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우즈벡-부하라(Bukhara)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마르칸트를 떠나 부하라(Bukhara)로 간다. 날씨가 흐리다. 5시간 넘는 장거리를 가야하니 주유하는 것이 신경 쓰이는데 주유소 서너곳을 번번히 허탕치고 나왔다. 경유값이 비싼것도 힘든데 우즈벡에서는 경유 있는 곳 찾기까지 쉽지않다. 녹색 표지판에 DIZEL이라는 글을 보고 기대반 걱정반 들어가본 곳에서 드디어 경유가 있다고 한다. 신난 탄이 "우와!"하며 지갑을 찾는다. "40리터 주세요." 기름통을 가득 채우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웃으며 농담하며 다시 길을 떠난다. 오늘 갈 부하라는 고대부터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도시이며 사마르칸트, 히바와 함께 우즈벡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도시라고 한다. 사마르칸트 못지않게 볼것이 많다고 하니 관광도 해야겠다 싶다. 부하라에서 우리는 카우치 호스트인 오토의 집을 찾아갔다. 그의 집은 부하라에서 약간 외곽의 카간(kagan)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오후 늦게 도착하니 그는 집에 없고 그의 동생이 나와서 우리를 집까지 안내해주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아파트의 꼭대기층. 소련시절에 지은 듯한 모습이었다. 곧 오토가 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으로 우리가 라볶이를 만들어 함께 먹기로 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무지무지 귀한 오뎅은 구할 수 없어 못 넣었지만 대신 양배추를 잔뜩 넣어 맛있는 라볶이를 만들었다. 완성된 음식을 보자 오토는 "이거 라면같이 생겼는데?"라고 한다. 라면을 아는게 신기하다. "어 맞아 라면이야 라면이랑 비슷한데 맵고 달아" 매운것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한입 먹어보더니 다행히도 좋다고 한다. 오토도 여행을 좋아해서 5달간 아제르바이잔-조지아-이란-아르메니아-카자흐스탄을 여행했다고 한다. 탄이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자 오토는 이란이라고 했다. 그가 사는 부하라와 종교, 언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아서 좋았다고 한다. 나는 우즈벡도 주로 러시아어를 쓰는 줄 알았는데 지역마다 다르고 특히 부하라나 사마르칸트에서는 타직어와 페르시아어를 같이 쓴다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왔다. 한가지의 언어와 글자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란 한국인으로서는 한 나라, 한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글이 다양하다는 것이 너무 힘들것 같고 상상이 안되었다. 오토에 의하면 부하라가 아주 옛날에는 이란제국에 속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내에 구도시에는 페르시아풍의 건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7km정도 떨어진 지라보드라는 마을에는 페르시아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오토나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약간 아랍계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오토는 우리에게 부하라의 유명한 의학자인 아비세나(Avicenna)와 부하라의 역사, 문화, 주요 관광지등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자신이 사는 도시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타슈켄트에 있다는 여동생 마블루다와 영상통화를 하게되었다. 마블루다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데 가벼운 대화가 가능할 정도여서 무척 반가웠다. 한국에 가고싶다는 마블루다에게 한국에 오게되면 우리집에 초대할테니 꼭 연락하라고 하니 매우 좋아했다. 중앙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바다 아랄해가 말라버렸다 오토는 부하라 북쪽, 누쿠스 근처의 아랄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는데 학교다닐때 들어본 적 있는 지명이어서 아는척 했더니 바다가 현재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잘못들었나 싶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아랄해는 중앙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바다였는데 구소련이 면화사업에 아랄해의 물을 끌어다 쓰는 바람에 말라버렸다고 했다. 인간의 욕심이 바다를 사막으로 만들다니. 그곳에 가면 모래위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배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은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떠나기전 오토에게 우리 까브리를 소개시켜주었다. 오토는 캠핑카를 구경한 후 우리가 하루만에 떠나는 것이 많이 아쉬웠는지 계속해서 더 있다가라고 권해주었다. 바쁜일이 지나면 부하라 안내도 해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편하게 머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터라 계획대로 부하라에는 하루만 머물고 지나가기로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은 길다. 언젠가 오토와 마블루다를 또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토가 알려준 카간의 대표명소 에미르(Emir)궁전에 왔다. 카간 기차역이 바로 근처에 있어 주차도 편하고 찾기 쉬웠다. 이른 아침인데도 페르시아풍 정문이 활짝 열려있다. 날씨가 매우 추워 단단히 무장하고 들어갔다. 공원 한켠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기구들도 좀 보이고 정원 조성을 잘해놓았다. 가족나들이 하기 좋을 것 같다. 길 끝에 인터넷에서 봤던 에미르 궁전이 나타났다. 입장료같은 것이 없어 출근하는 사람들이 공원을 통과해서 다니고 있었다. 사막의 모래색 건물이었는데 페르시아풍 아름다운 기하학적조각으로 장식되있었다. 인터넷에서 무척 화려한 내부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일러서인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도시 곳곳이 관광지라고 하니 궁전내부에 꼭 안들어가도 뭐 별 상관 없겠지. 밖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 이동했다. 이동 중 메탄 주유소에 끝없이 줄선 차들이 보인다. 오토도 매일아침 가스를 넣기위해 출근시간보다 훨씬 일찍 나와야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200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긴 줄 끝의 차는 대체 얼마나 걸려야 충전을 할 수 있을까? 부하라의 '방주요새'에 왔다. 광장에 세워진 초대형 트리를 보니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이슬람 국가에 '성탄절 트리'라니 왠지 좀 어색하다. 거대한 성벽이 솟아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흙으로 만든 벽돌을 구워 쌓은 성이다. 외관의 곡선이 참 아름답다. 보통 성벽이라고 하면 수직으로 올리기 마련인데 어떻게 저렇게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좁아지는 부드러운 곡선형태의 성벽을 만들었을까? 지진에도 끄떡없게 생겼다. 아침 햇살과 그림자가 곡면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약 4500원정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 매표소에 계신분이 유쾌하게 맞아주신다.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기둥으로 받쳐진 건물이 나타난다. 이런 기둥은 보통 대리석같은 석조로 만들기 마련인데 나무로 된 조각기둥이 희안하다. 노점에서 기념품 파는 아저씨에 이끌려 물건들을 구경했는데 러시아루블을 세트로 모아놓은 것도 있고 도장같은 것도 있었는데 꼭 사고싶은 것은 없어서 패스. 안쪽에 왕좌 같은 것이 있는 공간에 오자 기념품상 아저씨가 따라오셔서 5만숨에 전통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사진찍게 해준다며 흥정을 하신다. 다른 손님이 없으니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다. 페르시아풍 카펫으로 벽장식을 한 멋진 의자였지만 우린 그냥 그대로 사진찍기를 더 원해서 사양하고 슬금슬금 아저씨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이곳 건물의 기둥들은 다 주춧돌 위에 밑동이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놓은 형태로 매우 특이해 보였는데 300년 이상 된 것이라고 한다. 여러 옛 물건들이 전시되어있는 박물관같은 곳도 있었는데 입구 앞 광장에 사람들이 열심히 청소 중이다. 우즈벡에서는 사람들이 청소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매우 부지런하고 깨끗한 사람들인 것 같다. 박물관에는 옛날사람들이 입던 쇠사슬 갑옷을 비롯해 페르시아풍 쟁반과 주전자, 옛날 복식 등 매우 이국적인 물건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좀 걷다보니 작은 광장이 나왔다. 설명을 읽어보니 성에서 말을 키우는 장소였나보다. 광장에서 성 아래를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있었다. 추운 날씨와 조금 지친 마음에 관광에 더 흥미가 생기지를 않아 우리는 정오쯤 누쿠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먼길 떠나기 전 도시에서 점심거리를 사려던 중 길가에 "베스트 버거" 라는 노점이 눈에 띄어 차를 세웠다. 가게 이름은 "베스트 버거"인데 햄버거가 없단다. 뭐가 있냐고 물어보고 되는 것 중 후라이드치킨을 주문했다. 주문 후 튀겨주는 시스템. 한참을 기다려 치킨이 나왔다. 사실 별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막 튀겨나온 치킨이 너무너무 맛있다. 따끈하고 바삭하고 육즙도 흐르고 간도 딱 맞는다. 8천원 정도를 냈는데 둘이 배터지게 먹고도 남을 정도로 양도 많다. 부하라에서 인생치킨집을 만났다. 부하라에서 누쿠스까지는 8시간거리, 히바까지는 6시간이라고 한다.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자 하고 길을 떠났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oK6mljO3zuU?si=1619a4maR7clZH8d>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1 15:27:55[파이낸셜뉴스] 상원의료재단 힘찬병원은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지역에 '부하라 힘찬병원'을 개원했다고 26일 밝혔다. 국내 병원에서 단독 투자를 통한 병원급 해외 의료기관 개설은 처음이다. 힘찬병원 이수찬 대표원장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체결한 보건의료 협력 이행계획으로 별도의 절차 없이 한국 의사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어 진출이 가능했다"며 "한국 의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만큼 국내 의료인력들이 현지에 파견되기도 하지만 고용된 현지 의료인력도 한국 연수프로그램 등 한국형 의료서비스 교육에 힘썼다"고 밝혔다. 부하라 힘찬병원은 중앙아시아 지역 최고 수준의 의료 환경을 구축해 한국과 동일한 의료 케어 구현에 초점을 둔 진료를 시행한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소유권을 인도받은 2만3140㎡ 부지에 8925㎡ 규모로 지상 3층에 정형외과, 신경외과, 외과, 내과, 신경과 등의 진료과와 100병상을 갖춘 준종합병원이다. 이 대표원장은 "부하라 힘찬병원이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병원이 될 것으로 확신하며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의료허브가 되길 기대한다"며 "부하라 힘찬병원의 수익도 한국의 보건체계를 배우려는 우즈베키스탄의 의료발전을 위해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개원식 행사에 참석한 알리셰르 사드마노프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장관은 "지난 3년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은 여러 협력을 거쳐 가까워졌고 한국의 의료기술 도입을 위해 다양한 노력과 함께 연수 프로그램을 받았다"며 "힘찬병원을 시작으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상호간 발전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테이프 커팅식 후 개원식 참석자들 모두 부하라 힘찬병원을 순회를 하며 병원 시설과 첨단 장비, 각 진료과별 케어 시스템 설명을 듣는 시간도 마련됐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에서 체험하기 힘든 물리치료 시연이 큰 관심을 모았다. 슬링 치료, 멀티스파인 기구와 무릎과 어깨의 수동 운동 장비를 이용한 치료 등 힘찬병원의 관절, 척추 재활 치료 노하우가 우즈베키스탄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한국의 의사와 현지 환자간 화상진료가 가능하도록 구현된 시스템도 기대를 모았다. 당일 부하라 힘찬병원에서 고관절 환자 2명이 부평힘찬병원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화상진료를 받는 과정이 공개되었다. 현지 환자가 직접 한국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은 물론 양국 의료진간 원격 협진, 화상 영상공유를 통한 실시간 커뮤니케이션도 가능하다. 25일 개최된 개원식에는 이수찬 힘찬병원 대표원장, 박혜영 상원의료재단 이사장, 서정필 부하라 힘찬병원 병원장 등 주요 관계자를 비롯해 알리셰르 사드마노프 우즈베키스탄 보건부 장관, 바르노예프 우크탐 부하라 도지사, 하르지예프 일홈 부하라 보건국장, 이노야토프 아므릴로 부하라국립의대 총장 등 양국의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지난 7월, 나눔 의료를 통해 부평힘찬병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온 우즈베키스탄 환자들도 참석해 축하를 전했다. 한편, 힘찬병원은 2018년 11월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대학병원 내 힘찬관절척추센터를 개소해 운영중이며, 러시아 사할린힘찬병원도 지난 4월부터 운영 중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부하라 힘찬병원 개원을 준비하며 부하라국립의대와 협약을 체결해 현지 의료인력 수련 교육 등 다양한 한국 선진의료 전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2019-11-26 16:24:56[포천=강근주 기자]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주지사 겸 상원의원인 바르노에브 옥탐 등 총 17명이 14일 포천을 방문했다. 선진화된 농업기술 및 시설을 가진 포천시 우수기업을 방문해 벤치마킹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다. 조학수 포천시 부시장은 이날 방문단에 “바르노에브 옥탐 주지사 방문을 통해 포천시와 부하라 주가 더욱 가까워지고 다양한 분야의 우호교류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2017년 기준 10억달러 규모의 교역을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12개 주 가운데 하나인 부하라주는 살아있는 역사문화도시로 천연가스, 석유, 목재, 광물, 관계농업, 면화 등 산업 기반을 가지고 있는 주이다. 바르노에브 방문단장은 선진화된 농업기술 및 시설, 농자재 및 농자재 제조기술 등 포천시 기업의 건축자재 우수성을 인정하고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에 투자와 기술 제공을 요청했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2018-03-15 13:56:36힘찬병원이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 병원급 의료시설을 개원하며 본격적인 중앙아시아 진출에 나선다. 이 병원은 12일 인천시 부평동 힘찬병원 대강당에서 '힘찬병원-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 진출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힘찬병원은 올해 하반기 개원을 목표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소유권을 인도받은 부지 약 3만3057㎡에 1만578㎡의 3층 건물을 건축하게 된다. 여기에는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6개 진료과와 100여 병상의 준종합병원급 규모의 의료시설을 갖추게 된다. 또 의료진 및 물리치료사 포함한 국내 전문 인력 10여 명을 현지에 직접 파견할 계획이다. 힘찬병원은 추후 인근 부지에 건물을 추가로 건설해 향후 12개 진료과, 300병상까지 늘려 종합병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방침이다.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주는 지난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수도 타슈켄트 남서쪽에 위치하며, 인구 약 240만 명이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행정구역이다. 힘찬병원 이수찬 대표원장은 "이번 우즈베키스탄 진출은 국내 선진 의료기술을 해외에 전파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지난 해 방한 시 한국의 선진기술을 전수해주기를 적극 희망한 후 3개월 만에 민간기업인 힘찬병원이 성과를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하라 힘찬병원 일대를 우즈베키스탄의 의료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바르노예프 우크탐 부하라주 도지사는 "부하라의 힘찬병원에는 부하라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도 많은 환자가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후 힘찬병원의 추가적인 설립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힘찬병원은 이달 말까지 우즈베키스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주 정부로부터 토지 및 건물 소유권을 이전 받아 3개월간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또 해외 의료사회공헌 차원에서 개원 전까지 부하라 지역의 어려운 관절·척추환자 2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 수술도 진행할 계획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18-03-12 15:50:47<25> 우즈베키스탄 '누쿠스'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누쿠스는 부하라에서 북서쪽으로 550km가량 떨어진 국경 전 마지막 도시이다. 누쿠스의 카우치호스트를 찾아보니 '압둑하미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의 게스트 후기를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있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났던 자전거여행자 이치도 그의 집에서 묵었다고 한다. 믿을만한 사람이다싶어 카우치요청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주었다. 누쿠스에 가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국경넘을 준비를 해야겠다. 중간에 히바라는 도시도 있었지만 웬지 비슷한 건물들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없겠다 싶어 바로 누쿠스를 향했다. 여덟시간 넘는 긴 주행 끝에 어둑어둑해진 저녁 늦게 압둑네 집에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의 피곤은 압둑과 가족들의 환대에 금새 기운이 회복된다. 압둑은 임신한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들어가자마자 차와 빵과 달달구리들을 주셨는데 조금 전까지 힘들어 축축 쳐지던 우리는 기운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월에 수박이라니.. 호박같이 생겼는데 달고 맛있네 12월에 수박을 대접받았다. 사실 집에 들어오며 입구에 까맣고 둥근 공같은 것이 있어 설마 수박이랴 싶었는데, 길가에서 팔던 호박같은 것과 이것들이 다 진짜 수박이었다. 우즈벡은 한겨울에도 수박을 먹을 수 있는 나라였다. 다만 씨가 무지무지 커서 생소했는데 아마도 늦게 수확해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품종이지 않을까 싶었다. 암튼 겨울에 비싼 하우스수박도 아닌 그냥 수박을 먹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맛도 매우 달고 좋았다. 그의 집은 넓은 1층 주택이었는데 집안에 주차장도 있고 우리에게 쓰라고 안내해준 방은 퀸 매트리스가 3개는 넉넉히 들어갈 정도로 넓은 커다란 방이었다.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압둑이 마침 내일 근무가 없다며 과거에 아랄해였던 무이낙(Mo'ynoq)에 같이 가자고 제안해주었다. 바로 엊그제 오토에게 이야기를 듣고 꼭 가보고싶었던 아랄해를, 그것도 현지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갈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이곳에서 왕복 6시간거리인데 너희차는 비싼 디젤차이니 자기차로 가자고 한다. 압둑의 진심어린 호의에 감사하며 메탄값은 우리가 내겠다고 했다. 압둑네 집은 조용하고 따뜻해서 매우 편안하게 잘 잤다. 다음날 일어나 아침을 함께 먹는다. 압둑은 잠자리가 편안했는지 세심하게 물어봐주고 아침부터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진다. 정말 이슬람의 손님접대는 최고인것 같다. 올때 사온 두루마리 휴지를 어머님께 드리며 한국 사람은 남의집에 갈때 빈손으로 가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려했는데 뜻밖에도 압둑과 어머님이 이미 알고 있다며 웃는다. 어머니께서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드라마등을 통해 본적 있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염소젓으로 만든 밀크티, 갓구운 난.. 황송한 아침 식사 뒷마당의 염소젖으로 만든 밀크티가 참 맛있다. 갓구운 난을, 녹인 버터에 찍어 든든히 아침을 먹었다. 보통 우리는 초대를 받으면 떠날때 선물을 드리고 가는데 너무도 잘해주셔서 뭐라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어 차에서 선물을 긁어모아왔다. 아버님과 압둑에게는 핫팩 등을 드리고 어머님과 압둑의 아내에게는 마스크팩, 한국전통문양 컵받침, 내가 뜬 레이스 받침 등을 드렸다. 베푸신 은혜에 비해 너무 작은 선물이었지만 즐겁게 받아주신다. 추위에 대비해 목도리까지 두르고 압둑의 차를 타고 무이낙으로 출발했다. 신기하게도 압둑의 차가 가스도 휘발유도 주유가 가능하다고 해서 메탄의 줄이 너무 길어 휘발유를 넣기로 했다. 그래도 경유보다 많이 싸다. 가는 길에 건초를 트럭본체 높이만큼 높게 쌓은 트럭도 지나가고 낙타떼도 만났다. 세시간을 쉼없이 달려 드디어 아랄해에 도착했다. 지평선 끝까지 누런 모래사막만 보이는데 여기가 아랄해라고 한다. 말문이 막혔다. 앞쪽에 붉은 갈색으로 완전히 녹슬어버린 크고 작은 배들이 모래위에 있었다. 한때는 면적이 세계 4위의 호수였고 수심이 100m가 넘었다는데 면화를 재배하기위해 상류의 강물을 많이 사용한 것이 원인이 되어 급속도로 환경이 파괴되고 바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배에 가까이 가서 보니 더 놀랍고 황망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녹슨 어선. 절대로 수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녹이 슬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처참한 모습이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와 닮아있었다. 이 배들은 이제 다시는 물에 뜨지 못할 것이고 이 메마른 땅은 다시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몇십년 전만해도 깊은 바다속이었던 버석버석한 모래를 밟으며 마음이 마냥 먹먹해져갔다. 모래사막이 된 아랄해.. 한때 바다였던 사막을 밟는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 더 늦으면 여행할 수 없는 환경이 되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눈 앞의 현실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간이 지구에 얼마나 큰 해를 끼치는 존재인가 다시 한번 반성했다. 언덕위에 아랄해의 역사에 대해 기록해둔 장소가 있는데 1989년의 아랄해와 2008년의 아랄해 위성사진을 눈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압둑은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우더니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원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압둑은 정말 신실한 무슬림이다. 하루에 5번 기도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자주 사라져 기도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압둑의 기도 후 우리는 무이낙의 작은 식당에 갔다. 압둑의 도움으로 만두와 샤슬릭을 주문해서 점심을 잘 해결했다. 젓가락질 이야기가 나와서 탄이 긴 샤슬릭 쇠꼬챙이 두개로 생양파조각을 집어 먹으니 압둑이 신기해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압둑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우치호스트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영어를 사용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언젠가 외국여행을 하고싶어서 외국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가 의외였지만 좋은 이유 중 하나겠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인사에 웃으며 받아주는 그들 다음날 탄은 압둑의 아버지를 따라 수산시장에 갔다. 근처 강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들이 가득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며 생선보기가 거의 힘들었는데 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상인들도 반갑게 맞아주고 유머스레 인사를 건넨다. 영어를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니 탄은 그냥 한국어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데 다들 웃으며 받아주셨다. 여러분들이 모여들어 우리가 유튜버인 것을 압둑 아버님께 들었는지 채널이름을 물어보는데 "까브리랑" 이라고 말하니 이상하게 따라부르신다. 아.. 채널이름을 영어로 할걸 그랬나, 외국분들이 물어볼때마다 항상 곤란한 마음이 든다. 핸드폰을 내미신 분이 있어 한글자판부터 깔고 한글로 까브리랑을 입력해서 드디어 채널을 찾아드리니 좋아하시며 바로 구독을 누르셨다. 구독자 추가 감사합니다! 하핫. 탄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유튜브 채널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압둑 아버님은 커다란 생선을 사셨다. 그리고 근처 식당으로 가서 생선을 요리해달라고 맡겼다. 생선의 무게를 달고 돈을 내면 요리를 해준다고 한다. 집에서는 그렇게 큰 생선을 요리할 도구가 없는 걸까? 이날 저녁 튀긴 생선이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다. 오랜만에 살집이 두툼한 흰살 생선을 먹으니 마냥 좋았다. 식사 후 태블릿으로 한국음식 사진을 보여드리며 압둑가족들께 설명을 했는데 다들 흥미로워했다. 이곳은 굽고 튀기는 등 조리법이 단순해서 삼계탕, 찜닭 맛을 모를 것 같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둑 언젠가 한국에 오게되면 꼭 만나자.'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은 가족들께 우리가 있는 재료로 가능한 잔치국수를 해드리겠다고 제안했다. 결혼한지 1년되었다는 압둑에게 결혼식 영상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영상속 압둑은 검은 양복을 신부는 하얀 히잡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결혼식은 매우 긴시간 진행된다고 한다. 결혼식때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이맘(이슬람 지도자)의 말씀이 좋았다고 한다. 신실한 무슬림다운 대답이다. 하하 "우리도 대접해야지" 6인분 잔치국수와 김치캔 '딱' 다음날 까브리를 타고 잔치국수 재료를 사러 누쿠스 시내로 나왔다. 멋진 빌딩 앞에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기와 우즈벡 깃발이 함께 나부낀다. 누쿠스는 우즈베키스탄 안의 카라칼파크스탄 공화국의 수도이다. 도로와 건물이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다. 우리는 큰 마트를 발견해서 필요한 달걀과 야채 등의 재료를 잘 구입했다. 6인분의 잔치국수를 만드는 것은 시로에게 도전이었다.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지단을 만들고 육수를 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멸치다시포리백을 이용하는 치트키를 썼다. 한국산 소면을 삶고 김가루까지 고명으로 올리니 매우 그럴듯해 보였다. 압둑과 아내는 부엌에서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보인다고 한다. 한국 음식중 그나마 잔치국수는 간단한 편인데ㅎㅎ. 이곳 음식은 한번에 솥에 넣고 끓이면 된다고 한다. 아마도 고명을 따로 부치고 썰고 하는 과정이 생소해 보였나보다. 캔김치를 따서 반찬으로 대접했는데 김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캔김치는 일반김치보다 많이 부족한데... 제대로 된 맛있는 김치를 맛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 그래도 다들 맛있게 먹어주었고 국수도 매우 인기가 좋았다. 압둑이 이곳에서 인기있는 개그 TV쇼를 보여주며 해준 이야기를 통해 이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리액션이 매우 풍부하고 이곳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며 엄청 감탄하고 감명을 받아 표현하는 것이 그들 눈에는 무척 재미있게 보이나보다. 한국사람들은 빈 땅을 보며 왜 이렇게 노는 땅이 많은데 그냥 두냐고 물어본다는 말에 우리는 빵 터지며 "맞아! 우리도 그런 얘기 했어."라고 했고 석양을 보며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며 해는 자기나라에서도 질텐데 뭘 그리 특별하다며 호들갑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일몰을 보며 탄성짓는 한국인에게 해가 없어진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 다시 뜰거라고 말해준다고 한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한국사람의 특징 이야기가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마지막 저녁때 압둑은 다음날 새벽에 출근을 한다고 해서 미리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다음날 아침 떠나기전 아버님께 부탁해서 아버님의 대형트럭을 구경했다. 기꺼이 보여주신 아버님께 무척 감사했다. 트럭운전수이신 아버님이 국경가는 길에 대한 정보를 여러가지 알려주셨다. 누쿠스를 떠나면 카자흐스탄까지 주유소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여분의 연료를 준비하라며 연료통을 주시려는 아버님께 이럴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큰 생수통이 몇개 있다고 감사하며 사양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가면서 먹을 캔디 등과 이것저것을 끝까지 챙겨 주시려고 해서 사양하기 매우 곤란할 지경이었다. 커다란 수박도 2덩이나 주시려해서 겨우 사양하고 나왔다. 사랑과 정이 가득한 참 감사한 누쿠스의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귀한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PRakyEg5zwk?si=RH4bMMGroy9XL8lB>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8-08 15:09:01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드행 열차를 탔다. 후한서에는 강국(康國)으로 기록된 곳이며 서북은 초원의 투르크 지대, 남은 페르시아, 동은 중국. 그 사이의 중개무역지에서 이익이 남는다면 지옥까지 간다는 상인으로 살면서 불교와 이슬람을 전하고 비단도 날랐던 역사를 만들었다. 1990년 여름 이광규 선생을 모시고 고려인 콜호스(집단농장)를 찾았었지만, 이번에는 '베식'(영아용 요람)을 찾아서 아내와 함께 '한달살이'를 위하여 당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인류학계는 '국민성'이라는 연구주제를 찾았다. 태평양의 수많은 섬에서, 일본군들의 옥쇄와 자결 장면에 깜짝 놀란 종군기자들이 '인간이 어쩌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타전했다. 그 질문이 인류학화되었고,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일본문화론의 원조가 탄생했다. 핵심은 '변소훈련(toilet training)'이었다. '세 살 이전 요람에서 형성된 인성의 기초'라는 가설이 수립되었으며, 프로이트의 생물학적 본능설과 에릭슨의 사회심리학적 발달설을 넘어선 문화결정론으로서 대전 후 1960년대까지 인류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말에도 수긍이 간다. 우즈벡을 포함한 과거 오스만터키 제국의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이 '베식'이라는 영아용 요람이다. 우즈벡 내에서도 서쪽인 사마르칸드나 부하라에서는 타직어가 많이 사용되고 타직어 신문도 발행되고 있다. 그 타직어 신문에 난 '갓바라(베식)' 장인(匠人)에 관한 소개 글도 보았고, 그것을 기초로 대를 이어서 베식을 제작하는 장인의 집을 방문했다. 직사각형의 광주리 같은 형태로 바닥 부분에 약간의 타원형 면처리가 있어서 부드럽게 흔들 수 있다. 얼른 보면 제주도식 애기구덕과 흡사하다. 이 요람의 핵심은 소변기가 부착되어 있고, 아이의 몸을 요람에 고정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아이가 누운 바닥면이 공중에 떠 있고, 바닥의 한쪽 편으로 큰 구멍이 있어서 그 사이로 화분같이 생긴 요강(질그릇이나 도기로 제작된 것)이 장치된다. 오줌이 나오는 부분부터 이 요강 사이를 연결하는 파이프처럼 생긴 15㎝ 정도 길이의 목제품(플라스틱으로 제작한 것들도 있음)이 있다. 여아용과 남아용의 형태가 약간 다르다. 오줌이 옆으로 새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아이가 움직이면 파이프의 위치가 흐트러져서 오줌이 옆으로 샐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널찍한 밴드 형태의 천으로 가슴부터 배 부분을 베식의 난간과 연결시킨다. 영아의 몸을 고정시키는 목적이다. 손잡이가 있는 부분에는 아이가 누워서 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식을 하고 장난감을 달기도 한다. 장인의 목각 솜씨가 발휘되고, 그 솜씨와 재질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 장인의 안내로 베식이 선물로 제공되는 돌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다. 가정 형편에 따라서 베식의 치장물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베식은 영아의 외조모가 마련해서 돌잔치 날 선물로 제공한다. 참석한 친척들은 여러 가지 주력(呪力)을 갖고 있는 물건들을 베식의 아래나 난간에 걸어 둔다. 마늘도 있고, 작은 인형 같은 것들도 있고, 금붙이들도 있다. 일종의 부적인 셈이다. 영아가 성장하는 과정에 좋지 못한 사악함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술이다. 태어난 지 1년이 되는 즈음이 인생고비의 관문에서 이러한 의례를 한다.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고 다음 관문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관문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악령 개입의 기회를 배제하기 위한 주술과 주력이 개입한다. 베식에 부속되는 물건들은 영아가 눕는 자리에 까는 요에 해당되는 것들과 몸을 고정시키는 밴드 종류들이다. 천으로 가려진 베식의 안에 그러한 물건들이 가득하게 담겨 있었다. 영아가 베식에 눕혀지고, 요강과 관련 물품들을 장치한 후 조모가 흔드는 요람 속에서 영아는 잠이 든다. 영아가 베식에 누워 있는 동안 수유할 경우에는 어머니가 베식에 다가가서 누워 있는 영아에게 젖을 물린다. 몸을 약간 기울이게 된다. 오시(기름밥)와 리표시카(둥근 빵)를 비롯한 양고기와 과일 그리고 여러 가지 음료의 잔칫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노(老)와 소(少)의 여인들뿐이다. 베식 안에서 잠든 영아를 두고, 잔치에 참석한 여인들이 기립하여 춤을 추는 것으로 잔치가 끝났다. 요람에 고정되었던 영아는 성장 후 어떻게 될까. 필자가 오래전에 번역 출판한 '통과의례(通過儀禮 Les Rites de Passage)'란 서적이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아놀드 반 겐넵이 1909년 간행한 인류학 분야의 고전 중에 고전이다. 나는 이 서적이 인생살이를 구조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이론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 역정을 의례라는 차원에서 분석한 탁월한 업적이며, 그의 통찰력은 일본 민속학의 창시자 야나기타 쿠니오에게도 이미 100년 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분리-전이-통합의 순으로 인생살이가 진행된다는 이론이다. 어머니 자궁으로부터 분리되어 탄생이라는 관문에서 인생고비의 위기를 넘겼다. 그 과정에 삼신할매에게 비손하는 절차가 있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시절에 한 살을 맞이한다는 것이 큰일이었다. 호적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게 나타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살아남는 기간을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 관문에 우즈벡 사람들은 베식을 중심으로 한 통과의례를 하는 것이다. 부거제(夫居制)를 하는 우리네 풍속으로 보면, 친정으로부터 분리되어서 신행길에 가마를 타고 신랑의 본가로 갔던 시집가는 길, 그것이 분리 다음의 전이 과정이었고 그것만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재행도 하였다. 낯선 시집살이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시집으로의 통합이 완성됐다. 죽어서 가족으로부터 분리되고 조상의 대열에 합류하는 전이 과정에 장례와 상례들이 마련되었다. 모두 고비를 통과할 때마다 필수적인 의례들이 수반되었다. 인생살이는 그렇게 통과해야 하는 관문들이 질서를 갖추어서 존재했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가. 인생살이를 인도할 새로운 질서의 창조에 무심한 세태를 걱정한다. 인생살이가 뒤집어졌으면, 뒤집어진 대로 질서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8-05 18:07:39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사마르칸트는 타슈켄트에서 남서쪽으로 5시간가량을 가야한다. 우즈벡에 목화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가는 길 양옆에 끝도 없이 펼쳐진 목화밭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창 목화가 피어있으면 장관이었을텐데 철이 지나서 갈색 줄기들만 있는 것이 좀 아쉽다. 우즈벡 길가의 가로수 중에는 처음 보는 나무들이 있다. 밑둥은 굵고 짧은데 잔가지들이 공작새 깃털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양이 특이하다. 넓은 강과 마을도 자주 보이고 확실히 카자흐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보다 땅이 비옥하고 살기 좋아보인다. 겨울이 다 되어가는데 길가 과일가판대에는 수박같은 것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다. 설마 수박일까 궁금해서 사먹어보고도 싶었는데 괜히 돈만 버리는거 아닌가싶어 호박일꺼야 하며 그냥 지나갔다. 안개가 뿌옇게 내려 시야가 안좋은 구간도 지나고 안개가 서리가 되어 길가 식물들에 앉았는지 눈꽃이 핀 풍경도 지나간다. 사마르칸트에 가까워 오자 여러가지 색색의 깃발들이 우릴 반겨준다. 도시 곳곳에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 원색 깃발들이 계속 눈에 띄는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나 환영받는 느낌이라 좋다. 도시 외곽에 낮은 토담같은 것이 이어져있다. 군데군데 동굴처럼 판 곳도 있다. 서울의 몽촌토성 같다고 하자 탄이가 "몽쉘통통이라고?"하며 익살을 떤다. 아.. 먹고싶어졌다. 사마르칸트는 사막의 모래색이 온통 도시를 덮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곳에 사는 몰리라는 20대 청년에게 카우치 요청을 보냈었다. 우리는 시내의 한 커다란 카페에서 만났는데 몰리 덕분에 예상 못한 다른 서퍼들을 한가득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온 마리나, 이란에서 사업차 온 메디, 자전거로 여행중인 중국의 이치까지 완전히 다국적인 모임이다. 국적과 나이와 모든 것이 다르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여행자라는 공통점이 만난지 몇분만에 즐겁게 이야기 나누게 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의기투합한 모두 다 함께 몰리네 집에 갔다. 계획에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갑자기 다 같이 가도 되나 싶었는데 몰리는 방도 많고 음식도 많아 괜찮단다. 몰리는 부모님과 두 동생과 함께 시 외곽의 큰 집에서 살고 있었다. 여럿이 우르르 몰려왔는데도 부모님은 함박웃음으로 반갑게 환영해주셨다. 손님 접대에 열심인 이슬람가정답게 여러가지 음식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고 산더미같은 플롭(볶음밥)이 나오는데 고기와 레몬과 메추리알로 장식된 것이 무지무지 먹음직스럽다. 플롭은 손님 환대에 가장 중요한 음식이라고 한다. 기름진 볶음밥을 별로 안좋아하던 우리도 이곳에서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 중 갑자기 정전이 되었지만 흔히 있는 일인 듯 당황하지 않고 양초를 켜고 계속해서 먹는다. 다행히 곧 불이 다시 들어왔다. 몰리가 우리들을 아버지께 소개하는데 아버님이 러시아어를 하신다고 해서 마리나가 신이났다. 영어, 우즈벡어, 러시아어 등등 여러나라 말이 마구 섞여서 헷갈리고 난리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는 언어가 없어 통역에 난항이 있었지만 다들 유쾌하게 웃으며 어찌어찌 서로를 소개했다. 메디가 "이치는 made in China(중국산)"이라고 소개하자 다들 웃음이 터진다. 몰리의 남동생의 이름을 차홍길이라고 들어서 "어? 한국사람같은 이름이네?"했더니 다시 잘 들어보자 "차흐니르"와 비슷한 발음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차홍길이라고 불렀고 그 친구도 좋아했다. 한국말을 배우고 있으며 한국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우즈벡에서는 한국말을 꽤 잘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남자, 여자 나뉘어 큰 방에 자리를 잡고 부모님이 제공해주신 이부자리를 덮고 푹 잘 잤다. 다음날 몰리네 가족앨범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외국사람의 옛날 앨범을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무척 흥미진진했다. 사진 한장한장이 역사의 증거이며 가족이야기가 들어있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정성스레 주시고 편히 묵게 해주신 가족분들께 몇가지 선물을 했다. 아버님은 특히 핫팩을 신기해 했는데 사용법을 알려드리자 일할 때 사용하면 좋겠다고 마음에 들어하셨다. 약과와 마스크팩 등 별거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정성으로 드렸다. 몰리네 집 마당은 매우 넓은데 한쪽에는 새로 짓고 있는 2층 건물도 있다. 지금 있는 집도 방도 많고 꽤 큰데 취미삼아 천천히 돈생기고 시간날 때마다 짓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층고도 높고 만듦새가 매우 좋다. 혹 다음에 오게되면 이 곳에서 머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몰리네 가족이 모였을때 가족사진을 몇장 찍어드렸다. 산에 가보고 싶다는 마리나의 이야기에 다들 동조하며 갑자기 여행계획을 하게 되었다. 다음날 까브리에 탄이, 시로, 마리나, 몰리, 몰리 남동생, 메디, 이치까지 총 7명이 타고 30분거리의 산으로 향했다. 나도 타봐서 아는데 주행중 캐빈에 있는 것이 승차감도 안좋고 이리저리 흔들려 결코 편하지 않을텐데 다들 젊어서 그런지 다행히 끄떡 없다. 장거리가 아니니 괜찮겠지 싶었다. 매일 둘만 타던 차가 바글바글 시끌벅적 완전 새롭다. 산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등산로를 따라 가볍게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산을 별로 안좋아한다. 그저 이 친구들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에 왔는데 막상 와보니 걷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 20대들의 체력을 못따라가고 기온이 뚝뚝 떨어져 너무 추워서 잘 다녀오라고 하고 차로 돌아가서 기다렸다. 이치와 차홍길은 정상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산에 다녀와서 우리는 메디가 살고있는 집으로 갔다. 차에서 내리는데 다들 머리도 헝클어지고 몰골이 초췌해 보여 걱정이되어 괜찮냐고 물어보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웃는다. 메디는 사업차 사마르칸트에 와있다고 하는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집하나를 통채로 렌트해서 살고있었다. 중정 마당이 있고 방이 여러개 있는 좋은 집이었는데 이미 이치는 방하나를 차지해 손님으로 있었다. 첫날 만났을 때부터 메디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계속해서 졸라댔다. 원하는 만큼 있으라고 인심이 좋다. 메디의 집에 묵은 첫날 마당에 소복이 눈이 쌓였다. 까브리를 안에 주차할 수 있을만큼 마당이 넓다. 그런데 메디의 손님 유치 욕구에 비해 방이며 시설이 따라주질 않았다. 방문의 유리창은 유리 없이 뚫려있고 라디에어터가 고장나 물이 샌 것 같았는데 돈이 있어도 사람이 부족한지 고치는데 여러날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추울까봐 메디는 새 전기히터를 사서 방에 넣어주었는데 우리는 이렇게까지 하며 손님을 데리고 있고싶나 의아했지만 그의 친절을 감사히 받았다. 또 길쪽으로 난 창문은 커튼이 없어 사생활보호가 전혀 안되어 우리차에 있던 흰 천을 가져와 가려야했다. 세탁기는 고장나 있어 쓸 수가 없었고 그래도 부엌에서 가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것은 좋았다. 접이식 작은 자전거 하나로 세계여행한다니.. 존중감이 절로 생겼다 접이식 작은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하다니 게으른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평소 중국사람에 대해 썩 좋은 인상이 없었지만 이치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에 대해 깊은 존중감이 생겼다. 10여년간 호주에서 일을 해서 영어도 꽤 잘하고 자기 삶에 분명한 방향을 갖고 있는듯 했다. 이치는 우리에게 중국식 토마토계란볶음과 가지요리를 해주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우리도 소고기뭇국과 밥을 해서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정전이 되어 차에서 전기를 끌어다 조명을 켰다. 아랍풍의 노래를 틀어놓고 탄이와 메디가 이상한 춤을 춘다. 술을 잘 못마시는 탄과 종교때문에 안마시는 메디. 술도 안 마시고 저러고 노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히터를 사온 날 전기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였을까 정전이 되었고 밤늦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추위에 떨 것을 각오하고 둘이 꼭 안고 자면 죽지는 않을거야 라며 잘 준비를 하고있을때 메디가 간단히 짐을 싸서 나오라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는 호텔을 찾아 우리를 재워주는 것이었다. 이치도 다른 호텔을 잡아주었다고 한다. 아니 돈내고 묵는 손님도 아닌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하다니. 참 이슬람의 손님접대는 대단한 것 같다. 아니 메디만 대단한 것일까. 메디와 꽤 친해진 것 같아 평소 이슬람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너희는 아내를 여러명 가질 수 있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물어봤는데 메디의 대답은 의외로 심각하고 진지했다. 그는 코란을 여러번 읽고 많은 고민과 깊은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코란에 의하면 오직 두가지 이유만으로 아내를 두명 이상 둘 수 있는데 하나는 과부가 생존을 위해 재혼하는 경우, 또 하나는 두명 이상의 여자에게 완전히 똑같이 대할 때라고 한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이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두번째 조항은 하지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대답이 의외였고 참 놀라웠다. 메디는 우리가 만난 첫 이란친구인데 앞으로 다른 이란인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와 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자고 온 다음날도 계속해서 정전과 누수가 발생하자 우리는 미안해하는 메디의 집을 떠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우리때문에 괜한 돈을 자꾸 쓰는 것이 부담되었다. 메디는 집이 부실한 것을 속상해하며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우리를 떠나보내주었다. 메디네 집에서 나와 우리는 시내의 Aishia라는 작은 호텔에서 몇일 더 묵었는데 폭설에 강추위가 와서 실내기온이 16도도 안되었고 이곳도 정전이 되기 일수였지만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맘편히 있을 수 있었다. 한국말을 조금 하시는 친절한 사장님이 계시고 맛있는 조식도 포함되어 있어서 꽤 만족하며 머물 수 있었다. 하루는 관광가이드를 꿈꾸는 몰리의 안내로 유명한 "레기스탄"에 갔다. 레기는 모래, 스탄은 장소라고 한다. 즉 모래땅이라는 의미이다. 이슬람 특유의 정교한 타일로 장식된 탑과 건물들이 무척 이국적이고 멋있었다. 광장 한구석에 무덤이 있는데 이곳을 지을때 큰 역할을 한 일꾼의 무덤이라고 한다. 왕이 그의 공로를 치하해 소원을 묻자 여기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는데 살아서 부와 명예를 마다하고 광장에 묻히기를 선택한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몰리는 좌우의 비슷하게 생긴 건물중 어느쪽이 더 오래되었을까 퀴즈를 냈다. 열심히 관찰하고는 찍었는데 틀렸다. 잘 보면 양식이 다르다고 한다. 몰리 덕분에 좋은 관광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침에 차를 몰고 나와보니 이럴수가! 앞유리에 금이 가있다. 최근 큰 충격을 받거나 위험한 곳에 둔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전에 키르기스에서 하도 금간유리로 다니는 차가 많아 유리를 갈지 않고 때우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분명 이곳에서도 해주는 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보기로 했다. 사마르칸트의 현대자동차매장을 우선 찾아갔다. 영업소 대표님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더니 이곳저곳에 전화하며 알아봐주셨다. 돈내는 손님도 아닌데 이렇게 친절하시다니 참 감사했다. 사마르칸트에 있는 동안 밥먹으러 오라고도 하셨다. 소개받은 곳을 찾아가니 말은 안통해도 손짓과 깨진 유리창을 보고 의사소통이 된다. 젊은 청년이 유리창 크랙 진행방향 앞쪽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주사기로 무언가를 넣어 메우는 것 같다. 완전히 굳을때까지 한동안 히터를 쓰지 말것을 당부했다. 앞유리 금이 점점 커지는 것이 불안했는데 이제 안심이다.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여러나라의 친구들과의 좋은 기억을 뒤로하고 부하라로 출발했다.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youtu.be/G85qdMHDuHM?si=iKCbW47_29vK5aVG>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7-25 13:04:10[파이낸셜뉴스] 힘찬병원은 지난 25일 인천힘찬종합병원 대강당에서 개원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고 28일 밝혔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수찬 대표원장과 상원의료재단 박혜영 이사장, 김봉옥 인천힘찬종합병원장을 비롯해 차준택 인천부평구청장, 조은행 인천 남동구보건소장, 이광래 인천시의사회장, 정성우 대한병원협회 인천시병원회장 등 내외빈과 임직원 150여 명이 참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샤르자대학병원 힘찬 관절·척추 센터 박승준 센터장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힘찬 하야토브 에르킨 병원장은 영상으로 축하를 전했다. 이 대표원장은 “20년간 성장과 발전을 해 온 힘찬병원은 앞으로의 20년도 더 좋은 치료 환경에서 더 나은 치료법으로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마음은 변함없다”라고 강조했다. 힘찬병원은 개원 20주년을 기념해 ‘The Himchan 2022’를 슬로건으로 직원들이 동참하는 사회 공헌 캠페인 ‘힘찬 걸음 착한 걷기’를 1월부터 진행했다. 걸음 수 측정 앱을 통해 직원들의 총 걸음 수를 측정해 기부금을 조성, 지역 사회에 전달하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지난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된 걸음 수는 총 13억 9217만 4322보다.측정된 직원들의 걸음을 100보당 1원으로 환산한 금액을 포함한 총 6000만원을 병원 소재지인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2022-11-28 17:55:08[파이낸셜뉴스] 하나투어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중앙아시아 3개국 여행상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중앙아시아는 아직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게 대중적인 곳은 아니지만 동서양 교역의 거점으로 실크로드의 역사와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여행지다. 이에 하나투어는 중앙아시아 여행 기획전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매력과 새로운 여행상품을 소개한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중앙아시아는 현재 무비자, 무격리 입국이 가능하고 비행시간이 7시간 내외로 비교적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올 가을에는 청정여행지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즈베키스탄 5일' 상품은 중앙아시아의 중심 타슈켄트를 비롯해 실크로드 고대 도시 사마르칸트,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부하라 역사지구 등을 방문한다. '우즈베키스탄 9일'은 시간이 멈춘 듯한 히바 고성 내 숙박 일정과 유목민들의 전통 거주공간인 유르트 캠프, 실크로드 도예공방 체험 등 우즈베키스탄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5일'은 알마티 시내관광은 물론, 중앙아시아의 알프스인 '침블락',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리는 '차른 캐니언'을 둘러보는 상품으로 4인 이상 예약하면 출발이 확정된다. '키르기스스탄 6일'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식쿨 호수, 유목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스묘나스꼬예 계곡을 관광하고 만년설산 알라아르차 국립공원 하이킹, 노천온천 등을 즐길 수 있다. 하나투어는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6일', '중앙아시아 10일' 등 중앙아시아 2~3개국 상품도 선보이고 있으며, 상품에 따라 글램핑, 송어낚시 등 지역별 이색 체험 일정도 포함하고 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2022-08-04 10:17:59포스코인터내셔널 주시보 사장(사진)이 코로나19로 중단됐던 글로벌 공급망 점검활동을 재개하며 투자법인 챙기기에 나섰다. 12일 포스코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주 사장은 지난 9~12일 나흘간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물류 공급망을 점검하고, 보자로브 하이바예비치 페르가나 주지사를 만나 원면 클러스터 조성 관련 현안을 논의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6대 면화 수출국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은 1996년 현지에 방적공장 설립을 시작으로 페르가나 및 부하라 지역에 총 5개의 방적 및 제직공장을 운영하며 우즈베키스탄 내 최대 면방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지난해 3700만달러(약 47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인도네시아 팜사업과 함께 대표적 투자사업으로 평가된다.포스코인터내셔널은 면방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원면 재배가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 3월 법인 사업장 인근인 페르가나주 예자본 지역에 5210㏊(서울 여의도 면적의 18배)의 원면 재배면적을 확보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에 따라 원면 생산에서부터 방적·제직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주 사장은 페르가나 주지사와의 면담에서 "면방 클러스터 조성, 친환경인증 획득으로 우즈베키스탄의 면방사업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며 "현지 지역사회와 동반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2022-05-12 18:2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