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수록 세상사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느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길 원하며, 어디서 행복을 얻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이는 단지 대학 전공과 직업을 고를 때뿐만 아니라 결혼을 할 때도, 재테크를 위해 주식을 할 때조차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표준의 삶'을 중시하는 문화적 환경에서 자란 경우, 그 표준의 삶을 쫓느라 바빠서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이 치열해진 요즘은 더 그렇지 않을까. 이숙명 작가의 신작 에세이 '발리에서 생긴 일'(김영사)은 불혹의 나이에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형태인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더 행복을 느끼는지를 찾아 나선 사람의 이야기다. 글로벌 도시가 된 서울에서 나름 화려한 직장생활을 하다 어느 날 과감히 표준의 삶에서 벗어나, 내 손에 쥔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미래의 불안을 딛고, 자신의 낙원을 찾은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그가 진짜 발리에서 지난 8년간 살면서 온몸으로 켞은 '발리에서 생긴 일'에 대한 기록이다. 영화 및 패션 잡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앞서 ‘어쨌거나 뉴욕’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등 동시대 여성독자들의 공감을 살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30대 후반, 추위 피해 발리로 떠났다 '표준의 삶' 탈출 훌쩍 떠난 계기는 어쩌면 단순했다. 2016년 30대 후반, 세 들어 사는 서촌 한옥의 문틈으로 외풍과 냉기가 스밀 때마다 ‘따뜻한 곳으로 떠나 단출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그러다 ‘올겨울 집필 여행 겸 일단 떠나자’는 마음으로 장기 투숙할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곳이 바로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그렇게 5개월을 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내 다시 떠났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발리에서도 배로 40~50분 거리의 시골 섬 누사프니다에서 집까지 짓고 살게 된 이숙명 작가가 지난 8년 이곳에서 살면서 체득한 ‘발리 생활 언박싱’이다. 그저 선물인 줄 알고 덥석 받아든 발리라는 상자를 열고 파헤쳐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하고 깨달은 것들을 아낌없이 풀어냈다. 아름다운 자연, 타인을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현지인의 밝은 표정과 관대한 태도, 시골 사람들 특유의 정과 인심, 인기 여행지로 막 부상하기 시작한 지역 특유의 활기… "평범한 도시 직장인에게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활력, 모험심, 결단력 따위에 압도당한다. 그들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볼거리, 놀 거리가 생긴다(158쪽)." 그렇다고 동남아 풀빌라의 여유로운 삶만 상상하면 안 된다. 일 년 내내 여름이 계속되고, 전기와 수도가 하루에 한 번씩 끊기며, 호기심 많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현지인 틈바구니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일상의 연속. 운 좋게도 현지에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이곳을 제2의 고향 삼고 정착했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듯, 누군가에겐 그저 ‘한 달 살이’로 끝내야 하는 일상이다. 특히 저자에겐 혹독했을 현지에서 집 짓기 에피소드를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낄낄 웃음이 난다. 찰리 채플린이 그랬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라고. 작가의 재기발랄한 글 솜씨도 한몫한다. “어딘가에는 각자의 낙원이 있다” 작가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아 실험하듯 여행하다 발리에 정착했다. 적어도 자신에게 발리는 낙원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다 통하는 것은 아닐 터. 작가는 떠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무조건적인 낙관을 경계한다. 각자 마음속 걱정거리는 눈앞에 회색 빌딩과 아스팔트 대신 야자수와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다고 해서 눈 녹듯 사라지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의 뼈아픈 직언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이 나라에서의 삶이 괴롭다면,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외국으로 떠나 일하며 사는 걸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묶여 있던 땅 밖으로 나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안에 있을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이다. 동남아시아 국가 등으로의 이민이나 장기 여행 혹은 체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장기 거주할 숙소를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거기서 뭘 해서 먹고살까? 비자나 서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실제로 앞서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정착했나? 덕분에 독자들은 모호하기만 했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2025-04-17 17:38:15[파이낸셜뉴스] 일기를 쓰거나, 일상 블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거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때 '만약 이걸 하게 되면 오늘의 일기(블로그)에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조금 더 과감한 도전을 하는 것 말이다. 필자 역시 타국의 여행지를 떠돌며 방문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입장료를 요구 받았을 때 그랬다. '어차피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일기에도 쓸 수 있으니 한번 들어가 볼까'하고 기꺼이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는 단순히 해당 사건에 대한 추억을 저장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사유의 깊이를 더해준다. 또 해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며 사후적으로 특정 사건과 기억에 추가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기록한다'는 행위는 (사후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리스 신탁의 예언처럼 기록을 전제로, 한 사람의 행동에 과거 선언적 예언처럼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어렵게 말했는데 쉽게 풀자면 "오늘의 일기에 한 줄 더 쓰기 위해 깨어 있는 동안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이라 일기와 블로그 얘기를 꺼냈지만 요즘이라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무리해서 비싼 호텔에 묵거나, 오마카세를 먹는 사치를 부리는 마음과 비슷하다. 때때로 인스타의 사진 한 장을 위해 실제 삶이 인스타그램 속 아바타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것 말이다. 철학에서 말하는 '시뮬라크르(가상, 거지스, 그림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시뮬라크룸에서 유래)'가 실제의 나를 잡아 먹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오로지 사진을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실제의 삶과 동떨어진 일을 하거나, 사치를 부리는 것은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렸을 때나 철이 들기 전,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서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남아시아의 국가지만 이전까지 태국, 베트남을 여러번 갔던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는 여행 후보지에 올랐던 적이 없었다. 특히 그 중에 발리는 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발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과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이 입에 주먹을 넣고 우는 장면(한 예능에서 '주먹 울음'을 패러디한 것이고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조인성이 주먹을 입에 넣고 우는 장면이 없다고 한다)이 됐다는 정도 밖에 없었다. 하지만 7박 8일 발리를 여행하고 나서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고 생각을 고쳐 먹게 됐다. 해양 레저, 정글 트레킹, 인스타 명소, 요가와 명상, 자연 탐험 등 동남아에 있는 도시 2~3곳의 장점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도시였다. 깨끗하지 않은 물과 베트남과 인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교통 체증은 짜증났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붓, 누사페니다, 그리고 꾸따 발리 총 7박의 일정 중 4박은 우붓, 1박은 누사페니다(근교 섬), 2박은 꾸따에 묵었다. 한국의 제주도나 태국의 푸켓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발리는 생각보다 광대하다. 제주도의 3배~4배 사이즈라고 한다. 그래서 발리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고 발리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의 후기도 무궁무진하다. 발리 여행을 하고 여행을 마친 현재까지도 몇 가지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있다. 여행자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부병에 걸린 개'다. 발리 시내 곳곳에는 들개와 집개의 중간쯤 되는 개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덥고 습한 날씨,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 탓에 많은 개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서열 싸움에 밀린 몇몇 수컷 개는 피부병이 걸린 피부에 물어 뜯긴 상처로 인해 딱지가 붙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서 대량의 진드기 퇴치제를 산 뒤 발리의 개들에게 뿌려주고 싶었다. '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지만 발리는 '신들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 맞게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적, 혹은 박물관 같았다. 힌두교는 물론 민간 종교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 화려한 건물, 동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아주 작은 호텔에도 기도를 올리는 신단 같은 곳이 있었다. 스님에게 보시를 하는 태국 불교와 달리 발리에서는 미물인 개미에게도 먹을 것을 나눴다. 짜낭사리(야자수 잎으로 만든 작은 바구니에 담긴 꽃) 옆에는 개미를 위해 밥알을 두는 경우도 많았다. 발리의 사람들 역시 아침, 점심, 저녁 등 시간을 가리지 않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발리는 태국, 베트남처럼 1년 내내 더운 곳이었다. 1년 내내 따뜻한 기후로 인해 1년에도 3번의 벼농사가 가능했다. 4계절이 있는 한국에서 온 필자로서는 마치 발리 한 공간에 일년이라는 시간이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논에서는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한국의 봄 풍경이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벼가 가장 짙은 녹색을 뽐내는 한국의 여름이, 그 다음 곳에서는 추수를 기다리는 한국의 가을이 있었다. 신을 섬기고, 자연의 한 가운데 있는 발리였지만 관광지로 유명해지면서 상업화가 지나치게 진행된 점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정 관광지에 갈 때마다 입장료는 기본이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약 5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 점은 별로였다. 동물 애호가인 필자로서는 발리의 자연에서 만난 다양한 동물 친구들은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원숭이들, 루왁 커피 매장에서 만난 사향고양이, 힌두 사원에서 본 수천, 수만 마리의 잉어와 물고기, 래프팅을 하는 동안 흐르는 급류에서 본 제비 같기도, 나비 같기도 한 작고 검은새 등 한국과는 다른 동물 여럿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몸이 고생하면 항공권 싸진다..왕복에 43만원 추천하진 않지만 직항을 포기하고 경유 항공권을 택하면 항공료가 많이 싸진다. 항공권은 '스카이스캐너' 검색 당시 직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왕복 티켓이 120만원이었다. 경유 티켓 중 가장 저렴한 편인 티켓을 골라 예약했다. 베트남 저가 항공사인 '비엣젯항공'사의 티켓으로 왕복 43만에 티켓을 끊을 수 있었다. 갈 때는 '인천→호찌민→발리', 올 때는 '발리→하노이→인천' 노선이었다. 수화물 무게가 7kg 제한이 있어 짐은 최대한 줄였다. 한국에 올 때도 기념품은 포기했다. 5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 9시15분 인천을 출발, 다음날 00시30분에 호찌민 공항에 도착했다. 호찌민 공항에서 거의 밤을 새우고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다음날인 토요일 정오쯤 발리에 도착했다. 한국인은 발리에 입국할 때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사전에 온라인을 통해 돈을 내고 사전 발급도 가능하지만 현지에서 발급(Visa on Arrival) 받는 것도 가능하다. 절차가 복잡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비행기에 내려 순서대로 걷다 보니 눈에 보이는 창구 여러곳이 있었다. 비자 발급에는 35달러가 드는데 미리 준비해 둔 100달러를 건네자 남은 돈은 현지 화폐로 돌려 받을 수 있었다. 환전 환율도 시중 환전소와 비교해 크게 나쁘지는 않은 듯 했다. 이후 QR 코드가 찍힌 종이를 주는데 그게 비자 역할을 한다. 비자를 발급 받으면 전자 세관 신고서(ECD)를 작성해야 한다. 컴퓨터가 여러대 있는데 '한국어'로 설정하면 어렵지 않게 절차를 마칠 수 있다. 동행이 있을 경우 대표로 1명만 작성하면 된다고 한다. 3~4분이면 금방 할 수 있다. 비자와 세관 신고서 증명서를 내면 발리 입국 절차가 끝난다. 입국을 마치고는 눈에 보이는 통신사에서 현지 유심을 샀다. 2만원 정도면 한 달짜리 유심을 살 수 있다. 보통은 공항 근처 도시에 숙소를 잡지만 공항에서 한참 떨어진 '우붓'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그랩 자가용을 불러 우붓으로 향했다. 거리로는 40km지만 교통 체증이 심해 보통 2시간이 걸린다. 숙소는 우붓 시내 중심에 있는 '그레이 하우스 몽키 포레스트'에 잡았다. 우붓 대표 관광지인 '원숭이 숲'을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숙소였다. 짐을 풀고 발리에서의 첫끼는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다. '메구나 우붓(Meguna Obud)'이란 곳으로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나시고렝(볶음밥)과 면 요리 등을 시켰다. 구글 평점은 높았지만 메뉴 선택에 실패한 탓인지 음식은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밥을 먹고는 한동안 산책을 하다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갔다. '세니만 커피(Seniman Coffee)'란 곳으로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를 맛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커피 가격이 한국과 비슷했는데 개인적으로 커피 맛도, 추천을 받아 시킨 녹차 크레이프 디저트도 별로였다. 저녁은 '노스티모 그릭 그릴 우붓(Nostimo Greek Grill Ubud)'이라는 그리스 식당에서 해결했다.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가 한 접시에 나오는 플래터를 시켰는데 이날 갔던 식당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소스로 나온 그릭 요거트, 감자, 돼지고기 사태와 구이 등을 인도네시아 대표 맥주인 '빈땅'과 함께 가득 채워넣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오토바이를 빌렸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국제 운전면허 교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엄밀하게 발리에서 운전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불법이다. 하지만 대부분 관광객들이 발리에서 오토바이를 이동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통 체증이 심하고 먼지도 많기 때문에 반드시 헬멧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발리에서 생긴 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빈땅 #누사페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4-06-07 18:23:00▲ 사진=SBS 제공 '발리에서 생긴 일'이 14년 만에 리메이크된다. 제작사 빅토리콘텐츠 측 관계자는 28일 fn스타에 "'발리에서 생긴 일'을 리메이크하는 게 맞다"고 전했다. 이날 앞서 한 매체는 2004년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이 14년 만에 리메이크되며, 원작의 최문석 PD가 연출한다고 보도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네 남녀(하지원, 조인성, 소지섭, 박예진 분)의 치명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사랑 받은 작품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 2018년에는 어떤 스타일로 재탄생될지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hostory_star@fnnews.com fn스타 이호연 기자
2017-12-28 16:25:22‘환상의 섬 발리에서 나만의 인연을 찾아보세요!’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오는 9월 1∼5일 닷새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발리에서 생긴 일 2010’ 해외 미팅파티를 진행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해외 미팅파티 참가자들은 현지 유명 리조트인 클럽메드 발리에서 커플 미니올림픽, 비치발리볼 등 다양한 이벤트를 비롯해 스노클링, 윈드서핑, 카약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기며 이성 참가자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진다. 특히 참가자들은 클럽메드 발리에서 제공하는 60여가지의 스포츠 액티비티 프로그램 및 발리 전통 문화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참가 비용은 정회원 125만원(비회원 및 온라인 회원 135만원)으로 왕복 항공권, 공항세, 클럽메드 발리 리조트 숙박 및 뷔페 이용료(3박), 현지 차량 및 가이드 비용, 스포츠 강습과 장비렌탈 비용, 해외여행 보험, 클럽 메드 회원 가입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듀오의 장성윤 이벤트 팀장은 “발리에서 즐기는 이색적인 파티와 각종 스포츠는 무더운 여름 최고의 휴가가 될 것”이라며 “특히 휴가와 함께 즐기는 해외 미팅파티는 일반 미팅파티에 비해 커플 탄생의 확률이 더욱 높다”고 말했다. 한편, 참가신청 및 자세한 문의는 듀오 홈페이지(www.duo.co.kr)나 전화(02-550-6106)를 통해 가능하다./yhryu@fnnews.com유영호기자 ■사진설명=지난해 8월 6∼10일 닷새간 피지에서 열린 ‘피지로의 초대 2009’ 해외 미팅이벤트에서 참가자들이 해변가의 한 바에서 미팅파티를 진행하고 있다.
2010-07-20 13:45:4330년 전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 있는 한국 기업을 견학하는 길에 공장의 창고책임자인 하디씨(당시 44세)의 집을 방문했다. 자녀 셋과 함께 거주하는 방 3개로 구성된 허름한 집이다. 새로 생긴 공단의 보세구역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가난한 동네의 가옥이다. 7~8채의 가옥이 둥그런 큰 마당(꺼분) 하나와 공동변소가 있는 연못을 둘러쌌다. 연못도 마당의 일부다. 마당 한편으로 웅덩이 위에 대나무로 촘촘히 엮은 움막 같은 변소도 있다. 이를 '좀베란'(구정물 통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이 웅덩이에서 공동으로 메기를 키운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구정물과 대소변은 메기의 먹이가 되고, 메기들이 충분히 성장하면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잡아먹는다. 베트남 메콩델타의 '캑산노이'와 똑같은 모양이다. 물이 흔한 곳에서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활성화해 폐수와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생태학적 시스템이다. 사람 사는 동네를 구성하는 기본조건이 마당과 연못이다. 손님이 온 것을 본 이웃 노인이 건너편에 열린 두리안(본래 명칭은 두리안 브사르) 열매를 대접하기 위해 작대기를 들고 나온다. 바틱의 세밀함이 이웃 간의 관심과 관계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삼블'(고추와 액젓을 버무린 것), '사율 앗씀'(멀린조 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끓이면서 옥수수를 넣어서 삶은 것), '떠리'(멸치를 고추와 함께 볶은 것), '따후'(두부 구운 것), '뗌베이'(콩을 썰어서 납작하게 만들어서 구운 것), '이깐'(생선)과 '아얌'(닭)을 구운 것, 그리고 '나시'(밥)를 방바닥 돗자리 위에 놓고 점심을 먹었다. 다섯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버무려서 입안으로 운반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하디의 집은 1993년에 누님의 도움으로 구입한 것인데 미화로 3500달러를 지불했다. 3년 만에 7000달러로 뛰었단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누님으로부터 빌린 목돈은 조금씩 모아서 갚아나가는 중이다. 마당 앞에 목재로 쓸 만한 나무토막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그것들은 회사에 자재가 들어올 때 포장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가지고 나왔다. 공장이 있는 곳은 보세구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 내에 들어온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철저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회사의 허락을 얻어서 들고 나온 것이다. 성취 동기가 강한 면을 본다. 공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우딘(32)은 월 200달러 정도를 벌어서 단칸방의 월세로 40달러를 낸다. 그의 처가 '아리산'(arisan·계와 동일한 방식)을 한다. 한 개의 아리산 조직은 40명 정도다. 동네 부인네들을 중심으로 하며, 한 번 모일 때마다 미화로 약 5달러씩 낸다. 시골동네에서는 한 그룹의 아리산 인원수가 200~300명인 경우도 있는데 도시에서는 보통 40~50명 정도로 구성한다. 한 달에 한꺼번에 2~3명이 계금을 수령한다. 계금을 꼭 타고 싶은 경우에 타지 못하게 되면 곗돈을 탄 사람으로부터 20~30%를 제하고 곗돈을 꾸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 공장에서도 공정의 라인(50명)별로 아리산을 한다. 일인당 2000루피아씩 갹출하며, 전체를 관리하는 계주가 있다. '집 장만'이라는 특별한 명칭을 내세운 아리산도 있다. 인플레가 심하기 때문에 돈의 가치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아리산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주고, 받고, 되갚는' 사이클로 함께 살아가기의 공동체 지향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공동체 의식과 성취 동기가 강한 심성의 사람들이라는 증거다. 동네 공원에서 아리산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약 160명의 성장한 부인네들이 커다란 파빌리온에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펼쳐 놓고, 서로의 음식을 맛보면서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도 따라왔기 때문에 족히 300명은 넘게 모여 시끌벅적한 상황이다. 주최 측에서는 핸드마이크로 설명을 한다. 한 달에 5달러에 해당되는 루피아를 개인별로 갹출해 진행하는 아리산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한 바퀴 돌아가려면 최소한도 50개월이 지나야 한다. 공동체라는 형식의 양적 규모뿐만 아니라 시간적 지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리산의 우산 밑에 있으면 구성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 차례가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한통속이 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다.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 숙달된 사람들이 타협을 모색하는 여유를 마련한다. 산스크리트어의 조합인 판차실라(pancasila) 이념의 원리도 동네에서 이뤄지는 아리산 개념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생국 인도네시아의 판차실라는 1945년 8월 18일에 시작됐다. '판차'는 다섯을 의미하고 '실라'는 원리라는 뜻이다. 힌두 신화의 신조(神鳥)인 가루다의 가슴에 그려진 다섯가지 그림들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가운데의 별은 전능자에 대한 신앙을 의미하며, 오른쪽 아래의 체인은 민주주의, 오른쪽 위의 나무는 하나의 인도네시아, 왼쪽 위의 뿔 달린 소머리는 인권의 공평, 왼쪽 밑의 벼와 목화는 정의와 복지를 의미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 판차실라다. 이 과목을 10점 만점에 6점 미만을 받으면 낙제다. 인도네시아 국기는 붉은색과 흰색이 가로로 반반으로 나뉘었다. 위의 붉은 절반은 용기, 아래의 흰 절반은 신성을 상징한다. 붉은 것은 사람의 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이고, 아래의 흰 것은 사람의 뼈로부터 나온 개념이란다. 국기가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피와 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다원주의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뼈와 피로 만들어낸 통합정신의 판차실라가 인도네시아의 힘이다. 수마트라, 술라웨시, 할마헤라, 보르네오, 발리, 순다열도와 파푸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앙과 일상언어가 다른 6000개의 섬에 2억8000만명이 한 울타리로 살아가는 그곳에 요즈음은 '사야판차실라'(SayaPancasila·내가 판차실라다)라는 해시태그도 유행한다. 인류학적 사상의 출발점인 원초심성론(elementargedanken)을 제안했던 독일 민족학자 아돌프 바스티안이 인도네시아를 주목한 것은 필연이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4-14 18:05:0330년 전 인도네시아의 수라바야에 있는 한국 기업을 견학하는 길에 공장의 창고책임자인 하디씨(당시 44세)의 집을 방문했다. 자녀 셋과 함께 거주하는 방 3개로 구성된 허름한 집이다. 새로 생긴 공단의 보세구역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가난한 동네의 가옥이다. 7~8채의 가옥이 둥그런 큰 마당(꺼분) 하나와 공동변소가 있는 연못을 둘러쌌다. 연못도 마당의 일부다. 마당의 한 편으로 웅덩이 위에 대나무로 촘촘히 엮은 움막 같은 변소도 있다. 이를 '좀베란’(구정물 통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이 웅덩이에서 공동으로 메기를 키운다. 각 가정에서 나오는 구정물과 대소변은 메기의 먹이가 되고, 메기들이 충분히 성장하면 동네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잡아먹는다. 베트남 메콩델타의 ‘캑산노이’와 똑같은 모양이다. 물이 흔한 곳에서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활성화시켜 폐수와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생태학적 시스템이다. 사람 사는 동네를 구성하는 기본 조건이 마당과 연못이다. 손님이 온 것을 본 이웃 노인이 건너편에 열린 두리안(본래 명칭은 두리안 브사르) 열매를 대접하기 위해 작대기를 들고 나온다. 바틱의 세밀함이 이웃간의 관심과 관계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삼블’(고추와 액젓을 버무린 것), ‘사율 앗씀’(멀린조 나무의 열매와 잎사귀를 끓이면서 옥수수를 넣어서 삶은 것), ‘떠리’(멸치를 고추와 함께 볶은 것), ‘따후’(두부 구운 것), ‘뗌베이’(콩을 썰어서 납작하게 만들어서 구운 것), ‘이깐’(생선)과 ‘아얌’(닭)을 구운 것, 그리고 ‘나시’(밥)를 방바닥 돗자리 위에 놓고 점심을 먹었다. 다섯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버무려서 입안으로 운반하는 동작을 반복했다. 하디의 집은 1993년에 누님의 도움으로 구입한 것인데, 미화로 3500달러를 지불했다. 3년 만에 7000달러로 뛰었단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누님으로부터 빌린 목돈은 조금씩 모아서 갚아나가는 중이다. 마당 앞에 목재로 쓸만한 나무토막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데, 그것들은 회사에 자재가 들어올 때, 포장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가지고 나왔다. 공장이 있는 곳은 보세구역이기 때문에, 이 지역 내에 들어온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철저한 경비를 서고 있는데, 회사의 허락을 얻어서 들고 나온 것이다. 성취 동기가 강한 면을 본다. 공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우딘(32세)은 월 200달러 정도를 벌어서, 단칸방의 월세로 40달러를 낸다. 그의 처가 ‘아리산’(arisan, 계와 동일한 방식)을 한다. 한 개의 아리산 조직은 40명 정도다. 동네의 부인네들을 중심으로 하며, 한 번 모일 때마다 미화로 약 5달러 정도씩 낸다. 시골동네에서는 한 그룹의 아리산 인원수가 200~300명 정도인 경우도 있는데, 도시에서는 보통 40~50명 정도로 구성한다. 한 달에 한꺼번에 2~3명이 계금을 수령한다. 계금을 꼭 타고 싶은 경우에 타지 못하게 되면, 곗돈을 탄 사람으로부터 20~30%를 제하고 곗돈을 꾸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 공장에서도 공정의 라인(50명)별로 아리산을 한다. 일인당 2000루피아씩 갹출하며, 전체를 관리하는 계주가 있다. ‘집 장만’이라는 특별한 명칭을 내세운 아리산도 있다. 인플레가 심하기 때문에 돈의 가치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아리산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주고, 받고, 되갚는’ 사이클로 함께 살아가기의 공동체 지향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공동체 의식과 성취 동기가 강한 심성의 사람들이라는 증거다. 동네 공원에서 아리산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약 160여명의 성장한 부인네들이 커다란 파빌리온에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펼쳐 놓고, 서로의 음식을 맛보면서 담소를 나눈다. 아이들도 따라왔기 때문에 족히 300명은 넘게 모여 시끌벅적한 상황이다. 주최 측에서는 핸드마이크로 설명을 한다. 한 달에 미화 5달러에 해당되는 루피아를 개인별로 갹출해 진행하는 아리산인데,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한 바퀴 돌아가려면 최소한도 50개월이 지나야 한다. 공동체라는 형식의 양적 규모뿐만 아니라 시간적 지속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리산의 우산 밑에 있으면, 구성원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내 차례가 돌아온다는 생각으로 한통속이 되는 것 같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방식을 터득한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다.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바라보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 숙달된 사람들이 타협을 모색하는 여유를 마련한다. 산스크리트어의 조합인 판차실라(pancasila) 이념의 원리도 동네에서 이뤄지는 아리산 개념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생국 인도네시아의 판차실라는 1945년 8월 18일에 시작됐다. ‘판차’는 다섯을 의미하고, ‘실라’는 원리라는 뜻이다. 힌두 신화의 신조(神鳥)인 가루다의 가슴에 그려진 다섯가지 그림들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가운데의 별은 전능자에 대한 신앙을 의미하며, 오른쪽 아래의 체인은 민주주의, 오른쪽 위의 나무는 하나의 인도네시아, 왼쪽 위의 뿔 달린 소머리는 인권의 공평, 왼쪽 밑의 벼와 목화는 정의와 복지를 의미한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과목이 판차실라다. 이 과목을 10점 만점에 6점 미만을 받으면, 낙제다. 인도네시아 국기는 붉은색과 흰색이 가로로 반반으로 나뉘었다. 위의 붉은 절반은 용기, 아래의 흰 절반은 신성을 상징한다. 붉은 것은 사람의 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이고, 아래의 흰 것은 사람의 뼈로부터 나온 개념이란다. 국기가 인도네시아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피와 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다원주의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뼈와 피로 만들어낸 통합정신의 판차실라가 인도네시아의 힘이다. 수마트라, 술라웨시, 할마헤라, 보르네오, 발리, 순다열도와 파푸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앙과 일상언어가 다른 6000개의 섬에 2억8000만명이 한 울타리로 살아가는 그곳에 요즈음은 '사야판차실라'(SayaPancasila, 내가 판차실라다)라는 해시태그도 유행한다. 인류학적 사상의 출발점인 원초심성론(elementargedanken)을 제안했던 독일 민족학자 아돌프 바스티안이 인도네시아를 주목한 것은 필연이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4-11 13:58:36발리는 세로 250㎞ 가로 350㎞의 타원형 섬으로, 8개의 군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한 주다. 서쪽은 원시림을 보존하고 동쪽으로 사람들이 집거한다. 주에서부터 동네에 이르기까지 행정체계는 주(Gubernur)-군(Bupati)-면(Camat)-촌(Desa)이며, 촌 안에는 작은 동네(RT·에르티)들이 있다. 촌장을 '케팔라 데사'라고 한다. 촌과 면 그리고 군 단위의 경계에는 큰 문들을 세웠다. 힌두사원에서 보여주는 문과 같은 형식이다. 안과 밖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의 상징성이 힌두문화의 큰 몫을 차지한다. 개인 집에도 입구 문이 있고, 문 앞에는 사람이 왔음을 두드려서 알리는 목구(木具)가 있다. 인구의 90%가 힌두교도다. 길가에, 집 안에, 고목에 '푸라'라는 이름의 신당을 모셨다. 집안용 사당들이 따로 있기도 하고, 절도 무수하다. 동네 앞뒤로는 전통적인 흙벽돌의 문이 있다. 아궁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곳의 동네 문 바깥 벽 쪽에는 공희(供犧)된 주술용 닭을 걸었는데, 그것을 '메차루'라고 한다. 왼쪽은 수탉(검은색), 오른쪽은 암탉(흰색)이다. 각각의 머리, 발, 날갯죽지를 잘라서 문 벽에 붙였다. 악령을 몰아내는 닭피의 주술적 상징이 강하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동네 사람들 몫이다. 다른 관광지의 입장료는 정부 몫이다. 보는 대신에 입장료를 낸다. '삶이 관광'이라는 방식이 철저하게 준수된다. 학교의 뒤편에는 공동목욕탕이 있고, 남녀의 출입문과 공간이 따로 있다. 대낮에도 노인들이 목욕을 한다. 마을은 길게 두 열로 개인 집들이 있고, 집들은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로로 나오는 작은 골목들이 있어서 전열의 집들 뒤로도 집들이 있다. 이 두 열 가운데는 큰 공간인데, 바자르와 의례옥들도 있다. 길다란 의례옥들이 가장 크다. 집집마다 자신들의 싸움닭들을 둥우리에 넣어서 집 앞에 진열하여 한 마리에 일본돈 1만엔에 판다. 건물들이 끝나는 곳에 동네의 사원이 있다. 동내혼(洞內婚)의 원칙이 있고, 일부일처제가 엄격하게 지켜진 곳이다. '발리 아가르'(Bali Agar, agar는 으뜸)라는 동네는 관광을 위한 300가구의 촌이다. 관광객에게 집안 구석구석까지 다 보여준다. 도로변에 있는 집들은 모두 상점이다. 진열된 목각들은 판매용이다. 기념품을 제작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야자나무 잎사귀에 먹으로 그림을 그려서 발리 달력을 제작하고 있는 노인은 과거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이 마을을 연구한 서적을 부분 복사한 것을 12달러에 판다. 저자인 스위스 바젤박물관의 우르스 람제이어 박사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인류학자로서 연구를 기반으로 발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 덕분에 관광이 발리의 신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람제이어 교수는 발리 세계화 발전의 공로자로 회자된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울까? 발리의 관광은 그야말로 '삶이 관광'이다. 시골의 농가도 수출용으로 목각 제품을 만들어서 납품한다. 주문배수를 하고, 수집상에 의해 팔려 나간다. 어린이들까지 모여서 열심히 목각을 한다. 나무토막은 보이는 대로 모두 쪼아서 조각품을 만든다. 모두들 농사를 지으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목각을 하고 색칠한다. 아그로투어리즘(agrotourism)의 발리식 모델이다. 힌두사원 부근에는 관광객만 기다리는 여성 장사꾼들로 붐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까지 한마디씩 등장한다. '주인과 손님'의 관광 구도는 주객의 지위를 바꾸어 놓아 버렸다. 주인은 'massage'라는 글자가 등판에 적힌 유니폼을 입고 벌거벗은 손님의 몸을 주물러주는 대가로 살아간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하는 관광산업인가? 일상적 힌두 의례가 누적되는 상대적 박탈감의 해소 기제 역할을 할까? 힌두교 여신인 스리(Sri)가 논농사의 파종과 수확을 관장하면서 여성 독점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발리의 남성들은 땅 갈기와 벌레 잡기 등 중간 과정의 일을 한다. 쌀의 종류와 색깔이 다양하다. 검은 쌀, 붉은 쌀, 흰쌀도 있다. 붉은 쌀이 인도네시아말로는 '브라스 메라'인데, 발리말로는 '바하스 바라'이다. 벼는 125일이면 추수한다. 산비탈의 언덕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계단식 논을 일구어서 벼농사를 한다. '쿠삼바'(Kusamba) 해변에 떠 있는 '주쿵'(jukung)은 전형적인 발리의 배다. 항해하는 모습은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9m 길이에 400㎏의 무게다. 거미다리처럼 생긴 것은 활처럼 크게 휘었다. 배의 선체와 균형을 잡는 역할인 대나무로 만든 날개 부분을 연결한다. 배 목수(판데 주쿵)를 만났다. 선체는 '발라우' 통나무를 가운데로 쪼개어서 두 쪽을 낸다.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내어 독목주(獨木舟)를 만들며, 수명은 25년 정도다. 진수식은 힌두식의 의례다. 배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되는 힌두식의 숫자게임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두 개의 주쿵을 만들도록 잘라야 하며, 삼일 동안 다섯 사람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숫자는 발리의 달력을 구성하는 원리와 동일하다. 즉 1×2×3×5×7=210, 이것이 발리 달력의 일년(210일)을 구성하는 오톤(oton)이라는 일년 주기다. 신생아의 단발식을 하는 돌에 해당하는 날도 210일째다. 초경 후 210일 만의 쿠닝간(kuningan) 의식은 처녀가 처음으로 돼지에게 물을 뿌려주고 닭에게 먹이를 주는 성인식이다. 해변에는 전통적 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곳이 있다. 벌막에는 야자나무 밑둥치를 잘라 가운데를 파서 만든 둥그런 통이 여러 개 있다. 이 통들은 바닷물을 퍼서 담아 두는 그릇이다. 벌막의 한쪽 구석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들을 담아두는 큰 통이 있다. 그곳에 다시 바닷물을 통과시켜서 함수(鹹水·염분이 들어있는 물)를 얻고, 기다란 홈이 파인 나무그릇(깊이가 1㎝ 되도록 한 것)에 함수를 담는다. 이러한 그릇이 수백 개 마련되어 있고, 야자나무 잎사귀 덮개로 덮어서 햇볕에 건조시킨다. 1963년 화산 폭발 후 노인 부자는 인부 한 사람과 함께 하루에 10㎏ 소금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소금 1㎏을 500루피아(1달러=2180루피아)에 판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3-03 19:19:58발리는 세로 250㎞, 가로 350㎞의 타원형 섬으로, 8개의 군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의 한 주다. 서쪽은 원시림을 보존하고, 동쪽으로 사람들이 집거한다. 주에서부터 동네에 이르기까지 행정체계는 주(Gubernur)-군(Bupati)-면(Camat)-촌(Desa)이며, 촌 안에는 작은 동네(RT, 에르띠)들이 있다. 촌장을 ‘케팔라 데사’라고 한다. 촌과 면 그리고 군단위의 경계에는 큰 문들을 세웠다. 힌두사원에서 보여주는 문과 같은 형식이다. 안과 밖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의 상징성이 힌두문화의 큰 몫을 차지한다. 개인 집에도 입구의 문이 있고, 문 앞에는 사람이 왔음을 두드려서 알리는 목구(木具)가 있다. 인구의 90%가 힌두교도다. 길가에, 집안에, 고목에 ‘푸라’라는 이름의 신당을 모셨다. 집안용 사당들이 따로 있기도 하고, 절도 무수하다. 동네 앞뒤로는 전통적인 흙벽돌의 문이 있다. 아궁산에서부터 내려오는 곳의 동네 문 바깥 벽 쪽에는 공희(供犧)된 주술용 닭을 걸었는데, 그것을 ‘메차루’라고 한다. 왼쪽에는 숫닭(검은색), 오른쪽에는 암탉(흰색)이다. 각각의 머리, 발, 날갯죽지를 잘라서 문벽에 붙였다. 악령을 몰아내는 닭피의 주술적 상징이 강하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장료는 동네사람들의 몫이다. 다른 관광지의 입장료는 정부의 몫이다. 보는 대신에 입장료를 낸다. ‘삶이 관광’이라는 방식이 철저하게 준수된다. 학교의 뒷편에는 공동목욕탕이 있고, 남녀의 출입문과 공간이 따로 있다. 대낮에도 노인들이 목욕을 한다. 마을은 길게 두 열로 개인집들이 있고, 집들은 모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로로 나오는 작은 골목들이 있어서 전열의 집들 뒤로도 집들이 있다. 이 두 열의 가운데는 큰 공간인데, 바자르와 의례옥들도 있다. 길다란 의례옥들이 가장 크다. 집집마다 자신들의 싸움닭들을 둥우리에 넣어서 집 앞에 진열하여, 한 마리에 일본돈 1만엔에 판다. 건물들이 끝나는 곳에 동네의 사원이 있다. 동내혼(洞內婚)의 원칙이 있고, 일부일처제가 엄격하게 지켜진 곳이다. ‘발리 아가르’(Bali Agar, agar=으뜸)라는 동네는 관광을 위한 300가구의 촌이다. 관광객에게 집안 구석구석까지 다 보여준다. 도로변에 있는 집들은 모두 상점이다. 진열된 목각들은 판매용이다. 기념품을 제작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야자나무 잎사귀에 먹으로 그림을 그려서 발리 달력을 제작하고 있는 노인은 과거 이 마을의 촌장이었다. 이 마을을 연구한 서적을 부분 복사한 것을 미화 12달러에 판다. 저자인 스위스 바젤 박물관의 우르스 람제이어(1938~2018) 박사는 재즈피아니스트인 인류학자로서 연구를 기반으로 발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데 기여했다. 덕분에 관광이 발리의 신산업으로 성장하면서 람제이어 교수는 발리 세계화 발전의 공로자로 회자된다. 그 결과는 만족스러울까? 발리의 관광은 그야말로, ‘삶이 관광’이다. 시골의 농가도 수출용으로 목각을 만들어서 납품한다. 주문 배수를 하고, 수집상에 의해서 팔려 나간다. 어린이들까지 모여서 열심히 목각을 깎는다. 나무토막은 보이는 대로 모두 쪼아서 조각품을 만든다. 모두들 농사를 지으면서 시간이 나는대로 목각을 만들고 색칠한다. 아그로투어리즘(agrotourism)의 발리식 모델이다. 힌두사원 부근에는 관광객만을 기다리는 여성 장사꾼들로 붐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까지 한마디씩 등장한다. ‘주인과 손님’의 관광 구도는 주객의 지위를 바꾸어 놓아 버렸다. 주인은 ‘massage'라는 글자가 등판에 적힌 유니폼을 입고 벌거벗은 손님의 몸을 주물러주는 댓가로 살아간다.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하는 관광산업인가? 일상적 힌두 의례가 누적되는 상대적 박탈감의 해소 기제 역할을 할까? 힌두교 여신인 스리(Sri)가 논농사의 파종과 수확을 관장하면서, 여성독점으로 한정하였기 때문에, 발리의 남성들은 땅갈기와 벌레잡기 등 중간 과정의 일을 한다. 쌀의 종류와 색깔이 다양하다. 검은 쌀, 붉은 쌀, 흰쌀도 있다. 붉은 쌀이 인도네시아말로는 ‘브라스 메라’인데, 발리 말로는 ‘바하스 바라’이다. 쌀은 125일이면 추수한다. 산비탈의 언덕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계단식 논을 일구어서 벼농사를 한다. ‘쿠삼바’(Kusamba) 해변에 떠있는 ‘주쿵’(jukung)은 전형적인 발리의 배다. 항해하는 모습은 커다란 거미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느낌이다. 9m 길이에 400㎏의 무게다. 거미다리처럼 생긴 것은 활처럼 크게 휘었다. 배의 선체와 균형을 잡는 역할인 대나무로 만든 날개 부분을 연결한다. 배 목수(판데 주쿵)를 만났다. 선체는 ‘발라우’ 통나무를 가운데로 쪼개어서 두 쪽을 낸다. 통나무의 가운데를 파 내어 독목주(獨木舟)를 만들며, 수명은 25년 정도다. 진수식은 힌두식의 의례다. 배를 만드는 과정에 개입되는 힌두식의 숫자게임이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두 개의 주쿵을 만들도록 잘라야 하며, 삼일동안 다섯사람이 함께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숫자는 발리의 달력을 구성하는 원리와 동일하다. 즉 1x2x3x5x7=210, 이것이 발리 달력의 일년(210일)을 구성하는 오톤(oton)이라는 일년 주기다. 신생아의 단발식을 하는 돐에 해당하는 날도 210일째다. 초경 후 210일만의 쿠닝간(kuningan) 의식은 처녀가 처음으로 돼지에게 물을 뿌려주고 닭에게 먹이를 주는 성인식이다. 해변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소금을 만드는 곳이 있다. 벌막에는 야자나무 밑둥치를 잘라서 가운데를 파서 만든 둥그런 통이 여러 개 있다. 이 통들은 바닷물을 퍼서 담아 두는 그릇이다. 벌막의 한쪽 구석에는 소금기를 머금은 모래들을 담아두는 큰 통이 있다. 그곳에 다시 바닷물을 통과시켜서, 함수(鹹水, 염분이 들어있는 물)를 얻고, 기다란 홈이 파인 나무그릇(깊이가 1㎝ 되도록 한 것)에 함수를 담는다. 이러한 그릇이 수 백 개 마련되어 있고, 야자나무 잎사귀 덮개로 덮어서 햇볕에 건조시킨다. 1963년 화산 폭발 후, 노인 부자는 인부 한 사람과 함께 하루에 10㎏ 소금 만들기를 시작하였다. 소금 1㎏에 500루피아(1달러=2180루피아)에 판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5-02-19 09:40:22배우 김일우이 특별한 두근거림이 시청자들을 찾았다. 김일우는 지난 4일 방송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요즘 남자 라이프 신랑수업'(이하 '신랑수업')에서 배우 박선영을 만나 중년의 로맨스를 선보였다. 이날 김일우는 성수동에서 박선영을 만났다. 그는 "서로가 편한 사이지만 둘이 있을 때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며 박선영을 향한 감정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히 김일우는 "(박선영과)조금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라며 핑크빛 기류를 풍겼다. 김일우의 직진남 모멘트는 시청자들의 설렘을 유발했다. 이상형으로 키 큰 사람이 좋다고 말한 박선영. 김일우는 "참고로 난 (백)팔십이야"라며 자기 어필을 했다. 이어 김일우는 결혼 배우자에 대한 이상형으로 "나를 업고 응급실까지 뛰어갈 수 있는 사람인데 많은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했다"며 은근한 호감 표시를 했다. 이후에도 김일우는 박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일우와 박선영은 공방 데이트 후 식사하며 대화를 나눴다. 김일우가 결혼 계획을 묻자, 박선영은 "10년 후? 그전에는 하겠지"라고 대답했다. 이에 김일우는 "그때까지 못 가면 그냥 나한테 와"라며 화끈한 플러팅을 선보였다. 이를 들은 박선영은 "난 (10년 후) 갈 데 있다"며 제안에 승낙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모았다. 이 밖에도 김일우는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다. 그는 "장거리 연애 어떻게 생각해"라며 박선영에게 물었다. 얼굴에 표가 너무 난다는 박선영의 말에 김일우는 "나 얼굴 빨개졌냐"고 되물으며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풋풋한 모습을 보였다. 김일우는 지난 1985년 KBS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아이리스 2', '7인의 탈출' 등 다양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 변신을 선보이며 활약한 연기파 배우다. 현재 '신랑수업'에선 남다른 예능감을 보여주며 맹활약 중이다. 한편, 김일우가 출연하는 '신랑수업'은 다양한 연령대의 출연진들이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현실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 밤 9시 30분 채널A에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채널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
2024-12-05 09:33:50배우 김일우가 '요즘 남자 라이프 신랑수업'을 매력으로 채웠다. 김일우는 지난 20일 방송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요즘 남자 라이프 신랑수업'(이하 '신랑수업')에서 이덕화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일우의 뛰어난 요리 실력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날 김일우는 이덕화를 위해 능숙하게 우럭매운탕을 조리했다. 이덕화는 요리하는 김일우의 모습을 보고 "음식을 잘해서 여자에게 인기가 많겠다"며 "너가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다. 여자들이 널 싫어할 이유가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김일우는 유쾌한 입담까지 선보였다. 이덕화는 완성된 우럭매운탕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김일우는 비린내를 잡기 위해 소주를 넣는 것을 까먹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다시 우럭매운탕에 소주를 넣으려고 했으나, 이덕화가 만류한 상황. 이때 김일우는 이덕화의 개인 접시를 보며 "여기다 좀 부을까요?"라고 농담을 건네 보는 이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 외에도 김일우는 수준급 베이킹 실력도 보여줬다. 그는 집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완성도 높은 빵을 만들어냈다. 김일우가 '신랑수업' 스튜디오로 직접 가지고 온 빵을 맛본 패널들. 이들은 "너무 맛있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김일우는 지난 1985년 KBS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아이리스 2', '7인의 탈출' 등 다양한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 변신을 선보이며 활약한 연기파 배우다. 현재 '신랑수업'에선 남다른 예능감을 보여주며 맹활약 중이다. 한편, 김일우가 출연하는 '신랑수업'은 다양한 연령대의 출연진들이 결혼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현실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 밤 9시 30분 채널A에서 방송한다. enterjin@fnnews.com 한아진 기자 사진=채널A '요즘 남자 라이프-신랑수업'
2024-11-21 09:3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