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조숙증도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사춘기지연 또한 못지않게 고통스럽다. 다른 친구들은 외모가 점점 성숙해지는데 아이의 외모에 머물러 있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보통 인구의 5%에서 나타나는데 여아보다 남아의 발생 비율이 훨씬 높다. 남아의 경우 13~14세까지 고환의 부피가 커지지 않고 음모, 변성기, 목젖 등의 발달이 보이지 않을 때 사춘기지연을 의심해 볼 수 있다. 여아는 12~13세까지 유방과 음모에 발육의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15세까지 초경이 없을 때 의심해볼 수 있다. 왜소한 키, 신체의 기형적 성장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체검사, 혈액검사, X레이 촬영을 통한 골연령 검사, 유전자 검사, 골반 초음파 촬영,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이 필요하다. 사춘기가 느린 아이들의 50% 이상은 체질적 증상일 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결국 사춘기가 시작되고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아이가 조바심을 낸다면 남아는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여아는 에스트로겐 알약이나 피부에 붙이는 에스트로겐 패치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단기간 치료를 진행하면 사춘기가 유도되어 자연스럽게 2차 성징이 나타날 수 있다. 만약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의 이상으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중추신경 종양, 뇌하수체 종양, 림프구성 뇌하수체염 등이다. 역시 남아는 테스토스테론, 여아는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는다. 사춘기 진행 양상을 보면서 투약 기간과 투약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사춘기지연 증상이 있는 아이들에게서 염색체 이상이 발견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여아에게는 터너 증후군Turner's syndrome, 남아에게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다. 터너 증후군은 X 염색체 두 개 중 하나에 부분적 또는 전체적 결함이 있을 때 나타나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키가 매우 작고 목과 어깨 사이에 물갈퀴처럼 피부가 두텁게 자리잡는 신체 기형이 생긴다. 난소 기능이 정상이 아니라서 생리를 하지 못하며 하더라도 조기폐경될 확률이 높다. 또 에스트로겐 분비가 원활하지 않아 가슴이 정상으로 발달하지 못한다. 염색체 이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에스트로겐 치료로 성장을 촉진하고 사춘기를 유도할 수 있다. 키 성장을 위해 성장호르몬 치료도 함께 받는 것이 좋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남아에게 두 개 이상의 X염색체가 있을 때 나타난다. 남자는 X염색체를 하나만 가져서 XY가 되어야 정상인데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XXY, XXXY, XXXXY 등으로 X 염색체가 1~3개 많다. 이로 인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몸으로 자란다. 고환이 매우 작으며 여성형 유방을 가질 수 있다. 지적장애도 동반하는데 X염색체가 많을수록 더 심각하다. 염색체 이상을 고칠 수는 없지만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통해 남성적 외모를 발달시키고 지적장애도 완화할 수 있다. 칼만증후군도 사춘기지연을 일으킨다. 이것은 유전자 결함으로 시상하부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 질환으로 유전을 통해 발병한다. 남성은 성기가 작고 발기가 어렵고 무정자증이 확률이 높다. 여성은 가슴이 잘 발달하지 않고 무월경증이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후각이 아예 없거나 약하고 여성보다 남성에게 2배 정도 발생률이 높다. 생식기능을 정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다. 사춘기는 평생에 단 한 번뿐이며 신체와 정신에 평생 지속되는 큰 변화를 남긴다. 아이의 성 발달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일찍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수록 아이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22:43[파이낸셜뉴스] 성장호르몬 수치는 정상인데도 키가 자라지 않는 아동이 적지 않다는 성장클리닉 현장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한방 성장전문 네트워크 하이키한의원은 최근 2021~2024년 동안 하이키한의원에 내원한 9~12세 아동 113명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키가 평균보다 낮거나 현재 키가 또래보다 작은 아동의 대부분이 성장호르몬 수치는 정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환경 요인을 다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성장부진의 원인을 성장호르몬 결핍으로만 단정 짓는 기존 인식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현장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스트레스가 키 성장 가로막는 최대 원인 분석에 따르면 전체 113명 중 성장호르몬 보조지표인 IGF-1 수치가 168ng/ml 이하로 나타난 아이는 9명(8%)에 불과했고, 169~200ng/ml 사이의 '낮은 정상 범위'는 26명(23%), 나머지 78명(69%)은 성장호르몬이 충분한 정상 수치를 보였다. 즉, 전체의 약 92%가 성장호르몬 수치만 놓고 보면 호르몬 치료 대상은 아니지만,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상태에 해당했다. 하이키한의원이 분석한 113명의 아동 중 성장호르몬 수치(IGF-1 기준)가 정상 범주(169 ng/ml 이상)였던 104명을 별도로 분류해 성장이 정체된 원인을 추적한 결과, 대다수의 아이들이 성장을 방해하는 복합적 생활환경 요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OBJECT0# 분석은 의료진 문진과 생활습관 평가를 바탕으로 진행됐으며, 복수 요인이 중복으로 확인된 사례도 다수 포함됐다. 가장 많이 나타난 요인은 정서적 예민함과 만성적 스트레스(43%)였다. 해당 아동들은 수면 중 자주 깨거나 잠들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고 낮에도 긴장, 불안, 무기력감 등을 반복적으로 호소했다. 의료진은 "정서적 긴장 상태가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해 성장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많이 나타난 요인은 영양 불균형(34%)이었다. 분석에 따르면 해당 아동들은 평소 인스턴트 식품 섭취 비중이 높고, 칼슘, 단백질 등 뼈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 섭취가 부족하거나 편식 경향이 두드러졌다. 체성분 분석 결과, 뼈 건강 지표나 체중 대비 근육량이 평균보다 낮게 나온 사례도 다수였다. 운동 부족(29%) 역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일주일 기준으로 1시간 미만의 신체 활동만 하는 경우가 많았고, 학교 체육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생활 패턴이 확인됐다. 특히 운동량이 부족한 아동은 근육량 대비 체지방률이 높아져 성장판 자극이 줄고, 성장호르몬 반응이 둔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외에도 소화기 허약(24%)이 성장 정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해당 아동들은 전반적인 식사량이 부족하거나, 자주 복통이나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체중이 또래 평균보다 낮거나 일정 기간 정체된 경우가 다수였으며, 소화기계 약화로 인해 섭취한 영양이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이키한의원 측은 "성장호르몬 수치가 정상이더라도, 몸이 자라기 위해 필요한 전체적인 환경(수면, 영양, 정서, 활동 등)이 갖춰지지 않으면 성장은 쉽게 정체될 수 있다"며 "수치 하나만으로 키 성장의 모든 원인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사춘기 빠르면 최종키 오히려 작아져 분석 대상 아동 중 일부는 현재 키는 또래 평균 수준이거나 그 이상임에도 최종 예상키는 낮게 나오는 경향을 보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춘기 진행이 빠르거나 성조숙증이 의심되는 사례로,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성장 기간이 짧을 것으로 예측되는 유형이다. 전문가들은 "성장이 빨리 시작된 경우, 성장판이 일찍 닫히면서 오히려 최종키는 작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성장호르몬 수치나 현재 키와 무관하게 예상키가 낮아지는 전형적인 '빠른 성장-조기 종료형' 패턴이다. 한편, 전체 아동 중 약 33%는 사춘기 진행은 정상 범위에 있으나, 현재 키 자체가 또래보다 작고 성장 속도도 평균 이하인 상태로 나타났다. 이 유형은 성장판은 아직 열려 있지만, 생활습관, 영양, 수면, 정서 등 성장 환경이 부족해 예측키가 낮게 나오는 '성장 지연형'으로 분류된다. 하이키한의원 의료진은 "이번 분석은 예상키가 낮게 나오는 원인이 단순히 유전이나 성장호르몬 이상 때문만이 아니라, 사춘기 속도와 성장 환경이 얼마나 조화롭게 맞물리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분석을 총괄한 하이키한의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박승찬 한의학박사는 "키 성장 부진은 단지 결과일 뿐이며,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치료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장호르몬 수치가 정상이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정서적 불안, 수면 부족, 소화기능 저하, 빠른 사춘기 등 생활환경 요인이 성장을 가로막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최근 일부 방송에서 제기된 성장호르몬 치료의 과잉 논란에 대해서도 "성장호르몬 결핍으로 진단된 아이에게는 치료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문제는 치료 자체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없이 무조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분석에서도 성장호르몬 수치가 정상이지만 성장 속도가 느리거나 예측키가 낮게 나오는 사례가 대다수였으며, 이는 성장 문제를 둘러싼 판단 기준이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준다. 성장이 단순히 '키가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느냐의 문제라는 점에서, 성장클리닉의 역할 역시 수치를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이의 몸과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진료로 확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성장 체크리스트 1. 최근 1~2년간 키 성장속도는 어떠했는가 2. 체중 변화, 소화 상태, 식사량은 안정적인가 3. 밤 10시 이전 취침,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고 있는가 4. 주간 활동량(운동)은 충분한가 5. 사춘기 징후나 감정기복이 빠르게 나타나지는 않는가 이러한 항목들을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성장클리닉에서 뼈 나이, 성장판 상태, 생활환경 평가를 병행해야 실제 도움이 되는 맞춤형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22 16:18:51[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 결핍증이나 과다증 등 다양한 성장호르몬과 관련된 질환들을 알아보자. 터너증후군(Turner syndrome)여성의 XX 성염색체 중 하나에 완전 혹은 부분적 결손이 일어나 성장 및 성적 발달에 결함이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여아 2500~3000명당 1명 꼴로 발생하며 대부분 유산되지만 0.1%는 생존한다. X 염색체 이상이라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원활하지 않다. 이로 인해 가슴 발달에 이상이 생기고 난소 기능장애로 임신이 거의 불가능하며 생리를 하더라도 조기폐경의 확률이 높다. 에스트로겐은 뼈의 성장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부족한 터너증후군은 성인이 되면서 골다공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터너증후군이 저신장증을 보이게 되는 원리는 사춘기 키 성장에 에스트로겐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에스트로겐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세포와 조직 내에서 에스트라디올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용체의 양을 늘려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에스트라디올을 경구 섭취하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혈청 농도가 오히려 감소한다. 정확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에스트로겐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과 긴밀히 공조하여 성장에 관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성장호르몬 분비도 영향을 받는다. 에스트로겐이 부족한 터너증후군은 에스트로겐 보충 요법과 함께 성장호르몬 주사도 함께 진행하여 성발달과 키 성장을 유도해야 한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평균 140㎝ 정도의 키를 갖게 되지만 치료를 하면 5~12㎝ 더 커질 수 있다. 프래더윌리증후군(Prader-Willi syndrome) 15번 염색체의 결손으로 시상하부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신생아가 체중이 유난히 적고 근육 힘이 약해서 젖을 빨지 못하고 손과 발이 작고 목을 가누지 못하면 프래더윌리증후군을 의심해볼 수 있다. 생후 1년 동안은 잘 먹지 못해서 코에 튜브를 삽입하여 음식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 2~3세 경이 되면 갑자기 식욕이 증가해서 음식이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 이로 인해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고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시상하부 기능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성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고 성장호르몬 결핍도 함께 올 수 있다. 저신장증, 비만, 식탐, 사춘기지연이 지적장애, 행동장애와 함께 오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이를 다루기가 무척 어렵다. 성호르몬 치료를 기본으로 받아야 하고 성장호르몬 치료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투여하면 키 성장과 체중감량에 도움이 된다. 소아 만성신부전증 만성신부전증은 3개월 이상 신장 손상이 지속되거나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신장 기능이 감소하는 질병이다. 신장은 대사산물의 각종 노폐물을 제거하는 기관이라서 신장기능이 망가지면 제거되지 않은 노폐물이 혈액에 쌓이게 된다. 또 신장은 여러 가지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기도 하다. 적혈구 형성에 관여하는 호르몬, 칼슘과 인 대사에 중요한 호르몬을 생산한다. 신장 기능이 망가지면 이러한 호르몬들이 원활히 분비되지 않아 쉽게 피곤하고 몸이 퉁퉁 붓고 혈압이 올라가고 심하면 호흡곤란,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성인이 만성신부전증을 앓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 고혈압 등이다. 반면에 소아의 만성신부전증은 선천적 신장의 기형(신이형성, 신무형성, 요로폐쇄), 만성 사구체신염(신장의 필터 역할을 하는 사구체에 염증이 생겨 신장이 손상되는 질환), 유전성 질환(알포트증후군, 낭포신) 등이 원인이다. 만성신부전증에 걸리면 신장의 기능이 모두 저하되므로 관련 장기가 모두 약해지고 전신에 증상이 나타난다. 아이들은 빈혈이 생겨 얼굴이 창백해지고 잘 먹지 못하고 영양분이 흡수되지 못해 뼈가 약해지며 성장지연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성장호르몬 농도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분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성장지연이 나타나는 이유는 신장 이상이 성장호르몬 수용체의 수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간에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와 이것이 수용체와 결합하는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것을 ‘성장호르몬 불감성’, 혹은 ‘성장호르몬 저항성’이라고 부른다. 고용량의 성장호르몬 치료는 키를 키우는 데에 확실한 효과가 있다. 치료를 하지 않는 것보다 약 2배 정도 더 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성신부전증 소아는 사춘기가 지연될 뿐만 아니라 지속기간이 매우 짧다. 여기에 성장호르몬 장애까지 겹쳐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여아는 154㎝ 안팎, 남아는 163㎝ 안팎에 그친다. 후에 신장이식을 한다 해도 더 크지 못한다. 사춘기 이전부터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인의 성장호르몬 결핍증 나이가 들면서 성장호르몬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병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면 큰 문제는 없으며 식사, 운동, 다이어트 등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성인이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는 경우는 뇌종양이나 종양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혹은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인 경우가 가장 많다. 혹은 뇌에 외상을 입어 뇌하수체 기능을 상실했을 때도 성장호르몬이 결핍될 수 있다. 피로, 불안, 우울, 성기능감소, 근육 감소, 골밀도 감소, 심혈관질환 등이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사망률을 높아진다. 종양이 뇌하수체를 압박하는 것이 문제라면 종양을 제거하는 것으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외상이 원인이라면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장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어도 문제가 되는데, 다음과 같은 증상을 꼽을 수 있다. 뇌하수체 거인증(Pituitary gigantism) 뇌하수체 거인증이란 성장기 아이에게 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되어 키가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질환이다. 성장호르몬을 분비하는 뇌하수체전엽의 소마토트로프 세포(somatotropic cell)에 종양이 생겨 계속 증식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증상은 머리가 커지고 손과 발이 과도하게 길고 두통, 비만, 시각장애, 그리고 무감각과 저림 등의 감각이상을 보인다. 종양이 커지면서 뇌압을 높이고 시신경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키가 너무 커지기 전에 종양을 제거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종양이 작고 완전히 제거되면 완치율이 높다. 종양이 크고 완전히 제거되지 않으면 수술 후 방사선 및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말단비대증(Acromegaly)거인증을 치료하지 않은 채 성인이 되면 말단비대증으로 발전한다. 뼈의 성장판이 닫혀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손, 발, 코, 턱, 입술 등의 신체 말단은 계속 커지고 자라서 얼굴 생김새가 바뀌게 된다. 아주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또 성장기에는 증상이 없다가 성인이 된 후 뇌하수체 종양이 발생해 말단비대증이 되기도 한다.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증상이 계속된다면 성장호르몬억제호르몬 주사를 투여하거나 성장호르몬 수용체를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다. 방사선치료는 수술 후에도 남은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범뇌하수체 기능저하증이 생겨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모든 호르몬의 분비가 감소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6:26:29[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은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규칙한 생활방식, 운동부족, 과식, 비만, 지나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조금 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조금 부족한 것과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결핍’이라는 진단을 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조금 부족한 것은 식생활과 생활습관의 개선으로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지만 성장호르몬 결핍은 분비 시스템에 병리학적 이상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 과다’로 진단을 받는 것도 병리적학적 이상이다. 이러한 경우는 적극적인 의료의 개입이 필요하다. 성장호르몬 결핍과 과다는 생애의 어느 시기에 어떤 이유로 발생했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단순히 키와 몸집이 작은 것이 증상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생김새가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비만이 심하거나, 뼈가 유난히 약하고 정신지체가 있을 수도 있다. 빨리 발견하여 치료를 받아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부모들은 그 원인과 증상, 치료법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겠다. 먼저, 신생아에게는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나타날 수 있다. 태아는 엄마 뱃속에 있는 동안 성장호르몬에 노출된다. 보통 임신 10주 정도부터 서서히 증가해서 12~24주에 최고 수준에 노출된다. 이때 노출되는 성장호르몬은 전생애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양수 1㎖당 최대 100나노그램에 이른다. 이후 급하게 하락해서 출산이 가까워지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성장호르몬 수치가 임신 중기와 후기에 급변하는 이유는 중기에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분비를 촉진하고 그것이 시상하부에 네거티브 되먹임되어 성장호르몬 분비를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때의 성장호르몬은 태아의 성장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태아기에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성장호르몬이 아니라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기 때문이다. 대신 태아기 성장호르몬은 인슐린저항성을 유발하여 태아의 뇌를 저혈당으로부터 보호하고 지방을 분해하여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그래서 태아기에 성장호르몬이 부족했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저혈당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신생아의 피부가 노래지는 황달도 성장호르몬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황달은 혈액 내에 빌리루빈이라는 담즙 색소의 농도가 증가해서 피부나 점막이 노랗게 보이는 증상이다. 성장호르몬이 결핍되면 담즙산이 제대로 합성되지 않고 쓸개모세관의 구조에 기형이 일어나 간 기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생아 황달은 워낙 흔한 증상이라서 생후 1~2주 내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 이상 지속된다면 간세포 손상이나 성장호르몬을 포함한 대사질환을 의심해봐야 한다. 음경이 매우 작은 마이크로페니스도 성장호르몬 결핍을 의미할 수 있다. 신생아의 음경은 살짝 잡아당겨서 쟀을 때 3.5㎝ 안팎이다. 마이크로페니스의 경우는 1.8㎝ 미만이다. 생후 2개월이 지나도 음경 길이에 변화가 없다면 의사와 상담하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보통 이것은 태아기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부족한 저생식샘자극호르몬성 생식샘기능저하증 때문인 경우가 많지만 성장호르몬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시상하부의 기능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호르몬도 함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전면적인 호르몬 검사가 필요하다.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성장호르몬 결핍증도 있다. 유아기에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 본격적으로 키가 크기 시작하는 아동기부터 유난히 발육이 더디다면 성장호르몬 결핍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결핍증이라고 진단을 내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키 성장 속도가 보통의 소년소녀보다 약 절반 정도 느리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즉, 지금 당장의 키가 작은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몇 년 간의 성장추이에서 평균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혹은 ‘소아청소년의 표준성장도표’에서 3백분위수(최저 3%) 이하에 해당한다면 성장호르몬 결핍증에 해당한다. ‘소아청소년의 표준성장도표’는 질병관리청이 대한소아과학회와 함께 소아청소년의 건강 및 성장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개발한 것으로 10년 주기로 업데이트된다. 가장 최근 발표된 것은 2017년이다. 신장, 체중, 체질량지수의 백분위수 그래프를 제공한다. 자주 들여다보며 아이의 성장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체크해보아야 한다. 성장호르몬 결핍증이 맞다면 키가 작은 것뿐만 아니라 골연령도 나이보다 몇 년 어리다. 심한 경우 근육도 잘 형성되지 않아서 걷고 뛰고 서있는 등의 운동 능력이 떨어진다. 지방, 뼈, 근육, 수분의 비율을 나타내는 체성분 지표에서도 지방에 비해 근육이 적게 나온다. 그대로 방치하면 나이가 들수록 통통해지고 사춘기도 몇 년씩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성장호르몬 자극 검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분비량이 적다는 것이 밝혀져야 한다. 키가 3백분위수 이하에 해당해도 호르몬 분비가 정상이라면 성장호르몬 주사 치료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성장판이 충분히 열려 있다면 성장호르몬 치료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성장호르몬 수치를 검사하는 방법은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는지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은 혈액검사로 혈중 성장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보통 성인 남성은 혈액 1㎖당 0.4~10나노그램 혹은 혈액 1ℓ당 18~44피코몰이고 성인 여성은 1~14나노그램 혹은 44~616피코몰이다. 아동과 청소년은 이보다 훨씬 높은 10~50나노그램 혹은 440~2200피코몰을 정상범위로 본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때나 채혈을 해서 혈중 농도를 확인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정확하지 않다. 성장호르몬은 마치 맥박처럼 리듬을 타면서 불쑥 분비되었다가 떨어지는 ‘펄스(pulsatile) 박동식 분비를 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채혈을 했느냐에 따라 낮게 나올 수도 있고 높게 나올 수도 있다. 성장호르몬 수치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수치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인슐린유사성장인자-1의 혈중 농도는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성장호르몬이 잘 분비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의학적으로 성장호르몬결핍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좀 더 복잡한 ‘성장호르몬 자극검사’를 받아야 한다. 단, 이 검사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키가 3백분위수 미만에 해당하고 골연령이 나이보다 1년 이상 어리고, 성장속도가 연간 4㎝ 미만으로 계속 감소하는 등 성장호르몬결핍을 의심해볼 만한 요건에 해당할 때만 받을 수 있다. 검사방법은 3일 동안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약물을 투여하여 성장호르몬분비가 얼마나 유도되는지 살핀다. 입원이 필요하고 여러 번의 채혈을 해야 한다. 약물은 모두 알파-아드레날린수용체로 시상하부를 자극해서 성장호르몬방출호르몬을 분비하는 원리다. L-도파, 클로니딘, 글루카곤, 아르기닌, 인슐린 중에서 2가지 이상이 사용된다. 한 약물 당 5회 이상, 총 10번 이상 채혈해야 하고 모든 검사에서 성장호르몬이 혈액 1㎖당 10나노그램 이하로 나와야 성장호르몬결핍증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별도로 MRI를 촬영하여 뇌하수체에 종양이 없다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성장호르몬결핍증’으로 진단을 받아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결핍증 진단을 받으면 남아는 165㎝까지, 여아는 153㎝까지 급여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7-08 16:08:04[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에스트로겐의 합성은 시상하부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시작한다.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의 분비는 뇌하수체에서 황체형성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을 분비하게 하고, 이것이 혈액을 통해 난소에 이르면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에스트로겐을 합성하게 된다. 그런데 에스트로겐을 합성해내는 곳은 난소만이 아니다. 간, 췌장, 뼈, 부신, 피부, 뇌, 지방조직, 유방에서도 소량의 에스트로겐이 합성된다. 이렇게 합성된 에스트로겐은 폐경기 이후 난소 기능을 잃어버린 여성들이나 난소나 자궁이 없는 여성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혈액으로 나온 에스트로겐은 에스트로겐 수용체와 결합하여 활성화된다. 에스트로겐 수용체는 난소, 자궁, 유방 등 생식조직에 다량으로 분포한다. 피부, 간, 장, 뇌, 뼈, 침샘 등에도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다. 다른 안드로겐 호르몬과 마찬가지로 에스트로겐도 자동으로 세포 속으로 들어가서 핵 속의 DNA와 결합하여 유전자를 발현하게 한다. 그런데 혈액으로 나온 에스트로겐이 모두 다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은 아니다. 수용체를 만나기 전에 일부는 알부민 혹은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과 결합한다. 이렇게 결합된 에스트로겐은 꽁꽁 묶여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에스트로겐 생산량이 너무 과다할 경우 인체는 이렇게 일부를 무력화시켜 에스트로겐 수치를 스스로 낮춘다. 에스트로겐 수치를 낮추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혈액 내에 에스트로겐의 수치가 너무 높으면 이 정보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로 되먹임 된다. 그러면 시상하부와 뇌하수체가 스스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과 황체형성호르몬, 여포자극호르몬의 분비량을 낮춘다. 이렇게 에스트로겐이 높으면 자극 호르몬을 낮추고, 에스트로겐이 낮으면 자극 호르몬을 높이는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의 네거티브 되먹임 구조에 의해 에스트로겐의 양이 자율 조절된다. 임신 초기 에스트로겐은 태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주로 엄마의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은 자궁 내벽을 두껍게 만들어 태아가 편하게 자리잡게 하고 태반을 무서운 속도로 자라게 하여 아기에게 호흡과 영양분을 공급할 기초 인프라를 만든다. 일단 태반이 자리를 잡으면 그때부터는 태반에서 자체적으로 임신기에 필요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한다.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태반성 젖분비자극호르몬, 인간융모성 생식샘자극호르몬(Human Chorionic Gonadotropin)등이 함께 작용하여 태아의 발달과 산모의 건강을 책임진다. 그렇다면 산모로부터 공급받는 것이 아니라 태아가 스스로 분비하는 에스트로겐은 어떤 역할을 할까? 여자 태아는 약 7주 정도부터 자궁을 형성하고 소량의 에스트로겐을 분비한다. 하지만 이때의 에스트로겐은 거의 존재감이 없다. 그러다 임신 중기로 접어드는 12주 무렵부터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치솟기 시작한다. 에스트로겐뿐만 아니라 황체호르몬과 여포자극호르몬도 동시에 치솟는다. 이렇게 임신 말기까지 쭉 높은 호르몬 수치를 유지하다가 출산하는 순간에는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임신 중기~말기에 걸쳐 치솟았다 추락하는 호르몬이 태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 시기 자궁이 완성되고 태아가 처음으로 여포를 만들어내는 등, 여성 생식력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 이 호르몬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측한다. 탄생 전에 호르몬이 감소하는 것은 산모의 태반에서 분비되는 많은 양의 에스트로겐이 태아의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을 억제하는 것으로 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무뇌증이 있는 태아도 임신 34주차까지 호르몬 분비를 포함한 모든 발달이 정상적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정상 태아에서 관찰되는 막 자라나는 어린 여포들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태아의 호르몬 분비는 임신 7~8개월까지는 산모의 태반과 태아의 자궁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그 후부터는 뇌와 연결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의 작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탄생의 순간 여아의 에스트로겐 수치는 거의 바닥 상태다. 에스트로겐이 이렇게 부족한 상태는 약 6~10일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에스트로겐 부족 상태가 시상하부로 음성 되먹임되어 다시 왕성하게 호르몬을 분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이 활성화된 것이자 미니 사춘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남아의 미니 사춘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남아의 미니 사춘기가 테스토스테론, 여포자극호르몬, 황체호르몬이 모두 피크인 상태로 3개월을 보내는 것인데 비해,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매우 높은 여포자극호르몬과 적당한 황체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태에서 에스트로겐이 약 1.5개월 간격으로 파도처럼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한다. 이러한 미니 사춘기는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지속된다. 미니 사춘기의 에스트로겐 파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남아의 미니 사춘기는 고환과 음경의 크기가 늘어나고 생식기능이 발달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여아의 미니 사춘기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있다. 이것이 유선과 자궁을 자극하여 크기를 키울 것이라는 가설을 증명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미니 사춘기 기간 동안 가슴의 크기와 자궁 길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 에스트로겐 파도가 여포의 성숙과 위축의 주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과학자들은 미니 사춘기를 '기회의 창'이라고 칭한다. 이 시기가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의 결함을 발견하고 치료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은 닫히고 10년 후 사춘기가 시작되어 다시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미니 사춘기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이 밝혀진다면 발달 지연이나 성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장애들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5-08 16:04:12[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우리는 보통 10대 초반에 단 한 번의 사춘기를 겪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춘기가 한 번 더 있다. 생후 0~6개월의 신생아 시절에 겪는 이른바 '미니 사춘기'다. 남자 태아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18주를 정점으로 점점 감소하여 태어날 즈음에는 거의 여자 아기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생후 0~6개월 남자 아기의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다시 훌쩍 치솟는다. 바로 이 시기가 '미니 사춘기'이다. 같은 시기 여자 아기도 사춘기를 겪는다. 남자 아기와는 달리 에스트로겐이 주기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6개월 동안 반복하는 양상을 보인다. 미니 사춘기의 존재가 밝혀진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 우리는 이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생식기와 자궁의 발달, 체형, 체질량, 인지력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무엇이 이 시기에 미니 사춘기를 발현시키는지, 이후 진짜 사춘기가 올 때까지 왜 호르몬 분비 활동을 멈추는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니 사춘기가 생후 처음으로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샘 축'이 활성화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 축은 임신 중기 태아가 높은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될 때 활성화되고 이후 활동을 멈추었다가 탄생 직후 미니 사춘기에 다시 활성화된다. 미니 사춘기가 고환과 음경의 크기와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2005년 덴마크 국립의료원 연구팀은 출생 3개월 시기 아기의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음경 길이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음경은 출생 후 36개월까지 지속적으로 자라는데 미니 사춘기 시기인 0~ 3개월 사이에 자라는 속도가 월 1밀리미터 정도로 가장 빨랐다. 고환 역시 생후 5~6개월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자라고 이후 9개월에 이르면 살짝 작아진다. 신체의 성장에도 미니 사춘기가 관여한다. 아기의 몸이 커지는 데에는 갑상선호르몬, 인슐린, 당질코르티코이드(부신피질에서 분비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중 하나), 성장호르몬 등이 관여하는데 성호르몬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아와 여아의 성장속도는 발달초기 남아가 더 빠르다. 특히 남아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가장 높은 미니사춘기 시기에 성장속도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 미니 사춘기가 아이의 신체 성장에 관여한다는 것은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선천적으로 저생식샘자극호르몬성 생식샘기능저하증을 갖고 태어나는 남자 아기들은 일반 아기들에 비해 성기의 크기와 몸집이 매우 작다. 뇌하수체에서 생식샘자극호르몬의 분비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태아기에 테스토스테론 노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미니 사춘기에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뿐만 아니라 황체형성호르몬, 여포호르몬, 인히빈(고환에서 분비하는 당단백질로 분화와 발달에 관여)의 분비도 정상 이하로 나타난다. 만약 미니 사춘기에 이와 같은 호르몬 불균형을 파악한다면 아이의 신체성장과 생식기능을 정상으로 발달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 시기를 그냥 넘기면 10년 후 사춘기가 올 때까지 치료가 지연되고 그때가 되면 증상이 심해진다. 아이의 생식기 성장이 느리거나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다면 미니 사춘기인 1~6개월에 꼭 호르몬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발견 즉시 테스토스테론과 생식샘자극호르몬 보충요법을 실시하면 부작용 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4-25 15:39:18[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장호르몬은 아미노산 191개로 이루어진 펩타이드 호르몬이다. 뇌하수체 전엽에서 합성, 저장, 분비된다. 물에는 잘 녹지만 지질에는 녹지 않는다. 인체의 성장, 발달, 세포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1)의 분비를 촉진하고 포도당과 유리지방산의 혈중농도를 높인다. 연령대에 따라 혈액 1밀리리터 당 아동은 10~50나노그램, 성인 남성은 0.4~10나노그램, 성인 여성은 1~14나노그램을 정상 범위로 본다. 어린이의 하루 분비량은 700마이크로그램, 건강한 성인은 400마이크로그램이 분비된다. 성장호르몬은 성장과 대사를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성장이 가장 필요한 시기는 아동기와 청소년기인만큼 이 시기에 분비량이 가장 높다. 하지만 10대 후반을 정점으로 분비량이 급격히 하락해서 20대가 되면 10대의 절반 수준이 되고, 30대가 되면 20대의 절반 수준이 된다. 이후로는 서서히 떨어져서 60대가 되면 20대의 20% 수준으로 분비된다. 그렇다고 성장호르몬이 성장기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성장기 못지않게 전생애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장호르몬은 근육량을 늘리고 지방을 분해하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등 기본적인 신진대사에 필수다. 뼈의 미네랄화를 촉진하여 골밀도를 높이고, 간을 자극하여 '포도당 신생합성'이라고 하는 포도당을 당 이외의 물질로부터 새롭게 생성하는 일을 해내고, 면역력을 높이는 등 노인에서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노년기에서도 중요한 회춘호르몬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환자들이 성장호르몬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호르몬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 연령을 가리지 않고 문제가 발생한다. 신생아의 경우 음경이 매우 작게 발달하거나 저혈당, 황달 등이 나타나고, 아동부터 청소년기에는 키가 자라지 않고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사춘기도 몇 년씩 지연된다. 성인은 근육량 감소, 골밀도 감소, 에너지 저하, 비만, 기억력 저하, 우울증, 불안 등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고 당뇨병, 심장병 등 성인병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성장호르몬의 본질을 잘 표현하는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흔히 호르몬을 접근할 때 한 가지 호르몬의 시선으로 우리의 신진대사를 파악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호르몬이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호르몬이 작용하는 방식에는 무엇일까. 먼저, 길항작용은 반대작용을 하는 호르몬 쌍에 의해 조절되는 방식이다. 예컨대 혈당을 떨어뜨리는 호르몬은 인슐린이고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은 글루카곤이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에피네프린과 아세틸콜린도 서로 길항작용을 한다. 에피네프린이 신경세포를 흥분시키면 아세틸콜린이 이를 진정시켜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되먹임은 뇌의 피드백을 통해 분비량이 조절되는 방식이다. 예컨대 갑상선호르몬의 수치가 떨어지면 뇌에서 갑상선분비자극호르몬을 분비하여 갑상선이 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하게 한다. 반대로 갑상선호르몬의 수치가 높으면 뇌에서 갑상선분비자극호르몬의 분비량을 낮추어 갑상선이 호르몬 분비를 낮추도록 한다. 이렇게 높으면 낮추고 낮으면 높이는 음성 되먹임 방식이 있고, 높을수록 높아지는 양성 되먹임 방식이 있다. 양성 되먹임 방식의 대표적인 예는 젖분비호르몬인 프로락틴이다. 프로락틴은 임신과 수유를 통해 분비량이 늘어나고 아이가 젖을 빠는 자극이 지속될수록 더 많이 분비된다. 생체리듬이란 체내 시계에 따라 분비량이 조절되는 방식으로 빛과 어둠으로 제어되는 멜라토닌이 대표적이다. 멜라토닌 외에도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모두 생체리듬에 영향을 받는다. 호르몬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혈액을 통해 표적세포로 이동해 각 호르몬에 딱 맞는 수용체와 결합해야 한다. 수용체와 많이 결합할수록 호르몬의 활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인체는 호르몬의 양이 많아지면 수용체의 수를 줄이고, 호르몬의 양이 적어지면 수용체의 수를 높여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는 호르몬 수용체의 작용이 인슐린 저항성, 렙틴저항성과 같은 호르몬 저항성을 유발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의 오류는 하나의 호르몬을 하나의 작용으로 일대일 연결을 하는 개념에 있다고 본다. 사실 하나의 호르몬은 여러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멜라토닌 호르몬은 수면호르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피부색, 면역, 대사기능 등의 여러가지 작용을 하는 것이다. 또한 과유불급의 원리가 작용한다. 모자라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넘쳐도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도파민 호르몬은 호감호르몬이지만 지나치면 충동과 집착, 그리고 중독이 된다. 흥미롭게도 동일한 호르몬이라도 호르몬의 농도에 따라 생체반응의 결과는 달라진다. 소장호르몬은 농도에 따라 위장운동, 혈당조절, 식욕조절 등의 작용을 하므로 당뇨병 약제 또는 비만약제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호르몬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호르몬은 짝을 이룬다는 말처럼 서로 긴밀한 연결을 하기 때문이다. 길항작용과 같이 서로 반대가 되는 호르몬의 짝을 이루기도 하고, 또한 자극호르몬들에 의해 호르몬이 분비되거나 음성, 양성 되먹임 방식으로 호르몬들이 서로 조율된다.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처럼 일련의 호르몬 연쇄반응이나 세로토닌과 멜라토닌, 그리고 멜라토닌과 성장호르몬과 같이 도미노처럼 긴밀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호르몬의 네트워크가 인간의 생명활동을 지배하는 실제적인 명령자이다. 그래서 우리 몸의 하나의 증상과 현상으로 표현되지만 여기에는 매우 다양한 호르몬이 관여한다. 혈당수치만 해도 흔히 알고 있는 인슐린 호르몬 외에도 식욕호르몬, 소장호르몬, 지방호르몬, 근육호르몬 등 최소한 8가지 이상의 호르몬들에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신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면 호르몬의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르몬의 생태계는 내 안의 소우주(小宇宙)이기 때문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2025-01-08 11:03:37[파이낸셜뉴스] 1994년 12월 8일. 선천성 담도 폐쇄증으로 간이 딱딱하게 굳어가던 9개월 아기에게 아버지의 간 4분의 1이 이식됐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 모두가 숨죽이며 혈류를 개통한 순간, 뱃속에 이식된 창백한 간이 붉게 물들었다. 아기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무사히 간으로 흘러들었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동물실험을 마친 뒤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첫 환자를 기다리던 의료진. 오직 아기를 살리겠다는 마음만으로 의료진의 도전에 큰 용기로 응하고 아기에게 간을 내어준 부모. 모두의 간절한 노력으로 생명을 얻은 시한부 아기는 올해 건강하게 서른 살을 맞이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선천성 담도 폐쇄증에 따른 간경화로 첫 돌이 되기도 전에 죽음 앞에 놓였던 아기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생체 간이식을 통해 서른 살의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는 국내 첫 생체 간이식 주인공인 이지원 씨(만 30세, 여)가 1994년 12월 8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아버지의 간 일부를 이식받고 올해 건강하게 30주년을 맞이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지원 씨의 소아 생체 간이식 성공을 계기로 서울아산병원은 지금까지 7392명(성인 7032명, 소아 360명)에게 생체 간이식으로 새 삶을 선사해왔다. 이는 국내를 넘어 세계 최다 기록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은 환자 입장에서는 뇌사자 장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돼 병세가 악화되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으며, 뇌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간 손상 위험도 없어 이식 받는 간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매우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이 커, 높은 생존율을 담보하기 어렵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아산병원은 더 많은 말기 간질환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간이식의 85%를 생체 간이식으로 시행해왔다. 최근 5년간 시행한 생체 간이식 건수만 연평균 400례에 달한다. 고난도 생체 간이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서울아산병원의 전체 간이식 생존율은 △1년 98% △3년 90% △10년 89%로 매우 높다. 우리나라보다 간이식 역사가 깊은 미국의 피츠버그 메디컬센터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1년 생존율이 평균 92%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우수한 성적이다. 최근 10년간 시행한 소아 생체 간이식 생존율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생체 간이식을 받은 소아 환자 93명의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1년 100% △5년 98.6%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소아 환자 113명의 생체 간이식 생존율인 △1년 92.9% △5년 92.0% 보다도 비약적으로 향상된 수치다. 이런 높은 생존율을 보일 수 있던 배경에는 수술 전후의 고도화된 협진 및 집중관리 시스템이 자리해있다. 간이식·간담도외과와 소아외과, 소아소화기영양과,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진하며 발생 가능한 합병증에 대해 수술 전 미리 계획을 세우고 수술 후에는 환자 상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소아 환자의 경우 성장과 발달 과정에 있기 때문에 빈번한 영양실조로 인한 영양 문제, 성장 및 발달 지연 문제, 예방접종과 다양한 감염 노출, 사춘기 문제 등 간이식에서 접하는 일반적인 문제 외에도 여러 가지 특수한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소아에 대해 잘 아는 소아과 전문의의 개입이 성인과 달리 더욱 절실한데, 서울아산병원은 이식 전에 이 같은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고 이식 후에는 소아중환자실에서 집중적으로 맞춤형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가 사회로 복귀한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이식 후 생존율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은 소아소화기영양과 의사가 포함된 다학제 팀의 협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한편 서구에 비해 뇌사자 장기기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서울아산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살리고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수술법들을 세계 간이식계에 제시해왔다. 간이식·간담도외과 이승규 석좌교수가 199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변형 우엽 간이식은 현재 전 세계 간이식센터에서 표준 수술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변형 우엽 간이식은 이식되는 우엽 간에 새로운 중간정맥을 만들어 우엽 간 전(全) 구역의 피가 중간정맥을 통해 잘 배출되도록 하는 수술법이다. 이를 통해 당시 한해 30례에 그치던 생체 간이식이 100례를 넘겼고 수술 성공률도 70%에서 95%를 돌파할 수 있었다. 이승규 교수가 2000년 3월 세계 최초로 시행한 2대1 생체 간이식은 간 기증자와 수혜자의 범위를 넓힌 데 의의가 크다. 이전에는 기술적 어려움으로 생각조차 하지 못한 수술법으로 기증자 2명으로부터 간 일부를 받아 수혜자에게 이식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체 기증자로는 부족한 경우에도 간이식이 가능해졌으며, 그동안 638명의 환자들이 이 수술법으로 새 삶을 얻었다. 수혜자와 기증자의 혈액형이 다른 ABO 혈액형 부적합 생체 간이식 역시 서울아산병원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1042명의 환자가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을 받았으며 수술 성적은 혈액형 적합 간이식과 대등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 기증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복강경과 최소 절개술을 이용한 기증자 간 절제술은 기증자들의 회복 기간을 단축시키고 흉터를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생체 간이식 기증자 중 사망하거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한 사례는 한 명도 없었다. 이승규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1994년 12월 생후 9개월 아기를 살린 생체 간이식은 우리의 간이식 여정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되어주었고, 이를 계기로 7천 명이 넘는 말기 간질환 환자들에게 생체 간이식으로 새 생명을 선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절체절명의 환자를 살리고자 도전 정신과 열정으로 뭉친 간이식팀 의료진과 수술 이후 눈부신 생명력을 보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환자들 덕분이다”라고 밝혔다. 김경모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교수는 “30년의 시간은 의료진의 헌신과 노력의 결실일 뿐 아니라 의료진을 신뢰하며 잘 따라와 준 이식 환자들과 가족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성과이기도 하다. 국내 첫 생체 간이식을 받은 아기가 기적처럼 유치원에 입학하고 이후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이제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성인으로 성장한 것은 이식 의료의 성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식 후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 30년을 넘어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식 환자들의 성공적인 삶은 앞으로 이식을 받을 아이들과 가족에게 큰 희망을 주는 귀중한 증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2024-12-16 11:21:01[파이낸셜뉴스] 최근 10년 사이 성조숙증 환자가 2.6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성조숙증 환자는 2014년 9만6733명에서 지난해 25만1599명으로 160% 늘었다. 올해도 7월까지 벌써 19만4803명이 성조숙증을 진단받았다. 조발 사춘기로도 불리는 성조숙증은 이차 성징이 이르게 나타나는 질환이다. 여자아이가 8세 이전에 가슴이 발달하고 남자아이가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거나 음모가 발달하면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다. 성조숙증의 원인으로는 서구화한 식습관, 소아 비만, 환경 호르몬 등이 거론된다. 성별로 나눠 보면 성조숙증을 겪는 아이들 대부분이 여아였다. 다만 그 비중은 줄고 있다. 성조숙증 환자 중 여아 비중은 2014년 91.9%에서 지난해 80.7%로 줄었다. 그만큼 남아들 사이에서 성조숙증이 늘어난 셈이다. 특히 여아의 경우 대부분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특발성인 반면, 남아는 절반 정도에서 뇌종양이나 갑상샘 저하증 등 기저 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조숙증의 주요 증상은 여아의 경우 유방 발달과 생리 시작, 남아는 고환 크기 증가와 음모 발달 등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체취 변화, 여드름, 급격한 키 성장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진단은 신체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골연령 검사로 뼈의 성숙도를 평가하고 혈액검사로 성호르몬 수치를 측정한다. 필요시 뇌 MRI나 초음파 검사도 시행한다. 치료는 주로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GnRH 작용제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사춘기 발달을 지연시키고 최종 성인 키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치료 기간은 보통 2~5년 정도다. 의료계에서는 "성조숙증은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최종 키가 작아질 수 있고 심리사회적 문제도 생길 수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성조숙증 예방을 위해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등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환경호르몬 노출을 줄이는 것이 도움 된다고 강조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성장 발달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상 징후가 있으면 조기에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박 의원은 "성숙이 지나치게 빨라지면 성장 호르몬 불균형으로 성장판이 조기에 닫힐 우려가 있고,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며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통해 각종 질환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24-10-19 10:22:13[파이낸셜뉴스] 사춘기는 아이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 가는 시기이지만, 또래보다 더 빠르게 찾아온다면 2차 성징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골격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 유년 성장이 종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정은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2차 성징이 여아는 8세 미만, 남아는 9세 미만에 나타나면 성조숙증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2차 성징의 가장 큰 특징은 여아는 유방이 발달하며, 남아는 고환이 커지고 음모가 발달한다는 점이다"라고 4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사춘기라고 부르는 2차 성징은 여아는 9세부터 13세까지 남아는 10세부터 14세까지 진행된다. 이 시기보다 1세 정도 빠르면 '조기 사춘기' 1세 정도 늦게 늦으면 '사춘기 지연'이라고 한다. 사춘기 시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유전, 영양(비만), 사회적 배경, 환경호르몬 등 복합적인데 부모의 사춘기가 빨랐다면 자녀도 빠를 수 있어 유전적 요소가 70~80% 영향을 받는다. 최 교수는 "사춘기가 빨리 시작되면 처음엔 잘 크는 것 같지만 골연령이 빨라져 사춘기가 정상으로 시작되는 아이에 비해 성인키는 오히려 작을 수 있다"라며 "뿐만 아니라 또래와 이질감 등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어 부모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이를 관찰한 결과, 성조숙증이 의심된다면 어떻게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최 교수는 "성조숙증의 진단과 진행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병력, 진찰, 골연령 검사 및 성호르몬 검사 등을 실시하며 성조숙증으로 진단됐을 경우, 또래와 사춘기 발달을 맞추기 위해 성조숙증 치료제를 팔이나 엉덩이에 피하 또는 근육 주사해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고 설명했다. 성조숙증 확진을 위해 일반적으로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GnRH) 자극검사를 시행하며 검사 결과 LH가 5.0 IU/ℓ이상으로 증가하고, 골연령 증가 및 2차 성징 발달을 동반한 경우 진성 성조숙증으로 진단한다.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골반 초음파, MRI 등 영상검사도 진행한다. 치료 기간은 통상 2~5년이 걸리는데 치료 중 3~6개월 간격으로 성 성숙도와 성장을 평가하고, 골연령 검사를 정기적으로 시행한다. 최 교수는 "성조숙증 치료의 주요 목적은 사춘기 발달을 또래와 맞추고, 최종 성인키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정신사회적인 문제를 줄이는 것이다"라며 "가능한 한 일찍, 그리고 꾸준한 치료가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기자
2024-10-04 11:2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