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돈은 어쩌고?"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시로가 하자고 하는것, 하고 싶다는 것에 거의 100% "오! 그거 좋겠는데?" 하며 가능한 방법을 열심히 찾는다. 10년전 첫 세계여행을 시작할 때도 "우리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다니며 살 곳을 찾아볼까?"라는 시로의 말을 농담으로 흘려 듣지 않고 "응 그러자" 하며 함께 했고,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춘천으로 이사올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살고싶다"는 시로의 말에 탄은 바로 부동산에 찾아가 "강이 보이는 집이 있나" 물었고, 그렇게 2년전부터 춘천에서 살게 됐다. ★‘드리머’ 시로 시점 시로와 탄은 어떻게 장기 세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끝이 안보이는 코로나 시국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10년 전 우리의 첫 세계여행이 문득 떠올랐다. 삼성전자 디자인센터를 퇴사하고 ‘남을 도우며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겠다’는 꿈으로 시작했던 여행이었다. 캐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미국, 멕시코를 거쳐 아르헨티나 남쪽 끝까지 가려했었다. 그러나 여행 6개월쯤 온두라스를 지나던 중 미국에서 중고로 구입한 밴이 테구시갈파에서 고장으로 멈춰버렸다. 두달이상 차를 고쳐보려고 고생하다 끝내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도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두 번째 장기 세계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갑작스레 찾아 온 병으로 몇시간이 걸리는 수술을 받은 후다. 죽을 고비를 몇차례 넘기고 회복하던 중 ‘이왕 사는거 하고싶은 것 하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포토그래퍼 탄과 디자이너인 시로의 두 번째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다시 세계여행을 해보자. 이번엔 내가 만든 내차를 타고 세계를 누벼보자!” 여행을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자 캠핑카가 필요했다. 어떤 차가 좋을까부터가 고민이었다. 수많은 차들을 비교해 결국 우리가 선택한 것은 현대 포터 시티밴. 택배에 주로 이용되는 탑차이다. 운전석에서 차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중간문을 통해 캐빈에 갈 수 있고 캐빈에서 서있을 수 있으며 캐빈창문마다 철봉이 있어 창문을 깨더라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안심이 되었다. 또, 현대 포터는 중고차 수출이 많은 차종이어서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부품 구하기는 어렵지 않을 듯 했다. 연료는 디젤이었지만 요소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2016년 모델이었고 4륜구동이 안되어 험로는 되도록 피해다니기로 했다. 차가 구해지자 이제 차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팅할 일이 남았다. 내부 인테리어 디자인은 탄의 의견을 참고해가며 시로가 맡았다. 캠핑카 꾸미기에는 보통 나무로 내부 인테리어를 많이 하지만 우리는 미관을 포기하고 가볍고 튼튼하고 조립성 좋은 알루미늄 프로파일로 골격을 세우기로 했다. 바닥에 2층으로 수납장을 만들고 그 위를 침상으로 하고, 한쪽 구석에는 20리터 청수와 오수통이 있는 싱크대를 두었다. 침상 반쪽은 넓은 나무판을 자동으로 올리고 내려 컴퓨터 등의 작업시엔 책상으로 쓸 수 있게 했고 상부벽면에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투명수납장 12개를 달아놓았는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쉽게 볼 수 있어 수납성이 매우 좋았다. 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과 캐빈에서 사용할 전기를 위한 배터리를 달고 수납공간에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어려운 전기작업과 일부 목공작업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해결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물이었다. 차에서 샤워가 가능하려면 100리터 넘는 물통을 실어야 한다. 여행 중 그 많은 양의 물을 계속해서 구하기도 절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에서 씻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중간중간 숙소를 잡아 샤워와 세탁을 해결하기로 했다. 이렇게 완성된 우리 캠핑카는 캠핑의 낭만보다는 실용성과 수납에 최적화된, 우리에게 딱 맞는 여행동료가 되었다. 우리 여행을 함께할 차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하얀 집’이라는 ‘까사블랑카’ 라고 지었다. 우리가 목적지로 생각하던 곳 중 하나가 아프리카 모로코의 까사블랑카였어서 매우 적절한 이름이다 싶었다. 차를 구하고 내부 세팅하기를 마치는데 거의 일년이 걸렸다. 두달 간 PT(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았다. 이렇게 우리의 준비는 거진 다 되어갔어도 코로나시국에 차를 가지고 출국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팬데믹이 풀리나 싶다가도 다시 2차, 3차 유행이 오르락내리락 했고 러시아 전쟁까지 터져 출국이 되네 안되네 소문이 흉흉했다. 그러던 중 2020년부터 운항이 중단 된 동해와 블라디보스톡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페리가 다시 운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페리를 예약하고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살고있는 전세집을 빼고 이삿짐을 보관할 곳을 찾아야 했고 차량용도변경 신청을 해야했다. 출국전 이틀간은 그야말로 전쟁같았다. 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그토록 기다리고 바래왔던 여행이 막힐 수도 있는 상황이 많았다. 가지고 있는 짐을 창고에 넣을 이삿짐, 차에 실을 여행에 필요한 짐, 블라디보스톡에서 차를 찾기 전까지 사용할 들고갈 짐으로 나누어 싸야했다. 또한, 출국 24시간 전 PCR검사와 음성이라는 증서를 받아야해서 하루 전날 동해에 와서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고 다음날 새벽에 음성증서를 받아 당일에 배를 타야했는데 그 사이 감염돼 양성으로 나온다면 역시나 출국이 금지되는 것이다. 차를 배에 싣는 수속을 할때도 ‘차안의 짐을 문제삼거나 한다면 어떻하지’ 하는 불안감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배를 타기 전 막판까지 까딱하면 못갈 수도 있다는 각오로 초긴장 속에 진행하게 되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com/@user-hb5up3dh1o?si=4LHlTLkQKDiU4cLz>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1-04 20:50:49영국의 한 50대 부부가 직접 만든 소형 비행기를 타고 1년 동안 23개 국을 도는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영국으로 돌아왔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1일 보도했다. 영국 영국 서리주 라이게이트에 사는 패트릭 엘리어트와 린다 워커 부부는 지난해 9월 라이게이트를 출발해 세계 23개 국을 돈 끝에 지난 달 무사히 귀환했다. 그들이 탔던 비행기 제작 기간은 무려 16년. 전직 파일럿이었던 패트릭은 지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카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비행기를 손수 제작했다.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세계 곳곳을 빠짐없이 다녔지만 비행 때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한 번 비행 때마다 단지 24시간뿐이었다. 이에 패트릭은 아내와 함께 좀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하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제작하게 됐다. 여행하는 동안 이들 부부가 비행했던 시간은 241시간 22분으로 비행거리만 6만186km에 달한다. 또한 이들 부부가 사용한 항공유는 1320갤런으로 연료 값만 1만2000파운드(약 2208만원)이나 들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비용 문제보다도 부부가 함께 비행을 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며 “아찔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결국 우리는 무사히 세계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아프리카 북단에서 남단까지 비행을 계획하고 있으며 기회가 된다면 북극에서부터 남극까지의 비행에도 도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kjy1184@fnnews.com 김주연인턴기자
2011-10-02 18:09:14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바투미에서 편히 쉬고 난 어느날 드디어 튀르키예로 출발한다. 바투미에서 국경까지는 단 30분밖에 안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않아 줄지어 서있는 대형트럭들을 보니 벌써 국경이구나 실감이 난다. 처음 이런 광경을 봤을 때는 저 많은 트럭들 뒤에 서야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이젠 당연하다는 듯 트럭들을 피해 앞으로 쭉 나가서 소형차들의 뒤에 선다. 화물을 실은 대형트럭들은 다른 절차를 밟아야하는지 항상 따로 줄을 지어있었다. 조지아 출국심사대에서 우리 서류를 유심히 보던 사무관이 무언가 이야기를 한다. 별문제 없을거라 마음놓고 있었던 우리는 당황해서 보니 자동차등록증에 알파벳이 하나 틀린 것이 있던 것이었다. 출국후 반년 가까이 돼서야 겨우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게되다니 좀 황당스러웠다. 하지만 올바르게 표기된 다른 서류를 찾아 보여주며 우리나라 관공서의 실수라고 이야기하자 다행히도 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보내주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큰 문제없이 통과해 다행이었다. 튀르키예 입국때는 최소 3개월짜리 자동차 보험이 의무라고 해서 162달러를 주고 가입했다. 까브리는 큰 차라서 이 가격이고 작은 승용차는 조금 저렴한 것 같았다. 또한 미리 준비하면 좀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은 튀르키예에 무비자로 3개월간 체류가 가능하다. 보험료도 냈으니 3개월 꽉차게 잘 놀다 가야겠다. 튀르키예 세번째 방문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색다르네" 나는 95년도에 처음 튀르키예에 여행을 왔었다. 그리고 2014년에 탄이랑 9일간 패키지여행을 했고 이번이 세번째이다. 비행기로만 왔던 튀르키예에 까브리를 끌고 육로로 오다니 기분이 완전 다르다. 길가에 빨간바탕에 별과 초승달이 그려진 튀르키예 국기를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형제의 나라여서 그런지, 몇번 왔던 곳이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바투미에서 2시간 거리의 흑해 연안의 소도시 리제(Rize)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심카드 구입과 점심해결을 하기 위해 거리를 걸었다. 길가에 흑해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을 파는 가판대가 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풍경이 반갑고 풍요로워 보인다. 통신사 사무실인 듯한 Turkcell이란 곳에 들어가 심카드를 파냐고 물어보니 없다는 것 같다. 직원은 친절하게 시내 중심으로 가면 살 수 있다고 안내해주어서 그곳을 나와서 중심쪽으로 걸어갔다. 걷다가 너무 맛있어 보이는 피자 비슷한 빵을 파는 식당이 보여 일단 점심부터 먹자 하고 들어갔다. 식당밖에 음식 사진이 너무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사진이 있는 메뉴판도 있어서 무사히 주문을 하고 났는데 탄의 시선을 끄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 "이것은 뭔가요?", "수틀라치(Sutlac)입니다." 디저트라고 한다. 탄이는 그것도 추가로 시켰다. 이곳은 아랍식 피자인 피데를 파는 곳이었는데 음식사진을 보고 주문할 때 한개에 3000원정도 해서 한손에 잡을 정도의 작은 크기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꽤 큰, 미디엄피자만한 사이즈였다. 하나 가지고 둘이 먹어도 될 정도였다. 화덕에서 막 구워나와 정말 맛있었다. 아랍식 피자 '피데'의 크기가 생각보다 커서 당황했다 디저트로 수틀라치를 먹어보았는데 쌀을 우유에 말아 끓인 것 같았는데 달달하니 좋았다. 계산하며 탄이 "레..젯"하고 헤메니까 주인아저씨가 "레젯트르!"라고 알려주며 웃으신다. '맛있다' 라는 튀르키예어이다. 반이상 남아서 포장해서 또 한끼를 먹었는데 1만3000원가량 냈다. 한번만 가기 아까운 식당이다. 우리동네에 있었으면 단골이 되었을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 식사 잘하고 조금 걸어서 중심가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여기에는 심카드가 있겠지. 헛 몰 입구에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여행 떠나고 처음 보는 스벅이다. 스벅팬은 아니라 그냥 지나갔지만 아는 곳이 보이니 반가웠다. 익숙한 문명사회로 돌아온 느낌이랄까. 커피값은 한국의 반값 정도였다. 안에 들어와보니 서울에서 보던 대형몰과 다름없는 정말 크고 현대적인 몰이다. 아는 브랜드도 꽤 있다. 내부가 무척 넓어서 심카드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말이 안통해서 손짓발짓하다 1층에 있다는 듯한 대답을 들었다. 영어를 못하시는것 같아 그냥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하고 내려가려는데 코리아냐고 물어보아서 맞다고 "네 코리아!" 그러자 튀르키예분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갑자기 들은 한국말에 너무너무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는 "I love Korea"라고 하며 스마트폰에 한국 아이돌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잘 모르는 한국 아이돌의 팬이 튀르키예의 이 작은 도시에 있다. 정말 한류가 대단하다 싶었다. 기분 좋은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1층을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유심파는 곳을 찾았다. 인터넷에서는 1만원 정도로 유심을 살 수 있다고 들었는데 5만원이 넘는 돈을 이야기한다. 두세군데 물어보았지만 비슷한 가격이어서 일단 구입을 미뤘다. 혹시 외국인이라 비싸게 부르는게 아닐까 싶어 현지 사는 분께 물어보고 저렴히 구입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리어카 같은데에 견과류를 파는 분이 갑자기 붙잡고 호두와 말린 블루베리를 주신다. 사실 며칠 전부터 호두가 먹고싶다고 탄에게 말했었는데 이게 웬떡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튀르키예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장사하는 자세가 지금까지 지나온 나라들과 차원이 다르다. 감사히 받아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호두와 똑같이 고소하다. 사드리고 싶었지만 카드밖에 현금이 없어 아쉽게 발을 돌렸다. 리제는 금간 앞유리때문에 트라브존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며칠이고 머무르고 싶은 정말 편안하고 예쁜 곳이었다. 사람들도 좋고 동네 느낌도 좋은 곳. 계속해서 오른쪽에 흑해를 끼고 서쪽으로 트라브존으로 간다. 길가에서 과일을 파는 모습은 여러나라에서 봤지만 튀르키예 과일 노점상의 진열솜씨는 남다르다. 사고싶게 예쁘게 진열해놓고 조명까지 설치해서 눈길을 확 끄는 등 상술이 매우 발달한 것 같다.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유리창은 끄떡 없을거야" 석양이 질 무렵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리제보다 큰 도시라 그런지 주차할 곳 찾기도 만만찮고 복잡하고 빡빡한 느낌이 든다. 번화가를 지나 차량정비소가 모여있는 동네에 왔다. 유리를 갈아끼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려는데 정비사인 듯한 분이 갑자기 작은 칼같은 도구로 거침없이 까브리 앞유리의 금간 끝을 둥글게 팠다. 깜짝놀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제 한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튀르키예로 와도 끄떡없을거야"라며 호언장담한다. 유리교체에 시간도 돈도 많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게다가 돈도 한푼 안받고 그냥 가라고 한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하고 나왔다. 완전 럭키비키였다. 트라브존은 너무 복잡한 도시라서 해는 졌지만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서쪽으로 조금 더 이동하기로 했다. 도시밖에서 한적하게 차박할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다가 주유소를 보고 주유를 했는데 서비스로 유리를 세제까지 묻혀 정성스레 닦아주신다. 촬영하는 것을 보더니 엄지척까지 하며 웃는 모습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튀르키예에 온지 하루만에 좋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좋은 일들이 많아 너무 좋아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주유 후 서쪽으로 조금 더 가다가 해변공원의 주차장을 발견하고 거기에 차를 대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밤 우리는 앞으로의 경로에 대한 진지한 회의를 했다. 원래 계획은 트라브존에서 남쪽 메르신으로 갔다가 지중해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 유럽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탄이 해안드라이브를 하려면 반시계방향이 좋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면 이스탄불을 두번 들르게 되는데... 뭔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여행에서 효율이 뭐가 중요한가. 회사를 떠난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나는 생산성-스피드-효율성에 사로잡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더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쪽으로 경로를 바꾸기로 하였다. 좋은 판단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흑해를 계속해서 바라보며 갈 수 있었다. 동틀녘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서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새벽 드라이브를 무척 좋아해서 차박을 할때면 항상 일찍 일어나 출발한다. 오른편에 펼쳐진 핑크빛 하늘과 바다가 너무나 아름답다. 흑해의 풍경에 감탄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판단이 좋았음을 확인했다. 구글지도를 보니 이 해안도로는 계속해서 바다 바로옆으로 이어져있었다. 앞으로 며칠 간의 드라이브가 너무도 기대되었다. 이만한 드라이브 코스는 다시 만나기 힘들거라고 탄이 장담한다. 이스탄불로 가는 길은 크고 넓은 고속도로도 있었지만 우리는 최대한 바다 가까이에 난 도로로 흑해를 최대한 즐기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바닷가 드라이브를 하다보니 한국의 7번국도가 생각이 났다. 몇년 전 부산에서 양양으로 7번국도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긴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드라이브가 너무너무 멋있고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누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마음껏 이 장소와 시간을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6DSUJPeo8?si=xDH3y9YJ6tL_gZjn>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19 11:08:39[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 <29>] 조지아 '바투미'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트빌리시에서 여러나라 친구들과 함께 맞은 새해 이벤트는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역시 우리는 큰도시와 안 친하다. 흑해 연안의 소도시 바투미에 가서 넉넉히 머무르며 쉬고 밀린 영상작업도 하기로 하고 트빌리시를 떠난다. 트빌리시에서 바투미까지는 자동차로 6시간 거리이다. 아침일찍 출발했는데 다행히 휴일이어서인지 교통체증없이 빠져나왔다. 도로상태도 좋고 날씨도 좋다. 지금껏 다녔던 스탄국가와 뭔가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다. 길가에 멋진 휴게소와 주유소도 보이고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긴 시간을 이동하던 중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10년전 아메리카 장기여행을 할때말야 캐나다, 미국같이 잘사는 나라에서 멕시코-과테말라 등 점점 못사는 나라로 이동했었잖아. 그때는 사회 인프라며 치안 등이 점점 안좋은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가난한 나라에서 점점 잘사는 나라로 이동 중이라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물가가 점점 비싸지는 것이 힘드네. 디젤가격, 식비, 숙박비가 점점 더 들고 어려워지니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어" 그러자 탄이 이야기했다. "맞아, 그래서 긍정의 힘이 중요한 것 같아. 힘들고 어려운 것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모든 일에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 어떤 일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고 감사할 것에 생각을 집중하면 즐길 수 있는 여행이 될거야." 참으로 그랬다. 길옆에 지나가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중앙아시아의 황량함에 익숙해있다가 물도 많고 푸르른 들판을 보니 마냥 좋았다. 사방을 둘러보다보면 산이 보이는 것도 너무 반가왔다. 한참을 달려와서 드디어 바투미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다, 흑해다.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카스피해를 만나고 이제 흑해에 왔다. 바투미는 조지아 최대의 항구도시라더니 과연 커다란 컨테이너선들과 대형 크레인이 많아 무척 활기차 보였다. 이곳은 유럽풍의 예쁜 건물들과 현대적인 고층빌딩들이 조화를 이루며 있었다. 머리위로 케이블카도 다닌다. 잘 정돈된 깨끗한 거리와 가로수가 야자수인 이국적인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Orbi city라는 거대한 3개 동의 빌딩이었다. 현지 사람이 생활하는 곳이라기보다는 개인들이 사서 공유숙소로 대여를 해주는 분위기였다. 프론트에서 키를 받으려는데 집주인과 소통이 잘 안되었는지 문제가 있어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한시간반을 기다려 겨우 카드키를 받을 수 있었다. 한쪽은 바다가, 다른 쪽은 바투미 시내가 보이는 베란다가 있는 원룸이었는데 간단한 주방도 있고 둘이 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하루 18달러로 가격이 매우 좋아서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된다. 이곳에서 예약한 것보다 열흘정도 더 머물기로 결정하고 집주인에게 연장요청을 했다. 오랜만에 집같은 곳에 머물게 되어 너무 좋았다. 저녁때 베란다에 나와 바다를 보면 석양이 아름답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는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나와 3분만 걸어가면 바닷가이다. 흑해의 모래사장은 곱고 보드라운 까만 모래와 동글동글 귀여운 자갈로 이루어져있다. 여행지에서 돌이나 모래를 가져오는 것이 금지된 경우가 많아서 참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자갈이 너무나 희고 동그란 찹쌀떡같이 예쁘게 보여서 참지 못하고 결국 대여섯개나 줍고 말았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고 바닷가를 떠날때 모두 놓아두었다. 그래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으니 됐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서 걸어다니기에 참 좋았다. 바투미에서 머무는 동안 탄의 생일이 되었다. 아침에 생일기념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미역으로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스팸과 계란후라이까지 그럴듯한 한상차림으로 잘 먹고 어떤 선물을 원하냐고 탄에게 물어보니 즐겨입던 옷에 구멍이 났다며 보여주는데 깜짝 놀랄만큼 커다란 구멍들이 양쪽 겨드랑이에 난리도 아니다. 탄이 그동안 이런 옷을 입고 다녔다니,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시내에 바투미 몰이라는 곳에 가서 탄의 옷을 골라주었다. 가로줄무늬가 있는 긴팔 니트였는데 탄이 입어보고는 매우 좋아한다. 점심에는 탄의 생일을 기념으로 맥도날드 매장에 갔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 신기한 건물이다. 키오스크에서 영어로 주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지아 글자는 예쁘긴 하나 절대 읽을 수가 없다. 2층의 야외 좌석에서 식사를 했는데 우리가 본 중 시설이 가장 멋진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케찹은 안주지만 자리로 서빙을 해준다. 이럴줄 알고 가방에 쭉 가지고 다녔던 케찹을 꺼냈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버거킹과 KFC 케찹이다. 역시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어디서건 맛있었다. 촛불도 케잌도 없지만 조촐한 우리끼리의 생일파티를 했다. 맥도날드에서 꺼낸 한국발 '버거킹, KFC케챱'...케챱을 돈주고 사먹는건 사치다! 이슬람 국가를 벗어났으니 이제 돼지고기를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마트에서 계란과 고기와 과일등을 잔뜩 사와서 하루는 돼지고기를 구워 고추와 마늘과 함께 상추쌈을 먹고, 또 하루는 스파게티면으로 자장면을 해먹고 냉동 오징어 등 해물도 사서 짬뽕도 해먹었다. 하루는 탄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알게된 프랑스의 Yon이라는 친구가 추천해준 레스토랑에 가보자고 한다. 그 친구도 장기여행 중인데 얼마전 바투미에서 6개월간 살았다고 한다.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었다니 기대가 된다. 길가에 위치한 'Leuville' 라는 레스토랑은 인도 한쪽을 막고 야외좌석을 만들어놨는데 여기는 이런 것도 가능한가 싶었다. 들어가는 문이 희안한 방식으로 열린다. 힌지가 가운데 있어 문을 90도 돌리면 양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 인테리어도 힙한 분위기가 멋스러웠고 주문은 스마트폰을 통해 하는 방식이라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잘 했다.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와 하차푸리, 그리고 새우튀김 샐러드 등을 먹었는데 간도 잘 맞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며칠 후 1월 14일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서 심상치않은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점점 커져서 대체 뭔가 싶어 베란다로 나가보니 바투미 시내쪽에서 폭죽이 엄청나게 터지고 있었다. 조지아는 정교회의 율리우스력 새해를 축하하는 풍습이 있어 우리의 신-구정처럼 새해를 두번 축하한다고 들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보다. 휘파람소리등 환호성같은 소리도 계속해서 들리고 온 도시에서 쉴새없이 폭죽이 난리였다. 이미 1월 1일에 트빌리시에서 엄청난 새해축하 이벤트를 경험한 우리는 이번에는 숙소 베란다에서 맥주 한캔을 마시며 불꽃놀이가 정신없이 계속되는 야경을 편안하게 감상했다.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조지아가 새해를 맞기 가장 멋진 나라라며 이런 불꽃놀이를 2번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해준 것이 생각났다. 트빌리시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리가 머물고있는 Orbi city는 가격과 시설 위치 등 다 좋은데 하나 아쉬운 것은 까브리 주차할 곳이 마땅치않아 한참 떨어진 길가에 세워두어야 했다. 짐을 가지러 가거나 할 때면 꽤 먼 거리를 왕복해야했다. 캥핑카의 앞유리 금이 어느새 20cm 정도로 길어졌다 여러날을 숙소에만 있다가 까브리에 가보니 앞유리의 금이 확 길어져있었다. 우즈벡에서 적은 돈으로 대충 때운 것이 아무래도 미봉책이었나보다. 계속 금이 커지고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대형 정비센터를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도 여럿이고 무척 크고 제대로된 정비센터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리를 팔 뿐 교체는 다른 곳에서 해야한다고 해서 물어물어 10분 거리의 차량 유리교체 전문점을 찾아갔다. 넓은 주차장에 대형트럭들이 서있는 끝에 까브리가 서있는데 트럭들에 비해 매우 앙증맞아 귀여워 보였다. 대형차량 위주로 서비스를 하는 곳인가 하며 사장님께 유리교체에 대해 물어보려는데 영어를 못하셔서 스마트폰의 번역앱으로 어렵게 소통을 시도했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손님이 우리를 보고 영어를 할 수 있다며 통역을 자처해주셨다. 덕분에 필요한 것을 물어볼 수 있었고 사장님은 까브리로 와서 유리 크기도 재고 부품이 있는지도 이곳저곳에 전화하며 알아봐주셨는데 우리가 곧 튀르키예로 갈거라는 이야기를 듣자 이곳에는 까브리 차종인 포터2의 유리가 없어 튀르키예에서 주문해 와야하는데 5일이 걸린다며 그곳에 가서 고치는 것이 나을거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튀르키예의 트라브존에 가면 바로 고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해외에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가 어려워 긴장되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최선의 선택지를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했다. 우리는 보름간 바투미에서 잘 쉬고 흑해를 원없이 즐기고 밀린 작업도 잘 할 수 있었다. 여행을 계속할 새 힘을 얻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rc_87hS1vqI?si=_OEjakcEGe2UyKDy>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12 10:32:35[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 <28>] 조지아 '트빌리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7월말 한국을 떠나 조지아 트빌리시까지 5개월이 걸려서 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된 "하차푸리"를 드디어 원조의 나라에서 먹을 수 있다니 무척 기대가 된다.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위치의 한 호텔 레스토랑을 구글링으로 찾아갔다. 식당은 식물이 우거진 플랜트 인테리어로 편안한 분위기였고 탑층에 있어 시내뷰를 보기에도 좋았다. 음식 주문 전에 고수를 빼달라는 조지아어를 찾아놨다. "낀지아라" 라고 하니 종업원이 못알아듣는다. 탄이 스마트폰 번역앱으로 글자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웃으며 주문서에 무얼 적어갔다. 샐러드와 하차푸리, 그리고 새우요리를 주문했다. 드디어 조지아에서 맛보는 아자리안 하차푸리 창밖을 보며 조금 기다리자 샐러드가 나왔는데 "엥 이게 뭐야?" 빼달라고 부탁한 고수가 샐러드에 잔뜩 들어있다. '이런, 못 알아들었나?' 다시 종업원을 불러 고수가 안들어간 샐러드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다행히 이번엔 제대로 왔다. 종업원이 직접 하차푸리의 계란과 치즈를 포크로 섞어주었다. "전에 먹었던 그 맛인지 먹어봐바." 탄이 크게 한입 먹더니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한다. 이야~ 역시 원조 하차푸리이다. 호텔에서의 식사는 우리에게 드문 일이지만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날이라 둘이서 특별한 기념식사를 오붓하게 했다. 식사 후 식당에서 새해선물이라며 종이상자에 예쁘게 포장된 미니머핀을 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더 좋아진다. 조지아의 거리에는 모던한 이미지의 은색 원통조형물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쓰레기통이었다. 탄이 페달을 밟자 뚜껑이 활짝 열렸는데 안을 굳이 들여다본 탄이 "안이 엄청 깊어!"라며 놀랜다. 트빌리시에 얻은 숙소는 약간 골목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근처에 폐가도 있고 페인트가 벗겨진 집들이며 좀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그래도 저렴하면 다 용서가 된다. 화려한 빌딩이 있는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이런 낡은 동네가 있는 것이 의아하다. 약간 서울의 달동네같은 곳인가 싶다. 카우치 서핑은 잘 곳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여행하는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카우치 서핑은 잘 곳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교제를 나눌 수도, 차 모임이나 와인 한잔 등 모임을 만들 수도 있는데 트빌리시의 이벤트 중 New year's party가 눈에 띄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둘이서만 조용히 보낸 것이 아쉬워서 새해는 여러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맞고 싶어 참석하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걸어서 15분 거리라 차를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걸어가기로 했는데 가는 도중 하늘에 떠 있는 기구도 보고 새해 맞이를 위한 공연장도 구경하는 등 볼거리가 많아 좋았다. 골목골목마다 조명이 환하게 켜있어서 밤에 다니는 것이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름답게 된 불빛들에 언덕길도 힘든 줄 모르고 걸어 드디어 모임 장소인 2ton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오늘 스케줄은 저녁 8시쯤 만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얼굴을 익히고 트빌리시 명소를 함께 걷다가 새해가 되는 0시에는 광장에서 함께 불꽃놀이와 행사를 구경하는 것이다. 우리가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 벌써 20명 이상 모여있었고 식당이 너무 분주해 음식 주문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 저녁은 그냥 포기하고 맥주 2잔만 시켰다.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된 소개같은게 어려워 그냥 자리만 겨우 마련해 껴 앉았는데 처음엔 어색하고 서먹해서 한동안 뻘쭘해했다. 맥주가 오고 옆자리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집트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어 압둘과 왓앱을 교환하고 이집트 입국과 이집트에서 꼭 가볼 곳 등을 폭풍 질문했다. 압둘은 매우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진진했다. 이 모임의 주선자는 트빌리시에 사는 프란츠란 친구였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각자 계산을 하고 나와 시내를 함께 걷기 시작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꽤 큰 모임이다. 도시 곳곳의 조명이 화려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냥 막 따라가기만 해도 즐겁다. 프란츠는 스마트폰에 카우치 서핑 글자를 네온으로 써서 높이 들고 다니며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 잘 보고 올 수 있도록 했다. 마법의 양탄자처럼 꾸며놓은 조명이 머리위에서 반짝였고 많은 사람들이 새해 맞이를 위해서 거리에 쏟아져 나와 환호성을 지르고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이런 축제 분위기로 새해를 맞는 것은 우리에게는 처음이었다. 새해를 맞는 가장 멋진 곳이 조지아 트빌리시인 것 같다. 친구들의 안내로 도시 곳곳의 멋진 명소들을 다닌다. 우리끼리라면 엄두도 못냈을텐데 너무너무 안심되고 즐겁다. 시청같은 곳 앞의 거대한 트리도 보고 조명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유럽풍 건물들도 지난다. 길가의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몇번은 바로 옆에서 펑터져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오늘은 다 용서해야 할 것 같다. 온 도시가 온통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 듯하다. 한참 걷다가 잠시 멈추어 쉬면서 다른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영국, 인도, 일본, 러시아, 벨기에,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 10여개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예전과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거나 한국 치킨이야기를 하거나하며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심지어 코리아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여러번 들었다. 우리와 이야기해보려 차례를 기다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참 희안한 경험이다. 내가 처음 해외여행을 했던 90년대에는 아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동양인이라 무시당하고 왕따당하기만 했었는데 어쩌면 이렇게나 달라졌는지 참 놀랍고 기분 좋았다. 우리 일행들은 그래피티가 가득한 지하통로를 지나고 강위의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 광장에 도착했다. 이 광장은 우리 숙소와 매우 가까운 곳에 있는 곳으로 아까 약속장소로 갈때 지나갔던 곳이었기에 여기가 최종 목적지라는 것이 완전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해까지는 아직 1시간정도 남았는데 벌써부터 폭죽소리가 전쟁난것처럼 터진다. 새해가 되기 30분전 광장이 온통 인산인해다. 우리 일행들은 한쪽에 모여서 자리를 잡고 새해가 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한 폴란드 친구가 한국사람과 통화하고 싶어하는 여자친구와 영상통화를 부탁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각자 준비해온 샴페인을 나누기도 하고 소원을 적은 종이를 준비했다. 이곳 풍습에 새해에 소원적은 종이를 태워 샴페인에 섞어 마시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 같다. 우리도 소원을 적을 종이를 받았다. 이번 여행이 사고없이 무사히 즐겁게 마무리 되기를 빌어 태우고 샴페인에 재를 넣었다. 엄청난 폭죽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터지는 것을 바라만 봐도 황홀하고 행복했다. 생전에 이렇게 많은 폭죽이 터지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드디어 새해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나 미국처럼 카운트다운이 있을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어 조금 아쉬웠다. 새해가 되자 폭죽은 절정에 다다랐고 다들 샴페인으로 건배를 하며 서로에게 해피 뉴이어를 빌어주었다. 나는 감격에 차서 이렇게 멋진 추억을 만들수 있게 해준 프란츠에게 감사를 전했는데 이미 많이 취해버려서 이친구가 내 이야기를 기억할까 싶었다. 정말 생애 최고의 새해맞이로 기억에 남았다. 트빌리시에서 새해를 맞은 후 우리는 조지아까지 바쁘게 긴 거리를 이동한 피로를 풀고싶었지만 트빌리시는 숙박비도 비싸고 까브리를 잘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조지아에서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바투미라는 곳으로 가서 편히 쉬기로 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45hHD8rK8VU?si=6mdhY-xF1QZItYng>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9-05 15:36:16아이 낳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이구동성으로 비용 부담을 이야기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개인적 경험에 따라 너무 다양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주로 출산주체로서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적 상황, 즉 독박육아와 경력단절에서 저출산 요인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각종 설문조사나 여론의 흐름은 사실 압도적으로 '비용'에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잘살게 되었다. 빈부격차, 중산층의 몰락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 키울 돈이 없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가? 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박탈 문제를 우리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청년의 고달픈 삶을 상징하는 편의점 삼각김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맛집투어 대상으로 편의점을 소재로 삼는 것을 보기도 했다. 박탈이나 빈곤의 문제는 상대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다 보니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어쨌든 다른 어느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가 물질적으로 잘사는 국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작년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를 넘어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규모 국가 중 전 세계에서 6위이다. 이른바 주요 7개국(G7)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출산·양육을 사회보장제도로써 지원해야 할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한 2012년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 이후 임신·출산·돌봄과 교육에 대한 국가 지원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뿐 아니라 지금 20대 청년들도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아동수당이나 부모급여 등도 도입되었다. 고등학교까지 등록금 부담도 사라졌다. 기성세대 부모들은 모두 본인이 하던 비용 부담, 즉 기본비용 부담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왜 비용 이야기를 하는가? 자녀의 성장에 필요한 기본 비용 부담이 아니라 극단적 경쟁사회에서 태어나자마자 내 아이가 기죽지 않고 커야 하기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도 여기에 포함된다. 경쟁사회가 지출을 압박한다는 의미에서 '압박비용'이다. 부부가 아무리 아무리 벌어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다. 어느 라디오 방송 중 DJ가 한 말이다. "요즘 뭐 애들 있는 집은 여기저기 좀 다녀야 하고…." 친구들이 가는 해외여행을 가야 하고, 집 이야기가 나올 때 기죽지 않으려면 일단 비싸고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 가족여행이나 특별활동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아도 요즘은 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출석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개근을 하게 되면 체험학습 하루도 안 쓰고, 아니 못 쓰고, 즉 돈이 없어서 여행 한번 못하고 학교에만 나오는 '개근거지' 소리를 아이가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애가 클수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비용 부담이 커진다. 가능하면 이름이 알려진 대학교에 들어가서 내 아이의 인생 자체가 기죽지 않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부모에게 지출하도록 강요하는 압박비용 부담을 해결해 주는 것은 개별 정책 몇 개의 조합으로써 가능하지 않다. 교육개혁, 사회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비용 부담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저출산 현상의 반전을 위한 대응에서 두 가지 전략을 선택할 수 있다. 부모의 일·가정 양립을 통한 삶의 만족도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 둘째, 전반적 차원에서 대한민국 대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청년들이 희망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약력 △61세 △독일 트리어대학교 사회학 박사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교육부 늘봄학교연구회 좌장 △사회보장위원회 기획전문위원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자문위원단 위원 △경북행복재단 대표이사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09-04 18:20:30<28> 카자흐스탄 '악타우'-조지아 '트빌리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카자흐스탄의 악타우를 출발해서 러시아를 지나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간다. 총 2000km가 넘는 거리로 국경을 두번 넘어야 하고 총 5일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6시간 걸리는 베뉴(Beyneu)까지는 이미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이라 마음이 편하다. 매끈한 도로면에 드라이브할 맛이 나 쌩쌩 달려본다. 도로뿐 아니라 길 옆 쉼터며 화장실 등 시설들이 아주 좋다. 다음날 새벽같이 길을 나선다. 5시간 거리의 아티라우(Atyrau)가 목적지이다. 12월 외부기온은 영하4도 정도. 오늘도 오후 3~4시 정도에 아티라우에 도착해서 쉬면 좋을 것 같다. 지평선에 닿은 하늘에서 태양이 뜨며 하늘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있다. 동틀녁 드라이브는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저멀리 지나가는 기차는 혹시 시베리아로 가는 열차가 아닐까? 긴 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러시아를 지나며 있었던 일들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아티라우에서 잘 쉬고 다음은 8시간 거리의 아스트라한(Astrakhan). 오늘 다시 러시아로 들어간다. 실소가 절로 나오지만 뭐 할 수 없다. 주유도 잘 하고 계속해서 가는데 벌써 3일째 비슷비슷한 사막의 황량한 풍경에 이젠 좀 질리는 감이 있다. 점점 길 상태가 안좋아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누쿠스-국경길보다는 갈만하다. 고생을 찐하게 한 후에는 웬만한 것은 별것 아니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자갈길을 지나 누더기길. 사람이 사는 곳은 이미 한참 전부터 찾아볼 수가 없다.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길이 더 안 좋아진다. 아무도 없어 보이는 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경찰이 우리차를 세웠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이제는 여유가 있다. 과속도, 신호위반도 아무 잘못한 것이 없으니 떨 필요 없다. 다만 어거지쓰며 돈을 뜯어내려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서류를 들고 내려서 경찰과 한참 이야기한 후 다행히 웃으며 차로 돌아오는 탄. 경찰은 도로표지판을 가리키며 속도를 40km 이상 내지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고 또, 펜과 노트를 주며 자기 이름이 파르캇이라며 한글로 이름을 써달라는 건가 싶어 써주니 좋아하더란다. 웃으며 잘 보내주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국경이 가까워오자 다리 위의 작은 초소에서 또다시 우리를 세웠다. 여기가 국경인가 싶은데 자동차등록증과 여권 등을 보더니 간단히 보내주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니 희안하다. 여권을 보니 카자흐스탄 출국 도장은 찍혀있는데 러시아 입국도장은 없다. 아예 입국관련 절차가 없었던것 같다. 뭔지 모르겠다. 우리는 검문검색도 없고 그냥 출국도장 찍고 끝이라는 것이 너무 희안하다며 이상해했다. 하지만 20분이상 더 가자 드디어 익숙한 모습의 러시아 국경검문소가 등장했다. 대형트럭들이 줄서 있는 모습을 보니 확실했다. 알고보니 이곳은 카자흐 국경을 지나 강을 넘어 10km 더 가야 러시아쪽 국경검문소가 있는 특이한 곳이었다. 다행히 입국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약 한시간정도 걸려 입국에 성공했다. 몇달만의 러시아 재입국이라 왜 다시 오냐고 따지지는 않을지, 또 당시 러시아가 전쟁 중이어서 입국을 막거나 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후딱 끝나서 다시 러시아에 들어왔다. 러시아는 전시 상황이었지만 딱히 위험하거나 불편한 것이 없었다. 두나라 국경이 떨어져있다는 것을 몰라 혼란이 있었지만 무사히 잘 통과했다. 어두워진 저녁 아스트라한에 도착했다. 강이 흐르고 도시 여기저기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있는 아름다운 작은 도시였다. 아스트라한에서 잘자고 다음날 7시간거리의 남쪽 그로즈니(Grozny)로 간다. 오전 8시에 출발했는데 한밤중처럼 깜깜하다. 겨울에다가 한참 북쪽이라 해가 늦게 뜨나보다. 도시를 막 벗어나자 어두운 하늘에 신기하고 거대한 노란 빛이 보였다. '여기가 지옥불이 있다는 투르크메니스탄도 아니고 저런 자연현상이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으니 아마도 인공적인 조명일 것 같긴 한데 저쪽은 사람 사는 지역도 아니고 대체 저 커다란 불빛은 무얼까?' 너무 궁금했다. 마침 우리의 진행방향에 있어서 얼마후면 만날 것 같았다. 불이 난 건 아니겠지? 검은 연기같은 건 보이지 않으니 그건 아니겠고 가까이 갈수록 빛은 더 거대하게 보였다. 하늘에 타원형 거대한 빛뿐 아니라 그 아래 지상에도 마치 해가 뜨는 것처럼 작고 강한 빛이 동그랗게 보였다. 하지만 방향이 동쪽이 아니다.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점점 가까이 가자 드디어 눈으로 빛이 나오는 곳을 볼 수 있었는데 무얼 위함인지 왜 이곳에 저렇게 강한 조명들을 설치해 켜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공적으로 설치된 거대한 노란 조명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뭔가 좀 더 드라마틱한 UFO라던지 그런 것을 기대했었는데.ㅎㅎ 나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가다보니 무슨 국경검문소같은 곳이 또 있고 차들을 세운다. 조지아는 아직 멀었는데 뭘까? 알고보니 체첸 공화국의 검문이었다. 그 후에도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까지 서너번 더 검문을 받아야했다. 이쪽 정치 상황이 안좋다던데 삼엄하게 검문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까다롭게 구는 사람도 없었고 절차도 간단했다. 그로즈니의 시내 한 숙소에서 또 하룻밤 자고 동틀무렵 조지아를 향해 출발했다. 저 멀리 웅장한 산맥이 벽처럼 늘어서있다. 저 산을 넘어야 조지아에 갈 수 있다. 오늘 드디어 조지아에 들어가는 구나. 러시아 입국 이틀만에 다시 아웃. 국경에 다가갈수록 산들이 높아진다. 산과 산 사이 계곡에 구불구불 국경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나있다. 조지아 국경검문소에는 차들과 보행자들이 엄청 많았다. 이곳에서도 동승자는 따로 수속을 하라고 해서 나는 차에서 내려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 건물안으로 들어가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어 도장을 받으려고 갔는데 내 여권을 보더니 알수없는 말을 하며 여권은 주지 않고 옆으로 비켜서 기다리라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이삼십분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안쓴다. 탄이 기다릴텐데 답답하고 조바심이 난다.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던 중 다른 직원 하나가 지나가다 와서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 같았다. 둘이 뭐라뭐라 이야기하더니 그제서야 나에게 오라고 하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 건네주었다. 나를 오래 붙잡아둔 직원이 미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나오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 생각하고 탄이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얼른 나갔다. 아마도 그쪽 국경으로 조지아에 들어가는 한국사람이 거의 없어서 비자가 필요한지 뭔지 잘 모르는 직원이 나를 붙잡아둔 것이리라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다시 탄과 까브리를 만났다. "와, 우리 이제 조지아에 들어왔다!"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드디어 동유럽 여행이 시작된 것 같아 설레였다. 국경을 지나자 마치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설산과 예쁜 집들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동유럽의 스위스로 불리는 조지아의 대표적 관광지라고 한다. 호텔과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장거리 여행의 피로와 해지기 전 트빌리시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에 풍경이 그리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해지기전 트빌리시 도착 성공. 시내에 들어오니 차들의 색깔도 다양하고 비싼차도 많이 보인다. 5시도 안됐는데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다. 확실히 우리가 익숙한 '도시'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중앙아시아와는 완전 다른 세상이다. 넓은 쿠라강이 흐르고 커다란 아치형 다리도 있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이번 여행중에 이렇게 큰 다리는 별로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버섯을 닮은 퍼블릭 서비스홀이며 인천공항이 생각나는 음악극장 등 현대적이고 신기한 빌딩들도 있고 또 많은 유럽풍건물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우리 숙소는 시내 중심에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할 것 같았지만 주차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약간 골목으로 들어가 있어 주차할 만한 곳을 잘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숙소까지 짐을 가지고 골목을 걸어들어가야해서 좀 힘들기는 했다. 트빌리시 물가가 비싸 4인 도미토리를 얻었는데 첫날은 우리만 방을 독차지하고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JmkbcRpHnOk?si=pcKoyNXf_Bm1MwQX>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29 15:01:00<27> 카자흐스탄 악타우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오후 5~6시쯤 베뉴에 도착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더 늦기전에 정비소를 찾아 차를 고치고 싶었다. 도로변 정비소를 발견하고 번역기로 시동이 안걸린다고 이야기했는데 기술자가 없다고 한다. 경정비만 하는 곳인가 싶어 다른 곳을 찾아갔다. 여기도 안된다고 해서 이 차를 고칠 수 있는 곳이 어디있냐고 물어보니 어떤 주소를 알려주어 다시 찾아갔다. 가보니 해가 져서 어두운데다 다니는 사람도 없고 주소의 집에는 초인종도 없어 망설이다 문을 두드려보았으나 답이 없다. 결국 베뉴에서 차를 고칠 수가 없었던 우리는 들개와 술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또 숙소를 잡아도 차시동을 켜둔 채로 들어가 자야하는 것이 불안해서 차라리 이곳을 떠나 길가에서 차박을 하기로 했다. 나는 어제부터 험로의 긴 이동과 추위와 스트레스에 지쳐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만 겨우 쉬고 앉아있었고 운전하느라 더 힘들었을 탄이는 가까스로 남은 힘을 쥐어짜내어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하며 몇시간을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로를 앞차들을 의지해 달리다가 새벽 2~3시쯤 트럭들이 많이 서있는 공터에서 차를 대고 잤다. 악타우까지 가는 동안 주유할 때면 습관처럼 시동을 끌까봐 계속 긴장하며 서로 이야기해주고 밥먹거나 화장실을 위해 차를 세울 때마다 "시동!"하며 잊지않고 켜두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오전 악타우에 도착했다. 도시가 제법 크고 활기가 넘친다. 일요일인데도 문 연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정비소 문 연 곳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잘되었다. 눈에 띈 정비소에 들어갔는데 안된다고 한다. 캠핑카를 수리하기 위해 정비소 10여곳을 수소문했지만 허탕이었다 서너군데를 더 찾아가보았지만 모두 차를 고칠 수가 없다는 대답에 답답하기만 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네비에서 현대자동차 매장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보고 찾아갔다. 차량판매와 정비를 같이 하는 곳 같다. 직원에게 번역앱으로 우리 차 상태를 이야기하니 차를 정비센터로 옮기라고 한다.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켜보자고 했다. 20시간 이상 켜두었던 시동을 끄는 것이 매우 불안했지만 정비사도 있고 하니 꺼보기로 했다. 중앙아시아의 현대차 전시장은 한국과 달리 매우 넓고 시설도 좋다. 직원분들도 너무 친절하게 잘 대해주셔서 의지가 되고 신뢰가 간다. 정비센터에서 까브리의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어보니 이게 웬일, 시동이 걸린다. 너무 좋아서 박수가 절로 나온다. 여러차례 껐다 켜기를 반복했는데 이상없이 잘 작동한다. 정말 오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했었다. 심지어 차를 못고쳐서 여행이 중단되어 돌아갈 것까지 각오를 했었는데 이렇게 간단히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몰랐다. 사실 우리는 십년 전 아메리카 장기여행에서 차가 고장이 난 아픈 경험이 있다. 당시 온두라스에서 두달간 차에서 자며 차를 고치려고 애쓰다 끝내 돌아와야했었기 때문에 감사가 더 컸다. 이왕 정비소에 온 김에 엔진오일과 필터 등을 교환하고 싶다고 했더니 이곳은 큰 리프트가 없어 불가능하다며 가능한 정비소를 알려주셨다. 현지 직원분은 끝까지 시동을 확인을 하며 안심시켜 주셨다.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악타우 시내로 돌아왔다. 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니 없던 힘도 솟아나는 것 같다. 반가운 버거킹에서 시로의 소울푸드인 햄버거를 먹고 와이파이로 숙소도 예약을 했다. 슈퍼마켓에서 장도 보고 숙소를 찾아갔다. 주소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곳이 아닌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 찬스를 또 써서 주인과 전화를 해서 한참 떨어진 다른 아파트로 안내를 받았다. 처음 보는 여행자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고 도와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구글 내비가 잘못된건지 주인이 주소를 잘못 적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제대로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찾아간 곳은 마치 성처럼 보인다며 신기해했던 우리가 지나쳐온 곳이었다. 1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여러채가 단지를 이루고 있고 정원도 매우 훌륭하다. 크리스마스 즈음이어서인지 커다란 트리도 있고 황금말 장식에 어린이 놀이터도 잘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차를 안에 가지고 갈 수가 없어 아파트 밖 상가주차장에 세우고 왔다갔다 하며 짐을 옮겨야하는 것이 조금 불편했다. 건물 내부도 거울과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돼있었고 고마운 현대식 엘리베이터도 두대나 된다. 주인은 동양계 부부였는데 한국에 관심이 많은 듯 한국드라마와 배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파트는 깨끗하고 주방도 좋고 편안해보여서 처음엔 3일 예약을 했었는데 더 길게 머물어도 되냐고 묻고 기간을 연장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편히 푹 쉬고 밀린 작업도 하고 싶었다. 지독한 강행군으로 탄이 병이 나버렸다 숙소에 짐을 풀자 탄이가 몸져 누웠다. 긴장이 풀어지며 몸살이 났나보다. 몇일간 정말 고생이 많았다. 그렇게 탄이는 2~3일을 침대에서 꼼짝을 못하고 누워서 약을 먹으며 쉬어야 했다. 밤이 되면 아파트 건물과 광장의 트리에 조명이 아름답게 들어와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난다. 아픈 탄이랑 오붓하게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근처 상점에서 조각케이크와 생강빵과자를 살 수 있어서 조금 위안이 되었다. 몇일 푹 쉬고난 탄은 잘 회복해서 같이 고깃국도 끓여먹고 소소하게 작업도 하며 휴식의 시간을 갖었다. 탄이가 기운을 차린 후 우리는 악타우에 있는 아제르바이잔 영사관을 찾아갔다. 구글 네비에 번번히 골탕을 먹어왔는데 이번도 역시 이상한 가정주택들이 즐비한 동네로 안내를 하기에 의심스러웠는데 해당주소의 집을 두드려 물어보니 이곳은 아니고 골목따라 조금 더 가면 있다고 알려주셨다. 역시 러시아권쪽에서 구글 네비게이션은 믿을 것이 못된다. 알려주신대로 가보았더니 정말 영사관이 있을 것 같지 않던 동네에 떡하니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나부끼는 영사관이 있었다. 입구에 경비원께 바쿠로 가기 위해 비자신청을 하러 왔다고 하니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 후 안으로 안내해주셨다. 영사관 내부는 멋지게 잘 꾸며져있었고 직원들 두세분이 나오더니 우리에게 친절하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결론적으로 페리는 코로나 이후로 여객(사람)운송을 안해서 바쿠로 가려면 차는 배로, 사람은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한다. 배도 비정기적으로 운항해서 언제 출항하는지 선사를 찾아가 알아봐야한다고 했으며 코로나 음성확인서, 백신접종증명서등 각종 서류도 필요하다고 한다. 악타우에서 바쿠가는 페리 탑승이 '동해-블라디보스톡 구간' 만큼이나 어렵고 복잡하다. 둘이 긴 의논끝에 말도 잘 안통하는 곳에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복잡한 서류를 다 준비하는 것 보다 좀 돌더라도 육로로 이동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악타우에서 다시 베뉴를 지나 러시아의 아티라우, 아스트라한을 거쳐 조지아에 가는 경로로 정했다. 이쪽 길도 베뉴-아스트라한 사이의 길이 악명이 높다고 들어서 차를 제대로 정비하고 가고싶었다. 현대차 매니저님께 소개받은 정비소에 가서 엔진오일과 한국에서 가져온 연료필터를 교체했다.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하고나니 마음이 든든하다. 체력과 자동차 관리를 받고 잘 쉬고 또 다음 길을 나설 수 있게 해준 악타우가 좋은 느낌으로 남았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RxgG4EeEtF0?si=yj5jzbQcD6g7lAbV>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22 10:42:09<26>국경을 넘어 카자흐스탄으로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한달여간의 우즈벡 여행을 마치고 오늘은 국경을 넘는다. 타슈켄트에서부터 앞으로의 경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우리가 원한 최선의 경로는 우즈벡 남서쪽의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투르크메니스탄 가는 방법이 쉽지 않았다. 코로나 전에는 3~5일짜리 경유(Transit)비자가 있었다는데 발급이 중단된 듯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타슈켄트에 있을때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찾아가 한시간을 기다려 겨우 직원을 만나 물어보았는데 초청장이 있으면 몰라도 외국인 입국이 금지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또한 이란도 까르네(무관세 통행증)가 필요하며 대행사 등을 통해 미리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꽤 많은 돈이 드는 것 같았고 운이 나쁘면 돈을 내도 입국이 안될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쪽 경로는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북쪽으로 카스피해를 돌아 가야했는데 국경지나는 것을 최소화하기위해 일단 카자흐스탄에 재입국해서 카스피해 연안의 악타우에서 배에 차를 실어 아제르바이잔으로 보낼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구글 맵에 누쿠스에서 악타우까지는 약 1000km거리에 14시간이 걸린다고 나온다. 하지만 경험상 +3~4시간이다. 압둑의 아버지께서 이 구간의 길이 매우 안좋고 국경 전엔 주유소나 마을이 하나도 없다고 알려주셨다. 까브리가 캠핑카이니 숙소나 마을이 없어도 아무데서나 쉬고 밥을 해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어제 시내에서 주유소 두 곳을 찾아갔었는데 디젤이 없었다. 가는 길에 살 수 있겠지 했는데 허름한 주유소를 하나 찾아내어 들러봤지만 역시 디젤은 없었다. 더 가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나올까봐 다시 누쿠스로 돌아가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사막 한가운데 있는 식당겸 트럭 휴게소를 발견했다. 현지분들께 번역앱을 동원해 경유를 파는 가까운 주유소를 물어본다. 러시아어를 쓰는지 페르시아어를 쓰는지 우즈벡어를 쓰는지 모르니 번역앱도 무용인 경우가 많다. 손짓 발짓까지 동원해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니 황당하게도 여기에서 디젤을 판다고 한다. 품질이고 가격이고 따질 상황이 아니다. 디젤이 있다는게 반가와 당장 30리터를 달라고 했다. 직원 두분이 말통에 담은 디젤을 가져와 까브리 연료통에 넣어주었다. 이제 좀 안심이 된다. 이정도면 국경 지나 베뉴까지도 문제 없다. 누쿠스에서 멀어지니 사방이 평평하고 누런 사막이 시작되고 도로 상태가 안좋아진다. 와아...단언컨대 지금껏 경험한 최악의 도로다. 아스팔트를 몇십년간 방치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게 되었다. 구겨진 옷의 주름이 잡히듯 쪼글쪼글한 아스팔트에 바퀴가 반이상 빠질듯한 크고 깊은 구멍이 계속 이어진다. 길이 얼마나 안좋은지 도로 옆에는 차들이 아스팔트 길을 피해 맨땅으로 다녀서 만들어진 흙길도 보인다. 차라리 흙길이 나을까 싶어 우리도 한번 가보았는데 울퉁불퉁 차가 미친듯 요동치고 흙먼지가 엄청나게 날려서 딱히 나을 것도 없다. 엉망인 도로탓에 사람도 차도 생고생이다. 10~20km밖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그마저 악성 구간을 피하려고 가다서다를 반복해야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12시간을 왔는데 국경은 아직 한참 남았고 날은 어두워져버렸다. 마땅히 쉴 곳도 없어 밤에도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가는 것이 위험한 것을 넘어 공포스럽기 까지 했다. 그냥도 12시간을 운전하면 어마어마하게 피곤할텐데 길 상태에 온 신경을 쏟아부으며 운전한 탄이 기절할 정도로 힘들어 한다. 공터고 뭐고 아무것도 없지만 도로를 조금 벗어나 흙바닥 위에 차를 세웠다. 사막의 추위에 수많은 별들도 눈에 안들어온다. 무시동 히터를 켜고 전기요를 의지해 잠을 청해보았다. 밤새 추위와 싸우다 살아서 눈을 떠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아침기온 영하 7도. 체감은 -10도가 훨씬 넘는 듯 무섭게 춥다. 오늘은 꼭 국경을 넘자! 하며 기운차게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화이팅하며 출발한지 30분도 채 안되어 갑자기 도로위에서 시동이 꺼졌다. 어제 거친 도로에 종일 시달리느라 까브리가 병이 난걸까? 추운 날씨에 오그라든 손으로 겨우 점프용 예비 배터리를 연결해보았다. 여전히 시동이 안 걸린다. 어제 넣은 경유가 문제일까? 영하의 날씨에 얼어버렸나? 궁여지책으로 휴대용 버너를 차 아래에 놓고 연료통을 데워보려 했지만 영하의 세찬 바람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다. 한국이었으면 전화한통으로 견인 출동 서비스를 불렀을텐데. 막막했다. 도로위에서 차가 멈춰버렸다. 배터리 점프도 해보고 연료통도 데워보지만 소용없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해결될지도 모르겠지만. 바이칼호에서 우리가 견인을 해주었던 생각이 났다. 우리가 견인을 받아야하는 일이 생길줄은 몰랐는데. 이 길을 다니는 차도 별로 없다. 시동이 안 걸리니 히터도 안되서 추위에 덜덜 떨며 마냥 기다린다. 한참만에 대형트럭이 한대, 두 대 서주었는데 언어 소통이 안되어 결국 그냥 가버리고 망연자실 그저 착한 사마리아인같은 분이 나타나시기를 빌고 또 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가 멈춘지 3시간이 지났을때 드디어 생명의 은인이 나타나셨다. 크고 힘세보이는 대형트럭도 여러대 그냥 지나갔는데 정작 우리를 도와준 것은 딱 봐도 수십년은 된 듯한 낡은 밴 뒤에 달구지까지 매단 차. 길이 너무 험해서 섣불리 견인해주겠다 나서지 못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분은 우리차를 보자마자 견인줄을 준비해서 달구지와 까브리에 묶는다. 이제 살았다 싶고 너무너무 감사하다. 드디어 밴이 끄는 대로 까브리가 움직인다. 서너시간 만이다. 정말 다행인 것은 밴 기사님이 운전을 매우 잘하시는 분이었다. 길이 워낙 험해서 그냥 가기도 위험한 길을 우리 1톤 트럭을 매달고 잘도 가신다. 하지만 험로에 앞차가 언제 급제동을 할 지 알 수 없기에 탄이는 초긴장모드로 오른팔에 심한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수없이 잡아당겨야 했다. 30분쯤 지나 탄이 약간 여유가 생겼는지 "개인적으로는 대형트럭보다 밴 사이즈의 차가 견인해주어서 따라가기가 훨씬 나아"라는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견인줄이 툭 끊겼다. 헉. 탄이 크락션을 울려 신호를 한다. 밴 기사님은 차를 세우고 다시 견인줄을 까브리에 묶는다. 길이 험해 견인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니 견인줄이 끊어지는 것 쯤은 당연하다 싶다. 끈이 무지 오래된 듯 낡기도 했다. 앞차는 길이 조금이라도 좋다 싶으면 막 달린다. 그러면 오래된 아스팔트에서 자갈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마구 날라온다. 이미 금간 앞유리가 완전히 깨져버리진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은 이곳을 벗어나는게 중요하다. 천천히 가자고 할 수도 없는 상황. 끈에 묶인 채 앞차에 매달려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참 가다가 길에 서있는 승용차 앞에서 밴이 차를 멈추었다. 어리둥절 내려보니 역시나 고장차량이다. 이미 한대를 구조해 견인중이면서도 또 다른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으신가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참 대단하다. 이 차량은 앞 타이어 하나가 완전히 빠져 길에 놓여있는데 타이어를 연결하는 쇠부속이 부서진듯 했다. 밴 기사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무슨 조치를 한 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두어시간이 지나 국경 근처의 한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지만 나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탄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밴기사님께 식사대접이라도 하겠다며 식당에 들어갔다. 식사 후 차 고칠 곳을 물어보니 근처에는 정비소가 없다고 한다. 이대로 견인된 채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밴기사님과 식당주인분이 나와 까브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신다. 퓨즈 박스도 열어보고 엔진룸도 열어보고 그러더니 견인 중 시동을 걸어보잔다. 탄이 안해본 게 아니어서 별 기대는 안되었지만 두분이 봐주는 것 만으로도 너무 고마와 밴의 달구지는 빼고 우리차를 직접 묶어 견인하며 식당사장님이 우리차를 운전하였다. 식당 주차장을 한바퀴 돌기도 전에 "부릉~"하며 시동이 걸렸다. 나는 옆좌석에 앉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야~!"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탄이가 다가온다. 이럴수가! 까브리가 다시 살아났다!! 눈물이 날 정도로 까브리 엔진소리가 반가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엔진을 끄고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안 걸린다. 다시 밴으로 견인해서 시동을 걸었더니 다행히 또 걸렸다. 두분 모두 이대로 운전하고 가되 정비가 가능한 곳까지 가기 전에는 절대로 시동을 끄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말은 안통해도 무슨 이야긴지 너무 잘 알것 같았다. 2시간 이상을 무시무시한 험로를 견인해주신 밴기사님을 탄이는 꼭 안아드리고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국 과자등 선물과 사례로 100달러를 드렸다. 더 달라면 더 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탄이는 왜 자기가 했을때는 안됐을까 매우 의아해했지만 어쨌든 시동이 걸린 것을 신통방통해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6시간만에 시동이 걸려 까브리가 다시 스스로 움직여서 다니는 것이 너무너무 고마울 뿐이었다. 식당에서 약 30분정도 더 가니 국경사무소가 나왔다. 우즈벡에서는 여행자가 어디에 묵었는지 거주지 증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가는 곳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서류를 준비해왔는데 국경에서는 아무도 보자고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좀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준비해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국경에 서있는 차들 맨 뒤에 줄을 서니 앞에 낯익은 밴이 보인다. 먼저와서 줄서고 계시는 우리 은인. 카자흐스탄 국경수비대 분들이 웃으며 반겨주셨다. 국경에서 나 혼자 또 내려서 걸어가야 할 것을 각오하고 핫팩과 옷등 추위에 단단히 대비하고 있었는데 차에 그냥 타고 있으라며 친절히 배려해주셨다. 국경에서 이런 환대는 처음이다. 탄이 차에서 내려 서류작업을 하고 돌아와서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며 보여준다. 와, 꽤 멋진 남자향수다. 수비대의 젊은 친구 한사람이 계속 정말 잘 도와주었고 마지막엔 이 것까지 선물해줬다고 한다. 그 친구 말고도 한국 자동차 등록증이 생소하다보니까 하나 둘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어 차근차근 물어보고 굉장히 호의적으로 수속 밟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덕분에 무사히 기분좋게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국경통과는 항상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이었는데 오늘은 여러모로 감동이었다. '일희일비'라고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것 같다. 어제부터의 고생을 조금 위로받는 듯 했다. 카자흐스탄으로 넘어오니 길이 갑자기 너무 좋아졌다. 어제 종일, 그리고 아침에도 그 악몽같은 험한 길을 비틀대며 지나와야했는데 비단결같은 아스팔트가 진심 감동스럽다. 다음 목적지인 베뉴에 가서 차도 고치고 숙소도 잡아야겠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QMehVDxsPGQ?si=zf30tAbmRBYQu1wt>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14 10:51:49<25>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누쿠스는 부하라에서 북서쪽으로 550km가량 떨어진 국경 전 마지막 도시이다. 누쿠스의 카우치호스트를 찾아보니 '압둑하미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의 게스트 후기를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있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났던 자전거여행자 이치도 그의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믿을만한 사람이다싶어 카우치요청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누쿠스에 가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국경넘을 준비를 해야겠다. 중간에 히바라는 도시도 있었지만 웬지 비슷한 건물들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 싶어 바로 누쿠스를 향했다. 여덟시간 넘는 긴 주행 끝에 어둑어둑해진 저녁 늦게 압둑네 집에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의 피곤은 압둑과 가족들의 환대에 금새 기운이 회복된다. 압둑은 임신한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들어가자마자 차와 빵과 달달구리들을 주셨는데 조금 전까지 힘들어 축축 쳐지던 우리는 기운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월에 수박이라니.. 호박같이 생겼는데 달고 맛있네 12월에 수박을 대접받았다. 사실 집에 들어오며 입구에 까맣고 둥근 공같은 것이 있어 설마 수박이랴 싶었는데, 길가에서 팔던 호박같은 것과 이것들이 다 진짜 수박이었다. 우즈벡은 한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는 나라였다. 다만 씨가 무지무지 커서 생소했는데 아마도 늦게 수확해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품종이지 않을까 싶었다. 암튼 겨울에 비싼 하우스수박도 아닌 그냥 수박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맛도 매우 달고 좋았다. 그의 집은 넓은 1층 주택이었는데 집안에 주차장도 있고 우리에게 쓰라고 안내해준 방은 퀸 매트리스가 3개는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넓은 커다란 방이었다.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압둑이 마침 내일 근무가 없다며 과거에 아랄해였던 무이낙(Mo'ynoq)에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었다. 바로 엊그제 오토에게 이야기를 듣고 꼭 가보고싶었던 아랄해를, 그것도 현지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갈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곳에서 왕복 6시간거리인데 너희차는 비싼 디젤차이니 자기차로 가자고 한다. 압둑의 진심어린 호의에 감사하며 메탄값은 우리가 내겠다고 했다. 압둑네 집은 조용하고 따뜻해서 매우 편안하게 잘 잤다.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함께 먹는다. 압둑은 잠자리가 편안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주고 아침부터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다. 정말 이슬람의 손님접대는 최고인것 같다. 올때 사온 두루마리 휴지를 어머님께 드리며 한국 사람은 남의집에 갈때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뜻밖에도 압둑과 어머님이 이미 알고 있다며 웃는다. 어머니께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드라마등을 통해 본적 있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염소젓으로 만든 밀크티, 갓구운 난.. 황송한 아침 식사 뒷마당의 염소젖으로 만든 밀크티가 참 맛있다. 갓구운 난을, 녹인 버터에 찍어 든든히 아침을 먹었다. 보통 우리는 초대를 받으면 떠날때 선물을 드리고 가는데 너무도 잘해주셔서 뭐라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 차에서 선물을 긁어모아왔다. 아버님과 압둑에게는 핫팩 등을 드리고 어머님과 압둑의 아내에게는 마스크팩, 한국전통문양 컵받침, 내가 뜬 레이스 받침 등을 드렸다. 베푸신 은혜에 비해 너무 작은 선물이었지만 즐겁게 받아주신다. 추위에 대비해 목도리까지 두르고 압둑의 차를 타고 무이낙으로 출발했다. 신기하게도 압둑의 차가 가스도 휘발유도 주유가 가능하다고 해서 메탄의 줄이 너무 길어 휘발유를 넣기로 했다. 그래도 경유보다 많이 싸다. 가는 길에 건초를 트럭본체 높이만큼 높게 쌓은 트럭도 지나가고 낙타떼도 만났다. 세시간을 쉼없이 달려 드디어 아랄해에 도착했다. 지평선 끝까지 누런 모래사막만 보이는데 여기가 아랄해라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앞쪽에 붉은 갈색으로 완전히 녹슬어버린 크고 작은 배들이 모래위에 있었다. 한때는 면적이 세계 4위의 호수였고 수심이 100m가 넘었다는데 면화를 재배하기위해 상류의 강물을 많이 사용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속도로 환경이 파괴되고 바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배에 가까이 가서 보니 더 놀랍고 황망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녹슨 어선. 절대로 수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녹이 슬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처참한 모습이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와 닮아있었다. 이 배들은 이제 다시는 물에 뜨지 못할 것이고 이 메마른 땅은 다시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몇십년 전만해도 깊은 바다속이었던 버석버석한 모래를 밟으며 마음이 마냥 먹먹해져갔다.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 한때 바다였던 사막을 밟는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 더 늦으면 여행할 수 없는 환경이 되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눈 앞의 현실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 존재인가 다시 한번 반성했다. 언덕위에 아랄해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둔 장소가 있는데 1989년의 아랄해와 2008년의 아랄해 위성사진을 눈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압둑은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원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압둑은 정말 신실한 무슬림이다. 하루에 5번 기도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자주 사라져 기도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압둑의 기도 후 우리는 무이낙의 작은 식당에 갔다. 압둑의 도움으로 만두와 샤슬릭을 주문해서 점심을 잘 해결했다. 젓가락질 이야기가 나와서 탄이 긴 샤슬릭 쇠꼬챙이 두개로 생양파조각을 집어 먹으니 압둑이 신기해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압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우치호스트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영어를 사용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언젠가 외국여행을 하고싶어서 외국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가 의외였지만 좋은 이유 중 하나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인사에 웃으며 받아주는 그들 다음날 탄은 압둑의 아버지를 따라 수산시장에 갔다. 근처 강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생선보기가 거의 힘들었는데 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상인들도 반갑게 맞아주고 유머스레 인사를 건넨다. 영어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니 탄은 그냥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데 다들 웃으며 받아주셨다. 여러분들이 모여들어 우리가 유튜버인 것을 압둑 아버님께 들었는지 채널이름을 물어보는데 "까브리랑" 이라고 말하니 이상하게 따라부르신다. 아.. 채널이름을 영어로 할걸 그랬나, 외국분들이 물어볼때마다 항상 곤란한 마음이 든다. 핸드폰을 내미신 분이 있어 한글자판부터 깔고 한글로 까브리랑을 입력해서 드디어 채널을 찾아드리니 좋아하시며 바로 구독을 누르셨다. 구독자 추가 감사합니다! 하핫. 탄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유튜브 채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압둑 아버님은 커다란 생선을 사셨다. 그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서 생선을 요리해달라고 맡겼다. 생선의 무게를 달고 돈을 내면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집에서는 그렇게 큰 생선을 요리할 도구가 없는 걸까? 이날 저녁 튀긴 생선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다. 오랜만에 살집이 두툼한 흰살 생선을 먹으니 마냥 좋았다. 식사 후 태블릿으로 한국음식 사진을 보여드리며 압둑가족들께 설명을 했는데 다들 흥미로워했다. 이곳은 굽고 튀기는 등 조리법이 단순해서 삼계탕, 찜닭 맛을 모를 것 같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둑 언젠가 한국에 오게되면 꼭 만나자.'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은 가족들께 우리가 있는 재료로 가능한 잔치국수를 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결혼한지 1년되었다는 압둑에게 결혼식 영상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영상속 압둑은 검은 양복을 신부는 하얀 히잡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혼식은 매우 긴시간 진행된다고 한다. 결혼식때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이맘(이슬람 지도자)의 말씀이 좋았다고 한다. 신실한 무슬림다운 대답이다. 하하 "우리도 대접해야지" 6인분 잔치국수와 김치캔 '딱' 다음날 까브리를 타고 잔치국수 재료를 사러 누쿠스 시내로 나왔다. 멋진 빌딩 앞에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기와 우즈벡 깃발이 함께 나부낀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 안의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의 수도이다. 도로와 건물이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다. 우리는 큰 마트를 발견해서 필요한 달걀과 야채 등의 재료를 잘 구입했다. 6인분의 잔치국수를 만드는 것은 시로에게 도전이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지단을 만들고 육수를 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멸치다시포리백을 이용하는 치트키를 썼다. 한국산 소면을 삶고 김가루까지 고명으로 올리니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압둑과 아내는 부엌에서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보인다고 한다. 한국 음식중 그나마 잔치국수는 간단한 편인데ㅎㅎ. 이곳 음식은 한번에 솥에 넣고 끓이면 된다고 한다. 아마도 고명을 따로 부치고 썰고 하는 과정이 생소해 보였나보다. 캔김치를 따서 반찬으로 대접했는데 김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캔김치는 일반김치보다 많이 부족한데... 제대로 된 맛있는 김치를 맛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 그래도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고 국수도 매우 인기가 좋았다. 압둑이 이곳에서 인기있는 개그 TV쇼를 보여주며 해준 이야기를 통해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리액션이 매우 풍부하고 이곳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며 엄청 감탄하고 감명을 받아 표현하는 것이 그들 눈에는 무척 재미있게 보이나보다. 한국사람들은 빈 땅을 보며 왜 이렇게 노는 땅이 많은데 그냥 두냐고 물어본다는 말에 우리는 빵 터지며 "맞아! 우리도 그런 얘기 했어."라고 했고 석양을 보며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해는 자기나라에서도 질텐데 뭘 그리 특별하다며 호들갑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일몰을 보며 탄성짓는 한국인에게 해가 없어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 다시 뜰거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사람의 특징 이야기가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 저녁때 압둑은 다음날 새벽에 출근을 한다고 해서 미리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다음날 아침 떠나기전 아버님께 부탁해서 아버님의 대형트럭을 구경했다. 기꺼이 보여주신 아버님께 무척 감사했다. 트럭운전수이신 아버님이 국경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여러가지 알려주셨다. 누쿠스를 떠나면 카자흐스탄까지 주유소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여분의 연료를 준비하라며 연료통을 주시려는 아버님께 이럴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큰 생수통이 몇개 있다고 감사하며 사양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가면서 먹을 캔디 등과 이것저것을 끝까지 챙겨 주시려고 해서 사양하기 매우 곤란할 지경이었다. 커다란 수박도 2덩이나 주시려해서 겨우 사양하고 나왔다. 사랑과 정이 가득한 참 감사한 누쿠스의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귀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PRakyEg5zwk?si=RH4bMMGroy9XL8lB>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8 1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