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한국자유총연맹부산광역시지부(회장 신한춘)는 22일 오후 부산자유회관 3층 중강당에서 여성회장 자문위원장 위·해촉식을 가졌다고 23일 밝혔다. 여성회장 자문위원회는 16개 각 구·군지회 여성회장 출신 회장이 모여 시여성협의회의 발전과 부산시지부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위원회다. 이날 행사에는 부산시지부 권영숙 부회장, 윤방원 사무처장, 노학양 부산진구지회 회장, 시 단위조직회장, 16개 구·군지회 사무국장, 여성회장·조직간부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위촉된 고현옥 제5대 위원장은 제4대 김성리 위원장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함께 초대~4대 위원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을 잘 이어받아 2023년 한국자유총연맹 전국 17개시도지부 중 최우수지부의 위상에 걸맞게 시여성회장 자문위원회의 발전은 물론 시지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2024-07-23 07:52:07[파이낸셜뉴스] 노후된 부산여성회관 재건축을 위해 부산시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손을 맞잡았다. 부산시는 5일 오전 시청 국제의전실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함께 ‘부산여성플라자(가칭) 건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부산여성계의 숙원사업인 부산여성플라자 건립사업이 위탁개발 방식으로 추진됨에 따라 위탁개발 전문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고 시와 상호 협력해 사업을 추진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협약식에는 협약기관을 대표해 박형준 부산시장, 권남주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이 직접 참석해 부산여성플라자 위탁개발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한 상호 협력을 약속했다. 협약 체결로 시는 사업 추진에 따른 타당성 조사와 투자심사 등 행정절차를 적극 이행하고 공사는 행정절차 이행 과정에서 개발사업 자문과 필요 자료를 제공하는데 합의했다. 아울러 양 기관은 부산여성플라자 건립을 위해 협업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효율적 이행을 위해 기관 간 실무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했다. 한편 부산여성플라자 건립사업은 총사업비 819억원을 투입해 2029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여성역량 개발공간, 여성·가족 휴식공간, 부산여성의 역사공간 등 시민 의견을 반영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
2023-12-05 11:02:54[파이낸셜뉴스] 한국자유총연맹부산광역시지부 시 여성회장 자문위원회는 17일 오전 부산진구 초읍동 부산자유회관 야외광장에서 권영숙 시지부 부회장(자문위 초대회장), 김성리 위원장 등 위원 15명이 참석해 어르신 250여명에게 사랑의 도시락 나눔무료급식 봉사활동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부산의 16개 구군지회에서 여성회장을 역임한 위원들로 구성된 시 여성회장 자문위원회는 매월 정기회의를 열고 다양한 지역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23-10-17 15:25:15[파이낸셜뉴스] 한국자유총연맹 부산광역시지부(회장 신한춘)는 12일 충남소재 비체팰리스에서 한국자유총연맹 본부주관으로 열린 공동체행복지킴이 합동평가대회에서 전국 시군구여성회장 300여명이 참석해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결의를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전국시군구여성회장 300여명은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성공”을 다함께 외치고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앞장설 것을 결의하고 실천 의지를 다졌다. 또 한국자유총연맹 부산지부는 준비해 간 홍보 현수막과 리플렛을 활용, 엑스포 유치가 부산의 발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개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23-10-12 14:54:52[파이낸셜뉴스] 한국여성의정 부산아카데미(원장 윤원호)는 부산여성신문과 함께 제8회 지방선거 대비 예비정치인 발굴·육성을 위한 정치아카데미를 개최한다고 10일 밝혔다. 오는 20~26일 4일간 총 10강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이번 정치아카데미는 예비 여성정치인들의 정치인으로서의 자기 탐색 기회와 예비정치인 역량강화 등 여성정치인과의 네트워키 강화와 정보공유향상을 위해 마련된다. 수강생은 선착순 30명을 모집한다. 예비 여성정치인, 기존 여성정치아카데미 수료생 등 현·전직 지방의원의 참여도 가능하다. 교육과정을 80%이상 출석한 자에게 수료증을 부여한다. 과정 수료생은 정보 동의후 여성정치인DB구축을 통해 인재추천시 활용하고, 특히 기본과정과 전문과정 등을 이수한 수료생은 지방의회출마시 각 정당 우선 추천 등 한국여성의정 협력 대학원(이화여대, 중앙대)에 여성의정 장학생 응시 자격을 부여(4학기 장학금 지급혜택)한다. 이번 교육과정은 △정치란 무엇인가 △남녀동수정치에 대한 이해 △헌법의 이해와 정치 △지방자치제도의 의미와 기능 △지방의회의 구성과 역할 △여성주의와 젠더의 이해 등 다채롭게 구성된다. 각 분야 전문가 교수진들이 강사로 참여한다. 한편, 한국여성의정 부산아카데미는 부산출신 현전직 국회의원, 지방의원, 학계, 여성 등 시민단체, 정당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 예비 여성정치인 발굴과 양성을 위한 지속적인 사업을 펼치고 여성정치인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bsk730@fnnews.com 권병석 기자
2020-08-10 10:31:33【부산=노주섭기자】 부산지역 여성경제인의 경제활동 참여와 창업을 지원하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지회장 전수혜)가 24일 오후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 창립기념식은 이날 오후 5시 부산 중구 영주동 코모도호텔에서 허남식 부산시장, 김형호 부산울산지방중소기업청장 등 주요 기관장과 안윤정 한국 여성경제인 협회장, 회원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은 부산지역 모범 여성경제인 7명에 대한 부산울산중소기업청장 등 명의의 표창장 수여와 축하떡 절단, 만찬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된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지회는 여성경제인 지위향상과 권익보호, 여성 경제활동 참여와 창업촉진, 여성기업의 경영활동 지원을 통한 여성경제인의 능력향상 추진 등을 목적으로 지난 1976년 6월 전국 최초로 발족된 부산여성경제인협회가 전신이다. 이후 1999년 7월 6일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산·울산지회로 가입되면서 지난 6일로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부산지회는 그동안 ▲여성창업지원센터 운영(창업상담 및 강좌, 창업보육센터 운영 등) ▲경영지원(애로상담, 경영컨설팅, 기술 및 디자인개발 지원 등) ▲기타 여성기업 육성을 위한 정부 위탁업무 등의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올해는 부산시로부터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시설확충 등을 위해 5000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다./roh12340@fnnews.com
2009-07-23 09:40:40sr52@fnnews.com 강수련 기자
2018-07-18 13:48:31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장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칼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델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게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녀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녀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 산맥,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 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6 16:46:08[파이낸셜뉴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뇌사상태에 빠진 30대 여성이 장기기증으로 7명의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떠났다. 뇌사상태 30대 여성, 7명에 장기기증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지난달 15일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에서 이미정씨(37)가 뇌사장기기증으로 심장, 폐장, 간장, 신장(좌, 우), 안구(좌, 우)를 기증했다고 13일 밝혔다. 기증원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7월 1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졌다. 이씨의 가족들은 이씨가 어디선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마음의 위로를 얻고, 누군가를 살리는 좋은 일을 하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에 기증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이씨는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는 따뜻한 성격이었으며, 동물병원에서 일을 할 때 눈이 안 보여 안락사해야 하는 강아지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집으로 데리고 와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다. 또, 고객센터 상담사로 일하면서 늘 친절하고 적극적인 업무 태도를 인정받아 팀장으로 관리자 업무를 했으며 일을 처음 배우거나, 육아휴직 후 돌아와서 적응을 잘 못한 직원들에게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편지도 자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함께 살아 숨쉰다고 생각할게, 사랑한다" 작별인사 이씨의 어머니 이제순씨는 “올해 4월 치매로 고생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미정이가 쓰러지기 3일 전인 6월 28일에 첫째 딸이 아이를 낳았다. 이처럼 정신없는 상황에 생각지도 못하게 딸과 이별하게 돼 너무나 슬프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어 “미정아. 너를 이제 다시 볼 수는 없지만, 7명의 생명을 살리고 어디선가 함께 살아 숨 쉰다고 생각하며 살게.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잘 지내. 사랑한다”라고 전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삼열 원장은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며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증을 결심해 준 기증자 가족과 생명나눔을 실천하신 기증자에게 감사드린다”라며 “이 소중한 생명나눔으로 더 따뜻한 사회가 되길 희망하며,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2024-11-13 08:4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