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튀르키예 메르신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3주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숙소에서 나오는 날 주인집 가족들(꼬맹이 두명과 아저씨 두분)이 배웅을 나왔다. 탄이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일일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는데 2살쯤 되보이는 막내 꼬마는 수줍어하며 아빠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곳에서 머물며 가진 휴식도 좋았지만 다시 길을 떠나니 또 설레고 좋다.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리는 길, 옆에 펼쳐진 바다 구경에 눈이 맑아지는 듯 하다. "바닷물이 엄청 맑네." 흑해 남쪽 해안도로 버금가게 지중해쪽도 도로가 매우 잘 되어있어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이런것이 내 차로 여행하는 최고의 장점인것 같다. 배낭여행이나 단체여행으로는 올 수 없는 곳을 찾아다니고 발견하는 기쁨. 해안도로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말피에도 가봤지만 내 마음속 최고는 튀르키예 해안도로들이다. 아말피보다 길도 훨씬 넓어 다니기도 편하고 구비구비 돌때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대로 휙 지나가기가 아쉬워 갓길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푸른 하늘과 햇빛에 빛나는 푸른 지중해, 저멀리 섬들. 뒤돌면 언덕위의 집들과 초록빛 산의 풍경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꿈속인지 동화속인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예뻤다. 가는 길 길가에 비닐하우스도 많고 오렌지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길 옆 어떤 가게에 울트라 특대형 망에 오렌지를 가득가득 담아 매달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가격이 너무 궁금해서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깜짝 놀랄만큼 저렴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이 정도로 싸지는 않았는데 거의 1미터 크기의 망에 가득 든 오렌지가 만원도 안했다. 대지진 이재민을 돕는 교민가족을 만나다 메르신에 도착해서 우리는 한국문화원을 운영하시는 교민가족을 만나 그댁 거실 한켠에서 일주일 이상 신세를 졌다. 김 원장님은 문화원 말고도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데 최근에는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피란 온 이재민들을 돕고있다고 한다. 얼마전의 대지진으로 인해 이곳 메르신에도 곳곳에서 피란민들의 텐트를 볼 수 있었고 친척들이 있는 경우 더부살이를 하거나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마련한 공동대피소에서 지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마침 우리 까브리가 트럭이라 이재민들께 가져다줄 많은 양의 구호품들을 나르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양말, 속옷, 휴지 등 생필품들을 잔뜩 싣고 메르신 외곽에 카잔르라는 작은 마을에 많은 이재민이 지내는 공동대피소에 갔다. 카잔르에만 4000여명의 이재민이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마을회관에는 100여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칸막이도 없이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중이었다. 침구와 짐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다행히 식량수급은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하는데 생활에 꼭 필요한 의류며 생필품이 부족해 지원하러 간 것이었다. 박스를 뜯고 물품을 분배할 테이블을 설치하고 인당 최소의 제품만 나누어드릴 수 있었다. 대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나 미디어에서는 더이상 이곳의 상황을 전하지 않지만 이재민들의 삶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한다. 집을 잃은 사람들. 고향이 폐허가 되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할 것이다. 대피소에서 15살 하산이라는 소년을 만나서 지진이 났던 날, 집이 흔들리고 뭔가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리고 하늘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였다는 생생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긴박하게 가족들의 생사를 챙기며 도망나와야했고 구조를 기다리며 추위와 공포에 떨던 일들, 미쳐 빠져나오지 못해 잔해속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하루 빨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재건하고 싶다는 소년의 말이 매우 대견하게 느껴졌다. 남이 해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직접 해야한다고, 우리가 가서 다시 그곳을 일으켜 세울거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표정에서 강한 의지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지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폐허로 변한 도시들이 정상적으로 복구될 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산의 바램대로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예전의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는 남의 일, 먼 나라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분간의 지진으로 삶의 많은 것을 잃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이재민 구호외에도 김 원장님을 통해 메르신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한국어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거의 한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우리가 있던 없던 상관안하고 K팝을 틀어놓고 수준급 K팝댄스를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K팝 랜덤댄스와 K팝댄스 콘테스트(공연)에 참가한 영상이 유튜브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원장님이 자랑하셨다. 메르신 지역대표로 공연도 했다고 한다. 작은 나라인 한국의 문화파워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매우 좋아해주고 환영해주었다. 또 원장님 부부는 우리가 아직 카흐발트(튀르키예식 아침정식)를 못먹어봤다고 하니 카흐발트를 아주 제대로 하는 메르신의 멋진 식당에 데려가주셨다. 커다란 나무도마위에 빵, 계란, 토마토, 올리브, 잼 서너가지, 치즈 등이 가득 나왔다. 메네멘이라는 토마토와 각종 야채와 계란으로 만든 요리도 맛있었다. 너무 이것저것 많아서 무얼 먼저 어떻게 먹어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재료가 신선하고 다 몸에 좋을 것같은 음식들이 맛도 좋다. 두분은 한국문화원이있는 건물 1층에 한류카페를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3D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가지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제안해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셨다. 함께 자재상도 돌아다녀보고 조명도 보러 다녔다. 키르기스에서는 뭘 구하려고해도 물건이 없었는데 튀르키예는 타일이며 예쁜 자재들이 참 많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렇게 모델링도 해서 보여드리고 자재도 함께 보고나니 두분은 감이 안잡혀 몇달간 답보상태였는데 다시 진행할 의욕이 생긴다고 고마워하셨다. 우리도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사모님은 손이 매우 크셔서 함께 수산시장에 가서 우리나라 꽂게정도 크기의 블루크랩을 4상자나 사왔다. 이때가 게가 잡히는 제철이라고 한다. 집에 가지고와서 어른 5~6명이 함께 손질을 하고, 아는 사람들 다 초대해서 게 파티를 벌였다. 하루는 당일코스로 문화원 선생님들과 메르신과 멀지않은 다소로 관광을 갔다. 현지사람과 같이 다니면 길을 찾아헤메지 않아도 되고 식당과 가게등에서 무얼 사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 다소는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고향이라고 한다. 바울 뿐만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등 유명한 옛사람들의 자취가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곳이었다. 다소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클레오파트라 문. 마치 광화문의 아치형 문만 떼어다 놓은듯 벽이 하나 서있을 뿐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에 무척 특별해보였다. 선생님들과 사진을 찍고 다음은 바울의 우물이라고 전해져오는 곳을 찾았다. 아기자기 조경을 잘 꾸며놓은 작은 공원 한가운데에 몇천년은 되어보이는 우물이 있다. 공원관리인이 옛날방식의 도르레같은 것으로 물을 직접 길어주었다. 우물의 깊이는 21m라고 한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한참을 돌리니 양철 양동이 가득 맑은 물이 올라왔다. 양동이에 길은 물로 우선 손을 닦고 다시 손에 우물물을 받아 마셔보았다. 바울도 이 물맛을 봤겠지? 이렇게 오래된 우물에서 아직도 맑은 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원에서 나와서 조금 걷다보니 다니엘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나왔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희안한 광경이 나왔다. 무덤위의 모스크를 공사하던 중 지하에 로마시대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하에는 고대 유적이 복원중이고 그 위로 현대적인 건물이 서있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유리난간과 통로를 설치해서 유적의 훼손없이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놓았다. 옛날에는 지진이 나면 쓰러진 건물을 그냥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도 한개가 아닌 시대가 다른 2가지의 건축물이 모스크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이 만든 기둥없이 서있는 넓은 아치천장을 보니 고대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골목을 걷기만 해도 좋은 이국적이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다소의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탄이 역사가 느껴지는 구두방을 발견하고 넉살좋게 들어가 인사를 한다. 오랜 세월동안 구두를 만들어 오셨을것 같은 하얀머리의 장인이 기분좋게 자신이 만든 구두를 보여주신다. 친절한 장인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이 멋있었다. 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쇼핑. 다소의 중심가에 있는 한 견과류상점을 찾았다. 수십종류의 터키쉬 딜라이트와 처음보는 밤을 닮은 견과들이 여러가지가 쌓여있는 모습에 우리는 꿀통에 빠진 벌처럼 떠날줄을 모르고 구경하고 물어보고 시식도 하고 완전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좋아하는 호두를 잔뜩 샀는데 한국에서는 비싼 호두를 착한 가격에 싱싱한 상태로 살 수 있어 너무너무 좋았다. 호두를 잘못사면 쩔은 맛이 나서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여기 호두는 절대 그럴일이 없다고 한다. 알도 굵고 탐스럽게 생겼다. 터키쉬 딜라이트는 보기에 너무 예쁘고 맛있게 생겼지만 얼마나 달지 무서워 살 수는 없었고 그냥 구경만 잔뜩 했다. 관광을 마치고 닭꼬치 맛집이라는 다소의 커다란 레스토랑에 갔는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몇백명도 함께 먹을 수 있을만한 넓이였다. 메뉴를 보니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있는 다양한 닭꼬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시켜주신 닭요리와 구운 고추, 싱싱한 올리브등을 정신없이 먹었다. 불맛이 가득밴 윙이며 신선한 지중해 야채들이 정말 맛있고도 건강한 먹거리였다. 탄은 다소에 들어올때부터 길가에서 파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던 빨간 음료가 있어 주문했는데 한입 마셔보더니 과일주스같이 보이는데 맛없는 야채주스라며 투덜대고는 물만 마신다. 당근을 발효시킨 음료라고한다. 이곳사람들에게는 인기있는 음료인가보다. 곳곳에서 커다란 통에 담아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 열흘간 메르신에서 선생님들과 참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날 사모님은 마치 친정엄마처럼 먹을것들을 잔뜩 싸주셨다. 순무와 오렌지, 자몽, 말린 무화과와 말린 딸기, 직접 담그신 너무너무 맛있는 귀한 김치까지 커다란 사랑을 한아름 받았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b1d_bymxX2M?si=vw9u29twTijZjhfM>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04 13:12:42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앙카라에는 춘천의 지인이 소개해주신 분이 계셨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신 엄선생님가정을 방문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이 방학중 집에와있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마리아가 게임그래픽을 전공한다고 해서 평소 게임제작에 관심이 많던 나는 마리아와 게임에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다. 엄선생님 부부는 원래 게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어서 딸과 마찰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의 대화를 통해 게임이라는 것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영향을 줄수도 있다는 것을 듣고는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딸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하셨다. 감사하게도 거실한켠에서 몇일 머물 수 있게 해주셔서 쉬면서 사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한식도 먹고 근처 고려인국수집에 가서 함께 식사도 나누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다. 몇일전부터 까브리에서 매우 강한 기름냄새가 나서 선생님의 추천으로 정비소에 들렀다. 여행중 차에 갑자기 냄새가 나서 큰 문제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무척 불안하고 두려웠는데 정비소에서 꼼꼼히 보고 엔진오일을 갈고 필터등을 교체하고나니 좀 안심이 되었다. 앙카라에서의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즈미트(Izmit)로 향했다. 이즈미트에는 카우치서핑 호스트 야신(Yasin)이 살고 있다. 튀르키예에 처음 들어왔을때 카우치서핑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방문하려고 했었는데 당시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해서 그냥 지나쳤었다. 이번에 다시 근처를 지나가게 되어 연락을 해보니 괜찮다고 와도 좋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카우치서핑 친구를 만나지 못하나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 특히 야신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 한국어로 메세지를 주고받을 정도라서 탄이 무척 좋아했다. 오후 늦게 이즈미트의 한 몰 주차장에서 야신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야신과 마치 오래 헤어진 형제처럼 반갑게 포옹하는 탄이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덕분에 나도 얼떨결에 포옹으로 인사를 했다. 야신은 한국어로 농담을 할 정도로 언어능력이 출중하다 이즈미트에는 자동차관련 공장과 회사들이 많은데 야신도 자동차 부품제조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탄은 야신을 만나자마자 그동안 궁금했던 "어떻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야신이 10년전 대학생때 인터넷으로 터키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한 한국인 친구를 알게되었고 그 후로 야신도 한국에 대해 알고싶어 한국어를 배웠는데 재미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한번도 온적 없는 친구가 이렇게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는 것이 무척 대단해보였다. 우리는 야신과 함께 주차장옆의 큰 몰에 테라스가 있는 식당으로 갔다. 창가에 앉으니 멀리 석양이 아름답게 지고 있었고 어마어마한 넓이의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게 줄지어있는 것이 보였다. 야신이 피자 비슷한 피데(Pide)를 사주었는데 전에 처음 튀르키예 리제에서 먹은 적이 있어 반가웠다. 식사를 하며 대화 중 야신이 까브리에 번호판이 앞뒤 다 있냐고 물어본다. 왜 그러나 어리둥절해하며 그렇다고 하자 하나 두고 가라고 하며 웃는다. 한국 번호판이 갖고 싶었나보다. 식사후 함께 까브리를 타고 야신의 집으로 갔다. 언덕위의 방이 세개정도 되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었다. 우리는 까브리에서 매트리스를 가지고 와서 잠자리를 만들었다. 야신이 출근하면 영상작업도 하고 맛있는 한식을 만들어 그가 퇴근하면 함께 저녁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 야신은 올해 6월에 2주간의 한국여행을 계획중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다니 마냥 반가웠는데 알고보니 튀르키예 국적으로 한국에 관광 오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준비하는 서류만 열가지가 넘고 세세한 여행계획까지 첨부해야한다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국경을 통과하던 우리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작년에도 한번 한국 관광비자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해서 이번에는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니 괜히 미안할 정도였다. 야신의 여행계획서를 함께 보다보니 우리가 아는 지명과 교통편등이 나와 반가왔다. "인천공항 1 터미널에서 공항철도타고 공덕역에서 내리고 지하철 6호선으로 갈아타고 동묘역으로 가서..." 뭐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열심히 듣는데 너무나 빈틈없이 세세하게 잘 짜여진 계획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나보다. 할 수만 있다면 초청이라도 해서 한국에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는 떠돌아다닐 예정이라 대신 한국에 가게되면 내 여동생과 지인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으라고 연락처를 주고 한국의 동생과 지인에게는 야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탁을 해두었다. 또 한국가면 꼭 먹어보라고 한국음식 사진을 이것저것 보여주었는데 알고보니 야신은 예전에 한국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웬만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었다. 야신과 함께 한국말로 이야기하며 편안히 지내고 또다시 떠날 날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날은 우리가 튀르키예에 입국한지 두달이 되는 날이었다. 새벽같이 출근한 야신의 회사는 다행히 우리가 가는 길목에 있어서 주인없는 집의 문단속을 잘 하고 몇가지 선물을 두고는 마지막 인사를 하러 야신을 찾아갔다. 하늘에서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도 엄청 분다. 그의 회사는 시 외곽의 커다란 공장들이 여럿 자리잡은 곳에 있었다. 회사 유니폼을 입고 뛰어나오는 모습이 반갑기도 하고 곧 헤어질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동안 집에 묵게해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한국에서 좋은 여행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나누고 또 포옹으로 헤어지는 인사를 했다. 차에서 탄은 지난 두달간의 튀르키예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튀르키예에 오니 드디어 문명사회에 다시 온 듯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사람들의 운전매너와 사는 모습들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외국이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다닐 수 있어 좋았어." 나도 여러가지 자연풍경을 다양하게 볼 수 있고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좋은 튀르키예가 무척 좋았다고 이야기나누었다. 아직도 우리의 튀르키예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이스탄불로 향해 간다. 대도시는 단점이 더 많지만 한국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언덕위의 한국식당을 찾아가 된장찌개와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잘곳을 찾는데 한참을 뱅뱅 돌아도 차를 댈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네비에서 근처에 있는 공원을 보고 공원에는 주차장이 있겠지 싶어 찾아갔지만 주차장은 없고 골목을 잘못 들어가서 막다른 곳에 들어갔다가 후진으로 200m를 돌아 나와야했고 고생고생하며 한참을 헤메야 했다. 결국 이 근처에서 잘 곳은 찾는 것을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 이스탄불 서쪽에 있는 아타튀르크 올림픽 스타디움 경기장이란 곳을 찾아왔다. 잠실 종합운동장같이 큰 경기장이 있었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입구를 따로 막아놓지 않은 채 넓게 있어서 다행히 차를 대고 잘 수가 있었다. 그날밤 밤새 비가 내려서 캐빈에 빗방울 맞는 소리에 귀마개를 끼고 잠을 잤다. 새벽에 깼는데 여전히 통통 빗소리가 들린다. 탄이는 뒤통수에 수면버튼이 달려있는지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잘만 자는데 예민한 편인 나는 잠이 드는 것도 쉽지 않고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곤해서 힘들었다. 날씨도 꽤 추워서 전기요 덕분에 등은 따뜻했지만 얼굴은 시리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있었다. 아타튀르크 경기장에서 차박을 하다 아침에도 계속 비가 내린다. 어제 들른 한인마트에서 산 베이컨으로 아침을 만들었다. 오랜만의 돼지고기에 콧노래까지 나온다. 메르신에서 받아온 구워먹는 치즈와 계란후라이까지 단백질 가득 아침식사다. 까브리에서 차려먹는 아침상 간편하지만 든든하다. 식사 후 오렌지는 튀르키예에서 빠질 수 없다. 한국의 5분의 1가격인 300~500원에 매우 좋은 오렌지를 살 수 있으니 이곳에 있는 동안 많이 먹어둬야겠다고 벼르고 있다. 아침을 먹고 차 상태를 보니 앞유리에 문제가 있었다. 튀르키예에 거의 입국하자마자 트라브존에서 만난 정비사님이 금간 끝을 동그랗게 그어놓고 한국 다시 갔다와도 끄떡없을거라 호언장담했던 곳이 또다른 금을 만들어 뻗어나가고 있다. 두달이 안되었는데 금이 점점 커지고 있어 아무래도 튀르키예를 벗어나기 전에 유리를 교체해야할 것 같다. 튀르키예 서부에서 난민어린이 대상 교육센터를 하고 계신 박선생님을 만나러 왔다. 도시의 화려함 뒤에 난민촌은 무척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해맑고 까브리에 관심이 쏟아져 우리는 차를 오픈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구경하도록 했다. 캠핑카를 처음보는 아이들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무척 신기해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센터에 한쪽 벽면에 포토존을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아이들이 꿈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박선생님의 도움으로 자동차 유리 전문점을 찾아왔다. 다행히 바로 새 유리로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 한국산 포터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봤어서 기대했는데 역시 정비가 가능했다. 척봐도 장인이신듯한 정비사님이 능숙한 솜씨로 기존 유리를 탈거하고 새로운 유리창을 끼운다. 9만km 주행후 교체이다. 작업시간은 2시간가량 걸렸고 비용은 170$ 였다. 한국이었으면 훨씬 더 들었을 것이다. 부품 구하는 데에 몇일이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구해져서 다행이었다. 깨끗한 새 유리를 단 까브리를 타고 이스탄불을 떠나 3시간 거리의 국경마을 에디른으로 향한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zbsJO9Yq44o?si=795qeNMkG6JjmWUD>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18 15:40:00<43> 튀르키예 '코니아'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메르신에서의 즐거운 추억을 잔뜩 안고 코니아를 거쳐 수도인 앙카라로 가기로 했다. 코니아로 가는 길. 튀르키예는 신기하게 어떤 길로 가도 멋진 풍경이 나온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코니아는 내륙이라 산길을 지나야하는데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숲도 멋있게 우거져있다. 멋진 절벽 바위산이 길 옆에 병풍처럼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넓은 초원과 언덕도 아름다웠다. 메르신에서는 여름이 다가오나 싶게 더웠는데 또 갑자기 설경이 펼쳐진다. 눈 쌓인 산길을 탄이는 반팔티를 입고 운전하고 있다. 산을 지나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 어두워지기 전 코니아(Konya)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사한 스테이크하우스를 발견했다. 외관이 마치 UFO같이 생긴 건물이었다. 들어가서 메뉴를 보니 와! 가격도 완전 착하다. 스테이크를 먹고싶어 했었는데 오늘 저녁 소원을 풀게 되었다. 탄이는 뼈에 붙은 양갈비를, 나는 송아지 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각종 소스와 함께 너무 예쁘게 플레이팅해서 나왔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막 식사를 하려고 하자 직원이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나는 드라이아이스가 든 무언가를 식탁에 놓아주었다. "이거 먹는 건 아니겠지? 하핫" "그냥 분위기 있으라고 놔주셨나봐." 기분도 좋고 음식 맛도 좋고 가격이 착해 한층 더 좋고. 둘이 3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훌륭한 스테이크를 배부르게 잘 먹었다. 오늘 밤은 식당 근처의 공원 주차장에서 차박. 왕의 식사, 나그네의 잠자리이다. 크게 시끄럽거나 방해받지 않고 잘 자고 다음날 아침 앙카라로 향한다. 북쪽으로 올라가니 해가 오른쪽에서 뜨겁게 비친다. 이럴때를 대비해 달아놓은 커튼이 매우 유용하다. 이케아에서 산 커튼봉과 커튼집게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천을 길이에 맞게 잘라 재봉했다. 까브리 옆창문이 네모 반듯하지가 않아 완전히 가릴 수 있도록 찍찍이도 달아놓았다. 탄이 앙카라 가는 길에 소금호수가 있다고 한다. "정말? 남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튀르키예에도 소금호수가 있다고?" 그곳에 들르기로 했다. 길 옆에 낮은 지대에 바다가 말라버린 듯한 모래사장과 히끗히끗한 소금이 말라붙은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연 것이 보이네. 소금호수 맞나봐." 10년전 아메리카여행 때 볼리비아의 우유니에 가서 보리라 꿈꾸었던 소금호수를 여기 튀르키예에서도 볼 수 있다니. 길 옆에 관광지인 듯한 곳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기념품을 파는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식당도 있고 실물크기의 홍학모형이 두개나 있다. 호수에 홍학도 사나보다. 호수까지 가는 길을 매우 잘 닦아놓아서 당연히 입장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받지 않는다. 오우 완전 개꿀이다. 따뜻한 남쪽에서 오다보니 옷입는 감각이 완전 헷갈려서 홑겹 남방에 급히 작은 무릎담요 하나를 뒤집어 썼다. 귀가 시려울 정도로 춥다. 해도 강하고 호수가 눈이 부셔서 썬그라스도 꼈다. 희안한 패션이다. 호수쪽으로 한참 걸어들어가 드디어 물이 있는 곳을 만났다. 물가에는 하얗게 얼룩져있는 결정들이 보이는 것이 바로 소금인 것 같았다. "눈이나 얼음이 아니라 소금 결정인 것 같아." 사진에 진심인 탄이는 만류할 새도 없이 양말을 신은채 크록스 여름샌들로 철퍽철퍽 물에 걸어들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하늘이 내려온 듯 투명한 호수에 하늘과 탄이 반영되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후가 두려운 나는 물이 거의 없는 곳까지만 조심히 들어가서 물에 비친 사진은 못찍었지만 꽤나 만족했다. 우리 말고도 관광 온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어디서 오셨냐고 서로 묻고 사진도 찍어주며 짧은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중국에서 왔다는 한 친절한 청년과 잠시 나그네의 동병상련을 나누었다. 호수는 매우 넓었고 깊은 곳까지 멀리 드론을 날려보니 바람한 점 없어 거울같은 호수에 하늘이 그대로 비쳐서 물과 하늘의 구별이 안 되었다. 멋진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고 차로 돌아왔다. 너무너무 추운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또 오게 된다면 소금호수는 여름에 오는게 좋겠다. 참 튀르키예는 대단한 것이 세계 모든 관광지가 다 있는 것 같다. 알프스같은 눈쌓인 아름다운 산맥들에, 지중해 남부의 이국적인 풍경과 풍부한 음식에, 가파도키아의 기묘한 바위들과 파묵칼레의 석회석 온천, 그리고 소금호수까지. 정말 없는게 없는 종합 관광지가 바로 튀르키예 아닌가 싶다. 차로 돌아온 탄이는 젖은 양말을 벗고 귀한 생수로 발과 크록스신을 씻고 차에 탔다. 시로의 작은 쿠사리와 함께.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youtu.be/dcBtNe4sJ-0?si=Z_QDRP4Dwz4Qgkju>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2-12 10:39:45<41> 튀르키예 서남부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나일항공을 타고 2시간의 짧은 비행 후 택시를 타고 곧장 사비하 귁첸공항 근처의 까브리가 서있는 곳으로 갔다. 혹시 차가 털리거나 뭐가 깨져있거나 견인되버린건 아닌지 불안해 하면서 갔는데 떠난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멀쩡히 서있는 까브리를 보자 너무너무 반가왔다. "야~ 까브리야! 잘 있었어? 아따, 오랜만에 본다." 다시 까브리에 타니 내집같이 편안하다. 원래 이집트 가기 전에는 다녀와서 튀르키예를 해안도로를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며 계속해서 여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떠난지 벌써 7개월. 그동안 여행의 피로가 많이 쌓인데다 이집트에서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느라 몸도 마음도 피곤에 절어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곳에 좀 오래 머물며 영상작업도 하고 휴식도 취하자고 마음을 모으고 저렴하고 조용한 숙소를 찾아보았다. 번잡하고 비싼 대도시 이스탄불을 떠나 튀르키예 서남부 사클리켄트 국립공원 근처의 시골마을에 무지무지 저렴하고 조용한 숙소를 구했다. 3주에 430달러, 1박에 3만원도 안된다. 숙소까지는 750km, 차로 9시간 거리. 이동중에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설경을 만났다. 아침까지만해도 한여름 같은 뙤약볕의 카이로에 있다가 오후에는 눈 쌓인 풍경을 보다니 기분이 참 묘했다. 맛있는 것도 해먹고 편히 쉴 생각에 기운이 났다. 중간에 길가에서 하루 차박을 하고 다음날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빠져나와 또 산속길로 한참을 들어가서 도착한 숙소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얀 3층 건물의 1층을 통으로 쓸 수 있었다.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있고 넓은 거실에 방 세개에 화장실 두개를 우리가 몽땅 사용한다. 지은지 얼마 안된 집인듯 깨끗하고 정말 좋았다. 저렴한데다 시골에 있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한 곳은 베란다였는데 커다란 창이 유리도 없이 뻥 뚫려 있어 거기를 통해서 보면 산과 들과 나무들이 마치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화처럼 보였다. 조용하고 평화로와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1시간 거리에 관광도시인 페티예(Fethiye)가 있다. 장을 보러 한두번 갔다오기도 했다. 식료품 물가가 이집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생각하면 무지하게 저렴하다. 한번은 장을 보고온 것을 풀어보니 둘다 과일을 좋아해서 담다보니 과일만 7종(사과, 오렌지, 석류, 딸기, 감, 자두, 바나나)이 되었고 계란한판에 두툼한 소고기 1.5kg, 찢어먹는 치즈, 각종 채소(감자, 상추, 고추, 생강, 마늘, 버섯, 파, 양파, 당근 등), 호두 커다란 한봉투, 식빵, 음료수 세병, 마요네즈, 버터, 파스타면과 과자등 어마어마하게 사왔는데 모두 다해서 9만원이 안되었다.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다음날은 어디로 갈지, 어디서 잘지, 먹을 것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이 없이 3주간 우리는 그동안 먹고싶었던 꼬리곰탕, 짬뽕, 짜장면, 닭볶음탕 등등 한식을 마음껏 해먹으며 잘 쉴 수 있었다. 식료품 가격이 4분의 1정도 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탄이 갑자기 와서 뜬금없이 패러글라이딩을 하고싶지 않냐고 물어본다. 회사 다닐때 한번 타본 경험이 있었는데 썩 좋지 않았더래서 반반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타고싶다며 여기서 가까운 욀뤼데니즈(Oludeniz)라는 곳이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명소인데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안가볼 수 없지. 인터넷으로 정보를 좀 검색한 후 낙하산을 타러 갔다. 욀루데니즈는 야자수가 있는 예쁜 휴양지같은 마을이었다. 바닷가 옆에 패러글라이딩 업체들이 모여있었다. 비행 후 랜딩하는 곳이 바로 이 해변 모래사장인가보다. 잔잔한 지중해 바다가 햇빛에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여서 너무너무 아름다왔다. 꼭 패러글라이딩을 하지 않더라도 예쁜 해변과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몇개의 업체를 방문해서 가격과 출발시간을 알아보았는데 우리가 인터넷으로 알아본 가격과 큰 차이가 없고 곧 타러갈 수 있는 스케줄의 업체로 정했다. 직원분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주의할 점,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등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곧 우리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작은 미니버스에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말고도 손님이 서너명 더 있었고 손님 한명마다 한명의 파일럿이 함께 가기 때문에 일행이 꽤 된다. 파일럿들은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버스 뒤 트렁크에 실었는데 깜짝 놀랄만큼 크기가 컸다. 2월은 비수기로 인당 100$이었는데 눈이 많이 오고 길이 얼어서 1200m까지만 올라간다고 한다. 여름 성수기 가격은 175$인데 거의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1900m에서 뛴다니 어마어마하다. 한라산이 그정도 높이일텐데 역시 튀르키예에는 훨씬 높은 산이 많구나 싶었다. 올라가는 길에 창밖으로 산아래가 보이는데 난간도 없는 비포장 도로를 올라가는 것이 아찔하다. 1200미터도 엄청 높아서 산 아래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활공장에 도착하니 뿌연 하늘밖에 안보였는데 흐린것이 아니라 산에 걸린 구름속에 있던 것이었다. 바람이 불자 구름이 눈앞에서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파일럿들이 자기 몸집보다 더 커다란 장비를 짊어지고 넓은 활공장으로 이동해서 낙하산을 펴고 준비를 한다. 흥분과 기대로 미처 탄의 상태를 못보았는데 다시보니 반쯤 실성해서 울상이다 웃다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탄이가 왜 패러글라이딩을 타자고 했는지 짐작가는 것은, 겁이 많은 본인이 타고 싶었다기보다는 스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타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사랑은 겁도 이기는구나. 해발 1200m에 펼쳐진 기가막힌 장면을 보고 벌어진 입이 닫히지를 않는 탄이의 모습이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었다. 반면에 나는 언제 패러글라이딩 타는 것에 시큰둥했나 싶게 마냥 신이나고 좋아서 너무너무 설레었다. 다이나믹한 것을 원하면 파일럿에게 말하면 된다. 나는 공중 체류시간이 줄어도 좋으니 다이나믹하게 운전해달라고 부탁했고 탄이는 제발 천천히, 평화롭게 해달라고 몇번이고 강조를 했다. 탄이가 좋아하는 주황색 낙하산을 타고 탄이가 먼저 출발한다. 파일럿이 뒤에 앉아 함께 타는 텐덤덤비행이었다. 아무리 파일럿이 함께 있다해도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줄을 잡고 뛰라고 끌어주시는 직원분의 호령소리에 머뭇거릴 새도 없이 탄이가 후딱 뛰어 날아가버렸다. 우와!~ 탄이의 용기에 박수. 다이나믹하게 해달라고 해서 그런건지 내 차례는 맨 마지막이었다. 파일럿이 쓰라고 건네준 까만 헬멧이 귀여워 마음에 들었다. 긴 셀카봉도 받았다. 이곳 사람들은 촬영에 진심인듯 패러글라이딩 장비 말고도 360도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 등 촬영장비가 매우 잘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하는 동안 내 담당 파일럿이 한국말을 몇마디 하며 긴장을 풀어주신다. 여기도 한국 관광객이 무지 많이 왔었나보다. 같이 달리면서 우리를 끌어주는 직원분이 "달리기~달리기~달리기~!"하며 나에게 열심히 뛰라고 시킨다. 시키는 대로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부웅~~ 와... 떴다! 발아래 까마득한 땅과 바다가 보였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리저리 보기에 바빴다. 산을 지나 바다위에 떠서 보는 풍경이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왔다. 까마득한 아래에 집들이 레고블럭만하게 보였고 푸르른 지중해가 햇빛을 받아 더욱 푸르게 빛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다만 내 뒤의 파일럿이 한국 손님을 많이 경험하셨는지 자꾸 "행복해? 행복해?"하고 물어봐서 오롯이 내 감동에 푹 빠지는 것을 방해받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저절로 나오는 "우와... 세상에.. 대박..."이란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넓은 바다위로 위치를 잡자 파일럿이 "이제 go?" 한다. 으아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18년 경력의 능수능란한 파일럿의 조종으로 패러글라이더는 롤러코스터 정도는 절대 비할 수 없는, 상상도 못하는 스릴을 맛보게 해주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다가 내 머리위로 바다가 펼쳐지고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고 눈앞에 바다만 보이다가 뚝 떨어졌다 상승하고, 그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너무너무 특별한 경험이었다. 중간에 파일럿이 나에게 조종줄을 맡겨 스스로 왼쪽, 오른쪽으로 돌게하도록 해주었는데 내가 움직이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패러글라이딩을 배우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참 다이나믹한 스릴을 경험하고나니 지상이 가까와져 있었다. 손톱만하게 보이던 집들이 점점 커지고 우리는 바다 바로 앞 해변에 안전히 착륙했다. 땅에 발이 닿고나서도 흥분과 감격이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함께해준 파일럿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탄이는 원하는대로 고요하고 잔잔한 비행을 했다고 한다. 하늘 위에서 푸른 지중해와 예쁜 튀르키예의 산과 들을 마음껏 보는 것이 너무 좋았고 겁이 많은 편임에도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고 했다. 큰 움직임이 없던 탄은 나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15분정도나 늦게 착륙했다. 탄이 내려온 것을 보고 달려가 맞이했다. 탄이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좋았어?" "대박~ 미쳤어." "100점 만점에 몇점?" "아유.. 천점!!!" 이런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평생 한번은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하늘 위에서 지구를 감상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 아닐까 싶다. 새처럼 나는 꿈을 실현한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평생 잊지못할 최고의 추억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도시에 간 김에 돼지고기를 파는 곳을 찾아갔는데 삼겹살 비슷한 것을 살 수 있어 매우 반가웠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돼지고기 먹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다. 비쌌지만 살 수 있어 다행이라며 숙소에 와서 쌈채소와 함께 맛있게 구워먹었다. 그렇게 마냥 편하고 여유롭게 보내던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핸드폰과 메일등에 온통 난리가 났다. 알고보니 튀르키예에 대지진이 나서 우리의 안전을 걱정하는 지인과 구독자분들의 확인 연락들이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있던 곳은 안탈리아 근처의 서쪽으로, 대지진이 발생한 시리아 국경근처 동부 가지안테프 지역과는 매우 떨어져 있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잠만 쿨쿨 잘 자고 일어났던 것이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는 우리가 있는 지역이 아닌 것이 너무너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지진이 쓸고 간 후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다음 목적지가 그곳에서 3시간 거리인 메르신이어서 그곳에서 만날 예정인 분들이 걱정되었다. 혹시나 하며 연락해보니 다행히 그쪽도 큰 피해는 없으시다고 한다. 잘 먹고 쉬고나서 집을 렌트한 기간이 끝나고 메르신을 향해서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7MZZbNOR_dg?si=1N8llVOuOP0l6vS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28 19:23:3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투미에서 편히 쉬고 난 어느날 드디어 튀르키예로 출발한다. 바투미에서 국경까지는 단 30분밖에 안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않아 줄지어 서있는 대형트럭들을 보니 벌써 국경이구나 실감이 난다. 처음 이런 광경을 봤을 때는 저 많은 트럭들 뒤에 서야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이젠 당연하다는 듯 트럭들을 피해 앞으로 쭉 나가서 소형차들의 뒤에 선다. 화물을 실은 대형트럭들은 다른 절차를 밟아야하는지 항상 따로 줄을 지어있었다. 조지아 출국심사대에서 우리 서류를 유심히 보던 사무관이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별문제 없을거라 마음놓고 있었던 우리는 당황해서 보니 자동차등록증에 알파벳이 하나 틀린 것이 있던 것이었다. 출국후 반년 가까이 돼서야 겨우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게되다니 좀 황당스러웠다. 하지만 올바르게 표기된 다른 서류를 찾아 보여주며 우리나라 관공서의 실수라고 이야기하자 다행히도 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큰 문제없이 통과해 다행이었다. 튀르키예 입국때는 최소 3개월짜리 자동차 보험이 의무라고 해서 162달러를 주고 가입했다. 까브리는 큰 차라서 이 가격이고 작은 승용차는 조금 저렴한 것 같았다. 또한 미리 준비하면 좀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은 튀르키예에 무비자로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보험료도 냈으니 3개월 꽉차게 잘 놀다 가야겠다. 튀르키예 세번째 방문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색다르네" 나는 95년도에 처음 튀르키예에 여행을 왔었다. 그리고 2014년에 탄이랑 9일간 패키지여행을 했고 이번이 세번째이다. 비행기로만 왔던 튀르키예에 까브리를 끌고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완전 다르다. 길가에 빨간바탕에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를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형제의 나라여서 그런지, 몇번 왔던 곳이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바투미에서 2시간 거리의 흑해 연안의 소도시 리제(Rize)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심카드 구입과 점심해결을 하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길가에 흑해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을 파는 가판대가 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풍경이 반갑고 풍요로워 보인다. 통신사 사무실인 듯한 Turkcell이란 곳에 들어가 심카드를 파냐고 물어보니 없다는 것 같다. 직원은 친절하게 시내 중심으로 가면 살 수 있다고 안내해주어서 그곳을 나와서 중심쪽으로 걸어갔다. 걷다가 너무 맛있어 보이는 피자 비슷한 빵을 파는 식당이 보여 일단 점심부터 먹자 하고 들어갔다. 식당밖에 음식 사진이 너무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진이 있는 메뉴판도 있어서 무사히 주문을 하고 났는데 탄의 시선을 끄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이것은 뭔가요?", "수틀라치(Sutlac)입니다." 디저트라고 한다. 탄이는 그것도 추가로 시켰다. 이곳은 아랍식 피자인 피데를 파는 곳이었는데 음식사진을 보고 주문할 때 한개에 3000원정도 해서 한손에 잡을 정도의 작은 크기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큰, 미디엄피자만한 사이즈였다. 하나 가지고 둘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화덕에서 막 구워나와 정말 맛있었다. 아랍식 피자 '피데'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당황했다 디저트로 수틀라치를 먹어보았는데 쌀을 우유에 말아 끓인 것 같았는데 달달하니 좋았다. 계산하며 탄이 "레..젯"하고 헤메니까 주인아저씨가 "레젯트르!"라고 알려주며 웃으신다. '맛있다' 라는 튀르키예어이다. 반이상 남아서 포장해서 또 한끼를 먹었는데 1만3000원가량 냈다. 한번만 가기 아까운 식당이다. 우리동네에 있었으면 단골이 되었을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 식사 잘하고 조금 걸어서 중심가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여기에는 심카드가 있겠지. 헛 몰 입구에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스벅이다. 스벅팬은 아니라 그냥 지나갔지만 아는 곳이 보이니 반가웠다. 익숙한 문명사회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커피값은 한국의 반값 정도였다. 안에 들어와보니 서울에서 보던 대형몰과 다름없는 정말 크고 현대적인 몰이다. 아는 브랜드도 꽤 있다. 내부가 무척 넓어서 심카드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말이 안통해서 손짓발짓하다 1층에 있다는 듯한 대답을 들었다. 영어를 못하시는것 같아 그냥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내려가려는데 코리아냐고 물어보아서 맞다고 "네 코리아!" 그러자 튀르키예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들은 한국말에 너무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는 "I love Korea"라고 하며 스마트폰에 한국 아이돌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잘 모르는 한국 아이돌의 팬이 튀르키예의 이 작은 도시에 있다. 정말 한류가 대단하다 싶었다. 기분 좋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1층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유심파는 곳을 찾았다. 인터넷에서는 1만원 정도로 유심을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5만원이 넘는 돈을 이야기한다. 두세군데 물어보았지만 비슷한 가격이어서 일단 구입을 미뤘다. 혹시 외국인이라 비싸게 부르는게 아닐까 싶어 현지 사는 분께 물어보고 저렴히 구입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리어카 같은데에 견과류를 파는 분이 갑자기 붙잡고 호두와 말린 블루베리를 주신다. 사실 며칠 전부터 호두가 먹고싶다고 탄에게 말했었는데 이게 웬떡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튀르키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장사하는 자세가 지금까지 지나온 나라들과 차원이 다르다. 감사히 받아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호두와 똑같이 고소하다. 사드리고 싶었지만 카드밖에 현금이 없어 아쉽게 발을 돌렸다. 리제는 금간 앞유리때문에 트라브존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며칠이고 머무르고 싶은 정말 편안하고 예쁜 곳이었다. 사람들도 좋고 동네 느낌도 좋은 곳. 계속해서 오른쪽에 흑해를 끼고 서쪽으로 트라브존으로 간다.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모습은 여러나라에서 봤지만 튀르키예 과일 노점상의 진열솜씨는 남다르다. 사고싶게 예쁘게 진열해놓고 조명까지 설치해서 눈길을 확 끄는 등 상술이 매우 발달한 것 같다.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유리창은 끄떡 없을거야" 석양이 질 무렵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리제보다 큰 도시라 그런지 주차할 곳 찾기도 만만찮고 복잡하고 빡빡한 느낌이 든다. 번화가를 지나 차량정비소가 모여있는 동네에 왔다. 유리를 갈아끼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정비사인 듯한 분이 갑자기 작은 칼같은 도구로 거침없이 까브리 앞유리의 금간 끝을 둥글게 팠다. 깜짝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끄떡없을거야"라며 호언장담한다. 유리교체에 시간도 돈도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게다가 돈도 한푼 안받고 그냥 가라고 한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완전 럭키비키였다. 트라브존은 너무 복잡한 도시라서 해는 졌지만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서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기로 했다. 도시밖에서 한적하게 차박할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다가 주유소를 보고 주유를 했는데 서비스로 유리를 세제까지 묻혀 정성스레 닦아주신다. 촬영하는 것을 보더니 엄지척까지 하며 웃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튀르키예에 온지 하루만에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좋은 일들이 많아 너무 좋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주유 후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다가 해변공원의 주차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밤 우리는 앞으로의 경로에 대한 진지한 회의를 했다. 원래 계획은 트라브존에서 남쪽 메르신으로 갔다가 지중해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 유럽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탄이 해안드라이브를 하려면 반시계방향이 좋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면 이스탄불을 두번 들르게 되는데... 뭔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여행에서 효율이 뭐가 중요한가. 회사를 떠난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나는 생산성-스피드-효율성에 사로잡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더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쪽으로 경로를 바꾸기로 하였다. 좋은 판단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흑해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갈 수 있었다. 동틀녘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서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새벽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해서 차박을 할때면 항상 일찍 일어나 출발한다. 오른편에 펼쳐진 핑크빛 하늘과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다. 흑해의 풍경에 감탄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판단이 좋았음을 확인했다. 구글지도를 보니 이 해안도로는 계속해서 바다 바로옆으로 이어져있었다. 앞으로 며칠 간의 드라이브가 너무도 기대되었다. 이만한 드라이브 코스는 다시 만나기 힘들거라고 탄이 장담한다.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크고 넓은 고속도로도 있었지만 우리는 최대한 바다 가까이에 난 도로로 흑해를 최대한 즐기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바닷가 드라이브를 하다보니 한국의 7번국도가 생각이 났다. 몇년 전 부산에서 양양으로 7번국도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긴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드라이브가 너무너무 멋있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마음껏 이 장소와 시간을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6DSUJPeo8?si=xDH3y9YJ6tL_gZjn>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19 11:08:39지난해 3월 튀르키예 데린제항에 지진 피해 이재민 지원용 특수차량을 실은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운반선 '글로비스 센추리호'가 당도했다. 이동식 세탁차와 하루 300인분까지 만들 수 있는 급식차들은 곧바로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에 투입됐다. 최대 규모 7.8의 강진으로, 사상자 약 20만명(사망자 약 6만명), 이재민 2300만명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은 아비규환이었다. 현대글로비스는 지진 발생 직후, 구호품 무상 구호 시스템을 가동했다. 지진 피해 이재민 지원은 신속성이 관건이다. 군사작전을 전개하듯 일사분란하게 현대글로비스의 육·해상 물류 시스템이 총가동됐다. 인천 물류창고로 몰려든 구호품 약 200t을 부산항으로 보내는 임무도 맡았다. 의류, 위생용품 등 각종 구호품들은 부산항을 통해 튀르키예 최대항 메르신까지 보내졌다. 글로벌 물류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린 긴급 구호활동이라는 호평이 잇따랐다. ■재난에 '무상 운송 시스템' 가동 현대글로비스가 구호품 운송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지난해 4월에는 강원도 강릉 및 , 경북 지역에 발생한 산불 피해 이재민 지원을 위해 긴급 구호품을 무상운송했다. 산불 피해 발생 당시 강릉지역에는 약 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임시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앞서 2022년 3월 강원도와 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총 15차례에 걸쳐 긴급 구호품 5만2000여 점, 총 120여t 가량을 운송했다. 같은 해 9월에는 태풍 힌남노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경북 포항 등의 이재민들에게 생필품과 응급 구호 키트, 대피소 칸막이 등을 무상으로 전달했다. 당시 힌남노로 인해 포항지역에는 도로 및 하천 피해 668건, 주택파손 및 침수 1만1900건, 차량침수 1500건 등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상태였다. 2021년에는 경남, 경북, 광주, 전남, 충남 등 전국 수해 피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약 200t 분량의 긴급 구호물품 약 1만2000개를 전달했다. 구호품을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전용 차량을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던 2020년 2월부터는 전국 각지에 마스크, 손소독제, 물티슈 등으로 이뤄진 위생용품 키트와 즉석밥, 생수 등의 식료품 키트, 종합비타민, 피로회복제 등을 무상으로 운송했다. 당시 구호품은 도움이 필요한 자가격리자 및 의료진들에게 2~3월 2개월 간 200여회에 걸쳐 전달됐다. 세계적 권위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글로벌 최고 등급을 연이어 수상하고 있는 배경엔 재난구호지원시스템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2021년 국내 물류기업 중 최초로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DJSI 월드를 획득한 이래,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편입되는 성과를 얻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의 DJSI 월드 지수 편입은 지속가능경영 측면에서 글로벌 상위 10%에 해당한다는 뜻"이라며 "주력사업인 물류업에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사회 곳곳에서 맞춤형 사회 공헌 및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송보국' 예비 해운인 양성 해운업 예비인재 양성사업 또한 물류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살린 활동 중 하나다. 현대글로비스는 해운업 인재난 타개를 위해 지난해 산학 장학제도를 신설했다. 수송보국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운물류 미래 인재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운 인력의 산실인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에서 매년 12명을 선발, 등록금과 함께 연 2회 학습지원금을 별도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023년 한국선원통계연보 기준에 따르면 60세 이상인 선원의 비율이 전체의 59.6%로 나타나 해운현장의 고령화,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글로비스는 장학제도를 통해 국내 해양 전문 교육기관의 인재양성에 도움이 되고, 해운업계에 우수인력 유입 활성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해당 장학제도의 효과가 입증되면 해외 해양계 대학까지 대상을 확대하는 등 우수인력 유입을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안전한 물류환경을 위한 조성 사업 역시 병행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 운반트럭 운전원들이 하루에도 여러차례 안전모를 쓰고 벗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안전모의 무게감 등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의견을 청취했다. 2022년 초 그 즉시, 경량 안전모 개발에 착수,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안전인증을 받았다. 이렇게 배포된 안전모는 약 1500개다. 새로 지급한 안전모의 무게는 250g다. 기존의 산업용 안전모 대비 부피는 16%, 무게는 14% 줄여 착용시 불편함을 줄였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경량 안전모를 통해 화물차 운전원들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는 향후 해당 안전모를 타 분야의 화물차 운전원들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물류 현장에서의 각종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작업자들에게 졸음방지 패치, 차량용 방향제, 차량 사이드 미러 방수필름 등 안전키트와 휴대용 소화기 등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지속가능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운전키트의 사용 만족도는 2022년 대비 0.3% 증가한 93.0%로 조사됐다.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응답은 2022년 대비 0.2% 증가한 93.2%가 긍정적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부터는 화물차 방문 빈도가 높은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휴식용 테이블, 정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졸음쉼터 개선사업도 펼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2024-08-26 18:26:29[파이낸셜뉴스] CJ대한통운이 튀르키예 초중량물 운송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6일 CJ대한통운에 따르면 중동지역 자회사 CJ ICM이 튀르키예에서 총 1만t의 중량물을 운송하는 프로젝트 물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프로젝트 물류란 사회기반시설 설치, 생산시설물 건설 등 대규모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공사 기간에 맞춰 운송하는 물류를 말한다. CJ ICM은 지난해 4월부터 약 1년 6개월에 걸쳐 튀르키예 남부 메르신 항구부터 약 57㎞ 떨어진 아다나 지역 석유화학공장 건설현장까지 130여개의 대규모 기자재를 운송했다. 최대 무게 670t, 길이 51.3m, 높이 14.2m에 달하는 초대형 화물을 포함, 운송 화물의 총 무게는 1만t에 달한다. CJ ICM은 항공기, 선박 등 초대형 화물을 육상으로 운송할 때 사용하는 특수장비인 자체 추진 모듈 트레일러(SPMT)를 현장에 투입했다. 지형고도변화에 민감한 만큼 속도는 시속 10㎞ 안팎을 유지해 운송했다. CJ대한통운은 화물의 하중을 분산하는 CJ ICM의 '엔지니어링(Engineering)' 기술력이 이번 프로젝트 물류의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화물의 무게가 수백t에 이르기 때문에 하중이 오차 범위를 벗어나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차량 전복, 화물 파손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CJ ICM은 트레일러 위 화물의 하중 산출, 고박 위치 선정, 특수 받침목 제작 등의 작업을 병행함으로써 중량물 운송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CJ ICM은 중량물 프로젝트 물류 역량을 바탕으로 대규모 인프라 구축 중심의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계획이다. 강병구 CJ대한통운 글로벌사업부문 대표는 "CJ ICM은 초대형 기자재, 고대유적 운송 등 다양한 프로젝트 물류 수행 경험을 토대로 중동·중앙아시아 중량물 운송 분야 1위 기업의 명성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며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독보적인 종합물류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한국의 수준 높은 물류 위상을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2023-09-26 09:08:21현대글로비스는 물류업의 특성과 연계한 활동을 기반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따스한 손길을 전달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확대하고 있다.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구호품을, 산불로 터전을 잃은 이재민을 위해 천막을 무상 운송하는 등 재난상황에 신속히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시스템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올해 초 대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에 지원에도 동참했다. ■집중호우 피해지역에 구호품 무상운송 7월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2013년 태풍과 수해, 화재 등 각종 재난 재해 상황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구호품 운송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피해 발생과 동시에 신속하게 해당 지역에 무상운송 활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에는 여름철 집중호우 피해가 큰 지역의 복구를 돕기 위해 긴급 구호품 운송을 돕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긴급 구호품이 이재민 발생 지역으로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무상 운송하고 있다. 현재까지 호우 피해가 큰 경남, 경북, 광주, 전남, 전북, 충남, 충북 지역 이재민에게 200여t 분량의 긴급 구호물품 약 1만2000개 전달을 완료했고 앞으로도 피해 상황을 살피며 필요한 곳에 구호품 전달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수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경북 포항 등 피해지역 지원에 나선 바 있다. 태풍 피해 발생 첫날부터 신속하게 생필품과 응급 구호 키트, 대피소 칸막이 운송을 시작했다. 아울러 태풍 구호품의 원활한 운송을 위해 전용 차량(윙바디 1t 트럭)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산불로 터전 잃은 이재민 천막 전달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4월 강원도 강릉시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긴급 구호품을 무상으로 운송했다. 특히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곳이 없어진 주민들이 생활할 수 있는 장소 마련을 돕기 위해 대피소 칸막이와 천막 등을 전달했다. 산불 피해 발생 당시 강릉지역에는 약 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임시대피소에 머무르고 있어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 외에도 재난 발생에 대비해 재해구호물류센터에 보관된 생필품·응급 구호 키트 등을 전달했고, 추가적인 구호품이 필요할 때마다 즉시 무상 운송을 실시했다. 지난해 3월 강원도와 경북 지역에서 대규모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에도 총 15차례에 걸쳐 긴급 구호품 5만2000여 점, 총 120여t 가량을 운송했다. 구호품은 임시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이재민을 위한 생필품과 응급구호키트 등이었다. ■튀르키예 대지진 일상회복 도와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이재민 구호와 복구활동 지원에도 참여했다. 특히 세탁차·급식차 등 특수 기능을 가진 차량을 자동차 운반선(PCTC)에 실어 날랐다. 대한적십자사에 기탁된 해당 차량들에 대해 무상 자동차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대지진으로 당시 약 2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전기, 물,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세탁기와 급식차 등 생활에 필요한 특수 기능을 갖춘 차량이 큰 도움이 됐다. 현대글로비스가 실어나른 세탁차에는 5t 화물차에 상업용 세탁기(32㎏) 2대, 상업용 건조기(34㎏) 2대가 설치됐고, 급식차는 5t 화물차에 내부 취사 기구와 보일러 등을 갖춰 한 번에 3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 또 현대글로비스는 '포워더'로서 확보하고 있던 다량의 40HQ(폭2.35m, 높이 2.7m, 길이 12.03m) 컨테이너를 제공해 200t 규모의 구호물품을 운송했다. 물류업에서 포워딩 업무는 화물운송 전문 업체가 화물의 출발부터 도착까지 운송 과정 전반을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당시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이 마련한 물류창고에 구호물품이 지속적으로 적재되면서 튀르키에로 신속한 운송이 필요했다. 이에 현대글로비스는 구호물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소유하고 있는 부산 소재 컨테이너 화물 작업장(CFS)으로 옮긴 뒤 선적 시점에 맞춰 부산에서 튀르키예 메르신까지 운송해 빠른 물품 전달에 일조했다. yon@fnnews.com 홍요은 기자
2023-07-31 18:03:54[파이낸셜뉴스] HMM이 최근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튀르키예를 위한 구호품 운송·컨테이너 무상 지원에 나섰다. 6일 업계에 따르면 HMM은 튀르키예에 국내 구호물품 해상운송과 주거용 컨테이너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HMM은 지난 3일 부산항에서 튀르키예 메르신항으로 향하는 선박에 5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분)의 구호물품 운송을 시작했다. 오는 17일에도 약 20TEU의 구호물품을 운송하고 이후에도 튀르키예 대사관과 협의 등을 통해 추가 운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주거용 컨테이너 150개도 확보해 무상으로 지원한다. 이번에 긴급 투입되는 주거용 컨테이너는 임시 숙소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돼 현지 이재민들에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아울러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당시 숙박시설로 사용됐던 이동식 컨테이너 운송도 지원한다. 카타르는 해당 컨테이너에 대한 기부 의사를 밝혔으며 HMM은 컨테이너 570개를 다목적선(MPV)을 이용해 카타르 하마드에서 튀르키예 이스켄데룬까지 운송한다. 현재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이 마련한 물류창고에는 텐트, 담요, 구호식량 등의 구호물품이 모이고 있지만 튀르키예 현지로 이송할 환경이 여의치 않아 전달이 지연되고 있다. 이에 HMM은 보유 선박 등을 활용해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다. HMM 관계자는 "튀르키예 지진 피해의 빠른 복구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해운사의 전문성을 활용해 인도적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yon@fnnews.com 홍요은 기자
2023-03-06 08:56:14[파이낸셜뉴스] Bu zor günleri birlikte aşacağız(힘든 날들을 함께 이겨내겠습니다). LG전자 노사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힘을 합쳤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중남부 메르신 및 남동부 타르수스 등 튀르키예 이재민 임시 거주지 8곳에 세탁기와 건조기 120여대를 설치하고 무료 세탁시설을 운영한다. LG전자 서비스 엔지니어가 무료 세탁시설에 상주하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 LG전자에 따르면 이달 말부터 피해가 큰 5개 도시를 대상으로 이동 서비스센터도 운영한다. 이동 서비스 차량이 매일 5개 도시를 순회하며 고장난 가전제품을 인근 서비스센터로 수거해 수리한 후 해당 고객에게 배송해준다. 이동 서비스 차량에는 이재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차원에서 '힘든 날들을 함께 이겨내겠습니다'라는 뜻의 터키어인 'Bu zor günleri birlikte aşacağız'라는 메시지를 부착한다. LG전자 노동조합도 조합원의 자발적 기부로 조성한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기금을 활용해 피해 지역의 학교 등 기반시설 재건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한다. USR은 투명하고 윤리적 노조활동을 기반으로 조합원 권익신장은 물론이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경제, 사회, 환경 등 전반에 걸친 책임을 의미한다. LG전자 임직원들의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임원들은 '임원 사회공헌기금'을 통해, 직원들은 사무직 구성원의 자발적 대의기구인 주니어보드를 중심으로 이불, 침낭, 의류, 청소용품, 마스크, 기저귀 등 이재민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생필품과 발전기, 손전등 등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앞서 LG가 지진 피해복구 및 이재민 지원 목적으로 대한적십자사에 구호 성금 100만달러를 지원한 바 있으며, LG전자 튀르키예법인 또한 비영리기구 구호단체 아나톨리아민중평화토대(AHBAP)를 통해 별도의 지진 피해자 구호 기금을 전달했다. LG전자 튀르키예법인 관계자는 "선제적이고 진정성 있는 지원활동이 현지 고객 및 거래선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며 "전 직원이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2023-02-24 11: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