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현주엽 휘문고 농구부 감독이 자신의 자녀들이 활동하는 휘문중 농구부에 갑질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학부모들이 반박했다. 이들은 오히려 휘문중 농구부 A감독이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고발했다. 26일 휘문고 농구부 학부모들은 한국경제에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의 미래는 염두에 없이 그저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몰두하는 그들의 뒷모습이 어떤지를 제대로 밝혀 이 사태가 빨리 정리되고 학생들은 본연의 자리에서 공부와 운동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며 A감독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에게 확인한 결과, A감독은 학생을 라이터를 머리로 때리거나 머리 박아 체벌 정도는 가볍다고 느낄 정도로 폭언과 폭행, 가혹행위가 일상이었다”면서 “‘그럴 거면 성전환하고 여고 농구부에 가라’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목발을 하는 선수를 머리 박아 체벌을 시키는 것은 물론 욕이 일상이었고, 심한 체벌을 견디지 못한 학생이 못하겠다고 하자 학생을 끌고 농구부실로 끌고 가 골프스윙연습기로 때리고 우산으로 찌른 적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중학교 지도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폭언과 욕설은 물론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일을 저희 학부모들이 확인한 것만 수십차례가 넘는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2020년 6월 훈련일지를 갖고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머리를 가격하고, 멱살을 잡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교육청 민원 때문에 특정 학부모가 소집된 자리에서 민원인으로 의심되는 학부모에게 욕을 하며 “어머니 어디 선보러 가세요?”라고 수치심을 느낄만한 발언을 했다고도 주장했다. 휘문고 농구부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폭언, 폭행, 가혹행위는 수십 건에 이른다”며 “저희 학부모 일동은 휘문중 A감독을 경찰에 고소한다. 유명하니까 공격하고 보는 행태는 바로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27일 휘문고 농구부 감독으로 부임한 현주엽이 방송 촬영 등을 이유로 훈련과 연습경기에 불참하는 등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탄원서가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됐다. 현주엽이 지난해 11월 부임 이후 ‘먹방’ 촬영 등을 이유로 훈련과 연습경기에 자주 불참하고, 자신의 고교 선배를 보조 코치로 선임해 사실상 훈련을 맡도록 했다고 주장한 내용이 담겼다. 또한 현주엽이 자신의 아들 2명이 소속된 휘문중 농구부 업무에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에 대해 현주엽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히며 감독 부임 후 방송 활동을 늘리지 않았고, 촬영 역시 일과 이후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했다고 해명했다. 휘문고 농구부 학부모들 역시 “현 감독은 촬영으로 인해 훈련에 빠질 경우가 아니라도 늘 야간 훈련 또는 주말 훈련에 감독이 참석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라며 “전임감독에 비해서도 훈련 시간과 훈련량이 월등히 많았다”라고 의혹을 해명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3-26 05:22:22[파이낸셜뉴스] 최근 성전환 선수들의 여성 경기 참여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한 고등학교 여자부 농구경기에서 압도적인 체격과 힘으로 상대팀 선수 여럿을 제친 트랜스젠더 선수가 활약한 팀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일(현지 시각) 데일리메일, 뉴요포스트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여고생 농구팀 선수 중 3명은 경기 시작 16분만에 자신을 ‘여성’으로 규정한 생물학적 남성인 상대팀 선수와 경기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가 속출한 해당 팀은 선수를 계속 교체하며 경기를 이어갔지만, 더는 교체할 선수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자 기권을 선언했다. 부상 팀 관계자는 “선수들이 며칠 후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 기권을 선언했다”며 “12명 선수 가운데 부상 선수들을 포함해 총 4명이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경기 영상을 보면 덩치가 확연히 큰 선수가 앞의 여성 선수들을 가볍게 밀어내는 모습이 담겼다. 트랜스젠더 선수는 상대팀 선수의 공을 완력으로 빼앗고 한 손으로 슛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상대팀 선수가 크게 넘어졌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허리를 잡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한 선수는 폭스뉴스에 “해당 선수는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지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면서 “키가 182㎝가 넘고 수염이 나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단순히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생물학적 남성을 여성 팀에 넣어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문제의 선수가 있는 팀은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해당 경기에서 성전환 선수 한 명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여고생 선수가 속출했지만, 메사추세츠 학교 체육협회 측은 경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메사추세츠 학교 체육협회 측은 “규정에 따르면 학생은 학생의 선의 및 성 정체성과 일치하는 성별 스포츠 팀 참여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다만 학생이 불공정한 이점을 얻을 목적이라면 팀 명단에 오를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밝혔다. 한편, 비슷한 논란은 지난 1월 캐나다에서도 있었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학 배구 경기에서, 트렌스젠더 선수 5명이 코트를 장악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경기를 내내 주도했다는 점이다. 생물학적 여성 선수들은 벤치에만 머무른 채 코트에 나서지 못했다. 이보다 앞서 미국의 수영선수 리아 토머스(24)는 호르몬 요법을 통해 여자 수영팀에 합류한 뒤 압도적인 성적을 내 논란이 됐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2024-02-22 07:37:43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KIA 윤석민(34)이 프로골퍼 전환을 선언해 연일 화제다. 고질적인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은퇴한 윤석민은 올해부터 한국프로골프(KPGA) 2부투어인 스릭슨투어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제2의 인생은 성공할 수 있을까. 스릭슨투어는 코리안투어와 달리 준회원과 정회원은 물론 예선을 통과한 아마추어에게도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매 대회마다 예선전을 치러 18홀 스트로크 플레이 후 성적순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린다. 하지만 관문을 통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대회별 참가인원 136명 중 아마추어 선수만 23명을 별도로 뽑는다. 그리고 시즌이 종료된 뒤 상위 40위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프로(준회원) 자격을 준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종목 출신의 선수들이 적지않은 나이에 골프로 전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갖춰져 있는데다 나이가 들어서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잇점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 골프선수의 꽃이라할 수 있는 '투어프로'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20대 중반 이전에 본격적으로 골프에 전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윤석민과 같은 야구선수 출신이 '전업(轉業) 골퍼'로 성공한 국내 사례는 거의 없다. 정회원으로는 전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방극천이 있었지만 2001년 KPGA코리안투어 데뷔 이후 이렇다할 성적 없이 은퇴했다. 현 LG트윈스 소속의 이형종도 잠시 외도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SBS골프아카데미에서 활약중인 김홍기 프로도 야구인 출신의 전업 골퍼지만 투어보다는 레슨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골프 스윙과 비슷한 매커니즘인 야구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는 일본의 '골프 영웅' 점보 오자키가 있다. 고교 때 투수와 4번타자로 맹활약했던 오자키는 1965년 니시데쓰(세이부의 전신)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2년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1967년 전격 은퇴했다. 1년여에 걸친 방황 끝에 오자키는 1968년 나라시노CC 연습생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 일본 최고의 골프선수 반열에 오르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썼다. 주니어 시절에 일찌감치 골프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꽤 있다. 지난해 KPGA코리안투어 제네시스대상과 상금왕을 차지한 김태훈(36)은 초등학교 때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2019년 제네시스대상 수상자인 문경준(39)은 고교 1학년 때까지 테니스 선수, 국내 남자골프의 '장타 아이콘' 김봉섭(38)은 고교시절 축구를 하다 골프로 전향했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51)가 중학교 때까지 역도를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자 선수들 중에서도 골프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여럿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골프여왕' 박세리(44)와 세계랭킹 2위 김세영(28·미래에셋)이다. 박세리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허들과 투포환 종목의 육상선수, 김세영은 공인 3단의 태권도를 초등학교 때 접고 골프채를 잡았다. KLPGA투어서 활약하고 있는 정희원(30)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유도를 하다 골프로 전향했다. '필드의 슈퍼모델' 서희경(35)과 '슈퍼 땅콩' 김미현(44)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수영을 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상 미국)은 은퇴 이후 프로 골퍼의 꿈을 키웠다. 특히 펠프스는 타이거 우즈의 전 스윙코치인 행크 헤이니로 부터 사사를 받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은퇴 후 전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기자
2021-01-10 18:02:46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KIA 윤석민(34)이 프로골퍼 전환을 선언해 연일 화제다. 고질적인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은퇴한 윤석민은 올해부터 한국프로골프(KPGA) 2부투어인 스릭슨투어에 출전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제2의 인생은 성공할 수 있을까. 스릭슨투어는 코리안투어와 달리 준회원과 정회원은 물론 예선을 통과한 아마추어에게도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매 대회마다 예선전을 치러 18홀 스트로크 플레이 후 성적순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린다. 하지만 관문을 통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대회별 참가인원 136명 중 아마추어 선수만 23명을 별도로 뽑는다. 그리고 시즌이 종료된 뒤 상위 40위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프로(준회원) 자격을 준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종목 출신의 선수들이 적지않은 나이에 골프로 전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갖춰져 있는데다 나이가 들어서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잇점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그들 중 골프선수의 꽃이라할 수 있는 '투어프로'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20대 중반 이전에 본격적으로 골프에 전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윤석민과 같은 야구선수 출신이 '전업(轉業) 골퍼'로 성공한 국내 사례는 거의 없다. 정회원으로는 전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방극천이 있었지만 2001년 KPGA코리안투어 데뷔 이후 이렇다할 성적 없이 은퇴했다. 현 LG트윈스 소속의 이형종도 잠시 외도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SBS골프아카데미에서 활약중인 김홍기 프로도 야구인 출신의 전업 골퍼지만 투어보다는 레슨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골프 스윙과 비슷한 매커니즘인 야구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대표적 사례는 일본의 '골프 영웅' 점보 오자키가 있다. 고교 때 투수와 4번타자로 맹활약했던 오자키는 1965년 니시데쓰(세이부의 전신)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2년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1967년 전격 은퇴했다. 1년여에 걸친 방황 끝에 오자키는 1968년 나라시노CC 연습생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 일본 최고의 골프선수 반열에 오르는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썼다. 주니어 시절에 일찌감치 골프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꽤 있다. 지난해 KPGA코리안투어 제네시스대상과 상금왕을 차지한 김태훈(36)은 초등학교 때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2019년 제네시스대상 수상자인 문경준(39)은 고교 1학년 때까지 테니스 선수, 국내 남자골프의 '장타 아이콘' 김봉섭(38)은 고교시절 축구를 하다 골프로 전향했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51)가 중학교 때까지 역도를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자 선수들 중에서도 골프로 전향해 성공한 사례는 여럿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골프여왕' 박세리(44)와 세계랭킹 2위 김세영(28·미래에셋)이다. 박세리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허들과 투포환 종목의 육상선수, 김세영은 공인 3단의 태권도를 초등학교 때 접고 골프채를 잡았다. KLPGA투어서 활약하고 있는 정희원(30)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유도를 하다 골프로 전향했다. '필드의 슈퍼모델' 서희경(35)과 '슈퍼 땅콩' 김미현(44)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수영을 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상 미국)은 은퇴 이후 프로 골퍼의 꿈을 키웠다. 특히 펠프스는 타이거 우즈의 전 스윙코치인 행크 헤이니로 부터 사사를 받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은퇴 후 전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도전이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2021-01-10 08:11:24【울산=최수상 기자】 최근 불거진 스포츠계 성폭력과 관련해 울산시교육청이 지역 학교 운동부 합숙소를 폐지하고 학생선수 인권보호 추진단을 설립키로 했다. 1일 울산시교육청 학교운동부 성폭력·인권침해 근절대책에 따르면 학교운동부의 합숙소 폐지는 오는 3월부터 시행되며 교육청은 학기별로 학생선수를 대상으로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안을 전수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울산에는 현재 울산공고(야구부·40명), 학성고(축구부·45명), 무룡고(농구부·10명)에서 운동부 합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타지 학생들은 울산공고 12명, 학성고 13명, 무룡고 1명이 재학 중이다. 울산시교육청은 운동부 합숙소에서 발생하기 쉬운 폭력예방 등을 위해 지역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이들 합숙소를 폐지하고, 타지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 형태로 전환한다. 교육청은 또 현재 운영 중인 학교체육진흥지원센터에 부교육감을 단장으로 하는 학생선수 인권보호 추진단을 설립하고 전문상담사를 배치키로 했다. 핫라인을 설치하며 설문과 면접 방식으로 성폭력과 인권침해 사안도 학기별로 전수조사하기로 했다. 국가인권위 스포츠 인권 전수조사와는 별개로 이뤄진다. 또 학교 운동부지도자가 성폭력을 행사하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시행한다. 학생선수 폭력사안을 축소하고 은폐할 경우 무관용 원칙에 따라 관련자를 문책하고 특별감사 등 행정조치에 나서기로 했다. 또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성과급제와 포상제를 폐지하고 대회성적 결과 보고 체계도 폐지해 학교 운동부의 성적지상주의를 없애나간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공부하는 학생선수, 운동하는 일반학생을 양성해 나가기 위해 학교운동부와 학교스포츠클럽 통합 운영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노옥희 교육감은 “엘리트 중심 체육과 성적 지상주의에 머물러 왔던 스포츠에 대한 패러다임을 구조적으로 혁신해야 할 때이다”며 “성과중심의 학교운동부를 공부하며 즐기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건강한 학교운동부로 바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2019-02-01 08:39:08대한민국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종합 3위로 마무리했다.아시안게임 마지막날인 2일(현지시간) 한국은 대회 마지막 종목인 트라이애슬론 혼성 릴레이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9개, 은메달 58개, 동메달 70개를 수확해 종합 3위를 기록했다. 폐막 전날인 1일엔 축구와 야구에서 모두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고, 여자배구 역시 3.4위 전에서 일본을 격파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로 한 종합 2위 달성에는 실패했다. 종합 2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금메달 75개, 은메달 56개, 동메달 74개를 획득한 일본은 금메달 132개, 은메달 92개, 동메달 65개를 따낸 중국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가져갔다.한국이 하계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 수성에 실패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4년 만이다. 비록 축구, 야구 한일전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역시 기초 종목에서 고질적인 약세를 보인 것이 문제였다. 이번 대회 금메달 49개는 지난 1990년 베이징대회 이후 역대 최소 금메달이다. 우리 대표팀은 무엇보다 기초 종목인 육상과 수영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다. 육상과 수영은 각각 금메달이 41개씩 걸렸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 두 종목에서 각각 금메달 1개씩을 따내는 데 그쳤다. 반면 일본은 18세 여고생 이케에 리카코가 수영 6관왕에 오르면서 MVP에 선정됐다.일본이 종합 2위를 기록하게 된 이유는 탄탄한 생활체육 토대 위에 유망주를 배출하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대표팀은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태권도와 양궁에서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독주 체제가 흔들렸던 것도 이번 대회 부진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한편 한국선수단은 이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선수단 해단식 및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6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이날 해단식에는 복싱, 유도, 스쿼시, 탁구 등 80여명의 선수들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김성조 대한민국선수단장,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김성조 선수단장은 성적 보고 후 "39개 종목에 총 809명이 참가해 이번 대회의 슬로건인 '에너지 오브 아시아'에 맞게 코리아의 에너지를 확인시켰던 대회"라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조건 속에서 열정과 투혼을 발휘해 선전했다"고 자평했다.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현재 우리는 전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있다"며 "학교체육 활성화와 스포츠클럽 확대 등 체육의 저변 인프라를 대폭 확대시킴으로써 국민이 더 많이 스포츠를 즐기고, 넓은 저변에서 국가대표가 나오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한편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씨를 뿌렸던 남북단일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4개의 메달을 수확하는 성과를 거뒀다. 여자 카누 용선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남녀 종목에서도 동메달 하나씩을 추가했다. 여자농구도 북측 선수들이 크게 활약하면서 은메달을 따냈다.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8-09-02 17:35:17대한민국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종합 3위로 마무리했다. 아시안게임 마지막날인 2일(현지시간) 한국은 대회 마지막 종목인 트라이애슬론 혼성 릴레이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9개, 은메달 58개, 동메달 70개를 수확해 종합 3위를 기록했다. 폐막 전날인 1일엔 축구와 야구에서 모두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고, 여자배구 역시 3·4위 전에서 일본을 격파하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목표로 한 종합 2위 달성에는 실패했다. 종합 2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금메달 75개, 은메달 56개, 동메달 74개를 획득한 일본은 금메달 132개, 은메달 92개, 동메달 65개를 따낸 중국 다음으로 많은 메달을 가져갔다. 한국이 하계 아시안게임에서 종합 2위 수성에 실패한 것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이후 24년 만이다. 비록 축구, 야구 한일전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역시 기초 종목에서 고질적인 약세를 보인 것이 문제였다. 이번 대회 금메달 49개는 지난 1990년 베이징대회 이후 역대 최소 금메달이다. 우리 대표팀은 무엇보다 기초 종목인 육상과 수영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다. 육상과 수영은 각각 금메달이 41개씩 걸렸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 두 종목에서 각각 금메달 1개씩을 따내는 데 그쳤다. 반면 일본은 18세 여고생 이케에 리카코가 수영 6관왕에 오르면서 MVP에 선정됐다. 일본이 종합 2위를 기록하게 된 이유는 탄탄한 생활체육 토대 위에 유망주를 배출하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대표팀은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태권도와 양궁에서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독주 체제가 흔들렸던 것도 이번 대회 부진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편 한국선수단은 이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코리아하우스에서 선수단 해단식 및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6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했다. 이날 해단식에는 복싱, 유도, 스쿼시, 탁구 등 80여명의 선수들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김성조 대한민국선수단장,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김성조 선수단장은 성적 보고 후 “39개 종목에 총 809명이 참가해 이번 대회의 슬로건인 ‘에너지 오브 아시아’에 맞게 코리아의 에너지를 확인시켰던 대회”라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조건 속에서 열정과 투혼을 발휘해 선전했다”고 자평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현재 우리는 전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바뀌는 전환점에 있다”며 “학교체육 활성화와 스포츠클럽 확대 등 체육의 저변 인프라를 대폭 확대시킴으로써 국민이 더 많이 스포츠를 즐기고, 넓은 저변에서 국가대표가 나오는 선진국형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씨를 뿌렸던 남북단일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4개의 메달을 수확하는 성과를 거뒀다. 여자 카누 용선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남녀 종목에서도 동메달 하나씩을 추가했다. 여자농구도 북측 선수들이 크게 활약하면서 은메달을 따냈다.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8-09-02 15:18:37"학생선수 10명 중 1~2명만이 프로에 진출한다. 7~8명은 사회에 내동댕이 쳐진다. 학점관리와 불이익처분을 규정한 대학스포츠 운영규정 25조 1항은 수많은 공청회를 거쳐 2년 전에 만든 규정이다. 막상 시행하려고 하니깐 비회원대학이 문제제기를 하며 거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어이가 없었다." 강신욱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 집행위원장은 20일 열린 '대학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논의됐던 대로 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93개 대학이 속한 KUSF는 그동안 토너먼트 방식에서 종목별 리그제로 전환하는데 집중하면서 학생선수의 학업·운동 병행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새로 참여하는 종목의 경우 C0학점룰을 1년 유예 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KUSF는 지난 2012년부터 대학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현장 지도자 등과 출전 관련 학점 사항에 대한 논의를 거쳐 2015년 경기 참가 성적 기준을 직전 2학기 평균 C0학점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을 확정했다. KUSF는 학교 현장 준비기간 등을 고려해 2년간 C0학점룰 도입을 유예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규정대로 시행키로 했다. 현재 C0학점룰 적용되는 대학스포츠리그는 남녀대학농구리그, 전국대학배구리그, 대학축구U리그, 전국대학핸드볼리그 등이다. 하지만 대학 스포츠 현장에선 C0학점룰 적용과 관련해 U리그의 경우 비회원대학들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지, C0가 가혹한 학점 기준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진재수 KUSF 사무처장은 "현재 절차와 체계를 밟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해달라. 우리도 외연을 넓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종우 KUSF 집행위원도 "대학 당국이 운동부에 관심이 많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관심이 줄고 있다"며 "교육부가 대학평가에 운동부 육성을 포함시키는 등 대학 스포츠 활성화에 보다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2017-03-20 14:55:23왕년의 농구선수 한기범이 유전병 마르판증후군으로 겪은 고충을 털어놨다. 한기범은 오는 23일 방송하는 MBC '세바퀴'에 출연해 마르판 증후군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이야기를 털어놨다. 한기범은 판 증후군으로 인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마저 같은 이유로 잃었다며 진단 결과 자신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다행히 바로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1년 후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자신도 1년 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화장실에서 몰래 울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업실패의 쓴맛을 본 한기범은 후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편 이날 방송에는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 모델 최한빛이 출연한다. /온라인편집부 news@fnnews.com
2013-11-22 13:51:11<사진=점프볼> 2013년 4월7일. 동료들의 헹가래 속에 두 명의 노장 선수가 농구 인생 마지막 경기를 끝마쳤다. 그러나 이들에게 농구는 END가 아닌 AND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뿐이다. 발에는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고, 손에는 농구공이 아닌 펜을 쥐게 됐지만 여전히 본인들을 맞이해 줄 안양 팬들이 있어 행복함을 느낀다는 선수, 아니 이제는 코치로 호명될 김성철-은희석을 만나봤다. ▲ 남다른 느낌의 휴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 코치님이라고 부르기가 어색하다고 말하자 서류상으로는 5월까지 선수 신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성철 코치가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경기를 치른 지도 어느 덧 한 달이 지난 가운데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가장 먼저 물었다. 김성철 코치(이하 성철) : 시즌 끝나고 바로 코치로서의 실무에 투입됐어요. 가족들과 선수로서의 마지막 휴가를 보내기도 했고요. 앞으로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특히 아들 지환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은희석 코치(이하 희석) : 저도 똑같아요. 시즌 끝난 다음날부터 미팅을 가졌고, 보직을 받아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휴가를 같은 날짜에 받아서 부모님과 아내, 아들 산이와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왔고요. Q_선수 생활을 내려놓으면서 마음이 홀가분했을 것 같은데 휴식기 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은 충분히 했나요? 성철 : 그동안은 휴가가 쉬는 기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는 점을 가족들에게도 인지시켰고, 아무래도 느낌이 조금은 달랐던 것 같아요. 희석 : 유니폼을 벗으니 그동안 고마웠거나 소홀했던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선수 때였다면 친구들을 만나서 술이나 마시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달콤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KGC인삼공사는 최근 선수단이 한 자리에 모여 차기 시즌을 위한 준비에 서서히 돌입했다. 아직까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불안감도 남아 있지만 두 코치는 지도자로서의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함께 드러냈다. <사진=KBL> ▲ 잊지 못할 두 사람의 프로 첫 만남 1년 차 터울의 두 코치는 도합 20시즌을 안양에서 보냈다. 또한 같은 팀원으로서 한솥밥을 먹은 것도 무려 7시즌 반이나 될 만큼 오랫동안 깊은 인연을 쌓아왔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지만 가끔은 지겹기도 하다며 김 코치가 농담을 건네자 은 코치는 둘의 프로팀 첫 만남 당시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놨다. 희석 : 제가 SBS에 드래프트 됐을 때 팀은 플레이오프 탈락이 90%가까이 확정된 상황이나 다름없었어요. 당시 SBS가 놓쳐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경기를 했는데 성철이 형에게 노마크 상황이 생겼죠. 그냥 올려놓으면 될 것을 덩크슛을 시도하다가 공이 림 뒤쪽을 때리고 튀어나와 결국 경기에서 졌어요. 거의 모든 비난의 화살이 당시 신인이었던 성철이형에게로 집중돼 있던 타이밍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잘 몰랐고, 그저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인연으로 아는 사람이 실질적으로는 성철이 형뿐이라서 점심 먹을 때 인사를 했는데 그냥 저를 스윽 보고 가더라고요. 졸졸졸 따라갔더니 이번에는 진수성찬 앞에서 숟가락을 ‘탁’ 내려놓고 그냥 떠나버렸어요. (이후의 살벌했던 당시 분위기 묘사는 심의 상 생략하고자 한다) 성철 : 아마 희석이가 첫 만남 당시 제게 많이 서운했을 겁니다. 저는 그런 플레이를 하다가 엄청나게 혼난 뒤에 수건으로 재갈을 물 만큼 서러운 상태였어요. 그런데 희석이는 그런 제게 인사를 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본인이 인사했다고는 하는데 사실 전 기억도 잘 안나요. 하하하. 이와 같은 프로무대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둘은 이내 코트 안팎에서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병역 의무를 소화하기 전까지 함께 뛴 두 시즌 동안 SBS를 4강과 6강에 각각 안착시켰고, 2004-2005시즌 나란히 복귀해 단테 존스 등과 함께 팀이 당시 최다인 15연승을 내달리는데 일조하는 등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보냈다. <사진=KBL> ▲ 잠시 동안의 이별, 베테랑의 이름으로 재회하다 하지만 김성철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획득하면서 이별의 순간이 두 사람을 찾아왔다. 당시 조상현 등과 함께 FA 최대어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김성철은 계약기간 5년, 연봉 3억원에 전자랜드로 새롭게 둥지를 틀게 됐다. 성철 : 돈을 쫓았다기보다 당시에는 내가 전성기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마음에 금액적인 부분도 구단 측에서 나를 존중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판단을 내렸었죠. 또한 주희정-양희승이라는 원투펀치가 팀에 있었고, 당시 KT&G가 농구단을 운영한 초창기였기 때문에 처우에서 서로 오해를 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희석 : 협상에 관한 진척상황이나 조건에 대해서 저는 전혀 몰랐어요. 오직 결과만을 보고 판단했는데 형이 떠난다고 하니까 그동안 의지하고 따랐던 저로서는 겁이 났죠. 당시 제가 중간 정도의 위치였는데 팀에 어떻게 공헌해야할지도 몰랐고, 형의 공백이 점점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성철 : 그래도 집은 여기(안양)에 있었어. 하하. 희석 : 팀은 떠났어도 형에게 전화를 자주했고 조언을 많이 구했죠. 의지하면서 이겨낸 부분도 많았지만 형이 없는 동안에 첫 2년은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성철 : 2년 동안 희석이가 저한테 전화 참 많이 했습니다. KT&G가 외부 영입 등을 많이 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을 시기였으니까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에서 은 씨 성을 가진 왕족의 씨가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을 겁니다. 하하하.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으니 저한테 전화를 자주했는데 사실 저도 새로운 팀에 적응하느라 잘 돌봐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희석 :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형에게 나 죽겠다는 소리만 한 것 같아요. 형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말이죠. 현재 이상범 감독님께서도 당시에 많이 속상하고 아쉬워하셨어요. 성철이 형을 빨리 데려와야 한다는 말을 자주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 Q_결국 트레이드를 통해 다시 되돌아왔을 때의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희석 : 다시 두 손 두 발 다 뻗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하. 농담이에요. 잘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철 : 인천에 있으면서 서운했다기보다는 여러 상황에서 힘들었어요. 새로운 팀에 정서적으로 적응해야 했는데 분위기가 완전 달랐거든요. 그 당시에는 남 탓을 자주 했는데 보다 어른이 돼보니까 이제는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먼저 다가가려고 하기보다 상대가 맞춰줬으면 하는 마인드가 있어서 실패를 겪었습니다. 친정팀으로부터 다시 콜이 왔을 때의 느낌이요? 음, 멀리 떠났다가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사진=KBL> ▲ 위험한 리빌딩의 정신적 지주 김성철이 2009-2010시즌 초반 트레이드를 통해 안양에 복귀했을 때 KGC인삼공사는 리빌딩 단계에 서서히 돌입 중이었고, 두 선수는 어느덧 고참의 위치에서 팀 내 무게중심을 잡아줘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 해와 이듬해까지 하위권을 면치 못하며 어려운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재능 있는 젊은 신인들의 잇단 수급과 두 베테랑의 책임감 있는 통솔력 덕분에 KGC인삼공사는 2011-2012시즌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리빌딩을 이끌어낸 ‘베테랑의 재조명’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Q_젊은 선수들에게 두 사람이 어떤 존재였고, 무슨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하나요? 성철 : 우리 주장(희석)이 4년간 연임을 했었습니다. 희석 : 장기 집권이라고 하지요. 하하. 성철 : 희석이가 부상으로 마음 고생을 해야 했지만 아마 그런 역할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희석 : 성철이형이 복귀한 뒤에 무조건 주장 역할은 형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질서와 체계가 있는데 선배를 배제하고 후배가 주장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봤거든요. 하지만 형이 ‘네가 하는 게 낫다’고 얘기했고, 감독님 역시 같은 의견이었어요. 은희석 코치는 모든 것이 결과론적인 평가일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우승을 하기 전까지 그는 높은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면서 팬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한 고충을 딛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데 주력했다. 코트 안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이라면 코트 밖에서라도 남들보다 더욱 노력하며 이를 악물었던 것. 본인이 경기에 나서지 않아 성공적인 리빌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는 농담 섞인 말을 건넸지만 그의 ‘욕심 내려놓기’는 결코 가볍게만 치부될 일이 아니었음을 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희석 :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만약 내가 부상이 없었고, 좋은 컨디션에서 경기에 뛰겠다고 때를 썼다면 팀 조직이 어떻게 변했을까를 말이죠. 하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게 사실이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후배들이 좀 더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탈선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고 봐요. 대충 봐도 선수들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어요. 선배로서 조언해줄 수 있고 혼도 낼 수 있으며 다독여 줄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하자. 그런 점에 초점을 뒀습니다. 은 코치는 김성철 코치와 함께 이런 부분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팀 내 체계와 질서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김 코치가 앞서 언급했던 은 코치의 4년 간 주장 연임은 이에 대한 구단의 믿음이 반영된 답변이었고, 은 코치가 챔피언결정전 우승팀의 캡틴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변의 사실로 기억될 것이다. <사진=점프볼> ▲ 두 코치의 지도 철학, 실전으로 승부! 이처럼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훌륭히 다독여온 두 사람이지만 지도자의 입장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가 있다. 필자가 그러했듯 당장 후배들로부터 듣게 될 호칭부터가 어색함의 출발선이다. 성철 : 작년 신인, 특히 (김)윤태처럼 10월 드래프트로 합류한 선수들의 경우에는 나이 차이도 너무 많이 나고, 비시즌 동안 형-동생처럼 지낼 시간이 딱히 없어서 시즌 중에 선배님이라고 부르도록 했어요. 그 위로는 앞으로도 형, 동생으로 부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코치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낯간지럽게 느껴져요. 너무 딱딱하면 거리감이 생기기 때문에 처음부터 편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문제 외에도 두 코치는 비록 1년 단위로 코치 투입과 연수 과정을 서로 맞교대하는 과정을 밟을 예정이지만 은퇴 직후 곧바로 코치 직함을 얻었다는 점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김-은 코치는 하얀 도화지 위에 가장 최근까지 선수로 활약했던 실전 경험을 살려 지도 철학을 덧입혀 나가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Q_지도자에 대한 준비를 선수 시절부터 서서히 해왔는지요. 희석 : 좋은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두 사람 모두 벤치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죠. 물론 코치는 아니었지만 이상범 감독님의 배려 덕에 유사하게나마 이를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성철 : 비유를 하자면 우리는 병과 학교를 일반 시험이 아닌 실전을 치러본 막군으로서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절차라거나 룰에 있어서는 갈 길이 멀지만 실전에 대한 부분은 조금씩 보는 관점을 감독님께서 심어주셨어요. 후배들도 사람인지라 경기에 적게 뛰는 선배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할 수도 있지만 감독님이 그런 권한을 부여해 주셨고, 우리 역시 비디오 공부를 할 때에도 자신의 매치업 상대 뿐 아니라 전체적인 것을 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들에게 코치로서 팀을 얼마나 확실하게 파악했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나갈 계획인지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특정 선수가 언급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자칫 편애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 이들은 본인들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성철 : 우선 우리 팀은 주전 선수들에게 과부화가 많이 걸려있다고 봅니다. 소위 BIG3, BIG4 등으로 일컬어지는 선수들에게도 부상이 올 수 있는데 가용인원이 많은 팀이 결국에는 챔피언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6-8번째 선수들을 비롯해 나머지 인원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코치로서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봐요. 희석 : 어떻게 하면 감독님이 원하시는 구상대로 우리가 보좌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거리이고 준비해야 할 숙제겠죠. 지금까지 보고 배운 것들을 잘 참조할 계획입니다. 또한 지도자 연수를 가서 물론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성철이 형에게 조언을 해주려면 확실하게 하고 와야 할 부분이 있어요. 그쪽 감독, 코칭 스태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 할 생각입니다. 제가 못하면 성철이형이 부담될 테니까요. 성철 : 네가 너무 잘해놓으면 오히려 그게 더 부담될 것 같아. 하하하. 선수 생활부터 오랜 인연을 맺어왔지만 결국 지도자로서의 첫 걸음까지 이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된 두 사람에게 서로 간 덕담을 요청했다. 성철 : 이제부터가 진정한 사회생활의 시작인 것 같다. 선수로서 그동안은 몸으로 해왔지만 이제는 기존의 관계에 있어서도 다르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고,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찾아올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이겨내고 견뎌내서 좋은 지도자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가족들과 떨어져있어야 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힘들겠지만 이 역시 잘 이겨내길 바란다. 희석 : 항상 형과 보완작용을 해왔다고 생각해. 좋은 기회가 찾아와서 코칭스태프라는 직함을 갖게 됐는데 형에게 배울 점은 많이 배우고, 도울 점은 열심히 돕고 싶어.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가 있어야 빛을 보니까 서로 힘을 모아서 좋은 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끝으로 두 코치는 현역 시절 오랫동안 자신들을 사랑해준 안양 시민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거듭 드러내며 지도자로서의 새 출발도 변함없이 응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END가 아닌 AND로서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농구 인생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yuksamo@starnnews.com박대웅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starnnews.com
2013-05-09 09:4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