18일 "관광객들 속에 끼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돌아보던 킹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조미군부접촉실과 경무관휴계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우리측 구역으로 침입했다가 근무 중에 있던 조선인민군 군인들에 의해 단속됐다"고 했다. 이어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자기가 공화국 영내에 불법침입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북한)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통신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하였다고 자백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매튜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2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군 통신선을 통해 지난 48시간 내 비무장지대 내 유엔사로 북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며 “실질적인 전화 통화는 아니었고 확인 전화였다”고 답했다. 드류 해리슨 유엔군 부사령관도 지난달 24일 킹 이병과 관련해 "휴전 협정하에 확립된 장치를 통해 북한군과 대화가 개시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 날인 25일 “내가 이해하는 건 북한이 메시지 수신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그것이 실제 응답으로 간주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같이 킹 이병과 관련 미국과 유엔사는 북한과 최소 2차례 이상의 연락을 주고받으며 북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의 안위를 확인하는 의미 있는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北킹 이병 건강 확인과 美와 소통 조치가 정상, 北인권 상황 판단의 가늠자가 될 것 전문가들은 북한은 한국,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심각한 인권유린 상황에 질책을 받으며 개선요구 압박을 받고 있는 환경하에서 미군 병사 월북 사건을 기화로 도리어 미국의 인권상황이 열악하다는 억지 공세로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레버리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길주 고려대학교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는 "인권유린으로 궁지에 몰린 북한이 킹 이병의 월북 사건의 첫 반응으로 그 원인을 미군 내 인종차별과 비인간적인 학대로 돌리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한 공세를 높이려는 의도의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해석했다. 반 교수는 "북한의 소위 '중간조사결과' 언급을 보면 자국의 인권유린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의 인권상황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며 "북한이 특정 개인의 일탈을 전략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권탄압 개선 압박이 가장 강한 시기라는 점에서 이 사건을 역이용하려는 속내가 강하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북한이 킹 이병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북한인권 상황을 판단하는 또 다른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북한이 이미 킹 이병 사건을 국내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인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인권존중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측면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반 교수는 "킹 이병 건강상태를 정확히 확인해 주고 그가 그의 조국인 미국 당국과 최소한의 소통을 하도록 기본조치부터 하는 것이 인권 차원에서 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3-08-16 13:10:55[파이낸셜뉴스] 미국 정부가 지난달 월북한 주한미군 육군 이병 트래비스 킹의 망명 소식에 대해 아직 검증할 수 없다며 일단 미국으로 안전히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 국방부 대변인은 15일(이하 현지시간) 발표에서 트래비스 킹에 대한 북한의 망명 주장에 대해 검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트래비스 킹의 안전한 귀환에 집중하고 있다"며 "국방부의 우선순위는 킹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이를 위해 모든 가용한 소통선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보도에서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결과' 소식을 알렸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킹의 월북 사실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신은 킹이 지난달 18일 북한 영내에 불법 침입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킹이 "관광객들 속에 끼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돌아보다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조미군부접촉실과 경무관 휴계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우리측 구역으로 침입하여 근무 중에 있던 조선인민군 군인들에 의해 단속됐다"고 전했다. 통신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트래비스 킹은 자기가 공화국 영내에 불법침입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킹이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하였다고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트래비스 킹은 또한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북한) 혹은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알렸다. 23세의 킹은 폭행 혐의 때문에 한국에서 약 2개월 동안 구금된 이후 미 텍사스주 포트블리스 기지로 이송될 예정이었다. 그는 지난달 17일 인천공항 출국장까지 당국의 호위 하에 움직였으나 이후 여권이 없다며 다시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그는 다음날 갑자기 JSA 투어를 신청했으며 무단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3-08-16 08:55:03[파이낸셜뉴스] 북한이 지난달 18일 월북한 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이 망명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킹 이병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조선중앙통신은 '미군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결과' 제하 보도를 발표하고 "트래비스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했다고 자백했다"며 "킹은 불평등한 미국사회에 환멸을 느껴 북한이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지난달 18일 관광객들 속에 끼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돌아보던 킹이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조미군부접촉실과 경무관휴계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우리 측 구역으로 침입했다가 근무 중에 있던 조선인민군 군인들에 의해 단속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통신은 킹에 대한 조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해 킹이 이른 시일 내에 북한에서 풀려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국에서 폭행 등으로 두 달 가까이 구금됐던 킹은 지난달 17일 추가 징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으나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달아난 뒤 다음 날 JSA 견학에 참여하던 중 무단으로 월북했다. 미국은 이후 킹 이병과 관련해 유엔군사령부 등을 통해 북측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킹의 행방과 상태 등 의미 있는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08-16 07:4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