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국의 한 해변마을에서 바닷물이 마을을 덮치는 것을 막으려고 6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모래언덕을 쌓았으나 겨울 폭풍으로 단 3일만에 모래를 모두 잃은 사연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56㎞ 떨어진 매사추세츠주의 부유한 해변마을인 솔즈베리의 집주인들은 잇따른 폭풍과 폭우로 침식된 해변에 모래 1만5000t 투입해 해안 보호용 모래언덕을 건설했다. 일 년 내내 강력한 제트 기류의 영향을 받는 솔즈베리는 기상 이변의 영향을 점점 더 크게 받으면서 최근 몇 달간 해수면 상승, 강풍, 폭풍우로 어려움을 겪었다. 바닷물이 치고 들어와 해변 주택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서는 지난 몇 주일 동안에 걸쳐 해안보호용 사구와 방파제 공사가 진행됐으며, 50만달러(약 6억6000만원)가 투입됐다. 작업은 지난 10일 폭풍우가 마을을 휩쓸기 3일 전에 완성됐지만 강력한 강풍과 폭우에 72시간도 되지 않아 바다로 휩쓸려 나갔다. 언덕이 마을을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폭풍이 몰아닥치자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모래언덕을 추진했던 '변화를 위한 솔즈베리 해변 시민' 모임은 페이스북을 통해 "값비싼 보호 장치가 며칠 만에 파괴됐지만 희생적인 모래 언덕은 제 역할을 다했다"며 "일부 주택과 사유지 등 재산이 겨울 폭풍과 홍수에 잡아먹히는 것을 방지했다"고 밝혔다. 자구책이 수포로 돌아가자 마을 주민들은 주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지역 뉴스 매체인 폭스59는 "주 상원이 모래 보충을 위해 주정부 예산 150만달러(약 20억원)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침식된 해안에 모래를 다시 보충하는 공사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철제 격벽과 같은 인공구조물은 침식을 촉진하기 때문에 보통 허용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모래언덕이 소모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계속해서 모래를 쌓는 일은 낭비라며 결국 바닷물에 씻겨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4-03-15 07:25:59CJ프레시웨이가 휴게소, 워터파크 등 푸드코트 맞춤형 신메뉴를 개발했다.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제공해 스포츠 시설 외식사업 부문 매출 신장을 꾀하는 모양새다. 13일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골프장, 휴게소, 테마파크 등 푸드서비스 사업장 곳곳에서 계절별, 공간별 이색 먹거리를 지속 개발해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무더위 속 입맛을 돋우는 보양식과 시원한 별미 등 공간의 고유한 콘셉트를 살린 메뉴로 방문객에게 추억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7~8월 '역대급' 더위가 예고된 가운데 CJ프레시웨이가 전국 주요 골프장과 휴게소, 워터파크 식음시설에서 여름 신메뉴를 순차 출시한다. 시설 특성을 고려한 맞춤 메뉴다. 여름철 피서객의 입맛을 사로잡겠다는 구상이다. 골프장 레스토랑의 주제는 원기 회복이다. △보양 장어 무침 △명품 갈비 금계탕 △돌문어 해초 비빔면 등 고가의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보양식 메뉴 3종을 구성했다. 보양 장어 무침 특징은 쫄깃한 식감이다. 반건조 장어와 아삭한 채소의 식감이 매콤한 소스와 어울린다는 설명이다.휴게소, 공항 등에 자리한 푸드코트용 메뉴의 콘셉트는 '시원한 여름의 맛'이다. △얼음골 칡 물·비빔냉면 △얼음골 물·비빔막국수 △냉·비빔 닭 메밀면 △모둠쟁반 냉모밀 등 면요리를 준비했다. 행담도휴게소, 김포공항 푸드코트에서 판매 예정이다.국내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 '오션월드' 식음시설에서는 신메뉴 5종을 판매한다.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감자고로케를 층층이 쌓아 올린 △피라미드 카츠와 가라아게 위에 시리얼 토핑을 수북이 올린 △모래언덕 치킨 등은 이집트 사막을 형상화한 메뉴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2023-06-13 18:22:18수년 전 일본 도쿄 출장에서 만난 재일동포 사업가는 혼슈 남서부 돗토리현 출신이었다. 돗토리 일대는 지리상 우리 동해와 접한 곳인데, 그에 따르면 이 지역에 가볼만한 한적한 소도시가 한둘이 아니었다. 일본 요괴만화 거장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캐릭터가 길거리에 나뒹군다는 사카이미나토, 인기만화 '명탐정 코난'으로 유명하긴 하나 버스 한대 안 다니는 '코난마을(유라)' 같은 곳이 끌렸다. 바다를 바라보는 광활한 사막의 존재도 머릿속에 남았다. 이 돗토리현을 겨울여행지로 골랐던 건 인천~요나고행 저렴한 항공권을 우연히 발견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열한살 아들과 갖는 오붓한 4박5일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나는 시게루, 코난 만화를 탐독하며 속성 공부를 했다. 돗토리 사구(砂丘)에 대한 경험자들 칭송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하라 사막도 가봤다는 어떤 이가 "감히 사하라를 뛰어넘는 곳"이라고 극찬한 글을 보고선 남편의 핀잔을 뒤로하고 아들과 두 손 들어 만세를 불렀다. 대망의 돗토리 사구 일정은 귀국 전 마지막날에 배정했다. 그전 요괴마을, 코난마을을 돌며 나는 틈날 때마다 아들에게 진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숙제를 빨리하는 아이가 되어야지" 등.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돗토리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 사구회관에서 내린 뒤 신발을 장화로 갈아신고 드디어 도착. 이제 곧 세상 묵은 때를 한방에 날릴 거대한 사막이 눈앞에 펼쳐지리라. 하지만 기대감이 무너진 건 금방이었다. '광활함'이 생각보다 부족했다. 저 멀리 굉장한 높이의 모래언덕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진짜는 저 언덕 꼭대기에 있을 거야.' 아들은 완만한 통행로를 제쳐두고 이미 가파른 경사길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뒤따르며 나는 외쳤다. "끝까지 올라가. 안 위험해. 전부 모래야. 미끄러져도 안 다쳐." 한참을 올랐을까. 숨이 찼다. 뒤를 봤다. 그제서야 절벽 같은 모래산 한복판에 내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미 정상 부근인 아들은 "포기란 없다"를 외치며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문제는 나였다. 다리는 후들거렸고 갑작스러운 후회로 갈길을 잃었다. 꼭대기 아들이 목청껏 외쳤다. "엄마, 힘내. 포기하지말고." 나야 진실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으나 내려가는 게 더 무서워 달리 방법이 없는 걸 뭐. 천신만고 끝에 밟은 정상에서 발 아래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봤다.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대단한 반전은 아니었고, 그저 익숙한 감동이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오른 고난의 모래언덕을 다시 봤다. 저 길 위에서 웃는 사람이 진짜 승자였구나. 아들은 어느 새 그 길을 새로 도전하겠다고 엉덩이로 언덕을 내려가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가 스승이다. 다시 오르는 아들을 향해 나는 힘차게 응원을 했다. jins@fnnews.com 최진숙 국제부장
2018-02-19 17:23:03드넓은 해안 사구에 세워진 중국 하이난섬 선저우 페닌슐라GC. 이 골프장은 파이낸셜뉴스와 골프여행 전문지 '골프트래블'에 의해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에 선정된 곳이다. 바람으로 운반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을 '사구'라 한다. 그 사구가 랜드마크가 된 골프장이 있다. 그만큼 자연친화적이라는 얘기다. 파이낸셜뉴스와 월간 골프트래블이 선정한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 4위에 오른 중국 하이난섬 선저우 페닌슐라GC다. 이 골프장에 들어서면 자생 관목이 듬성듬성한 사이로 수줍은 여인처럼 속살을 드러낸 해안사구, 즉 모래언덕이 먼저 반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래언덕이 정지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모래가 바람에 의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곳에 '거장' 톰 와이즈코프(미국)가 코스를 앉혔다. 이 골프장은 금융.부동산업 국영 기업으로 중국 랭킹 5위인 중신그룹 소유다. 그런데 그 탄생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천아오예 회장의 '중국 골프장 중에서 세계 100대 코스가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중국 내에는 세계 100대 코스가 없는 반면 일본에는 3개, 한국에도 1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천 회장은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이 넓은 중국에 세계 100대 코스를 만들 땅이 없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많은 직원들이 급하게 수소문한 끝에 선저우 반도라는 땅을 찾아냈다. 환상적인 해안 경치에다 섬처럼 떨어져 있어 골프 리조트로 만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최적지를 찾게 된 천 회장은 "자금에 신경 쓰지 말고 세계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코스 디자이너인 와이즈코프를 불러들여 골프장 공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1년 골프장은 드디어 완공됐다. 그리고 천 회장은 세계 100대 코스 패널들을 선저우 반도로 초청했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패널들은 하나같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자연친화적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36홀 링크스코스를 만들기에는 모래가 턱없이 부족했는데 돌을 갈아서 모래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첫째로 꼽는 조건이 친자연적인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천 회장은 진노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다 새로운 골프장을 다시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선저우 반도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샨킨베이라는 골프장이 만들어졌다. 천 회장은 다시 세계 100대 코스 패널들을 불러 심사를 받았다. 패널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샨킨베이 골프코스는 그렇게 해서 중국 최초로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골프장은 이번 '아시아 100대 골프코스'에서도 1위에 선정된 곳이다. 샨킨베이GC와 선저우 페닌슐라GC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선을 보였다. 현재 이 두 골프장은 투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다. 샨킨베이는 천 회장의 방침에 따라 철저한 회원 위주로 운영된다. 대신 선저우 페닌슐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돌을 갈아 만든 모래의 사용여부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문가의 평가 기준일 뿐 주말골퍼들에게는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을 사용하므로써 코스의 전망이 전체적으로 더 좋아졌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저우 페닌슐라GC는 아름다운 골프 코스다. 동코스 18홀, 서코스 18홀로 나뉘는데 모든 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그림이다. 특히 바닷가에 접해있는 코스는 백사장이 그대로 벙커 노릇을 한다. 코스는 전체적으로 마운드가 심하지 않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리조트형 골프장답게 난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60여명의 캐디가 있어 미리 신청만 하면 된다. 체류시 숙소로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인근 쉐라톤 호텔과 포 포인트 호텔을 이용하면 된다. 이 두 호텔과 골프장 간에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골퍼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저녁 무렵 호텔과 골프코스 백사장을 걷는 것도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다. 부근 완닝 시내에 들러 토속 음식과 열대 과일 등을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소 무덥게 느껴지는 링크스코스 라운드가 싫어지면 인근 고산지대에 위치한 칠선령CC나 백석령CC에서 라운드하는 것도 강추된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6-12-07 17:29:44바람으로 운반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을 '사구'라 한다. 그 사구가 랜드마크가 된 골프장이 있다. 그만큼 자연친화적이라는 얘기다. 파이낸셜뉴스, 월간 골프트래블 코리아와 중국에 의해 아시아 100대코스 4위에 선정된 중국 하이난섬 선저우 반도에 위치한 선저우 페닌슐라GC다. 이 골프장에 들어서면 자생 관목이 듬성듬성한 사이로 수줍은 여인처럼 속살을 드러낸 해안사구, 즉 모래언덕이 먼저 반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모래언덕이 정지해 있는 게 아니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많은 모래가 바람에 의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곳에 '거장' 톰 와이즈코프(미국)가 코스를 앉힌 것이다. 이 골프장은 금융, 부동산업 국영 기업으로 중국 랭킹 5위인 중신그룹 소유다. 그런데 그 탄생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천 아오예 회장의 '중국 골프장 중에서 세계 100대 코스가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중국내에는 세계 100대 코스가 없는 반면 일본에는 3개, 한국에도 1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천회장은 무척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이 넒은 중국에 세계 100대 코스 만들 땅이 없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많은 직원들이 급하게 수소문한 끝에 선저우반도라는 땅을 찾아냈다. 환상적인 해안 경치에다 섬처럼 떨어져 있어 골프 리조트로 만들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최적지를 찾게 된 천회장은 "자금에 신경 쓰지 말고 세계 최고의 골프장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코스 디자니어인 와이즈코프를 불러들여 골프장 공사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1년에 골프장은 완공되었다. 그리고 천회장은 세계 100대 코스 패널들을 선저우 반도로 초청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패널들은 하나같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자연진화적이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36홀 링크스코스를 만들기에는 모래가 턱없이 부족했는데 돌을 갈아서 모래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첫째로 꼽는 조건이 친자연적인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천회장은 진노했다. 그리고 다른 곳에다 새로운 골프장을 다시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선저우 반도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에 샨킨베이라는 골프장이 만들어졌다. 천회장은 다시 세계 100대코스 패널들을 불러 심사를 받았다. 패널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샨킨베이 골프코스는 그렇게 해서 중국 최초로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골프장은 금번 파이낸셜뉴스와 골프트래블에 의해 아시아 100대 코스 1위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샨킨베이GC와 선저우 페닌슐라GC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선을 보였다. 현재 이 두 골프장은 투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다. 샨킨베이는 천회장의 방침에 따라 철저한 회원위주로 운영된다. 대신 선저우 페닌슐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돌을 갈아 만든 모래의 사용여부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문가의 평가 기준일 뿐 주말골퍼들에게는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을 사용하므로써 코스의 전망이 전체적으로 더 좋아졌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선저우 페닌슐라GC는 아름다운 골프 코스다. 동코스 18홀, 서코스 18홀로 나뉘는데 모든 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그림이다. 특히 바닷가에 접해있는 코스는 백사장이 그대로 왕 벙커 노릇을 한다. 코스는 전체적으로 마운드가 심하지 않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살렸음에도 불구하고 리조트형 골프장 답게 난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60여명의 캐디가 있어 미리 신청만 하면 된다. 체류시 숙소로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자랑하는 인근 쉐라톤 호텔과 포 포인트 호텔을 이용하면 된다. 이 두 호텔과 골프장간에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골퍼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안성마춤이다. 저녁 무렵 호텔과 골프코스 백사장을 걷는 것도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다. 부근 완닝시내에 들러 토속 음식과 열대 과일 등을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소 무덥게 느껴지는 링크스코스 라운드가 싫어지면 인근 고산지대에 위치한 칠선령CC나 백석령CC에서 라운드하는 것도 강추된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16-12-07 14:49:04[파이낸셜뉴스] 전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지대에 이례적인 폭우로 반세기 만에 홍수가 발생했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모로코 남동부 지역에 이틀간 연평균 강수량을 웃도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홍수가 일어났다. 모로코 기상청에 따르면 수도 라바트에서 남쪽으로 약 450㎞ 떨어진 알제리 국경 인근의 타구나이트 마을에서는 24시간 동안 100㎜ 이상의 강우량이 관측됐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영상을 보면 당시 폭우로 소도시 자고라와 타타 사아에 있는 유명한 일시적 습지 이리키가 호수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했다. 이에 대해 모로코 기상청 관리인 후사인 유아베브는 "이렇게 많은 비가 그렇게 짧은 시간과 공간에 집중된 것은 30∼50년 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상학자들이 온대 폭풍으로 부르는 그런 폭우는 앞으로 몇 달, 몇 년간 이 지역의 기상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며 "공기 중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수분 방출이 늘어나고 더 많은 폭풍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모로코에서는 지난달 홍수로 18명이 사망했다. 9월 중 지속된 강우로 남동부 지역 댐의 저수량은 기록적인 속도로 불어났다. 전체 면적이 940만㎢로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막인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북부와 중부, 서부의 12개 나라에 걸쳐 있다. 앞서 지구 온난화와 함께 해당 지역에서는 지난 몇 년간 극도의 가뭄 등 혹독한 기상 현상이 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향후에도 사하라 사막에 이번과 유사한 폭풍이 닥칠 수 있다고 예측해왔다. 셀레스테 사울로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최근 기자들에게 전 세계의 물순환의 변화가 점점 더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온난화로 인해 물순환 사이클이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더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우리는 물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그런 문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전체 면적이 940만㎢로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막인 사하라 사막은 아프리카 북부와 중부, 서부의 12개 나라에 걸쳐 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10-13 09:13:54[파이낸셜뉴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바닥에 깔고 앉은 방석을 사막의 모래라고 생각해 보세요"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포지티브호텔 클럽하우스. 햇볕이 가득 내리쬐는 3층 공간에 뷰티 브랜드 바이레도(BYREDO)의 신제품 '데저트 던 오 드 퍼퓸'의 향과 함께 상상 속 사막 공간이 펼쳐졌다. 20여분간 눈을 감고 깊은 호흡 속 아침 햇살의 색감과 모래 언덕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코에 맴도는 향에서 오롯이 느껴지는 듯했다. 푸치코리아(Puig Korea)는 이날 오전 포지티브호텔 클럽하우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뷰티 브랜드 바이레도의 한국 시장 직진출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푸치는 1914년 설립된 스페인 패션 뷰티 기업으로, 향수, 메이크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푸치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바이레도는 2022년 5월 푸치에 인수된 이후 올해 9월부터 푸치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직진출했다. 데저트 던 오 드 퍼퓸은 바이레도가 한국 시장에 직진출한 후 출시된 첫 신제품이다.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향을 만드는 바이레도는 국내 대표적인 니치향수로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스웨덴에서 처음 향수 브랜드로 출발한 바이레도는 2018년부터 2022년 사이 '토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하며 보디로션, 핸드로션, 헤어퍼퓸을 비롯해 홈 프래그런스, 아이웨어 등 적극적으로 상품군을 확장했다.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 미국 힙합 뮤지션 '트래비스 스캇' 등과의 협업을 통한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는 등 적극적으로 브랜드 이미지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푸치는 국내 유통망을 확대하고, 프로모션도 강화하는 등 본격적인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르노 디비지아 지사장은 "푸치코리아는 첫 한국 직진출 브랜드인 바이레도 외에도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펜할리곤스(Penhaligon's), 라티잔 퍼퓨머(L'Artisan Parfumeur), 닥터 바바라 스텀(Dr. Barbara Sturm)과 같은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를 운영하며 한국 시장에서의 비즈니스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이레도가 한국 시장 직진출에 나선 건 국내 향수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 규모는 2015년 5060억원에서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2021년 7606억원으로 확대됐다. 내년에는 1조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바이레도도 한국의 향수 시장, 특히 니치향수 시장 성장세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르노 디비지아 지사장은 "10년 전만 해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뷰티 시장에서 향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5%도 채 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8~10%까지 성장할 만큼 향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향수 시장이 한창 덩치를 키우고 있었던 2022년을 전후해 국내 패션업체들이 잇달아 향수 시장에 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팬데믹 기간에도 향수 시장 성장성을 확인한 국내기업들은 니치 향수 편집숍을 별도로 내거나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선보이는 등 공격적으로 관련 사업 확장에 나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2022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딥디크' 플래그십 매장을 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전문기업 한섬도 2022년 프랑스 니치향수 편집숍 리퀴드퍼퓸바를 선보였다. 서울 청담에 플래그십스토어를 낸 데 이어 전국 주요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르헨티나 니치향수 브랜드 푸에기아1833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스몰럭셔리 트렌드가 지속되며 니치향수 시장은 급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로, 계속해서 새로운 브랜드 발굴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2024-09-24 15:22:41<25>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누쿠스는 부하라에서 북서쪽으로 550km가량 떨어진 국경 전 마지막 도시이다. 누쿠스의 카우치호스트를 찾아보니 '압둑하미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의 게스트 후기를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있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났던 자전거여행자 이치도 그의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믿을만한 사람이다싶어 카우치요청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누쿠스에 가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국경넘을 준비를 해야겠다. 중간에 히바라는 도시도 있었지만 웬지 비슷한 건물들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 싶어 바로 누쿠스를 향했다. 여덟시간 넘는 긴 주행 끝에 어둑어둑해진 저녁 늦게 압둑네 집에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의 피곤은 압둑과 가족들의 환대에 금새 기운이 회복된다. 압둑은 임신한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들어가자마자 차와 빵과 달달구리들을 주셨는데 조금 전까지 힘들어 축축 쳐지던 우리는 기운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월에 수박이라니.. 호박같이 생겼는데 달고 맛있네 12월에 수박을 대접받았다. 사실 집에 들어오며 입구에 까맣고 둥근 공같은 것이 있어 설마 수박이랴 싶었는데, 길가에서 팔던 호박같은 것과 이것들이 다 진짜 수박이었다. 우즈벡은 한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는 나라였다. 다만 씨가 무지무지 커서 생소했는데 아마도 늦게 수확해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품종이지 않을까 싶었다. 암튼 겨울에 비싼 하우스수박도 아닌 그냥 수박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맛도 매우 달고 좋았다. 그의 집은 넓은 1층 주택이었는데 집안에 주차장도 있고 우리에게 쓰라고 안내해준 방은 퀸 매트리스가 3개는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넓은 커다란 방이었다.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압둑이 마침 내일 근무가 없다며 과거에 아랄해였던 무이낙(Mo'ynoq)에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었다. 바로 엊그제 오토에게 이야기를 듣고 꼭 가보고싶었던 아랄해를, 그것도 현지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갈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곳에서 왕복 6시간거리인데 너희차는 비싼 디젤차이니 자기차로 가자고 한다. 압둑의 진심어린 호의에 감사하며 메탄값은 우리가 내겠다고 했다. 압둑네 집은 조용하고 따뜻해서 매우 편안하게 잘 잤다.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함께 먹는다. 압둑은 잠자리가 편안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주고 아침부터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다. 정말 이슬람의 손님접대는 최고인것 같다. 올때 사온 두루마리 휴지를 어머님께 드리며 한국 사람은 남의집에 갈때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뜻밖에도 압둑과 어머님이 이미 알고 있다며 웃는다. 어머니께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드라마등을 통해 본적 있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염소젓으로 만든 밀크티, 갓구운 난.. 황송한 아침 식사 뒷마당의 염소젖으로 만든 밀크티가 참 맛있다. 갓구운 난을, 녹인 버터에 찍어 든든히 아침을 먹었다. 보통 우리는 초대를 받으면 떠날때 선물을 드리고 가는데 너무도 잘해주셔서 뭐라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 차에서 선물을 긁어모아왔다. 아버님과 압둑에게는 핫팩 등을 드리고 어머님과 압둑의 아내에게는 마스크팩, 한국전통문양 컵받침, 내가 뜬 레이스 받침 등을 드렸다. 베푸신 은혜에 비해 너무 작은 선물이었지만 즐겁게 받아주신다. 추위에 대비해 목도리까지 두르고 압둑의 차를 타고 무이낙으로 출발했다. 신기하게도 압둑의 차가 가스도 휘발유도 주유가 가능하다고 해서 메탄의 줄이 너무 길어 휘발유를 넣기로 했다. 그래도 경유보다 많이 싸다. 가는 길에 건초를 트럭본체 높이만큼 높게 쌓은 트럭도 지나가고 낙타떼도 만났다. 세시간을 쉼없이 달려 드디어 아랄해에 도착했다. 지평선 끝까지 누런 모래사막만 보이는데 여기가 아랄해라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앞쪽에 붉은 갈색으로 완전히 녹슬어버린 크고 작은 배들이 모래위에 있었다. 한때는 면적이 세계 4위의 호수였고 수심이 100m가 넘었다는데 면화를 재배하기위해 상류의 강물을 많이 사용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속도로 환경이 파괴되고 바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배에 가까이 가서 보니 더 놀랍고 황망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녹슨 어선. 절대로 수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녹이 슬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처참한 모습이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와 닮아있었다. 이 배들은 이제 다시는 물에 뜨지 못할 것이고 이 메마른 땅은 다시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몇십년 전만해도 깊은 바다속이었던 버석버석한 모래를 밟으며 마음이 마냥 먹먹해져갔다.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 한때 바다였던 사막을 밟는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 더 늦으면 여행할 수 없는 환경이 되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눈 앞의 현실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 존재인가 다시 한번 반성했다. 언덕위에 아랄해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둔 장소가 있는데 1989년의 아랄해와 2008년의 아랄해 위성사진을 눈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압둑은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원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압둑은 정말 신실한 무슬림이다. 하루에 5번 기도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자주 사라져 기도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압둑의 기도 후 우리는 무이낙의 작은 식당에 갔다. 압둑의 도움으로 만두와 샤슬릭을 주문해서 점심을 잘 해결했다. 젓가락질 이야기가 나와서 탄이 긴 샤슬릭 쇠꼬챙이 두개로 생양파조각을 집어 먹으니 압둑이 신기해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압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우치호스트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영어를 사용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언젠가 외국여행을 하고싶어서 외국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가 의외였지만 좋은 이유 중 하나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인사에 웃으며 받아주는 그들 다음날 탄은 압둑의 아버지를 따라 수산시장에 갔다. 근처 강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생선보기가 거의 힘들었는데 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상인들도 반갑게 맞아주고 유머스레 인사를 건넨다. 영어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니 탄은 그냥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데 다들 웃으며 받아주셨다. 여러분들이 모여들어 우리가 유튜버인 것을 압둑 아버님께 들었는지 채널이름을 물어보는데 "까브리랑" 이라고 말하니 이상하게 따라부르신다. 아.. 채널이름을 영어로 할걸 그랬나, 외국분들이 물어볼때마다 항상 곤란한 마음이 든다. 핸드폰을 내미신 분이 있어 한글자판부터 깔고 한글로 까브리랑을 입력해서 드디어 채널을 찾아드리니 좋아하시며 바로 구독을 누르셨다. 구독자 추가 감사합니다! 하핫. 탄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유튜브 채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압둑 아버님은 커다란 생선을 사셨다. 그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서 생선을 요리해달라고 맡겼다. 생선의 무게를 달고 돈을 내면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집에서는 그렇게 큰 생선을 요리할 도구가 없는 걸까? 이날 저녁 튀긴 생선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다. 오랜만에 살집이 두툼한 흰살 생선을 먹으니 마냥 좋았다. 식사 후 태블릿으로 한국음식 사진을 보여드리며 압둑가족들께 설명을 했는데 다들 흥미로워했다. 이곳은 굽고 튀기는 등 조리법이 단순해서 삼계탕, 찜닭 맛을 모를 것 같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둑 언젠가 한국에 오게되면 꼭 만나자.'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은 가족들께 우리가 있는 재료로 가능한 잔치국수를 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결혼한지 1년되었다는 압둑에게 결혼식 영상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영상속 압둑은 검은 양복을 신부는 하얀 히잡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혼식은 매우 긴시간 진행된다고 한다. 결혼식때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이맘(이슬람 지도자)의 말씀이 좋았다고 한다. 신실한 무슬림다운 대답이다. 하하 "우리도 대접해야지" 6인분 잔치국수와 김치캔 '딱' 다음날 까브리를 타고 잔치국수 재료를 사러 누쿠스 시내로 나왔다. 멋진 빌딩 앞에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기와 우즈벡 깃발이 함께 나부낀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 안의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의 수도이다. 도로와 건물이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다. 우리는 큰 마트를 발견해서 필요한 달걀과 야채 등의 재료를 잘 구입했다. 6인분의 잔치국수를 만드는 것은 시로에게 도전이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지단을 만들고 육수를 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멸치다시포리백을 이용하는 치트키를 썼다. 한국산 소면을 삶고 김가루까지 고명으로 올리니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압둑과 아내는 부엌에서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보인다고 한다. 한국 음식중 그나마 잔치국수는 간단한 편인데ㅎㅎ. 이곳 음식은 한번에 솥에 넣고 끓이면 된다고 한다. 아마도 고명을 따로 부치고 썰고 하는 과정이 생소해 보였나보다. 캔김치를 따서 반찬으로 대접했는데 김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캔김치는 일반김치보다 많이 부족한데... 제대로 된 맛있는 김치를 맛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 그래도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고 국수도 매우 인기가 좋았다. 압둑이 이곳에서 인기있는 개그 TV쇼를 보여주며 해준 이야기를 통해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리액션이 매우 풍부하고 이곳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며 엄청 감탄하고 감명을 받아 표현하는 것이 그들 눈에는 무척 재미있게 보이나보다. 한국사람들은 빈 땅을 보며 왜 이렇게 노는 땅이 많은데 그냥 두냐고 물어본다는 말에 우리는 빵 터지며 "맞아! 우리도 그런 얘기 했어."라고 했고 석양을 보며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해는 자기나라에서도 질텐데 뭘 그리 특별하다며 호들갑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일몰을 보며 탄성짓는 한국인에게 해가 없어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 다시 뜰거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사람의 특징 이야기가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 저녁때 압둑은 다음날 새벽에 출근을 한다고 해서 미리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다음날 아침 떠나기전 아버님께 부탁해서 아버님의 대형트럭을 구경했다. 기꺼이 보여주신 아버님께 무척 감사했다. 트럭운전수이신 아버님이 국경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여러가지 알려주셨다. 누쿠스를 떠나면 카자흐스탄까지 주유소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여분의 연료를 준비하라며 연료통을 주시려는 아버님께 이럴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큰 생수통이 몇개 있다고 감사하며 사양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가면서 먹을 캔디 등과 이것저것을 끝까지 챙겨 주시려고 해서 사양하기 매우 곤란할 지경이었다. 커다란 수박도 2덩이나 주시려해서 겨우 사양하고 나왔다. 사랑과 정이 가득한 참 감사한 누쿠스의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귀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PRakyEg5zwk?si=RH4bMMGroy9XL8lB>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8 15:09:01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서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 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 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 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라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 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신음천·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19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 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2024-06-03 20:03:21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의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 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 신음천, 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 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 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서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띄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이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6-03 09:4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