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돈은 어쩌고?"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시로가 하자고 하는것, 하고 싶다는 것에 거의 100% "오! 그거 좋겠는데?" 하며 가능한 방법을 열심히 찾는다. 10년전 첫 세계여행을 시작할 때도 "우리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살 곳을 찾아볼까?"라는 시로의 말을 농담으로 흘려 듣지 않고 "응 그러자" 하며 함께 했고,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춘천으로 이사올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살고싶다"는 시로의 말에 탄은 바로 부동산에 찾아가 "강이 보이는 집이 있나" 물었고, 그렇게 2년전부터 춘천에서 살게 됐다. ★‘드리머’ 시로 시점 시로와 탄은 어떻게 장기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끝이 안보이는 코로나 시국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10년 전 우리의 첫 세계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를 퇴사하고 ‘남을 도우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꿈으로 시작했던 여행이었다. 캐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미국, 멕시코를 거쳐 아르헨티나 남쪽 끝까지 가려했었다. 그러나 여행 6개월쯤 온두라스를 지나던 중 미국에서 중고로 구입한 밴이 테구시갈파에서 고장으로 멈춰버렸다. 두달이상 차를 고쳐보려고 고생하다 끝내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장기 세계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갑작스레 찾아 온 병으로 몇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받은 후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고 회복하던 중 ‘이왕 사는거 하고싶은 것 하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포토그래퍼 탄과 디자이너인 시로의 두 번째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다시 세계여행을 해보자. 이번엔 내가 만든 내차를 타고 세계를 누벼보자!”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자 캠핑카가 필요했다. 어떤 차가 좋을까부터가 고민이었다. 수많은 차들을 비교해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현대 포터 시티밴. 택배에 주로 이용되는 탑차이다. 운전석에서 차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중간문을 통해 캐빈에 갈 수 있고 캐빈에서 서있을 수 있으며 캐빈창문마다 철봉이 있어 창문을 깨더라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안심이 되었다. 또, 현대 포터는 중고차 수출이 많은 차종이어서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부품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듯 했다. 연료는 디젤이었지만 요소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2016년 모델이었고 4륜구동이 안되어 험로는 되도록 피해다니기로 했다. 차가 구해지자 이제 차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팅할 일이 남았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은 탄의 의견을 참고해가며 시로가 맡았다. 캠핑카 꾸미기에는 보통 나무로 내부 인테리어를 많이 하지만 우리는 미관을 포기하고 가볍고 튼튼하고 조립성 좋은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골격을 세우기로 했다. 바닥에 2층으로 수납장을 만들고 그 위를 침상으로 하고, 한쪽 구석에는 20리터 청수와 오수통이 있는 싱크대를 두었다. 침상 반쪽은 넓은 나무판을 자동으로 올리고 내려 컴퓨터 등의 작업시엔 책상으로 쓸 수 있게 했고 상부벽면에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투명수납장 12개를 달아놓았는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볼 수 있어 수납성이 매우 좋았다. 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과 캐빈에서 사용할 전기를 위한 배터리를 달고 수납공간에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어려운 전기작업과 일부 목공작업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해결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물이었다. 차에서 샤워가 가능하려면 100리터 넘는 물통을 실어야 한다. 여행 중 그 많은 양의 물을 계속해서 구하기도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에서 씻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중간중간 숙소를 잡아 샤워와 세탁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렇게 완성된 우리 캠핑카는 캠핑의 낭만보다는 실용성과 수납에 최적화된, 우리에게 딱 맞는 여행동료가 되었다. 우리 여행을 함께할 차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까사블랑카’ 라고 지었다. 우리가 목적지로 생각하던 곳 중 하나가 아프리카 모로코의 까사블랑카였어서 매우 적절한 이름이다 싶었다. 차를 구하고 내부 세팅하기를 마치는데 거의 일년이 걸렸다. 두달 간 PT(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았다. 이렇게 우리의 준비는 거진 다 되어갔어도 코로나시국에 차를 가지고 출국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팬데믹이 풀리나 싶다가도 다시 2차, 3차 유행이 오르락내리락 했고 러시아 전쟁까지 터져 출국이 되네 안되네 소문이 흉흉했다. 그러던 중 2020년부터 운항이 중단 된 동해와 블라디보스톡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페리가 다시 운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페리를 예약하고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살고있는 전세집을 빼고 이삿짐을 보관할 곳을 찾아야 했고 차량용도변경 신청을 해야했다. 출국전 이틀간은 그야말로 전쟁같았다. 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그토록 기다리고 바래왔던 여행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이 많았다. 가지고 있는 짐을 창고에 넣을 이삿짐, 차에 실을 여행에 필요한 짐,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를 찾기 전까지 사용할 들고갈 짐으로 나누어 싸야했다. 또한, 출국 24시간 전 PCR검사와 음성이라는 증서를 받아야해서 하루 전날 동해에 와서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음성증서를 받아 당일에 배를 타야했는데 그 사이 감염돼 양성으로 나온다면 역시나 출국이 금지되는 것이다. 차를 배에 싣는 수속을 할때도 ‘차안의 짐을 문제삼거나 한다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감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배를 타기 전 막판까지 까딱하면 못갈 수도 있다는 각오로 초긴장 속에 진행하게 되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1-04 20:50:49영국의 한 50대 부부가 직접 만든 소형 비행기를 타고 1년 동안 23개 국을 도는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왔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1일 보도했다. 영국 영국 서리주 라이게이트에 사는 패트릭 엘리어트와 린다 워커 부부는 지난해 9월 라이게이트를 출발해 세계 23개 국을 돈 끝에 지난 달 무사히 귀환했다. 그들이 탔던 비행기 제작 기간은 무려 16년. 전직 파일럿이었던 패트릭은 지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카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비행기를 손수 제작했다.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세계 곳곳을 빠짐없이 다녔지만 비행 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한 번 비행 때마다 단지 24시간뿐이었다. 이에 패트릭은 아내와 함께 좀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하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제작하게 됐다. 여행하는 동안 이들 부부가 비행했던 시간은 241시간 22분으로 비행거리만 6만186km에 달한다. 또한 이들 부부가 사용한 항공유는 1320갤런으로 연료 값만 1만2000파운드(약 2208만원)이나 들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비용 문제보다도 부부가 함께 비행을 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며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결국 우리는 무사히 세계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아프리카 북단에서 남단까지 비행을 계획하고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의 비행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kjy1184@fnnews.com 김주연인턴기자
2011-10-02 18:09:14[파이낸셜뉴스] 대전시는 민선 8기 3주년을 맞아 시민이 직접 뽑은 최고 뉴스 순위에서 ‘대전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착공’ 소식이 1위에 올랐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투표는 민선 8기 3년간의 주요 성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정 뉴스를 묻는 질문형식으로, 대전시 정책제안 플랫폼인 ‘대전시소’를 통해 지난 4~13일 진행됐다. 오프라인 투표도 함께 이뤄졌으며, 모두 2035명이 참여해 5679표를 행사했다. 1위를 차지한 ‘대전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착공’ 뉴스는 득표율 14.2%로 총 811표를 얻었다. 이 사업은 1996년 기본계획 승인 이후 답보 상태를 보였지만, 민선 8기 들어 신속한 정책 결정과 총사업비 조정을 통해 지난해 12월 첫 삽을 떴다. 급전 방식을 수소트램으로 확정하고 기존보다 7577억 원 증액한 1조 5069억 원의 총사업비를 확정 지으며, 대전시는 친환경 교통수단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2호선은 총연장 38.8㎞, 5개 구를 순환하는 노선으로, 오는 2028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2위는 ‘30년 만에 돌아온 꿈돌이 가족, 꿈씨 패밀리의 인기몰이’ 소식으로, 총 784표를 얻으며 뒤를 이었다. 대전시는 꿈돌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캐릭터 세계관인 ‘꿈씨 패밀리’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굿즈 및 콘텐츠 마케팅으로 도시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이달 9일 출시한 ‘대전 꿈돌이 라면’은 대전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희소성과 입소문을 바탕으로 출시 일주일 만에 20만 개 판매를 기록하며 지역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3위는 ‘스포츠·문화·예술·관광이 결합된 대전한화생명볼파크 개장’이 선정됐다. 기존 한밭야구장 이후 61년 만에 개장한 볼파크는 국내 최초 인피니티풀과 아시아 최초 몬스터월을 갖춘 구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 시즌 한화이글스의 상승세와 함께 프로야구 역대 최장인 24경기 연속 홈경기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야구특별시 대전’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4위는 ‘국내 축제 중 단일기간 국내 최대 방문객’ 기록을 세운 ‘대전 0시 축제’가 차지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성과 시간 여행이라는 차별화된 콘셉트를 기반으로, 2023년 109만 명, 2024년 20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며 대전의 도시 매력을 전국에 각인시켰다. 이 밖에도 △결혼하고 싶은 도시 대전, 청년 부부 결혼장려금 지원(5위) △새로운 대중교통 환승 거점, 15년 시민 숙원 유성복합터미널 눈앞(6위) △K-방산수도 대전 시대 개막, 방위사업청 대전 이전(7위) △대전 도시철도망을 더욱 촘촘하게, 3·4·5호선 구축 본격화(8위) △대전조차장 이전 철도입체화 통합개발, 국가선도사업 선정(9위) △세계적인 바이오 허브 도약 발판, 바이오 특화단지 선정(10위) 등이 시민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난 3년은 우주·바이오·반도체 등 6대 전략산업 추진과 꿈씨 패밀리 같은 도시 정체성 강화를 통해 대전의 잠재력을 본격적으로 꽃피운 시기였다”며 “민선 8기 후반기에도 체감도가 높은 사업들을 중심으로 성과 창출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kwj5797@fnnews.com 김원준 기자
2025-06-20 09:37:28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정비소에서 잘 고쳐서 정상으로 돌아온 까브리를 몰고 벨루노로 향한다. 우리는 평소 안전상의 이유로 세차를 거의 하지 않고 다녔다. 낡고 지저분해 보이면 도둑이나 강도의 표적에서 아무래도 좀 더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하는 친구집에 깔끔한 모습으로 가고싶어 벨루노에 도착하기 전 세차를 하기로 했다. 스테파노가 사는 벨루노는 인구 3만5000의 작은 도시다. 유명한 돌로미티 국립공원이 있는 알프스자락의 도시이다. 이탈리아의 소도시들이 그렇듯 벨루노도 아기자기 아름다운 곳이었다. 7년 전 이탈리아 한달여행을 할 당시 카우치서핑을 통해 스테파노의 초대를 받아 벨루노를 방문했고 스테파노는 회사에 휴가까지 내며 우리와 시간을 보내고 도시와 주변을 함께 돌아보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의 아들과 부모님과 멋진 이탈리아 가정식 만찬을 즐기며 따뜻한 환대를 받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으며 연락을 했었고 이번 여행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 시간이며 스테파노의 사정이 허락해서 이번 재회가 가능해진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7년 만에 친구를 다시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열심히 달려간다. 중간에 어떤 작은 도시에서 세차장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탄이 처음 보는 세차기계와 이탈리아어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차에 어떤 청년들이 다가왔다. 세명의 벨기에 청년들이었는데 탄이 세차하는 법을 알아내려 애쓰는 것을 보고 우리가 세차를 도와줘도 되겠냐고 말을 걸어왔다. 예상치못한 친절에 의아했고 낯선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은 상당히 조심해야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도 우리의 여행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왔기에 감사히 친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건장한 청년 셋이서 커다란 까브리를 비누칠을 하고 구석구석 물로 청소를 해준다. 우리끼리 했으면 힘도 들고 오래 걸렸을텐데 키 큰 유럽청년 셋이서 높은 곳까지 깨끗하게 뚝딱 세차를 잘 해주었다. 오랜 여행길에 쌓이고 쌓인 까브리의 묵은 때가 완전히 씻겨나가 반짝반짝 새차처럼 되는 것을 보니 기분이 후련해진다. 세차 후에 청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른셋의 Stijn Bevers라는 친구는 동료들과 자동차여행 중이라고 한다. 여행 중에 게임 포인트를 적립하는 챌린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했는데 여행 중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움으로써 포인트를 얻어 이기는 게임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기는지 누가 높은 점수를 얻게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행자체를 소비하며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남을 돕고자하는 친절을 베풀며 다닌다니 참 좋은 멋진 청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청년들한테 좋은 배움을 얻었다. 우리도 여행 중 멈춰있는 차를 끌어주거나 선교지에서 도움을 드릴 일이 있는지 살폈던 적이 있는데 이렇게 하루에 하나씩 좋은 일을 하는 챌린지라니 정말 보기 좋았다. 참 기특하고 멋진 청년들이다. 이런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고 감사했다. 뜻밖의 기분 좋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벨루노로 달린다. 7년 전 방문했던 Forst 맥주공장이 보인다. 이곳 수제맥주를 무척 좋아했던 생각이 나서 차를 멈추고 들어갔다. 7년 전과 바뀐것이 없어보인다. 다양한 맛의 맥주가 들어있는 식스팩을 친구선물로 샀다. 아름다운 돌로미티 바위산도 여전하고 정겨운 마을도 그대로인것 같다. 벨루노에 도착해서 친구네 집으로 갔다. 스테파노의 집은 부모님댁 근처로 이사해서 예전에 묵었던 그집은 아니었지만 2층의 근사한 주택이 무척 아늑하고 좋았다. 우리에게 집을 구경시켜주고 2층 방 중 하나에서 묵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에어컨이 없고 너무 더워서 창고인 지하실을 사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정말 괜찮겠냐고 거듭 묻는다. 서로의 프라이버시도 그렇고 시원한 지하가 훨씬 좋아서 우리는 정말 지하에서 머물고싶다고 하자 다행히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스테파노가 까르보나라를 해준다고 장을 봐왔다. 이탈리아 사람은 자기 음식에 매우 엄하다. 정통 이탈리아식 까르보나라는 어떤 맛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달걀을 깬 것에 파마산 치즈가루를 섞고 후추를 넣고 다시 섞는다. 돼지고기 볼살, 턱살, 항정살을 염장해서 만든 관찰레(Guanciale)를 얇게 썰고 후라이팬에 굽는다. 관찰레는 베이컨과는 매우 다르다. 고급스러운 풍미가 있다고 한다. 돼지기름이 충분히 나올 때까지 굽고 스파게티면은 포장에 쓰인대로 11분을 익히면 알덴데(al dente)로 조금 딱딱한 식감이 되는데 스테파노는 몇 분 더 익히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도 알덴데보단 말랑한 면을 더 좋아한다. 면을 체에 받치고 잘 익은 관찰레를 넣고 계란과 치즈소스를 부어 버무리면 정통 까르보나라가 완성된다. 소스에 들어간 계란은 날달걀이지만 면과 관찰레의 온도로 계란이 익는다고 한다. 크림은 넣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는 스테파노. 레드와인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정통 까르보나라도 꽤 입맛에 맞았다. 따로 소금이나 간을 하지 않았지만 간이 잘 맞았고 풍미가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풍부한 맛이 났다. 내가 스파게티를 먹다가 할라피뇨를 꺼내려고 하는 것을 본 스테파노는 "시로는 내 파스타를 죽이고 있어요."라고 한다. 웃음이 터졌다.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먹으면 감옥에 갈 수 있어요"란다. 나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미안해요. 한국에서 늘 할라피뇨와 함께 먹어왔어서요"하며 무심코 들었던 할라피뇨통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스테파노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탈리아에서 금지된 거라며 농담을 던진다. 유쾌하게 이야기해줘서 쉴 새 없이 웃으며 식사를 했지만 이 나라에 왔으니 이 나라 문화에 대한 존중도 꼭 필요한 것 같아 조금은 조심해야겠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당신은 손님이니 용서할께요"라고 해주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웃느라 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스테파노를 통해 이탈리아의 음식과 자국 문화의 자부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다음날엔 우리가 주방을 점령했다. 까브리에 남은 음식재료를 몽땅 가져와 미역냉국과 닭볶음탕을 하기로 했다. 7년 전에도 닭볶음탕을 해서 스테파노의 부모님과 동네분들이 여러분 오셔서 조금씩 맛보고 즐겁게 식사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참 좋았나보다. 뭔가 다른 것을 할까 했었지만 그 후로 닭볶음탕을 먹을 수 없었다며 그때 음식을 원하기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7년 전에는 고추장이며 제대로된 소스가 없어 불닭볶음면의 스프로 맛을 냈었는데 이번엔 까브리에 싣고 온 한국 소스로 제대로 양념을 했다. 요리실력도 조금은 늘었으니 지난번보다 맛있겠지. 포슬포슬 감자와 넓적당면도 넣었다. 스테파노의 아들 마테오와 딸 발렌티나, 그리고 여친 니나까지 온가족이 모였다. 미역냉국은 미끌거리는 식감이 좀 낯설어서인지 그닥 인기가 없었지만 닭볶음탕은 성공적이었다. 다들 즐겁게 식사를 했다. 독일에서 배를 타고 한국에 가기 위해선 어떻게든 짐을 정리해야했다 우리는 스테파노의 지하실에 방수포를 깔고 까브리에 있는 짐들을 몽땅 다 꺼내왔다. 독일의 배에 까브리를 싣고 한국으로 보내기로 하긴 했지만 이번엔 그 안의 짐들이 문제였다. 일년간 살았던 각종 살림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러시아로 나올때는 운좋게도 이삿짐으로 해서 얼렁뚱땅 짐을 실은 채 잘 통관을 했지만 독일은 왠지 깐깐한 이미지라 차에 짐이 실려있으면 다 꺼내서 버리라고 하거나 아예 차를 안실어주면 어떡하나 싶어 어떻게든 짐을 정리해야했다. 이탈리아에서 국제택배로 한국에 짐을 부치는 방법이 있는지 스테파노에게 물어봤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부치는 방법도 쉽지않고 시간도 엄청 걸리는 모양이었다. 다시한번 우리나라 좋은나라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다 빼온 짐 중 우리가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 있는 양만큼 중요하고 귀중한 것 위주로 분류를 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한국에서 다시 쉽게 살 수 있는 것 중 쓸만한 것은 스테파노에게 주었다. 그러고도 어찌할 수 없는 짐은 고민고민하다가 버리면 버리리라 하고 그냥 까브리 짐칸 맨 아래쪽에 꽉꽉 넣어두었다. 벨루노에서 짐정리를 하는 틈틈이 스테파노와 니나와 함께 피자도 먹고 젤라또도 먹으러 다니고 공원 산책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분수에 앉아서 먹는 젤라또는 뭔가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다.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친구와 이렇게 즐겁게 보낼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하루는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을 모셔와서 떡볶이를 해드렸다. 맵지않을까 무척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매운 것을 잘 드신다. 특히 어머님이 고추장을 좋아하셔서 뜯지않은 큰 통을 선물로 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식전주 주황색 스피리츠를 함께 마시고 웃음이 끊이지 않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평화롭고 소중했다. 이들 덕분에 이탈리아가 우리에게 제 2의 고향같이 느껴지고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의 또다른 가족같이 여겨졌다. 우리가 떠나는 날 스테파노의 어머님께 인사드리러 갔더니 우리에게 파스타면이며 성모상 장식품 등 선물을 한아름 주셨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것이 느껴져 눈물나게 감사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뵐지 모르는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한국식으로 절을 하자고 탄이 제안해서 우리는 어머님을 의자에 앉으시게 하고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을 담아 인사하고 싶었다. 한국식 인사라고 하니 신기해 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셨다. 어머님과 헤어지는 것이 스테파노보다 더 힘들었다. 그렇게 스테파노네에서 약 열흘간 신세를 지고 시간이 되어 북쪽으로 독일을 향해 길을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66z4wsCZ884?si=NXcbcbs1u3xXoW5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6-19 10:37:56[파이낸셜뉴스] 충남도가 23∼26일 대만에서 열린 ‘2025년 제1회 한국 여행 엑스포’에 참가해 충남 관광의 매력을 현지에 소개했다. 한국 여행 엑스포는 대만 최대 규모 관광박람회인 대만 국제관광박람회와 함께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열렸으며, 지자체와 의료관광기업, 여행플랫폼 기업 등 총 100여 개 관광 관련 기관·기업이 참여했다. 이번 엑스포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관광 정보를 제공한 도시관광 홍보관, 볼거리·즐길거리·먹거리를 선보인 주제(테마) 여행관, 여행 상담·상품 판매를 진행한 여행상품 홍보관 등을 통해 한국의 여행 콘텐츠를 대만 현지에 홍보했다. 아울러 한국 여행 바이어 상담회, 대만 여행 크리에이터 쇼, 한국-대만 관광포럼 등도 열려 대만 여행업계와 협력을 도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행사 기간 충남도는 공주시, 부여군, 보령축제관광재단, 태안국제원예치유박람회조직위원회 및 충남문화관광재단과 ‘2025∼2026 충남 방문의 해’ 홍보를 위한 ‘충청남도 통합 홍보관’을 공동 운영했다. 홍부부스는 모두 8개로, 이는 역대 해외 박람회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충남도는 대만 크리에이터를 활용한 퀴즈 이벤트, 충남 관광 SNS 팔로우 이벤트 등의 깜짝 프로모션과 백제 금관 만들기 체험 활동을 통해 대만 현지인들의 이목을 모았다. 아울러 주요 단풍 명소 등 계절별 관광코스와 미식, 축제, 숙박, 해양 레저 활동 등 현지 수요에 맞춘 홍보 활동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이와 함께 미디어를 통한 특집 인터뷰를 추진하고 대만 전문지 광고와 사회관계망(SNS) 등 온라인 홍보를 병행해 충남 관광의 인지도를 현지에 넓혔다. 충남도는 이번 엑스포에서 수렴한 현지 의견을 반영해 올해 신규 관광 상품 개발에도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대만은 방한 관광객 수가 세 번째로 많은 국가”라면서 “충남은 대만 시장을 충남의 해외 관광 전략에 있어 매우 중요한 거점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번 대만 한국 여행 엑스포가 도가 가진 멋과 맛, 그리고 매력적인 관광 자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kwj5797@fnnews.com 김원준 기자
2025-05-26 15:03:21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이탈리아 북부의 스텔비오 패스는 알프스에서 2번째로 고도가 높은 고갯길이다. 7년전 '탑기어'라는 영국 TV프로에 나온 이곳을 보고 이탈리아 여행을 결심하고 한달간 이탈리아 전국을 돌았는데 정작 스텔비오 패스는 4월 중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도로가 통제되어 갈 수 없었다. 지난 여행에서 갈 수 없어 아쉽게 돌아섰던 이 곳을 드디어 까브리와 함께 간다. 푸른 산골짜기를 가르며 어지럽게 꺾인 이 길에서 멋진 알프스의 풍경을 비로소 만끽해본다. 스텔비오 패스의 높이는 한라산(1,947m)보다 훨씬 높고 백두산(2744m)과 비슷한 해발 2757m이다. 180도로 급하게 도는 헤어핀코스가 75개나 되어 자동차로 통과하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어마어마한 헤어핀들이 계속되어 라이딩을 즐기는 바이커들과 드라이버들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7월의 어느날 우리는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 출발하여 스텔비오 패스로 향한다. 우리에게 토리노는 200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알고있는 도시였다. 가는 길에 밀라노, 코모호수 등 유명 관광지가 있지만 지난 여행에서 이미 가본 곳들이기에 우리는 그저 서둘러 스텔비오 패스로 달려갔다. 토리노에서 스텔비오 패스 정상까지 6시간 거리(360km)로 아침 9시에 출발해 너무 늦지않게 정상에 도착하려 했다. 비행기로 13시간 걸려 왔던 이탈리아를 까브리와 함께 차로 간다는 생각에 1년여를 유라시아대륙을 거쳐온 건 까맣게 잊고 그저 옆동네가듯 쉽고 편해서 좋았다. 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을 다니는 동안 차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강해서 에어컨을 켜도 늘 더워서 힘들었는데 이곳에 오니 선선한 공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마을 보르미오(Bormio)를 지나면서 길이 점점 가팔라진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나보다. 알프스의 풍경이 방송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왔다. 이곳을 즐기고자 온 자전거를 비롯해서 고성능 바이크와 스포츠카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도로가 생각보다 좁았지만 도로면이며 난간 등 관리상태가 좋고 통행량이 많지 않아 드라이브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참 대박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왔는데 아직도 눈앞에 급한 오르막경사들이 겹겹이 보인다. 고성능이라 하기에 턱도없는 택배차태생의 까브리이지만 탄이의 운전에 헤어핀들을 부드럽게 잘도 돈다. 이 아름다운 풍경에 멋진 도로를 함께 달릴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여기에 온 사람들 모두 저마다 다양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다들 이 길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 웬지모를 동질감에 반가왔다. 경사를 오르던 중간에 작은 공터를 발견하고 차를 멈추었다. 산바람에 이름모를 작은 야생화들이 한들한들 춤을 춘다. 우리가 온 길을 내려다보며 이 험한 산에 이렇게 근사한 길을 만든 '사람'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하니 7년전의 아쉬움이 다 사라진다. 구름이 드문드문있는 맑은 날씨와 기온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 길가에 방목중인 소들도 보이고 고개를 들면 눈덮인 장엄한 알프스 산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벅찬 마음으로 드라이브를 했다. 한참을 가자 호텔들과 식당이 모여있는 곳이 나왔다. 이곳이 아마도 정상인가보다. 많은 바이크들과 차들이 세워져있었다. 정상에서 사방을 보니 정말 숨이 멎을 듯이 아름다운 풍경이다. 물감을 뿌린듯 파란 하늘에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드문드문 떠있고 그 아래 구름에 닿을듯이 솟아있는 눈덮인 산봉우리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조금 지나자 이제 내리막이 시작되나보다. 산아래 구불구불 이어진 길이 골짜기를 따라 길게 이어져있는 모습이 멀리까지 보인다. 누가 먼저라고 할것없이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 진짜 미쳤다. 이야... 세상에.." 감탄만 계속 나오고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조금 내려가다 꽤 넓은 공터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다른 차도 두어대 서있었다.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 풍경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광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공터는 차 열대정도를 댈 수 있을만한 크기에 화장실이고 매점이고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풍경을 만끽하며 하룻밤을 보내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냥 내려가버리기가 너무너무 아까왔다. 건너편 산위에 빙하며 구름이 만드는 그림자가 산을 타고 흐르는 모습이 봐도봐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더위에 힘들었는데 이곳은 정말 천국이었다. 시원하고 멋진 풍경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 너무너무 행복했다. 어두워질때까지 홀린듯 풍경을 바라보았다. 때로 계획한 것이 잘 되지 않을때도 있는데 이렇게 계획없이 와서 상상도 못한 좋은 일이 생기는 일도 있다. 감사한 하루다. 해가 지니 하늘에 엄청난 별들이 보였다. 자연이 아낌없이 주는 선물인듯 생각되어 황홀감에 젖어 늦게까지 별을 감상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창문밖을 보니 우리말고도 옆에 차가 여러대 서있었다. 차지붕 위에 텐트를 펴놓고 잔 사람도 있는것 같다.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이제 아쉬워도 내려가야할때가 왔다. 가자. 아직 수십개의 헤어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중 최고로 멋진 곳에서 차박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스텔비오에서 스테파노가 있는 벨루노까지는 4시간거리(260km).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고 세차도 하면 스테파노의 귀가시간과 얼추 맞을 것 같다. 내리막길의 헤어핀을 도는 것은 오르막과 또 다른 스릴이 있었다. "운전 못하는 사람은 엄청 쫄리겠어." 연속되는 헤어핀구간에 살짝 쫄아서 한마디 했다.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차가 많지 않다. 속도를 높였다간 잘못하면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헤어핀구간을 돌고 돌고 또 돈다. 조금 넓은 길에서는 속도를 즐기는 뒤차들을 보내고 여유롭게 간다. U자형 코스가 계속되어 가속과 감속을 정교하게 해야하지만 탄의 운전실력을 믿기에 든든하다. 스텔비오 패스의 대부분은 길이 상당히 좁다. 간간히 교행이 불가능한 곳들도 있어서 반대편 차들의 상황도 잘 봐가며 배려운전을 해야한다. 헤어핀에서는 차 크기와 상관없이 맞은편 차로를 넘게되는 것이다. 운전하는 것이 즐거웠던 탄이 "뉘르부르크링 할래? 스텔비오 패스 할래? 그러면 난 스텔비오 패스 할래. 그럴래."라며 웃는다. 크으.. 뉘르부르그링이 졌다. 옆에서 나는 "아유 운전 잘한다." 하며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탄이 이 길을 보면 자동차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든 것 같다며 감탄한다. 이 높은 산에 구불구불 험한 길을 이렇게 깨끗하게 닦아놓고 돌로 튼튼한 난간을 만들어놓은 것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전세계 어딜가도 이런 길, 이런 풍경은 없을 것 같다. 자전거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꽤 많은것에 놀랐다. 그들의 체력과 정신력에 존경심이 생긴다. 출발한지 30분정도 지났는데 탄이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안듣는다고 한다. 내리막길에 폭이 좁은 도로라서 브레이크 고장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탄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은 무척 심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나도 짐작은 되었지만 호들갑떨고 불안해해봤자 도움될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그저 구글에서 근처 자동차 정비소를 찾으며 조용히 있었다. 탄이 비상등을 켜고 기어를 1단으로 변경해서 감속하고 여차하면 사이드 브레이크로 제동할 수 있도록 서행했다. 길옆에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잠시 차를 식히며 브레이크 밟고 떼기를 여러번 반복해본다. 브레이크 압력이 평소같지 않단다. 가까운 정비소로 어떻게든 안전하게 가야한다. 마냥 서있을 수 없어서 다시 저속으로 출발을 했다. 구글에는 가장 가까운 정비소가 2시간 거리에 있다고 하는데 일단 큰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정비소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럴때 정말 아쉬운 것이 한국의 비상출동 서비스. 정말 외국에서 길위에서 차가 고장나면 답이 없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야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천천히 서행으로 이동하다가 거짓말처럼 길옆 정비소를 발견했다. 구세주를 만난듯했다. 1시간동안 정비사 두분이 차를 세심히 봐주셨다. 핸드폰 번역어플로 고장의 원인을 물어보니 정비사님이 스텔비오 패스를 넘어왔는지 물어본다. 계속된 내리막길에 브레이크를 계속 밟다보니 브레이크 용액안에 공기가 있는데 그게 뜨거워져서 부피가 팽창해서 문제가 생긴듯 했다. 유럽물가에 정비비용이 걱정되었는데 40유로(4만8000원)를 달라고 한다. 두분의 수고에 너무 감사해서 50유로를 드리고 잔돈은 됐다고 했다. 상황이 잘 마무리가되자 그제서야 탄이 지금까지 까브리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는데 너무 당황했다고 한다. 아까 내색은 안했지만 식겁했다는 말에 나도 대충은 짐작했다고 이야기했다. 다 내려와서 그랬기에 망정이지 좁은 내리막길 중간에 그러다 멈췄으면 정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뻔했다. 길을 딱 막아버려 다른 차들도 못가게 하거나 어디를 들이받고 멈춰서 구조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됬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건 신이 도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탄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차를 정비하고나서 비로소 안심하고 다시 벨루노를 향해 길을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2T7bIxdhgyA?si=YM1_CcprpEK9O_BE>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5-22 10:42:16<63> 포르투갈 리스본~호카곶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나라, 포르투갈로 간다. 수도 리스본에 도착하니 언덕이 많고 차가 다니는 좁은 도로에 트램이 함께 다니고 있어 꽤나 복잡해보였다. 해외에 나오면 한국에서 쉽게 먹던 음식들이 너무 귀하다. 한국음식이 한류를 통해 많이 퍼졌다고들 하나 두부, 콩나물, 어묵, 떡 등 외국에서는 한인타운이 있는 곳이 아니면 구하기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큰 도시에 갈 일이 있으면 꼭 한국 음식점과 식료품점을 찾아 방문하곤 했다. 리스본에도 한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반가워 찾아갔는데 가보니 주차는 엄두도 못낼 정도로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 위치해있어 난감했다. 다행히 뒤에 차가 없어서 잠시 세우고 식당에 들어가 물어보니 현지인 종업원이 까브리에 함께 타고 조금 떨어진 주차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해주어 너무 감사했다. 식당 내-외부의 인테리어가 완전 한국에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너무도 한국적이다. 명조체로 유리창에 써놓은 '소주포차'와 벽 여기저기에 붙은 60~70년대 그림과 포스터들. 90년대 대학근처 술집이면 벽에 가득하던 낙서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블랙핑크, 엑소 등 한국 아이돌의 노래들까지. 여기가 리스본인 걸 잠시 잊고 익숙한 편안함에 젖어들었다. 쌀밥과 함께 나온 순두부찌개와 두부김치는 한국서 먹는 맛과 다를 바 없이 매우 훌륭했다. 식사를 마치고 번잡한 도시를 빠르게 벗어났다. 리스본에서 40분 거리의 호카곶으로 가는 길. 바다를 끼고 해안 도로를 달리는 마음이 마냥 편하고 좋다. 무심코 탄에게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하고 중얼거리자 탄도 "나만 그런게 아니구만"이라고 대답한다. 모로코에서의 시간들이 많이 힘들었던 것일까? 포르투갈에서 맞아줄 사람도 하나 없는데 이상하게도 분위기랄까 그 공기가, 왜인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서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였다. 해가 떨어진 후에 유라시아 서쪽끝인 호카곶에 닿았다. 해가 막 잠긴 바다위의 하늘에는 여전히 붉은 기운이 밝게 남아있었다. 호카곶에는 주차장이 잘 되어있다. 모로코와 스페인 남부의 더위에 많이 지쳤는지 호카곶에 강하게 부는 바닷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한기가 들 정도였지만 오히려 반가왔다. 등대도 있고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는 탑도 우뚝 서있었다. 영국에서 왔다는 청년 서너명은 해를 보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유럽일주라도 한걸까. 우리도 동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서쪽 끝 포르투갈의 호카곶까지 왔다는 사실을 만끽하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뭉클했다. 이날 호카곶의 넓고 시설좋은 주차장에서 시원하게 밤을 보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차가 조금씩 흔들릴 정도였지만 덥지 않다는 것에 감사하며 잘 잤다. 다음날 대서양을 왼쪽에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해변을 만났다. 혹시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싶어 들렀는데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서 파도도 높고 모래사장에 띄엄띄엄 있는 현지사람들도 바람막이를 세우고 일광욕을 할 뿐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이, 바람이 너무 불어서 튜브놀이는 안될 것 같아 조금 실망했다. 파도를 보니 서핑하기엔 좋아보인다. 해본적은 없지만.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서 그 뒤로도 몇군데 해변을 찾아가보았지만 물에 들어가기는 힘들것 같았다. 해지기 전 바다가 잘 보이고 너무 붐비거나 외지지 않은 괜찮은 해변 주차장을 찾게되어 시간이 약간 일렀지만 더 가지 않고 이곳에서 한가롭게 쉬다가 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제 호카곶에서 못 본 일몰도 여유 있게 구경하고 편안히 잘 쉬었다. 일찍 일어나 북쪽의 포르투(Porto)라는 도시로 간다. 포르투는 '항구'라는 뜻으로 포르투갈 국명의 근원이라고 한다. 대항해시대를 시작한 해상강국이었던 나라의 이름으로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을 했다. 포르투는 인구 21만명으로 포르투갈 제 2의 도시이다. 포르투갈의 인구가 1000만이 조금 넘는데 21만정도면 별로 큰 도시로 느껴지지 않는다. 시내로 들어오니 관광도시답게 길에 다니는 관광객들도 많고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많이 보인다. 옛건물들이 매우 장식적이고 아름다왔는데 특히 벽면을 타일로 마감한 건물들이 신기했다. 유럽의 화려한 조각장식과 파란 그림의 타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포르투에서 가장 저렴한 곳으로 구한 숙소는 1박에 거의 10만원 정도였는데 가보니 여행에서 묵은 숙소 중 손꼽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내맘속 별다섯개 숙소로 주방은 깨끗하게 정리돼 있고 모든 식기가 갖추어져 있으며 냉장고 등 시설도 무척 좋았다. 주방 옆 다이닝룸은 근사한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손님도 많지 않아 우리끼리 편안히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매일 캡슐커피를 서비스로 주셨고 방은 좋은 냄새가 나는 깨끗하고 단정한 분위기에 눕기만해도 잠이 솔솔오는 매트리스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고 밤에는 쥐죽은 듯 조용해서 편히 쉬기에 매우 좋았다. 숙소가 너무 좋아서 예정에 없던 하루를 더 보내며 푹 쉬었다. 게다가 뒷마당에는 까브리를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단지 까브리의 크기에 비해 진입로가 매우 좁아서 들어오고 나갈때 심장이 쫄깃하도록 아슬아슬했는데 탄의 멋진 운전실력이 발휘되어 문제없이 잘 통과했다.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와 따뜻한 작별인사를 하고 포르투를 떠났다. 포르투갈은 정말 좋았고 이 나라에 있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포르투갈 다음의 목적지는 이탈리아의 벨루노로 정했다. 7월에 네덜란드에서 까브리를 선적하기로 한 것이 취소되어 8월에 독일의 다른 선박에 싣기로 최종 결정하고 그때까지 예정에 없던 시간이 생겨 이탈리아 벨루노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벨루노의 스테파노는 7년 전 이탈리아를 한달동안 일주한 여행에서 만난 친구이다. 그때 그는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우리와 함께 알프스를 다니며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고 자신의 집을 내주어 우리가 일주일 가까이를 편히 지내도록 배려해주었고 그의 부모님과 자녀들과 함께 어울리며 함께 식사를 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스테파노와 그의 가족을 생각하면 이탈리아에 있는 우리의 또다른 가족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할 즈음에는 시간이 괜찮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열심히 이탈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포르투에서 벨루노까지는 차로 4일 거리(2500km)이고 가는 길에 7년전 눈이 쌓여 출입이 통제되어 못갔던 스텔비오 패스를 들를 예정이다. 스페인 북부의 고속도로를 지나 프랑스의 지방도로를 통과하면 알프스 산맥너머 이탈리아가 나온다. 긴 거리를 이동해야 하지만 도로가 잘 되어있고 풍경도 아름다워 드라이브가 즐거웠다. 프랑스를 다시 지나게 되어 빵집을 찾았다. 프랑스의 바게트는 정말 영혼의 식량이다. 한국의 빵처럼 달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리 맛있을까. 갓 구어져나온 따끈한 바게트를 둘이 정신없이 뜯다보면 금새 사라지고 없다. 가격도 너무너무 착하다. 하루는 장을 보러 마트에 들렀다가 망고를 발견하고 가격이 좋아서 몇개 사왔다. 탄이 나를 위해 망고를 깎아준다. 자기는 안먹고 자꾸 내 입에만 넣어준다. 내가 "나만 주지 말고 자기도 하나 먹어봐, 진짜 맛있어"하자 "내가 먼저 먹었지. 원래 요리하는 사람이 더 많이 먹는 거야"라고 한다. 내가 강권하며 "자기가 먹어~~!"하자 사양하다가 결국 한입 베어물었는데 "맛있지?, 맛있지??" 하고 묻자 머리를 갸우뚱 하며 "나는 망고 별로 안 좋아해"라며 맛없는 척을 한다. 탄은 원래 식탐이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맛있는 것을 나에게 양보하며 더 먹게하려고 하는 것을 볼때마다 이 사람이 정말 나를 많이 사랑하나보다 하고 느끼게 된다. 참 감사하다. 그렇게 알콩달콩 이탈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vqHPMWY6QEs?si=7NjyAeaerlwCpMH4>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5-14 10:30:33<62>모로코-스페인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하라 사막옆 마을 하실라바드에서의 멋진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쪽 텐지어메드항으로 길을 떠난다. 길 옆에 야자수로 된 숲이 우거져있는 광경이 신기하다. 주변 언덕과 흙은 메말라서 버석버석 갈라질 정도인데 어떻게 저리 많은 야자수들이 숲을 이룰정도로 있는걸까? 아마도 중심에 시내가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항구까지는 800km가 넘는다. 이틀은 꼬박 가야한다. 가는 길에 이프란, 페스, 쉐프사우엔등 유명 관광지가 있지만 6월 말 모로코의 더운 날씨에 호되게 혼나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온도가 낮은 북쪽으로 서둘러 가고싶었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 우리는 까브리를 한국으로 보낼 방법을 열심히 알아보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카르타헤나, 벨기에의 앤터워프 등 여러 항구에 문의하고 열심히 알아보았는데 요구하는 서류와 절차 등이 쉽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 거기에다 '전쟁중인 러시아에서 유럽을 입국한 차량은 배로 보낼 수 없다'는 뜬소문이 돌아 우리를 더 불안하게 했다. 그러다가 다행히 독일의 브레머하펜의 한 선적회사에서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하고 또 출항 날짜도 맞출 수 있어 그 곳으로 가기로 했다. 벌써 두달 전부터 배편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찾기가 어려워 다시 유럽, 동유럽을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몇달을 생고생을 하며 육로로 돌아가야하나 하는 생각에 절망적인 마음까지 들던 터라 독일쯤은 뭐 날아서라도 갈 것 같았다. 한국에서 배로 까브리를 싣고 출국할 때도 행정절차가 꽤 복잡해서 여러 서류를 받고 하느라 많은 노력과 수고를 했었는데 돌아가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페스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자고 일어나니 밖에서 난리가 났다.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놀라 창밖을 보니 사람들이 공터에서 양을 죽이고 있었다. 모로코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도축을 하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지고 좀 무서워졌다. 그런데 숙소를 나와 이동하던 도중에도 길가에 계속해서 양을 죽이거나 피로 얼룩진 무더기가 보여 이게 그냥 도축이 아니구나 싶었다. 찾아보니 모로코에는 6월에 "이드 알 아드하" 라는 양 희생제가 있는데 하필 우리가 그날 그 도시를 지났던 것이었다. 이 축제를 위해 양과 염소가 전국적으로 500만~700만 마리가 도축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숫자이다. 온 나라가 피로 물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생전 그렇게 많은 피와 동물부산물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위해 텐지어메드 항에 도착했다. 배는 왕복표를 샀기에 체크인해서 잘 받았고 세관검사장에서도 시간은 좀 걸렸지만 크게 까다롭지 않게 잘 통과되었다. 항구에 들어가 우리가 탈 배앞에 줄지어 선 차들 뒤에 줄을 섰다. 배를 타고 한두시간 걸려 금방 스페인에 도착했다. 이슬람인 모로코는 뭔가 불편하고 낯선 느낌이 있었는데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오자 뭔가 문명세계로 돌아온 안도감이 느껴졌다. 다시 EU로 들어간다. 간단한 검사를 받고 입국부스를 지났는데 서류를 마무리하러 옆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탄이 다녀왔더니 갑자기 시동이 안걸린다. 무슨 일일까? 기름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잘 움직이던 차가 갑자기 시동이 안걸리다니. 우즈벡 누쿠스에서의 악몽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곳은 주변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하니 최악의 경우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 많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만약 견인차를 부르고 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나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탄은 스타트모터가 안돈다며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시동을 다시 걸어보려 노력을 했다. 그래도 배에서 멈추지 않은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배에서 시동이 안걸렸으면 다시 모로코로 돌아가야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탄이 차에 한국에서 지인이 여행선물로 주신 시동용 보조배터리로 충전을 해봐야겠다고 한다. 짐속 깊숙한 곳에서 보조배터리를 찾아 꺼냈더니 6개월이상을 그냥 방치해서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다. 일단 보조배터리 충전부터 해야했다. 한시간동안 차의 캐빈쪽 배터리로 보조배터리를 충전했다. 충분히 충전되었음을 확인하고 차량 아래의 배터리에 보조배터리를 연결하니 "부릉~"하고 시동이 걸렸다! 와!!! 이야, 이걸 안가져왔으면 어쩔뻔했는지. 선물을 주신 하선생님께 감사인사가 절로 나왔다. 돈도 돈이고 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렇게 잘 해결되다니 너무 감사했다. 보조배터리를 떠올린 탄에게도 매우 칭찬. 한국같으면 전화 한통이면 긴급출동 서비스가 바로 와서 간단히 해결이 가능한데 아무도 모르는 해외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정말 답이 없는데 너무나도 다행이었다. 국경앞에서 2시간반을 멈춰서 마음고생을 했지만 잘 해결된 것에 감사하며 서로를 토닥였다. 스페인의 우브리케(Ubrique)라는 마을에 저렴한 숙소가 있어 찾아갔다. 모로코의 더위에 지쳐 에어컨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았다. 비탈진 언덕에 있는 마을에 우리 숙소도 무척 경사진 곳 위쪽이어서 가격이 비교적 쌌나보다. 까브리는 아래쪽에 주차하고 짐을 낑낑들고 경사길을 올라가야했다. 숙소는 작고 1층은 주방, 2층은 침대가 끝이었지만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어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이곳에서 몇일 쉬며 더위에 지친 체력을 회복했다. 기력이 좀 회복되고나서는 골목이 많아 가볍게 골목길을 산책하기 좋은 동네였다. 잘 쉬고 재충전해서 다시 떠날 힘을 얻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fw43IIaoh2A?si=Kj3n1YZi7Iwb24nd>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5-08 19:15:41<61>모로코 '사하라'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사하라 사막은 지구에서 몇 안되는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생 텍쥐페리가 사랑한 사막, 진정한 사막을 체험해보고 싶어 모로코 동쪽 사하라 사막의 메르주가(Merzouga)를 향해 간다. 가는 길에 그랜드 아틀라스 산맥을 관통하는 티지 앤 티치카(Tizi N'Tichka) 패스를 지난다. 드넓은 마라케시 평원 위에 위치하며 사하라로 가는 관문이다. 산 넘어 굽이굽이 협곡길을 지나면 모래빛 풍경이 펼쳐진다. 모로코의 더위에 힘들어하던 차에 해발 2260m의 높은 지대에 가면 좀 서늘하려나 기대를 했었다. 중간에 해 가지기 전 묵고 가려고 들른 숙소는 에어컨이 있는 곳이라고 해서 갔는데 에어컨도 없고 샤워를 하자마자 다시 땀으로 옷이 푹 젖을 정도로 덥다. 한밤중에도 기온이 32도가 넘는다. 모로코에서는 에어컨을 기대하면 안된다. 숙소 조건에 에어컨이 있다고 하는 것의 80~90프로가 거짓말이다. 까브리에 있던 작은 에어서큘레이터와 주인이 에어컨이라며 주는 커다란 선풍기를 틀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더운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힐 뿐이었다. 에어컨이 있다기에 이틀을 예약했었지만 하룻밤을 겨우 넘기고 하루치를 환불받고 다시 동쪽을 향해 갔다. 그래도 모로코 사람들이 환불은 잘 해주는 것이 다행이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드디어 저 멀리 모래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모래사막이다. TV서 보던 그 모래언덕과 사막을 내 두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무척이나 설레었다. 우리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하실라비드(Hassilabied)에 위치한 "핫산네"를 찾아갔다. 사막 옆에 위치해 있지만 정말 잘 꾸며 놓은 곳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방안에 인테리어까지, 정말 괜찮은 리조트에 온 것 같았다. 방에는 냉장고와 진짜 에어컨이 있었고 모로코에서 꺼진 매트리스 때문에 힘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침대 컨디션도 매우 좋았다. 단지 한낮의 온도가 58도가 넘어 모로코에서 드문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24시간 에어컨을 틀어 놓아도 방 온도가 30도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 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숙소가격도 당시 1박에 400디르함(5만3000원)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게다가 아침, 저녁 식사가 포함된다고 해서 '때우기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식사가 매우 잘 나왔다. 조식으로는 계란후라이, 삶은 달걀과 팬케이크, 치즈, 각종 잼, 그리고 생과일주스 등 정말 푸짐하고 맛있게 나오고, 저녁에는 모로코식 고기요리 등 입맛에 맞고 정성 담긴 제대로 한상식사를 할 수 있었다. 건조해서 망정이지 60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처음 경험해보는 엄청난 것이었다. 낮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방의 창으로 저 멀리 사막뷰가 보인다. 낮에는 에어컨이 있는 방에서 침대에 누워 쉬다가 해질녘 사막체험 프로그램을 해보기로 했다. 낙타타고 사막 한가운데 가서 천막에서 자며 별을 보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낙타를 타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지 경험해보았기에 두세시간 낙타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버기카로 사막을 질주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더위를 피해 오후 늦게 시작한다. 우리가 타는 버기카 한대와 우리 앞에서 인도해줄 두사람이 타는 4륜 오토바이가 준비되었다. 머리에 부직포 같은 쓰개를 쓰고 헬멧에 고글까지 착용했다. 매우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주의사항을 안내해주었다. 시로는 스릴을 좋아하고 탄은 운전을 좋아하니 우리에게 딱 맞는 멋진 체험프로그램이다. 선행차를 따라 사막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두근두근하다. 조금 덥지만 사막을 즐기는 데 문제없다. 높은 사막의 모래언덕을 오르락내리락 너무너무 신이 났다. 경사가 아찔한 만큼 스릴도 만점이다. 푸른 하늘과 모래만 보이는 이 풍경이 정말 현실인가 모르겠다. 앞에 가이드가 있으니 위험한 곳(이를테면 모래지옥 같은 곳)을 지날 걱정도 없고 그저 마음 놓고 모래 위를 달리며 사하라를 한껏 만끽했다. 경험 많은 가이드는 점점 높이 차이가 큰 곳으로 노련하게 난이도를 높여 인도하는 것이 정말 최고였다. 내가 사막에 와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사막에서의 주행이 이렇게나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신나게 모래 위를 달리다가 흥분한 탄이 커브에서 속도를 안 줄여 버기카가 거의 뒤집힐 뻔하다가 모래를 바가지로 뒤집어쓰고 겨우 뒤집히는 것은 면하며 세울 수 있었다. 놀란 가이드가 차를 세우고 우리에게 와서 커브에서는 속도를 줄이라고 재차 당부한다. 머쓱해진 탄이는 알겠다고 약속하고 다시 주행을 했다. 사막을 달리다보니 석양이 지고 있는데 정말 하늘을 찬란하게 빛내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한다. 가이드들은 정말 친절하고 사려가 깊었다. 우리가 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알고는 따로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영상카메라를 가져가 앞에서 우리를 찍어주기도 했다. 운전하지 않는 한 사람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며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살펴주었다. 코스가 정해져있는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스릴과 모래사막의 풍경이 정말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타는 내내 너무 좋아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일몰이 가까워지자 가장 높은 언덕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버기카에서 내려 헬멧을 벗고 언덕에 앉아 일몰을 지켜보았다. 사막에서 지는 해는 온 하늘을 물들이며 장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지는 해가 사구의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들었다. 저 멀리 낙타를 타고 줄지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기에는 멋져보이지만 저분들 엉덩이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생겨났다. 사하라의 모래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사하라에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고 정말 최고의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지는 모습을 탄이와 함께 감동에 젖어 바라보았다. 이제 해도 지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야지 하고 헬멧을 다시 쓰고 시동을 켜는데 이런, 시동이 걸리지가 않는다. 가이드들이 와서 보는데도 안걸려 낭패였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차가 열이 받아서 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같다. 겁이 나거나 걱정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막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된 것이 좋았다. 아예 헬멧을 다시 벗고 사막을 다시한번 둘러보며 우리가 왔다갔다는 흔적을 모래위에 남겨보았다. 모래 위에 쓴 "시로&탄 in 사하라"라는 글은 물론 바람에 곧 사라져서 돌에 새기는 것 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추억으로 남길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두었다. 사하라의 고운 모래를 손으로 움켜잡아도 보고 쓸어올려도 보니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기분 좋았다. 달이 뜨고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저 멀리 사막 끝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우리도 시동이 안걸려서 괴로왔던 경험이 있기때문에 재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믿고 기다렸다. 그렇게 한 30여분이 지났을 무렵 사막의 언덕의 굴곡이 점점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있던 나의 귀에 "끼기긱, 부릉~"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됐다?!" 드디어 시동이 다시 걸린 것이다. 박수가 저절로 나온다. 하마터면 사막에서 밤을 지샐뻔 했는데 아니, 지샐 기회가 생겼으면 더 좋았을까? 사막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버기카체험. 정말 사하라에 간다면 꼭 한번 해보시라 강력히 추천한다. 숙소의 컨디션도 좋고 음식도 좋아 우리는 며칠 더 머물기로 했다. 특히 숙소에 풀장이 있는 것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관리를 잘 하는지 물이 투명하고 맑고 깨끗해보였다. 사막에서 물놀이라니, 이게 웬 호사인가. 크기도 넓직하고 좋은데 왜 아무도 안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까브리에서 튜브와 래쉬가드를 꺼내 물놀이를 했다. 더운 사막에서 시원한 물놀이를 하니 너무너무 좋았다. 낮동안 물이 데워져 차갑지 않고 온도가 딱 좋다. 시로는 물에 동동 떠있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바다를 볼때마다 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뒤처리가 부담되어 못 들어가고 이번 여행에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호수 이후로 처음인것 같다. 그때는 눈덮인 산을 바라보며 물놀이를 했는데 사막의 모래언덕들을 보며 물놀이를 하다니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에어컨을 종일 켜도 더웠는데 물에 들어가니 한기가 살짝 들 정도로 시원해서 좋았다. 새벽에 탄이와 숙소 2층에서 사막에서 뜨는 찬란한 일출을 보았다. 일몰에 못지않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곳이 우리 여행의 클라이막스인 것 같아." 모든 것이 좋았던 사하라 사막. 이 곳에 오기 위해 그 먼 길을 거쳐왔구나 싶었다.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우리가 떠날때 핫산 사장님은 사하라 모래를 담은 너무 예쁜 유리병 두개를 기념으로 주셨다. 가격도 착하고 일하는 분들도 다 너무 친절하고 시설 좋고 예쁘고 식사도 맛있고 떠날때 선물까지 주시다니, 까다로운 한국사람들이 왜 입을 모아 칭찬하는지 잘 알겠다. 정말 이곳은 우리가 여행중 묵은 최고의 숙소였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fw43IIaoh2A?si=Kj3n1YZi7Iwb24nd>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4-30 18:50:39<60> 모로코 '탕헤르·카사블랑카·에사우이라'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시로는 겁이 없는 편이다.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나 귀신의 집도 아무렇지 않게 통과하고 쥐도 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바로 곤충. 곤충에 관해서는 포비아(공포증)가 있다고 할 정도로 비명을 지르게 된다. 특히 모기에 관해서는 밤에 귀에서 "애앵~"소리가 한번이라도 들렸다 하면 바로 온 집안의 불을 다 켜고 사람이 죽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충제를 뿌리거나 기어이 모기를 찾아내 죽인 후에야 다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 시로에게 어젯밤 눈앞이 캄캄한 징조들이 보였으니 바로 숙소에 들어가기 전 복도 구석 이곳저곳에서 뒤집혀 죽어있는 커다란 바퀴벌레 사체들. 그리고 숙소 안 주방 문 뒤쪽에서도 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안감이 커져왔다. 하지만 열흘치 숙박비를 내고 밤늦게 도착한 상황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할 수 없이 침대에 누웠다. 불안한 마음으로 쉽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너무 피곤했는지 그날 밤은 넘길 수가 있었다. 다음날이 밝았다. 편히 쉬려고 스페인 관광도 마다하고 달려왔는지라 아무데도 안나가고 밥이나 해먹으며 집에만 있었는데 대낮부터 부엌 찬장에, 거실 바닥에, 거대한 그 녀석들이 하나둘씩 출몰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쇼파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집을 뛰쳐 나와야 했다. 탕헤르 숙소는 그야말로 바퀴벌레 천국이었다 크기가 어른 손가락 두 세개를 겹친 것 만한 거대한 크기로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눈물이 날만큼 싫고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그길로 까브리에 올라가 문을 꼭 닫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집 앞 대형 쓰레기통이 그 녀석들의 본거지였나보다. 길가에도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그 것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파랗게 질려 차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로를 걱정한 탄이 왔다. "나 그 열흘치 숙박비 그거 그냥 줘버려도 되니까 제발 여기서 나가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여기서 일분일초도 더 못 있겠어" 하며 결국 눈물이 나왔다. 탄이 환불 이야기를 해보겠다며 갔다. 이야기를 하고 온 탄은 집주인이 자기가 관리하는 다른 숙소가 마침 비었다며 그 곳은 괜찮을 거라고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동네는 치가 떨려 너무 싫어서 당장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사실 돈 낸 것이 아까워서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계단으로 4층을 올라와보니 새로운 집은 처음 것보다는 컨디션이 나아 보였다. 일단 복도에 벌레사체가 없었고 샤워실과 화장실, 주방과 보일러 등이 무난해보였다. 방도 깔끔하고 가구가 별로 없어서 바퀴벌레가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이곳도 역시 세탁기는 없었지만 며칠 지내기는 가능할 것 같아 보였다. 결국 남은 기간을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쪼그라든 시로를 위해서 탄이 스페인에서 사온 돼지고기를 구워주었다. 시로의 신경은 여전히 날카로워진 상태여서 작은 것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불안했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며 이곳은 안전하다는 확신이 생기며 조금씩 나아졌다. 유럽에 비해 모로코는 훨씬 저렴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숙박비며 물가가 그리 저렴하지 않았고 환경이 열악해서 휴식은 커녕 집안에서 매일 불안해하며 긴장속에 지내야했다. 일년 내내 온화한 날씨로 건물의 만듦새가 한국과 많이 다르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무척 설레고 즐거울 때가 있었는데 긴 여행으로 지친 우리는 낯선 환경에서 오는 긴장과 불안, 어려움들 때문에 더 이상 여행이 즐겁지가 않았다. "거기까지 갔는데 그 곳을 안가고 왔다고?"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위한 여행을 하지는 말자고 서로에게 이야기 했다. 남들이 좋다는 유명한 곳을 도장깨기하 듯 다니는 것 보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로코에서는 만날 사람이 없었고 이집트에서의 나쁜 기억때문에 카우치서핑을 하기도 겁이나서 우리가 가보고 싶은 몇군데만 가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이번 여행계획을 세울 때는 모로코에서 남아메리카로 차를 보내서 남미로 갈 생각도 했었지만 실제로 일년 가까이 걸려 모로코까지 와보니 이제 이 여행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옮긴 집에서 며칠을 더 머물렀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어 모기나 바퀴벌레 같은 곤충이 들어올것이 두렵다고 탄에게 말했더니 인터넷으로 저렴한 모기장을 주문해주었다. 모기장 속에 들어가서야 시로는 벌레에 대한 불안을 이기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그 곳에서 밀린 영상작업도 하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하면서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동 없이 며칠 쉴 수 있었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을 받은 탕헤르를 떠나는 날이 왔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나는 구나 싶고 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았다. 우리는 남쪽의 '에사우이라'를 향해 출발했다. 남쪽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수도 라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에 왔다. 카사블랑카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도시이다. 우리 여행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하얀색 포터 시티밴에게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의 까사-블랑카의 앞글자를 따 "까브리"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얀 색깔과 우리의 집과 발이 되어주고 있으니 딱 맞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이름을 가진 까브리가 드디어 자기 이름을 따온 도시에 온 것이다. 까브리가 고향에 온 듯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은 프랑스에서 만난 귀한 친구 베르나르씨의 고향이기도 했다. 모로코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때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이곳 까사블랑카에서 보냈다고 들었다. 어릴적 프랑스로 이주하기는 했지만 까사블랑카를 고향같이 느끼는 듯 했다. 프랑스에 함께 있을 때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베르나르씨가 이야기한 빵집, 시장 등을 찾아다니며 그가 좋아한 풍경을 우리도 볼 수 있어 좋았다. 까사블랑카를 떠나 남쪽으로 쭉 내려가서 에사우이라에 도착했다.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새우나 게 같은 갑각류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곳 시장에서 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는 영상을 보고 큰 기대를 하며 찾아왔다. 근처에 까브리를 잘 세워두고 성문같은 높은 문으로 걸어갔다. 근처에 배낭을 메고있는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문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가자 양옆에 늘어선 오래돼 보이는 상점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국적이어서 마치 인디애나 존스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시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너무 신기했다. 에사우이라 시장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모로코에서 납작복숭아며 애플망고 등 한국에서 무지 비싼 과일들이 엄청 저렴하고 좋아서 실컷 먹을 수 있었는데 시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장 안쪽에 수산물 파는 곳을 찾아왔다. 대서양에서 잡힌 각종 해산물들이 가득가득하다. 커다란 생선들과 새우, 크랩 등 다양한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중 한 가게에서 큰 게를 두마리 샀다. 2만원에 쪄주고 위층의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곧 잘 찐 게를 가져다주었다. 엄청 큰 킹크랩 크기의 게 두마리라 푸짐은한데 게 껍질이 두꺼워서 먹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먹을 때는 웬만한 것은 손으로 깔 수 있었는데 여기 게는 종류가 완전 다른 것인 것 같다. 톱니가 있는 쇠집게 비슷한 장비도 있었지만 어림없었다. 우리가 낑낑대고 못 먹고 있으니 보다 못한 종업원이 깨줄까 물어보고는 가져가더니 망치로 깼는지 다리며 껍질을 부숴서 다시 가져다 주었다. 게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긴 했지만 세척이 안되었는지 모래같은 것이 씹히기도 하고 파리가 너무 덤벼서 맛있게 먹기는 좀 힘들었다.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아 조금 아쉬웠다. 역시 비싼 건 비싼 이유가 있고 싼건 싼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식당을 나와 입가심으로 길가 쥬스가게에서 생과일 주스를 샀다. 다양한 과일을 즉석에서 갈아준다. 오렌지주스는 15, 복숭아주스는 20디르함으로 두 잔에 약 4500원 정도였다. 갓 짠 생과일주스를 마시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동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콘도에 숙소를 잡았는데 바퀴벌레도 없고 시설이 좋아 더 묵고 싶었지만 다른 손님이 바로 예약이 돼 있다고 해서 하룻밤만 지낼 수 있었다. 마라케시는 야시장도 유명하고 모로코의 관광도시 중 하나였지만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아 우리는 그냥 하루 쉬고 다시 동쪽의 사막으로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https://youtu.be/XwR3jS5eHYc?si=jmEmcSdq5b22ZUQk>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5-04-24 12:5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