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종이 위의 음악에 처음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일” 성악가 황수미가 예술의전당 창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물의 정령’ 무대에 서는 감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13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물의 정령’ 기자간담회에서 “종이 위에 잉크로 찍혀 있는 그 음악들에 우리가 처음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부담감과 책임감이 크다”면서도 “어려운 작품이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예술의전당이 제작극장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알리며 오는 25일 ‘물의 정령’을 세계 초연한다. 이번 작품은 한국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어 오페라다. 세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1770년 설립된 권위 있는 음악출판사 중 하나인 쇼트 뮤직과 협업했다. 쇼트 뮤직 소속이자 호주를 대표하는 현대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가 음악을 만들고 창작 파트너인 극작가 톰 라이트가 대본을 썼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 ‘그라운디드(Grounded)’ 지휘로 주목을 받은 스티븐 오즈굿이 지휘봉을 잡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연출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투란도트’ ‘토스카’ 등을 작업한 스티븐 카르가 맡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공주’역 소프라노 황수미를 비롯해 ‘장인’ 역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제자’ 역 테너 로빈 트리츌러, ‘왕’ 역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 메리 핀스터러, 스티븐 오즈굿 그리고 스티븐 카르가 참석했다. 가상 왕국 배경, "물은 작품의 중심..시간과 영혼, 기억과 회복 상징" ‘물의 정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물과 관련한 재앙이 계속되는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물의 정령이 씐 공주를 구하기 위해 물시계 장인을 왕국으로 불러 들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국 전통 신화와 귀신, 그리고 물과 관련된 상징을 모티프로 삼되, 특정 설화나 캐릭터에 기대지 않고 독창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극작가 톰 라이트는 앞서 예술의전당을 통해 “이 작품은 덧없음과 실재, 이성과 혼돈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드라마”라며 “물이 작품의 중심에 있으며 시간과 영혼, 기억과 회복을 상징한다"고 전했다. 연출가 카르는 “한국에서 여섯 번째 연출을 맡지만, 초연은 처음”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려 하기보다는 보편적 이야기 구조 속에서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의 정령’이 “‘투란도트’의 중국, ‘나비부인’의 일본을 넘어 한국을 배경으로 한 보편적 오페라”가 되길 희망했다. 작곡가 핀스터리는 이번 작품에서 르네상스 다성음악부터 현대 전자음향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소리의 세계를 창조했다. 그는 “이 작품은 소리, 기억, 운명을 통한 여정이며, 21세기 동화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작품”이라며, “한국 전통 악기 거문고를 작품에 접목해 문화적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새로운 음향적 차원으로 확장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또 “한국어의 단어들도 메아리처럼 스며들어 있다”며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사의 중심에 공주와 장인 두 여성 캐릭터 존재 이번 작품 특징 중 하나는 ‘장인’과 ‘공주’라는 두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돼 오페라극 전체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황수미는 “두 여성 캐릭터가 강조됐는데, 여성 서사에 국한되지 않은 작품”이라며 “인간에 초점을 두고 현시대 이슈가 되는 기후변화 등이 모티브가 돼 시사적인 내용들을 동화처럼 풀어간다. 환경과 더불어 왕권, 백성 등 지금 국내 상황과 견주어서 비춰볼 수 있는 내용들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느낀 점은 불가능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조금 불가능해 보였던 이 어려운 작품이 결과적으로 좋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사실은 악보를 처음 받고 저는 못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작곡가 메리가 친절하게 제 요구를 들어주고 또 여러 부분을 고쳐서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게 됐다. 모두에게 도전적인 작품이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도전이 된 작품이다.” 김정미는 세대 간 전승을 다룬 이야기라고 짚었다. "왕과 공주의 관계가 있고 물시계 장인과 제자의 관계가 있다"며 "구세대(올드 제너레이션)에서 신세대(영 제너레이션)로 인생과 사회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더 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창작 초연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더 나은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초연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에 대해서 관객들이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몰입형 오페라, 아르떼뮤지엄과의 특별한 만남 이번 공연은 본 공연에 앞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코엑스 전광판을 수놓은 ‘파도’(WAVE)로 유명한 디스트릭트의 ‘아르떼뮤지엄’과 특별한 협업을 진행한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오페라극장 무대 위에서 아르떼뮤지엄의 대표적 미디어 작품인 ‘스태리 비치(Starry Beach)’를 만나볼 수 있다. 물을 주제로 한 압도적인 영상미는 관객을 작품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며 깊은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여기에 조향 브랜드 '센트 바이'가 스태리 비치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히 만든 향기를 관객들이 시향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예술의전당은 '물의 정령' 재연을 해외 극장에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대만의 국립 타이중 극장,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도쿄 신 국립극장과 논의 중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5-14 15:22:40[파이낸셜뉴스] 예술의전당이 제작극장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을 오는 5월 세계 초연한다. ‘물의 정령’은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한국의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어 오페라다. 물의 정령에 홀린 공주와 왕국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성 물시계 장인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서사에 도전한다. 특히 전통 오페라의 관습을 탈피해 두 명의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서사를 펼친다. 공주와 장인이라는 두 여성의 모험과 희생을 강렬하게 조명한다. 작품의 배경은 끝없이 범람하는 물로 뒤덮인 한 왕국이다. 이번에 공개한 포스터 속 ‘물과 시간에 갇힌 공주 이야기’라는 문구처럼 왕국에는 원인 모를 병으로 세상과 단절된 공주가 살고 있다. 왕실은 공주와 왕국을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수소문 끝에 물시계 장인과 제자를 왕실로 소환, 물시계를 제작한다. 장인이 공주를 구하고 왕국에 평화를 가져다줄지 궁금해진다. ‘물의 정령’은 호주 정상급 오페라 작곡가이자 세계적 음악 출판사 쇼트 뮤직(Schott Music) 소속 메리 핀스터러가 작곡을, 극작가 톰 라이트가 대본을 맡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화제작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과 ‘그라운디드(Grounded)’ 지휘로 큰 주목을 받은 지휘자 스티븐 오즈굿이 지휘봉을 잡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연출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스티븐 카르가 맡아 작품의 예술성을 한층 끌어올린다. 예술의전당에 따르면 작곡가 메리 핀스터러는 고전 오페라의 전통적인 기법에 현대 음악의 실험적 기법을 결합해 마치 물의 움직임처럼 유기적이면서도 질서 있는 음악 언어를 완성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 바 있는 그는 관객들이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청각적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특히 특별한 포인트로 거문고의 섬세한 선율을 더해 한국적 감성을 살렸다. 영어 오페라지만 라틴어와 한국어를 적절히 사용해 다양한 문화적 매력을 더했다. 또 ‘물’과 ‘시간’이라는 모티프는 변화하는 리듬과 흐르는 멜로디로 음악 속에 구현된다. 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이 그려내는 신비로운 캐릭터 이번 공연에는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국내외 실력파 성악가들이 참여한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불러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소프라노 황수미가 물의 정령에 사로잡힌 ‘공주’ 역을 맡아 혼돈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미래의 통치자를 그려낸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관객을 사로잡는 메조소프라노 김정미는 왕국을 구하기 위해 물시계를 만드는 ‘장인’ 역을 맡는다.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활약 중인 테너 로빈 트리츌러는 장인의 ‘제자’역으로 출연해 두 여성 캐릭터의 드라마를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왕국의 통치자인 ‘왕’역은 다채로운 레퍼토리와 리사이틀을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가 맡는다. 고음악 솔리스트로 한국과 유럽에서 활동 중인 카운터테너 정민호는 ‘물의 정령’역을 맡아 작품에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노이 오페라 코러스가 합창을 맡는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5월 25일 세계 초연을 시작으로, 29일과 31일까지 총 3회 공연한다. 티켓 예매는 오는 11일 오후 2시에 예술의전당 유료회원을 대상으로 선오픈하며, 12일 오후 2시부터 일반 예매를 개시한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3-06 09:02:10본격적인 오페라 시즌을 맞아 기대할 만한 작품들이 연이어 관객들을 만난다.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와 예술의전당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물의 정령', 국립오페라단 정기공연 등 탄탄한 기획과 실력파 제작·출연진으로 무장한 공연들이 4월부터 12월까지 오페라 무대를 풍성하게 채울 예정이다. 먼저, 서울시오페라단은 2025년 시즌 첫 작품인 '파우스트'를 오는 10~1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파우스트'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희곡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 거장 구노가 지난 1859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와 순수한 여인 마르그리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지난 2022년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2' S씨어터 무대에서 선보인 '오플레이(오페라+연극)' 콘셉트의 '파우스트:악마의 속삭임'을 대극장 무대로 확장해 레퍼토리 공연으로 준비했다. 메피스토펠레스 역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과 베이스 전태현, 파우스트 역은 테너 김효종과 박승주가 맡는다. 아울러 마르그리트 역에 소프라노 손지혜와 황수미, 발랑탱 역에 바리톤 이승왕과 김기훈, 시에벨 역에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이 출연한다. 특히 연기 경력 55년의 배우 정동환은 노년의 파우스트 역으로 1막에 등장해 인간이 지닌 욕망, 회한, 고통 등 복합적인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출은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 '라 보엠'으로 호평받은 엄숙정이 맡았다. 또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지휘자 이든이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과 함께 구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을 깊이 있는 해석의 연주로 들려줄 예정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올해 베르디 명작 '아이다(11월 13~16일)'와 '오페라 갈라(12월 13일)'도 선보인다. '아이다'에는 뮤지컬 '시라노' 연출가 김동연이 참여해 참신한 구석과 해석으로 웅장한 무대를 구현할 예정이다. 아이다 역은 임세경, 암네리스 역은 양송미, 아모나스로 역은 유동직과 양준모가 연기한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5월 25일과 29일, 31일 3차례에 걸쳐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물의 정령'을 세계 초연한다. 2023년 '노르마'와 2024년 '오텔로'를 잇는 오페라 기획 후속작으로, 한국 전통 소재인 물귀신과 물시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2막 구성의 영어 작품이다. 범람하는 물로 뒤덮인 왕국과 세상과 단절된 공주, 왕국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성 물시계 장인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서사를 펼쳐 보인다. 지휘를 맡은 스티븐 오즈굿을 비롯해 메리 핀스터러(작곡), 톰 라이트(대본), 스티븐 카르(연출) 등 세계적인 수준의 제작진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공주 역에 소프라노 황수미, 장인 역에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왕 역에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하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예술의전당은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토스카' 3개 작품의 주요 명장면을 이어 만든 'SAC 오페라 갈라(8월 23~24일, 엄숙정 연출)도 선보인다. 지휘자 홍석원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소프라노 서선영과 홍주영, 바리톤 강형규 등이 출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라는 대주제 아래 사랑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오페라 작품 4개를 준비했다. 지난달 공연한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6월 26~29일)', 여성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작곡가 최우정의 창작 오페라 '화전가(10월 25~26일)', 바그너 시리즈 두번째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12월 4~7일)'를 차례로 선보인다. 이중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오렌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마녀의 저주에 걸린 뒤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왕자님과 어릿광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한여름 밤의 꿈'의 지휘를 맡은 펠릭스 크리거가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고, 로렌조 피오로니가 연출한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연출은 독일 콧부스 국립극장 예술감독인 슈테판 메르키가 맡는다. 올해 설립 80주년, 재단 독립 20주년을 맞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공동 주최하는 공연으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무대인만큼 오페라 애호가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5-03-31 18:29:25[파이낸셜뉴스] 본격적인 오페라 시즌을 맞아 기대할 만한 작품들이 연이어 관객들을 만난다.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이한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와 예술의전당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물의 정령', 국립오페라단 정기공연 등 탄탄한 기획과 실력파 제작·출연진으로 무장한 공연들이 4월부터 12월까지 오페라 무대를 풍성하게 채울 예정이다. 먼저, 서울시오페라단은 2025년 시즌 첫 작품인 '파우스트'를 오는 4월 10~1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파우스트'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평생에 걸쳐 집필한 희곡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오페라 거장 구노가 지난 1859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와 순수한 여인 마르그리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지난 2022년 세종문화회관 '싱크 넥스트 22' S씨어터 무대에서 선보인 '오플레이(오페라+연극)' 콘셉트의 '파우스트:악마의 속삭임'을 대극장 무대로 확장해 레퍼토리 공연으로 준비했다. 메피스토펠레스 역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과 베이스 전태현, 파우스트 역은 테너 김효종과 박승주가 맡는다. 아울러 마르그리트 역에 소프라노 손지혜와 황수미, 발랑탱 역에 바리톤 이승왕과 김기훈, 시에벨 역에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이 출연한다. 특히 연기 경력 55년의 배우 정동환은 노년의 파우스트 역으로 1막에 등장해 인간이 지닌 욕망, 회한, 고통 등 복합적인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출은 지난해 서울시오페라단 '라 보엠'으로 호평받은 엄숙정이 맡았다. 또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특별언급상을 수상한 지휘자 이든이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위너오페라합창단과 함께 구노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을 깊이 있는 해석의 연주로 들려줄 예정이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올해 베르디 명작 '아이다(11월 13~16일)'와 '오페라 갈라(12월 13일)'도 선보인다. '아이다'에는 뮤지컬 '시라노' 연출가 김동연이 참여해 참신한 구석과 해석으로 웅장한 무대를 구현할 예정이다. 아이다 역은 임세경, 암네리스 역은 양송미, 아모나스로 역은 유동직과 양준모가 연기한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5월 25일과 29일, 31일 3차례에 걸쳐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물의 정령'을 세계 초연한다. 2023년 '노르마'와 2024년 '오텔로'를 잇는 오페라 기획 후속작으로, 한국 전통 소재인 물귀신과 물시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2막 구성의 영어 작품이다. 범람하는 물로 뒤덮인 왕국과 세상과 단절된 공주, 왕국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성 물시계 장인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편적 서사를 펼쳐 보인다. 지휘를 맡은 스티븐 오즈굿을 비롯해 메리 핀스터러(작곡), 톰 라이트(대본), 스티븐 카르(연출) 등 세계적인 수준의 제작진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공주 역에 소프라노 황수미, 장인 역에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왕 역에 베이스바리톤 애슐리 리치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출연하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예술의전당은 '라 트라비아타', '라 보엠', '토스카' 3개 작품의 주요 명장면을 이어 만든 'SAC 오페라 갈라(8월 23~24일)'도 엄숙정 연출로 선보인다. 지휘자 홍석원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소프라노 서선영과 홍주영, 바리톤 강형규 등이 출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라는 대주제 아래 사랑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오페라 작품 4개를 준비했다. 지난달 공연한 '피가로의 결혼'을 시작으로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6월 26~29일)', 여성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작곡가 최우정의 창작 오페라 '화전가(10월 25~26일)', 바그너 시리즈 두번째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12월 4~7일)'를 차례로 선보인다. 이중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은 오렌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마녀의 저주에 걸린 뒤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왕자님과 어릿광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해 '한여름 밤의 꿈'의 지휘를 맡은 펠릭스 크리거가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고, 로렌조 피오로니가 연출한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연출은 독일 콧부스 국립극장 예술감독인 슈테판 메르키가 맡는다. 올해 설립 80주년, 재단 독립 20주년을 맞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공동 주최하는 공연으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이끄는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무대인만큼 오페라 애호가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5-03-31 12:16:39[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도입된 '청년 문화예술패스' 발급률이 50%를 넘어섰다. 2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 6일 오전 10시부터 2006년생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청년 문화예술패스' 발급자수가 21일 기준 총 8만201명으로 집계, 올해 지원 대상 총인원인 16만여명의 50.1%를 기록했다. 또 이용자 조사 결과 3월 둘째주 기준 '청년 문화예술패스'를 발급 후 가장 많이 예매한 공연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전시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립중앙극장 등 국립문화예술기관과 인천광역시 등 9개 지방자치단체, 공립 문화예술기관은 '청년 문화예술패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관람권 할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공연으로는 △국립중앙극장의 '신나락 만나락(4월 22일~5월 4일)', '사랑의 죽음. 눈에서 피비린내가 떠나지 않아. 후안 벨몬테(5월 2~4일), '베니스의 상인들(6월 7~14일)' △예술의전당 신작 오페라 '더 라이징 월드(The Rising World: 물의 정령(5월 25·29·31일)' 등이 있다. '청년 문화예술패스'는 공식 누리집을 통해 5월 31일까지 신청 가능하다. 사용 범위는 연극과 뮤지컬, 클래식·오페라, 발레·무용, 국악, 음악 콘서트·축제, 전시 등이며 사용 기한은 오는 12월까지다. 관람권 할인율은 공연마다 다르며, 참여 기관과 할인 혜택이 적용되는 공연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청년 문화예술패스'를 발급받은 후 6월 말까지 한 번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원금을 환수하고 2차 발급을 통해 더 많은 청년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2025-03-24 16:11:14중국 남부의 호남, 귀주, 운남, 그 남쪽으로 광서성을 가로지르는 산맥이 남령회랑(南嶺回廊)이다. 그 회랑은 베트남과 라오스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까지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이곳을 '회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동하며, 살고 있는 지역의 의미로 읽힌다. 지난 7월 타계한 예일대학의 제임스 스콧(1936~2024)이 2009년에 '조미아'(Zomia·연세대 이상국 교수 번역)라고 명명했던 남중국과 내륙동남아를 연결하는 가파른 비탈의 산악이다. 한때는 '골든 트라이앵글'의 양귀비 재배로 소탕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북조선 동포들의 탈북 루트였다. 공자시대부터 정치권력을 피해 안식처를 찾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지배와 통제가 없는 무릉도원으로 여겼던 곳이다. 체구는 작지만 '잘 먹고 잘 살며', 심신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이곳의 주인공인 '야오(Yao)'다. 문자 역사를 자랑하는 한족들은 야오 사람들을 지칭하는 글자의 변천사를 보인다. 오랜 문서들은 '요(猺)', 중공시대부터는 '요(徭)', 요즈음은 '요(瑤)'라고 적는다. 개 구(狗) 변에서 두 인(人) 변, 구슬 옥(玉) 변으로 바뀌었다. 털북숭이 짐승 취급을 하다가 사람을 거쳐서 귀한 옥의 의미를 부여한다. 순제(舜帝)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내력을 전설로 이어오면서, 화전으로 곡식을 키우고 닭과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산악 노마드'다. 산의 정령이 야오에게 내려준 이슬이 가계 전래의 발효차 원조인 육보차(六保茶)이며, 요순남진(堯舜南進)과 다라낭(茶箩娘) 전설이 차문화의 관념적 배경이다. 불과 물의 조화가 생명줄이고, 화전할 땅을 찾아 다닌다. 이동단위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결속력이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강력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조도(祖圖)엔 개 중에는 으뜸인 '용견'(龍犬)이 등장한다. 개가 조상인 토템신앙이다. 주몽설화와도 통하는 물을 건너는(過海) 그림도 포함한다. 첩첩산중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령(anima)뿐이다. 죽은 조상이 정령에 가담한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 묘를 쓴다. 5대까지의 묘소는 기록으로 남겼다. 성묘를 하기 위해서 과거의 터전을 찾아가는 길은 월경(越境)일 수밖에 없다. 글자가 없었던 야오 사람들은 중국의 한자를 빌려서 자신들의 내력을 기록했다. '가선단'(家先單)과 '조도'라는 이름의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가보 문서다. 세월이 흐르면서 야오 사람들이 사용하던 한자의 모습도 바뀌었다. 조상의 초혼굿을 위한 제례문은 모두 칠언시(七言詩)다. 해독이 가능할 것 같지만, 음차와 새로 만든 한자들이 상당수 가미되었다. 미얀마든, 태국이든, 베트남이든, 라오스든, 광서성이든 야오 사람들의 구성진 가락이 붙은 칠언시 초혼문서의 형식은 동일하다. 굴원(屈原)의 '초혼사'보다도 자연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야오의 아이덴티티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이어가는 문화과정이 조상을 위한 제례다. 항상 새로운 산을 찾아서 개산(開山)을 하고 화전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과정이 녹록지 않다. 정령의 허락이 있어야 개산도 농사도 가능하다. 문화내탄(文化耐彈·cultural resilience)의 조상제사는 그 자체가 생존전략이자 삶의 구심점이다. 서양학자든 동양학자든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오의 종교가 도교라고 규정하고, 도교의 논리로 야오의 종교를 분석하는 논문을 쓰지만, 아니다. 그것은 겉모양만 도교이고 도사라는 직함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대전통(大傳統)의 껍데기를 둘러쓴 겉모양만 본 것이다. 야오의 정신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대전통의 굴레 속에 꼭꼭 숨어 있다. 한자와 도교의 중국식 대전통은 야오의 소전통(小傳統)이 살아남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해준다. 마치 누에의 번데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고치라는 방탄막을 둘러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러한 현상을 포낭주의(包囊主義·cocoonism)라고 부른다. 자연의 은혜로 살아가는 야오 사람들의 문화에 비친 현대인류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가권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국경이라는 괴물이 야오 사람들의 이동 루트를 점점 더 철통같이 막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오 사람들은 월경하는 성묘길을 다닌다. 닭을 키워서 조상에게 바치는 제례를 지킨다. 돼지도 새해와 추석의 조상맞이에 동원된다. 닭과 돼지를 키우는 일은 집안의 노인 몫이다. 조상 되기 전의 인생 단계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육도와 좁쌀로 만든 떡이 조상께 바치는 젯밥이다. 혼인에도 조상이 개입한다. 청혼을 받은 측은 며칠 동안 조상의 허락을 기다린다. 그동안 집안에 궂은일이 생기면 조상이 허락하지 않는 혼인이라는 판단이 선다. 산을 지고 바람을 맞으며 나무와 짐승들 사이에서 음식을 구해야 하는 야오 문화의 이해는 애니미즘(animism)의 소환 공부를 재촉한다. 국가주의에 멍든 인류문화의 모순판이 야오 사람들에 의해서 드러나는 '조미아' 문화가 탈국가 체제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 국가주의의 희생양으로 세상을 떠도는 중동의 쿠르드는 인터넷상의 가상국가를 만들었다. 언젠가는 생명이 다할 국가주의를 대체할 인류의 아이디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것을 찾는 작업이 인류학자에게 부여된 사명일 수 있다. 에드워드 타일러의 '원시문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늘 푸른 시월 중순, 이틀간 요코하마의 카나가와대학에서 '야오의 다면성과 통일성'이라는 제목의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 남령회랑의 성들과 홍콩과 대만에서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국의 학자들과 미국에 거주하는 라오스 출신의 야오 가족도 참석했다. 야오 공동체를 형성한 식탁에서 "효이윱!"이라는 건배사로 술판이 벌어졌다. 평생 야오를 연구해온 야오족문화연구소장 히로타 리츠코(廣田律子) 교수의 각고의 노력 끝에 맺은 결실이다. 24편의 논문과 40여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었다. 재일교포 중국문학자인 교토대학의 김문경 교수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라오스에 근접한 태국 북부 치앙라이에서 온 사엘리오 박사의 자민속지(自民俗誌) 내용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야오의 살림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김 교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재일교포의 삶과 겹치는 장면들을 읽었을 것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0-21 18:34:02중국 남부의 호남, 귀주, 운남, 그 남쪽으로 광서성을 가로 지르는 산맥이 남령회랑(南嶺回廊)이다. 그 회랑은 베트남과 라오스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까지 이어진다. 중국인들이 이곳을 '회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동하며, 살고 있는 지역의 의미로 읽힌다. 지난 7월 타계한 예일대학의 제임스 스콧(1936~2024)이 2009년에 '조미아'(Zomia, 연세대 이상국 교수 번역)라고 명명했던 남중국과 내륙동남아를 연결하는 가파른 비탈의 산악이다. 한때는 ‘골든 트라이앵글’의 양귀비 재배로 소탕 대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북조선 동포들의 탈북 루트였다. 공자시대부터 정치권력을 피해 안식처를 찾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지배와 통제가 없는 무릉도원으로 여겼던 곳이다. 체구는 작지만 '잘 먹고 잘 살며', 심신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이곳의 주인공인 '야오(Yao)'다. 문자 역사를 자랑하는 한족들은 야오 사람들을 지칭하는 글자의 변천사를 보인다. 오랜 문서들은 '요(猺)', 중공시대부터는 '요(徭)', 요즈음은 '요(瑤)'라고 적는다. 개 구(狗) 변에서 두 인(人) 변, 구슬 옥(玉) 변으로 바뀌었다. 털북숭이 짐승 취급을 하다가 사람을 거쳐서 귀한 옥의 의미를 부여한다. 순제(舜帝)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내력을 전설로 이어오면서, 화전으로 곡식을 키우고 닭과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산악 노마드'다. 산의 정령이 야오에게 내려준 이슬이 가계 전래의 발효차 원조인 육보차(六保茶)며, 요순남진(堯舜南進)과 다라낭(茶箩娘) 전설이 차문화의 관념적 배경이다. 불과 물의 조화가 생명줄이고, 화전할 땅을 찾아 다닌다. 이동 단위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결속력이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강력하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조도(祖圖)엔 개 중에는 으뜸인 '용견'(龍犬)이 등장한다. 개가 조상인 토템신앙이다. 주몽설화와도 통하는 물을 건너는(過海) 그림도 포함한다. 첩첩산중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령(anima) 뿐이다. 죽은 조상이 정령에 가담한다. 사람이 죽은 자리에서 묘를 쓴다. 5대까지의 묘소는 기록으로 남겼다. 성묘를 하기 위해서 과거의 터전을 찾아가는 길은 월경(越境)일 수밖에 없다. 글자가 없었던 야오 사람들은 중국의 한자를 빌어서 자신들의 내력을 기록했다. '가선단'(家先單)과 '조도'(祖圖)라는 이름의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가보 문서다. 세월이 흐르면서, 야오 사람들이 사용하던 한자의 모습도 바뀌었다. 조상의 초혼굿을 위한 제례문은 모두 칠언시(七言詩)다. 해독이 가능할 것 같지만, 음차와 새로 만든 한자들이 상당수 가미되었다. 미얀마든, 태국이든, 베트남이든, 라오스든, 광서성이든, 야오 사람들의 구성진 가락이 붙은 칠언시 초혼문서의 형식은 동일하다. 굴원(屈原)의 ‘초혼사’보다도 자연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야오의 아이덴티티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이어가는 문화과정이 조상을 위한 제례다. 항상 새로운 산을 찾아서 개산(開山)을 하고 화전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과정이 녹녹치 않다. 정령의 허락이 있어야 개산도 농사도 가능하다. 문화내탄(文化耐彈, cultural resilience)의 조상제사는 그 자체가 생존전략이자 삶의 구심점이다. 서양학자든 동양학자든 연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오의 종교가 도교라고 규정하고, 도교의 논리로 야오의 종교를 분석하는 논문을 쓰지만, 아니다. 그것은 겉모양만 도교이고 도사라는 직함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대전통의 껍데기를 둘러쓴 겉모양만 본 것이다. 야오의 정신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대전통(大傳統)의 굴레 속에 꼭꼭 숨어 있다. 한자와 도교의 중국식 대전통은 야오의 소전통(小傳統)이 살아남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해준다. 마치 누에의 번데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고치라는 방탄막을 둘러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러한 현상을 포낭주의(包囊主義, cocoonism)라고 부른다. 자연의 은혜로 살아가는 야오 사람들의 문화에 비친 현대인류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가권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국경이라는 괴물이 야오 사람들의 이동 루트를 점점 더 철통같이 막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오 사람들은 월경하는 성묘길을 다닌다. 닭을 키워서 조상에게 바치는 제례를 지킨다. 목에서 나온 계혈은 조상맞이를 위한 제례장소를 씻기 위해 뿌려진다. 돼지도 새해와 추석의 조상맞이에 동원된다. 네 발 묶인 돼지는 멱을 따서 돈혈을 받는다. 제(祭)라는 글자가 '혈식'(血食)이라는 의미가 와 닿는다. 돼지는 삼등분으로 각을 낸다. 머리를 자르고, 목 부분에서 세로로 몸통을 절반으로 가른다. 닭과 돼지를 키우는 일은 집안의 노인 몫이다. 조상되기 전의 인생 단계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육도와 좁쌀로 만든 떡이 조상께 바치는 젯밥이다. 혼인에도 조상이 개입한다. 청혼을 받은 측은 며칠 동안 조상의 허락을 기다린다. 그동안 집안에 궂은 일이 생기면, 조상이 허락하지 않는 혼인이라는 판단이 선다. 씨받이 역할을 해야 하는 데릴사위를 들이는 과정에서도 조상이 개입한다. 산을 지고 바람을 맞으며 나무와 짐승들 사이에서 음식을 구해야 하는 야오 문화의 이해는 애니미즘(animism)의 소환 공부를 재촉한다. 국가주의에 멍든 인류문화의 모순판이 야오 사람들에 의해서 드러나는 ‘조미아’ 문화가 탈국가체제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다. 국가주의의 희생양으로 세상을 떠도는 중동의 쿠르드는 인터넷상의 가상국가를 만들었다. 언젠가는 생명이 다할 국가주의를 대체할 인류의 아이디어는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것을 찾는 작업이 인류학자에게 부여된 사명일 수 있다. 에드워드 타일러의 '원시문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하늘 푸른 시월 중순, 이틀간 요코하마의 카나가와대학에서 '야오의 다면성과 통일성'이라는 제목의 국제심포지움이 열렸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 남령회랑의 성들과 홍콩과 대만에서,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국의 학자들과 미국에 거주하는 라오스 출신의 야오 가족도 참석했다. 야오 공동체를 형성한 식탁에서 “효이윱!”이라는 건배사로 술판이 벌어졌다. 평생 야오를 연구해온 야오족문화연구소장 히로타 리츠코(廣田律子) 교수의 각고의 노력 끝에 맺은 결실이다. 24편의 논문과 40여명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었다. 재일교포 중국문학자인 교토대학의 김문경 교수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라오스에 근접한 타이 북부 치앙라이에서 온 사엘리오 박사의 자민속지(自民俗誌) 내용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야오의 살림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김 교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재일교포의 삶과 겹치는 장면들을 읽었을 것이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0-20 11:27:32[파이낸셜뉴스] 캄보디아 전통춤 '압사라 댄스'로 전세계 관객을 사로잡은 무용수가 아름다운 미모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5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소케아 킴랑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태어나 전통 춤 압사라를 배우며 자랐으며 현재 크메르 문화를 홍보하고 있다. 압사라는 캄보디아 왕실에서 시작된 전통 춤으로 매혹적인 손 동작이 특징이다. 물의 요정 또는 천상의 정령을 의미하는 아프사라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느리면서 섬세한 춤 동작은 우아한 전통 음악에 맞추어 진행되는데,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가락과 몸 동작들에 제각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올해 24세인 킴랑은 자신의 예술을 마스터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캄보디아 미술 중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곳에서 전통 크메르 무용을 배운 후 국립 경영 대학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캄랑은 지난해 캄보디아가 주최한 제32회 동남아시아경기대회 크메르 신년환영 공연에 출연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9월에는 뉴질랜드 최고봉 아오라키 마운트쿡의 고요한 설경 속에서 아스파라 댄스를 선보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공연은 좋아요 2만3000개, 페이스북 리포스트 8200개를 기록했다. 캄보디아 매체에 따르면 킴랑은 일본, 태국, 프랑스, 독일,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을 펼쳤다. 크메르 전통 문화를 홍보해온 킴랑은 인스타그램에서 13만3000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미인대회에 나가보라는 권유에 대해 “영화 출연이나 미인대회에 나가는 것은 성적인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거절 이유를 밝혔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6-05 15:34:17[파이낸셜뉴스] 손바닥으로 얼음 ‘장풍’을 쏘던 엘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드레스를 벗은 레깅스 차림으로 거친 파도에 맞서 서퍼의 면모도 뽐낸다. 야생마처럼 생긴 물의 정령을 길들인 그는 이제 말을 타고 푸른 하늘을 달린다. 속편은 늘 1편의 기대치를 감당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렛잇고’ 열풍을 일으킨 ‘겨울왕국’의 속편이 5년 만에 돌아왔다.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의 전형성을 깬 이 작품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여성 중심의 서사와 왕자와의 사랑보다 자매애를 우선시한 드라마로 세계 소녀 팬들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다. 남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보다 혼자 외롭더라도 자유롭게 살겠다는 엘사의 자유선언은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울라프와 스벤 등 사랑스런 캐릭터들의 재롱과 중독성 강한 뮤지컬 넘버까지 ‘겨울왕국’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새장을 열어젖혔다. ‘겨울왕국2’는 전편에 이어 두 자매의 새로운 모험담을 다룬다. 아렌델 왕국의 여왕이 된 엘사가 동생 안나와 눈사람 울라프, 안나의 남자친구 크리스토프, ‘반려 순록’ 스벤과 함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의문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연이어 아렌델 왕국에 자연재해가 닥친다. 엘사와 안나 자매는 왕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모험에 나선다. 엘사와 안나의 자매애는 여전히 돈독하다. 안나는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준비하는 크리스토프의 마음은 눈치 못 채고, 이번에도 언니 걱정이 먼저다. 둘은 함께 혹은 각자 그들 앞에 닥친 시련에 용기 있게 맞서며, 결국 자신의 본모습에 맞는 삶의 형태를 찾는다. ‘마법의 숲’의 비밀을 찾기 위한 이번 여정은 전편에 비하면 웃음기가 많이 줄었다. ‘렛잇고’를 이을 중독성 강한 넘버도 1편에 비하면 약하다. 물론 ‘인투더 언노운’ ‘쇼 유어셀프’ 등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는 있다.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온 엘사와 안나는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차다. 특히 엘사가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푸른 드레스를 벗고, 바지 차림으로 거친 파도에 맞서는 장면은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스크린에 재현한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의 자연풍경도 아름답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또 다른 메시지로 담아낸 속편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불의 요정 ‘브루니’도 새로 등장한다. 울라프의 등장만큼 강력하지 않으나, 브루니도 나름 귀엽다. 무엇보다 숲의 비밀을 찾아 나선 여정이 엘사가 왜 마법의 능력을 갖고 태어났는지 그 이유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1편과 2편이 합쳐져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크리스 벅 감독의 말대로 ‘겨울왕국2’는 전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결말로 이번 속편이 탄생한 이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두 자매가 전편에 비해 각자의 정체성에 더 잘 맞는 길을 찾아간다. 1편의 OST를 작곡한 크리스틴 앤더슨-로페즈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엘사와 안나가 성장했듯, 실제로 성장한 딸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 우리도 새로운 부모의 단계를 맞이하는데, 그런 변화를 이번 작업에 반영했다”고 부연했다. 누구나 부모나 친구의 도움 없이 홀로 망망대해로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번 속편에서 엘사는 자신을 집어 삼킬 듯한 파도 앞에 홀로 서고, 안나 역시 소중한 이를 잃은 절망적 순간에도 눈물을 닦은 뒤 자신을 믿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다. ‘겨울왕국’이 나온 지 5년, 그 사이 1편을 본 관객이 성숙했듯이 엘사와 안나 역시 이번 여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21일 개봉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19-11-19 17:01:18작품 편식이 심한 국내 오페라.발레 무대에 신작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다. 오는 28일과 29일 하루 사이로 국립오페라단과 국립발레단이 각각 내놓는 드보르자크의 '루살카'와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가 반가운 이유다. 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냥 설렐 수 없다. 특히 직접 공연을 선보이는 가수나 무용수라면 작품과 관객을 처음 연결하는 역할로서 책임감이 한층 올라간다. 게다가 이 무대가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 자신의 얼굴을 알리는 자리라면…. 공교롭게도 두 작품에 출연하는 주인공들이 딱 그런 상황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다가 '루살카'로 국내 데뷔하는 소프라노 서선영(32)과 테너 권재희(35), 국립발레단 입단 4개월 만에 '세레나데'의 주역을 꾀찬 발레리노 박종석(25). 설렘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있는 이들을 열기 가득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시간 차를 두고 만났다. '체코판 인어공주' 오페라 루살카의 두 주인공 서선영 & 권재희 ■'루살카'의 젊은 피, 서선영.권재희 "제 유럽 데뷔작이었던 '루살카'로 한국에 데뷔한다니 벅차네요. 한국에서 이 작품을 하면 좋겠다 꿈꿨는데 현실이 됐어요. 무엇보다 뻔한 작품이 아닌 보석같은 새로운 작품으로 첫 인사를 하게 돼서 기뻐요."(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한국 초연작인데다가 저 스스로도 생소한 체코어 작품이라 부담스럽더라고요. 내심 좀더 저한테 익숙한 작품으로 한국 무대에 서고 싶단 생각이 있었거든요."(권) 19일 만난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권재희는 첫 데뷔 무대를 앞두고 기대감과 긴장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가수다. 2011년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서선영은 곧바로 스위스 바젤국립극장 전속 가수로 발탁되며 화제가 됐다. 그해 '루살카'의 타이틀롤도 경험했다. 밀라노 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권재희는 오는 10월 '라보엠'이 초연된 토리노 레지오 극장에서 '라보엠'의 루돌포 역으로 데뷔한다. '루살카'는 체코 출신 작곡가 드보르작의 말년 작품이다. 독일 작가 푸케의 소설 '운디네'를 바탕으로 물의 정령 루살카의 사랑, 왕자의 배신, 복수를 그려 '체코판 인어공주'로 불린다. 루살카와 왕자 역을 맡은 두 커플 중 서선영과 권재희는 '젊은 피'다. 실제 주인공과 연령대가 비슷할 수록 몰입도가 높은 게 인지상정. 이들 스스로도 "'케미'(남녀의 어울림을 뜻하는 신조어)가 최고"라며 입을 모았다. 두 사람에게 이번 '루살카'의 매력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나라 정서와 가장 온도가 잘 맞는 작품이에요. 왕자가 저에게 사랑을 얘기할 때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리가 풀릴 정도예요."(서) "전통적인 이탈리아 스타일과 미니멀리즘의 북유럽 스타일을 잘 버무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대와 연출이 세련되면서도 볼거리가 많습니다."(권) 조지 발란신 작품 '세레나데'의 주역 박종석 ■박종석 "지영 누나를 위한 '세레나데'" "하…. 부담을 안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신인을 주역으로 올려주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잘 해야죠. 무대에 오를 때 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있다! 마인드 콘트롤을 하죠." 20일 만난 박종석 사실 신인이라고 하기엔 경력이 화려하다. 선화예중 3학년 때 미국 워싱턴 키로프발레아카데미에 들어간 그는 18세에 오디션을 통해 워싱턴 발레단에 입단해 2년, 이어 펜실베니아 발레단에서 3년을 활동하고 2014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주역을 맡은 '세레나데'도 이미 펜실베니아 발레단에서 공연한 경험이 있다. 당시 캐스팅 5순위였던 그는 2주동안 매일 연습이 끝난 뒤 캐스팅 권한을 가진 트레이너에게 자신의 춤을 보여줬다. "아무 말도 안해도 좋다. 캐스팅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연습 한번만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나중에 캐스팅 표에 제 이름이 있더라고요." 이토록 열정을 쏟은 건 무대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무대에서 달랬다"며 "무대에 오르면 심장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세레나데'를 비롯해 "음악성이 뛰어나고 스토리가 없는" 조지 발란신의 작품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뚜렷한 줄거리가 없으니까 제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또 음악이 춤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서 춤 출 때 푹 빠져서 즐길 수 있어요." 지난해 유니버설발레단에서 국립발레단으로 거처를 옮긴 이유도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작년에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국립발레단만이 가진 재미있는 작품들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는 이번 공연에서 1997년 최연소 입단한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파트너를 이룬다. 그는 김지영을 한마디로 "하늘"이라고 했다. "누나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모든 발레리노들의 꿈일걸요?"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
2016-04-20 18:2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