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관인가, 고급 저택인가.' 서울 용산에 있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었다. 거대한 건물 지하에 수영장부터 140㎡ 집, 레스토랑, 실험실을 닮은 산업용 주방까지 설치된 세련된 집이었다. 금방이라도 몸을 누워 휴식을 취하고 싶은 선망의 '풀 하우스( Full House)'였다. 집안에 들어가면 각 방 마다 테마가 있어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한 방에는 건축 설계 도면이 있어 어느 건축가가 주인장일 것 같지만 거실에는 의문의 한 소년만 있었다. 소년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I'(나)라는 글자를 쓰고 있다. 시든 꽃다발이 놓인 현관의 거울에는 '다시는 보지 말자'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도대체 이 집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집은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 드라그셋으로 구성된 작가 듀오 엘름그린&드라그셋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지은 주거 공간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전시장을 공항이나 기차역, 병동 등으로 전환하는 공간 작업으로 유명한 엘름그린&드라그셋의 개인전 '공간들(Spaces)'전(展)을 내년 2월 23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두 사람의 30년 협업을 기념해 그들의 공간 작업을 한자리에서 조명한다. 무엇보다 실제 크기에 버금가는 대형 수영장, 집, 레스토랑이 전시장 내 들어서는 등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와 형태의 설치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술관은 크게 수영장, 집, 레스토랑, 주방, 아틀리에 등 총 5곳이다. 첫 번째 전시실은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을 갖춘 140㎡ 규모의 집이다. 두 번째 전시실에는 대형 수영장이 나타난다. 물이 빠진 수영장은 작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모티프로 오늘날 공공장소의 쇠퇴와 공동체의 상실을 암시한다. 수영장을 무대로 고대 작품을 연상시키는 백색의 조각들이 등장해 현대의 남성성과 고립 및 성장이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다. 조각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으며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레스토랑 같은 설치 작품 '더 클라우드(The Cloud)'는 현실 착시 현상까지 보여준다. 홀에 앉아 영상 통화 중인 사람은 조각 작품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실험실 같은 주방, 작품 제작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틀리에 공간이 이어진다. '산업용 주방'과 '실험실'이라는 동떨어져 보이는 두 장소의 대조는 화학 기반 요리법인 '분자 요리학'과 현대 식품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기후 변화, 인구 증가, 자연 자원의 감소 속에서 실험실 과학에 더욱 의존하고 있는 현세태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작가들은 전시 끝에 이르러 일상 속 공간이 아닌, 흰 벽으로 둘러싸인 작업실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거울로 이루어진 캔버스는 인물 조각을 비롯해 방문자 모두와 주변 공간을 반사함으로써 조각, 회화, 작품, 공간, 관람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밖에 두 개의 동일한 세면대와 거울, 이를 연결하는 길고 구불구불한 강철 배수관으로 구성된 조각 작품인 '헤어지다'는 감정적 연결이 해소되기 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통찰력 있게 조명한다. 배수관은 파트너 간의 친밀함과 감정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을 표현한다. 엘름그린은 "우리에게 미술관은 공간 그 자체가 캔버스이자 재료이며 작업의 과정 그 자체"라면서 "조각 작업도, 벽을 활용한 작업도, 오브제 작업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작품이 공간을 변형하는 설치품 전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면적과 볼륨이 큰 공간이라 벽에 붙은 작은 엽서처럼 시야에서 사라지는 작업을 하고 싶진 않았고 공간을 잘 활용하고 싶어 5개의 몰입형 설치물을 배치했다"고 강조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19 18:15:04[파이낸셜뉴스] M87 블랙홀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된 전시인 김규림 작가의 개인전 '흔들리는 그림자'전(展)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유휴공간에서 내달 6일까지 열린다. 이번 김 작가의 작품들은 블랙홀 주변부에서 발생하는 '흔들리는 그림자' 블랙홀 주변의 가스가 움직이면서 밝은 부분의 위치가 변하는 현상의 실체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는 전파 망원경, 광학 망원경, CCD 센서 카메라, 16mm 필름 카메라 등 다양한 기술 장치들이 우리의 시각과 감각을 어떻게 반응하게 하는지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기술과 물질 사이 시각적 경험의 교차점을 다층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고도화된 첨단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풍경을 SF적 상상으로 그려낸 전시로, 자율주행차 '요람'과 주인공 '레이'가 당면한 사건을 통해 인간 연결의 취약성을 탐구한다. 그는 인간과 인공적 존재 간의 관계를 둘러싼 윤리적 과제를 재고해볼 것을 제안한다. 이와 별도로 정서희 작가 개인전 '사랑의 요람'도 서울 성동구 '오시선'에서 오는 21일부터 내달 5일까지 개최한다. 정 작가는 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환경적, 사회적 구조를 살펴보고 이를 디지털 프로세스로 옮겨와 사변적 세계를 건설해왔다. 또한, 오늘날 마주하는 환경 문제와 초고속 성장하는 첨단 자율 시스템 및 인공지능 기술을 다관점으로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내러티브로 질문을 제기한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층 유휴공간과 오시선은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현장 방문하여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난 2008년부터 역량 있는 신진 작가에게 전시장 제공, 홍보와 출판물 제작, 전시 자문 등을 지원해왔다. 2016년부터는 유망 기획자까지 추가 지원해 운영 중이다. 선정된 미술인은 전시 구성, 신작 제작, 전시공간 섭외 등을 위한 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 김 작가와 정 작가는 올해 '신진미술인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작가들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17 08:20:03[파이낸셜뉴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과천관에서 성황리에 진행중인 '연결하는 집: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를 360°VR 전시투어 영상으로 제작해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다고 13일 밝혔다. ‘MMCA VR’은 한국미술의 진면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과 전시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로 담아낸 영상 시리즈이다. 지난 2021년 시작된 MMCA VR은 실제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에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접목하여 전 세계 어디서든 온라인 접속을 통해 생동감 있게 작품과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왔다. 특히, 올해부터는 기존 MMCA VR을 개편하여‘360°VR 전시투어’를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했다. 미디어콘텐츠 회사 모티브(MOTIV)와 협업한 360°VR 전시투어는 전시장 전체를 초고화질 360도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머시브 비주얼 이펙트(Immersive Visual effect: 몰입형 시각효과)와 다양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적용해 관람자가 모니터 속 평면 공간을 넘어 실제 전시장에 있는 것 같은 경험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통해 보다 생동감 있는 작품 감상 기회를 선사한다. 360°VR 전시투어는 주요 작품 스토리와 함께 영문 음성 해설, 국·영문 자막이 서비스되며 약 10분 내외의 영상으로 전 세계 어디서든 유튜브 접속을 통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후에는 자수전과 건축전에 이어 추가로 4편을 제작해 총 6편의 360°VR 전시투어 영상을 선보일 예정이며, '연결하는 집: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전시는 내년 2월 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13 13:55:14[파이낸셜뉴스] 국립현대미술관은 12일 김인혜씨를 학예연구실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실장은 2002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약 20년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기획과 소장품 및 아카이브 수집, 서울관 개관 준비, 근대미술 연구 및 전시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2017년 9월부터 덕수궁관에서 여러 전시를 기획했고 월간미술대상(2022), 정진기언론문화상(2023) 등을 받았다. 신임 김 실장의 임기는 2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전문임기제 가급 공무원으로, 공모를 통해 선발한다. 김 실장 임명 이전 학예연구실장직은 2022년 5월 전임자의 임기 만료 이후 2년 넘게 후임자를 뽑지 못하고 장기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왔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12 10:49:49[파이낸셜뉴스] 부산시가 최근 남구 이기대공원 일대에 프랑스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를 진행하면서 부산 지역 여론이 찬성과 반대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지난 9일 퐁피두 분관 유치 협약 내용이 공개된 뒤 이를 반대하는 지역 시민사회는 막대한 혈세 투입과 지역 예술계의 입지와 지원이 줄어들 것을 이유로 철회를 촉구했다. 반면 지역 산업계 등은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관광도시 도약을 위해 퐁피두 분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1일 부산시에 따르면 박형준 부산시장은 민선 8기 공약으로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를 공언했고, 그 일환으로 프랑스 퐁피두센터 유치를 추진, 협약에까지 이르게 됐다. 시는 부산콘서트홀(부산진구)과 오페라하우스(동구)와 함께 퐁피두센터(남구)까지 권역별로 문화 인프라 거점시설을 세워 세계 문화관광 수요를 대폭 흡수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지역 일각에선 이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계에서는 전원석 시의원(사하2·민주)이 앞장서 재검토를 촉구했다. 그는 “풍피두는 세금으로 2000억 이상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건립비·운영비와 매년 지불할 수십억원의 로열티가 든다. 숙명여대 용역에 따르면 조성 예정인 미술관의 면적과 관람객, 운영 인원은 그 규모가 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보다 더 적다”며 “무늬만 세계적인 미술관이고 내용은 기존 미술관보다 적은 세금 먹는 하마를 정말 유치해야 하나”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도 ‘퐁피두 유치반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이날 발족하고 유치 철회까지 단체행동을 이어갈 것을 예고했다. 이들은 “시민의 혈세가 대규모로 투입될 뿐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임에도 시와 시의회는 사업 과정을 모두 비공개함으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며 “퐁피두는 재정 악화로 프랑스 재정당국의 지적까지 받아 이를 만회하고자 해외 분관 유치에 목메는 상황에 시장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부산이 세계적인 문화예술 인프라 확보로 문화관광 명소도시로 거듭날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국제 컨설팅 업무를 해온 서지연 시의원(비례·무소속)은 전날 전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시의 퐁피두 유치 협약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혈세낭비와 경제적 효과 미미 등의 주장 또한 부산 문화예술 발전을 방해하는 발언이다. 퐁피두 세계 분관은 이미 여러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됐으며 지역 문화산업을 확대하는 추가적인 투자”라고 반박했다. 퐁피두 유치를 찬성하는 단체들도 나오고 있다. 동남권디자인산업협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 디자인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이자 부산 시민으로 퐁피두 부산 분관 유치를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글로벌부산 시민연합을 주도로 한 시민단체 연합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프랑스도 에펠탑 건설 과정에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며 부산도 광안대교 건설 당시 반대에 부딪혔다. 무조건적인 반대는 지역 발전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퐁피두 유치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시는 “퐁피두 분관에 매년 70억원 이상 적자가 날 것이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시가 시행한 관련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파급효과는 지역에서만 4483억원으로 추산된다”며 “부산 분관 유치에 특정 갤러리와 작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에 대한 주장도 사실이 아닌 정치공세다. 시 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에 유감을 표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2024-09-11 14:23:00[파이낸셜뉴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덕수궁관에서 오는 12일부터 내달 13일까지 'MMCA 소장품전:작품의 이력서'전(展) 등 2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린다고 11일 밝혔다. 덕수궁 3, 4 전시실에서 열리는 'MMCA 소장품전:작품의 이력서'전은 미술관 소장품 중 '관리전환' 방식으로 수집된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관리전환은 정부 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소장한 미술품을 해당 기관 요청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이 이관받아 소장하는 방식이다. 1969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설립을 계기로 1970년대 초부터 일부 정부 기관과 공공기관이 소장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되기 시작했다. 주로 창덕궁,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극장,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청와대 등에서 작품이 관리전환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관리전환된 작품들은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기 이전, 국가가 미술 진흥이나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높인다는 취지 등으로 취득한 작품"이라며 "근현대사·미술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2년 정부미술은행이 설립되기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전환된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장우성의 '귀목(歸牧)'(1935)과 김창락의 '사양(斜陽'(1962), 김환기의 '산월'(1958), 박서보의 '원형질(原形質) No. 64-1'(1964) 등 구상미술에서 추상미술로 변해가는 시기의 작품과 배렴의 '심산춘래(深山春來)>(1930년대 후반), 민경갑의 '영산홍'(1977), 박광진의 '근대화된 새마을농촌'(1977) 등을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덕수궁관 1,2 전시실에서는 같은 시기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년:지금, 잇다'전도 열린다. 1954년 문을 열어 올해 개원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예술원의 현재 회원과 세상을 떠난 작가 70명의 작품과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초대회장 고희동을 비롯해 이상범, 장발, 손재형, 배렴, 김환기, 윤효중, 노수현, 도상봉, 김인승 등 세상을 떠난 회원 작품 53점과 전뢰진, 이신자, 최종태, 이종상 등 현재 생존 회원 17명의 작품 34점 등을 소개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11 10:51:18[파이낸셜뉴스] 리움미술관이 '미궁'으로 변신했다. 여러 개의 통로로 관람객들은 전시의 방향을 쉽게 잃을 수 있지만 그 과정 자체가 전시의 묘미다. 길을 잃은 듯한 순간들 속에서도 관람객들은 각자의 길로 전시 공간을 탐험해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고 '미궁'을 빠져나온다. 여러 개의 통로로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주는 2024 아트스펙트럼 '드림 스크린'전(展)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오는 12월 29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젊은 세대가 경험하는 '방향성의 상실'과 '고립감'을 반영한 것으로, 관람객이 각자 길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국내 및 아시아에서 주목 받는 신예 작가 26명(팀)의 작품 60점을 선보여 밀레니얼 이후 세대의 감각과 시대상을 살펴본다. 그간 아트스펙트럼은 지난 2001년 호암갤러리에서 청년 작가 서베이 전시로 시작해 국내 신진 작가 등용문으로 기능해왔다. 이번 아트스펙트럼은 수상 제도를 폐지해 경쟁 체제를 탈피하고, 비정형적인 전시의 형태를 실험하는 전환을 꾀한다. 전시의 모티프가 되는 공간은 미국 서부 산호세에 위치한 '윈체스터 하우스(Winchester House)'라는 귀신의 집이다. 윈체스터 하우스는 총기 사업으로 부를 일군 윈체스터 가의 부인이 총기로 사망한 이들의 영혼이 자신을 찾아오지 못하도록 설계한 복잡하고 독특한 구조로 알려져 있다. 이를 참조한 전시장 마당, 입구, 복도, 20여개의 독립적인 방으로 구성된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구성은 각 작가의 실천을 밀도 있게 보여줄 뿐만 아닌, 다양한 의미 체계가 공존하는 오늘날의 시대상을 재고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지역적 맥락과 역사적 유산을 탐구하고 동시대적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특히 작품들 가운데 김희천 작가의 '메셔(2018)'는 이번 전시명인 '드림 스크린' 취지에 크게 부합한다. 피부 이식 수술 도구에서 제목을 가져온 '메셔'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신체에 들러붙어 그 존재를 감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범위가 확장되면 세계는 전부 스크린이 될 수 있고, 미래에는 화면 속 신체의 이미지가 신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중국 작가 보 왕의 '아시안 고스트 스토리(2023)'도 이번 전시장의 미로처럼 유령적 존재의 이동 경로를 따라 긴장 상태에 놓인 홍콩 등 냉전 질서로 개편된 동아시아의 경공업, 이주, 디아스포라의 국면을 다룬다. 이밖에 태국 작가 카몬락 숙차이의 '붉은 연꽃'(2023)도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순결이 깨지자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희생시키고, 그녀는 붉은 연꽃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내용의 민간 설화화를 토대로, 믿음의 힘과 사회의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 즉, 작가는 자신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상상하고, 사진을 찍어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리움미술관 측은 "드림 스크린은 밀레니얼 이후 세대가 인터넷, 게임, 영화 등 '스크린'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경험을 체화하며 물리적인 세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된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며 "드림 스크린은 허구적지만 보다 깊은 무의식의 영역을 드러내는 '꿈'과 직간접적인 경험을 중개하는 다종다양한 '스크린'을 합성한 표현의 전시"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09 10:30:22[파이낸셜뉴스]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 뉴미디어 소장품을 소개하는 '뉴미디어 소장품전-아더랜드'전(展)을 내년 3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국제적 명성의 뉴미디어 작가인 더그 에이트킨, 에이샤-리사 아틸라, 제니퍼 스타인캠프 3인의 대표작 3점을 소개한다. 해당 작품들은 최근 5년간 현대미술관회 및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의 기증을 통해 소장하게 된 작품들이다. 해외미술 기증 소장품을 선보여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널리 알리고, 뉴미디어 미술의 동시대 경향도 함께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3점의 초대형 뉴미디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특별한 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에이트킨의 '수중 파빌리온'은 원형전시실 안에 거대한 박스 형태의 전시장을 설치하고 공간을 이중으로 구성해 실제 바다 속에서 풍경의 변화를 관찰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아틸라의 '수평-바카수오라'는 거대한 가문비나무를 13m의 대형 스크린에 투사해 관람객이 작품 속 흔들리는 가문비나무, 그림자의 변화 등 시각적·촉각적 자극을 경험하게 한다. 스타인캠프의 '정물 3'은 대형 스크린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꽃과 과일을 투사해 관람객이 앉아 있는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자연이 서로 뒤얽히는 독특한 공간을 구현한다. 화면 속의 꽃과 나무, 바다와 숲에 집중하면서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명상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뉴미디어 소장품의 국제적인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기회"라며 "해외 소장품 수집에 있어 기증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국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09 10:19:20[파이낸셜뉴스] ' 박테리아와 냄새, 튀긴 꽃...' 유기적이고 일시적인 재료를 사용해 인간의 감정과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더 나아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감각의 실험실'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삼성문화재단은 오는 12월 29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아니카 이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전(展)을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산과 여성주의 등 사회적 이슈를 담아낸 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의 아시아 첫 미술관 전시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10여년간 제작된 작품 33점이 출품된다. 전시명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간화선(看話禪, 화두를 사용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선)에서 사용되는 화두의 특성을 차용했다. 명상적이고 영적인 전환을 반영하는 이 구절은 작가가 초기부터 각종 비인간 생물과 기계, 그리고 협업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저자성(著者性)과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해 온 작업이 결국 '나와 타자의 경계 없음'에 대한 탐구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2세에 미국으로 이민 간 아니카 이에게 이번 전시는 특별하다. 선사 인류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가설과 조류 및 균류의 이동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은 전시의 이론적 기반을 구성한다. 이처럼 물질적, 시간적, 정서적 차원을 아우르는 두 갈래의 탐구는 한인 교포로서 개인적 여정을 반영하고, 나아가 이주와 상호 연결성이라는 작업의 주제를 부각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인 영상 작품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2024)는 죽음 이후를 탐구하는 작가의 대규모 프로젝트 '공'(空)에 속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사후에도 작업이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아니카 이 스튜디오가 생산한 기존의 작업물을 데이터 삼아 훈련된 알고리즘이 작가 스튜디오의 '디지털 쌍둥이'로 기능하며, 공동의 연구와 협업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아니카 이 스튜디오의 유기적인 작업 방식을 반영한다. 아니카 이는 이 작품에 대해 "우리의 경험은 3차원의 존재에 묶여 있지만, 인식이 높아지면 5차원의 양자장, 즉 순수한 의식과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신작인 '또 다른 너'(2024)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 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끝없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인피니티 미러 형태의 작품 속에는 해양 유래 형광 단백질을 발현하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미생물이 자라면서 연하게 색을 발한다. 평범한 미생물이 합성생물학을 통해 해파리나 산호와 같은 해양생물의 유전질을 계승하는 과정은 고대의 바다와 현재의 우리 사이의 연결지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 '너의 손은 전자레인지에 데운 베개 같아'(2015)도 미생물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을 표현했는데, 코로나 등 보건 위기 상황에서 격리라는 불가피한 조치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튀긴 꽃으로 만들어진 신작 '생물오손 조각'(2024) 연작은 2000년대 작업에서부터 등장한 튀긴 꽃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튀겨진 꽃의 기름진 외형과 시큼한 부패한 냄새는 일반적으로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과 충돌한다. 이번 전시의 실험성을 잘 반영한 '방산충'(2023) 연작은 고생대 캄브리아기 화석에서도 발견되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인 해양성 플랑크톤인 방산충류를 참조한다. 방산충의 형태를 닮은 모습과 마치 숨을 쉬듯 고동치는 조명,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렸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촉수는 유기체와 기계의 소통을 상상하는 작가의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반영한다. 이밖에 '공생적인 빵'(2014)은 장내 미생물군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부드럽게 빛나는 비누 조각에는 박테리아의 모습이 투사되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아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지난 10년간 아니카 이의 주요 작업을 망라하고 작업의 큰 전환을 보여주는 신작을 처음 공개하는 전시"라며 "현재까지의 작품 세계를 톺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2024-09-05 08:02:569월 2일, 샤넬 앰버서더 지드래곤(G-DRAGON)과 배우 하정우와 정려원, 모델 아이린이 한자리에 모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많은 셀러브리티들이 자리를 빛낸 이번 행사는 삼성문화재단(이사장 김황식)이 운영하는 리움미술관이 퍼블릭 프로그램이자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가 후원한 ‘아이디어 뮤지엄’의 일환으로 토마스 사라세노와 에어로센 파운데이션이 함께하는 《에어로센 서울》 개최를 기념해 진행되었다. 《에어로센 서울》은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가, 활동가, 지리학자, 철학자, 과학자, 기술자, 사상가 등이 모여 생태사회 정의를 위한 공동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학제 간 커뮤니티로, 국제 에어로센 커뮤니티와 함께 모두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시대를 향한 생태사회 정의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리움미술관은 2023년 12월 중장기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을 런칭했다. 2024년 첫해에 심포지엄, 필름 스크리닝, 리딩 세미나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생태적 전환에 대한 화두를 던졌으며, 올해 토마스 사라세노의 퍼블릭 프로젝트 《에어로센 서울》로 ‘아이디어 뮤지엄’의 첫 번째 사이클을 마무리한다. 한편, 지드래곤, 하정우, 정려원, 아이린이 참석한 리움미술관 퍼블릭 프로젝트 《에어로센 서울》은 9월 29일까지 진행한다.
2024-09-03 13: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