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북한이 미국 대선을 닷새 앞둔 10월 31일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지난 9월 18일 이후 43일 만이다. 당시 북한은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탄두가 4.5t에 달하는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화성포-11다-4.5'와 순항미사일(SRBM) 여러발을 섞어 발사한 바 있다. 국방 전문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재개 의미에 대해 우선 이번 탄도미사일 도발은 SCM 직후라는 점에서 한미의 대북공조에 대한 반발이라는 기본공식이 반복된 것이라며 쓰레기 풍선 도발이 지속되는 가운데 핵탄두 탑재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선 것은 복합도발 능력을 현시하려는 속내도 있다고 분석했다. 고각 발사된 탄도미사일 ICBM 관측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07시 10분경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군은 이날 북한이 쏜 탄도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된 장거리탄도미사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은 경계태세를 격상한 가운데, 미 일 당국과 '北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를 긴밀하게 공유하면서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미 국방장관은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한보협의회의(SCM)을 개최하고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해 '한목소리로 가장 강력히 규탄'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성명 발표 직후에 장거리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북한의 ICBM 발사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규탄하는 한미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한편, 러시아에 향해있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이 ICBM 도발을 한 것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18일 ICBM 화성-18형을 발사한 지 10개월 만이다.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을 희석 포석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본지에 "현재는 두 개의 전선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지점도 도드라진다"고 짚었다. 북한이 과거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전선이라는 1개의 전선이라는 역학이었지만, 북한군이 유라시아 전장에 파병되면서 현재 2개의 전선이 가동 중이다. SCM에서도 북한군의 파병을 규탄한 상황이다. 2개 전선에서 보면 우선 이번 탄도미사일 발사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한반도 전장으로 관심을 돌려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을 희석시키려는 포석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 교수는 "두 개 전선을 저울질하려는 지략도 있다. 유라시아 전선은 열전지대이고, 한반도 전선은 냉전지대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 북한이 이번 탄도미사일 도발을 통해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한반도도 열전지대로 바뀔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만약 이번 탄도미사일이 ICBM이라면 이 두 전선에 더해서 미국도 북한의 핵무기 전선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경고를 통해 NCG 흔들기에 나섰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셈법을 염두에 두고 북한군 파병 문제의 심각성이 희석되지 않도록 유라시아 전선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이와 동시에 한반도 전선에서 평시 억제력 강화를 위한 조치를 이어가야 할 것" 이라고 제언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10-31 08:37:05[파이낸셜뉴스] 최근 격화되는 중동 정세와 북한군의 러시아 전쟁 파병이라는 두 개의 '글로벌 전쟁 이슈'로 인해 국제 정세가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선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에 의한 하마스·헤즈볼라 수장의 잇따른 제거와 '저항의 축' 지도부 와해 작전에 이어 이스라엘이 한 차례 유보했던 이란에 보복 기습 공습에 나서면서 시시각각 격화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대규모 러시아 파병이 기정사실화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자까지 러시아에 파견하면서 실질적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모양새가 국제 질서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북한군의 러시아 전쟁 파병 이후 유럽에선 '우크라이나 파병' 주장이 역(逆) 도미노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한미일도 북한군이 러시아 용병으로 우크라이나 전장 투입이 미치는 영향 분석과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검토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 등 안보라인에선 향후 전개되는 변화에 맞춰 그동안 배제됐던 살상무기 지원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안보 정세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미국 대선이 내달 5일(현지시간)로 바짝 다가오면서 글로벌 안보정세와 맞물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지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진단해 본다. ■중동전, 이스라엘 막강 전투력은 '경제력'이 바탕 격화되고 있는 중동정세가 심상치 않다. 이스라엘이 지난 26일 새벽(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공습했다. 지난 1일 이란이 탄도 미사일 200을 발사 공격한 것에 대응해 보복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 시설을 정밀 기습 직전에 여러 루트를 통해 이란에 표적을 미리 알려줘서 공격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 차례에 걸친 공격은 100여대의 무인기와 전투기가 투입됐고 이란 내 20개의 군사시설을 공격했다고 알려졌다. 이란이 자국 영토에 군사적 타격을 받은 건 이라크와의 전쟁 이후 30여년 만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다시 보복해 이스라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면 더 중대한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이란은 폭격 피해는 제한적이라면서도 즉각 보복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보여줬던 막강한 전투력은 우선 주변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는 경제 규모에 있다는 지적이다. 2023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국가 GDP(국내총생산)는 5640억달러인 반면 유엔 추정 하마스의 기반이 되는 가자 지구의 GDP는 20억달러에 불과했다. 헤즈볼라의 기반이 되는 레바논 시아파의 GDP도 68억달러 정도로 추정돼 각각 약 282배, 83배 정도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더해 미국의 막강한 군사와 경제원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주변 국가 대비 훨씬 더 강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대결 국면은 이와는 차이가 있다. 영국의 외교분야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GDP는 이스라엘이 5250억달러인데 비해 이란은 4130억달러였다. 국방비는 이란 74억달러에 비해 이스라엘은 190억달러로 이스라엘이 2.6매 많았다. 다만 이스라엘은 인구 960만명에 비해 이란은 8860만명으로 차이가 커 장기전에 나서면 이스라엘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北 러시아 파병..지정학 경계·공간 넘은 안보위기 북한의 러시아 대규모 용병 파병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선 우크라이나에 서방진영의 지상군 파병 논의도 재점화되고 있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 가브리엘리우스 란츠베르기스가 지난 21일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보낸 논평에서 북한 병력과 탄약이 러시아 군대에 보급된다는 정보가 확인되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지상군 투입 제안을 제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와 발트삼국 등 러시아와 인접한 유럽 국가들도 유사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지원 회의에서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언급하고 이후에도 파병의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2월엔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스웨덴 등은 파병에 반대했지만, 이번엔 다른 움직임이다. 다만 독일과 대선을 앞둔 미국은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도 파병 등에 대해선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군이 러시아로 파견돼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될지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첨단 군사 기술을 이전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방 외교 안보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추진잠수함, 군사 정찰위성 개발에 필요한 기술 이전 가능성과 특히 북한 병력이 러-우 전쟁에 참전을 통한 실전 경험 축적이 재래식 전력 측면에서 한국 안보에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러-우 전쟁으로 지구촌은 특정 지역에 머물지 않는 지정학 경계·공간을 넘어 융합 기제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군의 러-우 전장에 용병 파병은 한국 등 유사입장국의 대리전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의 정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반 센터장은 이어 북한군 파병이 러시아 레드라인 넘은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묵인은 북러의 행태를 인정해 우리에 안보에도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역효과가 파생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장 정교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한반도가 북중러의 군사 외교적 압박과 대리전 지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결정적 전환기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 센터장은 또 "한국은 유사입장국과 규탄성명 등을 주도하며 국제사회에 북한군 파병의 불법성과 성격규정 명확히 해야 한다"며 "다국적 정보팀 구성을 통한 정보공유와 파병 북한군의 모니터링을 강화해 북러의 의도와 목표를 저지하는 유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이를 계기로 대(對)러시아 레버리지 제고 기회로 활용하고, 한반도의 대리전 전장화 우려를 원천차단하는 지략수립도 필요하다고 반 센터장은 제언했다. ■美대선 후 韓 안보 생존전략은 동맹강화와 자강 내달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도 한반도 안보 이슈와 직결돼 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이 냉전 초기보다는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상황과 유사하다고 짚었다. 냉전 초기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 적극 개입하며 자유주의 진영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당시 과도한 국력 소모로 인해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이 점차 고조됐다. 결국 미국은 국력 투사를 축소하기 시작해 1970년대 닉슨 독트린 하에 주한미군 감축과 베트남 철수,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이러한 기조는 민주당 카터 행정부로 이어져, 1979년 미국은 대만과 일방적으로 단교하고 미국-대만 방위조약을 폐기하며 중국과 수교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우방국과의 사전 협의는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고 손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의 모습은 이 같은 대외정책 전환을 추진하기 직전 시점의 미국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2016년 대선 이후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면서 대외 개입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 간 공유되던 자유 국제주의에 대한 합의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봤다. 최근 트럼프 진영에선 한국이 바이든 행정부와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조기에 타결한 사실에 대해 불쾌해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최근 동맹의 가치를 의문시하고 때로는 동맹국에 강압적인 태도와 행보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 다수가 이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사회의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방증이라는 얘기다. 손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미국 대외 정책에서 거래적(transactional) 성향이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가 당선될 경우 방위비 협정을 파기하고 한국에 더 많은 분담금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되는 한미일 간 안보 협력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반면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와 유사한 외교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을 중시하는 기조는 이어질 것이지만, 민주당 역시 미국 사회 내 대외 군사 개입에 대한 반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손 교수는 전망했다. 그는 또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었음에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았고, 바이든 행정부도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에 그친 사례는 이러한 경향을 보여준다고 부연했다. 국제관계론과 국제정치경제학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긴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길핀(Robert Gilpin)은 쇠퇴하는 패권국이 점차 약탈적(predatory) 외교 정책을 추구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미국이 과연 쇠퇴하고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만약 미국 패권이 쇠퇴하는 중이라면 한국의 외교적 운신의 폭은 크게 제약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손 교수는 진영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은 과거 냉전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등 우방국과의 안보 협력을 적극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로서 한국에 가장 중요한 최선의 선택지는 미국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 외교·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하고 동시에 자주적 방위 능력을 확충하는 노력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결국 가장 확실한 길은 '자강'이라고 강조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10-27 15:51:30[파이낸셜뉴스]딥페이크 성범죄 공포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경찰이 특별 단속을 선언하고 일주일 도 안돼 100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됐다. 그럼에도 최근 3년 간 검거율은 50%에 불과하고 구속인원이 5% 미만이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내용이 유포되고 있는 텔레그램을 방조 혐의로 내사하고 있다. 4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118건 접수됐고 이 중 피의자 33명을 특정했다. 특정된 피의자 가운데 10대가 31명이다. 경찰은 이 중 10대 6명을 포함한 7명을 검거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28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7개월간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특별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딥페이크 집중 단속 이후 100건 이상의 신고 건수가 몰린 셈이다. 경찰은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자동 생성하는 텔레그램 프로그램(봇) 8개를 입건 전 조사 중이다. '겹지인방' 등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합성물을 만든 뒤 유포하는 텔레그램 단체방도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딥페이크 봇을 만든 제작자에는 범행 공모 및 방조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할 계획이다. 경찰은 성착취물이 유통되는 텔레그램 메신저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 방조 혐의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며 “프랑스 수사 당국이나 각종 국제기구 등과 텔레그램 수사를 공조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출신인 두로프는 이미 지난달 24일 프랑스 파리에서 온라인 성범죄 등을 방조, 공모한 혐의로 현지 검찰에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경찰은 일단 내사를 해둔 후 텔레그램 관계자가 한국에 입국하면 체포하거나,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텔레그램 지사나 서버가 없기 때문에 나온 차선책이란 평가가 나온다. 텔레그램 본사는 처음에 독일에 설립됐으나 이후 영국 런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의 자료가 저장된 서버 역시 여러 국가를 옮겨 다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직 텔레그램 본사나 서버, 관련자들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성착취물에 대한 처벌은 미비했다. 지난 3년간 사이버 공간에서 아동성착취물과 불법촬영물 등을 유포해 붙잡힌 가해자 수가 7530명에 달했으나 구속률은 5%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21년부터 작년까지 집계된 사이버 성폭력(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불법촬영물 등을 유포 등) 발생 건수는 9864건이다. 검거된 인원은 7530명이다. 범죄 유형별로 살펴보면 아동성착취물이 3295명(43.8%)으로 가장 많았고 불법촬영물 2415명(32.1%), 불법성영상물 1563명(20.8%), 허위영상물(딥페이크) 257명(3.4%) 순이다. 검거된 피의자 중 구속된 비율은 5.5%(412명)에 불과했다. 최근 여성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유포하는 딥페이크 성 착취물 범죄가 논란이 된 가운데 허위영상물 범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허위영상물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에서 지난해 180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검거 인원은 79명, 78명에서 100명으로 증가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텔레그램 측은 핫라인 구축을 시사했다. 텔레그램은 지난 3일 동아시아 지역 관계자의 공식 이메일 서한을 방심위에 보내 "최근 한국 당국이 저희 플랫폼에서 불법 콘텐츠를 다루는데(with handling illicit content on our platform)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알게 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한국 당국으로부터 접수된 신고를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었기에 현재와 같은 상황 전개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양측 간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면 사과한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 사용자들에게 텔레그램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방심위와 신뢰관계 구축을 희망한다"라고 소통할 의지를 드러냈다. 텔레그램 측은 방심위의 기존 텔레그램 이메일이 신고한 콘텐츠가 삭제됐는지 즉각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새로운 전용 이메일을 공개했다. 텔레그램이 모두 삭제했다고 밝혀온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은 지난 1일 방심위가 긴급하다고 판단해 신속히 요구한 것으로 25건에 이른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2024-09-04 15:27:46[파이낸셜뉴스] 북한 관영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새 유도체계를 적용한 '갱신형' 240㎜ 방사포(다연장로켓포)검수시험사격을 진행했다고 28일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국방공업기업소들이 생산한 240㎜ 방사포무기체계의 검수시험사격을 참관했다. 북한의 240㎜ 방사포는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로 '수도권 불바다' 위협 때 거론되는 무기체계다. 북한의 갱신형이라는 표현은 성능개량,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날 북한 매체에 공개된 검수시험사격 사진을 보면 기존 240㎜ 방사포와 달리 꼬리부위에 조종날개 형상이 관측된다. 통신은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자 중앙위 비서, 조춘룡 당 중앙위 비서, 리영길 총참모장, 김정식 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용환 국방과학원 원장, 인민군 대연합부대장들이 대거 참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기동성과 타격집중성에서 기술갱신"된 것이라면서,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이번 시험사격에서 "또다시 새로 도입된 유도체계와 조정성, 파괴위력 등 모든 지표들에서 우월성이 입증되었다"고 설명했다. 국방 외교·안보 전문가는 북한이 한미연합에 대한 반발과 전시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전쟁수행능력을 과시하면서 러시아에 수출·공급을 통해 필요한 기술을 제공받고자 하는 복합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짚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선에 122㎜ 방사포를 공급한 것이 확인됐으며 240㎜도 공급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 2월 국방과학원이 유도 기능을 갖춘 신형 240㎜ 방사포탄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며, 4월 1차 검수사격을 거쳐 5월에는 "기동성과 화력집중력이 높은" 갱신형 방사포 무기에 '자동사격종합지휘체계'를 도입했으며 2024~2026년에 일선 부대에 교체배치한다고 공개한 바 있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본지에 "이번 검수사격을 진행은 △전력화 개시 △UFS 연습 연계 개전초 한국군 인프라 타격 능력 제고 과시 △무기수출이라는 3가지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사격은 계획된 일정에 따라 시험개발을 차질없이 진행해 전력화를 앞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미연합에 대한 반발과 전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전쟁수행능력 과시 차원"이라며 "북한군의 방사포는 대량발사로 모두 요격하는 것이 까다로우며, 신형 240mm 방사포는 유도기능 장착으로 정밀타격이 가능해 개전초에 공세적으로 운용하면 한국군의 전쟁수행능력을 마비시킬 수있다"고 설명했다. 반 센터장은 "러북 신동맹 구축의 후속조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유라시아 전장에서 운용 가능한 무기체계를 식별하는 차원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군사작전에 나선 가운데 푸틴의 입지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신형무기 제공을 통해 푸틴을 돕고 이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전략무기를 제공받는 레버리지를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신형 방사포 전력화 임박은 한국형 3축 체계에서 킬체인(Kill Chain)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군사적으로 킬체인의 능력 제고와 함께 이를 실제로 시행할 수 있는 결정지점(Decicion Point)에 대한 숙달을 통해 억제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형 240mm 방사포가 러시아군으로 흘러 들어가면 국제사회와 연대해 이러한 행동의 불법성에 대해 공동성명을 통해 규탄하고 제재 등 보다 실제적인 대책도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8-28 12:23:39[파이낸셜뉴스] 북한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주(州)를 공격한 것을 놓고 '미국과 그 추종 세력이 배후에 있는 테러 행위'라고 규정하며 러시아를 두둔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최근 북러간 미사일 등 군사기술 교류가 대폭 강화되면서 어느때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데 따른 것으로, 이번 우크라이나 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는 있는 러시아측 입장을 동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다. 北 우크라 러시아 본토 공격 집중 비난..美 배후 의심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8일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한 담화에서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서방의 조종과 지원 밑에 러시아 영토에 대한 무장 공격"을 감행했다며 이는 "용납 못 할 침략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 액수의 살인 장비들을 쥐여주며 반(反)러시아 대리전쟁을 치르느라 전 지구적인 안전 환경을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의 문어구(문어귀)로 떠밀고 있다"며 "도발자들은 응당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쿠르스크 전장에서 미국과 서방에서 만든 각종 중장비가 발견됐다고 한 뒤 "전 유럽영토를 새로운 전면전에 몰아넣을 수 있는 이번 사태 발생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에게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며 부쩍 가까워졌으며, 지난 6월엔 러시아와 군사 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며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 이에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진격에 대해 러시아군의 대응은 푸틴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북한에게 러시아의 위기는 전략 기술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 호기라고 짚었다. 러시아 정부가 푸틴 대통령의 절대권력 유지에 흠집될 수 있는 이번 충격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하는 상황에서 북한과 벨라루스와 같은 외부의 지원이 있다면 이를 통한 전열 재정비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은 대러 레버리지 제고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곤경에 처한 러 두둔하는 레버리지 높이기용?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도와주는 국가는 그만큼 레버리지가 높아진다는 점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며 "러북 신동맹 수립 후 후속조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러시아 두둔은 북한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푸틴에게 김정은 자신을 각인시켜 레버리지를 높이려는 속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이 러시아에게 전략기술을 받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북한이 러시아 두둔을 통해 노리는 것은 대러 레버리지 제고와 이 같은 목표달성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 센터장은 "나아가 북한이 자신의 무기를 수출할 수 있는 명분을 쌓고 자신이 테러에 대응하는 합법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호도하는 전법을 구사하려는 속내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북한제 탄도미사일로 보이는 무기를 러시아가 키이우에 발사한 것은 이러한 발언을 전장의 전술로 현장화하고 있는 증거라는 얘기다. 그는 북한 내부적으로 홍수로 피해가 큰 상황에서 북한이 러시아 위기상황을 언급함으로써 국내위기에 대한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위기에 처한 러시아를 도와야 한다는 의식과 결기를 끌어올려 내부의 도전을 돌파하려는 셈법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반 센터장은 "북한은 신냉전을 역이용하는 전략을 점차 고도화하고 있다"며 "이러한 셈법이 작동되지 않도록 북한 무기수출의 불법성,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 등 팩트를 정확히 알리고 나아가 이를 확신시킬 수 있도록 유사입장국과 규탄 공동성명을 가속화해야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8-20 15:47:05[파이낸셜뉴스] 전쟁은 국제정치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치는 변곡점으로 작용해 왔다. 안보 아키텍처는 전쟁의 결과였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목도한 인류가 반성과 성찰로 평화와 안보를 지켜내기 위한 후속조치에 나선 결과이기도 하다. 1914∼1918년간 치러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약 1000만명이 목숨을 잃고 약 2000만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끔찍한 재앙에 직면하자 인류는 재발방지를 위해 1919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을 설립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이 유럽의 세력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한 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의 구조적 근원이 유럽으로 인식되었고 이를 반영하듯 본부는 유럽의 스위스 제네바에 두게 된다. 세계평화를 이루어내고자 국제연맹에 적용한 공식은 개념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집단안보 개념을 공식에 담았고 동시에 군축을 통해 무기 사용을 통제하는 구도도 공식에 반영하고자 했다. 하지만 국제연맹은 공허한 메아리로 되고 만다. 국제연맹을 전면에서 제창한 지도자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미국은 국제연맹에 참여하지 않는 등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강대국과는 거리가 있는 국제기구라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러던 중 전쟁은 또 다른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은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이다. 1945년까지 지속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약 7500만명 사망이 추정될 정도로 극단적인 비극에 직면하자 인류는 다시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된다. 이에 국제연맹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지고 이를 대체할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이 1945년 비준된 후 1946년 국제연맹을 대체하는 새로운 국제기구가 된다. 이로써 국제안보 아키텍처 뉴욕 본부 시대가 시작된다. 한편 지금의 국제정치를 지정학의 부활 혹은 강대국 정치의 귀환이라 규정하며 과도기 국제질서로 인한 도전에 주목하는 상황이다. 이 도전 중에서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유명무실화가 가장 심대한 상황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작동정지의 주범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는 주권국인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했고, 2024년 3월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국제 규칙·규범 작동을 정지시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 19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하며 기존의 국제안보 아키텍처를 심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불법거래로 점철되는 북러조약은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군사적 긴장을 높일 뿐 아니라 러시아를 한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 규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안보지형을 크게 흔드는 사안이다. 따라서 러시아의 행보는 한반도 안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기에 위태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는 단지 한반도 안보 위기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국제안보를 지탱하던 국제기구가 약화되면 억제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대규모 전쟁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제연맹이 제구실이 못하는 약한 지반은 독일과 같은 침략국에 전쟁이라는 오판하도록 조장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에 직면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안보를 지탱해 온 유엔이 약화되고 나아가 이를 방치하면 인류는 대규모 전쟁이라는 블랙홀로 또다시 내몰릴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러시아의 행보를 보면 상황이 이러한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강대국이 참가하지 않는 국제연맹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유엔은 상임이사국에게 거부권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면서까지 강대국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책임 있는 역할은커녕 그 지위를 침략전쟁 등에 악용하여 전 세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유엔 출범 80주년이 목전으로 다가온 지금 승전 강대국에게 부여했던 거부권이 되레 국제안보에 독이 되고 있다. 물론 거부권이라는 국제정치 권력을 누려온 러시아이기에 이러한 지위를 버리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규칙위반 행보는 유엔 안보리 해체를 원해서가 아니라 되레 그 반대로 국제정치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행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러시아의 행보는 국제안보의 보루로 80여년간 작동해온 유엔을 위태롭게 하고 이는 또 다른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북러 불법거래를 지역적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심각한 사안으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제정치가 전쟁의 블랙홀로 빨려들지 않도록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작동을 정상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러거래의 불법성을 명확히 규정하고 제재 강화 등을 통해 규칙위반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공식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유사입장국이 보다 결속력을 높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도록 지원 수준을 한층 높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과도기 국제질서 시기에 유엔 대체 기능 효과를 유도하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만약 러시아가 승리라도 거머쥔다면 이는 유엔 안보리 기능 정지이자 규칙기반 질서 와해의 서막이 될 것이다. 침략국의 승리는 전쟁의 끝이 아니라 전쟁의 시대 도래라는 재앙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러시아와 북한이 손을 잡으면서 한국은 국제안보의 직접적인 당사국이 되었다. 한국은 북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도전을 지역적 차원이 아닌 국제적 사안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주도국으로서 이 문제에 대처하도록 획기적인 정책적 진화가 필요할 것이다. 정리=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4-06-25 15:39:24우리나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됐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총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서 한국은 180개 나라의 찬성표를 얻어 2024∼2025년 2년 임기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1996∼1997년, 2013∼2014년에 이어 3번째 임기를 수행하게 됐다. 안보리는 상임이사국 5개국과 대륙별로 할당된 비상임이사국 10개국으로 구성되며 전 세계 평화·안전 유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안보리는 경제제재 부과나 무력사용 승인과 같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진 유일한 기구이기도 하다. 평화유지군 활동, 유엔 회원국 가입 추천, 유엔사무총장 임명 추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 선출 역할도 맡는다. 한국은 순서에 따라 내년 6월 한 달간 유엔 의장국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글로벌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번 비상임이사국 진출로 한국은 유엔 분담금 세계 9위의 위상에 걸맞은 반열에 올라섰다. 외교적 지평을 넓히고 '글로벌 중추국가'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핵이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하는 한·미·일 3각 공조에 한층 더 힘이 실릴 터이다. 한국은 안보리에서 미국·일본 등 자유진영과 함께 북한의 핵 위협과 주민에 대한 인권탄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 등에 대한 국제적 대응에 주도적으로 나설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3국이 27년 만에 안보리 이사국으로 활동하는 삼각 안보체제가 성립된 것에도 의미를 둘 수 있다. 미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고,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은 내년까지 비상임이사국을 맡고 있다.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을 앞둔 시점에서 한미, 미·일, 한일 간 쌍방 안보동맹을 바탕으로 한 3각 공조는 북핵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이 가진 거부권을 남용해 제동을 거는 바람에 북핵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공동대응을 하지 못해 '식물 안보리'라는 말이 나돌았다. 유명무실 상태라는 지적을 받을만 했다. 내년부터 한반도 문제 당사국인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북한 관련 결의, 의장성명 문안 작성을 주도하며 북한 도발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2023-06-07 18:18:49기업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애가 타들어간다. 재고가 쌓여가고 자금사정이 나빠져 언제 부도를 낼지 모를 만큼 경제상황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23일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악화되는 경영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달 모든 산업의 업황BSI(실적)는 75로, 10월보다 1p 내렸다. 2020년 12월(75) 이후 1년11개월 만에 최저치다. BSI는 기업가의 경영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기업 체감경기 악화는 소비심리 위축, 주택경기 둔화의 영향이 크다. 특히 비제조업 업황BSI가 전월보다 3p 하락한 76이었다. 도소매업(75), 사업지원·임대서비스(77), 건설업(64) 등이 나빴다. 나빠지는 지표는 비단 BSI뿐만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2일 우리나라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1.8%로 낮춰 잡았다. 물가상승과 고금리에 소비가 줄어들고, 반도체 경기 하락 등으로 수출이 감소하는 경제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일부 재벌그룹까지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릴 만큼 경제가 백척간두에 선 모습이다. 엄중한 현실은 아랑곳없이 거대노조들은 물류망을 시작으로 릴레이 파업에 나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다. 24일 화물노조에 이어 25일 학교 비정규직 노조, 30일 서울지하철 노조, 12월 2일 철도노조 등이 줄줄이 총파업을 예고해 놓고 있다. 물류마비가 경제를 얼마나 멍들게 하는지는 지난 6월 화물노조의 파업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당시 피해 규모가 무려 2조원이었다. 파업엔 시기와 명분이 필요하다. 파업을 주도하는 민주노총의 민영화 반대, '노란봉투법' 통과 등의 주장은 국민안전이라는 구호와는 동떨어진 정치적 성격이 다분하다. 나라와 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절체절명의 위기 국면임을 망각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모두 고통을 분담해도 헤쳐나가기 힘든 때다. 기득권 노조의 극단적 투쟁은 국민의 동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민생을 빙자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는 파업은 당장 철회함이 마땅하다. 이 판국에 정쟁으로 날을 새우고 있는 국회나 조정능력을 상실한 정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야당 대표는 위헌성이 짙은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는 등 파업을 부추기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국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이중적 행태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 것을 알기나 하는 건가. 정부의 태도는 말로만 엄중했지 실제로는 뜨뜻미지근했다. 협상과 조정이 불가능하다면 엄정한 대처로 파업의 폭주를 어떻게든 멈추도록 해야 한다. 파업에 불법성이 있다면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 다스리기 바란다.
2022-11-23 19:44:49[파이낸셜뉴스] '회색지대전략(Gray Zone Strategy)'의 구사는 상대방이 전략의 의도·동기 자체를 모호하고 헛갈리게 한다. ‘회색지대전략’은 일종의 속임수다. 하지만 본래 전쟁에서 전략 전술의 본질은 위계(a deceptive plan)다. 상대에게 오인∙착각∙인지를 못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정의인 셈이다. 불법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힘은 곧 정의인 국제 사회에선 심판도 경찰도 없다. 국익이 최고의 가치이자 선(善)인 것이다. 이에 국가이익은 오직 과정보다는 결과를 가지고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색지대전략에 관련해선 오직 유용성을 거론할 뿐 불법성이나 비도덕성 등은 거론되지 않는다. 또한 회색지대전략과 관련해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전략에 대한 마땅한 대응전략의 모색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독을 느끼지 못하도록 임계점까지 적에게 아주 조금씩(Slicing) 주입하는 방식, 급소에 칼날을 아주 조금씩 밀어 넣는 식이다. 의도와 목적을 간파했을 땐 사전 대응책이 없으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회색지대전략은 야금야금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해 상대의 적절한 반응이나 대응을 못 하도록 옮아 메는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러, 우크라 동부 돈바스 내 친러 2개 공화국 '주권 승인' 형식 군대 진입...크림반도 병합 때보다 고도화 '회색지대' 전략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 공세를 가하는 가운데 21일에는 돈바스 지역 내 친러 2개 공화국에 대한 주권 승인 후 러시아군까지 진입시키면서 회색지대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구사하는 전략과 본질에서 닮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길주 인하대학교 국제관계연구소 안보연구센터장은 "회색지대는 대규모 전투가 치러지는 ‘전쟁’의 국면도 아니지만 온전한 ‘평화’하고도 거리가 먼 ‘모호한 중간지대’의 속성을 역이용하는 전략→공세→강압 차원에서 분석되는 개념"이라며 "이번 러시아군의 돈바스 지역 진입은 ’크림반도 합병'을 한 당시보다 더 정교화된 회색지대전략 공세의 속성이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군사력을 직접적 동원해 싸우지 않고 크림반도 내 친러시아계 주민을 포섭한 후 ‘러시아 귀속’ 찬성에 투표하도록 종용하는 방식으로 전형적인 '회색지대전략'을 활용한 바 있다. 반 센터장은 "이번에도 러시아는 동부 돈바스 지역 내 친러시아 세력이 세운 자칭 독립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한 뒤 러시아군의 진입을 명령했다"며 "돈바스 지역을 무력공격이 아닌 ‘주권 승인’이라는 방식을 채택, 역내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군대를 진입시켰다"고 설명했다. 크림반도 합병 때와 유사한 '회색지대전략'을 구사해 '민스크 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단독으로 이러한 결정을 할 권한이 없음에도 자연스레 권한을 행사하는 구도를 만드는 전법을 사용한 셈이라는 해석이다. 이어 반 센터장은 "러시아는 군사력을 투입하면서도 전쟁이 아니라 평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회색지대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러시아는 돈바스 지역으로 자군을 진입시키면서 자신을 '평화유지군'이라고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우호·협력·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이전까지 자신이 평화유지군으로 활동을 하겠다는 여론전·심리전·법률전이 포함된 회색지대 공세의 전형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가 준수하지 않아 이제 종료됐다"고 선언했다고 22일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민스크 협정'은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의 돈바스 지역 '교전 중단을 위한 협정'으로 2014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로 맺은 정전 협정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아, 지난 8년간 약 1만4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올 7차례 미사일 도발, 한·미의 적극적 군사 대응 회피 핵 완성 고도화 달성.. 고도화된 '회색지대' 전략 구사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10월 11일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며 "그 누구도 다칠 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 나가는 것은 우리 당의 드팀 없는 최중대 정책이고 목표이며 드팀 없는 의지”라고 말했다고 다음날인 12일 노동신문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올 초 1월에만 7차례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이 한·미의 적극적인 군사 대응 위험은 회피하면서 자신의 핵 완성·핵 고도화라는 이익 달성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미는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북한은 협상의 레버리지 확보를 위한 유엔 제재 완화, 한미·미일 연합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 주장 등 동맹의 균열 조장을 통한 한반도의 제한된 현상타파를 지속해서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지 않는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이를 지속해서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 정부 모두 북한과의 대화와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각 정부의 중요한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에 대해 공약을 함으로써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큰 정치적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두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조심스러운 대응과 연합훈련은 실기동(FTX) 없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으로 대치해 동맹 간의 갈등을 빚는 듯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가 평화유지군을 빙자해 돈바스 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러시아의 회색지대 공세 묵인 하에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회색지대 공세를 ‘흑백지대’로 상쇄, 전환하는 미국과 나토의 대응 의지와 역량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서방세력, 미국과 나토가 대러시아 우크라이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중국과 북한도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동북아·한반도에서 도발 수위를 한층 높여 한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증가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북한은 역사적·전통적으로 전 세계에서 회색지대전략의 구사에서 가장 뛰어난 집단으로 상황에 따라 시기를 조절하며 한반도에서 모라토리엄 파기, 레드라인을 넘는 ICMB 혹은 MRBM·SRBM·SLBM 등 고·중강도 혹은 중·저강도 도발을 옵션으로 상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한·미 동맹이 북한의 '회색지대 전략'을 통한 한반도 병합 시도를 막으려면 명확한 공통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한 임계점의 설정과 대응을 위한 억지 위협 이행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정치적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상황을 조성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美 CSIS 부국장 "北 한국 초기 생화학무기 제압 미·일 참전 저지 실전 능력 구현" MRV 초기요격 방어망 구축 시급 22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언 윌리엄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 방어 프로젝트 부국장은 북한이 잇따라 발사한 미사일은 "한국을 생화학무기로 초기에 제압하고 미·일 양국의 참전을 저지하는 실전 능력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이언 부국장은 "이 정도 수준의 미사일 시험은 오랫동안 본 적이 없는 만큼 뭔가 일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첫 번째와 두 번째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기동식 재진입체(MRV, Maneuvering Reentry Vehicle)’로 북한이 꾸준히 연구해 왔고 시험해 보려던 종류다"라며 "실제로 북한 주장 ‘극초음속(마하 5 이상)’ 미사일은 비행시간 대부분을 탄도미사일처럼 날았고 마지막 순간 기동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MARV"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언 부국장은 일본도 ‘극초음속’ 미사일 사거리를 500km로 분석했지만 이후 북한은 700km를 비행했다고 발표한 것은 "발사 후반 부분에서 미사일이 기동하면서 아래로 떨어지자 레이더에서 놓쳤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건 대수롭지 않은 진전이 아닌, 방어 요격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MRV는 "극초음속 무기와 탄도미사일 사이에 존재하는 영역일 것"으로 평가하고 "북한 후방 깊숙한 곳에서 쏘지 않는 한 서울 타격용으론 사거리가 다소 길어 한국의 더 남쪽 지역들, 혹은 잠재적으로는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언 부국장은 "요격과 방어에 어려움을 주는 요소는 속도보다는 낮은 고도이며 비행 후반부에 나타나는 약간의 변칙 기동 능력"이라며 "북한이 동해 쪽으로 발사한 이런 미사일이 비스듬히 선회하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 우회가 가능해 남북한 접경 지역이 아니라 한국 영토의 남쪽 깊숙한 곳을 타격하기 위한 무기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MRV는 남쪽의 미군 부대들을 노리며 전쟁 발발 전, 미군 병력이 해상을 통해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산처럼 넓은 지역, 일본의 주일 미군 후속 보급 기지와 동해상 진입하는 미 해군 항공모함 등을 겨냥하는 임무도 띠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언 부국장은 다만 "북한 MRV는 비행 가장 마지막 구간에서만 변칙 기동을 하고, 더 많이 기동할수록 사거리는 짧아져 대기 중으로 진입한 미사일은 자체 동력이 없어 선회 시 항력에 따라 속도가 느려지므로 사드 포대를 완전히 우회하기를 어렵다"며 "사드는 측면 공격 방어 능력이 어느 정도 있어 한 번의 요격 기회는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특히, 해상 기반 능력 이지스함을 확보한 상태라면 북한 미사일이 변칙 기동을 시작하기 전에 SM-3 미사일로 요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 미사일이 더 ‘이상한 짓(monkey business)’을 할수록, 이 미사일이 더 황당하게 움직이기 전에 초기 요격이 가능한 미사일 방어망을 갖추고 있는 것과 탐지만 가능한 것과는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생사가 갈리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재고하고 시급히 이러한 능력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2022-02-23 13:46:27[파이낸셜뉴스] "...(중략)...한진창씨는 광무태황제가 독살된 게 틀림없다고 믿고 있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이렇다. 이상적이라 할만큼 건강하던 황제가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갔다. 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서 사람들이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황제의 이는 모두 구강 안에서 빠져있고, 혀가 닳아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민영휘, 나세환, 강석호 등과 함께 염을 행한 민영달씨가 한씨에게 이 상세한 내용들을 말해주었다고 한다." -윤치호 일기 中 20세기 초,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오랫동안 노렸던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는데 성공했다. 약 500년 간 이어진 조선과 이후 대한제국의 주권(主權)은 일본에게 철저히 종속됐고,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고종(高宗)은 이제는 그저 일본의 식민지(植民地)가 된 나라의 폐주(廢主)로 전락했다. 그동안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은 황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민비 외척(外戚) 세력과 해외 열강들에게 크게 휘둘렸고, 결국 나라가 망국(亡國)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항상 뒤따랐다. 물론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지만, 그럼에도 국권(國權) 침탈 후 '유폐(幽閉)된 황제' 고종은 일본의 감시와 압제 속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나름의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모색했다. 그런데 이러한 방안들이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 무렵 고종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서(急逝)였기에 민중들의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급기야 고종이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독살설'이 널리 유포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현재 정사(正史)로 받아 들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과 증언 등으로 인해 당시는 물론 현재에도 고종 독살설은 설득력 있게 회자되고 있다. 어찌 보면 고종의 죽음에 대한 논란은 나라를 잃은 민중들의 설움과 분노가 크게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3.1 운동'이라는 거국적인 민족 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왕정이 아닌 민주 공화정(共和政)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나라를 빼앗긴 비운(悲運)의 황제, 고종의 국권 회복 노력과 의문의 죽음 전말을 되돌아봤다. ■국권 침탈, 유폐 1905년, 일본의 강압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됐다. 직후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돼 대한제국의 내정은 일본에 완전히 장악됐고 외교권은 박탈됐다. 이때부터 사실상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감으로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일본은 을사늑약을 체결할 때 고종에게 이를 재가(裁可)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고종은 을사늑약의 재가를 끝까지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조약은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의 이름으로 체결됐는데, 여기에는 고종의 위임장이 첨부되지 않았고 조약 명칭도 기재되지 않았다. 고종은 을사늑약에 대해 "짐을 협박하여 조약을 조인했다"고 주장하며 무효를 선언했고, 국제 사회에 친서를 보내 조약의 불법성을 호소했다. 미국인 헐버트를 통해 "보호 조약은 병기로 위협하여 늑정(勒定)했기에 전혀 무효하다"는 내용의 급전(急電)을 미국 정부에 전달했고, 영국인 베델이 경영하는 '대한매일신보'에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원수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등 3인을 밀사(密使)로 파견해 끝까지 을사늑약 무효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들은 일본의 공작 등으로 인해 무위(無爲)에 그쳤고, 일본은 헤이그 밀사 사건을 구실로 1907년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이어 유약한 순종(純宗)을 즉위시켰고, 연호를 광무(光武)에서 융희(隆熙)로 바꿨다. 폐위된 고종은 '유폐된 황제'가 됐다. 이토 히로부미는 통감으로 부임한 후 한국의 황실과 행정부를 장악했고, 병력을 동원해 고종의 주변을 철저히 차단하고 고립시켰다. 특히 '궁금령'(宮禁令)을 제정 공포해 모든 외부인들이 궁궐에 출입하려면 반드시 일본 경무고문부의 허가증을 얻도록 했다. 만약 허가증을 받지 않고 출입하면 엄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해 이토 히로부미는 '궁궐의 위엄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핑계를 댔다. 결국 고종은 한 나라의 황제에서 신하들조차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매우 처량한 폐주(廢主)로 전락했다. ■반전 모색, 급서 고종의 유폐 생활은 장기간 지속됐지만, 이 와중에도 고종은 은밀히 밀지(密旨)를 내려 항일 의병 투쟁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고종이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된 후 전국 각지에서는 유생과 농민을 비롯해 군인과 상인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 의병 투쟁이 일어났다. 이런 가운데 1918년에 이르러 고종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외교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포착했다. 당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종료되고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을 중심으로 '민족 자결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는 정치적 원리의 하나로서 민족 의식을 지닌 한 집단이 독자적인 국가를 형성하고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종은 이러한 사상을 통해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졌고, 제1차 세계 대전을 청산하는 국제 협상인 '파리강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해 국권 회복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내려고 했다. 아울러 이 즈음 고종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등의 제안을 받아들여 중국 베이징으로의 망명(亡命)을 은밀히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종이 해외로 망명하면 독립 운동의 강력한 구심점(求心點)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민비의 사촌동생인 민영달이 5만원의 거금을 내놓았는데, 이회영은 이 자금으로 베이징에 고종이 거처 할 행궁(行宮)을 마련하려고 했다. 기실 고종이 망명을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고종은 1904년 러·일 전쟁 때 러시아로의 망명을 시도한 것을 시작으로 총 5차례에 걸쳐 해외 망명을 모색했다. 이처럼 유폐된 황제는 나름대로 반전(反轉)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단순한 계획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행이 뒤따를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19년 1월 21일 밤, 별안간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건강했던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향년 68세의 나이로 승하(昇遐)한 것이다. ■독살설 논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고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민중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무엇보다 평소에 고종이 매우 건강했기 때문에 민중들은 이를 쉽사리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궁내부 사무관이었던 일본인 곤도 시로스케도 그가 쓴 '이왕궁비사'(李王宮秘史)에서 "나는 너무 뜻밖이어서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혹시 창덕궁(순종) 쪽이 아닌가 반문했다"면서 "그렇게 물은 것은 왕 전하께서 평소 병약하셨기 때문이며 덕수궁(고종) 전하께서는 매우 건강하셨기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다. 승하하기 얼마 전까지도 고종은 수라(水刺)를 잘 들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민중들 사이에선 고종의 죽음과 관련한 논란이 증폭됐다. 바로 '고종 독살설'이다. 고종의 평소 건강 상태와 그가 은밀히 추진했던 반전을 감안할 때 고종이 일본 및 친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수 있다는 소문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시간이 갈수록 독살설은 그 이유와 연루자들의 실명까지 등장하며 구체화됐다. 광화문 앞 전수학교의 벽에는 '저들(일본)이 파리강화회의를 두려워해 우리 황제를 독살했다'는 내용의 글이 붙여졌다. 고종의 죽음 직후 발표된 '국민대회성명서'에는 일본이 이완용에게 윤덕영, 한상학이라는 역적을 시켜 식사 당번을 하는 두 궁녀로 하여금 밤참에 독약을 타서 올리도록 했다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외국인인 마티 윌콕스 노블의 일기에도 등장했다. 고종 독살설과 관련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한 때 독립운동가이자 친일파였던 윤치호가 쓴 일기였다. 윤치호는 고종의 시신을 직접 본 민비의 사촌동생 민영달이 중추원 참의 한진창에게 한 말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해 놓았다. 여기에는 매우 건강하던 고종이 식혜를 마신 후 짧은 시간 내에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갔고, 그 시신의 팔다리는 하루 이틀 만에 크게 부어올라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옷을 찢어야 했다고 적혀있다. 이어 실제로 염(殮)을 행한 사람에게 직접 들었다고 전제한 후 죽은 고종의 이가 모두 빠져 있었고 혀는 닳아 없어졌으며, 기다란 검은 줄이 목에서 복부까지 나 있었다고 적혀있다. 승하 직후 고종에게 식혜를 올린 궁녀 2명도 의문사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병조판서를 지낸 민영휘가 홍건이라는 사람에게 한 말을 기록한 부분에서는 고종이 한약을 한 사발 먹고 난 후 한 시간도 못 돼 현기증과 위통을 호소했고, 잠시 후 고종의 육신이 심하게 마비돼 민씨가 도착했을 때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더욱이 고종이 죽어가면서 민씨의 두 손을 세게 움켜쥐어서 환관이 이를 푸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전한다. 윤치호는 일기에 증언자들의 실명을 모두 기재함으로서 신빙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윤치호 일기에 나와있는 고종의 심한 경련은 독성 급성중독에 의한 것이고, 시신이 부어오른 것은 중독에 의해 사후 부패가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목에서 복부까지 난 검은 줄은 시신 부패 시 피부 혈관들이 그물처럼 나타나는 '부패망'이며, 고종이 민씨의 두 손을 세게 움켜쥔 것은 갑작스레 다가온 죽음에 맞서 본능적으로 생명줄을 붙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보고 있다. 고종 독살설과 관련한 증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총독부의 주요 관리였던 구라토미가 남긴 일기와 (앞서 언급한) 곤도 시로스케가 남긴 회고록에는 한일 합방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친일파 윤덕영, 민병석 등이 고종 독살에 깊숙이 연루돼 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담겨있다. 더 나아가 구라토미 일기는 고종의 죽음에 '윗선'이 개입돼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즉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와 2대 총독 하세가와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는데, 데라우치가 하세가와로 하여금 고종에게 무언가를 요구했고 고종이 이를 수락하지 않자 윤덕영, 민병석을 통해 독살을 감행했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데라우치와 하세가와가 요구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고종이 공식적으로 한일 합방이 잘 된 결정이었음을 인정하고 선포하라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고종 독살설은 당시 여러 정황과 증언, 자료들을 토대로 기정사실처럼 받아 들여졌다. 다만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만큼 현재에 이것이 정식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당시 일본이 고종이 불미스럽게 죽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후과(後果)를 충분히 감안하고 있었음을 전제하며 독살설은 가능성이 희박한 설(說)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이든지 간에 고종의 죽음은 이후 우리나라 역사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민족운동의 도화선 고종이 사망한 후 민족의 설움과 분노는 끓어올랐다. 당시 민중들은 순종이 있긴 했지만, 사실상 고종을 마지막 황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렸지만, 어쨌든 민족을 대표하는 황제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한 인물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석연치 않게 숨을 거뒀으니 민중들은 쓰라린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는 결국 거국적인 3.1 운동의 도화선(導火線)이 됐다. 그런데 이 민족 운동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우선 3.1 운동은 이전의 계몽운동, 의병운동, 민중의 생존권 수호투쟁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운동 경험이 하나로 수렴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일부 의병 운동이 조선 왕정 복위 등을 염두에 둔 복고(復古)적인 성격을 나타냈다면, 3.1 운동은 복고적인 성격에서 완전히 탈피해 보다 근대적인 '대한 독립'에 무게를 뒀다. 이를 계기로 민중의 민족적·계급적 각성이 촉진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 같은 거국적 민족 운동의 열기는 민주 공화정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는 독립 정신을 집약해 우리 민족이 주권 국민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표방하고, 향후 독립 운동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됐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는 대외적으로는 주권 국민의 대표 기관(정부)으로, 또한 대내적으로는 독립 운동 통할 기구로서의 역할을 적극 수행하며 '광복'(光復)의 촉매제가 된다. kschoi@fnnews.com 최경식 기자
2021-09-04 13:5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