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7월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던 40대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범행 당시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3일 JTBC는 지난 7월 29일 오후 11시 22분께 은평구 아파트에서 발생한 '일본도 살인사건'의 CCTV 영상을 공개했다. 당시 피해자 김모(43)씨는 집 앞에 잠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변을 당했다. 해당 영상에는 피의자 백모(37)씨가 김씨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담겼다. 백씨는 일본도를 넣은 골프 가방을 들고 있었다. 잠시 뒤 백씨 어깨를 베인 김씨가 경비초소 앞으로 다급하게 달려오고, 울타리로 막힌 경비초소에서 그는 경비원에 신고를 부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백씨가 쫓아왔고, 김씨에게 계속해서 칼을 휘둘렀다. 당시 경비원은 신고하는 중이었다. CCTV에서 사라진 백씨는 잠시 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는 피가 묻어있고, 일본도는 범행의 충격으로 휘어져 있었다. 백씨는 태연히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거나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만지기도 했다. 이후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방 안에 앉아 있다가 별다른 저항 없이 체포됐다. 백씨가 소지하고 있던 일본도는 '장식용'으로 소지 허가 받은 102㎝ 길이의 흉기였다. 1시간 만에 경찰에 긴급 체포된 백씨는 지난달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족은 "아직도 안 믿어진다. 퇴근해서 돌아올 것 같은데 어제도 안 돌아오고 집이 너무 싫다. 아침에 눈 뜨는 게 너무 싫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유족의 법률대리인 남언호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건이 철저한 계획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남 변호사는 "사건 당일 가해자는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피해자를 응시하며 범행 타깃으로 삼았고, 횡단보도가 바뀌자 피해자만 추적했다"며 "범행 직후 현장에서 도주해 거주지에 숨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 정상적 사물 변별능력과 행위 통제력을 갖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9-04 10:08:58[파이낸셜뉴스] 아르헨티나 주재 미국 대사관이 현지에 거주하는 자국민과 자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명 '검은 과부' 주의보를 발령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검은 과부는 거미의 한 종류인 검은과부거미가 짝짓기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잘 모르는 남성에게 접근해 수면제나 마약을 넣은 음료수를 마시게 한 뒤, 금품을 훔쳐 가는 여성을 의미한다. 아르헨티나 주재 미국 대사관은 최근 이런 '검은 과부' 관련 범죄가 크게 늘면서 현지에 거주하는 자국민과 현지를 방문하는 자국 관광객들에게 '검은 과부의 범죄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혹은 데이트앱으로 만난 잘 모르는 사람들과 단독으로 행동하지 말고, 이들이 권하는 음료나 음식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최근 현지 사회에서 검은 과부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은 지난주 라플라타에서 발생했다. 검은 과부 전과를 가진 40세 여성은 당시 공범인 다른 여성과 함께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수면제를 먹고 잠든 73세 피해자가 의식을 되찾자 술병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피해자는 이후 손과 발이 묶이고 얼굴이 피에 범벅이 된 채 발견됐다. 상황이 이렇자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은 1일(현지시간) 해당 사건을 보도하면서 국적·나이를 막론하고 미인계를 사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해 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 이 수법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남성이 검은 과부로부터 돈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절도 당한 경우도 있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9-02 08:45:04[파이낸셜뉴스] 서울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물을 튀겼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의 머리를 물속에 수차례 밀어 넣은 30대 남성이 사건 발생 23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27일 채널A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30대 남성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해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지난 3일 오전 11시50분께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강공원 수영장에서 초등학교 2학년 B군(7)의 머리를 물속에 여러차례 넣었다 빼는 등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에는 A씨가 B군을 물속에 여러 차례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옆에 있던 B군의 누나가 저항했지만 A씨는 이 같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B군의 누나는 "(A씨가)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셔서 동생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동생을 붙잡고 물에 담갔다가 뺐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피해 소식을 전해 들은 B군의 아버지는 경찰에 신고했으나 A씨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약 2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B군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사건 당일 해당 공원을 드나든 차량 2000여대의 기록을 확보해 A씨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A씨가 사용한 것과 똑같은 물놀이용품이 찍힌 사진을 찾았다. 여기에 B군의 누나가 진술한 인상착의를 더해 A씨의 동선과 신원을 확인했다. A씨는 사건 발생 23일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 아이에게 물이 세게 튀어서 화를 조절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며, 피해 아동 측에 사과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B군의 아버지는 채널A를 통해 "자기방어적 내용이 너무 많다"며 "처벌한다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8-28 06:55:44대만의 겨울은 습도가 높아서 춥다. 타이베이의 중앙연구원 아파트에서 겨울 한 달을 지내는 동안 벽에서 흘러내리는 곰팡이가 무서워 남쪽의 핑동현 우타이향(屛東縣 霧台鄕) 루카이(魯凱)족 지대로 피신하였다. 대만의 선주민들은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오스트로네시안이다. 10여종의 선주민들 중에서도 루카이의 인구수가 가장 적고(약 2만명), 목자르기(馘首)로 이름난 종족이었다. 해발 1000m의 산으로 오르자 선주민들이 산에서 거주하는 이유를 알았다.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을 맞이하였다. 곳곳에 지진으로 무너진 산사태가 심각하였고, 동네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찾아간 우타이촌도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대롱거린다고나 할까. 지붕부터 벽채와 바닥까지 몽땅 산에서 채취한 석판을 이용하였다. 돌집의 처마 밑 장식은 사람 얼굴로 둘렀다. 1897년 대만을 찾았던 동경제국대학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의 보고서에는 잘라 온 사람의 산발머리를 마당의 거치대에 올려두고 입에 밥을 넣은 사진이 선명하다. 수호신을 모시는 방법으로 동네 입구에는 해골들을 가득히 진열한 두골가(頭骨架) 사진도 있었다. 불과 백 년 전까지도 이러한 관습은 지속되었다. 방바닥은 한 장의 크기가 50×30㎝ 정도의 직사각형 석판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장기판처럼 반들거린다. 루카이족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실내장(室內葬)을 하던 사람들이다. 조상 시신 한 분 한 분이 석판 한 장 밑에 굴신으로 매장되었다. 과거에는 동네 하나의 규모가 작았다. 산비탈의 손바닥만 한 땅에서 화전을 일구어 조와 고구마를 심었기 때문에, 사자 공간의 별도 마련은 상상도 못했다. 멧돼지로부터 보호를 위해서도 실내장이 안성맞춤이다. 과거에는 수십년 또는 백년에 한 번씩 동네 전체가 이동하였다. 방바닥의 무덤이 꽉 차는 시기가 도래하기 때문이었다. 선교사들과 일치기(日治期)의 위생정책이 그 풍습을 정지시켰고, 모두 기독교도가 된 루카이 사람들은 교회 옆에 방바닥처럼 조성한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가 옆에서 몸서리를 친다. 한쪽 벽에는 멧돼지의 해골을 진열한 수골가(獸骨架)가 자리하는 게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 해골이 집의 안팎과 동네에 가득하다. 수령(獸靈)에 의지하는 토템신앙이다. 집주인은 평생 동안 120여마리밖에 잡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한다. 루카이족 내에서 으뜸 사냥꾼은 사십대 중반인데, 평생 천마리를 잡았고, 최근 사냥 중 맷돼지의 공격으로 사망하였다. 남자들의 위세는 잡은 멧돼지의 숫자로 가름된다. 집주인의 루카이 이름은 띠부랑안느(1927년 8월 10일생)인데 일치기에는 기도 코지(木藤宏二)로, 1946년 대륙으로부터 국민당이 온 후 커어꽝얼(柯廣二)로 변하였다. 전동 휠체어를 탄 84세의 혼다 아키코가 다가와서 자신의 일본어 실력을 뽐낸다. 아키코의 남편이 토무(頭目)였다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가 집집마다 외벽 처마에는 사람 얼굴 부조와 벽채에는 멧돼지 해골을 가득하게 걸어 두었다. 그녀의 마당에는 내 키보다도 훨씬 큰 석판에 무장한 루카이 남성이, 옆으로는 백보사(百步蛇)와 항아리의 부조로 장식하였다. 결혼식으로 동네 전체가 들썩거린다. 한족의 친영(親迎) 흉내도 내고, 신부를 가마에 태운 신랑친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축하연의 군무는 거룩하다 못해 성스럽다. 남녀노소가 하나의 커다란 동그라미를 형성하고, 서로의 팔을 겹쳐 잡아서 연결된 원무(圓舞)다. 미끄러지듯이 사뿐히 내딛는 두 발의 박자와 율동에 감동한다. 여성들의 옷장식에 달린 조개들의 살랑거리는 소리뿐 아니라 멧돼지 상아들을 걸어올린 남성용 장식모자의 모습은 위엄스럽다. 전문외식업체가 음식을 대접하고, 한쪽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도 혼례 축원의 연출로 전해진다. 13마리의 돼지가 이미 분배되었고, 두 마리가 철망에 갇혀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하객들을 위한 빈랑과 생고기를 담은 비닐주머니가 즐비하다. 동네 전체가 결혼식으로 들썩거림에는 이유가 있다. 인구가 늘어갈 계기를 축원함이다. 잠자리에 누웠더니, 지붕을 마당 삼은 쥐들의 축제가 벌어졌는지 요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다음날 아침 띠부랑안느에게 불평하였더니, 그날 저녁 주메뉴로 잘 구운 고기가 꼬리를 매단 채 통으로 나왔다! 루카이족의 인구수는 지난 백년 동안 거의 변함없이 일정하다. 동네의 규모와 숫자는 크게 줄었지만, 전체 인구수는 그대로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호미오스테시스(항상성)를 유지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상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루카이족 내부에서는 여태까지 인구수가 준다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 숫자가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위험수위에 달했다. 임계치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아슬아슬하다. 과거 타스마니아의 경험이 떠오른다. 인구절멸 위기를 처음 감지했던 1824년에 340명, 1834년에 111명, 그리고 1942년에 51명, 현재 타스마니아 섬에는 소위 '순종' 타스마니아 사람은 없다. 백년 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알프레드 크로버 교수가 마지막 남은 인디언 집단의 '이시(Ishi)'에 대한 기록은 인류학 교과서의 한 페이지다. 마지막 남았던 청년 남녀 한 쌍을 매개로 재생산을 시도하였지만, 두 사람은 한마디의 교환으로 서로는 결혼할 수 없는 구조적 관계임을 알았다. 세상의 인구절멸사(人口絶滅史)를 들여다보면 외부든 내부든 외세 간섭이 관건이었고, 그 외세는 근대국가란 괴물의 권력을 말한다. "저출산 저주" "인구절벽" "돈은 있는 대로 부어라". 호들갑 짱이다. 1970년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캠페인은 정부의 창작이었다. 그 여파로 아이가 셋이면 셋방 얻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두려워해야 하는 부부 잠자리의 왜곡도 국가권력 개입 때문이다. 우리 세대가 체험한 바다. 40년 만에 정부가 앞장서서 돈다발을 흔든다. 언제는 "낳지 마라" 했다가, 이제 와서는 "낳으라"고 한다. 사람이 기계인가? 국민이 졸인가? 국권만능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중독된 어리석음이렷다. 대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혈세 낭비의 방자함이 드러났는데, 이 방자함의 입증책임을 누가 져야 하나? 결자해지라고 했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국민 앞에 석고대죄 의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첫 단추다. 감히 '자연을 거스르고 사람을 농락한 죄'임을 고해야 저출산망국 문제의 물꼬가 트일 것 같다. 부분적 선택과 집중의 기능적 사고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7-08 18:47:40[파이낸셜뉴스] 길을 가던 한 여성의 남성의 체액을 맞았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용의자 귀가하던 여성에 체액 던져 용의자는 지난 21일 저녁 7시 40분쯤 서울 관악구 한 길거리에서 귀가하던 여성에게 체액을 던져 옷에 묻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서울 관악경찰서는 체액을 채취해 국과수에 정확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또 주변 CCTV 등을 확인하며 용의자를 특정하는데 주력, 피해자 옷에 체액이 묻은 만큼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체액 테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6일 경남 사천에서 한 남학생이 여성 교사의 텀블러에 체액을 넣은 사건이 전해졌다. 한달 전인 2월에는 충남 서산 스터디카페에서 한 남성이 앞에 앉은 여고생 머리에 체액을 뿌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관련 법적 근거 미비, 처벌 실효성 부족 문제는 이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미비해 처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체액 테러 사건은 피해자에게 성적 불쾌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성범죄로 볼 수 있지만, 관련 법 규정이 없어 주로 타인의 물건을 손상시킨 혐의(재물손괴죄)로 다뤄진다. 재물손괴죄의 형량은 3년 이하 징역 700만원 이하로, 공중밀집 장소에서의 추행(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약하다. 그럼에도 관련 법 개정은 제자리걸음이다. 2021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기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물건을 상대방의 주거·직장·학교 그 밖에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에 두어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위원회에서 한 차례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2024-04-24 10:36:40[파이낸셜뉴스] 전 남자친구로부터 폭행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진 여성의 어머니가 "가해자는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에서는 가해 남성의 신상이 확산하고 있다. "우리 딸은 영안실에 누워있는데 누구때문인가" 어머니의 분노 숨진 19살 여대생 이효정씨의 어머니는 지난 18일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몇 년 동안 따라다니며 딸을 폭행하고 괴롭혔던 가해자로 인해 죽임까지 당하고, 죽고 나서도 편하게 가지 못하고 영안실에 누워 있는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국과수에서 딸이 사망한 직접적인 원인이 폭력이 아니라고 해 딸을 죽인 가해자는 구속도 되지 않고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라며 "이것이 법이냐, 무슨 법이 이런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폭력에 의해 죽은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도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데 건강하던 우리 딸은 왜 죽었나"라며 "수사 당국은 피해자와 유족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가해자의 인권만 지켜주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 어머니는 "국과수에 묻고 싶다. 아무런 병이 없던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10일 만에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나,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병이 온 것이 아니냐"라며 "부디 정밀 검사에서는 제대로 된 결과가 나와 차가운 지하에 누워 있는 딸의 영혼을 달래주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폭행 가해자의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경남여성복지상담소·시설협의회도 함께했다. 가해자 졸업사진 등 신상정보 온라인 확산 한편 이날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씨 폭행 가해자인 김모씨(20)의 신상이 올라왔다. 각종 게시물에 따르면 김씨는 2004년 출생으로, 거제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증명사진도 공개됐는데, 사진 속 김씨는 셔츠 제일 위 단추를 풀고 넥타이를 헐겁게 맨 상태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또 다른 사진에서 김씨는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냈으며 선글라스를 끼고 입에 흰 막대를 물고 있다.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포즈도 취했다. 경남경찰청은 이날 김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지난 1일 오전 8시쯤 이씨의 주거지인 경남 거제의 한 원룸에 무단 침입해 이씨의 머리와 얼굴 등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목을 졸라 다치게 한 혐의 등을 받는다. 김씨는 경찰에 긴급체포됐으나 검찰이 긴급체포를 불승인하면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조사받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패혈증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1차 구두소견을 받고 폭행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2024-04-19 10:04:10[파이낸셜뉴스] 일본에서 이른바 여장 변태의 ‘신종 수법’이 알려졌다. 해당 수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 논란이 일고 있다. SNS에 공개된 신종 수법 관련 사진을 보면 얼핏 보면 여성 같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까지 뒤집어쓴 전신 타이즈에 얼굴을 그려 넣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소름 끼치게 무섭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10일 한 일본인 엑스(X) 사용자는 “전신 타이즈에 얼굴을 그려? 진짜로 공포다”는 글과 함께 짧은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에서 모자를 쓰고 스커트를 입은 한 여성은 다른 여성들 사이에 앉아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클로즈업을 하니 이상하게 어색한 얼굴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눈동자나 눈꺼풀에는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또 전신 타이즈로 얼굴을 가리고 여자 화장실까지 출입하는 변태 목격담도 있었다. 이 남성은 ‘타이즈맨’이라고 불렸다. 이를 본 여성들은 SNS상에서 서로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한 사용자는 “골격으로 남자임을 알 수 있다" "여자가 하지 않는 행동을 여장남자는 하기 때문에 알기 쉽다” 등 조언을 남겼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2-19 15:08:26[파이낸셜뉴스] 게임업계가 '남성 혐오(남혐)' 논란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게임사들은 이슈가 된 게임과 관련해 사과문을 올리는 한편, 진상조사에도 나서고 있다. '남형 손 모양' 의심 장면 논란 29일 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지난 23일 외주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가 만든 메이플스토리의 엔젤릭버스터 홍보 영상을 공개했다. 그러나 영상 공개 이후 일부 커뮤니티에서 '남혐 손 모양'으로 의심되는 장면이 등장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해당 손 모양은 지난 2021년 GS25의 행사 포스터에도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제작자(애니메이터)가 과거에 올린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소셜미디어(SNS) 글에 비춰봤을 때 의도적으로 남혐 메시지를 넣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메이플스토리 제작사 넥슨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해당 홍보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또 메이플스토리 홈페이지에 "현재 커뮤니티에 엔젤릭버스터 홍보물과 관련한 논란이 발생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최대한 빠르게 논란이 된 부분들을 상세히 조사해 필요한 조치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같은 제작사에 영상 외주를 맡긴 넥슨 던전앤파이터, 블루아카이브 제작진도 상황 파악에 나섰다며 부적절한 표현이 담긴 다른 영상도 확인했다고 공지했다. 홍보영상 부적절한 표현 조사 스마일게이트의 모바일 역할수행게임(RPG) 에픽세븐 측도 "홍보영상(PV) 영상의 일부 부적절한 표현에 대해 조사 중"이라면서 "관련 리소스 조사 및 비공개 조치를 진행 중이며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안내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스튜디오 뿌리는 공식 SNS에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도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해당 스태프는 앞으로의 수정 작업과 더불어 작업 중인 PV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업계에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오가고 있다. 해당 작업을 진행한 제작자에 대한 질타부터 다른 게임사 게임에 대한 '검증'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하다. 채용 관련한 의견 글도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채용할 때 여대 출신에 쇼트커트(짧은 머리)이면 (채용을) 거르는 편이냐', '앞으로 여성 기획자, 디자이너는 사상 검증을 하고 뽑는 기조가 생길 것 같다'는 등 댓글도 올라오고 있다.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2023-11-28 06:45:22#1. "일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어렵고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1509년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나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피에타(Pieta)', '다비드(David)'라는 인류 최고 조각 작품을 탄생시키며 젊은시절부터 '신이 내린 젊은 거장'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제 그를 막아세운 건 가로 13.2m, 세로 41.2m에 달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였다. 욕심과 변덕으로 유명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Ⅱ)의 협박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을 맡았지만 미켈란젤로는 1년 가까이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조각가인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니." 미켈란젤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어올랐습니다. 늘 그랬듯이 천재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은 도나토 브라만테라는 예술가가 미켈란젤로를 일부러 고난으로 밀어넣은 것이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는 불과 1년전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게 자신의 영묘를 조각해달라"며 작업을 발주해놓고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찾기 위해 로마를 떠난 사이 마음이 변했습니다. 교황은 영묘 조각 작업을 중단시키고 돌연 그의 삼촌이자 전 교황인 식스투스 4세가 지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재단장하는 작업을 맡겼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평면도 아닌 둥근 궁륭 구조의 천장에 테니스 코트(가로 8m, 세로 23m) 두 배에 달하는 크기의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프레스코화였습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반죽을 얇게 펴 바른 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반죽이 마르면서 안료를 빨아들여 색이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되지만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내야 하고, 수정도 불가능 해 최고난도의 작품기법으로 손꼽힙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놀라운 속도로 이 큰 그림을 완성합니다. 4년간 천장에 하루 15시간씩 매달려 쉬지않고 작업한 끝에 1512년 11월1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Ceiling)를 공개합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장화를 그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도 놀랄 일인데, 그림의 내용이나 완성도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운데 중앙에는 하느님의 말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천지창조'를 주제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등 9개의 큰 그림과 그 주변에는 예수의 조상 얘기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인물마다 근육에 명암을 넣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하느님이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을 형상화 한, 두 남성이 손 끝을 맞대려 하는 모습의 '아담의 창조' 장면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작업장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Raffello Sanzio)는 미켈란젤로 몰래 작업장에 들어갑니다. "조각가라는 작자가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겠어"라고 비웃으며 성당에 들어선 순간 너무 놀라 얼굴부터 가렸다고 합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움직이는 모습에 순간 조각작품으로 착각해 얼굴로 쏟아질까 두려웠던 것이죠. 인류 최대 역작은 이렇게 완성됐지만 젊은 미켈란젤로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4년간 거꾸로 매달려 작업하면서 목과 허리는 완전히 뒤로 꺾여버렸고, 얼굴과 눈으로 쏟아지는 석회 반죽과 안료 때문에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를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럼에도 와인과 몇 조각의 빵만 들고는 비계에 올라 쉬지않고 작업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2. 1486년 어느 날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디 메디치(Lorenzo di Medici)가 자신의 정원을 산책하다 어린 소년의 조각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소년은 목동의 신 '파누우스'의 개구진 행동과 이에 놀란 여신들이 기겁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표현력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런데 나이가 든 목동의 신의 치아가 많았다. "파누우스는 치아가 그렇게 많지 않을걸." 로렌초가 한 마디 하면서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하던 로렌초는 또 놀랐다. 그 소년이 파누우스의 윗니 두 개만 남기고 치아를 성글게 조각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 소년이 11살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후 메디치 가문에 들어가 본격적인 엘리트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미 10대때부터 메디치 가문을 찾는 석학들과 토론을 즐길 정도로 영민했습니다. 그러나 1492년 로렌초가 죽고 2년 뒤 메디치가는 피렌체에서 �i겨나고 미켈란젤로도 이 때부터 피렌체를 떠납니다. 로마에 입성한 1498년 8월 생 드니 수도원장 등이 찾아와 그에게 작품을 의뢰합니다. 인류의 조각 역사상 3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타'가 이때 탄생합니다. 24살 청년이 1년만에 조각한 피에타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축 늘어진 그리스도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의 표정은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듯 온화합니다. 특히 성모를 감싼 옷자락은 대리석이 아닌 비단을 두른듯 부드럽고 세밀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3년 뒤인 1503년 피렌체에서 인류 최고의 걸작 '다비드'를 탄생시킵니다. 1503년 6월13일 미켈란젤로가 대중을 쳐다보며 장막을 걷어내자 높이 5.17m, 무게 5.5t의 아름답고 늠름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정적인 콘트라포스트 모습으로 적장 골리앗을 노려보는 부릅뜬 눈과 잔잔한 근육질 몸에 펼쳐진 팽팽한 혈관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비드였습니다. 특히 손가락으로 돌맹이를 굴리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적장을 한방에 쓰러뜨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미켈란젤로를 시기해 설치 장소를 외진 곳으로 옮기자고 했기 때문이죠. 수 개월의 논쟁 끝에 다비드는 1504년 5월14일 작업소 문 위쪽 벽을 헐어내고 받침대를 굴려가며 피렌체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까지 이동합니다. 바로 옆의 거리였지만 무려 4일이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 다비드에 관한 또다른 놀라운 사실이 알려집니다. 높이가 5m를 훌쩍 넘지만 두께가 얇은 곳이 45cm밖에 안됐던 것이죠. 사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걸작은 피렌체 대성당 창고 한 켠에서 40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돌이었습니다. 티끌조차 없는 가장 완벽한 대리석이었지만 한 조각가가 결을 모르고 망치를 내리치는 바람에 납짝하게 쪼개져 쓸모가 없어진 돌이었습니다. 좁은 곳은 채 1m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쓸모없어진 대리석으로 최고의 걸작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드의 모습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보통의 다비드는 어린 모습의 다비드가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있거나, 손으로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는 골리앗이 없었습니다. 대리석이 워낙 얇아 골리앗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죠. 대신 미끈한 청년 다비드가 돌을 던지기 직전 모습을 찰나로 담아내 마치 골리앗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3. 미켈란젤로는 신이 인간 세상에 잠시 내어준 천재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은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155㎝의 짱달막한 키에 몸집도 작았던 미켈란젤로는 독신으로 살면서 작업중에는 몇 조각의 빵과 와인만 먹고 하루종일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게 와인이었습니다. 조카와 편지를 할때는 늘 와인을 가져다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인생 말년인 1459년에는 와이너리를 사들입니다. 토스카나주 시에나에 위치해 있는 '파토리아 니따르디(Fattoria Nittardi)'입니다. 1183년에 수도사들이 세운 와이너리로 미켈란젤로와 그의 가문은 250년간 이 와이너리를 소유했습니다. 이 와이너리가 만드는 '까사누오바 니따르디 끼안띠 클라시코(Casanuova Nittardi Chianti Classico)'는 이탈리아의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child)'로도 불립니다. 1981년부터 미켈란젤로에 헌정하는 뜻을 담아 매년 살아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의 작품을 라벨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빈티지는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디자인한 작품을 썼으며, 2011년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작품 값 대신 와인을 받습니다. 끼안띠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Sangiovese) 100% 와인으로 전형적인 루비빛에 강력한 산도, 잘 녹아든 타닌이 특징입니다. 미디엄 바디 정도로 무겁지 않으며 붉은 색 과실의 맛과 향이 주를 이룹니다. 약간 쿰쿰한 이스트향과 가죽향 등 2차 향도 아주 좋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07-20 18:31:06[파이낸셜뉴스] #1."일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어렵고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1509년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나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피에타(Pieta)', '다비드(David)'라는 인류 최고 조각 작품을 탄생시키며 젊은시절부터 '신이 내린 젊은 거장'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제 그를 막아세운 건 가로 13.2m, 세로 41.2m에 달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였다. 욕심과 변덕으로 유명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Ⅱ)의 협박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을 맡았지만 미켈란젤로는 1년 가까이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조각가인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니." 미켈란젤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어올랐습니다. 늘 그랬듯이 천재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은 도나토 브라만테라는 예술가가 미켈란젤로를 일부러 고난으로 밀어넣은 것이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는 불과 1년전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게 자신의 영묘를 조각해달라"며 작업을 발주해놓고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찾기 위해 로마를 떠난 사이 마음이 변했습니다. 교황은 영묘 조각 작업을 중단시키고 돌연 그의 삼촌이자 전 교황인 식스투스 4세가 지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재단장하는 작업을 맡겼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평면도 아닌 둥근 궁륭 구조의 천장에 테니스 코트(가로 8m, 세로 23m) 두 배에 달하는 크기였습니다. 게다가 프레스코화였습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반죽을 얇게 펴 바른 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반죽이 마르면서 안료를 빨아들여 색이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되지만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내야 하고, 수정도 불가능 해 최고난도의 작품기법으로 손꼽힙니다. 이 때문에 하루에 그릴 수 있는 작업량이 정말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놀라운 속도로 이 큰 그림을 완성합니다. 4년간 천장에 하루 15시간씩 매달려 쉬지않고 작업한 끝에 1512년 11월1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Ceiling)를 공개합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장화를 그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도 놀랄 일인데, 그림의 내용이나 완성도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운데 중앙에는 하느님의 말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천지창조'를 주제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등 9개의 큰 그림과 그 주변에는 예수의 조상 얘기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인물마다 근육에 명암을 넣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하느님이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을 형상화 한, 두 남성이 손 끝을 맞대려 하는 모습의 '아담의 창조' 장면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작업장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Raffello Sanzio)는 미켈란젤로 몰래 작업장에 들어갑니다. "조각가 주제에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겠어"라고 비웃으며 성당에 들어선 순간 너무 놀라 얼굴부터 가렸다고 합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움직이는 모습에 순간 조각작품으로 착각해 얼굴로 쏟아질까 두려웠던 것이죠. 인류 최대 역작은 이렇게 완성됐지만 젊은 미켈란젤로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4년간 거꾸로 매달려 작업하면서 목과 허리는 완전히 뒤로 꺾여버렸고, 얼굴과 눈으로 쏟아지는 석회 반죽과 안료 때문에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를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럼에도 와인과 몇 조각의 빵만 들고는 비계에 올라 쉬지않고 작업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실로 광기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천재였습니다. #2.1486년 어느 날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디 메디치(Lorenzo di Medici)가 자신의 정원을 산책하다 어린 소년의 조각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소년은 목동의 신 '파누우스'의 개구진 행동과 이에 놀란 여신들이 기겁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표현력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런데 나이가 든 목동의 신의 치아가 많았다. "파누우스는 치아가 그렇게 많지 않을걸." 로렌초가 한 마디 하면서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하던 로렌초는 또 놀랐다. 그 소년이 파누우스의 윗니 두 개만 남기고 치아를 성글게 조각해 놓았던 것이다. 그 소년이 11살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후 메디치 가문에 들어가 본격적인 엘리트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미 10대때부터 메디치 가문을 찾는 석학들과 토론을 즐길 정도로 영민했습니다. 그러나 1492년 로렌초가 죽고 2년 뒤 메디치가는 피렌체에서 쫒겨나고 미켈란젤로도 이 때부터 피렌체를 떠납니다. 로마에 입성한 1498년 8월 생 드니 수도원장 등이 찾아와 그에게 작품을 의뢰합니다. 인류의 조각 역사상 3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타'가 이때 탄생합니다. 24살 청년이 1년만에 조각한 피에타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축 늘어진 그리스도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의 표정은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듯 온화합니다. 특히 성모를 감싼 옷자락은 대리석이 아닌 비단을 두른듯 부드럽고 세밀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3년 뒤인 1503년 피렌체에서 인류 최고의 걸작 '다비드'를 탄생시킵니다. 1503년 6월13일 미켈란젤로가 대중을 쳐다보며 장막을 걷어내자 높이 5.17m, 무게 5.5톤의 아름답고 늠름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정적인 콘트라포스트 모습으로 적장 골리앗을 노려보는 부릅뜬 눈과 잔잔한 근육질 몸에 펼쳐진 팽팽한 혈관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비드였습니다. 특히 손가락으로 돌맹이를 굴리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적장을 한방에 쓰러뜨릴 것 같았습니다. 가히 걸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미켈란젤로를 시기해 설치 장소를 외진 곳으로 옮기자고 했기 때문이죠. 수 개월의 논쟁 끝에 다비드는 1504년 5월14일 작업소 문 위쪽 벽을 헐어내고 받침대를 굴려가며 피렌체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까지 이동합니다. 바로 옆의 거리였지만 무려 4일이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 다비드에 관한 또다른 놀라운 사실이 알려집니다. 높이가 5m를 훌쩍 넘지만 두께가 얇은 곳이 45cm밖에 안됐던 것이죠. 사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걸작은 피렌체 대성당 창고 한 켠에서 40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돌이었습니다. 티끌조차 없는 가장 완벽한 대리석이었지만 한 조각가가 결을 모르고 망치를 내리치는 바람에 납짝하게 쪼개져 쓸모가 없어진 돌이었습니다. 좁은 곳은 채 1m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쓸모없어진 대리석으로 최고의 걸작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드의 모습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보통의 다비드는 어린 모습의 다비드가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있거나, 손으로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는 골리앗이 없었습니다. 대리석이 워낙 얇아 골리앗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죠. 대신 미끈한 청년 다비드가 돌을 던지기 직전 모습을 찰나로 담아내 마치 골리앗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3.미켈란젤로는 신이 인간 세상에 잠시 내어준 천재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은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155㎝의 짱달막한 키에 몸집도 작았던 미켈란젤로는 독신으로 살면서 작업중에는 몇 조각의 빵과 와인만 먹고 하루종일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게 와인이었습니다. 조카와 편지를 할때는 늘 와인을 가져다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인생 말년인 1459년에는 와이너리를 사들입니다. 토스카나주 시에나에 위치해 있는 '파토리아 니따르디(Fattoria Nittardi)'입니다. 1183년에 수도사들이 세운 와이너리로 미켈란젤로와 그의 가문은 250년간 이 와이너리를 소유했습니다. 이 와이너리가 만드는 '까사누오바 니따르디 끼안띠 클라시코(Casanuova Nittardi Chianti Classico)'는 이탈리아의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child)'로도 불립니다. 1981년부터 미켈란젤로에 헌정하는 뜻을 담아 매년 살아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의 작품을 라벨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빈티지는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디자인한 작품을 썼으며, 2011년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작품 값 대신 와인을 받습니다. 끼안띠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Sangiovese) 100% 와인으로 전형적인 루비빛에 강력한 산도, 잘 녹아든 타닌이 특징입니다. 미디엄 바디 정도로 무겁지 않으며 붉은 색 과실의 맛과 향이 주를 이룹니다. 약간 쿰쿰한 이스트향과 가죽향 등 2차 향도 아주 좋습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2023-07-20 11:3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