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남미 페루의 한 산악지대에서 버스가 추락해 어린이를 포함한 25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들은 페루 경찰을 인용해 고원 지역의 좁은 산길을 지나던 버스가 도로 150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페루 육상교통감독청(SUTRAN·수트란)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우앙카벨리카 추르캄파 지역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해당 버스는 아야쿠초에서 출발해 우앙카요로 가던 중이었다"고 설명했다. 호르헤 차베스 페루 국방장관은 이 사고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사망자가 25명 발생했으며, 부상자는 34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현지매체인 엘코메르시오는 20여명이 상처를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지점 자치단체장인 마누엘 세바요스 파체코 시장은 RPP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거의 한 달 전부터 산사태 등 위험이 있던 지역"이라며 "중앙정부에 지속해 도로 보수를 요구했는데도, (정부는)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페루 육상교통감독청은 "해당 버스 회사가 보험에 가입된 상태"라고 전했다. 한편 안데스산맥이 지나는 페루에는 해발 5000m 안팎의 고산과 평탄한 고원이 혼재돼 있다. 하지만 페루는 교통법규 준수 미흡과 열악한 도로 환경, 표지판 미비 등의 이유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나라다. 지난달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 사고로 13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지난 1월에는 북서부 피우라주에서 버스가 절벽으로 추락해 2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기준 페루의 도로에서 44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인구 10만명 당 13.6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주페루 한국대사관은 지난 6월 주요 사건·사고 사례에 대해 소개하며 "고속도로 교통사고가 빈번한 만큼 차량 이동시 반드시 착석해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newssu@fnnews.com 김수연 기자
2023-09-19 09:21:03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 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쟁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캘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덜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 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산맥, 미국 남서부의 애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의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 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 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8 18:34:221905년 4월 초 대한제국 정부는 최초로 이민법을 공포했다. 그 시기가 참으로 묘하다. 러일전쟁이 진행중이었고, 한반도의 육지와 바다는 전장터로 변모한 상태였다. 대륙과 도서에 긴장이 발생하면 양쪽을 연결하는 반도는 긴장이 폭발하는 전장이 되는 것이 지정학적 문제다. 1904년 봄부터 진남포와 원산 그리고 인천과 부산 등의 항구에는 광고문이 붙었다. “녹금(綠金)을 캐러 갑시다”라는 문구다. 1903년 하와이 이민의 결과는 백금이라는 부를 캐러 가는 것이라는 인상이 심어졌는데, 이번에는 녹금이란다. 단 한 번의 하와이 이민은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 모집에 응했던 것인데, 칼리포니아주의 일본 이민 반대 법안으로 조선인도 건너갈 수가 없게 됐다.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부터 노동자를 모집하는 광고에 녹금이라는 유혹 단어가 삽입되었다. 1905년 3월 말 인천에서 1031명의 조선인이 고국을 떠났다. 소위 계약노동이라는 조건이었다. 한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 화물선이 근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 중간상인의 개입이 가까스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네델란드 화물선을 잡았다. 그 배를 보낸 다음, 곧 바로 4월에 이민법이 공포되었다는 사실은 중간상인과 대한제국 공무원 사이의 농간 냄새가 진하게 배어난다. 배삯을 비롯한 신청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에, 형편이 어지간히 되는 사람들이 나갔다. 배에서 어린이가 2명 출생했고(한 명의 이름은 인천에서 출발했다고 仁出이 되었다), 1명이 사망한 결과 1032명이 멕시코의 태평양 항구 아카풀코에 도착한 것은 그해 5월 말이었고, 육로로 베라크루즈 항으로 이동해 다시 배를 타고 유카탄주의 메리다로 들어갔다. 그렇게 팔려 나간 그들을 기다렸던 노동 과정은 열대의 지옥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에네켄이란 선인장의 잎사귀를 잘라서 다발로 묶고,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중노동이었다. 그 잎을 삶아서 남는 줄거리가 밧줄의 원료가 된다. 선박에 필수적인 밧줄 원료를 생산하는 과정이었다. 에네켄 잎사귀에 솟아난 손가락 길이의 침에 찔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은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했다. 1898년 미서전쟁의 전쟁 배상으로 스페인이 미국에게 필리핀을 양도했다. 미국은 필리핀에서 마닐라 삼이라는 양질의 밧줄 원료를 개발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은 사양산업이 되었다. 조선인 계약노동자들은 망해가는 멕시코 산업의 막차를 탄 셈이었다.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조선인들은 동포 인신매매업자 이해영의 꼬임으로 다시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팔려 나갔다. 현재 쿠바의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동포는 그들의 후예다. 1979년 여름 나는 예일대학의 국제교류숙소에서 보냈다. 입소하는 날 초인종을 눌렀더니, 동양인 여성이 나왔는데 하마터면 한국말이 나올 뻔했다. 얼마 지난 후 일요일 응접실에 갔더니, 그녀가 가족과 함께 나와 있었다. 남편은 휴스턴대학 스페인문학 교수였고, 자녀 둘이 있었다. 소통을 하고 보니, 그녀는 파나마 태생이며, 할머니가 한국인이라고 했다. 생김새가 전형적인 한국인 느낌 백퍼센트였다. 1986년 11월 나는 페루의 리마에서 그곳 한인회장의 안내로 ‘알레한드로 킴’이라는 사내를 만났다. 길거리의 코너에서 건물의 창문 틀에 담배 몇 개와 사탕 몇 알을 올려 놓고 팔고 있었다. 생김새는 안데스의 전형적인 꿰추아 인디오였다. 한사코 자신은 “꼬레아노”라고 목청을 높인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1987년 1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울공대를 졸업한 광산무역업자를 만났다. 그 선배는 주사(朱砂, cinnabar)를 수입해 아시아로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주사 생산지로 알려진 곳은 세 곳이란다: 북아프리카의 마라케시 산맥, 미국 남서부의 아리조나 일대 사막, 그리고 아르헨티나 북부의 후후이 사막. 이 지역의 공통점은 산의 돌이 붉은색. 볼리비아와의 국경지대인 후후이의 산악지대 답사를 하면서 만난 곳이 '뿌에블라 꼬레아노(한국인촌)'라고 했다. 후후이에 거주하는 최천명씨의 주소를 받아서 아내와 함께 방문하였다. 나의 가설은 유카탄 반도에서 흘러내린 한국인들 일부는 쿠바로 향했고(1920년 경), 일부는 파나마를 거쳐서 페루에 도착하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서 볼리비아 남부의 포토시와 수크레 등의 광산지대에 도달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32~35년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사이에 차코전쟁(Chaco War, 목마름의 전쟁)이 터졌다. 볼리비아가 패전해 엄청난 영토를 파라과이에 빼앗겼다. 볼리비아의 광산에 터전을 잡았던 한국 이민자들은 전쟁을 피해 아르헨티나 쪽으로 피난했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러일전쟁 피난민이 30년 만에 다시 남미에서 차코전쟁 피난민 신세가 되었다. 후후이는 아르헨티나 북부의 사막지대로 주변의 산들은 붉은색 일색이었다. 음식점을 찾으니 중국집이 있었다. 홍콩으로부터 이사온 젊은 부부가 가게를 연 지 2년 되었다고. 이 동네에 한국인 옷가게를 하는 가정이 두 집. 그 중의 한 분이 최천명씨였다. 그의 가게 이름은 '꼬레아(Corea)'. 해마다 인디오 행색을 한 ‘뿌에블라 꼬레아노’들이 남부여대하여 옷을 사러 온다고 했다. 최씨의 제안으로 우리는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최씨의 친구인 레바논 이민자 호세가 기꺼이 차량을 제공하고 운전을 했다. 풀 한 포기 없는 자갈길 산악을 오르는 과정에 재규어 한 마리가 차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해발이 높아질수록 자갈의 크기가 커지면서, 드디어 ‘귀신의 목(garganta del diablo)'이라는 지점에 이르렀다. 바위 산의 협곡이 시작되는 곳이다. 지진 여파로 산이 무너져서 협곡은 바위 덩어리로 가득했다. 더 이상 진행은 불가능이었다. 조금 있으니 바위들 사이로 모자를 쓴 인디오 한 명이 나귀를 끌고 내려온다. ‘꼬까’를 얼마나 씹었는지 입 주위가 시퍼렇고, 절반은 취한 상태다. '뿌에블라 꼬레아노'를 물으니, 연신 산 위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횡설수설이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이 일본인 거간꾼이 개입된 인신매매 조직망에 걸렸던 사건이 멕시코로의 이민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한 난민 대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페루의 ‘알레한드로 킴’일 수도, '뿌에블라 꼬레아노'의 난민일 수도 있다. 나에게 잠재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전쟁광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인간세상이 원망스럽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11-16 16:46:08[파이낸셜뉴스] 에너지 산업에서 '배럴'이란 단위는 석유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다. 나무 술통을 일컫는 단어로 시작했지만, 거대한 석유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글로벌 표준 단위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2일 업계에 따르면 배럴은 원유를 담는 용기이자, 원유 부피를 재는 국제 표준 측정 단위다. 1배럴은 일반적으로 42갤런, 약 159리터에 해당한다. 원유 거래에서 '배럴'이라는 단위가 쓰인 것은 석유 상업 생산이 시작된 이후부터다. 아주 옛날부터 기름이 거래됐지만, 거래량이 크지 않아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표준화된 기준은 찾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1859년을 기점으로 석유의 대량 상업 생산 및 소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해에 에드윈 드레이크가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에서 첫 유정(지표 아래에 묻힌 석유나 그 부산물을 채굴하기 위해 굴착한 시설)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추량이 늘어나면서 엄청나게 증가한 원유를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했고, 타이터스빌 지역은 산악지대라 원유 수송에 어려움이 따랐다. 게다가 원유 운송 및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석유개발·운송업자들이 각자 다르게 사용하던 측정 기준을 통일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에 석유개발업자들이 주변에서 구하기가 용이했던 위스키, 맥주, 소금 등을 담는 나무통 ‘배럴’에 원유를 넣어 강을 통해 운반하면서 배럴 운송이 시작됐다. 석유생산자협회가 1872년 배럴을 공식적인 표준 단위로 받아들이며 통용됐고, 1882년 미국 지질조사국 및 광산국이 공식적으로 채택하며 글로벌 표준이 됐다. 다만 현재는 파이프라인 등을 통해 나무 배럴보다 더 효율적으로 운송하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국제단위계(SI)를 따르며 '배럴' 대신 원유 거래 단위로 '리터'를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 원유 거래는 주로 미국 달러화로 이뤄져 여전히 '배럴’은 대표적인 원유 부피 측정 단위로 선호되고 있다. yon@fnnews.com 홍요은 기자
2024-11-01 17:43:09[파이낸셜뉴스] 서울 도심 한복판 인왕산과 안산의 멧돼지들이 밤에는 도심 가까운 저지대까지 내려와 먹이활동을 하고, 낮에는 주로 휴식을 취하는 뚜렷한 생활 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올해 1~7월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역 주변 인왕산과 안산에서 자체 개발한 '멧돼지 개체 탐지 기법'으로 멧돼지 생태를 조사했다고 27일 밝혔다. 국내 산악지형에 적합하게 개발된 이 기법은 무인기가 지정된 경로로 비행하며 멧돼지를 포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무인기와 무인 카메라를 활용한 이번 조사에서 멧돼지는 총 283회 촬영됐다. 조사 결과 멧돼지들은 낮과 밤의 뚜렷한 생활 패턴을 보였다.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 주간에는 55회 촬영됐는데, 이 중 38회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개나리 등 관목이 군락을 이룬 곳에서 32회, 등산로에서 20m 이내로 떨어진 경사지에서 8회 정도 휴식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반면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인 야간에는 228회가 포착됐고, 이 중 235회가 이동 중인 모습이었다. 숲길과 능선, 생태통로, 나무계단 아래 통로를 지나는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오후 10시 이후에는 도심과 가까운 저지대 능선까지 내려와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도 2차례 확인됐다. 사람을 피해 움직이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먹이활동은 주간과 야간에 각각 4회씩 포착돼 시간대와 관계없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참나무군락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 관찰됐다. 멧돼지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대는 오후 7시부터 오전 5시까지로, 이 시간대에 이동이나 먹이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자원관이 이번 조사 결과를 딥러닝 기술로 분석한 결과, 이 일대 멧돼지들은 높이 11m 정도의 높은 나무가 울창한 능선을 따라 이동하고, 낮은 나무가 우거진 급경사지에서 휴식하는 습성을 보였다. 이는 멧돼지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은신처로 활용하기 좋은 지형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원관은 28일부터 이번 조사로 확인된 멧돼지 경로와 서식지 예측 정보를 서울시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 자료는 생태통로를 개선하고 등산로와 산책로에 경고 표지판을 설치하는 등 멧돼지에 의한 피해를 예방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특히 멧돼지의 주요 이동 시간대와 경로가 파악된 만큼, 시민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2024-10-27 17:05:44한화시스템이 국내 기업 최초로 저궤도 위성용 위성 간 레이저 통신 장비(ISL) 개발 및 성능시험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우주 인터넷' 시대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수행한 '저궤도 위성용 ISL 장비의 첫 중거리(장비 간 거리 약 1.4㎞) 통신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15일 밝혔다. 시험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진행됐다. 지상시험은 우주 공간에 비해 대기 외란 등 통신 장애 요소와 날씨·지형 변수가 많다. 한화시스템은 지상시험을 바탕으로 1Gbps 전송 속도의 인터넷 원거리 접속에 성공함으로써 레이저 통신 운용성을 1차 검증했다. ISL은 초고속 '우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저궤도 위성통신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저궤도 위성에 탑재돼 위성 대 위성의 데이터를 '레이저'로 주고받으며 통신을 가능케 한다. 군집으로 운용되는 저궤도 위성 간 통신이 실현되면, 지상 기지국 1곳 만으로도 세계 어디서나 국경을 넘어 고속 통신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기존 지상 통신이 갖고 있던 산악·밀림·해양·극지대 등 오지 곳곳과 전쟁 시 통신단절 등의 문제를 대폭 해소할 수 있다. 특히 ISL 기술이 적용된 저궤도 위성은 스마트폰 무선통신에 쓰이는 전파가 아닌, 빛의 영역인 '레이저'를 이용해 통신하기 때문에 대용량의 데이터를 지연이나 끊김 없이 처리할 수 있다. ISL 기술은 현재 미국·독일·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 확보하고 있다. 스페이스X와 아마존 등 글로벌 항공우주기업을 중심으로 우주 인터넷 실현을 위한 'ISL 탑재 저궤도 위성 통신망' 구축이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 ISL 장비 개발 및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연내 고등광기술연구소 및 스위스 베른대학교 응용물리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우주 환경과 보다 유사한 해발 4000m 이상 산악 고지대에서 추가 ISL 성능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저궤도 위성통신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향후 미주·유럽 등 해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화시스템은 40년 이상 쌓아온 전자광학 및 레이저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2021년부터 광학·레이저 분야 국내 유일 전문 연구소인 GIST 산하 고등광기술연구소와 함께 ISL 관련 기술 개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2024-10-15 18:23:51[파이낸셜뉴스] 한화시스템이 국내 기업 최초로 저궤도 위성용 위성 간 레이저 통신 장비(ISL) 개발 및 성능시험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우주 인터넷' 시대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한화시스템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수행한 '저궤도 위성용 ISL 장비의 첫 중거리(장비 간 거리 약 1.4㎞) 통신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15일 밝혔다. 시험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진행됐다. 지상시험은 우주 공간에 비해 대기 외란 등 통신 장애 요소와 날씨·지형 변수가 많다. 한화시스템은 지상시험을 바탕으로 1Gbps 전송 속도의 인터넷 원거리 접속에 성공함으로써 레이저 통신 운용성을 1차 검증했다. ISL은 초고속 '우주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세대 저궤도 위성통신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저궤도 위성에 탑재돼 위성 대 위성의 데이터를 '레이저'로 주고받으며 통신을 가능케 한다. 군집으로 운용되는 저궤도 위성 간 통신이 실현되면, 지상 기지국 1곳 만으로도 세계 어디서나 국경을 넘어 고속 통신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기존 지상 통신이 갖고 있던 산악·밀림·해양·극지대 등 오지 곳곳과 전쟁 시 통신단절 등의 문제를 대폭 해소할 수 있다. 특히 ISL 기술이 적용된 저궤도 위성은 스마트폰 무선통신에 쓰이는 전파가 아닌, 빛의 영역인 '레이저'를 이용해 통신하기 때문에 대용량의 데이터를 지연이나 끊김 없이 처리할 수 있다. ISL 기술은 현재 미국·독일·일본 등 일부 선진국만 확보하고 있다. 스페이스X와 아마존 등 글로벌 항공우주기업을 중심으로 우주 인터넷 실현을 위한 'ISL 탑재 저궤도 위성 통신망' 구축이 시도되고 있다. 국내에서 ISL 장비 개발 및 성능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연내 고등광기술연구소 및 스위스 베른대학교 응용물리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우주 환경과 보다 유사한 해발 4000m 이상 산악 고지대에서 추가 ISL 성능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 저궤도 위성통신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향후 미주·유럽 등 해외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화시스템은 40년 이상 쌓아온 전자광학 및 레이저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2021년부터 광학·레이저 분야 국내 유일 전문 연구소인 GIST 산하 고등광기술연구소와 함께 ISL 관련 기술 개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2024-10-15 09:59:43라틴아메리카를 구성하는 인류문화의 두 생태 축은 안데스산맥과 아마존강이다. 두 축으로 엮어진 인간사가 라틴아메리카 이해의 근간이다. 종축으로 남행하는 안데스산맥은 볼리비아의 고원으로 연장되면서, '알티플라노'(고원이란 뜻)라고 불리는 해발 4000m 내외의 독특한 산악문화를 형성한다. 사용되는 주류 언어는 두 가지다. 종축에서 사용되는 케추아(Quechua)와 볼리비아로 연장된 횡축에서 사용되는 아이마라(Aymara), 두 언어의 접촉지대가 위치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티티카카'는 아이마라어로 '퓨마의 바위'란 뜻이다. 이 호수는 잉카의 신 비라코차(Viracocha)가 탄생한 곳이자 태양이 탄생한 곳이란다. 그래서 잉카의 태양숭배 종교를 지탱한다. 해발 3800m인 이 호수의 바닥에서 최근 신전 유구들이 발견됐다. 1998년 람사르협약 등록지가 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박사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전공하면서 수강한 과목의 내용에 '우로스=물에 뜬 섬마을'(Uros=a floating island village)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담당교수에게 질문을 했더니, 자신도 모르니 날더러 가보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채로 학생들에게 우로스의 이야기를 했고, 10년 동안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1986년 12월에 찾아갔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페루의 훌리아카이며, 두 줄 철조망으로 둘러친 운동장뿐이었으며, 곳곳에 검은색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 안중에 들어왔다. 화물도 모두 내 손으로 꺼내고 들고 나와야 하는 그야말로 시골 공항이었다. 나는 훌리아카로부터 푸노(Puno)까지 완행버스를 탔다. 훌리아카의 시장을 보고 골짝의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이 염소와 닭과 함께 타고 가는 버스다. 훌리아카부터 푸노까지는 양 옆으로 야마(라마가 아님)들이 풀을 뜯는 내리막길이고, 서서히 짙푸른 티타카카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푸노항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곳이며,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은 모두 물에 뜬 상태다. 무수한 세월 동안에 얽히고설킨 채로 자라는 풀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섬! '도토라'(dotora)라고 불리는 갈대 비슷한 풀의 원뿌리는 호수의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것이고, 매년 여름(12월부터 2월 사이)이면 불어나는 물에 떠내려온 흙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풀뿌리들과 조합된 섬이다. 여름에 호수의 수위가 상승하면 섬이 같이 뜬다. 섬 위에는 집도 있고, 손바닥만 한 채전에 퀴노아콩과 감자꽃도 피었고, 오리집도 있고, 개집도 있다. 밭의 흙은 새까맣다. 집은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이 모두 도토라로 엮은 거적때기를 이용했다고나 할까. 가장 큰 섬에는 학교도 있다. 우로스 공동체인 것이다. 모든 것이 풀로 되어 있다. 우거진 도토라 사이에 조금씩 지붕이 보이는 정도의 낮은 집들이다. 이곳의 가장 강력한 금기는 당연히 불을 다루는 것이며, 가장 이외에는 아무도 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케추아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채 손짓발짓으로 섬을 둘러보는데, 나를 따라다니던 카란사 영감님은 한사코 날더러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영감님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야마의 털실로 항상 뜨개질을 한다. 귀밑까지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짠다. 하룻밤이라도 지낼 욕심으로 못 알아들은 것처럼 버텼다. 해가 지면서 배들이 모여든다. 배도 도토라로 만들었다. 도토라는 취사를 위한 연료이기도 하고, 하얀 색의 어린 줄기는 샐러드로 일품이다. 집 옆에는 도토라를 잘라서 말리는 건조장이 있다. 건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나, 도토라로 용마루를 이은 정도이고, 그 아래에 도토라를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다. 고기 잡으러 나갔던 아들 내외도 돌아오고, 푸노에 나갔던 딸들과 부인도 돌아오고, 방은 금세 삼대가 이룬 가족원으로 가득 찼다. 방 안의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결코 수용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카란사 영감님이 한사코 나가라는 시늉을 했던 의도를 알았다. 더 이상 다니는 배도 없다. 방 안에 별다른 가구는 없다. 화덕을 가운데로 두고 여성들(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은 모두 모자를 쓴 채로 앉아서 잔다. 주변으로 남자들이 누웠는데, 손바닥만 한 빈틈도 없다. 해가 지면서 어두워진 호수 위로 후두둑 후두둑 찬비가 흩뿌린다. 카란사 영감님이 저녁을 먹으라고 접시를 내민다. 작은 동물 다리 한 개와 감자 세 알이 올려졌는데, 다리도 감자도 왜소하다.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고 밖으로 나가서 호수의 물에 손을 씻으면 된다. 감자는 작은 덩어리들이 약간 쫄깃한 듯한 맛이 있다. 수확한 감자를 그대로 보관하면 모두 썩어버리기 때문에, 그것들을 밭 위에 널어둔다. 가끔 주둥이에 멍에를 씌운 야마를 그 위로 걷게 한다. 야마의 발굽이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효과를 내면서 낮에는 마르고 밤에는 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마련된 감자는 장기간 보관되며, 이것이 '추뇨'라고 불리는 주식이다. 우로스에는 야마가 없다. 가능한 한 무게가 덜 나가는 삶을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축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좀 떨어진 타켈레 섬에는 야마를 많이 기른다. 나그네는 도토라 건조장을 하룻밤 숙소로 택했다. 도토라는 묶음으로 재여 있었다. 한 묶음을 빼니 공간이 생겼다. 영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티티카카 호수의 여름 밤을 앞뒤가 트인 도토라 덤불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카란사 영감님이 야마 털실로 짠 폰초를 갖다 준다. 잠이 올 리는 없고 호수 쪽을 보는데 물속에서 무엇인가가 상하로 왕복운동을 한다. 달빛에 어렴풋하게 비치는 실루엣은 두 마리의 쥐가 장난치는 모습이었다. 저녁으로 얻어먹었던 것! 아침에 일어나니 학교에서 종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작은 배를 저어서 등교한다. 수년 전에 그곳을 다녀온 아내의 말을 들으니, 이제 그곳에도 호텔이 생겼다고 했다. 푸노국립대학에 근무하는 이영미의 건안을 빌어본다. 푸노의 광산에서 독점하는 물 때문에 티티카카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종은 '제 눈에 못 박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나만 잘살기'에 몰입하고 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2024-10-07 18:12:53라틴아메리카를 구성하는 인류문화의 두 생태축은 안데스산맥과 아마존강이다. 두 축으로 엮어진 인간사가 라틴아메리카 이해의 근간이다. 종축으로 남행하는 안데스산맥은 볼리비아의 고원으로 연장되면서, ‘알티플라노’(고원이란 뜻)라고 불리는 해발 4000m 내외의 독특한 산악문화를 형성한다. 사용되는 주류 언어는 두 가지다. 종축에서 사용되는 꿰추아(Quechua)와 볼리비아로 연장된 횡축에서 사용되는 아이마라(Aymara), 두 언어의 접촉 지대가 위치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티티카카’는 아이마라어로 ‘퓨마의 바위’란 뜻이다. 이 호수는 잉카의 신 비라코차(Viracocha)가 탄생한 곳이자 태양이 탄생한 곳이란다. 그래서 잉카의 태양숭배 종교를 지탱한다. 해발 3800m의 이 호수의 바닥에서 최근에는 신전 유구들이 발견됐다. 1998년에는 람사조약으로 지정된 곳이 티티카카 호수다. 박사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전공하면서 수강한 과목의 내용에 '우로스=물에 뜬 섬마을'(Uros= a floating island village)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담당교수에게 질문을 했더니, 자신도 모르니 날더러 가보라고 했다. 나도 모르는 채로 학생들에게 우로스의 이야기를 했고, 10년 동안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1986년 12월에 찾아갔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페루의 훌리아카이며, 두 줄 철조망으로 둘러친 운동장뿐이었으며, 곳곳에 검정색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상황이 안중에 들어왔다. 화물도 모두 내손으로 꺼내고 들고 나와야 하는 그야말로 시골 공항이었다. 나는 훌리아카로부터 뿌노(Puno)까지 완행 버스를 탔다. 훌리아카의 시장을 보고 골짝의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이 염소와 닭과 함께 타고 가는 버스다. 훌리아카부터 뿌노까지는 양 옆으로 야마(라마가 아님)들이 풀을 뜯는 내리막길이고, 서서히 짙푸른 티타카카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뿌노항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곳이며,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섬은 모두 물에 뜬 상태다. 무수한 세월 동안에 얽히고 설킨 채로 자라는 풀들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룬 섬! ‘도또라'(dotora)라고 불리는 갈대 비슷한 풀의 원뿌리는 호수의 바닥으로부터 올라온 것이고, 매년 여름(12월부터 2월 사이)이면 불어나는 물에 떠 내려온 흙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풀뿌리들과 조합된 섬이다. 여름에 호수의 수위가 상승하면 섬이 같이 뜬다. 섬 위에는 집도 있고, 손바닥만한 채전에 뀌노아콩과 감자꽃도 피었고, 오리집도 있고, 개집도 있다. 밭의 흙은 새까맣다. 집은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이 모두 도또라로 엮은 거적대기를 이용했다고나 할까. 가장 큰 섬에는 학교도 있다. 우로스 공동체인 것이다. 모든 것이 풀로 되어 있다. 우거진 도토라 사이에 조금씩 지붕이 보이는 정도의 낮은 집들이다. 이곳의 가장 강력한 금기는 당연히 불을 다루는 것이며, 가장 이외에는 아무도 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꿰추아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채 손짓발짓으로 섬을 둘러보는데, 나를 따라다니던 까란사 영감님은 한사코 날더러 나가라는 시늉을 한다. 영감님의 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야마의 털실로 항상 뜨개질을 한다. 귀밑까지 가릴 수 있는 모자를 짠다. 하룻밤이라도 지낼 욕심으로 못 알아들은 것처럼 버텼다. 해가 지면서 배들이 모여든다. 배도 도또라로 만들었다. 도또라가 취사를 위한 연료이기도 하고, 하얀 색의 어린 줄기는 샐러드로 일품이다. 집 옆에는 도또라를 잘라서 말리는 건조장이 있다. 건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나, 도또라로 용마루를 이은 정도이고, 그 아래에 도또라를 차곡차곡 쌓아 두고 있다. 고기 잡으러 나갔던 아들 내외도 돌아오고, 뿌노에 나갔던 딸들과 부인도 돌아오고, 방안에는 금새 삼대가 이룬 가족원으로 가득 찼다. 방안의 한쪽 구석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결코 수용될 수 없었다. 그제서야 까란사 영감님이 한사코 나가라는 시늉을 했던 의도를 알았다. 더 이상 다니는 배도 없다. 방안에 별 다른 가구는 없다. 화덕을 가운데로 두고 여성들(할머니부터 아이들까지)은 모두 모자를 쓴 채로 앉아서 잔다. 주변으로 남자들이 누었는데, 손바닥만한 빈틈도 없다. 해가 지면서 어두어진 호수 위로 후두둑 후두둑 찬비가 흩뿌린다. 까란사 영감님이 저녁을 먹으라고 접시를 내민다. 작은 동물 다리 한 개와 감자 세 알이 올려졌는데, 다리도 감자도 왜소하다.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고 밖으로 나가서 호수의 물에 손을 씻으면 된다. 감자는 작은 덩어리들이 약간 쫄깃한 듯한 맛이 있다. 수확한 감자를 그대로 보관하면 모두 썩어버리기 때문에, 그것들을 밭 위에 널어둔다. 가끔 주둥이에 멍에를 씌운 야마를 그 위로 걷게 한다. 야마의 발굽이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효과를 내면서 낮에는 마르고 밤에는 어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마련된 감자는 장기간 보관되며, 이것이 ‘츄뇨’라고 불리는 주식이다. 우로스에는 야마가 없다. 가능한 한 무게가 덜 나가는 삶을 사는 곳이기 때문에, 가축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력이 없다. 좀 떨어진 타켈레 섬에는 야마를 많이 기른다. 나그네는 도또라 건조장을 하룻밤 숙소로 택했다. 도또라는 묶음으로 재여 있었다. 한 묶음을 빼니 공간이 생겼다. 영하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티티카카 호수의 여름 밤을 앞 뒤가 트인 도또라 덤불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까란사 영감님이 야마 털실로 짠 폰쵸를 갖다 준다. 잠이 올리는 없고, 호수 쪽을 보는데, 물 속에서 무엇인가가 상하로 왕복 운동을 한다. 달빛에 어렴풋하게 비치는 실루엣은 두 마리의 쥐가 장난치는 모습이었다. 저녁으로 얻어먹었던 것! 아침에 일어나니 학교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작은 배를 저어서 등교한다. 수년 전에 그곳을 다녀온 아내의 말을 들으니, 이제 그곳에도 호텔이 생겼다고 했다. 푸노국립대학에 근무하는 이영미의 건안을 빌어본다. 푸노의 광산에서 독점하는 물 때문에 티티카카의 일부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종은 ‘제 눈에 못박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나만 잘살기’에 몰입하고 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2024-09-30 14:04:42[파이낸셜뉴스] 델타항공이 인천-솔트레이크시티 최초 직항 노선을 취항하며 미국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문을 개설한다. 델타항공은 2025년 6월12일부터 인천국제공항(ICN)-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SLC) 직항 노선을 최초로 신규 취항한다고 9월 30일 밝혔다. 미국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티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직항 노선이다. 직항 노선이 취항하면 미국 서부 산악지대와 남서부 지역 여행객에게 아시아 전역의 주요 목적지를 쉽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해당 노선은 델타항공의 최첨단 에어버스 A350 항공기가 투입된다. 이번 ICN-SLC 신규 노선은 △애틀랜타 △디트로이트 △미니애폴리스 △시애틀에 이어 미국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델타항공의 다섯 번째 미국행 직항 노선이다. 이번 신규 취항으로 델타항공은 조인트벤처 파트너인 대한항공과 함께 14개의 미국 취항지와 서울을 연결하게 된다. 조 에스포시토 델타항공 네트워크 기획 담당 수석부사장은 "인천-솔트레이크시티 노선의 신규 취항을 통해 고객들은 델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더욱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서울 여행에 대한 거의 모든 미국 수요를 직항 또는 1회 경유 서비스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델타는 대한항공과의 조인트벤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독보적인 연결성을 제공해 미국 내 승객들을 포함한 모든 고객들이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의 주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델타항공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타 항공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항공편을 운영할 계획이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2024-09-30 10:2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