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인도네시아에서 물고기를 이용해 만든 '물고기 음료'가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포스트(NYP) 등 외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가 물고기를 이용한 우유를 비영리재단 '베리칸 프로틴 이니셔티브'를 통해 제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젖소 수 급감의 여파로 우유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고기 음료는 생선뼈를 제거하고 가수분해 화학 공정을 거쳐 살만 분리하고, 이를 건조시켜 단백질이 함유된 하얀 가루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적정량의 물과 설탕을 첨가한다. 초콜릿, 딸기 등의 향료를 넣기도 한다. 물고기 음료의 유통을 맡은 베리칸 프로틴 이니셔티브 측 관계자는 매체에 "내가 먹었을 때는 일반 우유 맛과 다를 바 없었다"고 설명했다. 물고기 음료는 내년부터 동남아시아 국가의 학교 급식 메뉴에도 오를 예정이다. 현지에서는 이 물고기 음료를 뛰어난 단백질 공급원으로 홍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물고기 우유는 부패 위험이 있어 유통 범위가 제한적이나, 풍부한 수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물고기 음료의 공급이 확대될 경우 연간 50만 톤을 생산해 약 45억달러(약 6조3020억원) 가치 규모의 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이를 통해 일자리 20만개가량을 창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물고기 음료가 설탕과 인공 감미료를 섞은 초가공 식품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화학 처리를 해도 남아 있는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단점으로 꼽았다. 27세 임산부 디아 로디아는 WSJ에 "초콜릿 맛 물고기 음료를 처음 마셨을 때 생선 냄새가 심해 매우 불쾌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11-27 18:19:25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서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 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 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 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라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 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신음천·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19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 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뛰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2024-06-03 20:03:21필자는 1960년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경남 함안에서 성장했다. 먼저 칠원면에 살았다. 칠원은 가야읍의 동쪽에 있는 면으로 칠원, 칠북, 칠서면을 합하여 삼칠면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삼칠면은 칠원현으로 함안군과 분리된 행정구역이었다. 참고로 칠원현은 현재의 마산 남쪽의 땅을 월경지로 가졌다. 칠원초등학교 때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열악해 교실에는 책걸상 없이 엎드려서 공부를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한국의 발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어린시절 생활의 거의 모두는 함안군 가야읍에서 이루어졌다. 가야 지명은 함안 외에도 많다. 삼한과 가야 시대 역사로 부산, 창원, 창녕, 고령, 고성 등에 가야 지명이 남아있다. 가야 말이산 고분군은 함안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당시는 말산리로 불렀다. 필자의 집도 말산리에 속했다. 당시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미국의 구호물자로 강냉이(옥수수)가 배급됐고, 학교에서는 점심 도시락 못싸는 힘든 학생들에게 강냉이죽 혹은 강냉이빵을 주었다. 개교기념일에는 학교 잔치를 열고 전교생에게 강냉이빵을 나누어주었다. 당시는 즐거운 축제였다. 여름철 논 잡초 피 뽑기, 메뚜기 잡기, 추수 후 이삭줍기 등으로 어린 학생들도 지역경제에 나름으로 기여했다. 과거 조선시대의 함안의 중심지는 현재의 함안면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철도가 가야면을 지나면서 가야면이 성장하고 6·25전쟁 이후 군청과 경찰서 등 주요 군 단위 관공서가 가야로 옮겨왔다. 당시 함안면민들은 함안면을 여전히 함안읍이 불렀다. 그러나 당시 가야나 함안은 모두 읍이 아니고 면이었다. 함안면은 함안에서 가장 높은 남쪽의 여항산 쪽으로 들어가 있어 고도가 약간 높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중심지답게 함안의 향교가 위치한다. 우리 마을 뒤편 언덕에 아름다운 성당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도 더러 놀러 가던 곳이었다. 성당의 분위기대로 조용히 놀다 왔다. 1960년인가 함안에서 처음으로 성당에서 유치원을 만들어 초등학교 가기 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다닌 것 같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필자는 못다녔다. 조선시대에 가야면은 함안면에 비해 저습지가 많아서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야면은 남강의 지류인 함안천을 끼고 있고, 칠원면은 낙동강의 지류인 광려천을 끼고 있다. 함안군 남쪽의 함안면과 여항면은 상대적으로 높은 산지 지역에 위치한다. 함안천의 상류나 중류의 자갈하상과 모래하상은 물이 깨끗해 멱을 감고, 물고기도 잡았다. 작은 웅덩이에는 독풀을 풀어 물고기를 기절시켜 잡기도 했고, 어른들은 낚시나 그물을 이용해 잡았다. 어른들은 잡은 고기를 더러 그 자리에서 회를 쳐 먹기도 했는데, 디스토마에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늪지대의 뻘이 조금 말라 물렁해지면 학교 미술시간에 공작용으로 사용했다. 더하여 함안에는 철광석, 구리, 고령토 등 광산이 발달했다. 1971년 국가 광산 생산 실적표를 보면, 동광으로 국내 1위가 함안 군북으로 생산량이 5551t이고 고령토는 법수가 국내 4위로 생산량은 7850t이었다. 함안의 그 넓은 습지대는 마을과 농경지 확장과 도로건설 등으로 개발되면서 제방, 배수로, 배수장, 유수지 등 관리시설이 많았다. 특히 남강이 잘 범람하므로 매우 많은 제방을 지니고 있다. 남강 수위가 올라가면 함안들의 물은 빠져나갈 길이 없이 흥건히 잠긴다. 또한 집중호우가 오면 제방이 터질까봐 걱정이 많았고, 더러 제방이 터지곤 하여 농경지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공식 국가 지도에도 ‘한바다’라는 지명이 있다. 원래 넓은 밭인 ‘한밭’인데 가끔 한바다로 불리면서, 홍수가 되면 그대로 바닷물의 한바다가 되어 말산리에서 검암리까지 나룻배도 다녔다. 함안은 당연히 많은 둑방을 건설하면서 현재 총길이가 338㎞에 달한다. 시군 단위로 전국 최고일 것이다. 남강, 낙동강변은 물론, 함안천, 신음천, 검암천 등 크고 작은 거의 모든 하천에 둑방을 조성했다. 특히 법수면 악양 둑방길은 꽃길을 조성해 전국적인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남강댐이 범람하게 되면 인공수로인 가화천을 통해서 사천만으로 직접 물을 빼 홍수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농사가 불리한 평지에서는 소와 말, 염소 등의 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지도에는 ‘마구들’이 나온다. 방목장이다. 당시 60년대 중반 우유 없던 시절 염소유가 공급되었다. 고급 음료였다. 가야 충무동에서 도항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방목고개라 했다. 지금도 방목1길 등 도로주소로 남아 있다. 1960년대 기억에 방목이 들어간 상호가 더러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늘날 함안의 승마공원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저습지가 많으니, 쌀농사 외에 연뿌리, 미나리 농사도 많았다. 마름이라하여 물에서 건져올려 삶으면 밤 같은 맛이 나는 물 속 열매도 있었다. 함안에서도 강화와 같은 화문석을 만들었다. 고급 바닥 깔개였다. 골, 큰 것은 왕골이라 하여 삼각형의 줄기를 가지는 습지형 줄기 식물로서 껍질을 벗겨서 흰 속살를 말려서 방석 등 다양한 화문석을 만들었다. 강가의 모래 땅에는 땅콩도 심었다. 지금 보면 소규모이지만 참으로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했다. 함안은 남쪽이라 이모작이 가능했다. 겨울과 봄에는 보리농사가 성했다. 당시 영남의 보리는 겉보리라 하여 껍질이 매우 단단한 보리로서 매우 껄끄러운 보리밥으로 만들어졌다. 보리밥도 건너띄는 사람들도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서릿발이 끼이지 않도록 학생들이 단체로 보리밟기에 동원됐다. 일렬로 기차놀이 하듯이 밟고 나갔다. 봄철 보리를 수확하고 나서 바로 물 대고 쌀농사 모내기를 했다. 보리밥이 너무 잦아 질린다 싶으면 보리 대신에 콩나물, 무, 고구마, 감자 등을 혼합하기도 했다. 함안을 포함한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1960년대 당시에도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한 명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파수 곶감, 월촌 수박이 있었다. 함안은 따뜻한 지역이었으므로 탱자나무도 많았다. 1922년에 개교한 함안가야학교 울타리는 거의 모두 탱자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겨울철 교실 난로 땔감으로 탱자나무의 마른 가지 부스러기도 모아 사용했다. 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 오동나무가 있었고, 낡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교실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 함안은 습지의 고장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개발로 많은 습지들이 사라졌지만, 일부 보호구역으로 보존되고 있다. 강변 습지에 조성된 함안의 경비행장도 볼만하다. 이민부 한국교원대 지리교육과 명예교수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6-03 09:44:41[파이낸셜뉴스]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현재 거주지에서 직접 양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은 개가 75.6%로 최다였고,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비(병원비 포함)는 약 15만 원이었다. 반려동물 양육자의 22.1%가 양육 포기, 파양을 고려한 경험이 있어 향후 대책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같은 내용의 2022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2일 발표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비율을 조사한 결과 반려동물을 현재 거주지에서 직접 양육하는 비율은 25.4%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양육가구의 75.6%가 '개'를 기르고 있었고, '고양이' 27.7%, '물고기' 7.3% 등 순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1마리당 월평균 양육 비용(병원비 포함)은 약 15만 원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양육비는 월평균 약 21만 원으로 다른 연령층보다 많고, 1인가구는 17만원으로 2명 이상 가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리당 월평균 양육비용(병원비 포함)은 전년 대비 약 3만원 증가(2021년 약 12만원)했다. 최근 1년 이내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이용경험에 대해 물어본 결과 동물병원(71.8%), 미용업체(51.3%), 동물놀이터(28.3%) 순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입양 경로에 대해서는 '지인에게 무료로 분양받음' 40.3%, '펫숍에서 구입함' 21.9%, '지인에게 유료로 분양받음' 11.6% 순으로 나타났다. 지인을 통한 분양(유료+무료) 경로가 51.9%를 차지했다. 반려동물 양육자의 22.1%가 양육을 포기하거나 파양을 고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 포기 또는 파양 고려 이유로는 '물건훼손·짖음 등 동물의 행동문제'가 28.8%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예상보다 지출이 많음'(26.0%), '이사·취업 등 여건이 변화'(17.1%) 순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동물보호 전담인력 적정성에 대해 물어본 결과, 53.8%(너무 부족 19.0% + 약간 부족 34.8%)가 '부족'하다고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전국 시·군·구 동물보호 전담 인력은 약 1.8명 수준이다. 반려견 소유자의 준수사항 인지도에 대해 물어본 결과, '인지하고 있다'는 응답이 63.0%로 나타났다. 준수사항은 반려견 외출 시 목줄·가슴줄 및 인식표 착용, 배변 시 수거 등이다. 준수 정도에 대하여 '준수하고 있다'는 응답이 양육자는 83.1%, 미양육자는 33.6%로 나타났다. 2021년과 비교해 반려견 양육자와 미양육자 모두 준수한다는 응답이 증가(양육자 3.6%p, 미양육자 5.6%p)했다. 동물학대로 생각되는 행위에 대해 '물리적 학대 행위'뿐아니라 '열악한 환경(뜬장, 좁고 어두운 공간 사육, 음식물 쓰레기 급여 등)'을 학대로 인식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동물학대 목격 시 행동을 물어본 결과 '국가기관(경찰, 지자체 등)에 신고한다'(54.3%), '동물보호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한다'(45.6%), '학대자에게 학대를 중단하도록 직접 요청한다'(24.5%),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13.1%) 순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와 민간 동물보호시설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게 나타났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 인지자 중 58.0%가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축산물 구입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입한 축산물 종류는 달걀(89.6%), 닭고기(66.1), 돼지고기(48.9), 우유(48.3) 순으로 나타났다. 임영조 농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장은 "이번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동물 보호 및 복지에 대한 국민의식 정도와 정책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할 것"이라며 "2023년부터는 기존의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를 '동물복지 국민의식조사'로 개편하고, 동물보호를 포괄하는 동물복지 개선을 위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2023-02-02 09:56:17최근 경북 칠곡군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가 매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이옥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이옥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중 가장 발암성이 강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국제암연구소(IARC)는 다이옥신을 인체 발암성이 있는 물질로 분류했다.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산업의학과 주영수 교수는 15일 "다이옥신은 간, 신장, 신경계 등에 주로 농축돼 해당 장기의 장해를 유발한다"며 "다이옥신에 노출된 후 1주일 이내에 나타나는 염소성 여드름은 다이옥신에 대한 지표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염소 여드름으로 불리는 것은 다이옥신이 염소가 함유된 화합물이기 때문이다. 염소 여드름은 한때 '유셴코 여드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이유는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004년 대선 도중 오렌지 껍질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그의 혈중 다이옥신 농도는 정상인의 1000배나 됐다. ■토양에서 1년 이상 50∼70% 잔류 다이옥신은 2개의 산소 원자로, 2개의 벤젠 고리가 연결된 화학물질군을 의미한다. 다이옥신은 또 200여가지 물질을 통칭한다. 그중에서도 2,3,7,8 위치에 염소 원자를 네 개 갖고 있는 다이옥신의 한 이성질체(2,3,7,8-TCDD)가 독성이 가장 강하다. 반면 독성이 아예 없거나 TCDD의 수천분의 1밖에 안 되는 종류도 있다. 다이옥신은 환경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존재한다. 다이옥신은 농도와 무관하게 1년이 경과할 때까지 50∼70% 정도까지 잔류할 수 있다.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은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갈수록 더 많이 검출된다. 물고기보다 사람에게서 농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망자나 기형 유발이 없어 실제 피해는 악명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사람은 동물보다 다이옥신의 민감도가 훨씬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이옥신은 최대한 적게 섭취해야 한다. ■다이옥신 인체 축적은 문제 다이옥신은 생물체의 기본단위인 세포 안에 있는 핵과 친화력이 강해 DNA에 결합함으로써 발암기전을 작동시키고 생체 내 내분비계에 혼란을 일으킨다. 또 실험동물에서 강력한 면역독성과 흉선의 위축, 골수기능 저하, 난소와 자궁의 위축과 기능부전, 수태율 저하와 유산율 증가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도 이미 비호지킨임파선암, 연조직육종암, 호지킨병, 폐암, 후두암, 기관암, 다발성골수종, 전립선암, 만성림프성백혈병, 만성골수성백혈병 등 각종 암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다이옥신은 몸 안의 호르몬과 달리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이옥신은 주로 지방조직에 축적된다. 이 때문에 등푸른 생선, 돼지비계, 쇠기름, 닭껍질, 치즈, 우유 등 지방이 풍부한 식품은 다이옥신 오염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실제 돼지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을 때 전문가들이 '돼지고기 삼겹살 섭취를 줄이거나 비계를 떼고 먹으라'고 조언한다. /pompom@fnnews.com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11-06-15 17:12:39▲ 불멸의 거북선서울우유(www.seoulmilk.co.kr)는 26일 지난 7월 31일까지 전국의 유치원 및 초등학교 학생 대상으로 공모한 제13회 어린이 창작대잔치의 최종 수상작 77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재활용 유제품 용기를 활용해 창작 모형물을 만드는 ‘어린이 창작대잔치’는 서울우유가 주최하고 교육과학기술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가 후원하는 행사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환경의 소중함과 자원 재활용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 심사 및 현지 방문 형식의 결선심사를 거쳐 단체부문 대상에는 수원 오목초등학교의 ‘불멸의 거북선’과 평택 삼덕초등학교의 ‘새천년 독립문’이 선정됐다. 이어 개인부문에서는 이서경 어린이(대구·한꽃유치원)의 ‘요술 코-끼리끼리 볼 풀장’과 임서연 어린이(용인·석성초등학교)의 ‘물고기의 꿈’이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 단체 부문의 대상 2개교와 개인 부문 대상 2명에게는 각각 농림수산식품부와 환경부 장관 표창이 주어지며 단체에는 학교발전기금으로 각 500만원의 상금이, 개인에게는 각 200만원의 장학금이 수여될 예정이다. 또한 단체 부문 금상은 포항제철동초등학교와 미래초등학교에게, 개인부문 금상은 익산초등학교 유다은, 평촌초등학교 김준서 어린이에게 돌아갔다. 이들 단체와 개인 부문의 금상과 은상 수상자 및 수상학교에도 서울우유 조합장 표창 및 상금이 주어진다. 서울우유 조흥원 조합장은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이번 창작대잔치가 재활용 자원의 소중함을 느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기를 바란다”며 “매년 지속적으로 본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서울우유 역시 녹색경영을 바탕으로 한 친환경기업으로서의 의지를 다져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sdpark@fnnews.com 박승덕기자
2010-08-26 14:29:56우리는 종종 화장실에서 코를 찌르는 배설물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다. 이는 배설물에 암모니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암모니아는 동물의 몸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 중 생기는 염기성 물질로 맹독성이 있어 몸에 쌓이면 치명적이다. 하지만 암모니아는 식물에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산과 염기, 생물의 다양한 활동 속에 늘 있는 산과 염기에 대해 배워 보자. ■따로 또 같이 염산, 황산, 아세트산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 정답은 화학식에 모두 수소(H+)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물 속에서 이온화할 때 수소 이온을 내놓는다. 또 신맛이 나고 금속과 반응하며 리트머스 종이를 붉게 변화시키 성질도 같다. 하지만 각각 갖고 있는 음이온의 종류가 달라 다른 성질도 보인다. 산은 우리의 음식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치다. 김치는 발효 과정을 통해 젖산을 생성한다. 젖산은 인간의 장 속에서 유해한 균이 생존할 수 없도록 돕는 기능이 있다. 또 김치엔 비타민C 도 있는데 이 역시 산성을 갖고 있다. 이 밖에도 음식의 맛을 돋우는 식초도 산의 일종이며 지질학자들은 암석이 석회암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데 염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염기는 화학식에 공통적으로 수산화이온(OH-)를 포함하고 있다. 수산화나트륨, 수산화칼륨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물 속에서 이온화하면 금속의 양이온과 수산화이온으로 나뉜다. 이 수산화이온은 쓴맛을 내게 한다. 또 리트머스 종이는 푸르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모든 염기가 수산화이온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암모니아의 경우 수산화이온이 없지만 물 분자와 반응해 수산화 이온을 내놓는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염기성 물질은 수산화나트륨으로 만드는 비누다. 수산화나트륨은 대체로 먼지와 기름 성분에 반응해 비누는 물론 하수구 세척제 원료로도 쓰인다. 또 수산화마그네슘이나 탄산칼슘은 제산제의 성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간과 염기의 성질을 생활 속에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 ■수소이온농도(pH)를 측정해 판단 산성이냐 염기성이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수소 이온의 농도를 표현하는 pH. 이는 0부터 14까지의 단계로 나뉘는데 7을 기준으로 낮으면 산성, 높으면 염기성으로 본다. 나팔꽃의 경우 꽃이 피어감에 따라 꽃잎에 있는 효소의 조절 작용으로 수소이온의 농도가 감소한다. 붉은 보라색을 띠는 꽃망을의 pH는 6.6으로 약한 산성이지만 활짝 핀 푸른 꽃잎의 pH는 7.7로 약한 염기성을 갖게 되는 것. 하천의 물고기들은 위험에 처했을 때 화학물질을 배출해 pH를 조절함으로써 다른 물고기들에게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또 pH 값은 물고기의 개체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럼 pH값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맛으로 판단하는 법이다. 신맛이 진할수록 산성이 높고 쓴맛이 강할수록 염기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물질을 먹어볼 수는 없으니 pH미터기를 주로 사용한다. pH미터기로 측정해 보면 레몬과 귤은 pH2, 탄산음료는 pH3이며 토마토는 pH4 정도의 산성을 띤다. 우유와 달걀은 각각 pH6.5와 8로 중성에 가깝고 베이킹 파우더는 pH9, 하수구 세척제는 pH13 정도다. pH7을 1로 볼 때 pH6은 수소 이온의 농도가 10배 높은 것이고 pH5는 100배 높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pH9는 100분의 1이라고 보면 된다. ■pH를 조절해 소화를 돕는다 pH는 꽃의 색깔, 수생생물의 활동뿐 아니라 인간의 몸 속에서 일아나는 소화과정에도 깊이 간여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영양소와 수분이 포함돼 있는데 수분을 제외한 다른 영양소는 소화기관에서 바로 흡수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 몸은 소화효소를 이용해 이들을 분해한다. 우선 입 안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우리는 이를 잘게 부수며 침과 섞는데 침은 pH7 정도를 유지한다. 이는 분해효소인 아밀라제가 가장 잘 작용하는 값. 실제 음식을 계속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은 아밀라제가 음식과 혼합되며 녹말이 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 식도에선 염산과 펩신을 분비한다. 염산이 분비되면 위는 입 안 보다 10만배가량 높은 산성을 띠는 pH2의 수소 이온 농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환경은 펩신이 음식물을 단백질보다 작은 분자인 펩톤으로 분해하는 작용을 돕는다. 또 소장에선 pH8의 이자액으로 염기성 환경을 만들어 효소가 최적으로 작용하게 만들어 준다. /economist@fnnews.com 이재원기자
2008-08-03 16:32:55우리는 종종 화장실에서 코를 지르는 배설물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다. 이는 배설물에 암모니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암모니아는 동물의 몸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과정 중 생기는 염기성 물질로 맹독성이 있어 몸에 쌓이면 치명적이다. 하지만 암모니아는 식물에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다. 산과 염기, 생물의 다양한 활동속에 늘 있는 산과 염기에 대해 배워보자. ■따로 또 같이 염산, 황산, 아세트산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 정답은 화학식에 모두 수소(H+)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물 속에서 이온화할 때 수소 이온을 내놓는다. 또 신 맛이 나고 금속과 반응하며 리트머스 종이를 붉게 변화시키 성질도 같다. 하지만 각각 갖고있는 음이온의 종류가 달라 다른 성질도 보인다. 산은 우리의 음식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김치다. 김치는 발효 과정을 통해 젖산을 생성한다. 젖산은 인간의 장 속에서 유해한 균이 생존할 수 없도록 돕는 기능이 있다. 또 김치엔 비타민C 도 있는데 이 역시 산성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음식의 맛을 돋우는 식초도 산의 일종이며 지질학자들은 암석이 석회암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데 염산을 사용하기도 한다. 반면 염기는 화학식에 공통적으로 수산화이온(OH-)를 포함하고 있다. 수산화나트륨, 수산화칼륨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물 속에서 이온화하면 금속의 양이온과 수산화이온으로 나뉜다. 이 수산화이온은 쓴 맛을 내게 한다. 또 리트머스 종이는 푸르게 변화시킨다. 그러나 모든 염기가 수산화이온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암모니아의 경우 수산화이온이 없지만 물 분자와 반응해 수산화 이온을 내놓는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염기성 물질은 수산화나트륨으로 만드는 비누다. 수산화나트륨은 대체로 먼지와 기름 성분에 반응해 비누는 물론 하수구 세척제 원료로도 쓰인다. 또 수산화마그네슘이나 탄산칼슘은 제산제의 성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간과 염기의 성질을 생활속에 유익하게 사용하고 있다. ■ 수소이온농도(pH)를 측정해 판단 산성이냐 염기성이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는 수소 이온의 농도를 표현하는 pH. 이는 0부터 14까지의 단계로 나뉘는데 7을 기준으로 낮으면 산성, 높으면 염기성으로 본다. 나팔꽃의 경우 꽃이 피어감에 따라 꽃잎에 있는 효소의 조절 작용으로 수소이온의 농도가 감소한다. 붉은 보라색을 띠는 꽃망을의 pH는 6.6으로 약한 산성이지만 활짝 핀 푸른 꽃잎의 pH는 7.7로 약한 염기성을 갖게되는 것. 하천의 물고기들은 위험에 처했을 때 화학물질을 배출해 pH를 조절함으로써 다른 물고기들에게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또 pH 값은 물고기의 개체수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럼 pH값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맛으로 판단하는 법이다. 신 맛이 진할 수록 산성이 높고 쓴 맛이 강할수록 염기성이 높다. 하지만 모든 물질을 먹어볼 수는 없으니 pH미터기를 주로 사용한다. pH미터기로 측정해보면 레몬과 귤은 pH2, 탄산음료는 pH3이며 토마토는 pH4정도의 산성을 띤다. 우유와 달걀은 각각 pH6.5와 8로 중성에 가깝고 베이킹 파우더는 pH9, 하수구 세척제는 pH13 정도다. pH7을 1로 볼 때 pH6은 수소 이온의 농도가 10배 높은 것이고 pH5는 100배 높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pH9는 100분의 1이라고 보면 된다. ■pH를 조절해 소화를 돕는다 pH는 꽃의 색깔, 수생생물의 활동 뿐 아니라 인간의 몸 속에서 일아나는 소화과정에도 깊이 간여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의 영양소와 수분이 포함돼 있는데 수분을 제외한 다른 영양소는 소화기관에서 바로 흡수되지 못한다. 때문에 우리몸은 소화효소를 이용해 이들을 분해한다. 우선 입 안에 음식물이 들어오면 우리는 이를 잘게 부수며 침과 섞는데 침은 pH7 정도를 유지한다. 이는 분해효소인 아밀라제가 가장 잘 작용하는 값. 실제 음식을 계속 씹으면 단 맛이 나는 것은 아밀라제가 음식과 혼합되며 녹말이 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 식도에선 염산과 펩신을 분비한다. 염산이 분비되면 위는 입 안 보다 10만배가량 높은 산성을 띠는 pH2의 수소 이온 농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 환경은 펩신이 음식물을 단백질보다 작은 분자인 펩톤으로 분해하는 작용을 돕는다. 또 소장에선 pH8의 이자액으로 염기성 환경을 만들어 효소가 최적으로 작용하게 만들어준다. /economist@fnnews.com이재원기자
2008-08-01 18:09:11※담뱃갑에…널빤지에… 미치도록 그리고 싶었다 미국 문화원 직원이었던 조셉 맥다카트는 1955년 이중섭과 운명적인 인연을 갖는다. 그해 1월, 이중섭이 서울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관한 신문평을 쓰게 된 것이다. 그리고 5월에는 대구 미국 문화원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들’ 외 2점을 구입하여,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에 기증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956년 4월 2일 모던 아트 뮤지엄 이사회는 맥다카트의 기증작품을 소장품으로 최종 결정한다.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린 3점의 그림은 ‘은지화(銀紙畵)’였다. 하지만 이중섭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그해 9월 6일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두운 격동기를 밝힌 예술혼 이중섭(1916∼1956)은 격동기를 살다간 불우한 화가였다. 6·25동란과 피란, 가족과의 이별, 빈곤 등 급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자전적인 그림을 남겼다. 현재 남아 있는 이중섭의 그림은, 그가 월남한 후인 1951년부터 죽기까지 불과 5년 정도의 기간에 그려진 것들이다. 이 시기의 강렬한 작품과 기구한 인생역정은 그를 가장 대중적이면서 한국적인 화가로 만들었다. 1952년 말경, 전쟁으로 고생하던 일본인 아내(한국명 이남덕)는 자식들을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피신하고, 이중섭만 홀로 남는다. 시일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졌다. 더불어 엽서그림도 쌓여갔다. 그 엽서에는 절절한 사연과 함께 가족 그림이 등장한다. 자신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어우러져 있거나 아이들과 아내, 또 아이들만 등장하는 행복한 모습이다. 그 그림들은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그는 ‘항일성 식물’처럼 오로지 가족이라는 태양을 향해 움직였다. 당시에는 미술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중섭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사용했다. 유화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나무판이나 종이, 은박지, 장지 등에 그렸다. 그리는 재료도 유채물감과 수채물감, 잉크, 연필, 색연필, 구아슈, 에나멜 등 다양했다. ■가난한 화가의 천국, 담뱃갑 은박지 그중에서도 이중섭을 상징하는 은박지 그림은 특이했다. 뉴욕 모던 아트 뮤지엄의 소장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은지화는 순전히 이중섭의 고안품이었다. 재료가 귀했던 시절,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쓸 수 있는 시인들을 부러워했던 그였다. 우연히 발견한 담뱃갑의 은박지는 그림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피난지였던 부산의 다방이나 술집에서 은지화가 많이 태어났다. 장차 완성할 대작을 위한 밑그림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았다. 은지화의 제작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지를 벗겨낸 뒤, 지긋이 누르듯이 원하는 형상을 새긴다. 그 위에 물감을 바르고 닦아낸다. 그러면 오목하게 패인 선들에 물감이 남아서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고려청자의 상감기법을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맥타가트는 이런 은지화에서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 불상의 저부조를 떠올린다. 남산의 가파른 암석 표면에 선으로 새긴 2차원의 평면적인 불상들 말이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상감이나 저부조 기법 같은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과수원에서 과일을 따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린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바닷가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두 명의 아이를 그린 ‘바닷가의 아이들’, 잡은 게를 운반하는 아이와 게가 어우러진 ‘게와 물고기가 잇는 가족’ 등의 은지화는 그렇게 생명을 얻었다. 은지화의 수난사도 흥미롭다. 1955년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가진 개인전에서 작품이 철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천진무구한 동심이야말로 이중섭 예술의 본질(친구인 화가 한묵)일 만큼, 남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완전 나체로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방식이었다. 전시회는 호평이었지만 당국에서는 이들을 춘화로 여겼다. 그래서 풍기문란 혐의로 50여 점의 은지화를 철거했다. ■은박지에 상감한 사무치는 그리움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그림의 내용이 제목대로다(그림 제목은 후대에 편의상 붙인 것들이다). 왼쪽 아래에 팔레트와 붓을 쥔 화가(이중섭)가 있고, 바로 위에 아내가 화가를 보며 웃고 있다. 그리고 두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캔버스에는 물고기를 잡으며 노는 아이들을 그리는 중이다. 이중섭은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는 데 특출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자신이나 아내 모습은, 그림만 보면 그들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이 그림과 함께 보면 좋은 ‘엽서그림’으로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이 있다. 종이에 잉크와 색연필로 그린 이 그림은 이중섭이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자기 가족을 그리는 중이다. 그리움에 젖은 생활의 단면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준다. 궁핍한 시절의 산물인 은지화는 이중섭의 문신이다. 가족을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그는 문신하듯이 은박지에 새겼다. 그 애틋한 문신으로 우리의 미술사는 은박지처럼 빛난다. ■키포인트=뜨거운 의지는 얼음 위에도 집을 짓는다. 여건이 문제가 아니다. 의지의 있고 없음이 문제다. 시인 김남주는 감옥 속에서도 우유곽에 시를 새겼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artmin21@hanmail.net ■도판설명=이중섭, ‘가족에 둘러싸여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은박지에 유채, 10×15㎝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2007-01-25 17:15:02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 중 가장 큰 동물이 고래다. 이 고래의 포획 여부를 놓고 전세계 61개 국가 1만여명의 전문가들이 울산광역시에 모여 지난 27일부터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 회의를 열고 있다. 이달 24일까지 무려 29일간이나 회의가 계속될 예정이라니 고래 덩치만큼이나 할 말이 태산같은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이 고래를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반면 미국을 위시한 다른 국가들은 “고래를 포획하면 못써”를 외치고 있다. 고래는 고래목에 속하는 젖빨이 동물로서 종류는 분류학적으로 아직 해명되지 않은 것도 있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략 79종(부경대학교 박구병 교수 주장)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래를 젖빨이 동물로 분류하지 않았으나 1758년 스위스의 박물학자 린네가 고래를 젖빨이 동물로 분류함으로써 고래는 포유류로 편입됐다. 어구어법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에 인간과 고래는 서로 먹고 먹혔던 게 분명하다. 조선 영조때 학자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한 어부가 고래에 삼켜져 뱃속에 들어갔다가 칼을 휘둘러 뱃속을 베었더니 고래가 그를 토(吐)해내 살아나기는 했으나 머리가 뱃속에서 데어서 대머리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는 고래 암각화도 있다. 암각화 중에는 작살이 고래 몸에 꽂혀 있는 것, 뒤집혀 있는 것, 사람이 많이 탄 배에서 던진 작살에 맞은 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 고래는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기구한 팔자를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식용으로도 모자라 약용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 15년에 완성된 의서 ‘향약집성방’에는 돌고래를 ‘물가치’라고 명명해 놓고 기력이 쇠한 사람이 고래고기를 먹을 경우 기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래 중에서 왕고래는 대식가로 어민들에게 악명이 높다. 왕고래는 크릴새우를 주로 먹어치우는데 하루에 5∼8t을 거뜬히 뱃속에 집어넣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민들은 고래를 ‘원수 내지는 적’으로 보 고있다. 이 ‘원수’같은 고래가 수분함량이 41∼51%(우유 90∼91%)에 불과한 반면 지방은 34∼37%나 돼 우유보다 8∼10배 가량 풍부하기 때문에 어민들에게 포획대상 명분이 되고 있다. 한동안 고래를 잡지 않은 덕분에 동해안을 중심으로 고래의 개체수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고래들이 먹어치우는 크릴새우의 절대감소는 물고기 씨를 말리고 있다. 고래가 지나간 자리엔 물고기를 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게 어민과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우리 정부와 어민들은 “고래 개체수를 적정한 선에서 유지시키는 것만이 어족자원도 보호하고 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환경보호론자들의 ‘잡지 말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고래 팔자가 필지 말지’ 이번 회의 말미에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2005-05-27 13: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