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위 생산능력과 밸류체인을 자랑하던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붕괴는 예고된 일이다. 20여년간 기존 주력산업에 안주하다 산업재편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다.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설비투자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은 차별화된 경쟁력을 잃었다. 정부의 대책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체질전환까지는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업계는 3조원 규모 정책금융,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등이 골자였던 지난해 12월 윤석열 정부 때 대책과 무엇이 달라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율 구조조정 사실상 실패 19일 정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석유화학은 반도체와 함께 오랫동안 한국의 '수출 효자'였다. 2000년 수출 90억달러에서 2024년 500억달러까지 성장하며 주요 품목 3위를 지켰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중국의 에틸렌 생산설비 규모는 5000만t을 넘어서 10년 만에 3배로 커졌고, 이미 글로벌 수요보다 30% 이상 과잉생산되고 있다. 대규모 정유·석화(COTC) 통합 플랜트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선 중동 국가도 밸류체인을 내재화하면서 생산단가를 한국산의 절반 가격으로 낮춰버렸다. 결국 우리는 저유가에 과잉공급이 겹쳐 수출단가가 1년 새 13%나 떨어졌고 수출액도 30억달러대로 10%나 하락했다. 석유화학업에 대한 위기의식은 지난 2020년대 초부터 확대됐다. 그러나 국제유가와 글로벌 수요에 따라 석유화학 경기가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업계는 물론 정부도 산업재편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장치산업인 석유화학은 고용유발 효과가 조선·철강·자동차에 비해 낮다는 점도 정부가 구조조정에 느슨했던 이유로 꼽힌다.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니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이미 설비의 최대 40% 이상을 놀리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최근 국내 석유화학 시설을 24% 줄여야 한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도 같은 맥락이다. ■李 정부 제조업 재편 첫 시험대 우리가 반면교사를 삼을 수 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석유화학 강국인 일본도 긴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 고육책으로 꺼낸 것은 공동 운영과 감축이다. 유한책임사업조합(LLP) 방식인데 다수의 기업이 공동 출자해 핵심설비를 함께 운영하는 것으로 정부와 기업이 반반씩 개입한 형태다. 공정거래법 규제를 크게 손대지 않으면서 과잉설비를 통폐합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묘안인 셈이다. 정부는 당국이 주도해 민간기업 설비를 통폐합하는 식의 구조조정에는 신중하다. 결과에 따른 책임 소재가 큰 데다 민간기업 간 빅딜 정책을 경험한 공무원도 거의 없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와 금융을 지원하는 판을 깔아줄 테니 업계가 먼저 통폐합에 자율적으로 합의하라는 방안이 가장 유력한 이유다. 문제는 대기업 위주로 수십년 구축된 석유화학 업계의 자율적 통폐합과 인수합병(M&A)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천NCC 대주주가 신규 투자를 놓고 싸운 것과 같이 그룹사 시너지와 이해 등이 맞물려 상징적인 몇 건의 통폐합 선언은 있을 수 있지만 온전히 자율적인 구조개편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독과점 업체 간 합병 등을 엄격히 제한한다. 수조원을 들여 투자한 대규모 장치를 폐쇄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여수, 대산, 울산 등 산업도시에 밀집된 만큼 연착륙이 아닐 경우 지역경제에 미칠 후폭풍도 변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석유화학의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정부가 어중간하게 개입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재편의 밑그림(로드맵)을 제대로 그리고 △담합·독과점 등 공정거래법 제재 완화 △위기산업 구조조정 특례 등 법 개정 △관련 규제 폐지와 자발적 사업재편 시 인센티브 △금융 및 무역보험 특례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주력산업 업그레이드 전략을 보면 석유화학 산업은 고기능성 특화, 저·무탄소 제품(화이트바이오)으로 차별화하고 탈탄소 생산공정 전환이 시급하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범용 업스트림 생산시설 폐쇄 후 친환경·고부가사업으로 재투자하기 위한 제도를 개선하고, 기업 간 인수합병 활성화에 필요한 법·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일본식 석유화학 재편 해법은 40여년 전 모델이고, 한국식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박지영 기자
2025-08-19 18:15:51정부가 장기불황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의 구조개편 방안을 이달 중 내놓기로 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부 지원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무차별 지원은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의 연명을 허용해 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업의 경쟁력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른 전방위 지원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장기불황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산업의 구조개편 방안을 이달 중 내놓는다. 산업부는 "지난달부터 산업부 1차관이 10여개 기업 대표를 개별 면담하면서 석유화학 분야 사업재편에 대해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8월 중 석유화학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정부 방침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핵심산업 중 하나인 석유·화학 산업이 글로벌 수요부진과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상당히 큰 위기"라며 "관계부처는 석유화학 재편 종합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하도록 해달라. 관련 기업도 책임감을 갖고 동참해달라"고 당부했다. ■예견된 위기…"기업 책임 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날 조선 산업이 2010년대 후반 수주절벽 시기를 자구노력과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한 것을 언급하면서 "석유화학 기업들도 이를 거울 삼아 석화 업계 공동의 노력과 책임 있는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정부가 범부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업계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석유화학 업황 악화는 3년 전부터 예견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석유화학 업황 악화는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며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단기 호황에 의존하고 설비와 제품 구조 혁신을 미뤘으며 원가절감, 사업 다변화 전략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도 "코로나19 호황기에 현금을 충분히 비축하지 못하고 '치킨게임'에 머문 업계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요건 충족 기업만 지원해야" 다만 석유화학 산업을 포기할 순 없는 만큼 대학 통폐합 사례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만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합병·설비 감축·고부가 전환을 위한 신규 투자설비를 갖춘 기업에 한해서만 지원해야 한다"며 "기존 설비 유지나 인건비 지급을 위한 지원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업계가 유휴설비 통폐합 계획을 제시하고 실행에 착수하면 그 이행을 전제로 재정·정책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정부 지원의 전제는 단순 감축이 아니라 통폐합 실행이며, 이를 통해 경쟁력이 있는 라인은 살리고 중복·비효율 설비는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 인하와 같은 단기 지원책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전기요금 인하 같은 단기 지원책은 일시적으로 적자를 줄일 수 있으나 근본적 회생책이 될 수 없다"며 "설비 감축과 함께 소재 고도화와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도록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의식한 무분별한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정치적 고려에 따른 전방위 지원이 이뤄질 경우, 산업 재편이 지연되고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이동혁 기자
2025-08-14 18:15:27DL그룹과 한화그룹의 합작사인 여천NCC(YNCC)가 DL의 긴급 자금지원으로 부도 위기를 넘겼다.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 다시 유동성 위기가 불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21년 영업이익 3871억원을 기록한 YNCC는 이후 중국의 공급 과잉과 불황으로 3년 연속 적자를 냈다. 이번에 유상증자 형식으로 받은 2000억원을 포함, YNCC가 DL과 한화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은 5000억원에 이른다. 시장 상황이 쉽사리 바뀌기도 어려워 추가 지원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한마디로 밑빠진 독이다. 이 기업은 LG화학·롯데케미칼에 이은 국내 3위의 에틸렌 생산기업으로, 연간 3000억~1조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던 알짜 회사였다. 석유화학은 업종 전체로 보면 지난해 약 480억달러(약 66조6000억원)의 수출을 달성할 정도로 반도체, 자동차, 일반 기계에 이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지만 중국과 중동의 공세로 하루아침에 사정이 급변했다. 여러 대기업집단이 석유화학 계열사를 갖고 있어 여파는 각 그룹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한 롯데케미칼의 부실로 롯데그룹의 위기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 정도에 그치면 다행이겠지만 석유화학 산업의 경영난은 우리 경제 전체를 뒤흔들 여지도 있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석유화학 사업 재편 컨설팅 용역을 진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해 "이대로라면 현재 석화기업의 50%는 문을 닫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여수와 서산 등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의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관련 산업과 협력업체들까지 더해 수십만명에 이르는 고용인력의 실직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태도는 수수방관이라고 할 만큼 안이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석유화학 업계 등에 총 3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그 이후 8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공백이 지속됐고 미국과의 관세협상 등 더 급한 일이 있긴 했으나 그것이 이유가 될 수 없다. 비단 YNCC뿐만 아니라 석화업체 10여곳 모두 경영난에 빠져 있다. 산업 구조적인 문제로 개별 기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정부가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 석화산업의 전면적인 구조개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기업의 자체적 자구 노력을 기대하고 맡겨둘 일은 아니다. 우리는 세계 7위 국적선사였던 한진해운이 경영난으로 최종 파산 처리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금융논리만 앞세운 정부의 무대책과 오판으로 한국 해운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말았다. 그사이 일본과 대만은 정부가 나서서 경영난을 겪던 해운사들을 합병하고 규모를 키워 위기를 넘겼다. 석화산업이 한진해운 사태의 재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느 산업이든지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대응한 정부 차원의 선제적 구조개편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필수적 절차라고 본다. 수많은 재벌이 와해 지경에 놓였을 때 정부가 고통을 감내하며 과감한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 한국 경제 전체의 붕괴를 막고 금세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외환위기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사태가 더 커지기 전에 정부는 석화산업의 경영난에 대해 종합대책을 내놓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2025-08-12 19:04:33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사상 최악의 부진 속에 정부의 환경규제 강화까지 더해지며 이중고에 직면했다. 중국·일본이 공급과잉 해소를 위해 설비 감축과 규제완화에 나선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등 기업의 부담을 높이는 정책이 추진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는 경쟁국처럼 구조조정 지원과 제도 완화를 병행해야 제2의 여천NCC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 ■석화 4사 상반기 4762억 적자…구조조정·규제완화 절실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4사(롯데케미칼·LG화학·한화솔루션·금호석유화학)의 올해 상반기 합산 영업손실은 4762억원으로, 전년(700억원) 대비 약 7배 증가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발 공급과잉, 원가 부담 심화가 겹치며 업황이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환경부가 이달 발표할 예정인 '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계획'에서 석유화학 업종의 유상할당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무상 배정되던 온실가스 배출권을 비용을 받고 할당하면 사실상 추가 세금 부담으로 이어져 적자 폭이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유상할당을 통해 기업의 감축 투자 유인을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업계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규제 강화가 고정비 부담을 키워 여천NCC 사례처럼 자금위기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부터 시행될 4차 배출권거래제에서 석유화학 업종이 유상할당 업종으로 포함될 경우 여천NCC와 같은 사태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中·日은 법 완화·재정 지원, 한국만 발 묶인 구조조정이에 해외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 주도의 법 개정과 규제완화가 병행된 만큼 국내 역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은 최근 3년간 국내 생산능력의 2배에 달하는 에틸렌 2500만t 규모 설비를 증설했으나 공급과잉이 심화되자 지난 7월 중앙재정경제위원회 회의 이후 감산에 돌입했다. 이와 함께 노후설비 기준을 '30년 이상'에서 '20년 이상 또는 설계수명 도달'로 완화해 폐쇄·개보수의 근거를 마련했다. 일본은 1980년대 초 오일쇼크 여파로 석유화학 산업 수익성이 악화하자 공정거래법 적용을 한시 유예해 기업결합(M&A) 장벽을 완화하고 구조조정을 지원했다. 현재도 동북아 지역의 공급과잉에 대응하기 위해 4개 산업단지에서 크래커 업체 통합과 설비 합리화를 추진 중이며, 전체 생산능력의 37%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시장점유율 50% 이상 기업의 결합이 독과점 행위로 간주돼 공정위 시정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담합금지 규정으로 인해 사업재편 과정에서 업체 간 협의가 제한돼 대기업 주도의 '석유화학 빅딜' 성사가 어렵다는 평가다. 업계는 구조조정 지원과 함께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환경규제도 완화해야 고부가가치 제품과 친환경 소재에 대한 투자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수합병이 이뤄지면 세금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중국·일본처럼 공정거래법 완화 등 제도개선이 병행돼야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박신영 기자
2025-08-12 18:31:26산업의 중심축이던 석유화학 업계가 고사 위기에 빠졌다. 중국발 공급 과잉에다 설비의 경쟁력 하락으로 대수술이 요구된다. 이에 2일 국회에서 '석유화학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재편'을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석화산업 구조개편 방안이 다수 제기됐다. 원가 경쟁력과 제품 생산라인 합리화를 중심으로 한 산업 재편이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사실 석화산업의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정부도 벼랑 끝에 몰린 현실을 알면서도 근본적 처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최근 정치적 혼란으로 석화산업 재편 논의는 중단됐다.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 이상 더 방치하지 말고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산업구조 개편은 시장자율 경쟁에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기업과 기업 간 인수합병이라면 모르겠지만 산업구조 개편은 한 국가의 산업 생태계를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은 복잡다단해 개편이 쉽지 않다.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공기업도 연결돼 있다. 에너지산업의 전체 판으로 보면 원전을 포함한 국가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유소와 소비자 등 생활 전반에도 여파가 있을 수 있다. 자율 구조조정에 맡겨선 안 되는 이유가 또 있다. 기업은 속성상 손해 볼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체 보유한 자산 가치는 높게 평가하고 상대편 가치는 낮추려 한다. 결국 청산이나 통폐합 관련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경쟁사와 정부의 눈치만 보며 사업 구조조정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좌고우면하고 있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가 키를 쥐고 석화산업의 대대적 개편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구조개편을 주도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무조건 효율성 잣대만 들이대 통폐합을 강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효율화만 추구하는 다운사이징 방식으로 밀어붙이다가는 우리나라 석화산업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도태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석화산업을 핵심 산업으로 유지하면서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다운사이징 구조조정을 넘어서 통폐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 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 주도 구조개혁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효과가 클 것이다. 이미 중동과 중국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설비 고도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정제기술과 시설 수준이 뛰어나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됐다. 하루빨리 중복되고 낡은 설비에 대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시에 경쟁력 있는 제품 개발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새로 고부가가치 제품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으면 기업 규모를 가리지 말고 전폭적인 지원으로 밀어줘야 한다. 특정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특혜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으나 잘못된 시각이다. 나프타는 흔히 '산업의 쌀'로 불린다. 자동차·가전·생활용품 등 모든 제품에 석화 원료가 필요하다. 농업에 대한 정부 지원의 목적이 식량주권 확보라는 대의(大義)이듯이 석화산업 보호도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큰 뜻으로 바라봐야 한다. 기업 간 자율 협의에 맡겨뒀다간 이해득실만 따지다 시간만 허비할 수 있다. 석화산업 부활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정부는 구조개편에 속도를 내기 바란다.
2025-07-02 18:28:54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석유화학 산업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대산·울산 등 주요 산업단지에서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신청을 서두르고 있다. 다만 현행 제도가 중소기업 위주로 설계돼 정유·석화 대기업은 지원에서 제외되고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충남 서산 대산과 울산광역시 남구는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을 위한 사전 검토와 자료 수집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아직 정식 신청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자체 주도로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울산은 구(區) 단위 신청이 가능한 만큼 남구 차원의 추진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은 지자체가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서를 제출하면 정량 평가를 거쳐 지정 여부가 결정된다. 지정된 기업에는 △정책 자금 △세제 감면 △고용유지지원금 △규제 유예 등 패키지 지원과 함께 공공기관 우선구매 및 입찰 가점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다만 대부분의 지원책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면서, 실제 지역 고용과 생산을 책임지는 대기업은 소외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회원사 상당수가 대기업인데, 지금처럼 대기업이 배제되는 구조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중소기업 지원도 중요하지만, 산업 위기를 함께 겪는 대기업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대산석유화학단지에는 HD현대오일뱅크·LG화학·롯데케미칼·한화토탈에너지스 등 주요 정유·석유화학 기업이 입주해 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정유와 석유화학 업종의 부가가치는 각각 10조1000억원, 4조6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정유·석화 중심의 단일 산업 구조로 인해 경기 침체 시 충격이 집중되는 구조적 취약성도 지적된다. 서산시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산유화단지의 내국세 납부액은 전년 대비 35% 이상 줄어든 3조2750억원에 그쳤고, 지방세는 291억원으로 전년(665억원) 대비 절반 이상 감소했다. 울산에는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롯데케미칼·LG화학 등 대형 정유·석화 기업이 다수 입주해 있지만, 자동차·조선 등 산업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돼 있어 대산에 비해 위기 대응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는 지역별 산업 구조에 맞춘 차등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울산은 산업이 다변화돼 위기 대응 여력이 있는 반면, 대산은 석유화학 의존도가 높아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획일적 기준보다는 산업 특성과 지역 여건을 반영한 유연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용 측면에서도 이들 산업단지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울산 국가산업단지 고용 인원은 9만7564명으로, 전국 39개 국가산단 가운데 서울·시화·반월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
2025-06-08 18:16:28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가 산업지원 후속대책 발표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초 6월로 예정돼 있던 후속대책 발표가 조기대선 일정으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후속대책 발표 시기가 하반기로 넘어갈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3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의 후속대책은 6월에 발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6월 3일에 갑작스럽게 조기대선 일정이 잡히면서 후속대책 발표가 아예 하반기로 밀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6월에 대선이 잡히면서 후속대책 발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며 "대책 발표를 앞당기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새 정부 출범과 내각 구성, 인수위 운영 등으로 하반기 정책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상반기 중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업계 공감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협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함께 TF를 꾸려서 후속대책을 논의 중인데 6월에 대선이 치러지고 각 부처 수장이 모두 교체되고 나면 TF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그간의 논의 과정이 무위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는 정부의 후속대책의 기반이 되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방안과 관련한 업계 자체 컨설팅 보고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이달 중 한국화학산업협회가 정부에 전달하면 이를 바탕으로 정부에서는 후속대책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었다. 이에 업계는 △세제 지원 △금융지원 확대 △설비 전환 등 현실적 요구사항을 중심으로 보고서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역시 지난달 24일 '석유화학산업 위기극복 긴급과제'를 산업부에 제출하며 구체적인 실행안 발표를 강조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지원대책이 번번이 정치 일정에 발목이 잡히면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냉소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12월 정부가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방안 역시 12월 3일 계엄 여파로 미뤄지다 가까스로 발표된 바 있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계엄 여파로 계속 미뤄지다 겨우 해를 넘기지 않고 발표됐던 경쟁력 제고방안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나온 후속책에 얼마나 충실한 내용이 담겼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
2025-04-13 18:06:27[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위기에 직면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 기업결합 금지 조치 예외 등을 담은 긴급과제를 정부에 제안했다. 한경협은 지난해 12월 말 발표된 정부의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방안(정부 지원안)'에 대한 주요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석화산업 위기극복 긴급과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고 24일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정부 지원안의 구체적인 실행안을 올 상반기 중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한경협은 이번 긴급과제가 정부의 실행안에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경협이 제출한 주요 과제는 △원가 부담·과세 완화 △경영환경 개선 △고부가·저탄소 전환 지원 등 3개 분야 13건이다. 원가 부담·과세 완화를 위한 세부과제는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 대한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 △위기업종 사업재편 시 양도차익 과세이연 기간 연장 등이다. 지난해 10월 산업용 전기요금이 1㎾h당 165.8원에서 182.7원으로 10.2% 인상되면서 제조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반면 주요 경쟁국은 자국 내 제조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을 추진하고 있다. 한경협은 정부재원과 기금을 활용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에 대한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을 요청했다. 한경협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내 사업재편 관련 자산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를 사업을 폐지할 때까지 과세이연을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경영환경 개선을 위한 세부 과제로는 신속하게 사업을 재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존 정부 지원안은 합작법인 설립, 인수합병(M&A) 등 기업결합심사의 신속한 진행을 위해 공정위 사전컨설팅을 지원하거나 산업부·공정위 간 공동협의 채널을 운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한경협은 석유화학산업의 신속한 사업재편을 위한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라고 봤다. 예컨대 국내 석유화학업체가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동종 사업장 간 통폐합을 할 경우 시장점유율이 상승해 기업결합이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한경협은 공정거래법 내 석유화학산업 등 위기업종의 사업재편에 따른 기업결합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고부가·저탄소 전환을 위한 세부과제는 △친환경기술의 국가전략기술 상향 △석화산업 파일럿·실증 컴플렉스 조성 지원 등이다. 범용제품 위주의 국내 석유화학업계 사업구조는 중국·중동 지역과 경쟁 심화로 고부가가치·저탄소 제품으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한경협은 이를 위해 오염방지·자원순환, 바이오화 등 신성장·원천기술을 국가전략기술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성장·원천기술이 국가전략기술로 상향되면 사업화 시설 투자금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3~12%에서 15~25%로 상향된다. 또 한경협은 정부 주도로 파일럿·실증 컴플렉스를 구축할 수 있는 공용부지를 확보하고, 폐수처리 시설 등 생산공정 보조시설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범용품 중심의 수출 의존형 성장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석유화학산업의 생존과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재편이 시급하기 때문에 관련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에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soup@fnnews.com 임수빈 기자
2025-03-24 09:02:15최근 석유화학업계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바람을 타고 근무방식을 4조2교대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4조2교대 근무방식 전환을 추진하는 LG화학 외에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도 기존 4조3교대 근무방식에서 4조2교대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수지역 석화사 4조2교대 바람 8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여수지역 석유화학사들 내부에서 기존 4조3교대에서 4조2교대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으면 내년 하반기 내 여수공장을 중심으로 4조2교대의 파일럿 운영(시범운영)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 최종 확정은 안됐지만 현재 해당 근무방식 도입 여부를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고연차 직원보다는 저연차 직원들의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롯데케미칼 노조 측은 근무방식 전환을 섣불리 시행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버스시간, 식대, 휴가, 근로시간, 연차, 휴가, 하계휴가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 협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여수공장을 포함, 다른 지역 공장들의 4조2교대 전환도 검토하고 있다. 한화솔루션도 올해 4조2교대 파일럿 운영을 목표로 최근 이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했다. 대상은 여수지역 공장 근무자 가운데 교대근무자 430여명으로, 52% 찬성과 48% 반대로 부결됐다. 이 제도가 통과되기 위해서는 투표 참여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한화솔루션은 올해는 4조2교대 시행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주변 석유화학사들과 내년 조합원들의 설문조사 등을 통해 다시 전환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저연차-고연차 입장차 극복이 과제 석유화학사 상당수가 근무방식 전환을 검토했음에도 실제 도입까지 간 사례가 적은 이유는 저연차와 고연차의 견해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한 번에 일하고 오래 쉬는 방식을 선호하는 저연차는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 더 많았던 반면 4조2교대 방식이 힘든 고연차는 반대표를 던진 사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공장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고연차들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셈이다. 실제로 한화솔루션의 경우 투표자 중 과반수(50.8%)가 50대 이상인 반면 2030세대는 35.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흐름에도 4조2교대로 전환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 SK지오센트릭 등 현재 해당 근무방식을 도입한 곳들이 아직까지 운영하고 있는 데다 아직 도입되지 않은 회사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GS칼텍스의 4조2교대가 4조3교대로 원상복귀했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여수지역 석유화학업계 근로자는 "(4조2교대를) 무작정 시행할 수는 없지만 현재 다른 산업계에서도 적용되는 추세"라면서 "(올해가 아니더라도) 전환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jh0109@fnnews.com 권준호 기자
2023-02-08 18:11:54올해 정유업계는 2월부터 러시아산 석유제품 금지 조치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과 중국발 수요 회복 등으로 예년보다 안정적 실적이 기대된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요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공급과잉 우려가 불거지며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유, 정제마진-항공유 등 수요회복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유사의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배럴당 6~8달러 선으로 예상된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을 제외한 마진으로, 보통 4달러 전후가 손익분기점이다. 올해 정제마진은 정유업계에 역대급 실적을 뒷받침했던 지난해 초호황보다는 낮지만 준수한 수준의 이익개선이 기대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2월부터는 러시아산 석유제품 금지 조치로 석유제품 수급이 타이트해지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 탈피에 따른 석유수요 증가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글로벌 여객수요 회복에 따른 항공유 수요 증가도 호재로 거론된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은 올해 전 세계 석유 소비가 작년보다 대비 약 1.7%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도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정제마진이 사상 최대 수준까지 올랐던 지난해보다는 낮지만 예년보다는 높은 수준의 실적이 기대된다"면서 "다만 글로벌 경기침체 등은 리스크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유업계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원유 수입처 다변화,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에 나설 계획이다. 신규 정제설비 투자보다는 석유화학산업 및 친환경 에너지산업 등의 비정유 부문과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설비 중심의 투자 확대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석화, 수요부진-공급과잉 악재 우려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요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개선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석유화학제품 수요 감소 및 공급과잉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조용원 산업연구원 소재·산업환경실 연구위원은 "주요국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추세"라면서 "지난해 말까지 한국, 중국, 아세안 지역 내 생산시설 신증설로 공급 규모가 확대됐고 중동 및 미국산 제품의 동아시아향 유입량도 증가하는 가운데 수요 감소가 뚜렷한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동북아 지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1년 6138만t에서 지난해 6837만t으로 11.4% 증가하면서 아시아 역내 수급상황 악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증설물량이 집중돼 있다. 올해도 상당한 규모의 증설이 예정돼 있는데 2023년 전 세계 에틸렌 생산능력은 2만2698만t으로 전년 대비 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글로벌 에틸렌 생산능력 증설량이 4.9%였던 점을 감안하면 공급과잉에 따른 추가 수급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2021~2023년 에틸렌 증설물량 중 68%가 동북아 지역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국내 NCC 업체들의 스프레드 감소에 따른 가동률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등 대표적인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수익성 축소도 예상된다. 위정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동북아 지역의 예상 폴리에틸렌 증설물량은 230만t으로, 2022년 대비 5.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현재 미주와 유럽지역 화학제품 수요 약세로 동북아 지역 외 수출 확대가 가능한 시장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공급과잉에 따른 스프레드 약세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2023-01-10 18: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