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이국종 대전국군병원장이 급격한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병원장이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입장을 공식 석상에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료계 벌집 터져…전문의 더 이상 배출되지 않을 것" 이 병원장은 지난 19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열린 ‘명강연 콘서트’에 참석해 "현재 의료계는 벌집이 터졌고 전문의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사 교육은 강의식이 아닌 선후배 간 일대일 도제식으로 이뤄져 함부로 많은 수를 양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30년 전과 비교해 소아과 전문의는 3배 늘었고 신생아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작 부모들은 병원이 없어 ‘오픈런’을 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의대생을 200만 명 늘린다고 해서 소아과를 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실제 의사로 배출되려면 10년 이상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되어도 실제 수련받은 과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적어 필수의료를 살릴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불가항력적 의료소송 부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고질적인 저수가를 해결해 의사들이 실제 수련받은 과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 필수의료 이미 초토화 상태…그래도 최선 다하겠다" 이 병원장은 “‘필수의료과가 망한다’는 말은 내가 의대생이던 30~40년 전부터 나왔다"면서 "정부 정책의 실패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이 달라지면 의료 정책도 달라진다"면서 "지금 의사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내가 전문의를 취득한 1999년에는 의사가 너무 많아 해외로 수출해야 한다고 했고, 얼마 전까지는 미용으로 의료 관광을 육성한다고 하더니 이젠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미 한국 필수의료는 초토화된 상태”라면서 “일본이 연간 1800번 닥터헬기를 띄운다면 한국은 미군헬기까지 동원해도 출동 횟수가 300번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런 게 필수의료이고 이런 시스템부터 다져야 한다”고 했다. 이 병원장은 “미국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하는 이런 시스템을 20년 전부터 갖췄다”면서 "해외에서 한국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면서 "의료계가 몇 달째 머리를 맞대도 답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2월 중 군 병원 응급실을 개방하고 비상 진료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국군대전병원도 군 병원 중 하나로 민간인 응급환자 등을 치료해왔다. 이 병원장은 중증외상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다.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과 2017년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를 뛰어넘어 귀순하다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살려내 주목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국군대전병원장에 취임했다.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2024-06-20 14:22:29[파이낸셜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료계에서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어 의사가 용접을 배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대한용접협회가 “용접을 우습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3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소아과 선생님 중 한 분이 용접을 배우고 있다”며 “이런 나라에서 더 이상 살기 싫다고 한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16일 국민일보는 민영철 대한용접협회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민 회장은 “의사들이 용접이란 것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용접이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민 회장은 “과거에는 배울 게 없는 사람들이 용접을 배우는 등 3D 업종 취급이 강했지만 지금은 고부가가치 수익을 창출하는 직종”이라며 “의사들이 본업을 하지 않고 용접을 하겠다고 하는데, 몇 년 동안 의학만 배우던 사람들이 용접을 얼마나 알겠나”고 거듭 비판했다. 민 회장은 “어디 지나가다 (용접공을) 볼 때는 단순하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다들 노하우와 실력이 쌓인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 회장은 “(의사들이) 말을 하다 보니까 어쩌다 그런 식으로 얘기했는지는 모르겠다. 비하 발언이라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공문을 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민 회장의 인터뷰 내용이 공개된 후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의사가 의사 못하겠다고 변호사 하겠다면서 로스쿨 준비한다면 변호사 비하일까요? 아닐까요?”라며 “거의 대부분 기자님들은 언론본분에 충실한데 극히 일부는 저사람이 일간지 기자인지 선데이서울 기자인지 싶다”고 적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2024-03-17 08:14:40[파이낸셜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2일 "소아과를 비롯한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진분들이 격무에서 벗어나 일상을 누리시고, 충분히 보상받으실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경북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 의료진에게 설맞이 손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고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한 총리는 "명절이 돌아와도, 남들이 모두 쉴 때 공중을 위해 일터를 지키는 분들이 계십니다. 응급의료센터 의료진이 대표적인 직군"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한 총리는 "고마운 마음에 명절이 다가오면 각 지역 응급의료센터를 격려차 방문하곤 했습니다만, 올해는 조심스러웠다"면서 "적정 인력을 유지하지 못해, 의료진의 격무가 한계치에 도달한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의료센터들 중에서도 아픈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곳이 특히 사정이 어렵습니다.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은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가 편지와 선물을 보낸 칠곡 경북대병원은 비수도권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 중 환자가 가장 많은 것이다. 한 총리는 편지에 의사와 간호사 등 센터 소속 의료진 스물 여섯분의 성함과 함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명감으로 현장을 지켜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린다고 적었다고 전했다. 한 총리는 "소아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의료진 분들이 격무에서 벗어나 일상을 누리시고, 충분히 보상받으실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도 드렸다"며 "마음 같아선 전국에 계신 모든 응급의료인력 여러분께 같은 편지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 사회는 이만큼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소아청소년과 교수님들이 더 책임감을 가지시는 것 같다"는 박성식 칠곡경북대병원 원장의 답장을 소개하며 "국무총리로서 저야말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spring@fnnews.com 이보미 기자
2024-02-02 11:13:14[파이낸셜뉴스] 병원 문을 열기도 전 부터 진료를 대기하는 일명 '소아과 오픈런' 등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책 마련 차원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4대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전날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24시간 어린이병원' 설립을 건의한 뒤 윤 대통령의 정책이 발표되면서 총선에서 여당 후보들과 정부간 정책 선순환이 이뤄지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경기 남부권 필수의료 중추기관인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한 여덟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우리가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내가 아프고 내 아이가 아픈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이런 말이 유행하는 나라는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은 충분한 의료인력 확충과 의료사고 피해자 보상 강화 및 의료인들 사법 리스크 부담 완화, 의료인에 대한 공정한 보상체계 도입 등을 제시했다. 소아과 등 필수의료진들을 위해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해서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앞서 전날 김은혜 전 수석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통령님, 24시간 어린이병원이 꼭 필요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소아과 진료 인력 부족 사태 속에 나온 김 전 수석의 대안이 윤 대통령이 이날 밝힌 지역의료 강화와 필수의료 인력 지원이란 기조와 궤를 같이 한 것으로, 추후 총선에서도 공약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이 김 전 수석이 출마를 준비하는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구 내 소재한 곳이란 점에서 향후 정책 추진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로도 해석된다. 김 전 수석은 SNS에 "저는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시군구별 1개 이상의 24시간 어린이병원을 건립하겠다고 국민께 약속드린 바 있다"며 "현재 저녁 늦게까지 운영하는 '달빛어린이병원'이 운영 중이지만 대부분 자정 전에 문을 닫고, 그 숫자는 턱없이 적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 전 수석은 "제가 살고 있는 분당엔 단 한곳도 없다. 지방은 말할 것도 없다"면서 "새벽에 아이가 열이 나서 힘들어할 때 갈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는 것, 이것이 민생이고, 우리 정부가 가고자 하는 필수의료 확충이라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김 전 수석은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낫게 만들어주고 싶다"며 "아이를 지켜주는 세상, 저 또한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2024-02-01 18:13:05소아청소년과 의사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소아 의료 인프라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지방 의료인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효과적으로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할 통합 컨트롤 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업계에서 나왔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9월에 걸쳐 일부 수가 인상 등 소아청소년과 지원 대책을 내놨으며 향후에도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종합적으로 살피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뉴스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현상과 관련해 의료계와 정부, 노동조합 등을 대상으로 지상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은병욱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보험이사, 임혜성 보건복지부 필수의료총괄과장,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가나다순)이 응했다. ―최근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임혜성=소아환자의 특성상 야간휴일, 응급진료 수요가 많고, 현장에서는 보호자 교육과 민원 대응의 어려움도 호소한다. 성인 진료 대비 근무강도가 높고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 등이 큰 것도 요인중 하나로 파악하고 있다. ▲은병욱=소아 질환은 성인과 다르게 만성 질환보다는 급성기 질환이 많다. 질환에 따라 짧은 시간에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질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보호자들이 납득하지 못해 의료분쟁이 많이 발생한다. 이대목동병원 사건 처럼 전공의가 구속되면 잘잘못을 떠나 의료계에도 충격이 온다. 젊은 의사나 학생들은 응급환자나 중증질환이 비교적 적은 진료과목을 선호하게 됐다.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수가, 급여 등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왜 나오나 ▲은병욱=국민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연도별 전체 요양급여비용을 보면 대부분의 전문과목들이 전체 요양급여의 증가와 같이 증가한 통계를 보이는 반면 소아청소년과는 현저한 감소를 나타내고 있다. 소아청소년과의 진료 수익에 있어서 건강보험 요양급여에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예방접종이었다. 그런데 국가 예방접종 제도가 도입되면서 접종 수수료만을 지급받게 돼 진료 수익의 상당 부분에 대한 삭감 효과가 발생했다. ▲최용재=택시 기본료가 4800원인 시대에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2500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공의 미달사태를 이해할 만 하다. 소아건강 관련 약가나 수가는 종사자 입장에선 여전히 지나치게 낮은 상황이라고 본다. ―소아청소년들이 응급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떤 위험이 발생하나. ▲은병욱=소아청소년 진료는 전문성 및 높은 숙련도가 필수적이다. 정확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면 소아청소년 환자의 질환이 더 심각해질 수 있고 만성 질환으로 발전할 위험도 커진다. ▲최용재=대동맥 박리 같은 흉부외과 질환은 드물지만 소아에게 발생하면 사망하기 쉽다. 이 경우 응급실이 필요하다. 열성경련을 일으켜도 뇌손상이 오는 아이들도 있다. 성인을 보는 의사는 구별하기 어렵고 처지도 못한다. 소아의료체계 붕괴는 응급상황시 소아사망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행해야할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임혜성=소아청소년과가 어려워진 요인은 복합적이다. 대안도 종합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중증·응급 인프라는 안정적인 유지를 뒷받침해야 한다. 소아진료의 특성에 맞는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업계 요구도 살피고 있다. 정부는 의료인력 확충 및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 등 인력양성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등의 노력도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2월, 9월에도 일부 수가 인상 등의 대책을 발표했는데, 정책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대책을 고려중이다. ▲최용재=소아필수의약품, 소아진료수가를 포함한 소아의료체계를 통합적,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부 내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소아청소년과 의료과가 그것이다. 신설 조직에 재정과 전문 인력을 투입하지 않으면 붕괴된 소아진료체계를 살리는 제도 설계가 쉽지 않다. ―의료계 내부에서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은병욱=소아청소년과 의사 중에서 여의사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여의사 상당 수가 육아와 가사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임상 현장을 떠난다. 육아로 인한 휴직 또는 경력 단절을 마친 뒤 재취업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지장 없이 복귀하도록 해야한다. ▲최희선=의료계에서 필수의료인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소명감과 사회적 책임감을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대 정원 증원, 지역의사제 도입, 공공의대 설립 등 붕괴위기로 치닫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핵심정책을 더 이상 거부하지 말고 적극 수용해야 한다. ▲최용재=아동병원협회에서는 비상대책위원회, 학술위원회 등 학술적 재무적 역량을 총동원해 취급가능한 질환 중증도를 높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복지부에 제도개선을 계속 요구하고 있고 내부적으로 진료역량을 보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며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도권-비수도권에서 소아청소년과 진료 차이가 큰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임혜성=지역의 소아진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등의 안정적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을 대상으로 우선 확충하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소아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등중 환자(경증과 중증 사이에 있는 환자)'의 원활한 진료를 위해 소아과 병의원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희선=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을 높이고, 지역의사제 도입도 필요하다. ▲최용재=격외지에서 활동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에 대한 대담한 재무적, 제도적, 법적 지원이 절실하다. 예를 들어 의사 사택, 간호사, 방사선사 기숙사 기본제공, 의료원의 상당 부분을 아동병원에 맞게 개보수하고 진료장비를 공급해 그 동네 의사 선생님들로 운영 컨소시움을 만들어서 진행한다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수도 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강명연 김동규 주원규 기자
2024-01-21 19:01:09[파이낸셜뉴스] "이미 대한민국의 소아청소년과는 무너졌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 충청권에서 아동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A 원장은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는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A 원장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대학병원에서 10년, 병원을 개업한지는 10년이 넘어간다. 도합 20년이 넘게 아이들을 진료했지만 이제는 붕괴된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장성급 의사만 남은 아동병원일단 더 이상 아이들을 볼 의사가 없다고 한다. A 원장은 "우리 병원 의사 정원이 9명인데 4명이 나가고 전문의를 못 구한지 2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아과 병원을 군대에 비유하면 장성들만 남은 상황"이라며 "사람이 수혈돼야 조직이 돌아가는데, 지금은 장성들이 당직은 물론 현장에서 가장 허드렛일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많은 상급병원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지원자가 미달인 상황. A 원장은 "이제 대학 교수들마저 번아웃에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며 "나가서 새로운 소아과를 개업하는 것도 아니고, '놀겠다'는 사람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는 "이제 의사들에게 소아청소년과는 지킬 가치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 원장은 소아과 지원 기피의 원인을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높은 위험부담에 낮은 보상)' 구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과 전문의 수련 내용은 난이도가 높고 사망자도 많아 리스크가 높은 과"라며 "그런데도 정부는 소아과를 단순히 감기나 치료하는 과로 접근해 의료 수가를 책정했고, 의사들은 소송 등 온갖 위험 부담은 다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료도 떠나고, 가족들을 건사해야 하는 의사들이 그런 리스크를 지고 굳이 소아과에 남아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소아과 전공했지만 일반의원 개업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모씨(37)는 성인 진료로 돌아섰다. 김씨는 "동료 의사도 부족한데 간호사 인력도 충원하기 힘들어 휴일도 없이 항상 번아웃에 허덕였다"며 "내가 진료하고 있던 아이를 상급 병원으로 전원시키기도 힘들어진 환경에서 소송 위험도 커서 이대로는 살아남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부모들의 비수 같은 말들에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환자 수는 제어할 수 없었고, 수입은 보장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자부하지만, 이제 다시 그 복잡한 대기실 안을 비집고 진료할 염두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소아과 선배 의사들은 잇따라 일반의원으로 개업했다. 그가 지원할 때만 해도 소아청소년과는 경쟁이 치열했지만, 이 과에 남아 있는 동기들도 몇 안 남은 상황. 대학교수들도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아 많이 힘들고 지친 상태라고 한다. 김씨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건'을 소아과 붕괴의 신호탄으로 봤다. 지난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숨지자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의료진들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내가 선배 전공의로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당시였다"며 "리스크가 너무 커지다 보니 그 이후로 지원자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회상했다. 후배들만 부족한게 아니다. 김씨는 교수들 마저 떠나는 현 상황에 "배울 환경이 안 될 것 같아 걱정이 든다"고 했다. 가르쳐 줄 교수도 떠나고 전문적 지식을 쌓기 어려워 제대로 된 전공의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에서 정말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시그널을 잘 읽어야 한다"며 "낙수과로 찍혀 훈련된 의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무너지고, 정말 복구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2024-01-17 14:27:28"출산율은 바닥이라는데 아픈 애가 갈 병원이 부족한 게 말이 되나요."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던 부모들은 항상 이런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오픈런'이라는 용어는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가장 친숙한 용어가 됐다. 16일 기자가 만난 부모들의 소아과 진료 경험은 지옥에 가까웠다. 이들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는 '오픈런'을 해도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고, 어렵게 의사를 만나도 고작 1~2분의 진료에 그쳐 제대로 진료를 받은 건지 전전긍긍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오픈런'해도 1시간 이상 대기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며 11개월 아기를 둔 김모씨(40). 김씨는 며칠 전에도 소아과를 찾았지만 진료 경험이 최악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가 열이 40도까지 올라 소아과를 급하게 찾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고작 1~2분을 진료받았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리고 해서 소아과를 일주일에 한두번꼴로 간다고 했다. 특히 아이가 크게 아플 경우 거주 중인 마포구가 아닌 서울 구로구의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마포구는 인구에 비해 소아과가 부족하고, 영유아를 전문적으로 돌보고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다만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이 있다고 해서 진료가 쉬운 건 아니라고 언급했다. 김씨는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다. 병원에서 '똑닥(병원 유료예약 앱)'을 쓰지 않아 하루 2번 새벽 6시와 낮 12시에 예약을 받는데 1~2분이면 마감된다"며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이 없으니 급하면 그 병원으로 몰리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지역 소아과의 경우 개원 30분 전이면 '오픈런'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찍 가도 1시간에서 1시간 반은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도시 등 영유아가 많은 지역의 경우 오픈런이 1시간 전에 시작될 정도로 소아과 진료가 녹록지 않다. 이 같은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김씨가 바라는 게 있다면 '소아 전문 응급실'을 꼽았다. 그는 "마포에도 유명한 소아 전문병원이 있었는데 경영난으로 다른 병원으로 바뀌었다"며 "진짜 급할 때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응급실이 필요하다. 저출산이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데 태어나면 돌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소아과 없는 지자체도 있다"서울·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소아과는 상황이 더 안 좋다고 한다. 지역인구 감소와 저출산 등의 여파로 지역소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소아과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필수의료 취약지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 평균은 1.80명이었다. 지역으로 보면 서울이 4.30명으로 가장 높았고 경북(0.91명)과 전남(1.05명), 충남(1.27명), 울산(1.28명), 경기(1.30명) 등 17개 시도 중에서 10개가 평균을 밑돌았다. 강원 춘천에 살면서 네살과 한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모씨(30)도 소아과를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오픈런 해서 접수해 놓아도 1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라며 "접수해 놓고 조금이라도 늦거나 하면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경북 구미에서 두살 아이를 키우는 배모씨(36)도 "주로 가는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1시간은 기다린다. 주말의 경우 보통 2시간 전후는 기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배씨는 "경북 지역에 소아과가 전혀 없는 곳도 있다. 출산율이 바닥이라 나라가 소멸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잘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2024-01-16 18:30:05[파이낸셜뉴스] "출산율은 바닥이라는데 아픈 애가 갈 병원이 부족한게 말이 되나요."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를 찾았던 부모들은 항상 이런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소아과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상황이 됐다. '오픈런'이라는 용어는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가장 친숙한 용어가 됐다. 16일 기자가 만난 부모들의 소아과 진료 경험은 지옥에 가까웠다. 이들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는 '오픈런'을 해도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고, 어렵게 의사를 만나도 고작 1~2분의 진료에 그쳐 제대로 진료를 받은건지 전전긍긍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오픈런'해도 1시간 이상 대기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며 11개월 아기 둔 김모씨(40). 김씨는 며칠 전에도 소아과를 찾았지만 진료 경험이 최악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가 열이 40도까지 올라 소아과를 급하게 찾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고작 1~2분을 진료받았다"며 "처방받은 약을 먹었는데도 다시 열이 40도까지 올라서 다시 찾아가니 병이 더 커졌다면서 항생제까지 먹어야 되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아이가 감기에 자주 걸리고 해서 소아과를 일주일에 한두번 꼴로 간다고 했다. 특히 아이가 크게 아플 경우에 거주 중인 마포구가 아닌 서울 구로구의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마포구는 인구에 비해 소아과가 부족하고 영유아를 전문적으로 돌보고 입원도 가능한 병원이 없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다만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이 있다고 해서 진료가 쉬운 게 아니라고 언급했다. 김씨는 "소아청소년과 전문병원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다. 병원에서 '똑닥(병원 유료 예약 앱)'을 쓰지 않아 하루 2번 새벽 6시와 오후 12시에 예약을 받는데 1~2분이면 마감된다"며 "소아청소년 전문 병원이 없으니 급하면 그 병원으로 몰리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 지역 소아과의 경우 개원 30분 전이면 '오픈런'이 시작된다고 한다. 일찍 가도 1시간에서 1시간반은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도시 등 영유아가 많은 지역의 경우 오픈런이 1시간 전에 시작될 정도로 소아과 진료가 녹록지 않다. 이같은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김씨가 바라는 게 있다면 '소아 전문 응급실'을 꼽았다. 그는 "마포에도 유명한 소아 전문 병원이 있었는데 경영난으로 다른 병원으로 바뀌었다"며 "진짜 급할 때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응급실이 필요하다. 저출산이라고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데 태어나면 돌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소아과 없는 지자체도 있다"서울·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소아과는 상황이 더 안 좋다고 한다. 지역인구 감소와 저출산 등의 여파로 지역소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소아과가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필수의료 취약지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 평균은 1.80명이었다. 지역으로 보면 서울이 4.30명으로 가장 높았고 경북(0.91명)과 전남(1.05명), 충남(1.27명), 울산(1.28명), 경기(1.30명) 등 17개 시도 중에서 10개가 평균을 밑돌았다. 강원도 춘천에 살면서 4살과 1살 아기를 키우고 있는 김모씨(30)도 소아과를 '전쟁'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소아과를 찾으면 접수 자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환절기에는 한시간 넘게 기다리는 게 기본"이라며 "똑닥 앱을 이용해도 수요가 너무 많아 콘서트 티켓 예매처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오픈런 해서 접수해 놓아도 1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이라며 "접수해 놓고 조금이라도 늦거나 하면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경북 구미에서 두살 아이를 키우는 배모씨(36)도 "주로 가는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평균 1시간은 기다린다. 주말의 경우 보통 2시간 전후는 기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배씨는 "소아과 의사를 증원하는 것에 공감한다. 소아과 운영이나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고 "경북 지역에 소아과가 전혀 없는 곳도 있다. 출산율이 바닥이라 나라가 소멸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잘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2024-01-16 08:54:09소아청소년과 의사 기피현상이 지속되면서 필수의료 소멸현상이 현실로 다가왔다. 소아청소년과 응급진료 거점 역할을 해온 일부 대형병원은 담당 의사가 부족해 소아과 응급진료 요일을 축소하거나 야간 응급진료를 장기간 폐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보건복지부의 '2024년 상반기 레지던트(전공의) 1년 차 선발 결과(전기)'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는 206명 모집에 54명만 선발, 확보율이 26.2%에 그쳤다. 4명 모집에 1명만 지원한 셈이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 수도권은 모집정원 121명 중 44명을 선발해 확보율이 36.3%였지만, 비수도권은 85명 모집에 10명을 선발해 확보율이 11.7%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진료 태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 응급진료가 24시간 정상적으로 가능한 병원은 27.4%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와서 원정진료를 받는 환자 수는 70만명에 이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순천향대 천안병원의 경우 소아응급실을 주 7일에서 주 5일로 축소운영키로 했다. 병원 측에 따르면 소아응급실 소속 의사 7명 중 3명이 떠나면서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병원은 전국 소아응급실 10곳 중 하나로 지난 13년간 365일 24시간, 반경 100㎞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책임져왔다.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소아과 의사 부족으로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소아과 야간 응급진료를 받지 않다가 지난달 말이 돼서야 부활했다. 공급 부족으로 소아청소년과 폐업도 계속 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최근 5년간 폐업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총 580곳으로, 개업한 의원 564곳보다 많았다. 소아청소년과 붕괴 우려가 높아지자 정부는 소아 진료 정책가산금 등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구조적 개선책은 요원한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5건 집계됐지만 총선을 앞두고 상임위 소위 회의조차 열리지 않고 있다. 은병욱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보험이사(노원을지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다른 과에 비해 의사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경제적 인센티브가 매우 부족하다"며 "의료수가와 인건비 등을 정부에서 지원해줘야 공급이 맞춰진다"고 지적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동규 기자
2024-01-15 18:30:09"홍지민님 환자분류소로 오세요." 지난 12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 앞 복도가 환자와 보호자, 구급대원들로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동차 접촉사고, 폭행사고 등으로 119 구급차에 실려온 성인 환자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홍지민양(12) 가족이 보였다. 홍양은 엄마, 여동생과 손잡고 5분 정도 기다리다가 환자분류소로 향한 후 간단한 증상 진단과 함께 곧바로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가 없다" 6개월간 소아과 응급진료 '소멸' 홍양 가족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뒤 이태원동에 살고 있다. 홍양 어머니 홍하나씨는 "병원이 소아안심병원으로 지정돼 있어서 제때 진료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아병상에는 12세 남자아이가 자리를 잡았다. 이마에 가로 5㎝, 세로 3㎝에 가까운 상처가 나 있었다. 간호사가 소독약을 바르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사는 이재연군은 학원 버스에서 내려 빙판길을 뛰다가 계단에서 이마를 부딪혀 119에 실려왔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인근 병원 응급실 포화로 이곳까지 오게 됐다. 홍양이 성인 환자들을 제치고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소아 전용 응급실 병상 덕분이다. 1개월 전만 해도 홍양에 대한 야간진료는 이 병원에서 불가능했다. 전국에 퍼진 소아과 의사 부족현상 때문이다.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의사 부족에 시달렸다. 소아과 기피현상으로 전공의가 부족해지자 이 병원은 지난해 5월까지 교수들이 야간진료를 맡았다. 수련의가 맡을 자리를 경력 의료진이 몸으로 때운 셈이다. 교수들이 쓰러지는 사태가 나오자 6월부터는 연말까지 야간 소아과 응급진료를 받지 않았다. 소아과 응급의료 서비스가 소멸 상태에 다다른 셈이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서울시와 함께 대안을 겨우 찾았다. 서울시가 구축한 '서울형 야간·휴일 소아의료체계'다. 6개월간 문을 닫았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의 야간 소아 응급진료는 지난달 20일부터 재개됐다. 이 병원은 서울 서북권역의 '우리아이 안심병원' 중 하나로 지정되면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3명을 투입, 각각 주 2회씩 야간진료를 본다. 안심병원 운영을 위해 응급실 28개 병상 중 4개를 소아 전용으로 전환했다. ■소아과 '폐과'→전공의 급감→'응급실 뺑뺑이'까지 서울시가 소아 응급의료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필수의료 부족현상과 맞물려 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으로 의료진이 구속되자 아동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소아과 진료를 중단하겠다며 '폐과'를 선언했다. 의원급 병원이 문을 닫으며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렸다. 동시에 의대 학생들의 소아과 전공의 지원도 급감, 2022년부터 응급실에서 소아과 야간진료가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는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증 환자가 응급실로 몰리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됐다"며 "야간에도 경증 환자는 의원급에서 해결하고, 응급실은 위급한 환자가 적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권역별로 의원급 9곳, 병원급 8곳, 전문응급센터 3곳 등을 운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의원급을 대상으로 '달빛어린이병원'을 별도 운영해 상호 보완한다. 양현종 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전공의가 없어 1년 가까이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밤새 일하다 쓰러지기도 했다"면서 "주변 병원 응급실이 다 닫으면서 환자가 몰려 더욱 힘들었지만 안심병원 지정 후에는 부모들의 패닉이 많이 줄어 응급실 운영도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지원으로 다시 소아과 응급진료가 재개됐지만 사태가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소아과는 필수 의료이지만 수가가 상대적으로 낮고, 비급여 진료도 거의 없어 의사나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운영이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게 의료계의 지배적 시각이다. 양현종 교수는 "소아과는 무조건 적자다. 정부가 지원하지만 충분하지 않아 병원에서도 같은 규모로 지원해줘야 유지할 수 있다"면서 "우리 병원은 웬만한 상급종합병원보다 많은 소아과 세부전공 교수님들이 계시지만 필수의료과는 돌아가면서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
2024-01-15 18:21:27