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 연방(소련) 대통령이 사망했다. 향년 91세. 30일(현지시간) 타스, 스푸트니크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 임상병원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오랜 투병 끝에 이날 저녁 사망했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소련의 첫 대통령이자 전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전제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듬해 동서독 통일을 사실상 용인해 서방에서 냉전 해체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날로 악화하는 경제난 속에 군부의 쿠데타 시도 등으로 정국 혼란을 겪은 소련이 1991년 12월 해체됨으로써 고르바초프는 완전히 권력을 상실했다. 올해 초에는 모스크바 외곽의 전원주택인 다차(dacha)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22-08-31 06:05:07영국이 미국의 최신형 전술핵 무기 B61-12를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 떨어져 있는 서퍽의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자비하게 침략하는 것을 보고 러시아의 침략이나 핵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국방정책이다. 영국도 핵무기를 260기가량 보유한 나라이지만 쓸 일이 없으니까 시간이 오래 지나며 성능이 떨어져 실전에 쓰기가 어렵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핵무기의 성능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들고, 하물며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핵무기 생산 경쟁을 펼쳤지만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핵무기감축협정(START), 즉 핵무기 숫자를 크게 줄이는 데 합의할 만큼 돈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SALT 1이나 SALT 2는 핵무기 운반수단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전략폭격기 등을 제한하는 협정이었다. SALT(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의 L은 'Limitation'을 줄인 문자로 핵무기 '제한' 협정이었다. 그러나 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ies)의 R은 'Reduction'을 줄인 말로 문자 그대로 감축이었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조차도 핵무기 생산뿐만 아니라 성능을 유지하는 데 큰돈이 들어가니까 숫자를 줄이는 데 합의를 한 것이다. 영국도 핵무기 성능개선 사업에 돈을 크게 투자하지 않으니 핵무기가 낡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데 큰 곤란을 겪을 것 같으니까 세계 최고의 맹방인 미국의 첨단 전술핵무기를 영국 내에 배치하는 것으로 정책결정을 한 것이다.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 중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튀르키예, 이탈리아에 공중투하용 B61-3이나 B61-4 핵폭탄이 100여기 배치돼 있다. 그러나 영국에는 미국의 최첨단 B61-12를 배치하게 되는데, 폭발력이 히로시마 원폭의 3배나 되는 가공할 핵무기이고, TNT로 환산하면 약 5만t의 폭발력을 갖고 있다. B61-12 핵폭탄은 초기의 B61 전술핵 시리즈와는 다르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레이더가 내장돼 목표물을 찾아가는 정확도를 더욱 높였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확장억지력만 갖고 안심할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이 늘고 있다. 한국이 핵무기를 자체적으로 보유하자는 젊은 층의 의견도 늘고 있지만 한국 스스로 핵무기를 만드는 데는 미국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스스로 핵무기를 제조하면 모든 기술잠재력을 갖고 있는 일본도 핵무기를 제조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일본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그래서 한국도 영국처럼 미국의 최신 전술핵 B61-12 시리즈를 배치해 달라고 미국을 설득하는 선택이 가장 현실적일 것으로 판단된다. 영국도 과거 미국의 핵무기를 배치했다가 내보낸 적이 있듯이 한국도 미국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미국으로 돌려보낸 적이 있다. 영국보다 북한의 핵위협이 더욱더 현실적이 된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에 최첨단 전술핵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2024년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쓰는 저농축우라늄 시장은 러시아가 46%, 영국·독일·네덜란드 합작회사가 22.8%, 프랑스가 22.5%, 중국이 10.5%, 미국이 8.1%인데 미국이 과도한 러시아 점유율에 대응하기 위해 저농축우라늄 생산을 재개하기로 결정하고 러시아 의존에서 탈피한다. 국제사회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원자로 연료 공급부족에 대비해 한국도 자체적으로 언제든지 원자로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미국과 핵외교를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원심분리기 설치는 북한과 중국의 해양군사력 확장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력잠수함을 보유해야 하는데 20%가량의 농축우라늄을 수입에 의존한다면 독립적 국방정책을 수행하는 강대국 대한민국이 될 수 없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2024-03-03 19:05:35[파이낸셜뉴스] 오는 18일(현지시간)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는 미국 역사 외교의 상징적인 장소로 알려졌다. 17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의 중재로 세계 역사의 굵직한 합의가 이끌어낸 장소로 이번 3국 정상회의 중요성을 부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취임 후 약 30여 차례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했지만 외국 정상을 이곳으로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대통령의 전용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약 100km 떨어진 메릴랜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이 모두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어 천연 요새로 알려졌다. 총면적은 73㏊로 주변이 숲으로 우거져 있어 정상들이 훨씬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을 갖추면서 방문했던 많은 세계 정상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VOA는 보도했다. 캠프 데이비드에는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에서 가깝게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으로 집무실과 회의실, 수영장, 골프장 등 다양한 휴게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미 해군이 관리하는 군사시설로 분류돼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차단돼 있는 곳이다. 캠프 데이비드는 역사적인 외교의 무대로 자주 활용돼 왔다. 지난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과 종전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미국과 옛 소련 냉전이 본격화됐던 지난 1956년에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두 정상은 미국 서부극 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다. 1978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적대적이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중재에 나서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곳에서 12일간 협상 끝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두나라 간 협정으로 베긴과 사다트는 1978년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할 수 있었다. 이밖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등 각국 정상들이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해 미국 대통령과 우의를 다졌다. 한국 정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4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친교를 과시한 바 있다. VOA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대신 이곳을 중요한 외교 무대로 활용한 것은 격의 없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정상 간 우의를 다지면서 밀도 있는 논의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캠프 데이비드 근무자들의 말을 인용해 역대 미국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외교적 행위에 의미와 상징을 부여하는 데 이 장소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왔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한미일 정상 회의를 역대 미국의 주요 외교적 성과와 같은 반열에 두고 이를 대내외에 알리려는 목적도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3-08-18 10:26:464일은 '10·4 선언' 15주년이다. 2007년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남북은 2000년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첫머리로 모두 5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매번 화려했던 합의문은 늘 공수표로 끝났다. 북핵 해결도 회담의 단골 메뉴였지만, 단 한 번도 이행되지 않았다.문재인·김정은 간 3차례 회담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의 작품인 9·19 군사합의 4주년을 맞아 윤석열 정부를 겨냥했다. "정부가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는 이행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과녁이 빗나간 메시지였다. 그 직전에 김정은 정권이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는 등 합의를 확실히 사문화시켰으니…. 2018년 9월 김정은이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가 최근 공개됐다. 그 속엔 "향후 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바란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트럼프가 러브레터로 부른 서한을 보낸 시점은 문·김이 '9·19 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틀 뒤였다. 김정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라고 해놓고 문 전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격이다. 4년 전 평양 능라도 경기장. 동원된 15만 군중 앞에서 문 대통령은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으로 낮추며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보았다"라고 했다. 이는 대화 상대를 배려하는 수사라 치자. 하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일어서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보았다"라는 대목이 배를 곯고 있는 북 주민들에게 무슨 위안이 됐겠나. 핵도, 세습독재도 포기할 의사가 없던 김정은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겠지만. 이후 남북 관계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문 전 대통령이 "진실 되고, 경제를 위해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했던 김정은은 최근 본심을 드러냈다. "절대로 비핵화란 없으며 그 어떤 협상도, 맞바꿀 흥정물도 없다"면서. 문 전 대통령의 공허한 연설이 잠시 환심을 샀을진 모르나, 북의 실질적 변화를 전혀 이끌어내진 못한 꼴이다. 이와 달리 지도자의 영감 어린 한마디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든 사례는 적잖다. 1987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 앞에서 행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이 대표적이다.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향해 "고르바초프 서기장, 이 벽을 허무시오!"라고 던진 그의 '돌직구'는 동서냉전 해체의 신호탄이 됐다. 앞서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동독 정권과 소련의 봉쇄 위협에 떨던 서베를린 시민들 앞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라고 외쳤다. 이 연설은 베를린 장벽 너머 동독 주민들에게도 큰 울림을 줘 독일 통일의 씨앗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방문 후 '이전투구 정국'이 그래서 딱해 보인다. 통찰력 있는 외교적 수사로 국격을 높이긴커녕 비속어 사용 시비를 부른 윤 대통령의 무신경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자막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영상녹취 보도를 근거로 대뜸 미국 의회를 비난했다며 악의적 '외교 참사'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야당도 용렬해 보인다. 해당 녹취록은 전문가들도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인 데다 전후 맥락상 우리 국회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면 말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2022-10-03 18:45:21[파이낸셜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둘러싼 건강이상설이 또 한 번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다리를 절고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영국 미러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극동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 일대에서 진행된 다국적 군사 훈련 ‘보스토크(동방)-2022’ 훈련을 참관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현장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은 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전망대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몸 전체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그가 절뚝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걸음걸이가 눈길을 끈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별세한 뒤 그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병원을 찾은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도 뒤뚱거리며 다리를 저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여주었다. 지난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해군의 날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에도 모기를 쫓기 위해 손을 휘두를 때, 오른팔은 측면에 축 늘어뜨린 채 전혀 미동이 없는 상태로 왼팔만 움직여 또 한번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푸틴이 오른팔을 옆구리에 붙이다시피 하는 움직임이 과거 소련 정보기관 KGB 시절 당시 훈련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KGB 훈련교범은 요원들에게 유사시 총을 빨리 꺼낼 수 있도록 오른손이 사용하는 무기를 가슴 쪽에 가깝게 휴대할 것과 이동 시에는 이동 방향으로 한쪽(통상 왼쪽)을 약간 틀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걸어갈 때 양쪽 팔을 흔드는 정도가 서로 불일치하는 모습은 통상 파킨슨병의 징후로 간주되어 푸틴 역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밖에도 푸틴은 자주 까딱거리며 흔드는 다리와 불안하게 탁자를 쥐는 손, 흔들리는 팔 등으로 갑상샘(갑상선)암 등의 건강이상설이 나온 바 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수습기자
2022-09-08 07:50:00[파이낸셜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된 가운데 외신은 장례식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지난 3일(현지시간)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여한 추모객들이 "30년 전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전체주의 소련의 굴레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던 고르바초프 집권 당시보다 지금의 러시아가 훨씬 후퇴했다"며 성토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거행된 장례식에는 젊은 대학생부터 80대 노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추모객들이 참석했고, 고인의 시신이 놓인 관 앞에서 헌화하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장례식은 약 3시간 30분 만에 종료됐고,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시신은 노보데비치 묘지로 운구돼 지난 1999년 세상을 먼저 떠난 배우자 라시아 여사 옆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식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않았는데, 러시아 최고 지도자 가운데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은 건 71년 니키타 흐루쇼프 이후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도 이날 바쁜 일정을 이유로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석한 한 모스크바 시민은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조문하러 왔다"며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역사학자인 안드레이 주보프는 "옛 소련 시절을 전혀 모르는 젊은 세대까지 장례식장을 대거 찾은 것은 현 정치시스템에 대한 무언의 항의"라고 설명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2022-09-05 08:26:09[파이낸셜뉴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비에트연방(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에서 엄수된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르바초프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 외신은 지난 3일(현지시간) 오전 10시부터 모스크바 도심에 위치한 '하우스 오브 유니언' 필라홀에서 거행된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수천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장례식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것 중 하나는 러시아의 언론인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영정 사진을 든 채 운구 행렬을 이끈 것이다. 무라토프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과의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1993년 고르바초프의 자금 지원으로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타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노비야 가제타는 올해 3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의 비리를 폭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판하다가, 러시아 당국의 처벌 위협 속에 폐간했다. 무라토프는 올해 6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피해를 본 우크라이나를 돕고자 자신이 받은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놓았고, 메달은 1억 350만 달러(약 1336억원)에 낙찰됐다. 고르바초프도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뤄지자 "목숨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면서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했다. 한편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國葬)으로 치러지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경호와 의장대 등을 지원하는 등 국장급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일정을 이유로 장례식에 불참했다. theknight@fnnews.com 정경수 기자
2022-09-05 07:02:208월 30일 소련의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사망했다. 그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하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러시아에서는 소련을 멸망시킨 '매국노'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구소련' 재건을 꿈꾸며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은 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정기현 기자
2022-09-04 18:46:46[파이낸셜뉴스] 옛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이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과거 소련 붕괴 및 혼란의 책임을 고르바초프에게 돌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모스크바의 하우스 오브 유니언 콘서트홀의 필라홀에서는 오전 10시부터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이 진행됐다. 이날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의장대를 지원 하는 등 국장에 버금가는 절차로 진행됐다. 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지 않은 인물은 1971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마지막이었다. 영국 BBC는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은 장례식을 두고 현 러시아 지도부가 고르바초프의 유산을 기리는 데 거의 관심이 없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달 30일 당뇨와 심장 질환 등으로 인한 오랜 투병 끝에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그는 개혁 및 개방 정책을 진행하여 나라 밖에서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1990년 냉전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2000년 5월 처음으로 대통령에 오른 푸틴은 고르바초프에 의한 옛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은 업무 일정상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지난 1일 고르바초프의 빈소가 있는 모스크바 중앙임상병원을 개인적으로 찾아 헌화했다. 푸틴은 지난 2007년 자신의 전임자였던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국가 애도일을 선포했다. 러시아 정부 인사로는 푸틴 대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세르게이 스테파신 전 총리 등이 참석했다. 외국 지도자 중에선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온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유일하게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수천명의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3시간 반 만에 끝났고 시신은 노보데비치 묘지로 운구돼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됐다. 한편 크렘린궁은 푸틴이 오는 6일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제7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4년마다 열리는 보스토크(동방) 훈련도 참관할 계획이다. 해당 훈련은 4년마다 열리며 올해는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 13개국이 1~7일 사이 러시아 동부전구 7개 훈련장과 오호츠크해 인근에서 진행한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2022-09-04 14:19:57미국과 소련 간 냉전 종식에 기여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장례식이 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됐다. AP통신을 비롯한 외신들은 젊은층과 노년층을 포함한 러시아인들이 긴 줄을 이루며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AP는 크렘린궁이 국장으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는 것은 고르바초프의 업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 국장으로 진행됐을 경우 해외의 지도자들도 초청해야 하므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국과의 대립 속에서 푸틴 대통령이 꺼렸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참석했다. 고르바초프에 대한 러시아의 평가는 엇갈려왔다. 그의 개혁과 개방 정책에 철의 장막이 걷혀질 수 있었지만 러시아에서는 소련의 해체 후 이로 인한 경제 붕괴로 수백만명을 빈곤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바쁜 일정을 이유로 장례식에 불참했다. 크렘린궁은 다음 주에 열리는 극동 경제 포럼 참석 준비와 국제 전화 통화 등 일정이 잡혀있다고 밝혔다. 푸틴은 지난 1일 모스크바 시내 병원의 빈소를 방문했다. AP는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은 지난 2007년 거행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국장과 매우 대조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소련 붕괴후 첫 지도자였던 옐친은 푸틴을 후계자로 임명하고 물러났다. 지난달 30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 노보데비히 묘지에 있는 부인 라이사의 묘지 옆에 안장될 예정이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2022-09-03 19:4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